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수다 - 차도르를 벗어던진 이란 여성들의 아찔한 음담!
마르잔 사트라피 글 그림, 정재곤.정유진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일만 하는’ 여자와 ‘사랑 못 받는’ 여자
 [만화책 즐겨읽기 43] 마르잔 사트라피, 《바느질 수다》


 새벽에 일어나고 아침에 밥을 차리며 빨래를 조금 하다가는 청소를 또 조금 하면 금세 낮입니다. 낮에는 또 낮대로 아이한테 무엇을 먹일까를 헤아리고, 몇 가지 일을 하노라면 어느덧 저녁입니다. 날마다 맞이하는 하루는 날마다 훌쩍 지나간다고 느낍니다.

 바깥이 희뿌윰하게 밝는 새벽 네 시 무렵이면 으레 잠이 깨는데, 오늘은 다섯 시 오 분에 겨우 일어납니다. 어제 하루 일요일을 맞이해서 빨래도 꽤 하고, 이런저런 집일을 퍽 한 탓인지 몸이 좀 무겁습니다. 닭 우는 소리가 꽤나 시끄럽다고 느끼며 일어나는데, 닭이 우는 때는 요즈음 봄철에는 새벽 네 시 반쯤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텃밭 가장자리에서 쉬를 눈 다음, 이제 잎을 무럭무럭 돋우는 감자를 돌아봅니다. 잎사귀 앞뒤로 숨거나 달라붙은 무당벌레를 하나하나 잡아서 돌로 눌러 죽입니다. 토마토 잎을 꽤나 갉아먹은 무당벌레도 하나하나 잡습니다. 새벽에 잡고 낮에 보면 또 꽤나 달라붙고, 낮에 잡은 뒤 저녁에 다시금 돌아보면 또 많이 달라붙습니다. 잡아 죽이고 또 잡아 죽여도 끝나지 않습니다.

 고랑에서 돋는 풀은 뽑거나 캐도 그치지 않습니다. 또 돋고 새로 돋으며 자꾸 돋습니다. 그야말로 쑥쑥 돋는 온갖 풀입니다. 푸성귀를 길러서 내다 파는 이들이 푸성귀에 붙이는 값은 너무 싸지 않나 하고 생각하면서 무당벌레를 잡습니다. 어쩌면, 손으로 벌레를 하나하나 잡고, 손으로 풀을 하나하나 캐거나 뜯으면서 키운 푸성귀라면 제값을 받아야 할 노릇인지 모릅니다. 또한, 풀약을 치며 키운 푸성귀라 하더라도 풀약을 치는 값과 품이 만만하지 않은 만큼, 이러거나 저러거나 제값을 받으려면 오늘날 사람들이 가게에서 사들이는 값에 몇 곱을 해야 하리라 느낍니다.

 언제부터인가 ‘공정무역’이라는 말이 떠돕니다. 다국적기업이나 재벌기업이 시세차익을 많이 노리면서 가난한 나라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마구 부리며 만드는 물건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 일꾼이 일한 보람을 옳게 거둘 수 있도록 하는 물건을 사고팔자는 일이라 합니다. 우리 식구들도 때때로 공정무역 물건을 장만하지만,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커피나 코코아나 초콜릿 들을 공정무역으로 사고파는 일이 나쁘지 않습니다만, 사람들이 날마다 흔히 먹는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부터 옳고 바르게 사고팔아야 한다고 느끼거든요.

 한국사람은 쌀부터 얼마나 옳거나 바르게 사고팔면서 먹을까요. 배추 한 포기를, 무 한 뿌리를, 시금치 한 손을 얼마나 옳거나 바르게 사고팔는지요. 생활협동조합 회원으로 들지조차 않거나 생협 물건은 너무 비싸서 돈있는 사람만 사다 먹는다고 여기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논을 일구는 일꾼이 거둔 벼가 쌀이 되기까지 들이는 품을 헤아리면서 가게에서 쌀을 사다 먹는 도시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 점심식사를 마치고 남자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낮잠 자러 가고 여자들은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2쪽)


