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야 놀자 - 만화로 배우는 생리 이야기
다카하시 유이코 글.그림, 김숙 옮김, 안명옥 감수 / 북뱅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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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한테 ‘무상급식’만 하면 다 되나
 [어린이책 읽는 삶 7] 다카하시 유이코, 《생리야 놀자》(BB아이들,2002)


- 책이름 : 생리야 놀자
- 글·그림 : 다카하시 유이코
- 옮긴이 : 김숙
- 펴낸곳 : BB아이들 (2002.8.30.)
- 책값 : 8000원


 (1)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에서는 ‘무상급식’을 놓고 주민투표까지 벌였습니다. 서울시 초·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 무상급식을 하자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니까 이런 주민투표를 할 만하다 싶지만, 주민투표를 하는 데에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서울이나 큰도시 아닌 작은 시골로 이루어진 군에서는 일찍부터 무상급식을 하거나 꾸준히 무상급식으로 나아갑니다. 작은 시골로 이루어진 군에서는 아이들이 죄 도시로 빠져나가니까 아이들을 붙잡기도 해야 할 테고, 아이들 숫자가 적어 얼마든지 무상급식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학교를 다니며 교재비나 다른 돈을 들이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서울이나 다른 큰도시는 아이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아이들에 앞서 어른들부터 지나치게 몰린 서울이요 큰도시입니다. 이런 데에서 무상급식을 하자 할 때에는 이곳저곳에서 투덜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뜻은 좋으나 아직 이 나라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육’이 아닌 ‘교육복지’를 옳게 펼치는 다른 나라에서는 이 나라처럼 국방 예산으로 훨씬 어마어마하다 싶은 돈을 쏟아붓지 않습니다. 더욱이, 쇠삽날로 파헤치기만 하는 토목사업에 더욱 어마어마하다 싶은 돈을 들이붓지 않아요. 이 나라는 국방과 토목사업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함부로 쓰기 때문에 교육이든 교육복지이든 옳게 꾸릴 수 없습니다. 군대를 없애거나 줄이지 않으면서 무상급식은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군대를 없애거나 줄이지 않으면서 무상급식을 해 본대야 아름다운 뜻이 펼치지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골고루 무상급식을 누리도록 한다는 ‘평등’이란 평화로이 살아가는 평등이거든요. 평화로이 살아갈 수 없이 물질 평등만 이룬대서 참다이 평등이 되지 않아요.

 시골마을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서울시이든 다른 큰도시이든 무상급식을 굳이 안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에 앞서 ‘급식비 내기 어려운 집’에 기초생활보장을 하는 복지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애써 급식시설을 마련하고 뭘 하고 하기보다는 도시락을 싸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이니 급식시설이니 하는 데에 돈을 쓰지 말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옳고 바르면서 착하고 아름다운 삶길을 받아들여 즐거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과 문화와 터전’에 돈을 쓰면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 “어째서 남자애들은 그런 일로 놀리는 거죠? 어째서 남자애들은 생리를 하지 않는 거죠?” “맞아. 생리는 여자만 하는 거야. 남자애들은 생리가 뭔지 잘 몰라. 이상하고 비밀스러운 거라고나 할까. 여자애들을 놀리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창피해 하니까 더 재미있어 하는 거지.” ..  (35쪽)


 일본사람 다카하시 유이코 님이 글을 쓰고 그림을 넣은 《생리야 놀자》(BB아이들,2002)를 읽고 나서 더 굳게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생리야 놀자》처럼 멋지고 알차며 놀라운 이야기책 하나 태어나지 못합니다. 상업출판사에서도 이만 한 책을 꾀하지 못하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이런 책을 마련할 꿈조차 꾸지 않으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쯤 되는 알찬 책을 내도록 뒷배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상급식을 한다며 해마다 들어갈 수천 억 가운데 3억쯤만 들이면, 아니 2억이나 1억쯤만 들이면, 《생리야 놀자》 같은 이야기책 하나 한 해에 걸쳐 야무지게 빚을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분한테 열 달 동안 힘껏 이야기를 길어올리도록 일돈을 주고, 출판사에서 예쁘게 엮도록 두 달을 내주면(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열 달 동안 출판사에서 밑짜기를 해 두면 두 달만에 책을 엮을 수 있어요) 한국 어린이 삶을 헤아리는 좋은 이야기책이 태어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해마다 100가지 이야기쯤을 100억을 들여 마련해서 100가지 아름다운 책이 태어나도록 도울 수 있는 ‘서울시 교육 예산’입니다. 고작 100억이면 돼요. 여기에 100억을 영화 만드는 돈으로 뒷배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즐길 작은영화를 찍도록 10억씩 뒷배해서 열 가지 영화를 해마다 빚을 수 있습니다. 꼭 대단하다 싶은 영화를 찍어야 하지 않거든요. 자그마하면서 아름다이 영화를 빚을 수 있어요. 한꺼번에 100억을 들여 더 멋들어지는구나 싶은 영화를 빚을 수 있을 테지만, 삼십 분이나 오십 분쯤 살가이 돌아볼 조그마한 영화를 꾸준히 빚는 일도 아름답습니다. 덧붙여 사랑스러운 어린이 노래나 푸름이 노래를 일구는 데에도 돈을 뒷배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연극이나 푸름이 연극을 올리도록 돈을 뒷배할 수 있어요. 어린이와 푸름이가 즐길 그림책을 그리도록 돈을 뒷배할 때에도 아름답습니다.


