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아이와 책읽기


 아이는 바깥으로 나오면 제 어버이 말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다른 사람과 말을 섞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말을 섞으면, 다른 사람이 살아오며 쓰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좋은 말이건, 궂은 말이건.

 아이는 글을 깨쳐 스스로 책을 읽을 때가 되면, 어버이가 쥐어 주지 않던 책을 하나하나 찾아 읽습니다. 어버이는 이것저것 가리거나 추려서 건넸고, 책에 적힌 말도 걸러서 들려주지만, 글을 깨친 아이는 저 스스로 하나하나 읽습니다. 올바르며 살가운 말로 이루어진 책이건, 뒤틀리며 메마른 말이 가득한 책이건. (4344.8.2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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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 옮기던 날의 기록 그리고 그 역사, 개정증보판
리영희·나영순 글, 김동현·민경원 사진 / 열화당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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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사진을 ‘까망하양’사진으로 바꾸다
 [찾아 읽는 사진책 29] 김동현·민경원, 《서대문 형무소》(열화당,1988/2008)


 어느 한 사람을 사진으로 담든, 어느 집 하나를 사진으로 찍든, 어느 한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사진을 내놓습니다. 어느 집 하나를 마주하는 사람마다 다 다른 느낌을 사진에 싣습니다.

 다만, 기계를 바꾼대서 사진 느낌이 확 바뀌지는 않습니다. 쓰는 기계가 달라지면 아주 조그마한 대목에서 느낌이 얼핏 바뀌기는 하지만, 같은 사람이 같은 사람을 바라보거나 같은 사람이 같은 집을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는 느낌은 거의 똑같습니다.

 기계는 그대로이고 사람이 다르다면, 이때에는 언제나 다른 사진이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마다 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태어나 다 다른 삶을 꾸렸거든요.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사랑을 받으며 다 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린 사람이기 때문에, 이 다 다른 사람들이 일굴 사진에는 다 다른 사진말이 깃듭니다.

 기계가 그대로요 바라보는 사람 또한 그대로라 할 때에는, 쓰는 필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무지개필름을 쓸 때랑 까망하양필름을 쓸 때랑 사진이 달라집니다. 아니, 사진기를 쥔 사람이 사진기에 눈을 박아 들여다볼 때에는 똑같아요. 다만, 필름에 앉히는 모습이 달라지고, 나중에 종이에 사진을 얹을 때에 새삼스럽게 달라진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한 가지 더. 기계가 같고 바라보는 사람 또한 같으며 필름 또한 같다 할 때에는, 날씨와 날과 철에 따라 달라집니다. 봄철 찍는 사진하고 겨울철 찍는 사진이 같을 수 없습니다. 궂은 날과 갠 날 사진이 같을 수 없습니다. 아침과 새벽과 낮과 밤 사진이 같을 수 없어요.

 사진은 늘 사진이지만, 사진에 이야기를 싣는 사람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으로 이루면서, 사진에 삶을 담는 사람입니다.

 사진찍기를 할 때에 어떠한 기계를 썼느냐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읽기를 할 때에 사진쟁이가 어떠한 기계를 썼느냐를 하나도 몰라도 됩니다. 사진찍기를 할 때에 사진쟁이가 누구한테서 사진을 배웠느냐를 살필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쟁이는 이제껏 살아낸 내 나날을 돌이키면서 내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사진읽기를 할 때에 사진쟁이가 무슨무슨 대학교를 나오거나 어디어디 배움길을 다녀왔다 하는 가방끈을 알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읽기를 할 사람들은 사진 한 장에 깃든 이야기가 내 마음밭에 어느 만큼 아로새겨지는가를 느낄 뿐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기계를 따질 일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내 사진에 담기는 사람이나 집이 어떠한가를 돌아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무지개필름을 쓰겠느냐 까망하양필름을 쓰겠느냐를 가눕니다. 요사이는 디지털파일로도 무지개파일을 쓰겠느냐 까망하양파일을 쓰겠느냐를 가눕니다.

 내 사진으로 담으려는 사람이나 집을 ‘아침에 만나’려는지 ‘낮에 만나’려는지 ‘새벽에 만나’려는지 ‘한낮에 만나’려는지 ‘저녁에 만나’려는지 ‘밤에 만나’려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내 사진으로 옮기려는 사람이나 집을 ‘맑은 날에 사귀’려는지 ‘궂은 날에 사귀’려는지 ‘비오는 날에 사귀’는지 ‘눈오는 날에 사귀’려는지 ‘구름 낀 날에 사귀’려는지 ‘안개 낀 날에 사귀’려는지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 사귀’려는지 살펴야 합니다.

