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책을 말할 자유


 집식구가 둘째를 배어 여러 달째 집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 집식구가 뜨개질을 하니 저절로 수많은 뜨개책을 사서 모으고 읽는다. 옆지기가 뜨개책을 산다고 하기 앞서부터, 나는 그동안 헌책방을 다니고 책마을 일꾼으로 일하면서 ‘한국 뜨개책이란 한 가지도 없는’ 줄 알았다. 굳이 옆지기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옆지기 스스로 뜨개책을 찾아보면 다 알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라안에서 나온 뜨개책이든 나라밖에서 나온 뜨개책이든 몇 백 권 사들였다. 한국에서 나온 뜨개책은 모조리 일본 뜨개책을 베꼈다. 사람들이 잘 모르기도 하지만, 뜨개질에서 쓰는 말 가운데 옳게 우리 말다이 쓰는 말이 퍽 드물다. 인터넷모임을 꾸리며 뜨개질을 나누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알아챈다. 스스로 뜨개질을 해 보니, 한국말로 된 마땅한 한국책이 한 가지도 없어, 다들 영어로 된 책을 나라밖에서 사다가 읽거나 일본말로 된 책을 사서 읽는다. 어려운 영어나 일본말을 몇몇 사람들이 고맙게 번역해 주어 뜨개질 실마리를 나누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예부터 뜨개질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뜨개질이 있다 하여도 ‘뜨개 교본’은 한 가지도 없었을 뿐더러, 온갖 무늬를 넣어 하는 뜨개법이란 없다. 이 모든 뜨개법은 나라밖에서 들여온다. 그리고, 일본을 거쳐서 들어오기 일쑤이다. 지난날이든 오늘날이든 뜨개 교본은 일본 뜨개 교본에서 베끼거나 번역을 한다.

 옆지기는 첫째를 배었을 때까지 종이접기를 즐겨 했다. 종이접기를 하던 옆지기는 ‘종이접기 책’ 또한 한국책은 한 가지도 없는 줄 일찍부터 알았단다. 아무렴. 한국사람이 즐긴다는 종이접기는, 가만히 보면 그냥 종이접기가 아닌 ‘일본 오리가미’이기 일쑤이다. 한국에서 나오는 종이접기 책은 거의 모두 일본 ‘오리가미’ 책을 번역하거나 몰래 내놓는 도둑책이다.

 피아노 교본은 어떠할까? 교과서는 어떠한가? 사진책은 어떠하지? 문고판은 어떠했는가? 수많은 세계문학전집과 추리문학전집은 어떠했는가? 이 나라 책 가운데 일본책한테서 배우거나 훔치지 않은 책이란 몹시 드물다. ‘순수 창작 문학’이라는 책 아니고는 한국책이라 할 만한 책이란 없다시피 하다. 과학책이고 대학교재이고 다르지 않다. 전문서적이든 학술서적이든 매한가지이다. 역사책조차 일본책에 기대 온 나날이 대단히 길다. 역사 연구는 한국사람보다 일본사람이 더 깊고 넓게 해 왔고, 아직도 이 틀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본이 잘났고 한국이 못났대서 이러한 이야기를 끄적이지 않는다. 삶을 삶대로 바라보고 책을 책대로 껴안는 가운데, 이 땅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 깜냥껏 우리 슬기를 빛내어 나아갈 길을 찾고 즐겨야 하니까 이러한 이야기를 끄적인다.

 이제부터라도 참다운 ‘한국 뜨개책’을 누군가 쓰면 훌륭하다. 이제부터라도 즐겁게 ‘한국 종이접기책’을 누군가 엮으면 아름답다. 대원사에서 펴내던 “빛깔있는 책들”이 있기 앞서, 일본에서는 “칼라 북스”가 있었다. “빛깔있는 책들”은 “칼라 북스”한테서 배우거나 흉내냈다 할 만하지만, 한국땅 대원사 “빛깔있는 책들”은 짜임새와 꾸밈새를 한국답게 어루만져서 내놓았다. “칼라 북스” 같은 책이 없이 “빛깔있는 책들”이 나오기 힘들었으나, “칼라 북스”는 “칼라 북스”요 “빛깔있는 책들”은 “빛깔있는 책들”이다.

 책은 이렇게 만들면 되고, 이렇게 즐기면 되며, 이렇게 말하면 된다.

 어떤 이는 한국이 ‘미국 식민지’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이 말을 몹시 싫어하거나 못마땅해 한다. 정치로는 식민지가 아니라 할는지 모르나, 한국 정치조차 미국 정치가 에헴 하면 깨깽 하는데, 정치마저 식민지가 아니라 하기 어렵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놓고 얼마나 시끌벅적 떠드는가. 미국 장관들 이야기이며, 미국 경제와 사회 이야기가 한국 언론매체에 얼마나 큼지막하게 나오는가.

