내 이야기가 사진입니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13] 모토하시 세이이치(本橋成一), 《上野驛の幕間》(現代書館,1993)


 사진쟁이 김기찬 님은 사진밭에서는 《골목 안 풍경》이라는 사진책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여느 사람들한테는 그닥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김기찬 님이 《골목 안 풍경》 말고 《역전 풍경, 서울역 부근 1968∼1983》(눈빛,2002)이나 《잃어버린 풍경, 1967∼1988》(눈빛,2004) 같은 사진책을 내놓은 줄 아는 사진밭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찬찬히 읽히지 못할 뿐더러 제대로 읽히지 못하는 셈입니다.

 일본 우에노역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은 책 《上野驛の幕間》(現代書館,1993)을 봅니다. 김기찬 님이 일군 《역전 풍경》하고 한 자리에 놓고 보니 김기찬 님 사진책이 몹시 초라해 보입니다. 김기찬 님은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으로 서울역 둘레 사람들과 삶자락을 스치듯 담아냈으나 알뜰히 살피며 여미지는 못했습니다. 이와 달리 《우에노역 한자락》을 일군 모토하시 세이이치 님은 일본 우에노역이라는 데에서 뿌리내리어 살아가는 사람처럼 ‘역 둘레 사람들’을 마주하고 맞이하며 얼싸안는 모습을 고이 담습니다.

 아무래도 일본 사진쟁이 모토하시 세이이치 님은 ‘우에노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기찬 님이 진작에 내놓던 《골목 안 풍경》 사진들을 보면, 당신이 살던 집에서 골목동네로 마실을 나와서 찍은 사진이기는 하나 ‘골목동네 사람과 한식구가 되며’ 찍은 내음과 빛깔과 손길과 몸짓이 듬뿍 배었습니다. 김기찬 님 《역전 풍경》은 이렇게까지 짙은 내음과 빛깔과 손길과 몸짓까지 배어들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역전 풍경》을 찍던 무렵은 사진기자로 일하던 때이니, 틈틈이 사진을 찍느라 더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여길 만합니다.

 한편,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삶과 넋과 사진이 얼마나 다른가 헤아려 봅니다. 한국 사진쟁이와 일본 사진쟁이는 사진을 마주하는 매무새가 어느 만큼 벌어졌는가 곱씹어 봅니다. 한국 삶자락과 일본 삶자락은 저마다 얼마나 살갑거나 따스하거나 넉넉하거나 아름다운가 가누어 봅니다.

 사진 솜씨가 더 빼어나다 해서 더 빼어나다 싶은 사진을 얻지 않습니다. 사진 장비가 한결 훌륭하다 해서 한결 훌륭하다 싶은 사진을 이루지 않아요. 내 삶을 읽을 줄 아는 가운데 내 이야기란 내 삶에서 비롯하는 줄 깨달을 때에 나 스스로 즐겁고 좋은 사진을 일굽니다.

 엊그제는 아침부터 바지런을 떨며 읍내 마실을 나왔습니다. 빨래를 하고 아이랑 엄마랑 함께 밥을 먹고 아이 옷을 챙겨 입히며 시골길을 헉헉대며 달려 버스 타는 곳에 닿았습니다. 옆지기는 몸이 많이 힘들어 아빠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시골버스는 아침 11시 50분에 음성 읍내에서 떠나 넓은벌(광벌) 마을에 12시 안팎에 닿습니다. 어느 날에는 12시 7분쯤 떨어지고 어느 날에는 11시 57분에 떨어지기에 종잡을 수 없는 터라 일찌감치 버스 타는 곳에 나와 있어야 합니다. 아이랑 아빠는 11시 51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아이를 걸리며 가다가 아무래도 늦겠다 싶어 아이를 안고 달리니 12시 2분에 닿습니다. 고맙게도 이날은 버스가 12시 8분에 들어옵니다. 한 시간 남짓 읍내 장마당 구경을 하고 나서 낮 한 시 사십 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여러 날째 낮잠 없이 저녁까지 버티며 놀던 아이는 버스를 타고 나오기 앞서부터 졸음 가득한 눈이었는데 장마당을 마구 걸어다니면서도 졸음을 떨치지 못합니다. 내내 아빠 품에 안겨 다니다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곯아떨어집니다. 아빠는 아이를 안고 버스에서 내려 시골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집에 거의 다 닿을 무렵 길가 들꽃이 말라죽으며 남은 꽃받침이 참 예쁘다고 느껴 사진 한 장 박을까 생각하다가 그만둡니다. 아이가 새근새근 잘 수 있도록 눕힌 채 가슴으로 안느라 한손으로 아이를 안고 한손으로 사진기를 쥐지 못합니다. ‘아이를 왼어깨로 안고 사진을 찍을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젓습니다. 이렇게 해도 아이는 깨지 않겠지요. 살짝 응응거리다가 다시 잠들겠지요. 그러나 아빠 사진 한 장 더 얻는다면서 잘 잠든 아이가 끄응 하며 뒤척이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혀도 아이는 깨지 않습니다. 다른 때에는 이렇게 자리에 눕히면 깨곤 했는데, 아이가 참 힘들었나 봐요. 달게 잘 자는 아이를 바라보다가는 아빠 일손을 좀 붙잡을까 생각했지만, 아빠 또한 졸음이 밀려듭니다. 아이가 잘 때에 아빠 일을 하고픈데, 아이가 잘 무렵에는 아빠도 지쳐서 함께 곯아떨어지고야 맙니다. 한 시간쯤 눈을 붙이고 나면 아이도 어느새 일어나고, 바야흐로 저녁을 지어 함께 먹을 때입니다. 참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노릇이 없어요. 그래도 날짜는 하루 이틀 지나며, 1월이던 달력이 12월 마지막에 이르고, ‘어, 우린 아직 2011년 달력이 없는데?’ 하는 생각을 비로소 합니다.

