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돼지꿈
다시마 세이조 그림, 기무라 유이치 글, 박이엽 옮김 / 현암사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늑대는 늑대답게 꿈을 꿉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0] 다시마 세이조·기무라 유이치, 《늑대의 돼지 꿈》(현암사,2002)



 아버지는 새벽 두 시나 세 시 무렵이면 잠에서 깹니다. 이때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하루 내내 글쓰기를 조금도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면서 틈틈이 첫째 아이가 뻥뻥 걷어차는 이불을 다시 덮어 줍니다. 이리 돌아눕고 저리 구르며 이불이 이리저리 벗겨집니다. 살며시 덮었어도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불을 걷어차기 일쑤입니다. 어쩜 이럴 수 있나 싶지만, 자다 보면 이럴 수 있겠지요.

 새근새근 자던 아이는 갑작스레 잠꼬대를 합니다. 꿈결에 터져나오는 말입니다. 예쁜 말로 잠꼬대를 하면 지난 하루 예쁘고 즐겁게 놀았다는 뜻이고, 미운 말로 잠꼬대를 하면 지난 하루 아버지와 어머니가 즐거이 놀아 주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새벽녘, 두어 시간 글쓰기를 하며 뻣뻣해지는 몸을 아이 옆에 살짝 눕힙니다. 드러누운 채 손을 뻗어 작은 공책을 집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말 몇 마디를 작은 공책에 적바림합니다. ‘사진은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할 수 있는 일만 끝없이 많습니다.’

 우리 식구한테 돈이 넉넉하다면, 이 돈으로 꽤 많은 일을 즐기거나 누리거나 할 수 있겠지요. 우리 식구한테 돈이 얼마 없으니,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합니다. 우리 식구한테 돈이 얼마 없으나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우리 네 사람은 못할 일은 한 가지 없이 온통 즐거이 누리거나 나눌 일이 가득하리라 느낍니다.

 집이 없거나 옷이 없다면 꽤나 고달프겠지요. 그렇지만, 집은 있되 사랑이 없다면, 옷은 많되 사랑이 없다면, 이러한 삶은 얼마나 삶답다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름은 드높으나 사랑이 없으면, 힘은 세다지만 사랑이 없으면, 책을 많이 읽었되 사랑이 없으면, 이러한 사람들 삶은 얼마나 즐겁거나 기쁘거나 보람찰는지 궁금합니다.


.. 늑대는 놓쳐 버린 새끼 돼지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어요. “아, 맛있는 새끼 돼지. 그놈을 꼭 먹어야 해.” 늑대의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어요 ..  (6쪽)


 새벽에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며 생각합니다. 지난 2008년부터 네 해째 기저귀 갈이와 기저귀 빨래로 하루를 보냅니다. 참말 어느 하루라도 손빨래를 쉰 날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내 큼지막한 가방에 아이 기저귀가 잔뜩 담기는데, 이 잔뜩 담긴 천기저귀는 더 줄지 않고 더 늘지 않는다고. 네, 늘 그대로입니다. 이 가방에 천기저귀 아닌 종이기저귀가 담겼다면, 가방은 차츰 가벼워질 수 있겠지요. 가벼워지다가 다시 무거워지겠지요. 그리고, 이 가방 둘레에는 비닐봉지에 담긴 쓰레기덩이가 차츰 늘 테고요.

 종이기저귀를 쓰는 집에서는 기저귀 값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기저귀는 따로 다른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하니, 버릴 때에도 돈이나 품이 꽤 듭니다. 종이기저귀를 쓸 때에는 물휴지도 함께 써야 합니다. 물휴지 값 또한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이기저귀를 쓰며 드는 돈이나 품이라든지, 종이기저귀 못지않게 써야 할 물휴지 때문에 들어야 할 돈이나 품을 넘어 생각할 노릇입니다. 종이기저귀나 물휴지는 갓난쟁이 몸에 얼마나 좋을까요. 자연에서 얻어 만든 종이기저귀나 물휴지인가요. 화학약품이나 화학소재로 만든 종이기저귀나 물휴지가 아닌가요.