 한국은 책마을을 비롯해 문화마을과 예술마을이나 여러 갈래가 ‘일본 식민지’라 할 만하며, 참말 식민지 굴레를 고스란히 붙잡는다. 털지 못하거나 씻지 않는다. 느끼지 못하니 털 생각을 못하고, 깨닫지 않으니 씻을 마음을 내지 못한다.

 한국책이 참으로 한국책답지 않은 줄 알아야 비로소 한국책을 만들고 나누며 즐긴다. 한국책이 얼마나 한국책답지 못한가를 모른다면, 우리들은 한국책 아닌 일본책이나 미국책이 마치 한국책이라도 되는 줄 잘못 알 뿐더러, 쥐뿔 하나 없는 주제에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고 만다.

 자존심은 밥을 먹여 주지 않는다. 구슬땀을 흘리며 논밭을 일구어야 밥을 먹는다. 우리들은 자존심을 버리고 구슬땀을 흘리면서 이 땅에서 아름다운 한겨레 살붙이로 다시 태어나면서 내 밥을 맛나게 먹고 이웃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2011년 오늘까지도 아직 한국에는 한국책이 없다. (4344.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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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 바꿔 주세요! 웅진 세계그림책 109
다케다 미호 글.그림, 고향옥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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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 바꿔 주셔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 다케다 미호, 《짝꿍 바꿔 주세요》(웅진주니어,2007)



 깊은 밤, 잘 자다가 깨어난 아이가 칭얼거립니다. 쉬가 마려우면 기저귀에 누든지 잠자리에서 일어나 변기에 누든지 하면 좋으련만, 아이는 깊은 밤이건 이른 새벽이건, 아직 때를 가리지 못합니다. 그저 눈빛 말똥말똥 빛내며 놀고파 합니다.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켜 아이를 달래거나 토닥여야 하는가 싶어 한숨부터 나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거나 고단할 텐데 어버이라는 사람 마음이 이렇습니다. 쉴 겨를 없이 집일과 아이돌보기로 하루를 꼬박 지새우다 보니, 잠자리에서는 기운을 더 내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아직 아이가 하나인데 이런 몸이라면 아이가 둘일 때에는 어찌 되려나요. 아이를 셋 넷 다섯 여섯 키운 어버이들은 어떤 몸이거나 마음이었으려나요. 아이가 여럿이면 언니들이 동생을 잘 돌봐 주거나 놀아 주었으려나요.

 아이 어머니가 몸을 추스르며 아이를 안고 잠들어 줍니다. 몹시 고맙다고 느끼면서 귓결로 속삭임 한 마디를 듣습니다. “벼리가 이제 다 컸구나. 아빠가 다 키워 줬네.”

 다른 집 생각을 하고프지는 않으나, 여느 다른 집에서라면 이런 말은 으레 아빠가 할 테고, 이런 말을 들을 사람은 으레 엄마일 테지요.

 어버이 된 몸으로서 마지막 기운을 더 뽑아낼 수 없을 듯하면서도 어찌저찌 움직이면 또 마지막 기운을 한 번 더 쓸 수 있고, 여기에서 다시금 또 어찌저찌 하노라면 마지막 기운을 두 번 더 쓸 수 있곤 합니다. 한 사람 몸이란 워낙 이러한지, 어버이가 되면 누구나 이러한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내 생각에 머문다면 이렇게 하지는 못하고, 아이 생각을 한다면 이렇게 움직입니다. 나를 키워 온 어머니도 이렇게 움직이셨을 테고, 내가 내 아이한테 이렇게 움직일 테며, 내 아이도 나중에 커서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하겠지요.

 해가 바뀌어 아이는 네 살로 접어듭니다. 달수는 서른한 달. 아이 나이를 한 달 두 달 헤아리면서, 아이 나이 한 달을 함께 보내는 동안 한 달은 마치 한 해와 같다고, 아니 열 해와 같다고 느낍니다. 아이와 보내는 하루는 꼭 한 해와 같겠지요. 아이 나이는 서른한 달이라지만, 이 아이하고 서른한 해나 삼백열 해를 살아온 듯합니다.

 갓 태어났을 무렵에는 아이 옹알이나 아이 마음을 거의 못 읽었으나, 이제는 아이가 뒤돌아서 옹크릴 때에도 요 녀석이 뭘 생각하나 하고 읽습니다. 거짓으로 우는 소리를 내거나 놀이 삼아 칭얼거려도 고개 한 번 안 돌리며 알아챕니다. 아빠는 도마질을 하면서 아이를 타이르고, 아이는 말로도 제법 알아들으며 움직여 주곤 합니다. 그러나 말로 스무 번이나 쉰 번쯤 해야 비로소 몸을 움직여요.