 사진책 《우에노역 한자락》을 다시 들춥니다. 우에노역을 거쳐 어디론가 떠나거나 어디에선가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우에노역은 시끌벅적했다가 조용해지고, 조용하다가는 시끌벅적해집니다. 잘나 보이는 사람이 있고, 못나 보이는 사람이 있으며, 수수해 보이는 사람이랑 멋스러워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갖 사람 온갖 모습을 보면서, 아하 그렇구나, 온갖 사람 온갖 모습이란 온갖 이야기가 되는구나, 하고 되새깁니다. 그저 사람만 찍는다고 사람사진이 되지 않고, 서울역이든 우에노역이든 또 골목길이든 여느 길거리나 마을에서든 사람만 집어넣는다고 볼 만하거나 살가운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 달리 깃들거나 서린 이야기를 느끼어 살포시 담아야 사진이 됩니다. 저마다 다 달리 이루는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면 사람을 사진에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웃는 얼굴에는 웃는 이야기가 있고, 슬픈 얼굴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애틋한 이야기, 그늘진 이야기, 기쁜 이야기, 궂은 이야기, 사람 살아가는 하루하루 언제나 다른 이야기가 온누리 곳곳에 그득그득 있습니다. (4343.1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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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섬 이야기 비룡소의 그림동화 110
요르크 뮐러 그림, 요르크 슈타이너 글, 김라합 옮김 / 비룡소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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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벌레 삶은 즐겁지 않아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 요르크 뮐러·요르크 슈타이너, 《두 섬 이야기》(비룡소,2003)



 좋은 이야기라 할는지, 훌륭한 이야기라 할는지, 놀라운 이야기라 할는지, 아픈 이야기라 할는지, 따스한 이야기라 할는지, 여러모로 뒤엉킨 그림책 《두 섬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림책 《두 섬 이야기》는 처음에는 ‘세 섬’이었으나 ‘한 섬’은 사람들이 끝없이 돈벌레 짓을 하다가 그만 물속으로 꼬르륵 가라앉고 말아, ‘두 섬’이 되었을 때 이야기를 담습니다. 아마, 맨 처음 세 섬이던 때에는 세 섬 모두 어슷비슷 조촐한 모양새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어느새 한 섬하고 두 섬이 다른 모양새가 되고, 이 다른 모양새로 흐르고 흐르던 어느 날 한 섬이 무너졌으며, 남은 두 섬이 비슷한 모양새로 다시금 제자리를 찾았으나, 끝내 다른 한 섬마저 예전 섬이 걷던 길을 되풀이하면서 물속으로 가라앉을 뻔하는구나 싶어요.