 만화책 《바느질 수다》를 읽습니다. 만화책 《페르세폴리스》를 그린 마르잔 사트라피 님이 그린 작품입니다. 140쪽밖에 안 되는 만화책이 1만 원 값이 붙어 무척 비쌉니다. 여느 만화책을 생각한다면, 값이 세 곱이나 비쌉니다. 두꺼운 껍데기를 붙였기에 이토록 비싼가 싶지만, 2005년에 나온 《페르세폴리스》를 헤아리니 이때에 159쪽으로 나온 만화책도 1만 원이었습니다. 여느 만화책을 만드는 종이보다 좋은 종이를 쓰니까 값이 더 비쌀밖에 없는지 모르는데, 한결 빼어난 작품이더라도 여느 만화종이를 쓰고 여느 만화책으로 만들어 여느 사람들이 여느 손길로 사랑할 수 있게끔 여느 사랑을 다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 “그래도 그 여잔 복도 많네. 최소한 불알 하나는 건드려 본 거 아냐. 나는 건드려 보기는커녕 지금까지 구경도 못했다고. 뭘 그렇게 쳐다보고 그래?” “그럼 네 새끼들은 어떻게 낳았는지 설명해 봐!” “성령으로 잉태했나 보지!” “자기들 말이 맞긴 해. 나는 자식을 넷이나 낳았지. 무려 넷이나. 하지만 남자 물건을 본 적은 없어. 그 사람은 방에 들어와 불을 끈 다음엔, 으차! 으차! 으차! 그렇게 나는 애를 가졌지. 그러니 고추를 볼 새가 있었겠어?” (21∼22쪽)
- “내 말 좀 들어 봐. 나는 열세 살에 처음 결혼했어.” “열세 살이요?” “그래, 열세 살! 족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장관이나 장성한테 시집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어. 그래서 나보다 쉰여섯 살이나 많은 장군님을 남편으로 맞아야 했지.” “쉰여섯 살 차이요?” “그래, 예순아홉이나 먹은 노인네였어.” “아, 전혀 몰랐어요.” “이제는 알게 됐잖니.” “그 나이에도 여전히, 음, 그러니까, 그거 가능해요?” “사실, 나도 모른단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자꾸 말 끊지 말고 내 얘길 들어 봐! 그 사람은 어머니께 결혼 허락을 받으러 왔고, 어머니는 단숨에 그러라고 하셨지.” (25∼27쪽)



 만화책 《바느질 수다》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책이름은 “바느질 수다”이지만, 이 만화에 나오는 할머니나 아주머니 가운데 바느질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에서뿐 아니라, 집에서 바느질을 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안 보입니다. 바느질을 하면서 수다를 떠는 줄거리가 아니라,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줄거리인 《바느질 수다》입니다.

 꼭 바느질을 하는 사람만 “바느질 수다”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이름 “바느질 수다”는 바느질을 하는 사람들 수다라는 뜻보다 “바느질 + 수다”라는 이름에서 무언가 깊은 뜻을 넌지시 들려준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바느질 하는 사람들 수다”를 곱씹고 맙니다. 만화영화로도 나온 만화책 《달려라 하니》를 되새깁니다. 창수네는 제법 잘사는 집이라 할 텐데, 창수네 어머니가 집에서 창수하고 하니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을 보면, 창수네 어머니는 ‘꽤 잘사는 집안 여자’라 할 만하지만, 으레 뜨개질거리를 손에 듭니다. 눈으로는 뜨개질거리를 바라보면서 입으로는 창수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빚은 숱한 어린이책을 읽다 보면, 사이사이 나오는 그림에서 뜨개질하는 아주머니나 할머니가 곧잘 나옵니다. 영화로 나온 〈말괄량이 삐삐〉를 보아도,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떠는 대목에서는 으레 모두들 뜨개질을 합니다. 일본에서 나온 그림책에서도 어머니들이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수다를 떠는 대목을 보면 으레 뜨개질을 합니다. 눈으로는 뜨개질거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예 눈으로 안 들여다보아도 빼어난 솜씨로 뜨개질을 하곤 합니다.


- “아직도 사랑하세요?” “당연히 아니지!” “그럼, 사진은 왜 가지고 계세요?” “그 사람 사진이 아니라, 내 결혼식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거야. 내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아직도 사랑할 수 있겠니? 그런 몹쓸 짓을 당하고도. 베를린에 도착한 날, 그 사람은 마중조차 나오지 않았어.” (40쪽)
- “유부남이 애인을 만나러 갈 때는 말이다. 깨끗이 빨아 빳빳하게 다린 옷을 입고, 이에서는 광채가 나지. 입에서는 꽃향기가 나고,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이야깃거리도 넘쳐나지. 그리고 이런 말을 해 주잖아. ‘당신은 아름답고 지적이오. 그러니까 뭐랄까, 당신이랑 있을 때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당신은 정말이지 귀한 진주 같다고나 할까.’ 그저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거지.” (50∼51쪽)


 한국은 뜨개질이 자리잡은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한국사람 옷짓기는 뜨개질이 아닌 바느질입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뜨개질을 하든 바느질을 하든, 이와 같은 옷짓기는 으레 여자가 도맡습니다. 예부터 바느질하는 어머니와 뜨개질하는 할머니가 있을 뿐이지, 바느질하는 아버지나 뜨개질하는 할아버지는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밥하는 아버지나 빨래하는 할아버지를 찾아보기 더더욱 어렵습니다. 걸레질하는 아버지나 아기 업는 할아버지는 얼마쯤 있다고 할 만할까요.

 그런데, 밥이고 빨래이고 걸레질이고 바느질이고,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적잖은 나라에서는 온통 여자한테 도맡깁니다. 서로 하는 집일이 아니고, 함께 즐기는 집일이 아니며, 나란히 나누는 집일이 아니에요.

