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프리먼 하우스 지음, 천샘 옮김 / 돌베개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자동차를 버릴 수 없는 사람들
 [환경책 읽기 29] 프리먼 하우스,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 책이름 :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 글 : 프리먼 하우스
- 옮긴이 : 천샘
- 펴낸곳 : 돌베개 (2009.12.21.)
- 책값 : 12000원


 (1) 자동차와 삶


 우리 식구가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간다 했을 때에 둘레에서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작은 짐차 하나라도 장만하라’입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우리 식구는 ‘작은 자동차 하나라도 마련하라’는 이야기를 으레 들었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가방에 잔뜩 짊어지거나 두 손에까지 끈으로 묶어 낑낑대며 들고 다니는 일은 어리석거나 몸이 힘든 일이니, 자가용을 몰라고 했습니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 많고, 새 차로 갈아타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금 묵었으나 퍽 괜찮은 헌 차도 꽤 되겠지요. 적은 돈으로도 자가용 한 대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헌 차라 하더라도 50만 원이고 100만 원이고 200만 원이고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달이 내야 할 기름값은 누가 대 주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몰면 그저 앞만 보며 찻길을 달려야 합니다. 골목동네 한켠을 우리 자가용 한 대가 더 차지하며 서는 일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작은 짐차 하나라도 있으면 읍내 마실이든 어디를 다니든 퍽 수월합니다. 그런데 짐차 하나는 자가용보다 훨씬 비쌉니다. 집부터 읍내까지 버스삯이 1150원이고, 오가는 거리는 16킬로미터입니다. 버스삯이나 기름값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어쩌면 기름값이 더 든다 할는지 모르고, 자가용이나 짐차가 있으면 읍내에 마실을 갔을 때에 졸립다며 잠들려는 아이를 고이 눕히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리 힘들이지 않으며 다닐 수 있어요. 아마, 읍내뿐 아니라 조금 먼 시내까지 다닐는지 모르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한테 자가용이나 짐차가 없기 때문에 멀리 나다닐 일이 적은지 모릅니다. 우리한테 자가용이나 짐차가 없으니 늘 걷습니다.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 아이랑 마실을 다니기도 하지만, 자동차가 없기 때문에 늘 자동차 없는 흐름에 맞추어 하루하루 살림을 꾸립니다.


..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풍요로운 자연 양식의 체계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가 배우는 학문들로 더욱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생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자연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이 감소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형성되었다 ..  (26쪽)


 우리 집에 자동차가 있다면 책을 장만해도 더 많이 장만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어쩌면, 책방마실을 할 적에 한결 느긋하게 책을 장만하겠지요. 백 권이든 이백 권이든 걱정없이 실을 테니까요. 그런데, 책방마실을 하며 책을 백 권쯤 사들이면 이 책을 언제 다 읽으려나요. 아니, 한꺼번에 책을 백 권쯤 장만할 돈이 어디에서 솟아날는지요.

 시골집에서 읍내 나들이를 자주 하면서 과일도 자주 사고 뭣도 자주 산다면, 이렁저렁 사는 돈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자동차가 없다고 찻삯을 적게 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만(때때로 택시를 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굴리면서 들어야 하는 목돈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굴리면, 자동차를 굴리는 만큼 들어야 할 목돈을 벌자며 다른 돈구멍을 찾아야 하고, 무엇이든 더 돈이 될 길을 걸으려고 용을 써야 합니다.

 더 많이 누리면서 더 많이 써야 하니까, 더 많이 거머쥐어야 하고 더 많이 벌어들여야 합니다. 더 많이 누리면서 더 많이 쓰는 동안, 더 많이 쓰레기를 내놓고 더 많이 땅과 물과 바람을 더럽힙니다.

 자가용을 몰든 짐차를 몰든, 자동차를 몰면서 이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살피는 사람이 있기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가용이나 짐차를 몰면서, 우리 터전 물과 바람과 흙이 나날이 어느 만큼 더러워지는가를 깨닫는 사람이 있기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인간의 목적 때문에 최근에 급격히 변한 시골에 가 보면 그 전의 풍경을 상상하기가 힘들 것이다. 예를 들면, 완전히 벌목된 숲속에서 누가 예전의 짙푸른 숲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 변해버린 자연환경 속에서 자신들이 없애버린 문화와 견줄 만한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  (70, 220쪽)