 답답하고 갑갑하며 고단한데다가 힘겨운 아빠는 홀로 생각합니다. ‘난 오늘 아무것도 못할 듯해. 그러나 아무것도 못할 수 없어. 그러면 우리 집 식구들 모두 굶을 테니까. 머리가 아프든 손이 다쳤든 허리가 삐끗하든 집살림을 꾸려야 해.’ 말 안 듣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네가 우리 아이 맞니? 왜 이렇게 미운 짓만 골라서 하니? 같이 놀아 주지 못해서 그러니? 그렇다고 너하고만 내내 놀아 줄 수는 없잖니?’ 문득, ‘우리 아이 바꿔 주셔요.’ 하는 생각이 몽실몽실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를 바꿔 달랄 수 없고, 바꿀 수조차 없습니다. 밥 먹으며 온갖 곳에 흘리고 입 둘레가 지저분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창 칭얼거리다가 제풀에 곯아떨어진 모습을 보면서, 놀이에 빠져 오줌 마려운 줄 잊다가 바지에 싸는 모습을 보면서, 조그마한 손으로 뭔가를 만지작거리거나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 꼼틀꼼틀 살아숨쉬는 여린 목숨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길 말고 무엇이 있겠느냐고 곱씹습니다.


.. 난 오늘 학교 못 갈 것 같아. 머리가 아픈 것 같아. 배가 아픈 것 같아. 열이 나는 것 같아 ..  (1∼3쪽)


 그림책 《짝꿍 바꿔 주세요》를 읽습니다. 지난 2007년 3월에 한글판이 나온 일본 그림책입니다. 우리 식구는 이 그림책을 일본판으로 먼저 읽었습니다. 일본글은 모르면서도 그림이 예쁘고 줄거리가 살갑다고 느껴 헌책방에서 기쁘게 장만했습니다(우리 식구가 장만한 일본책은 1991년에 1쇄를 찍고 1996년에 20쇄를 찍었습니다. 2007년에 이 그림책을 옮긴 웅진출판사는 보도자료에 이 그림책이 2007년까지 일본에서 50만 부 넘게 찍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아이 또한 제 어버이처럼 일본글을 모를 뿐더러 아직 한글조차 모르지만, 아이도 이 그림책을 몹시 좋아합니다. 아빠는 그림책 그림만 보면서 아이한테 이야기를 지어서 읽어 주곤 합니다. 아이는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알 노릇은 없지만, 무릎에 앉히고 한 장씩 넘기며 따순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야기보따리’나 ‘이야기꽃’을 즐기는구나 싶어요.

 그림책 얼거리로 본다면 《짝꿍 바꿔 주세요》는 그림이 예뻐 한눈에 사로잡힐 만하지만, 그저 그림만 예쁘지 않습니다. 예쁜 그림에 걸맞게 예쁜 이야기를 펼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어린이 마음과 눈높이와 삶결에 따라 나즈막하면서 싱그럽고 보드라운 결을 곱게 보살핍니다. 짓궂은 짝꿍한테 시달리는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기고, 짓궂은 짝꿍한테 크게 성을 내는 마음풀이를 곱게 담으며, 짓궂던 짝꿍이 속으로는 제 여자 짝꿍하고 더 살가이 지내고픈 마음이었으나 이렇게 짓궂게 굴어서는 살가울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아 부드러운 사이로 발돋움하는 흐름을 아리땁게 담는 가운데, 이 모두를 놓고 힘들어 했으면서도 너그러이 받아안는 조그마한 여자 아이 커다란 가슴을 흐뭇하게 담습니다.

 남자 아이든 남자 어른이든 참 어리석습니다. 짓궂게 군다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바둥거린들 무엇 하나 예뻐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어리석은 남자들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대로 살면서 참사랑을 놓치곤 할 테지요. 여자 아이나 여자 어른이 남자들 어리석은 바보짓을 언제까지나 참아내거나 보아주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어리석은 바보짓은 그만두고 따숩고 너른 손길을 나누거나 따사로우며 넉넉한 어깨동무를 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밤샘 밤일 몰아붙여 돈을 더 벌어들인다고 집안이 더 즐거울 수 없습니다. 그저 돈만 더 번다고 집식구가 좋아할 수 없습니다. 집안에 자가용이 꼭 있을 까닭도 없으며, 자가용을 갖춘다 했을 때에 더 크거나 빠른 자가용을 갖출 까닭이란 없습니다. 꼭 있어야 하면 조그마하거나 값싼 자가용이어도 넉넉합니다. ‘내 살림집’이라면 굳이 아파트여야 하거나 넓은 집이어야 하지 않아요. 호젓하거나 아리따운 시골집에서 논밭 작게 일구며 조용히 살아도 참으로 기쁩니다. 군대를 크게 일으킨다고 나라 지키기를 할 수 없습니다. 미사일이며 탱크며 전투기며 군함이며 만들거나 꾸릴 돈으로 온누리 평화로우며 사랑스럽게 일구어야 아름답습니다.