.. “빨아 쓸 수 있는 천 생리대는 반복해서 3년 정도 쓸 수 있어요. 경제적이기도 하고 쓰레기도 나오지 않지요. 100% 면이라 피부에도 좋고 화학약품이나 합성섬유도 쓰지 않으니까 안전하지요. 하지만 빠는 것이 번거롭고 샐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그러나 생리가 시작될 때와 끝나갈 때 써 보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일회용 생리대는 무척 편리하지만 매달 사용하는 양을 생각하면 쓰레기 문제가 걱정이지요.” ..  (59쪽)


 누구나 밥을 먹어야 목숨을 잇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가운데 가난한 아이들은 꼭 있기 마련이니, 이 아이들이 밥 걱정을 안 하도록 하는 일에 깊이 마음써야 합니다. 그러나, 밥 걱정은 안 해도 좋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왜 배워서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배움 이야기’가 텅 비거나 어줍잖다면 어쩌지요.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덜어 밥 한 그릇을 마련한다고 하듯,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서 한 숟가락씩 나누어 먹을 수 있습니다. 살림이 괜찮은 집에서 지내는 아이가 도시락을 둘 쌀 수 있습니다. 밥은 어떻게 해서든 나누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 학교를 돌아보면, 예나 이제나 ‘배울거리’가 마땅하지 않습니다. 참다이 배우고 착하게 배워 아름다이 살아갈 배움빛이 너무 모자라요.

 두 아이 어버이인 나는 우리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할 일이 아주 걱정스럽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한테 참다이 가르치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더 이름나거나 더 좋다는 대학교’로 보내는 징검돌 노릇만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아이한테 바르며 고운 말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아이한테 죽은 영어를 지식으로만 집어넣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아이한테 살아숨쉬는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지 않고, 임금님 연표나 권력자 뒷이야기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제 옷을 뜨개하거나 기우도록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입니다. 학교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스스로 밥하고 빨래하며 청소하는 삶을 배우지 못합니다. 학교를 오래 다닌다지만, 막상 나중에 열아홉 살을 넘어 좋은 짝궁을 사귀어 아이를 낳을 때에 아이를 어떻게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배울 수 없습니다. 사내가 가시내를 사귀는 길이나 가시내가 사내를 만나는 길을 예쁘게 가르치지 않는 학교입니다. 사내와 가시내가 다른 구실을 참답게 밝히지 않고,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보람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하다못해, 가시내가 열두엇 앞뒤로 맞아들여 다달이 치르는 달거리가 어떠한 뜻이요 얼마나 아름다운 목숨빛이 드러나는 일인가를 이야기 나누지 못합니다. 《생리야 놀자》는 달거리(월경)가 아이한테 어떠한 뜻이요 앞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목숨빛을 잇도록 새길을 여는 일인가를 차분하면서 따사롭게 들려줍니다.


.. “은비는 처음 생리를 시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지?” “지금까지 우리 반 아이들이 나한테 아직도 생리 안 하냐고 물을 때마다 나만 뒤떨어진 것 같았어요. 이제 하게 돼서 다행이다 싶긴 한데.”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하고 비교할 필요는 없는 거야.” ..  (15쪽)


 (2)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는 무엇을 해야 좋을까 헤아려 봅니다. 시설 좋고 이름 높은 학교에 아이들을 넣으면 좋을까요. 급식 잘 되고 학교버스로 집과 학교 사이를 태워 주는 데에 아이들을 보내면 좋을까요. 시험성적 잘 나오도록 이끌거나 특성화교육이나 외국어교육을 잘 한다는 데에 아이들을 다니도록 하면 좋을까요.