 자가용을 몰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걸립니다. 아이는 다리가 몹시 아프다 할 때에만 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고 가방을 짊어진 채 걷습니다. 사진기는 목에 걸고 어깨에는 천으로 짠 바구니를 맵니다. 따로 하는 운동이란 없습니다. 따로 하는 운동이라면 가방 짊어지기요, 아이 안기입니다. 천천히 걸어다녀야 하는 만큼, 내가 살아가는 마을을 찬찬히 둘러봅니다. 천천히 걸어야 하는 만큼, 도시로 볼일 보러 나올 때에는 골목에서고 큰길 거님길에서고 머리가 어지럽고 어수선합니다. 두 다리로 걸으며 살아야 하는 만큼, 두 다리로 걸으면서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즐거울까를 온몸으로 돌아봅니다. 두 다리로 거닐며 사람을 마주하기에, 나는 내 두 다리로 느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자동차로 움직이고 자동차로 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따로 ‘자동차 없이 몸을 써서 땀을 빼거나 살을 빼는’ 일을 해야 하기 일쑤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동차를 몰아 골프를 즐기는 곳을 드나드는데, 여느 때에 자동차를 안 타고 살아가는 살림을 꾸린다면, 애써 골프를 하든 달리기를 하든 헬스클럽에 다니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느 때에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집일을 하면 골프이든 공차기이든 헬스클럽이든 부질없습니다. 아니, 스스로 집일을 하다 보면 골프라든지 헬스클럽이라든지 할 겨를이 있을 수 없겠지요. 집일과 집살림을 꾸리면서 내 아이를 내 손으로 돌보는 나날을 보낸다면, 집에서 복닥이는 나날로도 기운이 쪼옥 빠져 저녁나절에 그대로 곯아떨어질 테지요.


.. 우리가 정확하게 무엇을 잃어 가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 슈퍼마켓에서 사람들이 접하는 풍요에 대한 환상을 … 야생의 보존이라는 개념을 저녁식사에 올라온 음식이나 일상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  (119, 123쪽)


 자동차를 얻어서 타야 할 때에는 얻어서 타야 합니다. 자동차를 몰아야 할 때에는 무척 고맙다고 여기며 몰아야 합니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들기까지 어마어마한 자원을 쓰면서 지구별을 더럽힙니다. 자동차 한 대를 굴리자면 어마어마한 자원을 써서 땅밑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한편, 이 석유를 자동차에 넣기까지 어마어마하게 지구별을 더럽히면서 경유나 등유나 휘발유를 가려야 하는데다가,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 굴리면 배기가스라든지 ‘바퀴가 닳으며 흩날리는 고무 먼지’라든지 어마어마합니다.

 자동차를 스스로 몰든 얻어서 타든, 늘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내 몸을 덜 쓰면서 내 짐을 덜도록 해 주는 자동차인 줄 헤아려야 합니다. 타야 할 때에는 고맙게 여기면서 타고, 안 타도 될 때에는 흐뭇하면서 호젓하게 내 몸을 즐겨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땅을 깨닫고, 내가 선 자리를 느끼며, 내가 이웃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땅은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무슨무슨 고속도로로 이 나라를 나눌 수 없습니다. 크게 보자면 서울이고 인천이고 경기도이고 충청남도이고 충청북도이며 강원도와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이자 제주도입니다. 작게 보면 서울 은평구이고 인천 동구이며 경기도 평택입니다. 충청남도 예산이고 충북 음성이요 강원 횡성입니다. 더 작게 보면 인천 동구 송림3동이고, 충북 음성 생극면입니다. 더더 작게 보면 인천 동구 송림3동 5번지이자, 충북 음성 생극면 도신리입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몇 시간 만에 달릴 수 있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 어떠한 마을과 자연이 있으며, 이 마을과 자연에는 어떠한 사람과 목숨이 살뜰히 어우러지며 살아가느냐가 대수롭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한 목숨 두 목숨이 어여쁩니다.


 (2) 내 마을을 지키려는 땀방울


 이야기책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를 읽습니다. 미국에서도 연어를 살리려고 여러모로 애쓰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한국에서도 연어를 살리자며 여러모로 애쓰곤 합니다.

 연어 한 마리가 냇물에서 알을 깨고 태어나 머나먼 바다를 두루 돌다가 다시 냇물로 돌아오는 흐름을 살리거나 건사할 수 있을 때에 연어를 지키는 일이 마무리됩니다.