 내 사진으로 빚으려는 사람이나 집을 ‘따순 봄날에 어우러’지려는지 ‘꽃샘추위 닥친 봄철에 어우러’지려는지 ‘갓 접어든 여름날에 어우러’지려는지 ‘한창 무더운 여름날에 어우러’지려는지 ‘벼락과 우레가 떨어지는 여름날에 어우러’지려는지 ‘산들바람 가을철에 어우러’지려는지 ‘열매가 무르익는 가을날에 어우러’지려는지 ‘겨울비 내리는 겨울날에 어우러’지려는지 ‘큰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철에 어우러’지려는지 ‘꽁꽁 얼어붙은 겨울철에 어우러’지려는지 ‘따스한 바람이 부는 겨울날에 어우러’지려는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사진책 《서대문 형무소》(열화당,1988/2008)를 읽습니다. 스무 해를 사이에 두고 첫판과 고침판으로 나누어진 두 가지 사진책을 읽습니다.

 사진책 《서대문 형무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988년 사진책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 사진책입니다. 두 사진책은 서로 다른 책입니다.

 왜냐하면, 판짜임과 엮음새가 다를 뿐 아니라, ‘사진마저 다릅’니다.

 처음에는 “한정된 시간 내에 굴절 많은 우리 역사의 현장을 제대로 기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라도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우리의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1988/사진 찍은 이).”고 밝혔습니다. 그러면, 스무 해 뒤에는 ‘한정된 시간’이 아니었겠지요. 스무 해에 걸쳐 꾸준히 더 찍고 더 만나며 더 어우러졌으면, 2008년에 새로 내는 1988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못 다 이룬 숱한 이야기를 알알이 아로새길 아름다운 사진책이 될 수 있겠지요.

 나중에는 “판형을 확대하고 기록적 가치가 뛰어난 사진과 도면 자료 등을 추가했으며, 독립지사 세 분의 글을 덧붙여 서대문형무소에 관해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2008/편집자).”고 하지만, 2008년 사진책은 그리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2008년 사진책은 판이 조금 커지고 사진 짜임이 조금 달라지며 쪽수가 조금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1988년 사진책하고 무엇이 다른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이럴 바라면 1988년 사진책을 똑같이 다시 낼 때하고 무엇이 나아질까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1988년 사진책과 2008년 사진책은 큰 대목에서 서로 엇갈립니다. 1988년 사진책에는 ‘무지개사진’이 제법 실립니다. 2008년 사진책에는 오직 ‘까망하양사진’이 실립니다. 1988년 사진책에는 ‘무지개사진’이었는데 2008년 사진책에서는 몽땅 ‘까망하양사진’으로 바뀝니다.

 나는 묻고 싶습니다. 온누리 사진쟁이 가운데 ‘무지개사진’으로 찍는 이야기하고 ‘까망하양사진’으로 찍는 이야기가 똑같다고 느낄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까망하양사진이 나쁘고 무지개사진이 좋을 수 없습니다. 까망하양사진이 ‘기록 값어치가 빼어나며 다큐멘터리 빝깔이 더 짙을’ 수 없습니다. 두 갈래 사진은 두 갈래대로 이야기가 다르고 삶이 다르며 생각이 다릅니다. 그저 빛느낌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1988년 사진책부터 ‘사진쟁이는 무지개사진으로 담았’으나 ‘출판사 편집자가 까망하양사진으로 바꾸’었는지 모릅니다. 1988년 사진책과 2008년 사진책에서는 이 대목을 한 마디로도 다루거나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은 반드시 밝혀야 하고 꼭 다루어야 해요.

 앙리까르띠에 브레송 님이 당신 사진을 ‘까망하양사진’이 아닌 ‘무지개사진’으로 찍었다고 할 때에, 이이 사진을 똑같이 바라볼 수 있을까요. 김기찬 님이 담은 《골목 안 풍경》은 까망하양사진일 때하고 무지개사진일 때에 아주 크게 달라집니다. 사진으로 담긴 모습뿐 아니라 사진으로 찍는 느낌까지 아주 크게 달라집니다.

