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7.30.
 : 자전거쪽지 2011.7.30.


- 내 자전거는 아이를 태우고 수박을 싣고는 멧부리를 넘는다. 아이는 수레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는 오르막에서 땀을 비처럼 쏟으면서 멧길을 달린다.

- 아이야, 즐겁지? 그래, 네가 즐거웁도록 이렇게 자전거를 몰아야지. 아버지는 너랑 길을 나서기 앞서 둘째 기저귀 빨래를 남김없이 해 놓는다. 너와 읍내를 다녀온 다음에는 너를 씻기거나 너를 재운 다음 네 옷가지하고 아버지 옷가지에다가 이동안 쌓인 동생 기저귀를 함께 빨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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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과 수다쟁이 달걀 부침
조 신타 그림, 데라무라 데루오 글, 유문조 옮김 / 길벗어린이(천둥거인)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넓은 성에 갇힌’ 임금님과 병사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1] 조 신타·데라무라 데루오, 《임금님과 수다쟁이 달걀 부침》(돌베개어린이,2003)


 늦여름에 흐드러지게 노란 꽃봉우리를 올리는 두릅나무를 바라본 지 보름이 지났는데, 막상 두릅꽃을 사진으로 담지는 않으며 지냈습니다. 날마다 창밖으로 바라보고 또 쳐다보느라 그저 눈길을 거쳐 내 마음으로 담았습니다.

 두릅꽃을 사진으로 찍어 간수하면 두릅꽃 모양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에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가만히 떠올릴 수 있습니다. 둘레 많은 사람들한테 두릅꽃 이야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헤아리면, 두릅꽃을 꼭 사진으로 담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저희 눈으로 바라보고 저희 손으로 쓰다듬으면 돼요. 따로 꽃도감이나 풀도감이나 나무도감을 옆구리에 끼면서 ‘도감과 나무를 맞춘다’거나 ‘도감과 꽃을 견준다’거나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코앞에서 마주하는 결대로 두릅나무와 두릅싹과 두릅잎을 맞아들이면 돼요.

 처음 시골자락에 움을 트는 사람들은 이 풀도 모르고 저 꽃도 모르며 그 나무도 모릅니다. 알 턱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좋습니다. 모르니까 여쭙니다. 모르니까 모르는 대로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사귑니다. 잘 빚은 도감을 펼쳐 능금꽃을 즐기거나 배꽃을 누려도 나쁘지 않습니다. 훌륭하게 빚은 그림이나 멋들어지게 찍은 사진은 인터넷을 누비면 아주 손쉽게 찾을 수 있어요.

 꽃은 꽃이기 앞서 어느 한 자리에 뿌리를 내려 흙한테서 먹이를 얻으며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 꽃이고, 이름을 한 번 더 붙여 무슨무슨 꽃입니다. 이 고을 사람들은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저 고을 사람들은 저렇게 이름을 달아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터전에 조용히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니, 나는 나대로 내 고을에 걸맞게 내 느낌을 담아 내 삶으로 어깨동무하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내가 내 아이한테 이름을 하나 알뜰히 지어서 부르듯, 내 보금자리 깃든 시골자락에서 마주하는 풀과 꽃과 나무마다 내 사랑을 실어 이름 하나 나눕니다.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에서 보듯, 빨간머리 앤만 새삼스레 붙일 이름이 아닙니다. 누구나 내 사랑을 곱게 나누면서 함께할 이름입니다.


.. 임금님은 “아흠” 하고 하품을 크게 한 번 하고는 뜰로 나갔습니다. “노는 것이 제일 즐거워. 어디, 성을 한 바퀴 돌아 볼까.” 임금님은 타닥타닥 뛰기 시작했습니다. 임금님의 방에서 대신의 방으로 갔다가 성문을 거쳐 병사들의 방을 지나고 맛있는 냄새가 나는 부엌까지. 그리고 부엌 뒤를 돌아서 쭉 갔습니다. 타다다다 타다다다 ..  (4쪽)