 연어가 냇물에서 알을 낳자면 냇물이 깨끗해야 합니다. 연어가 냇물에서 알을 낳자면 둑이나 댐이 없어야 합니다. 연어가 냇물로 돌아오자면 바다에서 한두 해나 여러 해 동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바다가 넉넉한 삶터이자 놀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얻으려는 생각으로 냇물과 냇가를 더럽히거나 망가뜨리면 연어는 알을 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씨가 마르고 맙니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끝없이 공장이나 발전소를 세우고 말면, 연어는 바다에서도 숨이 막힙니다.


.. 토착민들은 더 많이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뒤를 이은 통조림공장 소속의 어부들은 더 많이 잡을 수 있는 여건에서, 분명 그렇게 하였다 … 미국 초기의 인공 양식장은, 생산적인 어종은 인간의 소비량을 조달하기 위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래되어야 한다는 유럽적 사고에 기초해 있었다 ..  (87, 105쪽)


 연어를 너무 많이 잡아먹을 때에도 연어는 씨가 마를 테지요. 그렇지만 연어가 깃들 냇물을 더럽힌다면, 더욱이 냇물뿐 아니라 냇물이 맑게 흐를 수 있도록 냇물이 깃든 멧자락을 어지럽힌다면, 냇물은 남아도 냇물이 냇물다울 수 없습니다. 멧자락에 나무들이 푸르게 우거지면서 멧짐승이 오붓하게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냇물 또한 맑고 시원하게 흐릅니다. 나무 없고 멧짐승 없는 멧자락 냇물에 어떤 연어가 찾아올 수 있겠습니까. 연어를 되살리자면 냇물을 되살려야 하고, 나무와 멧짐승이 되살아나도록 사람이 숲에서 떠나야 합니다. 사람이 숲을 아껴야 합니다. 사람이 아파트나 도시나 쇼핑센터나 자동차를 아끼지 말고, 숲을 아껴야 합니다. 더 많은 학교와 더 많은 공공기관과 더 많은 재개발과 더 많은 고속도로와 더 많은 댐과 더 많은 발전소 따위가 아니라, 더 많은 숲과 더 많은 논밭과 더 많은 작은 집이 있어야 합니다.

 자가용을 몰수록 스스로 살림을 꾸리는 길하고 멀어집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을수록 나 스스로 내 살림을 꾸리는 길하고 가까워집니다.

 자가용을 몰수록 내 보금자리를 덜 사랑하고 맙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을수록 내 보금자리를 한결 찬찬히 돌아보며 사랑합니다.


.. 교과서에 찬양하는 국가와 왕국의 역사, 정치경제적 형세 같은 것들은 우리가 장소와 실제적인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인간의 공동 선택권을 가치 있게 판단하는 데 필요한 역사는 대부분의 경우, 미국의 경우,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역사이다 … 물속에 발을 담그고, 파손되어 벗겨진 개울둑이나 그 위의 마른 비탈들을 재무장하기 위해 거대한 바위와 통나무들을 옮기고 조림하는 작업은 인간 공동체가 야생의 과정과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  (200, 202쪽)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를 읽으며, 이 책을 쓴 분이 참으로 ‘북태평양을 빛내는 눈부신 넋’인 연어를 헤아리는가 아리송했습니다. 왜냐하면, 북태평양 연어 이야기보다 ‘연어가 연어답게 살 수 없도록 냇물과 멧자락과 바다를 더럽히는 사람들’ 이야기가 잔뜩 나올 뿐더러, 연어 삶터를 되살리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또 잔뜩 나오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연어를 쫓아낸 ‘돈에 눈이 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또 연어를 다시 불러들이려는 ‘자연에 눈을 뜨려는 사람’ 이야기를 펼치면서, 얼마든지 북태평양을 빛내는 눈부신 넋이 무엇인가를 밝힐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잃으면서 무엇을 얻는지를 살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무엇을 내동댕이치면서 나 스스로 무엇을 거머쥐려 하는가를 톺아볼 수 있습니다.


