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책읽기


 손으로 아이 이마를 쓰다듬으면 아이 몸이 어떠한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으로 옆지기 어깨나 허리나 다리를 주무르면 옆지기 몸이 어떠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으로 흙을 쥐어 사르르 떨어뜨리면 흙이 어떠한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으로 나뭇잎이나 풀잎을 쥐어 스르르 어루만지면 잎사귀가 어떠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눈으로 보아도 척 알 수 있겠지요. 누군가는 눈으로 보기 앞서 살갗으로 다가오는 느낌으로 훤히 알 수 있겠지요. 누군가는 책으로 읽은 앎조각에 기대어 안다 할 수 있겠지요.

 글 한 줄이나 책 한 권에 너른 사랑을 담았는지 얕은 돈셈이 스몄는지는, 책을 가만히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고 슥 훑으면서도 알 수 있으며 껍데기만 보아도 훤히 꿰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알며 나누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누구랑 이웃하는 사람인가요.

 내 손길은 무엇을 느끼려 하고, 나는 어떻게 느낀 이야기를 내 앎조각으로 받아들이려 하며,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픈 목숨인지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눈으로 책을 읽습니다. 마음으로 책을 읽습니다. 몸으로 책을 읽습니다. 귀로 책을 읽습니다. 발가락으로 책을 읽습니다. 머리로 책을 읽습니다. 나는 이렇게도 책을 읽고 저렇게도 책을 읽습니다. 책 하나를 여러 가지로 읽습니다. 책 하나를 오롯이 읽자면 내 삶을 예쁘게 바쳐야 합니다. (4344.3.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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圖說 古事記 (ふくろうの本) (單行本)
篠山 紀信 / 河出書房新社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내가 말하고 보여주고픈 사진책은 목록에서 찾을 수 없다. 다만, 시노야마 기신 님 사진 가운데 이와 같은 사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려주고 싶기에, 이이 문화재 사진책에 이 글을 걸친다.) 



 한국사람이 사진으로 담지 않은 예쁜 한국사람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9]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シルクロ-ド (2) 韓國》(集英社,1982)



 일본 사진쟁이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님은 일본에서 내로라 하는 여자 배우 사진을 꽤 많이 찍었습니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여자 배우 사진’으로 널리 알려졌다 할 만한 사진쟁이일 텐데, 시노야마 기신 님이 내놓은 사진책은 ‘여자 배우 사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은 문화유적 사진을 곧잘 찍었으며, ‘비단길’을 돌아본 발자국을 그러모아 두툼한 사진책 《シルクロ-ド》를 여덟 권짜리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비롯해서 한국과 중국을 거쳐 파키스탄과 이란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터키와 그리스를 지나 이탈리아에서 마무리짓는 《シルクロ-ド》 여덟 권인데, 이 가운데 둘째 권이 한국이고, 여덟 권 가운데 둘째 권 한국 이야기에서 ‘여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일본사람으로서 일본사람을 찍기란 한결 수월할 텐데 외려 일본 이야기 다룬 첫째 권에서조차 일본사람 모습은 얼마 없습니다. 거의 모두 ‘비단길이 일본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 하는 문화유적 사진투성이입니다.