 화학제품인 종이기저귀와 물휴지가 버려질 때에는 또 얼마나 끔찍한 쓰레기가 새로 생기는 셈인지요. 이 끔찍한 쓰레기는 어디에 버리고 이 땅은 얼마나 더러워질는지요. 서울 옆에 있는 광역시 인천은 서울사람이 쓸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가 있고, 서울사람이 버리는 쓰레기를 쌓는 쓰레기터(매립장)가 있습니다. 서울사람이 쓸 웬만한 공산품을 만드는 공장은 인천에 있습니다. 서울사람이 쓸 웬만한 수입품을 들여올 항구 또한 인천에 있습니다. 서울사람이 버리는 똥물은 온통 인천으로 흘러들어 인천에서 거르든 어찌하든 하고 나서 인천 앞바다로 빠져나가게끔 합니다. 서울사람은 서울사람이 싼값으로 물건을 손쉽게 사들여 쓰고 버리도록 이루어진 얼거리가 무엇인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그저, 많이 벌고 많이 쓰며 많이 누릴 뿐입니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 누구나 걱정스럽지만, 누구보다 서울사람이 걱정스럽습니다. 서울사람 다음으로는 부산사람이 걱정스럽고, 다음으로는 대구사람과 광주사람과 대전사람이 걱정스럽습니다. 무엇이든 돈만 벌어 돈만 써야 하는 톱니바퀴에 얽매여 살아가느라, 사랑도 사람도 삶도 옳게 들여다보거나 느끼기 어려운 이 사람들이 걱정스럽습니다. 돈벌이와 돈쓰기에 바쁜데 무슨 꿈을 꿀 수 있으려나요.


.. “흥, 그 새끼 돼지에 비하면 네 놈들은…….” 늑대는 토끼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씩씩하게 언덕 위로 올라갔어요 ..  (10쪽)


 그림책 《늑대의 돼지 꿈》을 읽습니다. 꿈에서 새끼 돼지 한 마리 맛나게 먹을 뻔하던 늑대는 잠에서 깬 뒤에 입맛을 다십니다. 꿈에서 새끼 돼지를 잡아먹었다 하더라도 배부를 일이 없건만, 괜히 입맛을 다십니다. 잠에서 깼으니 배가 고픈 늑대는 먹이를 찾아나섭니다. 늑대한테 먹이가 될 여린 짐승들은 멧자락에 널렸습니다. 토끼이든 사슴이든 팔만 뻗으면 닿을 곳에 널렸습니다.

 늑대는 토끼이든 사슴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멀리 날지 못하는 닭이든 병아리이든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저 꿈에서 본 새끼 돼지 오동통한 엉덩이를 떠올리고, 살진 허벅지를 되새깁니다.


.. 그때 문득 늑대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어요. “가만 있자. 아까 본 그 새끼 돼지가 이렇게 작았나?” 늑대는 고개를 갸웃했어요 ..  (29쪽)


 꿈을 꾸는 늑대는 아름답습니다. 배는 곯고 뱃가죽은 등짝에 들러붙지만, 꿈을 꾸는 늑대는 예쁩니다. ‘귀엽고 작은’ 짐승을 잡아먹으려는 늑대가 뭐 아름답고 어디가 예쁘냐 묻겠지요. 그렇지만, 늑대는 꿈을 꾸기에 아름다우며 예쁩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꿈꾸지 않으니 아름답습니다. 이를테면, 범이 되겠다느니 곰이 되겠다느니 사람이 되겠다느니 하는 어리석은 꿈을 꾸지 않으니 아름답습니다. 전투기를 만들겠다느니 탱크를 만들겠다느니 기관총을 만들겠다느니 하며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지 않으니 예쁩니다.

 늑대는 그예 저 고픈 배를 채울 맛난 먹이만 헤아립니다. 저 고픈 배를 채울 맛난 먹이로 흐뭇하고, 다른 어느 것도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늑대한테 이제 이슬만 먹고 살라 바랄 수 없습니다. 늑대한테 닭을 함부로 잡아먹지 말고 다리 한 짝만 뜯어 먹으라 할 수 없습니다. 늑대는 늑대로 태어난 삶을 알맞게 꾸려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 삶을 아름다이 돌보아야 합니다. 오이는 오이로 태어난 삶을 사랑스레 가꾸겠지요. 뽕나무는 뽕나무답게 살면서 뽕잎을 누에한테 기꺼이 내주겠지요.