.. “철분은 여자아이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고 몸이 점점 커 가는 성장기에는 남자아이들에게도 많이 필요한 거야.” “그렇다면 날마다 시금치나 간을 많이 먹으면 되는 거예요?” “단백질도 필요해.” “단백질요?” “단백질이 부족하면 어렵사리 보충한 철분을 잘 살릴 수 없거든. 결국, 균형 잡힌 식품을 거르지 말고 먹어야 한다는 거지. 식사를 거른다거나, 인스턴트 식품이나 과자만 너무 좋아한다거나, 무리한 다이어트 같은 건 좋지 않다는 거지. 그러면 곧바로 철분이 많은 식품을 써서 요리를 만들어 볼까?” ..  (95쪽)


 이야기책 《생리야 놀자》는 달거리 지식을 아이들이 외도록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푸름이 때에 처음 겪으면서 마흔 해 즈음 이어갈 아름다운 목숨빛이 무엇인가를 찬찬히 깨닫도록 돕습니다. 누구보다 가시내한테 도움이 되면서 길동무가 되고 마음밭을 다스리는 말벗이 됩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치고, 달거리 이야기를 이 책에 담은 만큼 들려줄 수 있는 분은 퍽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내 아이한테 달거리 이야기를 얼마나 들려줄 수 있을까요. 내 아이들한테 ‘목숨이 태어나는 아름다운 빛과 꿈’을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얼거리와 흐름을, 사람이 늘 먹어야 하는 목숨과 사람을 둘러싼 풀과 나무와 짐승과 물과 해와 바람을 어떠한 결로 들려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내가 만약 생리 때문에 아무 문제도 겪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도 생기지 않았겠지 하는 생각에 그때까지 겪은 고통과 괴로움들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 책을 쓰는 동안 생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생리 작용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몸을 더욱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  (115쪽/글쓴이 말)


 아이는 어머니만 낳습니다. 아이는 어머니만 몸속에 깃들이며 열 달을 살아냅니다. 아이는 어머니만 젖을 물립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도록 이끄는 어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둘입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사랑하고 돌볼 몫은 어머니와 아버지 둘한테 있습니다. 아이가 먹을 밥을 차리고 아이가 먹을 옷을 빨며 아이와 살아갈 집을 치우고 살림하는 몫은 어머니 한 사람이 아닌,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이 맡을 몫입니다.

 《생리야 놀자》는 내 몸을 아이들 스스로 사랑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여는 첫 실마리라 할 만합니다. 이 실마리부터 찬찬히 살펴서 내 몸과 동무들 몸과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몸을 사랑하도록 첫걸음 내디디는 실마리입니다.

 나부터 스스로 내 몸을 사랑할 때에 비로소 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얻습니다. 하늘에서 똑 떨어지는 선물로 얻지 않고, 내 마음밭에서 고이 잠자던 씨앗을 깨우는 틀처럼 얻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사랑을 가르칩니다. 아이들한테서는 사랑을 배웁니다. 학교는, 집은, 마을은, 또 지구별은 이 아이들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4344.9.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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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는 손이 커요


 둘째 백날을 맞이해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둘째한테 고맙게 선물해 주신 분은 딸아이를 어여삐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는 분입니다. 이른바 ‘아줌마’라 할 분입니다. 옆지기는 선물꾸러미를 보면서 “아줌마는 손이 커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한테 아이 옷을 물려주시는 다른 아주머니들 누구나 ‘상자 하나 가득 꾹꾹 눌러 담아’ 옷을 보내시거든요. 참말 알뜰하게 입히고 알뜰하게 건사해서 알뜰하게 물려줍니다. 곰곰이 따지면, 나는 아저씨이고 옆지기는 아줌마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입은 옷은 다른 이웃한테 물려줄 만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두 돌 즈음까지 입는 옷은 첫째가 워낙 개구지게 놀았기 때문이라 할 테지만, 꽤나 낡거나 헐었거든요. 아무래도 여러 아이가 돌려입으면서 우리 첫째한테까지 왔으니 우리 첫째가 마지막으로 누리는 옷이라 할 수 있고, 우리 둘째는 이 낡거나 헌 옷을 그대로 더 물려입어도 괜찮다 할 만해요. 여기에서 더 물려주기는 힘들고, 아이들이 크면 고스란히 갈무리했다가 이 아이들이 나중에 고운 짝을 만나 저희 아이를 낳을 때에 물려주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집식구 모두 잠든 새벽녘 부시시 일어납니다. 잠든 집식구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헤아립니다. 옆지기는 “아줌마는 손이 커요.” 하고 말하지만, 바로 당신도 아줌마이고, 누구 못지않게 당신이 둘레에 선물할 때에도 손이 큽니다. 옆지기가 무얼 선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 놀라지는 않습니다. 이야, 선물을 할 때에는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놀랍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언제나 선물을 많이 받거나 누렸을 테지만, 이 선물이 얼마나 커다란 선물인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고 깨닫습니다. 물건이든 돈이든 마음이든, 선물하는 사람들 삶을 옳게 살피지 못했습니다. 내가 받을 만한 선물인가 아닌가를 곱씹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고마이 받은 선물을 알뜰히 누리면서 내 삶을 한결 알차게 북돋우는 길을 찾는 데에서도 아직 좀 헤맵니다.

