埿まみれの死―澤田敎一ベトナム寫眞集 (講談社文庫) (新裝版, 文庫)
澤田 サタ / 講談社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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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투성이 사진을 찍으며 진흙투성이 죽음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4] 사와다 교이치(澤田敎一), 《泥まみれの死》(講談社,1985)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쓴 《보도사진가》(타임스페이스,1991)를 읽으면 사와다 교이치(澤田敎一) 님 이야기가 짤막짤막 나옵니다. 두 사람이 동갑내기라 했으니 사와다 교이치 님 또한 1936년에 태어난 셈인데, 사와다 교이치 님은 1970년 10월 28일에 베트남에서 숨을 거둡니다. 미국이 베트남으로 쳐들어가서 싸움이 터진 뒤로 일본 사진기자는 모두 열다섯 사람이 숨을 거두었다 했는데(미국 사진기자는 스물한 사람이 숨을 거두었답니다), 사와다 교이치 님도 열다섯 가운데 하나입니다. 생각해 보면, 베트남전쟁 때에 죽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도 베트남전쟁 때에 베트남에 가서 사진을 찍었답니다. 사진을 왕창 찍고는 도쿄로 돌아와 사진잔치를 벌이며 “약간 자랑스러운 말투로 설명을 덧붙였다(《보도사진가》 178쪽)”고 했는데,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사진잔치 강연을 마치고 내려오며 사와다 교이치 님 얼굴을 보고는 “자신의 우쭐대던 태도가 부끄러워졌다”고 밝힙니다. 이때 사와다 교이치 님은 구와바라 시세이 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에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싱긋 웃기만 했다는데, 당신은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뒷날 펴낸 《보도사진가》라는 책을 볼 수 없었을 테니, 이이가 남우세스러워했는지 어떠했는지는 몰랐겠지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사와다 교이치 님은 베트남전쟁 때에 온몸을 던져 사진을 찍었고, 온몸을 던져 찍은 사진에는 숱한 상장이 돌아왔습니다. 사와다 교이치 님은 숱한 상장을 받았으나 한결같이 베트남전쟁터로 뛰어들어 사진을 찍습니다. 이 전쟁이 끝나지 않고서야 사와다 교이치 님 사진 또한 그칠 수 없었겠지요. 아니, 이 전쟁이 끝난다면, 전쟁 뒤끝 베트남 삶터와 사람과 삶자락을 살며시 사진으로 담았겠지요.

 서른다섯이 될 무렵 더는 사진기 단추를 누를 수 없게 된 사와다 교이치 님은 당신 젊은 나날을 미국군하고 함께 움직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일본사람으로서 미국군이 아닌 ‘해방군’하고 함께 움직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없겠지요. 오늘날 미국이 이라크로 쳐들어갈 때에도 미국군하고 함께 움직이면서 사진을 찍어야지, 이라크군하고 함께 움직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이라크군하고 함께 움직이며 사진을 찍는 기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아니 뼛가루 하나 남기지 못하는 채 언제 죽었는 지조차 모르며 죽고 말 테지요. 애써 찍은 사진은 하나도 빛을 못 볼 테지요.

 베트남에서 싸움판이 끝난 지 꽤 긴 해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미국군하고 함께 움직인 사진기자’ 사진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 해방군’하고 함께 움직인 사진기자 사진은 좀처럼 들여다보기 힘듭니다. 어쩌면 베트남 해방군은 숱한 사진기자를 거느리기 힘들었다 할 만한지 모르며, 이동안 베트남 해방군은 굳이 사진을 안 찍었는지 모르지요. 한국땅에서는 알기 힘들지만, 베트남에 가 보면 해방군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이룬 열매를 어느 만큼 맛볼 수 있을는지 모르고요.