 게다가, 이제는 남자도 여자도 집일을 안 하곤 합니다. 집일을 하는 일꾼을 따로 두곤 합니다. 이제 아버지도 어머니도 집일을 안 하곤 하지만, 집일만 안 할 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마저 안 하곤 합니다. 아이를 어릴 적부터 유아원이든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넣습니다. 초등학교에 들 무렵이면 벌써 여러 학원을 드나듭니다. 집에서 아이와 어버이가 마주하는 겨를이 몹시 적습니다. 어린 나날부터 아이하고 눈을 마주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틈이 얼마 없으면서 ‘한식구’라는 말을 섣불리 씁니다.


- “정말? 네 남편도 바람피워?” “거의.” “그게 무슨 뜻이야?” “그 사람은 언제나 한눈을 팔았어. 위험할 정도로 말이야. 특히 차 타고 갈 때! 눈이 아주 360도로 휙휙 정신없이 돌아가서 사고 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남자들도 폐경기 같은 게 있다는 거 알지? 그런데 남자들은 티가 덜 나잖아. 그래서 젊은 여자한테 그렇게 환장하는 거야. 자기들도 젊어 보이고 싶어서. 아직 능력이 죽지 않았다는 걸 온 세상에 광고하고 싶으니까! 늙은 여자랑 같이 있으면 늙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되고.” (73쪽)


 집에서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옆지기는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낳았으면, 적어도 세 해는 아이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세 해 동안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첫째 아이하고 네 해째 함께 살아가면서 생각합니다. 옆지기가 하는 말을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살아내면서 몸으로 천천히 받아들입니다. 예쁜 모습도 미운 모습도 웃는 모습도 우는 모습도 집에서 고스란히 바라보거나 받아들이면서 함께 살아갈 때에, 아이는 아이대로 사랑을 받아먹고,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사랑을 나눕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고, 어버이는 아이한테서 사랑을 받습니다.

 어린 아이는 사랑 말고는 받을 만한 다른 무엇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한테는 사랑 빼고는 줄 만한 다른 뭐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는 사랑 아닌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한테 사랑 아닌 돈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서너 살 어린 아이한테뿐 아니라 예닐곱 살 어린 아이한테도 매한가지입니다. 예닐곱 살 어린이라 하든 열한 살 어린이라 하든 사랑을 나눌 노릇입니다. 열네 살 푸름이라 하든 열여덟 살 푸름이라 하든, 사랑을 주고받도록 마음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야지,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주어야지, 돈을 줄 수 없습니다.


- “바하르가 결혼한다니! 상상이 가? 우리 딸이!” “이제 겨우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남편감이 억만장자래. 런던에 집이 일곱 채나 있대. 모나코에도 두 채나 있고.” “런던에 사는 억만장자? 몇 살인데?” “마흔한 살! 영국에 산 지 25년 됐대. 로열 칼리지 출신이래. 그 나이엔 원하는 게 확실하지! 아, 타지! 너무 잘됐어! 굉장해! 나, 너무 행복한 거 있지?” “그럼 어째서 마흔 살이나 먹었고, 25년 동안 유럽에서 살았고, 교육도 받을 만큼 받은 남자가 이제 겨우 열여덟 살짜리 계집애랑 결혼하고 싶어 하는 건지 설명해 봐!” “왜냐하면 말이지, 너도 서양 여자애들이 어떤지 알지? 열 살, 열한 살이 지나면 순수함을 잃지. 그 사람은 이란인이고! 그래서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딸이 거기에 딱 들어맞은 거야.” “잘 들어, 파르바네! 네가 여기까지 찾아왔으니까 말인데, 내 의견을 말해 줄게. 나는 네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해? 바하르는 아직 어려. 공부도 하고, 독립심도 키우고, 자아를 발견할 수 있게 좀 내버려 둬! 너도 네가 고른 남자랑 결혼했잖아. 그 애도 좀더 큰 후에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줘.” “그래서 결과가 어떤지 아니? 내가 고른 남자는 말다툼을 할 때마다 내가 자기를 쫓아다녔다고 어찌나 불만을 늘어놓는지 말도 마. 양가집 규수라면 얌전히 기다렸을 거라면서 말이지.” (96∼97쪽)


 아이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어버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살다가 곱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어버이한테서 사랑받으며 살아온 아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나누는 즐거움을 듬뿍 누리는 길을 걷다가 곱게 사랑씨를 남기며 흙으로 돌아갑니다.

 만화책 《바느질 수다》를 덮습니다. 처음 태어나던 날부터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고 할머니가 되기까지 살아온 숱한 여자들이 어린 나날부터 얼마나 사랑받았던가 하고 곱씹습니다. 만화책 《페르세폴리스》에 나오는 주인공은 당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어린 나날부터 따스히 사랑받았습니다. 《바느질 수다》에서 이야기를 풀고 맺는 주인공 또한 둘레 할머니들과 고모들한테서 넉넉히 사랑받습니다.