 선물이 내 품에까지 와서 안기든, 또는 선물하는 마음만 받고 물건은 돌려주든, 무엇보다 마음을 살가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마음을 받을 수 있는 몸가짐이 되면서, 나 또한 내 둘레 고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예쁘게 선물하는 넋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날마다 숱한 곡식이랑 푸성귀한테서 예쁜 목숨을 선물받아 내 목숨을 잇습니다. 내 목숨을 이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으로 내 둘레에 무언가를 선물하는 삶을 일구자고 다짐합니다. 다짐이라 말하지만 다짐이라기보다 그저 삶입니다. 좋은 넋으로 좋은 삶을 일구고, 좋은 삶으로 좋은 선물을 나눕니다. 좋은 선물을 나누면서 좋은 글 하나를 즐기고, 좋은 글 하나로 좋은 책 하나를 마련합니다. (4344.9.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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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1-09-03 20:08   좋아요 0 | URL
괜찮아요. 선물이니 다 좋은걸요.
둘 다 예쁜 옷을 입히면서 키워야지요 ㅋㅋㅋㅋㅋ
 
영혼의 시선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 에세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권오룡 옮김 / 열화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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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는 사진, 읽는 마음, 따순 사랑
 [찾아 읽는 사진책 49]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영혼의 시선》(열화당,2006)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님이 사진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찍었는가 하는 짤막한 이야기를 담은 책 《영혼의 시선》(열화당,2006)을 읽습니다. 브레송 님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달아나는 현실 앞에서 모든 능력을 집중해 그 숨결을 포착하는 것이다(15쪽).” 하고 말합니다. 언제나 내가 두 발을 디딘 땅에서 내 모든 넋과 기운과 사랑과 땀방울과 말미를 바쳐서 일구는 사진 한 장인 셈입니다.

 참으로 마땅합니다. 글 한 줄을 쓸 때이든 그림 한 장을 그릴 때이든 노래 한 가락을 부를 때이든 춤 한 사위를 출 때이든 똑같이 마땅합니다. 언제나 모든 넋을 바치고 모든 기운을 들이며 모든 사랑을 쏟는 한편 모든 땀방울을 흘리면서 모든 말미를 깃들이는 삶입니다.

 사진을 찍으려 하는 사람 누구나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없습니다. 내 온마음을 바치지 않았으면 쉽게 찍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온마음을 바치는 사람은 사진을 쉽게 찍습니다.

 사진길을 걸으려 하는 사람 모두 사진길을 걱정없이 걸을 수 없습니다. 내 온몸을 쏟아붓지 않았으면 사진길을 걱정없이 걸을 수 없습니다. 곧, 내 온몸을 쏟아붓는 사람은 사진길을 걱정없이 걷습니다. 다만, 사진길을 걱정없이 걷는대서 먹고사는 길이 다 풀리지 않아요. 때로는 먹고살기 힘겹고, 어느 때에는 밥을 굶으며, 어느 때에는 외롭거나 쓸쓸합니다. 그렇지만 내 온몸을 쏟아붓는 내 사랑하는 삶길을 일구는 사진일 때에는 가난이나 외로움이란 아무것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벗입니다. 살가은 길동무예요.

 브레송 님은 “나는 기쁨을 위해 일했고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일했다(21∼22쪽).” 하고 말합니다. 기쁘게 살아갈 사람들이고, 즐겁게 일할 사람들이에요. 꼭 사진을 찍기에 기쁘게 살지 않습니다. 반드시 사진기를 쥐었대서 즐거이 일하지 않아요. 호미를 쥐어 밭을 일구든, 펜이나 자판을 가까이하면서 회사일을 보든,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나 스스로 내가 선 일터에서 기쁘게 살아가면 됩니다. 나 스스로 내가 두 발 디딘 보금자리에서 예쁘게 어울리면서 즐거이 일하면 돼요.