 사진책 《泥まみれの死》(講談社,1985)를 펼칩니다. 《진흙투성이 죽음》 또는 《고달픈 죽음》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사진책은 사와다 교이치 님 옆지기인 ‘사와다 사타(澤田サタ)’ 님이 엮어서 내놓습니다. 당신 옆지기가 떠난 지 열다섯 해가 지난 어느 날 내놓은 《泥まみれの死》에는 미국군과 함께 움직이면서 미국군 테두리에서 느낀 베트남전쟁을 찬찬히 보여주기도 하지만, 미국군 테두리에서 바라본 베트남전쟁이라기보다는 ‘전쟁이란 무엇인가?’와 ‘전쟁터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가?’와 ‘전쟁터 군인은 어떠한 삶인가?’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미국군이든 해방군이든 잠을 자고 밥을 먹습니다. 미국군이든 해방군이든 총소리가 멎을 때에는 두 다리 뻗으며 쉬거나 노래를 부릅니다. 총에 맞아 다치면 아파서 소리를 지르거나 눈물을 흘립니다. 총알이 머리나 염통을 꿰뚫었으면 그만 고개를 픽 떨굽니다. 총알이 빗발치면 미국군이든 해방군이든 탱크 뒤이든 건물 뒤이든 바싹 달라붙으며 두려움이 덜덜 떱니다.

 미국군과 함께 움직이면서 전쟁사진을 찍은 사와다 교이치 님이기 때문에 ‘미국군이 포로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살며시 엿봅니다. ‘해방군을 도와주었다’는 빌미 때문에 애꿎게 죽은 사람들 모습을 일본 사진기자 눈길로 바라봅니다. 총에 맞아 죽어야 하는 가녀린 베트남사람, 미국군 주먹에 얻어맞는 슬픈 베트남사람을 일본 사진기자 눈매로 함께 들여다봅니다. 손바닥만 한 사진책 겉에는 장갑차 꽁무니에 밧줄을 이어 ‘해방군 한 사람 주검’을 질질 끄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박습니다.

 베트남에 간 미국이라는 나라 군인은 누구를 왜 어떻게 죽여야 했을까요. 평화를 지키는 일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될까요. 자유를 찾는 일이 사람을 괴롭히거나 주검을 갖고 노는 일이 될까요.

 일찌감치 숨을 거둔 사와다 교이치 님은 더 말할 수 없지만 더 사진을 찍을 수도 없습니다. 죽은 이는 말이 없습니다. 죽은 이 곁에 있었거나 죽은 이를 살짝 스쳤던 사람들이나 죽은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이 ‘새로운 말’을 남길 뿐입니다.

 사와다 교이치 님은 죽고 나서 ‘로버트 카파 상’을 받았다는데, 이 상이란, 이 이름이란, 이 훈장이란, 참 덧없구나 싶습니다. 사와다 교이치 님이 로버트 카파 님보다 일찍 태어나 일찍 죽었으면 ‘사와다 교이치 상’이 생겨서, 로버트 카파 님이 ‘사와다 교이치 상’을 받는 사람이 되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요.

 사진기자 사와다 교이치 님은 진흙투성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괴로우며 고달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사와다 교이치 님을 비롯해 수많은 베트남사람과 숱한 미국사람이 베트남 들판과 숲과 도심지에서 진흙투성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너나없이 괴로우며 고달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전쟁은 누가 왜 일으켰을까요. 전쟁이 일어난 동안 누가 돈을 벌었을까요. 전쟁터에 찾아간 군인은 왜 월급을 받아야 할까요.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하는데에도 돈을 벌 수 있다니 이 무슨 평화요 자유요 민주라 할 만한가요. 미국은 군수산업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였으며 오늘날에는 또 얼마나 돈벌이를 하는가요. 미국이 벌인 싸움터에 종군기자로 뛰어든 사람들이 찍은 사진은 우리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가요. 전쟁사진이란, 전쟁터를 보여주는 사진이란, 보도사진이란, 보도사진가란, 목숨을 바치며 총알받이가 되어 숨을 거둔 사진기자가 남긴 사진이란, 오늘날 한국땅 여느 도시내기들한테 무슨 이야기로 아로새겨질 수 있을까요. (4344.4.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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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뜯이


 하루에 두 차례 쑥뜯이를 합니다. 여러 날 아침과 낮을 삼십 분 즈음 쑥뜯이로 보냅니다. 봄이 지나면 더는 쑥을 구경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쑥뜯이를 합니다. 아직 다른 풀을 잘 모르니 쑥뜯이를 더 바지런히 한다 여길 수 있고, 뜯은 쑥으로 쑥버무리를 마련하는 솜씨를 익히려고 날마다 바지런을 떤다 여길 수 있습니다. 네 식구 시골살이를 하는 둘째 해에 더 많이 알거나 훨씬 잘 알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올해에는 쑥뜯이 하나를 제대로 할 수 있어도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음성 장마당에서 홑잎나물 삶은 뭉치를 둘 장만해서 닷새째 넉넉히 먹습니다. 그제, 홑잎나물을 훑는 나뭇잎이 어떠한 모양인가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예전에도 숱하게 보기는 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거나 알아채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바깥뒷간 옆에서 자라는 나무에 홑잎나물로 삼는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그저께 비로소 알았습니다.