 만화를 그린 마르잔 사트라피 님은 언제나 따순 사랑이 감도는 터전에서 예쁘게 자랐습니다. 그렇지만, 마르잔 사트라피네 할머님이나 고모님은 사랑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할 만합니다. 남자들한테 성 노리개라든지 부속품이라든지 집일을 해주는 밥어미나 심부름꾼 대접만 받았다 할 만합니다.

 제법 돈있는 집에서 살아온 여자들이든, 몹시 돈없는 집에서 살아온 여자들이든 ‘여자 삶’이라는 테두리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예쁜이 수술은 엄두도 못 낼 가난한 집 여자들이 ‘차 마시는 수다’ 아닌 ‘바느질 수다’를 떨면서 주고받을 아쉬움이나 슬픔이든, 물질문명을 퍽 누리던 지식 여성들이 느긋하게 ‘차 마시는 수다’를 떨면서 ‘여성이 누릴 살곶이’에 얽힌 고단한 나날을 주고받든 똑같습니다.

 문득 김은성 님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새만화책,2008)가 떠오릅니다. 《내 어머니 이야기》에 나오는 ‘솔방울을 속치마 샅에 끼우며 노는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곰곰이 헤아리자니, 여자들 ‘바느질 수다’나 ‘차 마시는 수다’에서는 온갖 눈물과 웃음이 고스란히 배어납니다. 그렇지만, 남자들 ‘술집 수다’나 ‘담배 수다’는 그닥 재미없을 뿐 아니라 따분하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남자들이 논이나 밭에서 일할 때이든, 멧자락에서 나무를 하거나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에 펼치는 수다가 되면 몹시 재미나며 즐겁습니다. (4344.5.16.달.ㅎㄲㅅㄱ)


― 바느질 수다 (마르잔 사트라피 그림·글,정재곤·정유진 옮김,휴머니스트 펴냄,2011.2.14./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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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집 책읽기


 이른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쉬지 않고 뛰어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둘째가 태어날 날을 손꼽으면서 마무리지을 온갖 집일을 건사한다. 모처럼 일요일 햇살이 아침부터 포근하면서 바람이 조용하다고 느껴, 지난겨울 아이가 입던 두툼한 겉옷 세 벌을 빨기로 한다. 한 벌씩 빨아 마당 빨랫줄에 넌다. 오늘은 한 벌만 빨고 이듬날에 또 한 벌, 모레에 다시 한 벌을 빨까 생각했지만, 모레이든 글피이든 날이 좋으리라고는 알 수 없다. 오늘 몰아서 다 해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생각해 보면, 이듬날이든 모레이든 글피이든 다른 빨래를 해야지. 둘째가 태어날 때에 누일 깔개를 찾고, 겨우내 덮은 이불과 깔개를 빨아야지. 내 겉옷과 옆지기 겉옷도 빨아야지. 빨래만 헤아려도 아직 다 끝마치려면 멀었다. 어느 한 가지도 미룰 수 없다. 빨래 한 가지만 하더라도 무척 많은데, 집일을 하느라 아이하고 못 놀기 일쑤일 테지만, 아이는 이제 혼자서 마당 이쪽에서 저쪽으로 신나게 달음박질을 치며 소리치고 논다. 세 살 적까지만 하더라도 빨래하는 아버지 곁에서 물놀이를 했음직한 아이가, 물놀이보다 더 재미난 뜀박질을 찾은 듯하다. 마당 한쪽 끝에서 민들레 노란 꽃송이나 냉이 하얀 꽃송이를 뜯는다. 날마다 뜯고 또 뜯어도 꽃은 흐드러진다. 아이가 날마다 수십 송이씩 꺾는다 하더라도 날마다 수백 수천 송이씩 새로 피고 진다.

 우리 식구가 인천에서 살던 때에는 아버지가 날마다 골목마실을 여러 시간 하는 동안 아이는 골골샅샅 누비면서 골목꽃을 구경했다. 골목꽃을 구경하며 걷던 때에는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골목이웃이 애써 어여삐 키우는 꽃을 함부로 꺾을 수 없다. 공무원이 찻길에 심는 꽃은 그다지 꺾을 만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골목길 틈바구니에서 자라는 민들레나 개불알꽃이나 냉이꽃이나 망초꽃은 먼지를 듬뿍 뒤집어쓰곤 해서 고운 빛깔이 또렷하지 못하다.

 멧자락 시골집에서는 들꽃이나 들풀이 먼지를 뒤집어쓸 일이 드물다. 아니, 먼지를 뒤집어쓸 일이란 없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흩날리고 나부끼며 춤춘다. 바람결에 따라 뒤집어지는 나뭇잎이 반짝거린다. 도시에서는 아래쪽 나뭇가지를 모조리 잘라내어 나무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옳게 살피기 힘들다. 멧골짝에서 자라는 나무를 굳이 가지치기 하는 사람이란 없다. 이럴 겨를도 없고, 이렇게 한대서 누가 돈을 주지도 않지만, 숲속 나무를 가지치기할 까닭부터 없다.