.. 큰 섬에는 부자와 가난뱅이, 주인과 머슴이 살았습니다. 또 큰 섬의 배들은 으리으리했어요 … 그와 달리 작은 섬에는 주인도 머슴도 없었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일을 함께 했지요. 그런 까닭에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역시 없는 탓에, 노래하고 춤추고 연을 날리며 즐겁게 놀 시간이 많았습니다 ..  (4∼5쪽)


 그림책 첫머리에 적힌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첫머리부터 이 그림책 마무리가 어떻게 될는지를 환히 보여줍니다. 부자와 가난뱅이가 갈린 섬은 앞날이 어찌 되겠습니까. 주인도 머슴도 없는 섬은 앞날이 어떠할까요. 부자와 가난뱅이가 있는 섬은 오늘날로 친다면 경제성장률이 꽤 높고 국민소득 또한 제법 될 테지요. 주인도 머슴도 없는 섬은 경제성장률이 아예 없을 뿐더러 국민소득 또한 숫자로 잴 수 없을 테고요.

 생각해 보셔요. 국민소득이 몇 만 달러라 하는 나라에 거지나 떨꺼둥이가 없는가요. 국민소득이 2만 달러라 하는 이 나라 사람들 살림살이는 어떠한가요. 줄잡아서 2만 달러라 하지만, 2만 달러를 웃도는 사람하고 이 숫자를 밑도는 사람들 살림살이는 얼마나 어떻게 벌어졌는가요.

 이런 숫자를 따지면서 살아야 할 우리들일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숫자가 아니요 숫자로 따질 수 없는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헤아려야 할 우리들일는지 스스로 잘 가눌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삶을 바라지 말고, 더 즐겁게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이 지낼 삶을 꿈꾸며 가꿀 노릇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붉은 사금석 밑에서 묵직한 순금이 나왔다는 소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온 섬에 퍼졌습니다. 큰 섬 사람들은 너도 나도 황금을 찾아나섰습니다. 농부들은 이제 밭을 돌보지 않았어요. 어부들은 더이상 바다로 나가지 않았고요. 하인들과 머슴들은 몰래 일터를 빠져나갔지요 ..  (14∼16쪽)


 그림책 《두 섬 이야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따스히 아끼거나 사랑하도록 이끌려는 책입니다. 착한 마음과 참다운 넋과 고운 몸가짐을 익히도록 도우려는 책입니다. 이 나라이든 이웃한 나라이든 어른들은 도무지 제 마음을 차리지 못하는 탓에, 앞으로 우리 누리를 가꿀 아이들한테 슬기로운 얼을 북돋우고 싶어 하는 책입니다.

 틀림없이 적잖은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금이니 돈이니 이름이니 힘이니 하는 부질없는 뜬구름잡기를 달가이 여기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그림책에 나오는 큰섬 임금님이 지나치게 엇나갔기 때문에 이렇게 무너졌다고 생각하며, ‘돈을 긁어모으더라도 좀 알맞게’ 긁어모았어야 한다고 생각할 아이들 또한 꽤 있으리라 봅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에는 일을 쉬게 해 준다든지, 사금석 밑에서 나온 금붙이를 사람들한테 나누어 준다든지 하면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얼마든지 잠재울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어요.

 어느 한편으로는 《두 섬 이야기》 같은 그림책이야말로 어른들이 먼저 읽고 깨우쳐야 한다 여길 만합니다. 아이들하고 사랑스레 어울리는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도록, 어른들이야말로 이 그림책을 읽으며 당신 삶을 곱씹고 뉘우칠 노릇이라 할 만합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는 그림책이라기보다 어른들한테 읽히는 그림책이라 할 수 있어요.

 아이들 스스로 돈벌레처럼 구는 일이란 없습니다. 아이들 둘레에 있는 어른들이 하나같이 돈벌레처럼 굴 때에 아이들 또한 이런 버릇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들을 거느리거나 키우는 어버이가 돈벌레 삶에 얽매여 있을 때에는 아이들은 시나브로 돈벌레 삶에 젖어듭니다. 아이들이 대학입시에 일찍부터 목 매달도록 내모는 어버이와 교사란, 아이들이 돈벌레 삶에서 허덕이도록 내모는 꼴하고 마찬가지입니다.