 예쁜 어린이로서 예쁜 어린 나날을 보내며 예쁜 짝꿍이랑 예쁜 꿈을 꾸는 가운데 예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삶을 일굴 때에, 예쁜 어른으로 무럭무럭 크면서 예쁘게 일을 하고 놀이를 즐깁니다.

 겉만 예쁜 말이 아니라, 속으로 예쁜 말입니다. 겉만 예쁜 옷이 아니라 온몸이 예쁜 삶이어야 합니다.


.. 학교 가기 싫다 ..  (21쪽)


 싸움터에서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싸움터에는 가기 싫습니다.

 시뻘건 피가 튀며 총알이 비오는 곳만 싸움터가 아닙니다. 출퇴근과 통학을 한다는 아침길부터 지옥철이거나 지옥버스라 한다면 싸움터입니다. 알맞춤한 벌이와 배움을 즐기는 알맞춤한 일터와 배움터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로 복닥이며 싸움터로 바뀌어 버린 도시란 바로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싸움터 아닌 일터와 배움터에서 서로 맑게 웃을 노릇입니다.

 밭을 갈고 싶다거나 눈밭을 걷고 싶다거나 장작을 패고 싶다거나 나물을 캐고 싶다고 생각하는 삶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착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꿈을 꾸면서 나부터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아름답습니다.

 이리하여 날이면 날마다 아이랑 복닥이며 요 개구진 말괄량이랑 어떻게 놀며 어떻게 하루를 또다시 복닥여야 할는지를 놓고 아침부터 해롱해롱입니다만, 새삼스레 새힘을 내자고 다짐합니다. 서른한 달이 되는 아이는 엊그제부터 ‘어머니 전은경’과 ‘아버지 최종규’라는 소리를 똑똑히 말하는 한편, 제 이름 ‘사름벼리’도 똑부러지게 말합니다. 드디어 서른한 달 만에 식구들 세 사람 이름을 또박또박 익혀서 말합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좋은 모습 좋은 꿈 좋은 삶을 빛내면 되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아이인 만큼 아이한테 애늙은이가 되라 바랄 수 없어요. 어버이는 어버이인 만큼 어버이답게 아이하고 부둥켜안는 나날을 보내야지요. 《짝꿍 바꿔 주세요》에 나오는 어린이는 매우 괴롭고 힘든 나머지 “짝꿍 바꿔 주세요!” 하고 속으로 외치고 외쳤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학교에 다시 나갑니다. 아니, 날마다 학교에 빠져 공원이나 길가 어디에서든 떨어져 지내고 싶지만, 눈물을 꾹 삼키며 다시 학교로 갑니다. 이윽고 못된 짓 일삼던 짝꿍은 제 잘못을 뉘우치며 “짝꿍 바꿔 주세요!”라 외치고파 하던 아이한테 모진 손길이 아닌 여린 손길을 내밉니다. 우리 집 돼지 한 마리도 고단한 나날 보내는 제 아버지가 너무 지쳐 드러누우면 고 조막만 한 손으로 이마며 볼을 쓰다듬어 줍니다. 짝꿍도 아이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내고 함께 살아갑니다. (4344.1.6.나무.ㅎㄲㅅㄱ)


― 짝꿍 바꿔 주세요 (다케다 미호 글·그림,고향옥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7.3.3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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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31. 

인형을 이불에 감싸안고 재우는 어린이. 그래, 근디 너나 좀 주무셔 주시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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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삶쓰기 빨래하기


 아이는 이제 오줌을 잘 가린다. 그런데 아이가 앉는 변기가 작은지 요새는 변기에 오줌을 누어도 자꾸 샌다. 아이가 나날이 크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 변기에 얌전히 앉고 바지도 제대로 내려야 하는데, 이렇게 안 하고 아무렇게나 앉아서 쉬를 하면 엉덩이며 허벅지며 바지며 다 튄다. 오늘 하루만 속바지 세 벌과 겉바지 두 벌을 버렸다. 오줌을 가려 빨래감이 줄었다 싶더니, 이제는 이렇게 새로운 빨래감을 쏟아낸다. 오줌으로 젖은 바지를 들고는 짜증을 낸다 한들 어쩔 길이 없다. 아이보고 바가지라도 뒤집어쓰고 소금 얻어 오라고 꾸중하지만, 이런다고 아이가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가뜩이나 물이 얼어 멀리 물을 길어오는 데까지 가서 빨래를 해야 하는데, 자꾸 빨래감이 나오면 속이 아프고 힘들다. 예전에는 아이가 오줌을 누어도 “그래, 잘 눠.” 하고 말한다든지 가만히 다른 일을 해도 되었으나, 이제는 밥을 하다가도 뭐를 하다가도 허리가 아파 살짝 드러누워 쉬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아이를 변기에 제대로 앉혀야 할 뿐더러, 쉬를 눈 아이 밑을 닦아야 한다.