 풀뜯이를 하자면 사슴이나 토끼처럼 풀을 뜯어서 먹어야 하겠지요. 낯익어 보이는 풀이든 낯설어 보이는 풀이든 한두 닢을 살짝 뜯어서 혀에 올립니다. 살살 씹으며 어떤 물이 나와 어떤 맛이 나는가를 헤아립니다.

 책 하나를 찾거나 살필 때에 ‘처음부터 다 아는 책’을 장만하는 때도 있으나, ‘처음부터 까맣게 모르는 책’을 장만하는 때가 훨씬 잦습니다. 책 하나 가만히 손에 쥐어 넘기면서 비로소 이 책이 내가 읽을 만한가를 깨닫습니다. 누가 이 책을 좋다고 이야기하거나 말거나 나 스스로 이 책을 넘기면서 좋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나한테는 좋다 할 만한 책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좋아할 삶은 나 스스로 일굽니다. 내가 걷는 길이 내가 좋아하는 길입니다. 어설프거나 어줍잖은 모습이라면 어설프거나 어줍잖은 모습 그대로를 내가 좋아한다 할 수 있겠지요.

 쑥뜯이를 할 때에는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섭니다. 쑥을 뜯는 논 둘레에서 아이는 노래를 부르거나 뜀박질을 하거나 아버지와 함께 쑥을 뜯습니다. 쑥을 뜯다 보면 쑥내가 물씬 오르는 쑥이 있습니다. 이때에 아이는 쑥잎을 들어 아버지보고 냄새를 맡아 보라며 들이밉니다. 아이 손톱보다 작은 쑥잎 하나에서도 곱다 싶은 쑥내가 짙게 납니다.

 아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이 빗물에 섞여 내렸다지요. 시골마을이요 멧골자락이라지만, 이곳에서 쑥뜯이를 하면 방사능 머금은 빗물을 받은 풀일 테니까, 내 몸에 나쁠 수 있겠지요. 그러면 공장 가공식품은 얼마나 안 나쁠 만할까요. 공장 가공식품은 어떤 푸성귀나 열매를 그러모아서 만들까요.

 쑥을 뜯고 곰취를 뜯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조금 걸을 만하면 아이하고 손을 맞잡으며 달래 캐러 숲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봄날입니다. (4344.4.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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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하나씩 살피며 산다


 한국땅 어버이들은 언제부터 어린이책을 전집으로 왜 사는가 궁금합니다. 한국땅 출판사들은 언제부터 어린이책을 전집으로 만들어 버릇하며 파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나라만 전집책이 이토록 많은지 궁금합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전집’이라는 이름이라든지 ‘전집’과 같은 책꼴은 이웃한 일본에서 태어났겠지요. 일본에서 일본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만든 전집을 몰래 베끼거나 훔쳐서 한국 어린이한테 팔던 흐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는지 모릅니다.

 ‘세계명작’이라든지 ‘세계문학전집(또는 세계문학선집)’이라든지 ‘어린이명작동화’ 같은 이름은 죄다 일본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저학년문고’나 ‘고학년문고’라는 이름 또한 일본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사람은 어린이책을 전집으로 얼렁뚱땅 묶어 얼렁뚱땅 팔아치우지는 않습니다. 일본에도 퍽 덜 떨어진 전집책이 있을 테지만, 한국에서 옮긴 일본 전집책은 매우 훌륭합니다. 오랫동안 많은 돈과 많은 품을 들여 찬찬히 일군 아름다운 일본 전집책이기 일쑤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본 전집책을 요리조리 가위질하거나 베껴서 수십 해 동안 팔아먹었습니다.