 풀벌레 울음소리는 풀벌레 울음소리이기에 즐겁습니다. 하루 내내 풀벌레 울음소리에 휩싸이며 살아가다 보면, 이 울음소리는 노랫소리이기도 하고, 풀벌레 아닌 하늘이 베푸는 노랫소리이기도 합니다. 나로서는 풀벌레 소리가 아니라 하느님 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흙님 노랫소리라든지 바람님 노랫소리로 여겨도 즐겁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올려다보는 파란 빛깔 하늘은 달에서 바라볼 때에는 어떠한 빛깔이 될까요. 바닷속에서 올려다볼 때에는 또 어떠한 빛깔이 되나요. 깊은 숲이나 나무 몇 그루조차 아닌, 그저 자동차로 거센 물결을 이루며 높다란 건물이 가득한 커다란 도시에서는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이 얼마나 될는지요. 커다란 도시에서도 하늘빛을 가늠하거나 헤아릴 말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커다란 도시에서도 무언가 하늘빛을 그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손수 차려서 손수 먹는 밥그릇을 받아쥐면서 생각합니다. 하얀 밥이건 누런 밥이건 까무잡잡한 밥이건 노르스름한 밥이건 모두 고맙습니다. 밥 빛깔이 내 몸으로 스미면서 내 몸을 이루는 빛깔이 되리라 느낍니다. 내가 먹는 모든 밥거리가 내 몸과 마음을 이루는 빛깔이 된다고 느낍니다.

 빨간 빛깔 반찬을 먹을 때에는 내 몸과 마음에 빨간 물이 듭니다. 푸른 빛깔 반찬을 먹을 때면 내 몸과 마음에 푸른 물이 듭니다. 온갖 화학첨가물이 든 소시지나 햄이나 과자를 먹는다면 내 몸과 마음에는 온갖 화학첨가물 빛깔이 물들겠지요.


.. 임금님은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아, 놀랐다. 이렇게 큰 소동이 벌어질 줄은 몰랐는걸.” 한숨 돌리고 보니, 손에 열쇠를 쥐고 있었습니다. “이건 어쩌지? 열쇠를 들고 있으면 닭장 문을 연 걸 들켜 버리잖아. 에잇, 이깟 열쇠 버리면 되지 뭐.” 임금님은 창 밖으로 열쇠를 던졌습니다 ..  (10쪽)


 살아가는 터전에서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터전에서 생각하면서 이웃과 동무를 사귑니다.

 그림책 《임금님과 수다쟁이 달걀 부침》(돌베개어린이,2003)을 읽는 내내, 아이가 이 그림책을 혼자 펼치는 내내, 때때로 아이한테 이 그림책을 읽어 주는 내내, 좁다란 성이 커다란 나라라도 되듯 여기는 ‘우물에 갇힌 임금님과 신하와 병사’가 더없이 외로우면서 딱해 보입니다. 임금님은 왜 성에 갇힌 임금님으로 살아가나요. 신하는 왜 성에 갇힌 임금님을 모시며 스스로 갇힌 사람으로 살아가나요. 병사들은 스스로 좋아서 성에 갇힌 임금님을 모시는 바보스러운 군인으로 살아가는지요, 어쩔 수 없이 끌려온 슬픈 군인으로 지내는지요, 식구들 먹여살리자니 하는 수 없이 칼과 창과 방패를 든 무시무시한 군인이 되어 제 삶을 갉아먹어야 하는지요.

 임금님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 닭장 문을 함부로 열어 자그맣게 법석을 피우고는 발뺌하는 짓입니다. 병사들이 하는 일이란 고작 닭을 잡아 닭장에 우겨넣고는 ‘거짓말을 하며 발뺌하는 임금님한테 속아 도무지 찾을 길 없는 나쁜 녀석을 찾느라 애먼 나날을 보내는’ 짓입니다. 요리사가 하는 일이란 그저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는 짓입니다.

 하나같이 바보스럽습니다. 하나같이 우스꽝스럽습니다. 하나같이 엉터리입니다.

 그러고 보면, 정치이든 경제이든 문화이든 예술이든 모두 바보스럽습니다. 우스꽝스럽지 않은 경제란 없습니다. 엉터리 아닌 예술이란 없습니다. 모두들 대단한 이름이나 힘이나 돈을 이루었다며 우쭐거리지만, 대단하다는 이름이나 힘이나 돈이란 당신들 삶을 얼마나 살찌우는가요.

 달걀 한 알에도 참이 깃드는걸요. 달걀 한 알을 숨기느라 남우세스러운 짓을 하는걸요. 아니, 달걀 한 알을 꿀꺽 먹으면 참이 언제까지고 감추어지리라 생각하는걸요.