 이란에서야 사람 사진 찍기가 힘들밖에 없다지만, 중동이든 중국이든 파키스탄이든 문화유적 사진이 꽤 많이 차지합니다. 뜻밖이라 할 만한 사진책인 《シルクロ-ド》이면서 뜻밖이라 할 만한 엮음새인 《シルクロ-ド》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책보다 한국 이야기 담은 둘째 권에서 ‘여느 한국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다 보니, 1982년에 나온 이 사진책을 돌아보면서 1970년대 끝무렵과 1981년 즈음 한국땅 한국사람 자취를 꽤 알뜰살뜰 느낍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集英社,1982)을 펼치면, 책 겉그림부터 무지개빛 사진입니다. 비단길 사진책 여덟 권 가운데 흑백사진은 한 장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문화유적을 담을 때에 흑백사진을 쓰는 사람이 드물다고도 할 터이나, 사람 사는 발자국을 담는 ‘한국 사진쟁이 사진’은 으레 흑백입니다. 다큐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진쟁이이든 외국 사진쟁이이든 거의 늘 흑백입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 《シルクロ-ド》처럼 무지개빛으로 아리땁게 채우는 일은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집식구와 《シルクロ-ド》 여덟 권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서로 생각합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이 빚은 《シルクロ-ド》이든, 이이가 담은 일본 여자 배우 사진이든, 이이는 ‘예쁘게 느껴 예쁘게 바라본 사람을 예쁘게 읽을 예쁜 사진’으로 태어나도록 하는구나 싶습니다. 이런 느낌은 무지개빛이 아닌 흑백으로 담을 때에도 똑같이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토몬 켄 님이나 기무라 이헤이 님이 담은 사람사진을 들여다보면, 흑백이지만 하나도 흑백 같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데, 시노야마 기신 님 사람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고운 무지개빛이면서 이 무지개빛을 흑백으로 바꾼다 한들 무지개빛 느낌이 사라질 수 없구나 싶어요. 게다가, 무지개빛이 아니고서는 이 느낌을 사진쟁이부터 예쁘다 느끼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러한 무지개빛을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러한 무지개빛으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내 삶이 얼마나 무지개빛인가를 모르며’ 지나치기 쉽겠구나 싶습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 겉껍데기에는 흰옷을 입고 춤추는 할아버지 사진이 담깁니다. 겉껍데기를 열면 사진책 겉장에는 아기를 나란히 업은 두 계집아이 사진이 담깁니다.

 겉껍데기 사진이 어느 동네 무슨 사진인지를 알아챌 한국사람이나 인천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만, 겉껍데기 춤추는 흰옷 할배 사진은, ‘이제는 헐려 사라진 인천공설운동장(이 운동장은 자그마치 1930년대에 터를 닦은 역사가 매우 깊은 곳입니다만 인천시는 이런 역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새 축구전용구장을 짓는다며, 이 공설운동장하고 옆에 있던 야구장을 함께 허물었습니다. 인천 숭의야구장 또는 도원야구장은 1920년대에 웃터골이라는 데에 처음으로 마련되었다가 이제는 헐린 자리에 1934년부터 옮겨져서 2008년까지 있다가 공설운동장과 함께 이슬처럼 사라졌습니다)에서 민속무용대회를 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로, 사진에 나온 흰옷 할배는 학춤을 춥니다. 사진 오른쪽 아래를 찬찬히 살펴보면 숭의3동 꼭대기 전도관 건물과 밑으로 죽 이어진 골목집 모습이 보입니다. 아는 사람이 드물 테지만, 황해도 은율탈춤은 인천에서 하고, 무형문화재도 인천에서 지정되었습니다. 전국 민속무용대회를 인천에서 할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어린 날 공설운동장에서 했던 민속무용대회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인천에서 민속무용대회를 하던 이무렵이든 다른 무렵이든, 한겨레 여느 사람들이 즐기거나 누리던 옛춤을 사진으로 담은 한국 사진쟁이는 얼마쯤 있었을까요.

 이보다 한국땅 여느 사람이 즐기는 문화라든지 한국땅 여느 사람이 살아가는 매무새를 애써 흑백으로 담는 사진이 아니라, 빛깔 고운 결 그대로 무지개빛을 살리는 사진쟁이는 얼마나 될까요.