 꿈을 꾸면서 아름답고, 꿈을 돌보면서 예쁘며, 꿈을 이루면서 즐겁습니다. (4344.8.26.쇠.ㅎㄲㅅㄱ)


― 늑대의 돼지 꿈 (다시마 세이조 그림,기무라 유이치 글,박이엽 옮김,현암사 펴냄,2002.4.10./120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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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27 00:00   좋아요 0 | URL
아유, 된장님은 어쩜 이렇게 우리 글을 이쁘게 쓰시지요?
사실 저번에 된장님의 책을 받은 이후, 페이퍼를 쓰다가 잠시 멈칫거려요.
그러다 결국 포기했지만요... ^^

아까 달아주신 댓글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중독자는 '사로잡힌 이'로 하면 되는구나 하구요. 그렇구나 하고 다시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그런데 고치기가 쉽진 않아요. 한발씩 천천히 연습하려구요.

그런데 제가 얼마나 무식한지, 어느게 한자어고 아느게 한글인지조차 헛갈리니... 에공.

파란놀 2011-08-27 06:10   좋아요 0 | URL
말을 고치는 일은 아니에요.
삶을 바꾸는 일이에요.

한자말이고 아니고는
그닥 대수롭지 않아요.

다만, 흔하게 쓴다는 한자말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 낱말이 무얼 뜻하는지를 거의 느끼거나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쉽게 그 자리에서 곧바로' 생각하거나 느낄
우리 말을 알맞게 쓰자는 이야기입니다.

'중독'이라는 한자말을 뜻과 느낌을 옳게 가누며
쓰는 한국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다른 낱말도 거의 이와 마찬가지라고 여기면 돼요.

우리 말과 글을 예쁘게 쓰는 일은 나중 일이고,
먼저, 알맞고 바르게 쓰는 데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으면 돼요.

마녀고양이 2011-08-27 09:40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네요....
마음을 기울이다, 참 이쁜 말이예요.

파란놀 2011-08-27 21:00   좋아요 0 | URL
아무쪼록
마녀고양이 님다운
이쁜 말을
날마다 즐겁게 찾아서
집안 식구들하고부터
널리 나누어 보셔요~ ^^
 

 

[누리말(인터넷말) 84] THIS IS PORTFOLIO

 ‘LECTURE PROGRAM’이라는 ‘THIS IS PORTFOLIO’는 ‘Self Creative Artwork’라고 합니다. 누리편지를 열며 처음에는 외국사람한테 보낼 편지를 나한테 잘못 보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래쪽에 조그맣게 적은 한글을 보고서야 비로소 한국사람인 나한테 보낸 누리편지가 맞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참말 모르겠습니다. ‘THIS IS PORTFOLIO’도 ‘LECTURE PROGRAM’도 ‘Self Creative Artwork’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을 좋아합니다. 사진이 얼마나 예술인가 모르겠고, 사진이 굳이 예술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4344.8.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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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7 : 책을 읽는 마음


 나라 안팎으로 이름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영혼의 시선》(열화당,2006)을 읽었습니다. 브레송 님은 “사진기는 환경을 존중해야 하고, 사회적 배경을 묘사하는 삶의 환경을 포함시켜야 한다(29쪽).”고 이야기합니다. 참 옳고 무척 맞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삶과 삶터를 바라볼 줄 아는 눈길이기에 사진 하나 어여삐 빚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야기는 브레송 님만 꺼내지 않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이름나지 않은 수많은 여느 사람들도 한결같이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삶터를 알아야 합니’다.

 내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무상급식’이 어떠한 일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정치꾼들이 시끄러이 떠들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깨달아야 할 ‘무상급식’입니다. 경제꾼들이 어수선하게 외치지 않더라도 내 머리와 마음으로 알아채야 할 ‘4대강사업’입니다. 경찰과 판검사가 읊어야 할 만한 ‘국가보안법’일 수 없습니다. 신문기자가 쓰는 글을 읽고서야 ‘진보와 보수’를 판가름한다면 벌써 늦습니다.