 나뭇잎이 어디에서 돋아 어떻게 흐드러지는가를 고스란히 들여다본다. 아이가 나뭇가지를 꺾거나 나뭇잎을 뜯거나 꽃잎을 딴대서 걱정할 일이 없다. 꺾거나 뜯은 잎과 가지는 흙한테 돌려주면 된다. 흙한테 돌려주면 흙이 살아날 거름이 될 테고, 나무한테 돌아가는 밥이 되겠지.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아이한테 자연그림책은 거의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어떤 자연그림책이건 시골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가 읽도록 엮거나 쓰거나 만들지 않으니까. 어떤 자연그림책이건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갈 아이가 읽도록 엮거나 쓰거나 만드니까.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어른한테 생태환경을 다룬 책은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왜냐하면, 어떤 생태환경책이건 시골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어른이 읽도록 엮거나 쓰거나 만들지 않으니까. 어떤 생태환경책이건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갈 어른이 읽도록 엮거나 쓰거나 만드니까.

 옆지기와 아이와 내가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때를 돌이킨다. 이무렵 장만해서 읽던 자연그림책 가운데 몹시 아름다우면서 가슴으로 촉촉히 젖어들던 책이 얼마 안 된다고 떠오른다. 그때에는 도시내기였지만, 도시내기 눈으로 들여다보더라도 자연그림책을 너무 지식으로만 다루기 때문에 썩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자연을 사랑스레 마주하면서 나 스스로 사랑스러운 자연으로 녹아들도록 이끄는 자연그림책은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어른으로서 읽던 생태환경책도 매한가지이다. 왜 어른 스스로 생태와 환경이 몸으로 녹아드는 삶이 되는 이야기를 담는 생태환경책을 엮거나 쓰거나 만들지 못할까.

 나는 인문책을 가까이하지 못한다. 오늘날 한국땅 인문책은 거의 모두 지식책에 머물기 때문이다. 사람들 삶을 착하거나 따스하거나 아름다이 돌보는 나날을 적바림하는 인문책은 너무 드물어, 인문책이 그닥 손에 잡히지 않는다.

 4대강을 반대해야 하거나 88만 원 세대를 달래야 하거나 입시지옥을 걱정해야 하거나 재벌 권력과 교회 권력을 꾸짖어야 하거나 이명박을 나무라며 진보정치를 꿈꾸어야 하는 책은 인문책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책은 모두 지식책이라고 느낀다. 4대강은 지식이 아닌 삶으로 살피면 이런 통계 저런 수치란 모두 부질없다. 더욱이, 4대강뿐 아니라 작은 도랑과 실개천은 어떠하고. 얕은 멧자락이나 너른 들판은 어쩌지? 사람들은 4대강에 파묻혀 정작 내 보금자리 자그마한 숲과 들과 멧골이 파헤쳐지며 사라지는 모습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88만 원 세대만 있겠는가. 50만 원 어린이와 40만 원 어버이도 있다. 모두들 대학교 졸업장 때문에 다투니까 입시지옥인데, 모두들 대학교에 안 가면서 사람답게 살아가자고 다짐하면 된다. 재벌 회사에 들어갈 생각을 안 하면서 내 작은 마을에서 내 작은 일거리를 찾아서 조용히 살아가면 된다. 예배당 십자가가 아닌 마음속 하느님을 믿으며 섬기면 된다. 이명박을 나무란다지만 내 살림집에서 내 살림살이를 사랑스레 일구지 못한다면 진보도 개혁도 번혁도 이루지 못한다.

 아이는 꽃을 꺾어 머리에 핀하고 함께 꽂아 달라고 내민다. 아이 머리에 꽃을 꽂아 준다. 아이는 머리에 꽂은 꽃이 떨어지는 줄 느끼지 못하면서 신나게 달음박질을 치며 논다. 몇 시간쯤 달음박질을 치며 놀다 보면 머리에 꽂던 꽃이 어찌 된 줄 모르지만, 꽃이 사라진 줄 알면 새로 꺾어서 한손에 쥐며 또 달음박질을 친다.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고, 아버지는 운전면허가 없으며, 어머니는 장롱면허이면서 둘째를 밴 몸이라 적성검사를 받으러 갈 겨를이 없다. 자동차 없는 널따란 마당과 숲 사이에서 골짜기 물소리를 들으면서 마음껏 논다. 저녁나절에는 모두 지쳐서 아이한테 그림책 한 권 읽어 줄 기운조차 없이 곯아떨어진다. (4344.5.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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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락 책읽기


