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 아득하고 신비한 원시림의 세계, 월드원더북스 5
호시노 미치오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어여쁜 자연과 살아가며 어여쁜 사진을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6 : 호시노 미치오, 《숲으로》(진선출판사,2005)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 만한 사진을 찍다가 곰한테 목숨을 앗긴 일본 사진쟁이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이야기 《숲으로》(진선출판사,2005)를 천천히 읽습니다. 먼저 혼자 읽고 나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읽습니다. 아이는 제 아버지처럼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답게 사진을 읽습니다. 아이 눈에 익숙한 모습이 나오면 금세 알아채고, 아이 눈에 낯선 모습이 나오면 “이게 뭐야?” 하고 묻습니다. 모르니까 묻고, 궁금하니까 묻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이 곰한테 목숨을 앗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호시노 미치오답게 숨을 거두었다’고들 말하곤 합니다. 글쎄, 어찌 보면 호시노 미치오 님답다 할 테지만, 곰곰이 살피면 호시노 미치오 님답지 않을 수 있어요. 어떻든, 호시노 미치오 님은 곰이 살아가는 터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며시 깊은 숲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어린이 사진책 《숲으로》는 “숲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30쪽).”를 담습니다. 사진으로 이야기를 담고, 글로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 지구별 거의 모든 사람은 밟을 수 없는 곳을 스스로 힘껏 밟으면서 사진을 찍은 호시노 미치오 님인 터라, 당신 아니면 찍을 수 없으며, 당신 아니면 보여주기 어려운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호시노 미치오 님 아니면 찍을 수 없다 싶은 모습이라서 사진책 《숲으로》가 빛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호시노 미치오 님처럼 곰과 곰 보금자리를 사랑하는 넋이 되어 숲으로 깊이 들어서면, 이 사진책처럼 아름다이 빛나는 사진을 얻어서 나눌 수 있어요. 다만, 호시노 미치오 님처럼 곰을 사랑하면서 숲으로 발을 한 발 두 발 살며시 디딘 사람이 몹시 드물 뿐입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이 깊은 숲이 아닌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사진을 찍었더라도 《숲으로》와 마찬가지로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일구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곳을 찍었기에 아름다운 사진’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눈길로 아름다이 바라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가슴이 한껏 벅차오를 때에 아름다운 마음결이 되어 찍은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한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네 살 아이한테 “나무와 이끼, 그리고 바위와 쓰러진 나무들이 서로 의지해서 살아가는 숲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 ‘만일 곰이 다가오면, 그땐 조용히 길을 비켜 주면 될 거야.’ 그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15쪽).” 같은 글을 읽힌대서 아이가 이 글을 잘 헤아려 주기란 어려울 수 있어요. 살짝 말을 바꾸어 읽습니다. ‘나무와 이끼와 바위와 쓰러진 나무가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숲은 커다란 목숨입니다. 곰이 나한테 다가오면 그때에는 조용히 길을 비켜 주면 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읽는 글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짝반짝 빛내는 눈망울로 사진을 말끄러미 바라봅니다. 아름다운 사진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아이 눈망울이 빛납니다.

 “쓰러진 나무 위에는 다람쥐가 먹다 버린 등자나무의 열매 껍질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동물들도 자연의 길로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숲 속의 다람쥐가 된 기분으로 쓰러진 나무 위를 걸었습니다(18쪽).” 같은 글을 읽히면서, 아이 아버지부터 마음이 좋습니다. 다람쥐도 곰도 사람도 똑같이 자연이라는 숲길을 걷습니다. 우리가 걸어갈 길은 바로 이곳, 숲길이에요. 찻길이 아닌 숲길을 걸어야 하고, 시멘트길이 아닌 흙길을 걸어야 해요.

 두 아이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나는 자가용을 몹시 싫어할 뿐 아니라, 자가용을 타고다니면 글을 쓸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며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느껴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지 않고 몰지 않으며 장만하지 않는다고 느껴요. 두 다리로 이 땅을 사랑하고, 두 손으로 동무를 사랑하며, 온몸과 온마음으로 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에 바야흐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다고 느껴요.

 이리하여, 아이한테 “일생을 마친 수많은 연어들이 강물에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연어가 숲을 만든다.’ 알래스카 숲에 사는 인디언들의 속담입니다. 알을 낳는 사명을 다하고 죽은 연어들이 떠내려오며 숲에 영양분을 준다는 뜻이지요. 나는 살며시 개울을 떠나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27쪽).” 같은 글을 읽고 사진 몇 장 더 넘긴 뒤 책을 덮으면서 따사로운 넋으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입니다.