 요즈음은 도둑질을 섣불리 할 수 없기 때문에 저작권 계약을 해서 일본 전집을 번역해서 내곤 합니다. 드문드문 영국이나 프랑스나 미국 전집책을 번역하기도 합니다. 어느 전집책이든, 나라밖에서는 ‘이 전집책만 보면 다른 책은 애써 안 보아도 된다’고 하는 생각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 전집책’이란, ‘낱권 하나만 보아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깊이 살필 수 없다’고 느껴서 만드는 책입니다. 과학동화이든 수학그림책이든, 낱권 하나가 아니라 열 권이나 스무 권이나 서른 권이나 마흔 권으로 잘게 나누어 묶으면서, 아이들이 차근차근 실타래와 고리를 잇는 동안 시나브로 과학이나 수학 밑바탕을 깨닫거나 들여다보도록 이끌려고 합니다.

 곧, ‘나라밖 전집책’은 ‘낱권책이 하나하나 모여 열 권이나 서른 권이나 쉰 권으로 이루어진 책뭉치’라 할 수 있어요. 아주 두툼하다 싶도록 커다란 ‘낱권책 하나’라 할 만합니다.

 좋은 전집책이든 좋은 낱권책이든, 이러한 책을 내놓은 출판사 이름으로 책을 살피거나 살 수는 없습니다. 퍽 드물지만, 아주 훌륭한 책길을 꿋꿋하고 씩씩하게 걷는 곳이 있습니다만, 모든 출판사가 모든 책을 알알이 여민다고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내 아이이든 이웃집 아이이든 모든 책을 똑같이 좋아하거나 즐기지는 않아요. 더 좋아하는 책이 있고, 덜 좋아하는 책이 있습니다. 한 출판사를 아주 단단히 믿더라도, 한 출판사 책에 매이지 말고, 아이 눈길이 닿으며 사랑스러운 마음밥을 얻을 책을 골라야 합니다.

 이렇게 책을 고르자면, 아이한테 좋을 책을 살핀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어른인 나부터 내가 어린이라면 어떠한 책을 즐겁게 100번이나 1000번쯤 되읽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른인 내 눈썰미로 살피는 책이 아니라, 어른인 내가 어린이라고 여기면서 나 스스로 이 책을 몇 번이나 되읽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장만할 만한 좋은 어린이책은 책방(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에 선 채로 다 읽고 나서 장만할 만한 책이어야 합니다. 책방에 선 채로 다 읽었으니 안 사도 된다 여기면, 이러한 책은 굳이 살 까닭이 없습니다. 책방에 선 채로 다 읽었기에 사야겠다고 느낄 만한 책을 사야 합니다.

 어른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책도 열 번 스무 번 되읽을 만하다 싶은 책을 찾아서 장만해야 아름답습니다. 되읽을 값어치가 없다고 느끼면, 나로서는 그닥 아름다울 책이 못 됩니다. 되읽을 값어치가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우리 집에 오래도록 꽂아 둘 책으로 무엇이 좋을까 하고 곱씹어야 합니다.

 어떠한 책이든 ‘출판사나 이름값이나 베스트셀러이냐 아니냐’를 살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책이든 ‘우리 집 책시렁에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넉넉히 꽂힐’ 책이라고 생각하며 살펴야 합니다. 우리 집을 자주 옮긴다고 한다면, 이삿짐을 싸고 묶고 하면서 하나도 짐덩어리로 느끼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다고 바라보는 책을 장만해야 합니다.

 아이도 어버이도 ‘아주 좋은 전집책이나 낱권책’이 아니라, ‘참으로 아름답고 좋구나 하고 느낄 책’ 하나를 마주하려는 마음이어야지 싶습니다. 좋은 책을 하나하나 찾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냄비 하나 아무렇게나 장만하지 않습니다. 냄비 하나를 한두 해만 쓰고 버리겠습니까. 열 해뿐 아니라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즐겁게 쓸 좋은 냄비를 장만해야지요. 자전거 한 대를 서너 해쯤 타다가 내다 버릴 자전거로 장만하겠습니까. 자전거 한 대는 내 아이가 즐겁게 탔다가 동생이나 이웃한테 예쁘게 물려줄 만큼 튼튼하고 좋은 녀석으로 장만해야지요. 책상도 밥상도 걸상도 매한가지예요. 두고두고 쓸 물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책꽂이 또한 쉰 해나 백 해를 버틸 튼튼하며 좋은 책꽂이로 갖추어야 합니다.