 아이가 책을 읽는다. 아버지가 그림책을 집어들어 펼치면 저도 함께 읽겠다면서 아버지 무르팍으로 파고든다. 책을 읽는 아버지 곁에서 아이는 책을 읽는 아이가 된다. 아버지가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탈 낌새를 보이면 아이는 금세 알아챈다. 자전거를 타는 아버지 둘레에서 아이는 자전거를 함께 타는 아이가 된다. 부엌으로 가서 밥을 할라치면 아이는 어느새 부엌으로 쪼르르 따라온다. 마늘을 빻거나 달걀을 풀거나 반죽을 하거나 다지거나 채 썬 푸성귀나 나물을 냄비에 부을 때에, 아이는 옆에서 제가 하겠다고 나선다. 밥상을 세워 다리를 펴려 하면 아이는 이때에도 제가 하겠다고 먼저 붙잡는다. 텃밭으로 가려고 호미를 쥐면 아이는 부리나케 쪼르르 달려와서 저한테도 호미를 달라며 부르다가는 아버지 곁에서 흙을 쫀다.

 아이가 책을 읽는다. 아버지가 그림책 아닌 글책을 읽으니, 글책은 그닥 볼거리가 없으니 제 그림책을 펼쳐 읽는다. 아이는 책을 읽을 때에 그림책을 무릎에 올려놓는다. 그림책 끄트머리에는 으레 아이 발가락이 뽀롱 나온다. 아이는 그림책을 보면서 발가락이 가만히 있기도 하지만, 꼬물꼬물 꼼지락꼼지락 하기도 한다. 깊이 빠져들 때에는 발가락이 얌전하고, 종알종알 떠들며 책장을 넘긴다든지 앞뒤가 궁금해서 요모조모 들출 때에는 발가락이 춤춘다.

 한참 책을 넘기고 펼치고 하더니 손가락으로 하나를 짚으며 나한테 묻는다. 나보고 같이 들여다보라며 부른다. 아이는 맛난 먹을거리를 혼자 먹지 않고 나눈다. 아이는 좋은 볼거리를 혼자 보지 않고 부른다. (4344.5.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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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와 글쓰기


 새벽 다섯 시 십이 분에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옵니다. 하얗게 동이 튼 하늘을 올려다보며 푸른 잎사귀 나부끼는 숲을 바라봅니다. 깊은 시골이건 얕은 시골이건,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푸른 빛깔을 맞아들입니다.

 텃밭 가장자리에 쉬를 누고 들어가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텃밭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날마다 무당벌레를 잡고 또 잡아도 새 무당벌레가 잔뜩 보입니다. 토마토 잎이나 줄기에 붙어 갉아먹는 녀석, 감자 잎이나 줄기에 붙어 뜯어먹는 녀석을 톡톡 쳐서 흙바닥에 떨군 다음 작은 돌로 뭉갭니다. 우리 살림집 텃밭은 참 조그맣고, 조그마한 텃밭 푸성귀는 몇 가지 안 됩니다. 널따란 밭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이 벌레란 얼마나 무시무시하거나 끔찍할까요.

 영화 〈로빙화〉를 보면 차밭 벌레를 잡으며 애먹는 흙일꾼이 어렵사리 풀약을 얻어 차밭에 좌아악 뿌릴 때에 시원하게 활짝 웃습니다. 흙일꾼뿐 아니라 고아명과 고차매 남내도 활짝 웃습니다. 돈이 없어 여태껏 손으로 벌레를 하나하나 잡아서 죽였는데, 이제 벌레 걱정에서 조금은 시름을 덜었거든요. 새로 온 곽운천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끌고 차벌레 잡이를 거들기도 했으나, 이렇게 몇 차례 거든대서 잡아 없앨 수 있는 차벌레는 아닙니다. 잡으면 또 있고, 다 잡았다 싶으면 또 기어오르는 차벌레입니다. 풀약 안 쓰는 깨끗한 농사를 이루기란 가난하고 힘겨우며 일손 모자란 집에서는 아득한 꿈입니다.

 흔히들, 풀 먹는 일, 이른바 ‘채식’이란 ‘몸뚱이 큰 목숨을 먹지 않으려 하’면서 ‘목숨을 더 사랑하는 일’이라 여깁니다만, 풀을 먹는대서 목숨을 안 먹는 일이 아닙니다. 고기를 먹어도 목숨을 먹는 일이고, 풀을 먹어도 목숨을 먹는 일입니다. 고기가 되는 짐승을 잡을 때에 고기짐승이 끔찍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든지, 눈물을 흘리는 눈망울을 바라보아야 한다든지,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며 살을 발라야 한다든지, 이러한 모습이 보기 나쁘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푸성귀를 길러 먹을 때에도 풀을 다듬습니다. 풀을 다듬고 씻어서 손질합니다. 목숨이 깃들지 않은 풀은 메말라서 먹을 수 없습니다. 풀이든 고기이든 모두 목숨이요, 모두 다른 목숨이 내 몸으로 스며들며 내 목숨이 어이지는 흐름입니다.