 겨우겨우 아이를 재워 놓고는 느즈막한 저녁나절 아빠는 글조각 하나라도 건사해 볼까 싶어 셈틀을 켜는데, 멍하거나 띵할 뿐 도무지 손을 쓰지 못한다.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보기도 하고, 멀뚱멀뚱 앉기도 하지만, 좀처럼 새마음을 차리지 못한다. 살림하는 어머니들한테는 책읽기라든지 글쓰기라든지 꿈조차 꿀 수 없던 일이었을까. 책이고 글이고 뭐고 돌아볼 겨를 없이 바빠맞을 뿐 아니라, 어쩌다가 숨돌릴 겨를을 얻었달지라도 숨마저 못 돌리며 밤하늘 별바라기를 하며 한숨을 쉴 뿐인가. 아이 옆에 다시 드러누워 잠들고도 싶지만, 밤새 아이 기저귀를 갈며 잠을 뒤척일 테고, 새벽나절 일어나서 맑은 넋으로 글조각 조금 붙잡는다 하더라도 아이는 다시금 일찌감치 깨어나 아빠하고 놀자고 옷소매를 붙들겠지.

 잠든 아이 기저귀를 채우는데 퍼뜩 깬다. 한동안 다시 잠들지 못하기에 가슴에 귀를 대고 토닥토닥거리다가는 “쉬 마렵니?” 하고 물으니, “응, 쉬 마려.” 한다. 기저귀를 푼다. 변기에 얌전히 앉힌다. 쉬를 깨끗하게 누도록 해 준다. 밑을 닦는다. 자리에 눕히고 기저귀를 채운다. 아이는 눈을 살며시 떴다가 감았다 한다. 다시 아이 가슴에 귀를 대고 통통통 뛰는 소리를 듣는다. 아이는 아빠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어 준다. 이윽고 일어나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무거우면서도 보드랍게 눈을 떴다가 감는다. 깨어나려나 마려나. 허, 아이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하며 돌아앉는다. 아이 숨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문득 뒤돌아본다.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아이 이마에 입을 맞춘다. 아빠도 졸립다. 아무래도 함께 쓰러져야겠다.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다. (4344.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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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만 님은 ‘독재부역’ 만화를 그렸을까? 아니면?
 ― 1987∼88년 민주운동을 비웃는 《퇴색공간》을 보면서



- 책이름 : 퇴색공간
- 글ㆍ그림 : 허영만
- 펴낸곳 : 당산 (1990.9.5.)


 (1) 창작하는 자유와 비평하는 자유


 만화를 비롯해 모든 문화와 예술은 ‘창작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창작하는 자유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개 창작품이 나한테 못마땅하다면, “나는 그이 작품은 못마땅해요” 하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이가 작품을 내놓지 못하게 막아야 해요”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이렇게 말하는 일은 잘못입니다. 진보만이 옳을 수 없고, 보수만이 옳을 수 없습니다. 진보 목소리를 막을 수 없고, 보수 목소리 또한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은 반드시 진보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보수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삶은 우리 삶대로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으면 됩니다. 법 없이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일 때가 가장 아름답고, 어느 틀에 매이지 않으면서 내 삶과 이웃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넋일 때가 가장 믿음직스럽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이승만과 박정희를 우러르는 만화쟁이가 있더라도(이원복), 전두환을 높이 사는 사진쟁이가 있더라도(에드워드 김), 노태우를 훌륭하게 여기는 만화쟁이가 있더라도(고우영),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도록 애쓴 만화쟁이가 있더라도(이현세), 이분들 모두 당신 생각과 뜻에 따라서 우직하게 한길을 걸어간 분들이므로, 또 이분들 나름대로 만화창작(또는 사진창작)을 하신 분들이므로, 꾸밈없이 바라보고 껴안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이분들이나 다른 분들이나 누구한테나 ‘창작하는 자유’가 있고, 창작하는 자유에 따라서 “박정희를 사랑해요!”나 “노태우가 좋아요!”나 “이회창이 짱이야!”를 외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한테는 창작하는 자유 못지않게 ‘따지는 자유’, 곧 비평과 비판을 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 따위 만화를 그리냐, 이런 ○○ 녀석!” 하고 쏘아붙이는 헐뜯기가 아니라, “아무개 씨 이런 만화는 이러저러한 줄거리로 이러저러한 목소리를 내는 만화로군요. 이러저러한 만화는 우리 삶과 사회에 어떻게 파고들거나 스며들어, 우리들한테 어떻게 느껴지거나 보여지는 만화이네요.” 하고 따질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화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또 만화를 말하는 한 사람으로서, 더욱이 거칠고 팍팍한 이 나라에서 똑같이 세금을 내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만화비평과 만화평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노무현 님이 막 대통령이 되어 사랑을 받을 때, 책방에는 ‘노무현 만세!’를 외치는 어린이 만화가 제법 쌓이며 팔렸는데, 여러모로 씁쓸한 길을 걸으면서 이 만화책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황우석 님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만화 또한 한동안 책방 책시렁을 가득 메웠으나, 쓰디쓴 일이 터지면서 이 만화와 전기와 과학책들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작가는 작가고, 작품은 작품이며, 책은 책인데, 작가가 다룬 작품이 누구를 다루느냐에 따라서 책은 붕붕 뜨기도 하다가 종이쓰레기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책한테 무슨 잘못이 있느냐 싶어 안타깝습니다. 잘못이란, 제대로 알아보거나 앞날을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 엮어내고 사고팔려던 책마을 사람한테, 또 이런 책을 아낌없이 사랑하며 사들이던 우리한테 있지 않느냐 싶으나, 화살은 늘 애꿎은 책한테만 돌아갑니다.