 한국에서 골목길 사진을 찍는 꽤 많은 분들은 거의 모두 흑백으로만 바라보며 흑백으로만 찍기 일쑤입니다. 삶터와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 흑백이기 때문에 흑백사진을 찍을밖에 없을 테고, 삶터와 사람을 마주하는 매무새가 흑백인 탓에 흑백사진을 찍기만 해요. 골목길 모습이 흑백사진하고 잘 어울리니까 흑백사진을 찍을 만하지 않습니다. 골목길 삶자락을 ‘흑과 백’이라는 두 갈래로만 쩍 갈라서 바라보니까, 한국땅 숱한 사진쟁이는 골목길 사진을 흑백사진으로만 담기 일쑤이며, 때때로 무지개빛으로 담는다 하더라도 ‘흑과 백’이라는 틀을 스스로 떨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골목동네 사람과 삶터가 얼마나 아리땁게 빛나면서 결이 고운지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시노야마 기신 님은 한국땅 여느 골목길 모습도 제법 사진으로 옮깁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은 한국땅 여느 골목을 다른 사진하고 똑같이 무지개빛으로 바라보며 무지개빛으로 담습니다. 햇볕과 그림자가 알맞게 드리운 어여쁜 모습을 놓치지 않습니다. 아니, 놓칠 까닭이 없으며, 햇볕과 그림자를 기쁘게 받아들여요. 신나게 즐깁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은 ‘비단길’이 사진책 줄거리입니다만, 햇볕과 그림자를 예쁘게 맞아들여 기쁘게 즐기는 한국사람하고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쟁이 스스로 기쁘게 즐기는 예쁜 넋을 곱다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이탈리아에서 비롯하여 중동과 아시아 여러 나라와 중국을 거쳐 한국땅을 마지막으로 해서 일본으로 들어온 비단길 문화는 ‘한국에서 예쁘게 꽃피웠구나’ 하고 시노야마 기신 님부터 느끼기 때문에, 시노야마 기신 님 사진책 《シルクロ-ド》 여덟 권 가운데 한국 이야기에서는 사람사진이 아주 많이 나올 뿐 아니라, 꽤 재미나기도 하며, 참 살갑기까지 합니다.

 한국땅에서는 애써 문화유적을 돌아보며 사진으로 담을 까닭이 없는 셈입니다. 중국 문화이건 유럽 문화이건, 또 일본이나 몽골이나 무슨무슨 서양 문화이건,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저희 나름대로 예쁘게 곰삭이며 신나게 살아가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예쁜 사람을 예쁜 눈길과 손길을 거쳐 예쁜 사진으로 빚으면 됩니다. 어찌 보면 ‘비단길 사진’ 가운데에 ‘옷감집 사진’을 넣는 모습이라든지 ‘자개장 문을 열고 이불과 베개 놓인’ 모습 찍은 사진이라든지 뜬금없다 할 만합니다. 여느 살림집 여느 책상머리 모습 사진이라든지 시골 논밭 돌보는 사람들이 새참 먹는 모습 사진이라든지 가을날 울긋불긋 물든 나무 밑에서 올망졸망 노는 어린이들 담은 사진 또한 비단길 문화랑 뭐가 이어졌느냐 할 만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여느 사람 수수한 삶이야말로 ‘문화’이자 ‘비단길 문화’입니다. 박물관에 모셔진 궁궐사람 금관이건 양반집 술병이건 똑같이 문화라 할 터이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다루지 않는 여느 사람 수수한 삶이 곧바로 문화이자 비단길 문화입니다. 한국땅 사진쟁이조차 제대로 사진으로 담지 않은 한국사람 모습이기에, 《シルクロ-ド》를 내놓은 시노야마 기신 님은 누구보다 이 같은 모습을 더 파고들며 가슴으로 껴안으려 했다고 느껴요.

 사진을 함께 바라보던 옆지기는 문득 “포대기 빛깔이 참으로 곱다”고 말합니다. 문득 이런 말을 뱉으면서 “우리 나라에서 포대기 사진을 칼라로 찍은 사람이 있나요?” 하고 묻습니다.

 옆지기가 문득 느끼면서 뱉은 말마디와 문득 물은 말마디에 말문이 막힙니다. 털어놓고 말하자면, 저는 이렇게 느끼지 못했고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로서는 골목길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흑백사진으로 빚을 수 없다고 느껴 무지개빛으로 사진을 담기는 하나, 포대기 빛깔을 고이 돌아보거나 느끼려 하지 못했어요. 옆지기 말을 듣고 나서 사진을 가만히 다시 돌아보며 새삼 깨닫습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에서는 아기 업은 어린 계집아이 포대기 빛깔뿐 아니라, 여느 저잣거리에서 아기를 업은 아줌마들 포대기 빛깔이 모두 다릅니다. 모두 다를 뿐 아니라 모두 밝고 맑으며 곱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은 이 빛깔을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사람이 사진으로 담지 않은 예쁜 한국사람을 언제 어디에서나 듬뿍 느끼면서 신나게 사진기 단추를 눌렀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1970∼80년대 한국사람이 얼마나 예쁘며 재미나고 즐겁게 알뜰살뜰 살림을 꾸렸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국사람 한국사진으로는 알아챌 길이 없습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을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거나 좋아한다는 서양사람조차 한국사람 어여쁜 무지개빛까지 알아채거나 알아보지는 못해요. 그래도 한국사람은 ‘서양사람이 바라본 한국 모습 사진’을 썩 좋아하는 듯합니다.

