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43] 맑은터

 태어나서 자란 고향을 떠나 열 몇 해쯤 다른 곳에서 지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여러모로 놀랐습니다. 그동안 거의 바뀌지 않은 골목동네 모습을 보면서도 놀랐으나, 도무지 알아볼 수 없도록 바뀐 학교이름을 보면서도 놀랐습니다. ‘정보산업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바뀐 학교는 예전부터 이 이름이 아니었는데 어느덧 이런 이름이 되었습니다. ‘비즈니스고등학교’라는 데는 아마 인천에만 있는가 하며 놀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나라 곳곳에 이런 이름으로 바뀐 학교가 수두룩한 줄을 깨닫습니다. 아무래도 영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지구별인 만큼 학교이름을 ‘푸른배움터’라든지 ‘푸른학교’로조차 붙이지 않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셈이겠지요. 학교라는 데는 머리에 지식을 가득 집어넣거나 시험점수 잘 치르도록 내모는 곳이 아니었는데, 우리 나라만큼은 아이와 어른 모두 삶을 느끼며 사랑을 북돋우는 맑은 터전이 못 됩니다. 생각해 보면 “배우는 터”가 학교라기보다 “맑은 삶터”가 학교여야 올바를 테고, ‘배움터’로 풀어쓰기보다 ‘맑은터’로 새 이름을 붙여야 알맞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런데 인천에는 어느 ‘공업고등학교’가 올해부터 ‘유비쿼터스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는군요. (4344.3.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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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44] 먹는빵

 먹지 않는 빵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식빵은 ‘먹는빵’이라 이름이 붙습니다. 어릴 때부터 식빵이라는 이름이 참 얄궂다고 느꼈습니다. 한자로 ‘먹을 食’을 붙여 ‘食빵’이라니, 밥을 가리켜 ‘食밥’이라 하지 않는데, 빵 가운데에서 ‘식빵’은 아주 다른 빵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고 맙니다. 밥처럼 먹는 빵이래서 식빵이라 이름을 붙였는지 모릅니다. 여느 빵과는 다르게 밥처럼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빵이기에 식빵이라는 이름이 걸맞는지 모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마시는 물을 놓고도 굳이 ‘먹는물’이라 따로 가리키기도 하고, 이를 한자말로 옮겨 ‘食水’나 ‘食用水’라고도 합니다. 물이라면 으레 마시기 마련이지만 ‘마실물’이라 하는 한편, 한자말로 거듭 옮겨 ‘飮料水’나 ‘飮用水’라고까지 하곤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음료수’는 여느 마실거리가 아닌 탄산음료 같은 마실거리를 가리키는군요. 어떻게 바라본다면 딱히 얄궂다 하기 어려운 낱말인 ‘식빵’일는지 모릅니다. 우리 말삶에서는 이런 말마디 아니고는 좀처럼 알맞다 싶은 낱말을 빚기 어려운지 모릅니다. 밥처럼 먹는다면 ‘밥빵’일 텐데, 우리 말로 이름을 붙이면 우습거나 안 어울린다고 여겼을까요. 예쁘면서 잘 어울릴 이름은 ‘식빵’뿐일까요. (4344.3.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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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개잡지, 헌책방잡지, 어린이잡지


 한국에서 나오는 뜨개잡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사람 손으로 만들고 한국사람이 마련한 뜨개법을 다루는 뜨개잡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우리 말 잡지’는 없습니다. 한국사람이 일구는 ‘헌책방 잡지’ 또한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 참 어설프며 어리숙한 깜냥인 줄 알지만, 제때에 짠짠짠 내놓지 못할 뿐 아니라 여느 새책방에 내놓지조차 못하지만 ‘우리 말 잡지이자 헌책방 잡지’를 혼자서 만든답시고 바둥거립니다.

 우리 나라에도 자전거잡지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골사람이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즐기는 자전거 이야기를 다루는 자전거잡지는 없습니다. 도시에서 골목동네 가난한 사람이 호젓하게 자전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든지, 신문을 돌리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삶을 담는 자전거잡지 또한 없습니다. 쌀집자전거로 흔히 아는 짐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눈물과 웃음을 다루는 자전거잡지조차 없어요. 돈으로 사들여서 돈으로 타는 ‘놀러다니는’ 이야기로만 어우러진 자전거잡지만 있습니다.

 한국에도 생태와 환경을 다루는 잡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생태사랑 환경사랑으로 거듭난다든지, 여느 시골자락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 눈높이에서 쉬우며 맑은 말마디로 수수하게 빚는 환경잡지는 없습니다.

 교육잡지는 여럿입니다만, 막상 어린이 손으로 일구는 교육잡지라든지 어린이가 즐거이 읽을 교육잡지란 없습니다. 제도권 울타리에 깃든 교육잡지나 제도권 울타리 바깥에서 싸우는 교육잡지만 있습니다.

 책을 말하는 잡지란 있을까요. 그토록 수많은 출판사가 수많은 책을 낼 뿐 아니라, 책 만들어 돈 톡톡히 버는 출판사 또한 꽤 많은데, 막상 ‘책을 말하는 책잡지’는 있는지 없는지 아리송합니다.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소설책을 쓰신 분이 있습니다만, 당신들끼리 당신 울타리에서 복닥거리는 책마을에서 맴도는 책잡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푸름이 어린이가 제 삶을 예쁘게 사랑하거나 아끼는 어여쁜 책잡지가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어린이교육잡지라든지 어린이학습잡지라든지 어린이교양잡지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이삶과 어린이놀이와 어린이꿈을 꾸밈없이 들려주는 잡지는 없습니다. 왜 아이들한테 무엇이든 애써 가르치려고만 하나요. 왜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 스스로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지 못하나요. 아이들 몸과 나이에 걸맞게 심부름과 일을 즐기도록 어깨동무하는 이야기를 잡지로 묶기란 그토록 어려운가요.