 나는 내 아이를 한두 해만 사랑하고 떠나보낼 마음이 아닙니다. 나는 내 아이를 예순 해 여든 해 고이 지켜보면서 늙고 싶습니다. 예순 해 여든 해를 고이 지켜보다가 아이보다 일찍 눈을 감고 싶기에, 내 아이가 마주할 책 하나란 오래오래 아이 마음밭에서 싱그러이 꽃을 피우는 어여쁜 책이 될 수 있게끔 찬찬히 살펴서 고릅니다. (4344.4.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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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
제니 매카시 지음, 이수정 옮김 / 알마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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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의학 만능’이라는 편견과 싸우는 엄마들
 [책읽기 삶읽기 51] 제니 매카시,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알마,2011)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라는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덜컥 이 책을 장만합니다. 예방접종 이야기를 다루는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생각했고, 이제 좀 예방접종 말썽거리를 살피는 사람들이 생겼나 싶어 반갑기 때문입니다.


.. 시어스 박사는 한 명의 아기에게 허용되는 알루미늄의 양이 20마이크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출생 당일에 주사하는 B형 간염 예방 백신 하나에만 무려 250마이크로그램에 달하는 독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결국 아기들은 만 2세가 될 때까지 총 1875마이크로그램의 알루미늄이 함유된 예방주사를 맞게 된다 ..  (10쪽/추천글-제이 고든)


 그런데,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라는 책은 예방접종 말썽거리를 다루는 책이 아닙니다. 예방접종 이야기는 추천글에 적힌 두 줄이 끝입니다. 더욱이, 예방접종 성분 이야기 또한 이 두 줄이 모두입니다.

 예방접종 성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요, 말썽이 되는 성분은 알루미늄·포름알데히드·페놀·치메로살(에틸수은)·에틸렌글리콜·염화젠제토늄·젤라틴·글루타민산염·네오마이신·스트렙토마이신 ……이며 끝이 없는데, 이런 이야기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문득 궁금해서, 간기를 들여다봅니다. 2008년에 미국에서 《mother warriors》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책이 2011년 한국에서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셈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처음 나온 이 책은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가 아니라 “싸우는 어머니들”입니다. ‘의학 만능’이나 ‘의학 맹신’하고 ‘싸우는 어머니들’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인 셈입니다.


.. 다른 병원을 찾아가 보기로 결심하고 나는 저명한 뇌신경 전문의를 만났다. 에번을 진료한 그가 정중하게 내 손을 잡더니 말했다. “안됐지만, 아드님은 자폐증입니다.” ..  (19쪽)


 261쪽에 이르는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뒤쪽에 ‘내 아이는 자폐를 타고나지 않았다’와 ‘예방주사가 때로는 위험할 수 있다’와 ‘자폐는 치유할 수 없는가?’라는 세 마디가 적힙니다.

 그래, 이 책은 ‘자폐 아이가 생기는 까닭’을 ‘의사나 정부나 공공기관이나 과학자나 기자’나 어느 누구나 가르치거나 밝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 스스로 ‘자폐가 왜 생기는가’를 찾아내려 애쓰면서 ‘자폐를 고치려는 눈물겨운 싸움’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정작 글쓴이 제니 매카시 님이 ‘식이요법’으로 자폐 아이를 고친다고 말은 하면서도 ‘어떤 식이요법을 어떻게 했는지’는 한 줄로도 나오지 않아요. ‘독소를 없애야 한다’고는 말하지만, 독소가 무엇이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일밖에 없는 수많은 독소는 무엇인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 이제는 어딜 가 봐도, 엄마들이 유전자 연구를 더 많이 해 달라고 간청하지 않는다! 이 엄마들은 장누수증, 발진, 극심한 알레르기, 음식 등에 관해 적극적인 연구를 해 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와줘야 할 대상은 바로 그들이다. 과학이 부모를 따라가는 속도가 이렇게 느리다는 사실이 슬프고도 답답하다. 과학자들은 부모들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유전자 연구와 눈맞춤 개선에만 매달리고 있다 ..  (165쪽)