 일제강점기 역사와 임진왜란 역사 때문에 한국사람이 무던히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일본사람 가운데 빛을 빛 그대로 사랑하며 아끼는 사진쟁이가 틈틈이 한국사람 어여쁜 무지개빛을 조용히 예쁘게 사진으로 옮겨서 고즈넉하게 ‘사진 문화유산’을 새삼스레 선물처럼 내밀어 줍니다. (4344.3.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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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영화 〈플랜더스의 개〉


 이향원 님이 그린 만화책 《플랜더스의 개》를 읽는다. 쿠로다 요시오(黑田昌郞) 님이 1975년에 만든 만화영화 〈플랜더스의 개〉도 본다. 이제 이야기책으로 위다 님 글책을 읽으면 마무리된다. 맨 먼저 위다 님 글책을 읽었어야 할 텐데, 어느 책으로 읽어야 좋을는지 몰라 오래도록 망설였다. 누리책방에서 살펴보면 온갖 출판사에서 갖가지 판으로 뜨는데 이 가운데 어느 책이 우리 말로 제대로 옮긴 판일까. 이 많은 책 가운데 영국사람 위다 님이 쓴 문학책을 우리 글로 알뜰히 풀어냈다고 할 수 있을까.

 네 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디브이디를 본다. 그림을 그리려는 네로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네로한테 기운을 북돋운다면서 한 마디를 들려준다. 네로는 기운을 얻고 씩씩하게 그림그리기를 한다. 그리고 이날 저녁, 네로는 제 살가운 동무 얼굴을 그리면서 할아버지한테 혼잣말처럼 이야기한다. 그림그리기를 놓고 아주 놀라우면서 틀림없는 이야기가 할아버지와 어린이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온다. 학교 문턱은 밟아 본 적이 없고, 이름나다는 분한테서 배운 적 또한 없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나날이 시나브로 빚어낸 아름다운 말마디라고 여겨, 한손으로 아이 머리를 쓰다듬다가 얼른 종이에 옮겨 적는다.


 할아버지 :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그림을 게으름뱅이가 그릴 수는 없겠지.
 네로 : 마음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 그릴 수 있을까요. 조르쥬의 진짜 마음을 그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따스한 사람들 삶을 따스한 눈썰미로 바라보면서 따스한 손길로 담아냈기 때문에 《플랜더스의 개》는 널리 사랑받을 수 있다고 느낀다. 아름다움은 따스한 넋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따스한 눈썰미와 손길에서 비롯한다. (4344.3.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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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바늘과 좋은 책


 바느질이나 뜨개질에 익숙한 사람은 바늘이 안 좋아도 잘 쓴다는 이야기를 옆지기가 들려준다. 그러고 보면, 손이 안 보인다 할 만큼 잽싸게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는 분을 곁에서 지켜보면 이분들이 꼭 좋은 바늘을 쓰지만은 않는다. 그저 당신한테 익숙하며 길이 잘 든 바늘을 쓴다. 좋다는 바늘이 익숙하면 좋다는 바늘을 쓰고, 안 좋다는 값싼 바늘이 익숙하면 안 좋다는 값싼 바늘로 옷을 뜬다.

 사람들 누구나 ‘좋다고 하는 책’이나 ‘훌륭하다 여기는 책’이나 ‘아름답다 손꼽는 책’을 읽으면 참으로 즐거울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히 따지면, 제아무리 좋다고 하는 책이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책이나 아름답다고 손꼽는 책을 잔뜩 장만해서 읽는다 할지라도, 조금도 좋은 삶을 일구지 못하거나 조금도 훌륭하게 살아가지 못하거나 하나도 안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도 좋은 넋을 북돋우지 못할 뿐 아니라 좋은 말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훌륭하다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지만 훌륭한 얼이나 훌륭한 글을 길어올리는 사람이 퍽 드물다. 아름답다는 책을 잘 안다지만 막상 살림살이를 아름다이 일구지 못하는 사람은 참말 얼마나 많은가.