 무지개사진과 까망하양사진이 어떻게 다른 줄 모른다면, 새벽에 안개가 드리울 때에 소나무를 찍는 사진하고 한낮에 안개가 모두 걷혀 파란 빛깔 하늘이 눈부실 때에 소나무를 찍는 사진이 어떻게 다른 줄 모르는 삶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사진책 《서대문 형무소》는 이 나라 사진밭이 어떠한 깊이요 너비인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4344.8.22.달.ㅎㄲㅅㄱ)

 

― 서대문 형무소 (김동현·민경원 사진,리영희·나명순 글,열화당 펴냄,1988.1.15·2008.1.1./160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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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밀이 아버지


 곧 백날째 맞이하는 둘째를 씻긴다. 둘째는 저를 씻기려 하면 금세 알아챈다. 아주 좋다며 입을 쩍 벌린다. 까르르 웃는다. 씻길 때에도 웃으면서 좋아한다. 첫째는 요즈음 “싫어.”와 “안 해.”를 입에 달며 산다. 참말로 싫거나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투정이면서 놀이라 할까. “그래, 싫으면 씻지 마.”라 말하거나 “그래, 안 씻으려면 혼자 씻지 마.”라 말하면, 어느새 “씻어, 씻는다구.”나 “씻을래.”라 말한다. 자꾸자꾸 뒷북놀이를 한다.

 둘째를 씻길 때에는 젖을 물릴 때 쓰던 손닦개로 온몸을 구석구석 닦으며 씻긴다. 첫째를 씻길 때에는 내 손으로 닦으며 씻긴다. 네 살 첫째는 때를 밀면 제법 나온다. 손등과 팔뚝과 어깨를 거쳐 목덜미와 등판과 허리와 배와 허벅지와 종아리와 뒷꿈치까지, 골고루 때를 민다. 조그마한 몸뚱이에서 조그마한 때가 슬슬 벗겨진다.

 아버지가 때를 밀면 아이는 저도 때를 밀겠다며 슥슥 문지른다. 아이 힘으로 아직 제 때를 밀지 못한다. 아이는 시늉만 할 뿐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는, 스스로 시늉을 하면서 조금씩 살이 붙고 힘살이 붙는다. 시나브로 기운이 붙고 아주 천천히 슬기를 얻는다.

 아이가 제 낯을 옳게 씻을 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는 제 목덜미를 스스로 씻는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아직 물만 조금 묻힐 뿐이다. 그래도 말끄러미 지켜본다. 아이가 하는 양을 말없이 지켜본다. 아이가 한참 혼자 깨작거리도록 둔 다음, 천천히 손을 들어 아이가 못한 일을 거든다.

 사람들은 아이가 참 귀여운 짓을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내가 볼 때에, 아이는 그닥 귀여운 짓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살아낸다. 아이는 온힘을 기울여 살아간다. 아이로서는 모든 기운을 쏟아 살아숨쉬려 하는데, 이러한 몸짓이 무척 어설프거나 서툴기에 어른 눈썰미로는 ‘귀여운 짓’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아이한테는 살림이 아니라 소꿉놀이일 테니까, 아이가 노는 양은 귀엽게 느낄는지 모른다.

 때밀이 아버지로 지내면서 생각한다. 아이가 때밀이 시늉만 한대서 때를 밀 수 없다. 아이는 행주로 밥상을 닦고 걸레로 방바닥을 훔쳐야 한다. 아이는 어머니를 도와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아버지를 거들어 둘째 기저귀를 함께 갈면서 팔힘을 길러야 한다. 아이 책을 아이가 스스로 갈무리하거나 치우고, 밥상을 차릴 때에 수저와 그릇과 반찬통을 조금씩 같이 나르면서 어깨힘을 길러야 한다. 어머니랑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다리힘을 기르고, 빨래하는 어버이 곁에서 빨래놀이를 하며 손아귀 힘을 길러야 한다. 때가 되면 아이는 저 혼자서 때밀이를 하며 씻기놀이에 푹 빠지겠지. (4344.8.2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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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과 돈과 책읽기


 사람들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돈을 벌 뿐이에요. 일을 한다 할 때에는 이 일을 내 아이가 배우면서 함께 웃고 울어야 해요.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고 여기지만, 막상 돈을 생각하거나 꿈꿀 뿐이에요. 책을 읽는다 할 때에는 이 책을 내 삶으로 삭이면서 아이하고 따사로이 어깨동무해야 해요. (4344.8.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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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또 만나자 과학은 내친구 13
히로노 다카코 그림, 사토우치 아이 글, 고광미 옮김 / 한림출판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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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로 배울 때에는 알 수 없어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9] 히로노 다카코·사토우치 아이, 《비 오는 날 또 만나자》(한림출판사,2001)