.. 눈먼 할아버지는 섬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눈먼 할아버지는 자기가 같이 갈 것이며 주민들을 외롭게 버려두지 않겠다고 했지요. “큰 섬 왕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조개껍데기를 품삯으로 줄 거요. 하지만 우리가 조개껍데기를 무엇에 쓰겠소? 그러니 이제는 큰 섬 사람들에게 쓸모없어진 흙을 품삯으로 달라고 합시다. 큰 섬 사람들이 훔쳐갔던 우리 섬의 흙을 말이오.” ..  (21쪽)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삼천리 펴냄,2010.11.)이라는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흙을 다루는 그림책이며 이야기책이며 인문책이며 제법 많습니다. 흙을 밟거나 만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흙을 다룬 책’을 읽을까 궁금한데, 논밭을 일구거나 텃밭을 돌보거나 꽃그릇을 가꾸는 사람은 당신이 늘 만지는 흙이 바로 ‘좋은 책’입니다. 흙을 다룬 책은 ‘흙을 만지는 사람이 날마다 느끼는 삶’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풀어서 책 하나로 엮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은 굳이 책 하나를 더 읽을 까닭이 없고, 믿음직하게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애써 책 하나 더 쥐어 주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꾸자꾸 사랑을 읽으니까 ‘흙을 다루는 책’을 내놓을밖에 없습니다. 요즈막 사람들이 하나같이 믿음을 버리니까 《두 섬 이야기》 같은 그림책이 나올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살리는 길을 걷는다면, 이와 같이 걷는 내 삶이 곧바로 좋은 책 하나입니다. 목숨을 사랑하는 길을 걷는다면, 이처럼 걷는 내 삶으로 이웃하고 살가이 어깨동무합니다. 목숨을 보살피는 길을 걷는다면, 이렇게 걷는 내 삶으로 나부터 한껏 즐겁기에 내 둘레 벗과 이웃과 살붙이 모두 즐거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림책 《두 섬 이야기》 끝자락을 보면, “작은 섬 사람들은 큰 섬 사람들에게 앙갚음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작은 섬 사람들은 도망 온 큰 섬 사람들이 뭍으로 올라오도록 도와 자기네 집으로 데려갔습니다(29쪽).”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주인과 머슴이 없던 자그마한 섬 사람들은 ‘주인과 머슴’에다가 ‘부자와 가난뱅이’가 갈린 채 툭탁질을 하던 커다란 섬 사람들이 제 고향 터전을 잃고 찾아들었을 때에 ‘언제나 그러하듯’ 똑같은 벗이나 이웃이자 살붙이로 맞아들입니다. 마땅한 일입니다.

 싸움이 아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니 평화로이 서로를 맞아들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한테는 ‘내 편’이니 ‘네 편’이니가 없습니다.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적군’과 ‘아군’이 나뉘어요. 다 함께 골고루 일놀이를 즐기는 삶일 때에는 밥 한 그릇 넉넉히 나눕니다. 내 밥그릇에서 반을 덜든 얼마를 덜든 내 몫을 기꺼이 덜어 이웃한테 건넵니다. 이웃돕기를 할 마음이 아니라, 마땅히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웃사랑이 아니라, 으레 이처럼 살아왔어요. 겉치레로 붙이는 이름이 아닌 삶입니다. 사진을 찍느니 방송을 찍느니 할 ‘봉사’나 ‘자선’이 아닌 여느 나날입니다.

 가만가만 이 나라 삶터와 삶자락과 삶무늬를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에는 국민소득과 경제성장률과 대학입시라는 숫자놀음이 판칩니다. 날이면 날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에다가 이주노동자 다툼과 아픔이 불거집니다. 따숩거나 넉넉한 이야기가 불거지거나 샘솟는 일은 몹시 드뭅니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책이고 따숩거나 넉넉한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은 좀처럼 안 다룹니다. 아무래도, 이쪽 사람이건 저쪽 사람이건 목청 높이는 금긋기를 할 뿐이지, 서로를 내 동무나 이웃이나 살붙이로 여기지 못하는 탓입니다. 삶을 바로세우면서 《두 섬 이야기》를 읽는다면 이 그림책을 ‘지식 교훈 그림책’이 아닌 ‘사랑 믿음 그림책’으로 받아들여 살포시 껴안겠지만, 삶을 바로세우기 앞서 ‘좋은 책’이라는 껍데기만 붙잡으며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휙휙 던져 주거나 읽히는 어버이랑 교사만 많은 이 나라가 아닐까 근심스럽습니다.