.. 자연의 치유력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위안을 얻었고, 감사하는 마음과 고결한 감동을 느꼈다. 지구는 스스로를 치유한다 ..  (214쪽)


 나는 자전거를 즐겨탑니다. 옆지기는 자전거를 배울 즈음 첫째를 낳고, 이제 좀 첫째가 자라서 아버지가 수레에 태우고 함께 자전거를 탈까 싶더니 둘째를 뱁니다. 둘째가 태어나고 어느 만큼 자라 첫째는 스스로 자전거를 타거나 아버지 자전거 뒤에 안장을 하나 덧붙여 태운 다음 둘째를 수레에 실을 무렵에, 비로소 옆지기도 자전거를 찬찬히 배우며 함께 움직일 수 있으리라 꿈꿉니다.

 자전거라는 물건은 처음부터 공장에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라는 물건도 사람들이 저마다 한 대씩 뚝딱뚝딱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공장에서 만드는 자전거인데,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품과 자원과 돈을 헤아리자면, 자전거 백 대를 만들고도 더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이삼백 대는 거뜬히 만들 수 있겠지요.

 나는 자전거를 혼자서 손질할 수도 있으나, 되도록 자전거집에 가서 자전거를 손질합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자전거집이 자전거를 팔 뿐 아니라 손질해 주면서 먹고살 만큼 살림을 꾸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을에서 삼사백 집쯤 자전거를 타면서 두어 달에 한 번씩 자전거를 손질하며 손질값을 치르면 자전거집은 그닥 많이 버는 살림은 아닐지라도 그럭저럭 걱정없이 먹고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자전거 타기가 익숙하지 않다면 걸어다니면 됩니다. 걷다가 힘들면 버스를 타면 됩니다. 버스를 타기에는 짐이 많거나 다리가 아프면 택시를 부르면 됩니다.

 내 살림을 돌보면 됩니다. 내 몸을 살피면 됩니다. 내가 깃든 마을이 작게 작게 예쁘게 이어지도록 가꾸면 됩니다.


.. 그러나 기업은 기업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지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척하지도 않았고, 토지에 기반을 둔 기업들조차도 자신들의 소유지가 다른 생명체에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신 주주들에 대한 지급 능력이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데만 급급했다. 기업의 경영진들은 개벌지가 훗날엔 다시 자라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런 행위가 유역의 야생 생태계 집단을 영원히 근절할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231쪽)


 북중미에 살던 토박이들은 먹을 만큼만 연어를 잡았지, 깡통에 담아서 팔거나 돈을 잔뜩 벌어들일 꿈으로 연어를 마구 잡아대지 않았습니다. 북중미 토박이는 연어 터전까지 빼앗으며 사람 터전을 늘리지 않았습니다. 곰이나 새나 숱한 들짐승과 날짐승은 연어를 모조리 잡아먹을 듯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배가 부를 만큼만 잡아먹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얼마나 몰면서 살아가나요. 우리는 전기를 얼마나 쓰면서 살아가나요. 써야 할 때에는 써야 할 물건이고, 다루어야 할 때에는 다루어야 할 기계입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비롯한 갖가지 물질문명을 얼마나 써야 하기에 이토록 쓰는지 아리송합니다. 우리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야 하고, 이렇게 많이 번 돈은 또 어디에서 얼마나 써야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북태평양에서든 한국에서든, 연어를 살리는 길은 과학자나 생태학자나 환경운동가나 공무원이나 지식인이나 전문가나 기자나 교수 손에 달리지 않습니다. 연어를 살리는 길은 책이나 지식이 아닌 내 삶에 달립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대형마트에 가서 연어 몇 마리 값싸게 사들여서 냠냠짭짭 먹겠지요. (4344.4.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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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끈과 책읽기


 아이가 일어난다. 어제도 늦게까지 안 자고 버티며 놀겠다 하던 아이였지만, 오늘도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난다. 어쩔 수 없지, 아이로서도 따스한 봄날 일찍 일어날밖에 없지, 늦게까지 잠들라 할 수 없지 않겠나.

 아이한테 쉬해야지 하고 말하며, 아빠는 응가하러 나갔다 온다. 아이는 쉬를 한 번 했고, 이내 응가까지 한다. 응가가 마려워 오늘은 더 일찍 일어났나?

 아이는 틀림없이 아침부터 뭔가를 먹고프다 할 테니까, 당근을 갈아서 주기로 한다. 아이한테 물을 한 모금 마시라며 물병을 건넨다. 아이는 물을 조금 마신다. 당근을 갈아 작은 밥그릇에 담아 내민다. 자, 바지 입고 앉아서 먹어야지.