 사진이란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글이란 이와 같이 아름다운 삶자국이에요. 덧바르거나 꾸민대서 아름다운 얼굴이 되지 않아요. 옷을 입히거나 이름을 붙인대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아요.

 착하게 살아가면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참다이 어깨동무하면 저마다 아름다운 삶이에요.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을 읽혀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을 읽히기 앞서 어른 스스로 좋은 그림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이야기책을 읽혀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이야기책을 읽히기 앞서 어른부터 기쁘게 좋은 이야기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사진책을 읽혀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사진책을 읽히겠다면 어른들이 꾸준히 좋은 사진책을 예쁘게 장만해서 예쁘게 건사해야 합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은 곰한테 목숨을 앗긴 사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숲에서 자연스레 숲사람으로 지내다가 자연스러이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4344.6.9.나무.ㅎㄲㅅㄱ)


― 숲으로 (호시노 미치오 사진·글,김창원 옮김,진선출판사 펴냄,2005.8.16./8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낌글이란


 느낌글이란 내 느낌을 적는 글입니다. 생각글이란 내 생각을 적는 글입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느낌글하고 생각글을 헷갈리거나 잘못 압니다. 내 느낌을 적지 않았으면서 느낌글인 줄 알고, 내 생각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생각글이라고 여기고 맙니다.

 글을 읽건 영화를 보건 일을 하건 사랑을 나누건, 어떠한 삶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왜 이러할까?’나 ‘이러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돌아보면서 느낌을 적을 때에 느낌글입니다. ‘이러하다면 나는 어찌저찌 해야겠다’ 하고 생각을 밝히면 생각글인데, 내가 스스로 받아들여 몸으로 움직이는 삶을 적을 때에 비로소 참다이 생각글을 적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내가 자가용을 타고 돌아다니는 일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는 일은 똑같다’ 하고 이야기했을 때에,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올바로 적는 느낌글이라 할 때에는, ‘내가 자가용을 타는 일이 어떻게 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는 일하고 똑같다고 이야기를 하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할까? 참말 이러할까? 참말 이러하다면, 나는 자가용을 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참으로 이러하다는데 나는 내 어버이나 동무나 둘레 사람들이 자가용을 탈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 자가용을 타는 일이 우리 삶터하고 어떻게 잇닿는지를 알아보아야겠다.’ 하고 곰곰이 돌아보면서 내 느낌을 적을 때에 느낌글이 됩니다. 생각글이라 할 때에는, ‘자가용이 우리 삶터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를 꼼꼼히 살피고 따진 다음,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해 한국 자동차 보유대수와 공해비율과 석유재벌 얼거리를 모두 돌아보고 나서, 이 모두를 한 자리에 얽으며 펼치는 내 생각’이 담긴 글입니다. ‘나라에서 밀어붙이는 커다란 잘잘못뿐 아니라 나 스스로 제대로 못 느끼거나 못 깨우치거나 못 알아채면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잘잘못으로 또 무엇이 있는가를 더 알아보면서 펼치는 내 생각’이 담겨야 비로소 생각글입니다.

 느낌글을 쓸 줄 모르면 책을 읽어도 내 느낌을 붙잡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어떠한 책을 읽어도 좋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생각글을 쓰지 못하면 나한테 빛과 소금이 되는 책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이런 생각으로는 학교를 제아무리 오래 다니거나 훌륭한 스승을 만났더라도 참생각을 스스로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4344.6.9.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참 바쁜 사람은 자동차를 안 몬다


 너무 마땅하지만, 너무 마땅한 이야기를 헤아리지 않거나 살피지 못하는 사람이 몹시 많기 때문에 머리말을 붙인다. 자동차를 몰면서 일하는 사람은 이 이야기에 들지 않는다. 짐을 짐차에 실어 나른다든지, 버스나 택시를 모는 사람은 이 이야기하고는 다른 자리에서 살아간다.

 그러니까, 참 바쁜 사람은 자동차를 안 몬다. 참 안 바쁜 사람이 자동차를 몬다. 참 바쁜 사람은 자동차를 몰 겨를이 없다. 참 바쁜 사람은 저마다 맡은 일을 치르거나 살림을 돌보거나 삶을 일구느라 하루 스물네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몰지 않는다. 바쁜 척하는 사람하고 무엇이 바쁜지를 모르는 채 휩쓸리는 사람하고 안 바쁜 사람이 자동차를 몬다.