 더욱이, 사람 몸을 더 아끼거나 살린다 하는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저농약이 될 때에는 수많은 벌레를 잡아서 죽어야 합니다. 온갖 목숨을 죽이고 나서야 바야흐로 풀먹기를 할 수 있습니다. 시금치 한 묶음, 감자 한 알, 오이 하나, 배추 한 뿌리를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벌레를 죽여야 하는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목숨을 더 사랑하려는 뜻에서 한다는 풀먹기’가 어떠한 뜻이나 값이 되는가를 모르는 셈입니다.

 좋거나 훌륭하거나 거룩하거나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줄거리를 다루는 글이라 해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지식을 보여주거나 밝히는 글은 부질없습니다. 삶을 깨닫고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하루하루 즐길 수 있도록 어깨동무를 하는 글이 되어야 비로소 사랑스럽습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랑을 빛내는 책 하나입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랑을 빛내는 책을 살가이 이루는 글입니다. (4344.5.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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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하워드 진.에드워드 W. 사이드 외 17인 지음, 강주헌 옮김, 데이빗 버사미 / 시대의창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착한 삶 사랑할 때에 바른 말 하는 사람
 [책읽기 삶읽기 58] 데이비드 바사미언,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시대의창,2006)



 한자말 ‘양심(良心)’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양심 있는 사람이 된다 할 때에는 옳고 그른 줄을 아는 사람이 된다는 사람을 가리킨다 할 테지만, 이에 앞서 ‘착한’ 사람을 일컫는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良心’에서 ‘良’이란 ‘착할 량’이거든요.

 말이며 몸가짐이며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할 때에 착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말이며 몸가짐이며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하자면, 옳은 말과 몸가짐을 알아야 합니다. 옳은 말과 몸가짐을 모르고서야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으레 ‘선량’이나 ‘양심’이나 ‘선행’이나 ‘선심’ 같은 갖가지 한자말을 들먹입니다만, 어떠한 말마디라 하더라도 한 가지로 모둘 수 있습니다. ‘착함’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 마음을 착하게 가다듬을 때에 내 삶을 옳은 쪽으로 접어들도록 애쓰는 셈이고, 내 하루를 착하게 돌볼 때에 내 삶을 바른 길로 접어들도록 힘쓰는 노릇이며, 내 말을 착하게 다스릴 때에 내 삶을 상냥한 결로 돌보도록 온몸을 쓴다 할 만합니다.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라는 책이라 한다면, 이 지구별에서 ‘착하게’ 살아가면서 ‘바르게’ 말하려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 인도 정부는 비폭력이란 개념을 지향해 왔습니다. 따라서 비폭력 저항과 비폭력 지배가 인도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지요. 중국이나 터키, 인도네시아와 달리 인도는 국민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정부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국민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꾹 참고 기다릴 뿐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하고, 그 결과는 무시해 버립니다 … 인도 공공분야의 기반시설은 국민의 돈으로 지난 50년 동안 꾸준히 건설된 것입니다. 정부는 이런 기반시설을 엔론에게 팔 권리가 없습니다 … 야라 나라가 핵무기를 비축해서, 인도와 파키스탄과 미국처럼 자기 국민을 속이고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 세계는 위험한 세계입니다 …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라 말하면서, 핵폭탄을 만드는 데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 도시의 좁은 틈바구니에는 예외없이 가난한 사람이 몸을 쪼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한 곳은 빛이 너무 환한데, 어둠은 그 주변에서 점점 짙어 갑니다. 엘리트들은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 내가 쓴 글대로 행동하고, 내가 글로 쓴 것을 끝까지 해내려고 애씁니다 ..  (아룬다티 로이/145∼151쪽)


 나부터 착해야 합니다. 내 마을이 착해야 합니다. 내 겨레와 내 나라가 착해야 합니다. 여느 일자리를 찾아 여느 살림을 꾸리는 나부터 착해야 합니다. 공무원이나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착해야 하고, 정치를 하건 회사를 꾸리건 착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은 제 밥그릇을 챙기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나와 네가 서로 웃으면서 마주할 밥상을 차립니다. 착한 사람이 제 밥그릇 떵떵거릴 까닭이 없고, 착한 사람이 어깨를 우쭐거릴 일이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며 정치를 한다 할 때에는 제 힘을 키우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즐거울 터전을 일굴 정치를 할 착한 사람입니다. 회사를 꾸리건 공장을 꾸리건 다르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땀값을 받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착한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은 돈을 더 벌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내 살림을 사랑하고 내 이웃 살림을 사랑합니다. 다 함께 오붓하게 누리거나 즐길 보금자리를 사랑합니다.


