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두 아이 기저귀를 갈다 보면, 큰 아이가 되든 작은 아이가 되든, 참 작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기저귀를 대는 아이는 모두 작다. 기저귀를 떼는 아이도 아직 작다. 요 작은 몸뚱이로 함께 살아가고, 고 작은 손발로 이 땅에 서며, 이 작은 가슴으로 사랑과 믿음을 물려받는다. 밤새 옆지기랑 갈마들면서 둘째 갓난쟁이 똥오줌기저귀를 열 장쯤 갈았나 싶다.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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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 지는 빛


 새벽 네 시 반, 달 지는 빛을 본다. 밭 가장자리에 오줌을 누면서 달 지는 빛만 마냥 바라본다. 고개를 돌려 맞은편 해 뜨는 빛을 함께 바라본다. 해가 뜨는 빛살이랑 달이 지는 빛살이랑 똑같다. 지는 달과 뜨는 해는 같은 빛무늬이다.

 어릴 적에도 달 지는 빛을 본 적 있었을까. 자주는 아니지만 드물게 보았다고 떠오른다. 아주 드물게, 몹시 드물게, 한 해에 한 번쯤, 두어 해에 한 번쯤 보았다고 떠오른다.

 달 지는 빛을 이야기한 어른이나 동무는 없었다. 달 지는 빛을 보여준 어른이나 동무도 없었다. 나 또한 동무한테 달 지는 빛을 보여줄 수 없었다. 돌이켜보니, 이제껏 살아오며 내 둘레 살붙이라든지 이웃한테 달 지는 빛을 이야기한 적조차 없었다고 느낀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이웃마을을 천천히 돌던 요 며칠 헉헉거리면서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 혼자 헉헉거리는 자전거마실이 아이한테 뜻이 있을까. 아이 또한 헉헉거리며 길을 달려야 보람이 있을까. 아이랑 어버이가 즐기는 자전거마실이란 무엇일까. 아주 머나먼 길을 달릴 때에 자전거마실이라 할 만할까. 아이를 수레에 태우는 일하고 자가용에 태우는 일은 얼마나 다를까. 나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무슨 삶을 보여주고 어떤 길을 지나며 이렇게 함께 오가는가.

 자전거는 어느새 논둑길을 달리고, 아이는 내려 달라며 아버지를 부른다. 아이는 수레에서 내려 논둑길을 작은 발 콩콩거리면서 내닫는다. 벼포기를 바라보고 논물을 바라보며 먼 멧등성이를 바라본다. 아이가 바라보는 곳을 아버지가 바라보고, 아버지가 바라보는 데를 아이가 바라본다.

 밤오줌을 스스로 가릴 줄 아는 나이가 된다면, 우리 집 첫째도 머잖아 아버지하고 달 지는 빛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겠지.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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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이름과 책읽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쓴 책을 펼쳐 읽다가 문득 책날개에 적힌 해적이를 들여다본다. “1952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고, 목포교육대학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라는 대목이 첫 줄에 나온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이야기야 으레 적을 만하지만, 어느 대학교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꼭 적어야 했을까 궁금하다.

 생각해 보면, 어느 해에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이야기도 굳이 안 적을 만하다만, 사랑을 어떻게 받고 꿈을 어떻게 키우며 삶을 어떻게 일구었는가 하는 이야기와 함께 곁들인다면, 나란히 적어도 괜찮을 나이요 고향이라고 본다. 그런데 대학교 이름은 왜 밝혀야 할까. 대학교 이름을 밝힌다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 이름은 안 밝혀도 될까.

 발자국을 찬찬히 밝히려 한다면 학교이름 적는 일이야 대수롭지 않다. 그렇지만, 몇 줄 안 되는 책날개에 학교이름을 적느라 한두 줄이나 두어 줄을 흘린다면, 정작 책쓴이 삶을 더 깊이 돌아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셈이 아닐까.

 학교가 사람을 얼마나 가르칠까. 학교는 사람을 어떻게 가르칠까. 학교를 다닌 사람은 무엇을 배울까. 학교에서 사람은 어떤 사랑과 꿈과 삶을 배울까. 학교는 사람한테 무슨 책을 읽힐까.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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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0] 가위

 네 살 아이는 둘레 사람들 말투를 쏙쏙 빨아들입니다. 둘레 사람들이 예쁘게 말하든 밉게 말하든 아이 귀가 쫑긋할 만한 말을 하면, 이 말이 입에 찰싹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바이바이’라 하면 아이도 ‘바이바이’라 하고, 어른들이 ‘안녕’이라 하면 아이도 ‘안녕’이라 하며, 어른들이 ‘잘 가’라 하면 아이도 ‘잘 가’라 합니다. 아이가 두 살이 될 무렵부터 〈감자에 싹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손놀이를 보여줍니다. 아이는 이내 이 노래와 손놀이를 좋아해 주었고, 툭하면 “감자에.” 하면서 함께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자고 불렀습니다. 이제 네 살이 되면서 “감자에.” 하고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자고 부르지는 않는데, 이 노래와 손놀이를 즐길 무렵, 둘레 언니나 오빠가 사진에 찍힐 때, 또 어른들이 사진을 찍으며 ‘브이’를 만드는 모습을 익히 보았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는 아버지가 사진을 찍을 때에 저도 ‘브이’를 따라한다고 시늉을 해서 되게 싫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손가락으로 ‘브이’ 모양을 하면서 입으로는 ‘가위’라 말합니다. 두 살부터 세 살을 거쳐 네 살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가아위!” 하면서 손가락 둘을 쪽 펼쳐서 얼굴에 댑니다. 그래 그래 가위야, 그렇지만 가위 좀 치워 주겠니?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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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흘리는 자전거


 한창 뛰고도 남을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온다. 수박 큰 통이랑 토마토 한 상자랑 온갖 먹을거리를 수레와 가방에 잔뜩 짊어진다. 오르막을 달리는 아버지는 온몸이 땀범벅. 드디어 숯고개를 다 오르고 내리막만 남는다. 살짝 숨을 돌리며 발을 내려다본다. 이마에서 뚝뚝 떨어진 땀방울 가운데 하나가 내 고무신에 살짝 떨어졌다.

 아이는 그저 생글생글 웃는다. 아버지는 아이가 생글생글 웃는 삶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어버이도 나를 키우며 함께 살아가던 지난날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 어버이도 나도 내 아이도 모두 착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온 만큼 시원하게 내리막을 씽하고 달린다. (4344.6.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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