 (2) 허영만 님 만화 《퇴색공간》을 보면서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 보면 뜻하지 않던 보배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책이 나온 적이 있느냐 놀라는 책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소문으로는 제법 퍼졌으나 실물을 보지 못해 궁금하던 책을 용케 손에 쥘 때가 있습니다. 때를 잘못 타고 나오는 바람에 사랑 한 번 못 받고 스러졌던 책을 만나고, 때를 잘 타고 나오면서 돈과 이름을 얻었으나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부역’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 자취를 감추어 버린 책을 만납니다.

 허영만 님 만화책 《퇴색공간》을 만났을 때에는 느낌이 여러모로 아리송했습니다. 만화 《오! 한강》을 그릴 때 떠돌던 소문이 그저 소문일 뿐인지, 아니면 만화를 그린 분 스스로 우리 삶터를 바라보는 눈길이었는지를 알 길이 없었는데, 만화 《퇴색공간》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아하, 그랬구나.’ 하고 무릎을 칩니다.


.. “신두표 이제 가니?” “으응, 도서관에서, 에 에 에 에취! 왜들 이렇게 북새통인지 이해가 안 가!” “내가 요즘 읽는 것 중에 고내찮은 책이 있는데 빌려 줄까?” “무슨 책인데?” “이거야.(《대학의 소리》라는 책)” “이거, 불온서적 아니야?” “무슨 말을,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 자처하려면 이런 정도의 이론 무장은 되어 있어야지.” ..  (17∼18쪽)


 만화 《퇴색공간》은 ‘공장에 다니며 누나한테서 대학 등록금을 받던 신두표라는 1학년 학생이 세상물정을 하나도 몰랐다가 좌경학생한테 물이 들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을 품고는, 학업을 때려치우고 공장에 위장취업을 하면서 노조운동을 벌여 애꿎은 회사가 부도가 나게 한다’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이러면서 사이사이 ‘대학생들이 철없이 데모질이나 한다’는 대목을 끼워넣습니다.


.. “아이고, 이 녀석아, 이게 무슨 냄새냐? 네가 들어오니까 코가 근질거려 죽겠구나!” “최루탄이 묻어서 그래요.” “빨리 벗어라, 물에 담그게.” “예!” “원 녀석들, 비싼 돈 들여 학교 보냈으면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웬 데모야, 데모가. 넌 아예 근처도 가지 마라, 응?” “염려 마세요, 어머니.” ..  (19쪽)


 데모를 왜 하는지, 누가 누구하고 맞서는 데모인지, 1987년에 대학생들이 왜 그토록 데모를 하려고 했는지는 한 마디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신두표가 차츰 ‘지하서클’에 가까이하며 나쁜 물이 든다는 이야기를 펼치고, 지하서클에서는 학생들한테 ‘반공교육이니 대북정책이니 고급호텔이니 식민성과 반 봉건성이니 민중운동이니 부자는 몹쓸 놈이니’ 하는 이야기를 앞뒤 흐름 없이 툭툭 잘라서 토막토막 내던집니다.

 1987년에 학생들 데모가 그토록 일어난 까닭, 노동자가 그토록 일어난 까닭, 사람들 살림이 고달팠던 까닭, 학생들이 얌전히(?) 공부에 마음쓰지 못한 까닭, 이리하여 전두환 독재정권이 무너진 까닭, 이러는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흘러왔고 어찌 흘러가게 되는지 들은 조금도 다루지 않습니다.