 조 신타 님이 그리고 데라무라 데루오 님이 글을 쓴 그림책 《임금님과 수다쟁이 달걀 부침》(돌베개어린이,2003)을 읽습니다. 그림책 임금님은 높직하게 올려세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안쪽에서 살아갑니다. 임금님이 성벽 밖으로 나갈 일이란 아주 드물 뿐 아니라 거의 없습니다. 성벽 안쪽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임금님이 성벽 바깥 터전이나 사람이나 자연을 알 길이란 없습니다. 성벽 안쪽에는 냇물도 바람도 멧자락도 푸나무라든지 숲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들이 만든 돌길에 돌집에 돌방이 있습니다. 창과 방패를 든 무시무시한 군인들이 가득 있습니다. 임금님이 이곳 성벽 안쪽에서 닭장 문을 함부로 열어 모든 닭이 빠져나오는데, 임금님은 당신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앗, 큰일났다.’ 임금님은 깜짝 놀라 도망쳤습니다(8쪽).”라는 말마따나 그냥 냅다 내빼면서 당신 잘못을 숨깁니다.

 어리숙한 임금님을 섣불리 탓할 수 없습니다. 임금님은 자연을 모르고 자연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자연하고 벗삼으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볼 줄 모르고 느낄 줄 모르며 알 줄 모르는데, 임금님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길은 하나입니다. 임금님이 무거운 금관을 벗고 무거운 비단옷을 벗으며 맨몸 맨발로 성벽 밖으로 뛰쳐나가 냇물로 뛰어들어 멱을 감거나 풀숲에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꽁초니 쓰레기니 아무 데나 버릴 뿐 아니라, 발을 밟거나 어깨를 툭 치고도 ‘잘못했습니다’ 하고 고개숙일 줄 모르는 모습을 어찌 꾸짖을 수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삶을 모르고 사람을 모르며 사랑을 모르는데, 어떻게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참이며 무엇이 빛인’ 줄 알아차릴까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은 책을 읽을 틈이 없습니다. 시골에는 책방이 없습니다. 시골은 인터넷도 느리고, 아예 안 들어오기까지 합니다.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거나 가게를 꾸리는 사람은 돈벌이에 바빠 책을 들출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책방이 많고 인터넷도 빠릅니다. 책을 손에 쥐고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사랑하려는 몸짓일까요. (4344.8.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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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뚜라미 소리와 책읽기


 하루 내내 귀뚜라미 소리를 듣습니다. 아니, 귀뚜라미 소리만 듣지 않습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풀벌레가 많지 않아 제대로 모른다뿐, 하루 내내 수많은 풀벌레가 자아내는 수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풀벌레는 사람 들으라고 노래를 할 수 있겠지만, 굳이 사람 들으라며 노래를 하지 않는달 수 있습니다. 듣기 나름일 테지요.

 잠자리에 든 뒤에도 풀벌레 소리는 내 온몸을 감쌉니다. 쌀을 씻어 불릴 때이든, 국을 끓일 때이든, 걸레를 들어 방바닥을 훔칠 때이든, 빗자루를 들어 방바닥을 쓸 때이든, 언제나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풀벌레 소리보다 멧새 지저귀는 소리를 훨씬 자주 더 길게 들었습니다. 아직 늦여름이라 할는지 모르나 살갗으로는 이른가을이라 느낍니다. 아무튼, 봄과 여름 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과 밤에도, 노상 멧새 소리가 내 온몸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골목동네 한복판에 깃들던 인천땅 보금자리에서는 깊은 새벽에도 째지는 듯한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설핏 잠을 깨야 했습니다. 깊은 골목동네 한복판에서도 깊은 밤 고요함을 깨뜨리는 술 얹힌 사람들 흐느끼거나 지껄이는 목소리에 자꾸 잠을 깨야 했습니다. 멧새이든 풀벌레이든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습니다. 개구리이든 매미이든 신나게 울어댑니다. 그런데, 멧새와 풀벌레와 개구리와 매미가 이루는 소리마디는 내 잠을 깨우지 않습니다. 잠이 깊이 들도록 이끕니다. 잠이 달콤하도록 돕습니다.

 시골 하늘을 흐르는 바람은 내 숨결을 보살핍니다. 시골 흙바닥을 흐르는 물은 내 뼈마디를 돌봅니다. 시골 터전을 채우는 소리는 내 넋과 얼을 어루만집니다.