 아이가 달립니다. 네 살 아이가 언덕길을 달립니다. 두 살일 적에는 언덕길을 걸어 오르지 못해 안아 달라 하거나 업어 달라 했고, 세 살적에는 힘겨이 걸어서 오르던 언덕길입니다. 네 살 아이로 살아가며 언덕길을 기운차게 달음바질로 올라갑니다. 아이는 언덕길 하나쯤 달음박질로 올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거꾸로 달음박질을 하며 내려가더니 또 달음박질로 올라옵니다. 신나게 달리고 신나게 노래하며 신나게 발을 구릅니다.

 아이라면 달리기를 좋아한달 수 있습니다. 아이라면 누구나 마음껏 달리려 한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웬만해서는 신나게 마음껏 달리기를 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나는 어릴 적에 으레 달렸습니다. 심부름을 받아도 손에 종이돈과 쇠돈을 꼭 쥐고 달리기를 했습니다. 나도 달리고 내 동무들도 달립니다. 사내도 달리고 가시내도 달립니다. 바지를 입어도 달리고 치마를 입어도 달립니다. 혼자서도 달리고 함께여도 달립니다. 둘이서 나란히 달리고 셋이서 활짝 웃으며 달립니다.

 1등이 되려고 달리지 않습니다. 그저 달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합니다. 달려야 성이 풀립니다. 달릴 때에 마음이 부풀고, 달리면서 가슴이 뻥 뚫립니다.

 어린 날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었습니다. 어린 날 내 동무 가운데 자가용 있는 집은 거의 없었습니다. 누구나 걷습니다. 누구나 버스를 얻어 탑니다.

 오늘날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집에는 자가용을 모시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딱히 좋아하지 않고, 자가용이 굳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으며, 자가용을 굴릴 돈이 없습니다.

 짐이 아주 많아도 어깨에 짊어지고 손가방으로 듭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아이를 가슴에 안고 다닙니다. 정 힘들면 택시를 부릅니다. 첫째 아이하고 읍내에 장마당 마실을 다닐 적에는 자전거를 몹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집에 자가용을 굴리는 아이들은 달음박질을 잘 안 합니다. 애써 달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달리기는 두 다리를 튼튼하게 다스리는 집안 아이들이 좋아하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 나무와 풀잎 그리고 땅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는 아주 조용합니다. 땅은 빗물을 한껏 들이마시고 있습니다. 나뭇잎도 풀도 비를 흠뻑 받아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  (4쪽)


 숲속 나무를 바라봅니다. 한여름 푸른 잎사귀를 마음껏 뽐내는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칠월에 이어 팔월에도 햇볕 구경을 거의 할 수 없는 이 끔찍한 나라에서 햇살을 포근히 담으며 푸른 기운을 나누어야 할 나무들이 햇님 얼굴을 구경조차 못하는 슬픈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며 바라봅니다.

 해는 어디에 숨었을까요. 해는 왜 이렇게 두 달째 숨어야 할까요.

 모든 일에는 뜻이 있습니다. 뜻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비가 올 만하니까 비가 옵니다. 둑이 무너질 만하니까 둑이 무너집니다. 가물 만하니까 가물고, 장마가 올 만하니까 장마가 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이제 이 나라는 빗줄기가 마구 퍼부을 만큼 되지 않고서는 사람들이 숨쉴 바람이 깨끗해지지 않기 때문에 비가 날마다 끝없이 퍼붓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몇 차례씩 비가 퍼부어야 그나마 숨쉴 만한 바람이 흐르니까 비가 퍼부어야 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터진 만큼, 이 방사능까지 하루 빨리 씻어 주려고 이토록 비가 모질게 퍼붓는지 모릅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더라도 한국사람 누구나 자가용을 한두 대쯤 장만해서 날마다 아주 오래오래 모니까, 이 자가용마다 내뿜는 배기가스를 씻으려고 비가 끔찍하달 만큼 퍼붓는지 모릅니다. 햇살을 머금는 숲속 푸르디푸른 나무들만으로는 이제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지저분해지고 만 바람은 풀잎과 나뭇잎으로는 되살릴 수 없기 때문에, 지구별을 움직이는 자연힘은 모질디모진 막비를 베풀지 않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 또 다른 연못 속을 들여다보니 이곳은 온통 올챙이 세상이랍니다. 부레옥잠이라는 수초가 꼭 배같이 불럭 떠 있는데, 그 잎에 개구리가 ‘폴짝폴짝’ 올라 앉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조그만할까? “어머머, 이것 좀 봐. 꼬리가 나 있네.” ..  (12쪽)