.. “마마, 더 죄송한 일이 있습니다. 닭들이 조금 전에 총소리를 듣고 놀라서 알을 못 낳게 되었습니다. 마마, 그래서 부엌에는 달걀이 한 알도 없습니다. 저……, 마마, 요리사에게 오늘 저녁에 달걀부침을 하라고 하셨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요리사는 자기 잘못이라면서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뭐, 감옥에?” 임금님은 책상 서랍 안에 있는 달걀이 생각났습니다. “달걀이 있으면 요리사가 감옥에서 나올 수 있나?” “예, 예.” 임금님은 책상 서랍에서 달걀을 꺼내어 멍청히 서 있는 대신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자, 달걀이다. 요리사를 감옥에서 꺼내 줘. 나는 닭장을 연 범인을 감옥에 넣으라고 명령했어. 요리사는 범인이 아니잖아.” ..  (20쪽)


 달걀부침은 수다쟁이가 아닙니다. 임금님이야말로 수다쟁이입니다. 겉치레를 하고 거짓말을 하며 껍데기를 뒤집어쓰는 임금님이야말로 부질없는 말을 쏟아내는 수다쟁이입니다.

 달걀부침은 오직 한 마디만 합니다. 오직 참다운 말 한 마디만 합니다.

 참말을 하는 이는 수다쟁이가 아닙니다. 거짓말을 하는 이가 수다쟁이입니다.

 참삶을 일구는 이는 임금 자리를 노리거나 꿈꾸거나 꾀하지 않습니다. 거짓삶에 얽매인 이가 임금님 자리를 노리거나 꿈꾸거나 꾀합니다.

 스스로 달걀부침 하나 할 줄 모르고, 스스로 삶을 배울 줄 모르고, 스스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흙을 어루만질 줄 모르고, 스스로 옷을 기울 줄 모르고, 스스로 이부자리를 갈무리할 줄 모르고, 스스로 사랑할 줄 모르기에 ,임금님 자리에 앉아 나라를 다스린다며 콧대를 높일밖에 없다 할 만하겠지요.

 닭들은 닭장에 갇혀 임금님 밥이 되기를 기다립니다. 임금님은 스스로 성에 갇히면서 스스로 무엇이 되기를 기다릴까요. (4344.8.31.물.ㅎㄲㅅㄱ)


― 임금님과 수다쟁이 달걀 부침 (조 신타 그림,데라무라 데루오 글,유문조 옮김,돌베개어린이 펴냄,2003.6.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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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1] 봉숭아물

 몹시 힘든 몸으로 옆지기가 첫째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입니다. 봉숭아 잎과 꽃은 이달 첫머리부터 꾸준히 따서 갈무리했지만, 막상 봉숭아물을 들일 겨를을 내지 못해 그동안 모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음성 할머니 댁에서 봉숭아 잎과 꽃을 잔뜩 얻어 드디어 곱게 빻아 예쁘게 물을 들입니다. 이동안 갓난쟁이는 젖 달라 재워 달라 앙앙 웁니다. 그렇지만 어쩌는 수 없습니다. 어찌 되든 다 마무리를 지어야 갓난쟁이를 곱다시 재울 수 있습니다. 고단한 집식구가 모두 잠든 깊은 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꿈결을 헤매다가 어릴 적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학교에서 “울 밑에 선 봉선화(鳳仙花)” 노래를 배웠습니다. 동무나 동네 어른은 누구나 ‘봉숭아’라 했지만, 교과서에는 봉숭아가 나오지 않습니다. 언제나 ‘봉선화’였습니다. 동무들은 봉숭아와 봉선화가 다른 꽃이라 여기며 말다툼을 했고, ‘봉선아’나 ‘봉숭화’처럼 잘못 쓰는 아이가 많았습니다. 중학교 때였나, 누군가 “울 밑에 선 봉숭아야.” 하고 잘못 불렀다가 음악 선생한테 흠씬 엊어맞았습니다. 고즈넉한 노래에 ‘봉선화’라 해야지, 어울리지 않게 ‘봉숭아’가 뭐냐고 다그쳤습니다. 내 어릴 적 고향동무들은 아직도 두 가지가 다른 꽃이라고 여깁니다. 옆지기는 손가락에 봉숭아물 들이면 봉숭아 내음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4344.8.3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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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0] 온날떡