.. “태일아, 책 잘 봤다.” “잘 읽었니?” “뭐가 뭔지 모르겠어. 민주화니, 투쟁이니,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니냐?” ..  (20쪽)


 신두표는 “누나가 해 준 등록금이야! 어렵게 벌어서 준 돈인데 공부는 안 하고 데모에 앞장서고 있는 내가 과연 이 돈을 쓸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등을 느끼고 있어.(41쪽)”라 말하면서, 이무렵 다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걱정을 하는데, 《퇴색공간》은 이 대목에서 이 1학년 대학생들을 뒤에서 이끄는(배후조종자) 사람을 조용히 내보냅니다. 배후조종자는 “여러분을 이곳으로 부른 것은 대규모 시위에 관한 것이다. 학원의 민주화 쟁취를 위하여 6개 대학이 우리 대학에 모여 한날 한시 터뜨리는 것이다.(47쪽)”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가벼운’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조직을 탄탄히 하는 데에나 마음을 쓰라고 이야기합니다.


.. “야, 이놈들아 그만두지 못하겠니? 장사를 못한 지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우리 식구는 뭘 먹고 살라는 얘기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왜 이 난리야!” “에취! 에취!” “그놈의 데모 땜에 이사갈래도 집이 팔려야 가지.” “에취! 에취! 기형아를 출산하기 쉽다는데 어떡해.” “좀 조용히 살자! 조용히! 누가 옳고 누가 나쁘든 제발 그만둬!” ..  (23∼24쪽)


 여섯 개 대학이 모인 큰 집회에서 신두표는 지명수배가 됩니다. 서울역 앞에서 떨꺼둥이로 지내다가 형사한테 붙잡혀 한 해 동안 감옥살이를 합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다음, 신두표 스스로 누나와 어머니 볼 얼굴이 없다며 골방에 틀어박혀 지내는데, 이렇게 한 주 지내는 사이 배후조정자인 박정웅 선배가 귀신처럼 나타나 “민족해방 운동은 학생 신분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넌 학원 내에서의 활동은 졸업했다. 구로공단으로 가라. 그곳에서 노동을 착취당하는 밑바닥 계급의 해방을 위해 헌신해라!(94쪽)”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위장취업을 합니다. 신두표는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한테 편지 한 장 남깁니다. 이 편지에는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양지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가야겠습니다. 핍박 받는 수많은 노동민중의 해방은 우리 손으로 이뤄야 합니다.” 하는 이야기가 적힙니다.


.. “이것은 좌경학생들이나 보는 책인데, 신두표의 가방에서 나왔어요.” “이 미친 놈아,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네놈 학비 땜에 고생하는 네 누나 생각을 해 봐라.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돌 던지고 불병 던지고 소리나 고래고래 지리는 게 공부냐! 이번엔 처음이라 풀어 줬지만 다음엔 감옥소에 보낸다고 했으니,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 새끼야!” “…….” “두표야, 누나가 어떤 기분인 줄 아니? 나를 더 실망시키지 말아 줘!” “미안해 누나, 하지만, 이건 뭐가 잘못돼 가고 있어.” ..  (28∼29쪽)


 공장에 들어간 신두표는 노조운동을 하며 파업을 이끌고, 다른 노동자와 함께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라! 주 44시간 작업 보장하라! 시간외특별수당을 지급하라! 최저임금 30% 인상하라!” 같은 말을 외칩니다. 이무렵 1988년에는 어느 공장에서나 이와 같은 파업이 두루 퍼졌습니다. 왜냐하면, 회사 간부들은 노동자한테 최저생계비조차 되지 않는 일삯을 일삯이라고 주면서 시간외수당이나 특근수당을 안 주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쉬는 날 없이 몸이 망가지게끔 일해야 했으니, 빼앗긴 권리를 찾고자 들고 일어서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고요.

 그렇지만, 만화 《퇴색공간》에는 이무렵 노동자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었는가는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문받은 제품의 납품시한이 코앞인데, 일하지 않고 저러고 있으니 어떡하면 좋겠나? 회사가 잘 돌아가야 종업원 처우도 나아질 것 아닌가. 위장취업을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여기를 떠나 주게. 이건 적지만 취직이 될 때까지 생활비로 쓰게나!(111쪽)” 하는 얘기 하나 나오고, 이에 신두표가 이 구린 돈을 동료 노동자한테 까밝히면서 노동자들은 쇠파이프로 사장 머리를 후려치고, 회사는 부도로 문을 닫았다는 얘기만 만화로 그려 냅니다.