 아이는 금세 한 그릇을 비운다. 오늘은 벌써부터 아침을 마련해서 차려야 하나. 아이는 방울 둘 달린 머리끈을 가져와서 내밀며 “아버지, 미끈.” 하고 말한다. 히유, 가늘게 한숨을 쉬며 “빗, 빗 가져와야지.” 하고 대꾸한다. 아이를 뒤로 앉힌다. 머리를 빗질한다. 뒤에서 한 갈래로 묶으려 하는데, 아이가 그러지 말라며 머리를 왼쪽으로 숙인다. 오른손으로 오른머리를 짚는다. 오른쪽에만 묶어 달란다. 아직 머리숱이 안 많아 힘들 텐데? 게다가 네 아버지는 두 갈래로 따로 묶기를 아주 못하거든?

 어머니는 꽤 잘할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아버지로서 두 갈래 묶기를 영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못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생각하며 해 보기로 한다. 못한다지만 날마다 자꾸자꾸 해 버릇하면서 해 줄 수 있어야 할 테니까.

 그렇지만 영 삐뚤빼뚤이다. 머리카락이 요리조리 삐죽삐죽이다. 내 머리도 잘 못 묶는데 아이 머리라고 잘 묶기란 힘든지 모른다. 아이는 마냥 좋다며 웃지만, 이 엉터리 머리끈을 어쩌나. 아버지는 아침에 일을 해야 하니까 건드리지 말라 말하지만, 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올라타고 등에 업힌다. 곁에서 책 하나 꺼내어 아이한테 내민다. 무릎에 앉은 아이를 들어서 옆에 앉힌 다음 이불을 덮는다. 아이는 몇 번 스윽 넘기더니 “책 다 봤어.” 한다. 그래, 그게 다 읽은 꼴이니. 에이그, 너 참 잘났다.

 아버지는 이제 아침일을 그쳐야 할까 보다. 아침을 마련해서 차려야지. 너는 또 반찬 나르기와 상차리기를 거든다며 “내가 할게요!” 하고 옆에서 종알종알 부산을 떨겠지. 행주로 밥상을 닦을 때에도 “내가 닦을게요!” 하면서 끝없이 행주질을 해대겠지.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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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 5


 어머니는 뜨개책을 펼치고 아버지는 만화책을 펼친다. 아이는 어머니 등을 타다가 아버지 등을 타다가, 슬그머니 그림책을 하나 집어 펼친다. 조금 뒤, 아이는 제가 보던 그림책을 들고 아버지한테 와서 그림책에 춤 추는 언니가 나왔다면서 뭐라뭐라 종알종알 한참 떠든다. 아버지한테 책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소리인지, 아버지한테 책을 읽어 주겠다는 모양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아이가 저랑 안 놀아 준다며 꾀 부리듯이 아버지 얼굴에 책을 디밀다가는 까르르거리며 웃는다. 책을 쥐고 아버지 얼굴에 들이미는 아이를 덥석 안아 함께 뒹군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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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고 책읽기


 빨래를 할 때에 아이는 곁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물놀이를 할 때면 으레 옷을 다 적시니까 싫어하지만, 아이가 놀고 싶어 하는 데에 차마 말리지 못합니다. 가장 좋은 길이라면, 빨래를 할 때에 아이가 씻도록 하는 일이 될 테지요. 집에서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날을 맞이해서 얼른 이처럼 빨래하며 물놀이 어린이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을 손꼽습니다.

 빨래기계를 쓰면 손빨래 일감을 크게 줄입니다. 빨래기계를 쓰면 한 시간쯤을 손빨래 일에서 벗어납니다. 하루에 한 시간 빨래하기에 들인다 하더라도 한 달이면 하루 하고도 한 나절 남짓을 빨래에 쏟는 셈입니다. 밥을 하고 치우느라 날마다 두 시간쯤 쓴다면 다달이 이틀이나 사흘쯤은 밥하기에만 보내는 셈입니다. 따지고 보면, 하루 1/3은 잠을 자는 데에 쓰니까, 이렇게 내 겨를을 헤아리는 일은 좀 부질없습니다.

 아직 집에서 빨래를 할 수 없어, 다른 집에서 물을 얻어 쓰면서 빨래를 하다가, 다른 집 씻는방에 놓은 빨래기계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텅텅텅 소리를 내는 커다란 빨래기계에 든 빨래감은 내 오늘 빨래감보다 적어 보입니다. 그런데 빨래기계가 빨래를 해내는 데에는 저보다 훨씬 오래 걸립니다. 아마, 기계는 사람보다 물과 전기까지 훨씬 많이 먹을 테지요.