 바늘이 좋다면 바느질을 더 잘할 수 있다. 좋은 책을 곁에 두면서 살아가면 더 나은 생각과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 그렇지만, 썩 안 좋은 바늘로도 내 아이와 살붙이를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옷을 뜰 수 있다. 책 한 권 읽지 못하는 살림이라 하지만, 착한 사랑과 고운 믿음으로 이웃과 동무하고 어여삐 어깨동무하거나 품앗이하는 사람이 많다. 좋은 바늘, 좋은 집, 좋은 자동차, 좋은 가방끈, 좋은 옷, 좋은 책은 좋은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라든지 바른길이 될 수 있는가. (4344.3.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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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의 집》 읽기


 모두 아홉 권으로 된 《초원의 집》 가운데 둘째 권을 읽기로 한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이 일군 아름다운 옛이야기를 담은 책이기에 후딱 읽어서 치울 수 있으나, 퍽 천천히 읽으려 생각했기 때문에 지난해에 첫째 권을 읽었고 올해 들어 비로소 둘째 권을 펼친다. 내 마음 같아서는 올해에는 둘째 권 이야기만 읽으며 곰삭인 다음 이듬해에 셋째 권을 읽고 싶다. 한두 해 만에 써 내려간 책이 아니라 온삶을 일군 땀방울을 알알이 담은 책인 만큼 금세 읽어치울 수 없다. 나는 아홉 해에 걸쳐 해마다 한 권씩 읽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랑 씨름하며 비로소 아이를 재운 뒤 고단한 몸으로 《아기가 온다》(실러 키칭거 씀)를 펼친다. 오뉴월에 태어날 둘째를 생각하면 진작에 다 읽었어야 할 책이지만 아직 못 끝냈다. 읽기가 너무 더디다. 몸이 너무 고단해서 그런가 싶어 책을 덮는다. 《초원의 집》 둘째 권인 “대초원의 작은 집”을 펼친다. 마흔다섯 쪽을 훌쩍 넘긴다. 한참 책에 빠져들다가 흠칫 놀란다. 책을 덮는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더 즐길밖에 없다지만, 《초원의 집》만 이토록 빨리 읽으면 어떡하나.

 이듬날, 《아기가 온다》를 다시 펼친다. 이 책 또한 한꺼번에 다 읽어치울 수 없는 책이지만 너무 더디 읽어도 안 되는 책이다. 하루에 스무 쪽이나 서른 쪽쯤은 읽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날마다 꼭 이만큼씩 읽으며 내 생각과 삶을 찬찬히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돌아본다. 책에서는 책대로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헤아리고, 삶에서는 삶대로 우리 집식구 살림살이를 살펴야겠지.

 오늘 아침에는 갈치조림국을 끓인다. 조림도 국도 아닌 어설픈 조림국을 끓인다. 감자와 무를 바닥에 깔고 토막갈치를 얹은 다음 버슷과 봄동을 더 얹은 국이다. 갈치는 감자와 무가 어느 만큼 익은 다음 얹었어야 했는데, 함께 끓여도 되겠거니 하고 생각하다가 그만 갈치를 너무 끓이고 말았다. 감자와 무는 한결 맛나게 되었으나 갈치는 살짝 퍽퍽하다. 그래도 아이와 옆지기가 갈치하고 감자하고 무하고 버섯하고 봄동하고 잘 먹어 주니 고맙다.

 날마다 온갖 반찬과 찌개를 끓일 수는 없다. 그저 날마다 한 가지씩 알뜰히 차리는 밥살림만큼은 할 수 있다. 더 못하지만 조금씩 하는 살림을 꾸려야지. 집안 치우기를 말끔히 해내지 못할지라도 아주 어질러지지 않도록 갈무리하면서 쓸고닦기쯤은 바지런히 해야지.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돌봐야지. 우리 집에도 내 마음에도 내 가슴과 머리에도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손길을 잘 추슬러야지. (4344.3.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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