.. “명단하고 목적 말이야! 잘 봐줄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 “성갑성 씨야좌경분자인지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하겠다는 걸 잘봐 주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회사엔 지금 노조가 있는데 무슨 말인가? 노조를 반대하려면 정당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숨어서 선동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 “웃기는 소리 말더라고잉, 토요일날 우리는 민주노조 결성을 헐랑께 회사에서 막아 놓고 뭔 소리여?” “그건 위장취업된 불순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좌경세력에 의해서 노조가 결성되면 회사가 망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좌경부자라니? 빨갱이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중에 그런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습니다. 기존 노조가 있으니까 회사의 정당한 절차에 따라 만들어져야 하고, 기존 노조와 대화로 해결하세요. 그리고 나서 회사와 협상합시다. 그러니까 모두 작업장으로 들어가세요.” “잘해 준다는데 이러고 있을 건 없잖아.” “맞아!” ..  (143, 158∼159쪽)


 신두표는 구로공단에서 ‘한 건’을 올려 얼굴이 팔렸기 때문에 더 위장취업을 하지 못하고 인천으로 와서 위장취업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 회사 사장은 다른 노동자들 앞에서 “여러분! 민주노조를 자랑하는 저 사람들 말처럼 제가 여러분들을 정말 착취했습니까? 명색이 창업주가 사장인 제가 이 공장을 운영한 지 28년 동안 남은 것이라곤 32평 아파트 한 채올시다. 이것이 착취입니까? 정해진 월급 외에 회사돈 꺼내 썼다면 내가 개요 개(179쪽)!” 하고 말하며 살살 달랩니다. 신두표는 “귀족과 노예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역시 타협하지 못합니다. 싸워 이겨서 뺏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착취당한 것을 찾읍시다, 여러분(178쪽)!” 하고 외칩니다. 이 바람에 노동자들은 신두표를 ‘빨갱이’로 여기며 등을 돌립니다.


.. ‘멍청이! 라이터가 6개면 어떻고 6백만 개면 어떻다는 거야? 우리는 불을 지른 자의 소모성 부싯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  (216∼217쪽)


 노조운동이 실패로 돌아가 고개를 떨군 신두표 앞에, 배후조종자 박정웅 선배는 ‘분신’을 하라고 주문합니다. 라이터 돌을 뺀 채 분신을 하겠다고 사장과 간부를 을러대라 꼬드깁니다. 그런데 그만 누군가 노조원 몸에 불을 붙여서 두 사람이 불에 타 죽습니다. 신두표는 학생운동이든 민주화운동이든 노조운동이든 한낱 부질없는 짓이며, ‘그들’ 끄나풀로 ‘소모성’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고 깨달았다고 뉘우치면서 《퇴색공간》은 빛바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3) 어느 곳이 ‘퇴색’된 ‘공간’일까?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수많은 ‘어용’노조가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은 ‘주 44시간 노동’이 아닌 ‘주 40시간 노동’과 ‘주 5일 노동’이 자리잡습니다. 지난날 ‘어용’노조가 말썽이 된 까닭은, 이들 어용노조가 노동자 권리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으면서 언제나 노동자 짓누르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간부나 중간간부가 노동자를 때리고 욕하거나 윽박질렀다면 요즈음은 이주노동자가 이와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삶터가 차츰 나아진다고 하지만 얼마나 나아진다고 하는가를 헤아리는 일이란 쉽지 않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허영만 님이 그린 만화 《퇴색공간》은 우리한테 무엇을 보여주는 만화가 될까요. 무엇보다도 허영만 님은 이와 같은 만화를 어떠한 까닭과 생각으로 그렸을까요. 스스로 ‘학생운동-사회운동-노동운동’ 하는 사람이 나쁘다고 여기면서 이러한 만화를 그렸을는지요? 아니면, 다른 어느 누가 부탁을 해서 그려 주었을는지요?

 만화책 《퇴색공간》으로 담아내듯, 이 나라에서 전두환 독재정권을 몰아낸 사람들 몸부림은 ‘옳든 그르든 중요하지 않고, 데모란 하지 말아야 했을 나쁜’ 일이며, 학생은 곱게 ‘공부나 해야 하는’ 노릇이었을까요?

 참 민주와 평화와 평등과 통일을 바라던 사람들 몸짓과 발자국을 모두 거스르는 한편, ‘소모성 부싯돌’인데다가 ‘퇴색한 공간’이라고 말하는 허영만 님 만화생각을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요?

 글 첫머리에서 밝힌 대로, 허영만 님한테는 허영만 님 눈길대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만화를 그릴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허영만 님 눈길대로 그리는 만화와 ‘참과 거짓을 비틀면서 그리는 만화’는 똑같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꾸밈없고 아낌없이 쏟아내는 허영만 님 생각인지, 다른 이 자유와 권리와 민주를 허튼 짓이라고 깔아뭉개는 허영만 님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허영만 님은 당신이 1990년에 세상에 내놓은 만화책 《퇴색공간》을 어떤 까닭으로 어떻게 그리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부디 속시원히 당신 생각을 털어놓아 주면 고맙겠습니다. (4342.3.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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