 참 바쁜 사람은 자동차를 몰면서 저마다 꾸리는 삶을 길바닥에 버리지 않는다. 참 바쁜 사람은 자동차가 아니라 두 다리와 온몸으로 이 땅을 밟으면서 제 보금자리를 보살핀다. 참 바쁜 사람은 참으로 바쁘기 때문에 가장 눈여겨보면서 사랑해야 할 일을 한다. 사랑해야 할 일은 자동차 몰기가 아니다. 가장 눈여겨볼 일은 자동차 몰기가 될 수 없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하고 보내는 나날을 사랑해야 한다. 내 삶자락을 아름답게 어루만지는 일을 가장 눈여겨보아야 한다.

 책 하나를 읽는다 할 때에는 내가 가장 사랑할 책을 골라서 읽어야 한다. 책 하나를 읽는 동안 내 가슴으로 깊이 아로새길 이야기를 느껴야 한다. 책 하나를 덮고 나서 이 책이 내 삶으로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4344.6.9.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으로 보는 눈 162 : 알고 싶어 읽는 책


 내가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책으로 읽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가 다 아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책으로 읽을 수 있고, 다 알면서 재미가 있다고 느껴 책으로 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 아는데 애써 책으로까지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영화로 본다든지, 학교에서 강의나 수업을 들을 까닭이란 없어요. 내가 모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힘껏 책으로 읽습니다. 내가 배워야 할 이야기라서 학교를 찾아가 강의나 수업을 듣습니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고개숙여 차근차근 새겨듣습니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고맙게 받아먹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과 글로 조그맣게 이루어진 《숲으로》(진선출판사,2005)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이 밟은 숲을 밟아 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은 여느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깊디깊다 할 만한 숲속을 헤맸고 들판을 누볐습니다. “나는 흙 위에 남겨진 커다란 발자국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숲 속으로 이어진 희미한 길은 곰이 다니는 길이었습니다(13쪽).”는 말처럼, 사람길이 아닌 곰길을 걷거나 다람쥐길을 걷습니다. 연어길에 함께 서거나 사슴길에서 다리를 쉬며 하룻밤을 묵습니다. 사진책 《숲으로》는 여느 사람들 여느 눈썰미와 여느 삶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그러나, 《숲으로》는 아주 남다르거나 아주 새로운 이야기이지는 않습니다. 이제 사람 발길이 안 닿는 곳이 되었을 뿐,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터에서 다 다른 사랑을 나누면서 다 다른 삶을 일구던 곳 이야기를 밝힙니다. 더 좋은 삶이나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흐르는 땅과 사랑과 삶을 바라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니다. 더 큰 도시로 찾아듭니다. 도시로 몰려들어 물질문명을 마음껏 누립니다. 작은 도시에서 살거나 시골에서 지내더라도 물질문명을 똑같이 즐깁니다. 입으로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뿐 아니라 한국땅 원자력발전소를 근심하지만, 막상 몸으로는 전기를 안 쓰거나 덜 쓸 뿐 아니라, 전기를 써서 만드는 수많은 물질문명을 안 쓰거나 덜 쓰는 길을 살피지 않아요.

 숲이 숲다웁도록 하는 이야기를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답도록 하는 슬기를 깨닫지 않습니다. 삶이 삶답도록 하는 깜냥을 빛내지 않습니다. 사랑이 사랑답도록 하는 땀방울을 흘리지 않습니다.

 이즈막에 새로 나온 《원전을 멈춰라》(이음,2011)는 벌써 스물한 해 앞서 《위험한 이야기》(푸른산,1990)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스물한 해 앞서 이 나라 사람은 “위험한 이야기”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이라서 더 잘 느끼지 않습니다. 지난날보다 책으로 조금 더 읽을 뿐입니다. 위험한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고 싶어 읽는다기보다 원자력발전소가 뻥 하고 터지니까 읽습니다.