 첫째 아이가 고단한데다 졸린 몸으로 끝없이 놀고 뛰며 노래하다가는 이내 두툼한 책 하나를 배에 깔고 스르르 잠들었습니다. 아이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풀벌레 소리 고즈넉히 스며듭니다. 좋은 한낮입니다. (4344.8.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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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생태마을을 읽는다 갓골문고 4
조나단 도슨 지음, 이소영 옮김 / 그물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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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게 살아갈 길이란
 [책읽기 삶읽기 72] 조나단 도슨, 《지금 다시 생태마을을 읽는다》(그물코,2011)



 ‘생태마을’이나 ‘자연마을’이나 ‘환경마을’ 같은 이름이 붙어야 살 만한 터전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런 이름이 붙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살 만한 터전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그린(green)’이니 ‘초록(草綠)’이니 하는 말도 곧잘 씁니다. 그러나, 이런 낱말이든 저런 낱말이든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더욱이, 어떤 낱말을 쓰든 이 낱말들이 무엇을 뜻하거나 가리키는가를 옳게 깨우쳐야 합니다.

 먼저, ‘생태(生態)’란 “살아가는 모습”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자연(自然)’이란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진 목숨과 터전”을 일컫는 한자말입니다. ‘환경(環境)’이란 “살아가는 곳 둘레 모습”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이러한 낱말을 쓴대서 딱히 남다르다 싶은 이야기가 샘솟지 않습니다. 아니, 이러한 낱말을 쓰면서 더 살 만하거나 더 깨끗하거나 더 아름답거나 더 슬기롭거나 더 사랑스러운 터전을 나타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영어 ‘그린’이든 한자말 ‘초록’ 또는 ‘녹색’이든 뜻은 하나입니다. 우리 말로 이야기하자면 ‘푸름’이나 ‘풀빛’입니다.

 곰곰이 따지면, 어느 쪽이라 하든 “푸르게 살자”는 소리요, “풀과 나무를 아끼면서 살자”는 움직임입니다. 자연을 보살피든, 자연스럽게 살아가든, 삶터를 일구든, 사랑스러운 모둠마을을 돌보든, 풀과 나무를 아끼면서 살아가는 매무새가 밑바탕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푸른마을’을 가꾸려 한달 수 있습니다.


.. 인류가 지구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좀더 깊이 있고 넓은 범위에서 생활양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  (16쪽)


 오늘날 한국땅 곳곳에 서는 아파트를 살피면, ‘푸른마을’ 같은 이름을 붙이는 데가 꽤 많습니다. 아파트를 잔뜩 세우고는 ‘무슨무슨 마을’이라 이름을 붙입니다.

 사람들이 퍽 많이 모여 살아가니 ‘마을’이라 이를 만합니다. 그러나, 참말 아파트덩어리를 놓고 ‘마을’이라 해도 좋은지 알쏭달쏭합니다. 아파트가 많이 모인 곳을 두고 ‘아파트숲’이라고도 합니다만, ‘숲’이라는 낱말하고 ‘아파트’라는 곳이 어울릴 수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잘 살아도 마을이요 못 살아도 마을이겠지요. 돈에 굶주려도 마을일 테고 사랑을 나누어도 마을일 테지요. 이웃하고 따사로이 어깨동무를 해도 마을이며 이웃하고 등지며 나 몰라라 할 때에도 마을입니다.

 그렇지만, 마을이라는 이름을, 숲이라는 이름을, 자연이라는 이름을, 푸름이라는 이름을 아무 데에나 쓰는 일이란, 내 삶과 네 삶과 우리 삶을 얼마나 보듬거나 보살피려는 몸짓이 될까요. 좋은 뜻을 드러낸다는 이름만 쓰면 되는 삶인가요. 멋있거나 훌륭하다는 이름을 붙이면 끝인 삶인지요.


.. 모든 생태마을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자신들의 운명이 달린 그들의 자원을 스스로 관리하기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남반구의 여러 나라들은 자원 관리와 관련하여 마을공동체와 기업들 사이에 뚜렷한 선을 두고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에 북반구의 많은 나라에서도 똑같은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도시 바깥은 대형마트 때문에 지역경제가 무너지고, 소비자들은 노동자를 업신여기고, 생태계를 파괴시킨 생산품을 사는 일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마을공동체는 노동과 환경 관련 규제를 없애려는 원거리 대기업들이 제공하는 일자리에 점차 기대게 된다. 문화는 점점 획일화·표준화되며 최소 공통분모의 하나로 지나치게 단순화된다 ..  (60∼61쪽)