 손빨래를 하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가 빨래기계를 써서 날마다 한 시간쯤 다른 데에 내 겨를을 쓸 수 있다면, 이만 한 겨를에 나로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나로서는 날마다 한 시간을 더 누리면서 물과 전기를 더 쓰는 일을 더 보람차거나 알차게 누릴 수 있을까 하고.

 손빨래를 안 하고 빨래기계 장만해서 쓴다면 집살림을 조금 더 알뜰히 돌보는 내 삶이 될까요. 빨래기계 쓸 만한 녀석을 장만하자면 거의 100만 원 가까운 돈을 장만해야 하는데, 나는 1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면서 벌어야 할까요. 오늘날 같은 누리에서 빨래기계 안 쓰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멍청이라 할 만할까요.

 어제 하루 새삼스레 찬물로 빨래를 합니다. 물을 얻어 쓰는 데에서 따신 물이 안 나왔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는 기름으로 보일러를 돌리니까, 빨래를 하며 따신 물을 쓰자면 이웃 기름을 내가 더 써야 합니다. 내 집 보일러를 돌려 따신 물을 쓰면 내 집 기름을 쓰니까 걱정스럽지 않지만, 이웃 씻는방에서 빨래를 할 때에는 되게 미안합니다. 빨래기계는 따신 물 아닌 차가운 물로 얼마든지 잘 빨아 주니까 빨래기계를 쓰면 기름을 안 먹으니까, 빨래기계가 전기랑 물을 쓰더라도 똑같은 셈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빨래를 마칩니다. 마무리지은 빨래는 물병과 함께 가방에 넣습니다. 자전거 수레 뒤쪽에 10리터들이 물통을 넣습니다. 아이를 수레에 앉힙니다.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며 좋아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아이가 곁에서 물놀이를 하도록 하거나 씻기자면 품과 겨를을 더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이 몫을 마땅하면서 거뜬히 즐길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물통을 내려놓고 빨래를 넙니다. 다 마른 빨래를 걷습니다. 아이하고 빨래를 개려 했지만, 몸이 고단해 한동안 드러눕습니다. 허리를 폅니다. 책을 몇 쪽쯤 읽고 싶었지만, 눈이 따끔거려 아예 한 쪽조차 펼치지 못합니다. 책으로 태어나도록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헤아리며 까무룩 잠이 듭니다. 아이가 종알종알 노래 부르는 소리를 꿈결처럼 듣다가 햇볕이 차츰 수그러들기에 깜짝 놀라듯이 깨어납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저녁밥을 짓습니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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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4-05 10:14   좋아요 0 | URL
아이가 참 이뻐요. 옆에서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소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파란놀 2011-04-05 13:56   좋아요 0 | URL
고마운 삶은 참으로 마땅한 나날이기에,
이 고마운 삶을 늘 고맙게 받아들이려고
오늘도 더 즐겁게 생각하며 힘을 씁니다..
 

 

[누리말(인터넷말) 61] 뮤직 컴필레이션

 “내가 들은 음악”을 모으거나 찾는 자리에 붙는 이름은 ‘뮤직’입니다. 우리한테는 ‘노래’라는 우리 말이 있지만,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정작 “저는 노래하는 사람입니다.”라 말하기보다 “저는 음악하는 사람입니다.”라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스스로 ‘노래꾼’이나 ‘노래쟁이’라 말하는 사람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다들 ‘음악인’이라 하거나 ‘뮤지션’이라 할 뿐입니다. 네이버라는 곳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그러모으는 자리에 “나만의 컴필레이션은 내 리스트에”라고 적바림합니다. ‘목록(目錄)’은 우리 말이 아니라 합니다. 그렇다고 이 낱말을 어찌저찌 가다듬는다든지 털어낸다든지 알맞고 좋은 우리 말을 새롭게 빚는다든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제는 이 낱말이 우리 말이고 아니고를 떠나 아무렇지 않게 쓸 뿐 아니라, 아예 영어로 ‘리스트(list)’를 쓸 뿐입니다. 회사에서 ‘영업부’가 ‘마케팅부’로 바뀌듯, 그냥 한자에서 영어로 갈아타면 그만입니다. 곱게 쓸 우리 말이냐라든지, 바르게 쓸 우리 말이냐는 벌써 머나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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