 예방접종 이야기를 다루지 않으면서도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 같은 책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요. 책 껍데기를 보면 자잘한 글로 “병원에서는 아홉 가지 질병을 예방하는 주사를 네 대 놓았다고 설명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엘리아스는 심한 발작성 경련을 일으켰다.” 같은 이야기가 적힙니다. 한국에서도 흔히 겪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예방접종을 하루에 여러 대 놓거나 며칠 사이에 여러 가지를 놓는 일이 참 흔합니다. 그런데, 예방접종을 이렇게 했을 때 아이 몸이 어떻게 바뀔는지를 살피거나 따지는 연구란 없습니다. 의사도 간호사도 보건소 공무원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책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에서도 예방접종이 어떻게 말썽거리이며, 예방접종 성분이라도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보려 하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예방접종 성분을 알아보려 한들 의사나 간호사나 보건소 공무원 아닌 여느 사람들이 알기란 몹시 힘듭니다. 병원에서 약 처방을 하더라도 약 성분이 무엇인지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아이가 넘어져서 피가 날 때에 바르는 연고조차 연고에 깃든 성분이 무엇인가를 낱낱이 밝히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해 아버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값싼 라면이든 과자이든, 봉지를 들여다보면 라면이나 과자를 만든 성분을 낱낱이 적습니다. 햄이든 소시지이든 어떤 합성원료와 화학약품과 인공색소를 넣었는지 꼼꼼이 밝힙니다. 이렇게 성분을 밝히지 않으면 어떠한 라면이나 과자도 팔 수 없어요. 그렇지만, 예방접종은 성분을 아무한테도 아무것도 안 밝히지만 버젓이 맞힙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초등학교는 ‘예방주사 안 맞힌 아이’는 못 들어오게 막습니다. 초등학교에서도 예방주사를 꾸준히 맞힙니다.

 요즈음은 ‘친환경 무상급식’이 유행말처럼 떠돕니다. ‘친환경’이 아니고서는 아이한테 함부로 먹이면 안 되는 줄을 겉훑기로나마 알기는 합니다. 그러면 ‘친환경’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나 어른이 먹는 밥에는 ‘어떠한 성분이 깃들면 안 될’까요. 화학조미료(MSG)가 나쁜 줄을 안다면, 화학약품이 사람(어른이든 아이이든) 몸에 좋을 수 있을까요.


.. 나는 자폐증은 대부분의 경우 예방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선 예방 백신에서 독소를 제거하고 예방주사의 횟수를 줄이면 된다. 그리고 살충제나 중금속 같은 환경 독소에 아이를 노출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미 여러 연구 결과에서 예방 백신의 독소와 환경 독소가 자폐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졌다. 그런데 왜 언론에서는 이를 대대적으로 다루지 않는 걸까? … 이제 부모들은 운 좋게 건강해서 독소를 원활하게 제거할 수 있는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위해 안전한 예방 백신을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  (214∼215쪽)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www.selfcare.or.kr)’이라는 누리집이 있습니다. 예방접종은 안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몹시 위험하기 때문에 태어난 누리집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모임은 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방접종이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예방접종을 놓는 의사나 간호사나 보건소 공무원 가운데 ‘예방접종 성분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아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아마, 거의 모든 의사나 간호사나 보건소 공무원은 예방접종 성분을 모를 뿐 아니라, 구태여 알려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예방접종 성격이 무엇이고, 예방접종을 하면 내 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헤아리는 의사나 간호사나 보건소 공무원은 몹시 드물겠지요.

 예방접종을 다루는 책은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스테파니 케이브 글,차혜경 옮김,바람 펴냄,2005) 한 권하고, 《예방접종, 부모의 딜레마》(그레그 비티 씀,김윤아 옮김,잉걸 펴냄,2006) 한 권에다가, 《백신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팀 오시 씀,오경석 옮김,여문각 펴냄,2006) 한 권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예방접종 이야기를 다룬 책이 아직 이 셋 말고는 더 없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예방접종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쓰지도 못합니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읽는다면 예방접종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읽는다면 예방접종 때문에 돌림병이 자꾸 생길 뿐 아니라 사라지려던 병마저 새삼스레 크게 번지는 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니 매카시라는 미국사람이 낸 책은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이 책은 이 책에 걸맞게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의학 만능’이라는 편견과 싸우는 엄마들”이든 “‘의학 맹신’과 싸우는 엄마들”이든,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의학 만능’과 ‘의학 맹신’하고 싸우느라 지치거나 고단한 어머니들 이야기를 살포시 느끼도록 올바른 이름으로 고쳐서 다시 내놓아야 합니다. (4344.4.16.흙.ㅎㄲㅅㄱ)


―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 (제니 매카시 씀,이수정 옮김,알마 펴냄,2011.3.2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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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서너 살 아이와 영어 그림책 읽기


 오늘날 숱한 두서너 살 아이들이 일찍부터 영어 그림책을 읽으며 영어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얼핏설핏 들으면서 우리 집 아이를 가만히 떠올려 본다.