 가만히 보면, 한국에는 팔림새에만 눈길을 두는 만화잡지가 몇몇 있으나, 만화를 만화다이 돌보는 만화잡지는 없다 할 만합니다. 사진을 사진 그대로 껴안는 사진잡지는 힘겹게 태어났어도 이내 숨을 거둡니다. 삶으로 스미는 사진을 북돋우는 사진잡지는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겉멋든 예술과 껍데기를 벗지 못하는 다큐멘터리 허울에 슬프게 얽매입니다.

 그러나, 이 모두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 엉터리라서 참다운 잡지가 발붙이지 못하는 우리 나라라 할 수 없습니다. 잡지를 사서 읽을 사람부터 슬기롭지 못하니까, 잡지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슬기를 그러모으지 못합니다. 잡지를 사서 읽을 사람부터 제 삶을 옳게 사랑하면서 예쁘게 일구지 못하니까, 잡지다운 잡지가 태어나더라도 금세 기운이 꺾이며 사라지고야 맙니다.

 뜨개질은 취미일 수 없는 삶이고, 사진찍기이든 글쓰기이든 만화나 영화나 교육이나 환경이나 자전거나 모두 아름다운 우리 삶입니다. 삶을 느끼지 못하거나 삶을 깨닫지 않을 때에는, 이 나라에 잡지다운 잡지가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4344.3.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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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86] special gift 주는 open 2주년 festival

 “2011년 봄 신상품 구매시 special gift 증정”이라는 글월 가운데 우리 말은 ‘봄’ 한 가지이다. 한글로 적는대서 우리 말이 되지 않으나, 적어도 한글로나마 적을 줄은 알아야 할 텐데, ‘special gift’라 하면 ‘특별 선물’이나 ‘남다른 선물’보다 무언가 더 좋을까. 동네 작은 가게에서 벌인다는 ‘open 2주년 festival’이란 얼마나 대단할까. (4344.3.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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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읽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11.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한 뒤부터 그림책에 눈을 떴습니다. 그림책을 처음 알아본 때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신문돌리기로만 먹고살던 1999년 봄이었고, 이무렵 나온 그림책 하나를 동네책방에 주문해서 받아보고 넘기면서 ‘우리한테도 이만 한 그림책이 있구나.’ 하며 놀랐고, 내 어릴 적에는 왜 이만 한 그림책을 이 나라 어른들이 안 그렸는가 싶어 슬펐습니다.

 어쩌면 고작 몇 해 사이라 할 만하지만, 몇 해 사이를 두고 누군가는 퍽 괜찮은 그림책을 전집으로라도 만날 수 있었으나, 누군가는 낱권으로든 전집으로든 그림책다운 그림책을 만날 길이 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좋은 그림책을 읽는다 해서 좋은 마음이나 좋은 사랑이 싹트지는 않아요. 그러나 좋은 마음과 사랑을 담은 좋은 그림책을 어린 나날 가까이하면서 ‘그림으로 담는 우리 삶자락 이야기’에 찬찬히 눈길을 둘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몸으로 움직이거나 부대끼며 배우지만, 몸으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왜 부대끼면 즐거울까를 헤아리는 길에 좋은 그림책은 아름다운 길동무 노릇을 합니다.

 스물대여섯 살 나이부터 혼자서 그림책을 읽으니, 둘레에서는 아이라도 낳았느냐고 묻지만, 혼인을 하지 않고 홀로 지내던 이무렵부터 그림책을 즐거이 찾아 읽었습니다. 혼인을 한 뒤로는 더 자주 찾아 읽으며, 아이를 낳아 함께 기르는 때부터는 퍽 많이 찾아 읽습니다.

 잘 빚은 그림책은 그림책답습니다. 잘 빚지 못한 그림책은 ‘사진을 찍어 옮긴 티’가 물씬 드러납니다. 사진을 볼 때에도 잘 찍은 사진은 사진다운 사진이지만, 엉성하게 찍은 사진은 ‘그림 느낌을 흉내낸다’든지 ‘글이 붙지 않고서는 사진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사진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좋은 그림책을 좋은 사진책과 함께 꾸준하게 만나야 참 즐거웁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림을 보는 눈이란 그림으로 어느 한 가지 모습이나 어느 한 사람 삶을 담을 때에 아주 오래도록 살가이 바라볼 뿐 아니라 구석구석 그림쟁이 손길이 닿아야 하는 만큼 아주 따사로우며 넉넉해야 합니다. 사진은 기계 단추만 누른대서 나오는 사진이 아니에요. 구석자리 자잘한 모습까지도 사진기를 손에 쥐어 단추를 누르기 앞서까지 모두 살피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찍을 때에는 눈썹떨림이나 손끝떨림이라든지, 손톱에 햇볕이 튕기는지, 눈알에 어떤 그림자가 어리는지, 머리카락은 바람결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 들을 샅샅이 느껴야 합니다.

 살내음을 느끼고, 사랑스러움을 받아들이며, 이야기 한 자락 길어올리는 흐름을 좋은 그림책 하나에서는 짙고 구수하게 담습니다. 좋은 그림은 좋은 사진을 도와주고, 좋은 사진은 좋은 그림을 이끕니다. 좋은 글은 좋은 그림이 태어나는 밑거름이 되며, 좋은 사진 때문에 좋은 글 하나 태어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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