 무언가를 알려고 한다면 무언가를 머리에 앎조각으로 담겠다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알아차리면서 내 삶을 새롭게 일구겠다는 뜻이어야 비로소 알려고 애쓴 일이요, 배움이며 가르침입니다. 이 나라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알도록(살도록)’ 할 이야기를 먼저 스스로 ‘알려고(살려고)’ 애쓰는 교사가 몹시 드뭅니다. (4344.6.9.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를 키우는 어른


 어른은 아이를 키웁니다. 아이가 어른을 키울 수 없습니다. 때때로 아이가 어른을 깨우치곤 하지만, 아이는 어른을 키우지 못합니다. 오직 어른이 아이를 키울 뿐입니다.

 아이는 이것을 먹고 싶거나 저것을 갖고 싶다 말할는지 모릅니다. 아니, 늘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아이한테 아이가 먹고 싶다 해서 다 먹이지 않고, 아이가 갖고 싶다 하기에 다 장만하지 않습니다. 오직 아이가 먹어야 할 밥을 장만해서 먹이고, 오로지 아이가 갖추며 즐겨야 할 것을 장만해서 건넵니다.

 아이가 어떤 책을 읽으려 할 때에는 어른이 먼저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어른이 먼저 읽지 않은 책을 아이한테 섣불리 쥐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어느 책을 읽기 앞서 다른 어른이 ‘아이가 읽을 책’을 만듭니다. 곧, 내가 되든 남이 되든 ‘어느 어른이든 먼저 책을 알아보고 읽어서 책 하나로 태어나도록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 책을 써서 읽고 만들어야 비로소 아이가 책 하나 손에 쥡니다.

 아이는 자가용이든 자전거이든 스스로 타지 못합니다. 어른이 장만한 자가용에 타는 아이요, 어른이 태우는 자전거에 타거나 어른이 마련한 자전거에 혼자서 타는 아이입니다. 어른이 자가용을 타면 아이도 자가용을 탑니다. 길들거나 익숙해집니다. 어른이 자전거를 타면 아이도 자전거를 타요. 어른이 두 다리로 걷기를 좋아하면 아이도 두 다리로 걷기를 좋아합니다. 어른이 숲을 좋아해서 시골에서 살아가면 아이도 숲을 좋아하면서 시골 아이로 자랍니다. 어른이 물질문명을 좋아해서 도시에서 살아가면 아이도 물질문명에 젖어들면서 도시 아이로 큽니다.

 교사는 어른이 맡습니다. 교사를 어린이가 맡을 수 없습니다. 배우는 쪽은 어린이요, 가르치는 쪽은 어른입니다. 어른은 아이가 배워야 할 여러 가지를 스스로 먼저 헤아릴 뿐 아니라 몸소 살아내고 나서야 아이한테 가르칠 수 있습니다. 머리에 든 지식으로 아이를 가르치지 못합니다. 아이는 지식이 아닌 삶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살아내는 모습에 따라 교사가 가르치려는 이야기를 배웁니다. 교사가 살아내지 못하면서 지식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이가 하나도 배우지 못할 뿐 아니라, 잘못 받아들이고야 맙니다.

 어른이 논밭을 일굴 때에 아이도 논밭을 일굽니다. 어른이 평화를 사랑할 때에 아이도 평화를 사랑합니다. 어른이 사랑을 나누려 할 때에 아이도 사랑을 나누려 합니다. 어른이 보리밥을 먹으면 아이도 보리밥을 먹습니다. 어른이 생활협동조합 회원이 되어 삶과 사람과 자연을 아끼려 할 때에 아이도 삶과 사람과 자연을 아끼는 길을 걷습니다.

 야구나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경기를 즐기는 어른하고 살아가는 아이는 야구나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경기를 시나브로 즐기기 마련입니다. 땀흘려 일하기를 즐기는 어른하고 살아가는 아이는 땀흘려 일하는 보람을 몸으로 깨우치며 받아들입니다. 돈으로 일을 하고 돈벌이에 더 매달리는 어른하고 살아가는 아이는 돈을 더 살피거나 섬기며 돈으로 무엇이든 하려고 나서기 마련입니다.

 어른은 아이를 키웁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살아가면서 배웁니다. 어른은 교과서를 가르치지 못합니다. 아이는 교과서를 배우지 않습니다. 어른은 어른 삶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아이는 어른 삶을 바라보면서 저희 삶을 키웁니다. 어른은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책 지식이 많으냐가 아니라, 얼마나 손재주가 뛰어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따사롭거나 넉넉하거나 아름다이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을 참답거나 착하거나 슬기로이 가르칠 수 있습니다. (4344.6.8.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