.. 우리에겐 더 이상 관광객이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관광객을 원하지 않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휴양지가 세워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 하와이에는 사방이 골프장입니다. 온갖 종류의 살충제가 뿌려집니다. 원주민이 쫓겨난 땅에 골프장이 세워집니다 … 환경오염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환경적 인종차별이기도 합니다 … 관광객들도 와이키키가 자동차와 사람으로 만원이라고 투덜댑니다. 교통난이 끔찍합니다. 관광객들은 다른 섬으로도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다른 섬들까지 단기간에 황폐화시킵니다 …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우리 역사를 모릅니다. 우리가 미국의 일부가 되기를 기꺼이 원한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진 매우 낭만적 이야기를 알고 있을 뿐입니다 ..  (하우나니 카이 트라스크/173∼177쪽)


 나는 어버이로서 생각합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착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우리 집 아이가 학교를 다니건 안 다니건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가 일구는 착한 삶을 가까이에서 늘 지켜보면서 스스로 착한 길을 걸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착한 삶을 스스로 헤아리면서 아이한테 가장 걸맞으며 아름다울 착한 나날을 일구면 됩니다.

 굳이 초등학교이니 중학교이니 고등학교이니 대학교이니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학문은 제도권학교가 아닐 뿐더러, 배움은 대안학교 또한 아닙니다. 졸업장이 있대서 학문을 잘 갈고닦은 사람이 아닙니다. 대안학교를 다녔기에 열린 넋이나 얼로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제도권이라 하든 대안이라 하든, 정작 가야 할 길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배우는 곳이라 하는 학교는, 교과 과정이 아니라 삶을 가르치며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삶을 가르치며 배울 수 없다면 배움터가 아닙니다. 삶이 아닌 지식을 가르치거나 배운다면 입시학원입니다. 시험문제를 풀거나 교과서를 외우도록 이끈다면 입시학원입니다. 학교는 학원이 아닌 학교라는 이름을 쓴다지만, 껍데기가 학교라 하기에 학교이지 않습니다. 알맹이가 학교라야 학교이지, 학교 노릇은 안 하거나 못 하면서 이름만 학교라 일컫는대서 학교일 수 없습니다.

 학교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부터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착한 꿈과 착한 말로 착한 삶을 사랑하는 교사가 있어야 비로소 학교입니다.

 착한 교사가 착한 아이들을 맞아들여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착한 배움길을 걸어가려 할 때에 바야흐로 배움터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착하지 않고서야 무슨 가르침이고 어떤 배움이겠습니다.

 착함이란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이요, 착함이란 아름답고 해맑게 살아내는 나날이며, 착함이란 따스하며 넉넉하게 얼싸안는 사랑입니다.


.. 어머니는 여성만의 힘으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남자는 탐욕과 자아로 가득해서 긴장과 폭력을 낳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 어머니는 “나일론 옷을 사 주는 건 문제가 아니란다. 하지만 네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 생각해 보거라. 그럼 먹을 것이 직공의 손에 들어가는 게 낫겠니? 이익이 산업자본주의자의 손에 들어가는 게 낫겠니?”라고 말했습니다 … 내가 아직도 수공예품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수공예품을 단순히 제품으로만 보지 말고 인간의 창조력과 노동으로 빚어진 산물로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 미국 영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엘리트들에게 미국식의 에너지 소비자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간단히 정의한다면 ‘시장이 될 만한 곳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마시는 물에 돈을 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은행은 물이 공짜이기 때문에 남용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물이 남용되는 진짜 이유는 물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산업체가 물을 알뜰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물을 오염까지 시키고요 … 사회적 책임, 노동자의 권리, 자원의 이용이나 독극물의 방출에 대한 제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본과 무역만 자유화하는 세계 헌법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현재의 자유무역협정은 이 땅에서 생명을 고갈시키려는 협정입니다 … 대기업들과 싸우면서 그들이 겉으로는 막강한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한없이 공허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짜릿한 전율감마저 느낍니다 ..  (반다니 시바/340∼349쪽)


 이야기책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라는 사람이 만난 스무 사람은 한결같이 ‘착한 꿈’을 ‘착한 말’로 펼치며 ‘착한 삶’을 들려주려 합니다. 꿈과 말과 삶이 한동아리로 착하게 흐르도록 힘을 쏟습니다. 넋과 글과 일놀이가 착하게 뿌리내리도록 땀을 흘립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그저 착한 길입니다. 착한 마음일 때에 착한 얼굴이고, 착한 손길로 착한 글을 쓰거나 착한 그림을 그리거나 착한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바라기를 하면서 조그맣게 살림을 꾸립니다. 믿음바라기를 하면서 예쁘게 두레를 하거나 울력을 합니다.

 굳이 남 앞에서 멋들어져 보이는 옷을 차려입을 까닭이 없습니다. 내 고운 결을 아끼면서 내 고운 보금자리를 어여삐 돌보는 삶을 일구면서 내 숨결을 살찌우는 자연을 헤아리는 옷을 자연에서 얻어 자연스레 웃으면 됩니다. 치레하는 삶이 아닌 사랑하는 삶입니다. 내보이거나 뽐내는 삶이 아닌 보살피거나 어깨동무하는 삶입니다. (4344.5.15.해.ㅎㄲㅅㄱ)


―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데이비드 바사미언 엮음,강주헌 옮김,시대의창 펴냄,2006.9.18./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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