 둘째가 태어난 지 백날이 지납니다. 백날째를 맞이해서 흰떡을 합니다. 이 흰떡을 누구한테 돌릴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옆지기가 읍내 가게 어디어디를 들러 인사를 하라 이야기할 때에 비로소, 아하, 이 흰떡은 이곳저곳에 많이 돌려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떡 한 가득 담은 상자를 수레에 실어야 하니 첫째를 태울 수 없습니다. 백‘날’을 맞이했기에 백날떡이지만, 백‘일’을 맞이했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는 백일떡일 테지요. 초·중·고등학교를 거치고 살짝 대학교에 발을 담그는 동안 어느 학교에서도 ‘온’이라는 낱말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즈믄’이라는 옛말을 옛문학을 배우며 처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뿐입니다. 옛문학에 나오는 옛말 ‘즈믄’이지, 우리들이 살아가는 바로 이곳 이때에 쓸 만한 낱말로 여기지 않습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갈 무렵 ‘즈믄둥이’라는 말이 새삼스레 쓰였으나, 다른 어느 자리에서도 ‘즈믄’을 쓰는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첫째와 둘째를 막 낳아 갓 보살피던 세이레를 놓고도 ‘이레’를 알아듣는 어른이나 이웃이나 동무는 없었습니다. 수레에 떡을 싣고 수박까지 한 통 사서 싣습니다. 아주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 생각합니다. 내 마음속으로는 ‘온날떡’을 해서 둘째와 옆지기하고 나눈다고 생각합니다. (4344.8.3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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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31 11:49   좋아요 0 | URL
온날떡...
이름이 너무 곱네요, 백일떡 보다 훨씬 좋습니다.
앞으로 온날떡이라 부르겠어요.

파란놀 2011-08-31 12:12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 님이 이렇게 이야기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다문 한 사람이라도 입에 가만히 굴리면
좋은 사랑이 널리 퍼질 수 있으리라 믿어요~
 

 


 흙놀이 책읽기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모른다는 옛말이 있지만, 참말 개구리가 올챙이였던 나날을 모를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람은 개구리가 아니요, 개구리 삶을 모르며, 개구리 넋을 짚을 수 없으니까. 개구리를 빗대어 이야기하지만, 옳게 말하자면 어른은 어린이였던 지난날을 모른다고 해야 한다. 아기였던 나날을 떠올리는 어버이가 드물거나 없다고 해야 한다. 나부터 헤아린다면, 두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막상 내가 이 두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에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찌 지냈는가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한다.

 첫째 아이가 흙놀이를 하는 모습을 가끔 바라본다. 아직 혼자서 마당에서 놀지 못한다. 빨래를 널거나 걷으러 마당에 나올 때면 쪼르르 따라나와서 흙놀이를 하곤 한다. 흙놀이를 마친 아이는 흙 묻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거나 옷에 문지른다. 아마, 나도 첫째 나이만 했을 때에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아이가 옷에 흙을 묻힌다고 나무라려 한다면, 나 또한 어린 나날 나무라는 소리를 들은 일을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방으로 들어와서 손을 물에 씻는다 하더라도 금세 다시 흙놀이를 한다. 씻으나 마나라 할 테지만, 또 씻겨야 할 테지.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곧잘 갯벌마실을 가서 갯벌흙을 만지며 놀았다. 바닷가에서는 모래흙도 만지고 뻘흙도 만질 수 있어 좋다. 질척질척한 뻘흙으로는 이것저것 만들기 쉽다. 수많은 구멍을 좇아 어떤 목숨들이 옹크리는가를 살핀다. 뻘흙에서 논 다음에는 바닷물로 손을 씻으면 된다.

 내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형하고 인천 송도유원지에 마실을 다녀오던 퍽 어린 어느 날, 형하고 내가 땅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울 때, 내 아버지, 곧 아이들 할아버지가 나와 형이 옹크린 모습을 사진으로 한 장 찍었다. 나는 내 아이가 시골집 마당에 옹크리며 흙놀이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몇 해를 기다린 끝에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를 모두 장만한다. 2002년에 한 번 찍고 판이 끊어진 책인데, 출판사에서 용케 2011년에 새로 찍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한글을 깨치고 만화책을 신나게 읽을 무렵일 2020년 언저리에 《불새》가 다시 나오리라 바랄 수 없다. 《불새》뿐이랴. 《아톰》이나 《블랙잭》이 다시 나오리라 꿈꿀 수 있을까. 《나의 손오공》은 2020년에도 장만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모든 책을 다 읽어낼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고 싶어 하더라도 “자, 여기에 있어.” 하고 내미는 어버이가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이건 뭐야?” 하고 물을 때에, “응, 이건 이렇단다.” 하고 보드라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버이가 되어야 하리라. 지치지 말고, 꺾이지 말며, 책을 읽듯 삶을 읽으면서 삶을 읽듯 책을 읽는 예쁜 어버이로 살아야 한다고 느낀다. (4344.8.3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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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1-08-31 10:47   좋아요 0 | URL
언제 보아도 참 행복해보이는 아이랍니다,
우리딸도 저럴때가있었는데 요즘 엄마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 싶어요,,ㅎㅎ

파란놀 2011-08-31 11:01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곱고 예쁜 모습 그대로일 딸아이로
사랑스레 자라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