 우리 집 아이는 돌이 되기 앞서부터 영어 그림책을 보았다. 영어로 된 그림책뿐 아니라 일본말로 된 그림책을 보았다. 일본말로 된 그림책에다가 독일말이나 프랑스말로 된 그림책을 함께 보았다. 때로는 러시아말이나 스페인말로 된 그림책을 나란히 보았다.

 아이가 어릴 적부터 글을 깨우치도록 무언가 가르칠 생각에서 여러 가지 그림책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아직 우리 말로 옮겨지지 못한 좋은 나라밖 그림책이라면 헌책방에서 마주할 때에 즐겁게 장만해서 보여주었다.

 때로는 한국에 옮겨진 그림책을 굳이 나라밖 책으로 보여주곤 한다. 한국말로 옮겨진 그림책은 빛느낌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바빠빠》를 들 수 있다. 한국에는 1994년에 처음으로 옮겨졌고, 우리 집에는 2007년 29쇄가 있다. 그런데 한국판 《바바빠빠》는 빛느낌이 끔찍하도록 엉터리이다. 우리 집에는 일본에서 나온 《ベ-ベペペ》도 있는데, 일본판은 1972년에 처음 나왔고 2003년에 자그마치 203쇄를 찍는데, 바바빠빠 빛느낌이 잘 살았다. 한국판 바바빠빠는 시뻘건 빛깔인데, 바바빠빠는 빨갱이가 아니다. 분홍이이다. 그런데 내가 가진 책만 빨강이일는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쇄를 거듭할 때마다 바바빠빠 빛깔이 바뀌는지 모른다. 어느 때에는 붉음이인 바바빠빠요 어느 때에는 짙은 분홍이인 바바빠빠인 듯하다. 어쩜 이렇게 책마다 바바빠빠 빛깔이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한국 그림책을 그닥 믿지 못한다. 2007년에 옮겨진 《짝꿍 바꿔 주세요》는 일본에서 1991년에 나왔던 책을 옮겼는데, 우리 집에는 일본판을 퍽 일찍부터 헌책방에서 만나서 즐겁게 보다가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아이한테 자주 읽어 주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일본말을 잘 하기에 일본말을 번역하며 읽어 주지는 못한다. 그림을 보면서 이 대목에서는 무슨 이야기일까 헤아리면서 읽어 주었다.

 한국판 《짝꿍 바꿔 주세요》 또한 한국판 《바바빠빠》와 매한가지로 빛느낌이 썩 나쁘다. 일본 그림책 빛느낌은 매우 보드라우면서 밝다. 한국 그림책 빛느낌은 퍽 어두우면서 거칠다. 왜 이렇게 될까. 왜 이토록 달라질까.

 예전에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일하며 이태수 님 그림책을 일본말로 옮겨서 내던 일을 떠올려 본다. 나는 영업부 직원이니 편집일에 끼어들거나 어찌저찌 하지 않는다. 책이 나오면 신나게 책방마실 하면서 책팔이를 할 뿐이다. 일본에서 내놓은 《우리 순이 어디 가니》와 《심심해서 그랬어》를 보는데, 한국에서 나온 그림책보다 빛느낌이 훨씬 보드라우면서 해맑았을 뿐 아니라, 구석구석 더욱 또렷했다. 《심심해서 그랬어》는 주인공 모습이 책 가운데에 씹히지 않도록 0.5센티미터를 옆으로 살짝 옮겨 놓기까지 했다. 제본 또한 일본책이 훨씬 훌륭했고.

 나는 우리 아이한테 나라밖 그림책을 애써 읽힐 마음이 없다. 우리 아이가 어린 나이부터 영어 그림책을 읽으며 영어를 배우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생각한다. 우리 아이는 그림책다운 그림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는 책다운 책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책이 좋은 제본과 땀방울에 따라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 스스로 나중에 영어를 배우고 싶으면 언제라도 배우라지. 우리 집에는 수많은 한국말사전과 영어사전과 영어책이 골고루 있으니까. 아버지로서 아이한테 따로 영어를 가르칠 마음이 없다. 영어이든 뭐든 스스로 배우고 싶다고 느껴 스스로 찾아나서야 배울 수 있다. (4344.4.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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