 책은 안 읽어도 되니까 부디 착하게 살아가면 고맙겠어요. 좋은 책일지라도 애써 안 읽거나 몰라도 괜찮으니까 제발 고운 넋 사랑스레 나누며 살아가면 반갑겠어요. (4343.12.5.해.ㅎㄲㅅㄱ)


― 두 섬 이야기 (요르크 뮐러 그림,요르크 슈타이너 글,김라합 옮김,비룡소 옮김,2003.11.7./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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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사진책을 어디에서 볼까
 ― 언제쯤 시립·군립 사진도서관이 생길까



 만화책을 보거나 소설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은 많습니다. 차츰 줄어들지만 도서대여점에서는 만화책과 소설책을 알뜰히 갖추곤 합니다. 지난날 새마을문고라든지, 무슨무슨 문고라는 이름으로 ‘책 읽는 자리’를 마련하는 데라든지, 여느 도서관에서도 소설책은 널리 살피며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진책을 알뜰히 갖춘 도서관은 없을 뿐더러, 사진책을 장만하는 데에는 돈이 워낙 많이 들다 보니까, 갖추어도 몇 권 못 갖추기 일쑤입니다. 그나마 나라안 사진책을 조금 다루기는 하지만, 나라밖 사진책은 거의 못 다루곤 합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 서울에는 ‘갤러리’나 ‘북까페’라는 이름을 단 곳에서 사진책을 갖추어 놓곤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훌륭한 사진책을 제법 잘 갖춘 이들 갤러리나 북까페는 사진책을 두루 살피려 하는 분들한테는 더없이 멋진 곳입니다. 커피나 차를 팔면서 사진책을 볼 수 있도록 마련한 데도 꽤 있습니다. 책방에서는 쉽사리 마주하지 못하던 사진책을 차 한 잔 마시면서 볼 수 있다면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라안에서 나온 사진책이든 나라밖에서 나온 사진책이든, 헌책방만큼 골고루 갖춘 데는 드물지 않느냐 싶습니다. 헌책방에서는 온갖 책을 마음껏 들여다보다가, 간직하고픈 책은 언제라도 살 수 있어요.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책도 있고, 나온 지 꽤 오래된 책도 있습니다.

 사진책은 책방에서 잘 다루지 못하지만, 사진책이 하나 나올 때에는 으레 사진잔치를 엽니다. 사진잔치를 여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책이나 도록이나 알림쪽을 구경하거나 얻거나 살 수 있습니다. 책방에는 안 넣고 사진잔치 자리에서만 파는 사진책이 있습니다. 두툼하게 엮지 못하는 도록은 이런 자리에서만 구경하거나 살 수 있어요.

 2005년 7월에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벌어진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잔치에 가 본 적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한글판과 일어판 두 가지 도록을 팔았습니다. 한글판은 값이 일어판보다 만 얼마 비쌌으나 인쇄와 종이가 좋지 않았어요. 인쇄가 한결 낫고 종이 또한 나은 일어판 도록을 샀습니다. 이 도록은 여느 책방에서는 팔지 않았기에 사진잔치를 보러 갔을 때에만 살 수 있었어요. 살가도 님 사진책은 나중에 서울 혜화동 〈이음책방〉에서 두 권을 더 샀는데, 책값이야 어떻든 눈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장만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2010년 여름 서울 신사동에 열린 ‘타센 팝업스토어’ 같은 데도 사진책을 만날 고마운 곳입니다. 저는 아직 못 가 보았습니다만, 서울이나 서울 둘레에서 살아간다면 이 같은 곳을 사뿐사뿐 마실해 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문을 닫고 사라졌으나, 예전에 서울 연남동 안골목에 ‘캘커타 앤 코코넛’이라는 헌책까페 한 곳 있었어요. 이 조그마한 헌책까페 안쪽 방에는 아우구스트 잔더 사진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책은 팔지만 이 사진책은 팔지 않았고, 팔지 않는 만큼 이곳을 들르는 사람 누구나 즐거이 넘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곳을 들를 때면 늘 이 사진책을 되풀이해서 보았습니다. 볼 때마다 새삼스럽고,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더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반가웠습니다.

 커피를 팔며 한켠에 사진책을 갖춘 곳은 으레 사진책을 그리 많이 갖추지는 못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다문 몇 권을 갖추었어도 고마우면서 반가운 ‘사진책 나눔터’라고 느낍니다. 바로 이 몇 안 된다는 사진책 때문에 이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습니다. 만날 수 있고, 이을 수 있으며, 어우러질 수 있는 데에서 사진책 읽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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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달걀부침을 잘 못한다. 달걀말이는 그럭저럭 한다. 젓가락질을 꽤 하던 아이가 한동안 젓가락질을 않더니, 이제는 영 못한다. 차근차근 해 보렴.

 - 20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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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내 장날에 아이하고 마실을 나가 보니, 미용실에 할머니들이 북적댔다. 아이를 안고 다니느라 사진은 요 하나 겨우 찍는다.

 - 2010.12.2. 충북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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