 비가 들이붓고 난 다음에는 그럭저럭 맑디맑은 파란 빛깔 하늘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아무리 비가 들이붓고 난 다음이더라도 이듬날 맑디맑은 파란 빛깔 하늘을 좀처럼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터지지 않았더라도 한국땅 자가용이 너무나 많을 뿐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멧줄기를 허물고 물줄기를 메우는 못난 막개발을 수없이 벌입니다. 여느 사람들은 그저 돈을 버는 일터에 목을 매답니다. 돈을 벌어야 살림을 꾸린다지만, 벌어들인 돈을 다 쓰지도 못하면서 돈을 더 벌고 부동산을 더 늘리는 사람이 몹시 많습니다. 다달이 버는 돈으로는 살림 꾸리기 벅찬 사람도 많습니다만, 하루에 버는 돈만으로도 어찌 다 쓸 길이 없는 사람 또한 참 많습니다. 축구선수 박지성 님이 하루에 버는 돈을 한 해에 걸쳐 다 쓰기는 쓸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살아가든 아이 없이 살아가든 홀로 살림을 일구며 살아가든, 사람들이 저마다 할 일은 돈벌이가 아닙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이럭저럭 먹고살자면 오늘날에는 돈푼을 어느 만큼 벌기는 벌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돈푼 벌기에만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내 삶을 사랑할 만한 일을 해야 합니다. 내 삶을 돌볼 만한 일거리를 느껴야 합니다. 내 마음을 가꾸면서 내 이웃을 괴롭히지 않을 일자리를 헤아려야 합니다.

 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삶이 보람찰 수 없습니다. 자가용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꾼이 되는 삶이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아이패드이든 무어이든, 이런 새로운 전자제품을 만드는 공장 노동자 삶이 얼마나 즐거울까요. 이런 전자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아이들한테 대단히 나쁘기에 아이들이 이런 전자제품을 아예 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신문글이 대문짝만하게 실리기까지 합니다만, 아이들한테 전자파가 나쁘면 어른한테도 전자파가 나쁠 텐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이 나라 어른들은 무엇이 참이고 거짓이며 삶이고 죽음인가를 깨달으려 하지 않습니다.


..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기다렸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꽥꽥 꽥꽥’ 다시 소리를 내며 개구리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고 ‘꽤꽤 꽥 꽤꽤 꽥’ 또 다른 개구리가 울더니 차례로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마침내 대합창이 되었습니다 ..  (23쪽)


 히로노 다카코 님이 그림을 그리고, 사토우치 아이 님이 글을 쓴 그림책 《비 오는 날 또 만나자》(한림출판사,2001)를 읽습니다. 비가 오는 날 어린 가시내 하나가 빨간 빛깔 비옷을 입고 바알간 긴신을 신으며 집안 마당부터 집 둘레 논밭까지 마실을 나와 조그마한 이웃 목숨들하고 인사하는 이야기를 담은 어여쁜 그림책을 읽습니다.

 아이는 개구리를 보고 두꺼비를 보며 올챙이를 봅니다. 미꾸라지를 보고 작은 새를 보며 나비를 봅니다. 애벌레하고 만나며 빗방울 내려앉은 수국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는 머리로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 곁에서 아이한테 머리에 외우라며 가르치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는 마냥 즐거이 동무들을 만납니다. 아이는 하냥 기쁘게 이웃들을 사귑니다. 아이한테 잠자리가 동무입니다. 아이한테 풀벌레가 이웃입니다. 아이한테 작은 꽃망울이 동무이고, 아이한테 우람한 푸른나무가 이웃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니 비가 오는 날에 살가이 사귀며 함께 노는 동무를 만납니다. 비가 오는 냘인 만큼 함께 비를 맞으며 이 비를 기쁘게 누릴 이웃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비 오는 날 또 만나요》를 읽을 아이들은 이 그림책에 나오는 목숨붙이 이름을 잘 몰라도 됩니다. 그예 모두 곱고 고마우며 고즈넉한 삶인 줄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4344.8.21.해.ㅎㄲㅅㄱ)


― 비 오는 날 또 만나자 (히로노 다카코 그림,사토우치 아이 글,고광미 옮김,한림출판사 펴냄,2001.8.30./80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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