 조나단 도슨 님이 빚은 《지금 다시 생태마을을 읽는다》(그물코,2011)라는 환경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지구별 곳곳에 자리한 돋보이는 생태마을을 살핀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곱씹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구별 곳곳에서 저마다 애쓰고 힘쓰며 땀흘립니다. 나라와 겨레를 넘어 사랑과 믿음이 어우러질 좋은 삶자락을 길어올리고 싶어서 꿈꾸고 노래하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생태마을이라 하는 곳은 어디에서나 시골마을입니다. 도시마을이면서 생태마을인 곳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생태마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생태마을이 태어날 수 없는 도시이지만, 생태마을 비슷하게 나아갈 수는 있습니다. 길을 더는 내지 않고, 집을 더는 짓지 않으면서, 텃밭을 차츰 늘릴 때에는 생태마을 비슷하게 나아갑니다. 텃밭을 차츰 늘리다가는 조그맣게라도 논을 보듬는다면, 텃밭 가장자리에 나무를 한 그루씩 심으면서 조그마한 수풀을 이룬다면, 숲까지 이르지는 못하나 우람한 나무가 줄지어 자라도록 마음을 기울이고 빈터를 돌볼 수 있다면, 이때에는 생태마을 비슷하게 나아갑니다.

 환경이나 생태나 자연을 다룬 책을 읽는대서 생태마을이 되지 않습니다. 환경책 몇 권 읽는대서 환경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생태마을을 꿈꾸거나 환경사랑을 이루고 싶으면, 맨 먼저 자가용을 버려야지요. 조그마한 마을에서 ‘함께 쓰는 자동차’ 한 대나 두 대만 남겨야지요. 써야 할 때에만 알맞게 쓰되, 여느 때에는 쓰지 않는 자동차가 되도록 해야지요.

 사람들 맨손으로도 얼마든지 벼포기를 뜯을 수 있습니다. 다만, 품과 땀이 많이 듭니다. 낫을 쓰면 벼포기는 더 수월히 거둘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한나절 벼베기를 하는 만큼,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살붙이들 함께 먹을 나락이 나옵니다. 벼를 베는 기계를 기름을 넣어 움직이면 한 시간 만에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이 한 해 동안 먹을 나락을 거둡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시간 만에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이 한 해 동안 먹을 나락을 거두는 만큼, 기름을 써서 공해덩이 먼지를 빚는 한편, 이렇게 커다란 기계를 만드느라 물과 바람과 흙을 더럽힙니다.


.. 생태마을이 작을수록 모든 구성원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명료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러나 생태마을이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이러한 의사결정은 점차 어렵게 되어 소수가 여전히 이의를 제기하는데도 결정을 내어 버리는 간접민주주의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 위원회나 소규모 전문 집단이 의사결정 과정을 대신하는 추세가 점차 늘어가고 ..  (97쪽)


 자동차를 알맞게 써야 하듯, 기계를 쓸 때에도 알맞게 써야 합니다. 기계에 기대는 삶이 되어서는 내 삶도 네 삶도 우리 삶도 알뜰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맨 나중에는 아무런 기계조차 안 쓰는 내 삶과 네 삶과 우리 삶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풀과 나무를 아끼는 삶이란, 돈을 더 벌어들일 삶이 아니라, 나와 이웃과 살붙이와 동무 모두 조용하면서 조촐히 어우러질 웃음과 눈물을 아끼는 삶일 테니까요. 흙을 밟고 흙을 만지면서 내 몸이 태어나서 돌아갈 흙을 껴안는 삶일 때에 비로소 생태이니 자연이니 환경이니 하는 이름하고 걸맞을 테니까요.

 자가용을 탄 사람들은 자가용 바퀴가 사마귀를 밟아서 죽여도 느끼지 못합니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싱싱 내달리면 메뚜기를 밟아서 죽여도 깨닫지 못합니다. 너무 바삐 살아가는 사람은 구두나 운동신을 신은 발로 나비를 밟아서 죽여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생태마을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늘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찬찬히 되짚어야 합니다. (4344.8.26.쇠.ㅎㄲㅅㄱ)


― 지금 다시 생태마을을 읽는다 (조나단 도슨 글,이소영 옮김,그물코 펴냄,2011.5.30./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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