 기쁘게 살지 않을 때에는 기쁘지 않은 사진만 만듭니다. 기쁘게 살 때에는 아주 홀가분하면서 손쉽게 기쁨을 나누는 사진을 일굽니다.

 사진은 억지로 만들지 못합니다. 사진은 홀가분하게 찍습니다. 사진은 남달리 만들지 못합니다. 사진은 내가 살아가는 결과 무늬 그대로 곱게 찍습니다.

 사진은 전문가들끼리 키득거리는 꼼수가 아닙니다. 사진은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니거나 나라밖 사진학교를 다닌 사람들끼리 꼼지락거리는 손재주가 아닙니다. 사진은 이름난 스승한테서 배우며 내 이름을 높이는 가방끈이 아닙니다.

 사진은 오직 내 사랑을 바친 삶입니다. 내 사랑을 바친 내 삶이 그대로 사진으로 나타납니다.

 사진을 억지로 만든다면, 내 삶부터 억지로 만들듯 꾸미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부터 꾸밈없을 뿐 아니라 수수할 때에 다큐멘타리라 하는 사진이 제대로 꽃을 피웁니다. 내 삶부터 살가운 손길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할 때에 상업사진이나 패션사진이 아리땁게 꽃을 피웁니다.

 누가 돈을 많이 준다 하면서 부탁하는 사진이기에 만듦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안 받고 찍어 주는 사진이기에 살갑거나 부드럽거나 착하거나 좋은 사진이 되지 않아요. 내 삶결 그대로 사진입니다. 내 삶결이 좋아야 내 사진이 좋습니다. 내 삶결이 보드라운 꽃송이여야 내 사진이 보드라운 꽃송이가 돼요.

 브레송 님은 “사진을 찍는 동안이나 암실에서 잔재주를 피워 사진을 조작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속임수들은 안목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실히 드러난다(26쪽).” 하고 말합니다. 잔솜씨는 누구나 알아챕니다. 잔재주는 누구나 느낍니다. 밥을 할 때에 어떻게 밥을 하는가는 밥술을 한 번 뜨면 누구나 알아챕니다. 요리사가 차리는 밥이든 어머니가 차리는 밥이든 할아버지가 차리는 밥이든 아이들이 차리는 밥이든, 밥을 차리면서 사랑과 꿈과 믿음과 땀을 어느 만큼 쏟았느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져요.

 사진맛이란, 또 사진결이란, 또 사진삶이란, 나 스스로 내 사랑과 꿈과 믿음과 땀을 들이는 만큼 거듭납니다. 잔재주로는 잔재주 사진만 태어납니다. 잔솜씨로는 잔솜씨 사진만 만들고 말아요.

 브레송 님이 들려주는 “나는 인위적인 초상사진보다 여권사진을 찍는 사진사의 진열장에 겹겹이 쌓여 있는 조그만 증명사진들이 훨씬 더 좋다. 이런 사진들은 언제나 찍힌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이 얻길 바라는, 시적 동일시 대신 기록사진으로 남은 인물의 신분을 증명하고 있다(30쪽).” 같은 말마디라든지 “암실에서 확대기를 통해 네거티브 필름을 재단하는 식으로 재구성한다고 해서 처음 찍었을 때 구성이 빈약한 사진이 살아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33쪽).” 같은 말마디를 가만히 되씹습니다. 번역을 한결 보드라이 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지만, 이 또한 사진찍기 삶읽기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브레송 님 책 《영혼의 시선》을 한국말로 옮긴 분 스스로 이 땅에서 누구와 이웃으로 사귀면서 어떠한 삶을 일구느냐에 따라 ‘어떤 한국말로 옮’겨서 ‘누가 읽도록 하려는 책’인가가 달라지거든요.

 이리하여 “누구나 사진을 찍는 동안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50쪽).” 같은 말마디를 읽으면서 밑줄을 긋습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삶을 사랑합니다. 내 삶을 사랑하는 동안 내 꿈을 이룹니다. 내 꿈을 이루는 동안 내 착한 아이를 쓰다듬는 내 손길을 따뜻하게 돌봅니다.

 “비행기는 너무 빨라서 한 나라에서 다음 나라로 이동할 때 일어나는 점진적인 변화를 볼 수 없다(59∼60쪽).” 같은 말마디를 읽을 때에도 밑줄을 긋습니다. 좋으니까 밑줄을 긋습니다.

 나도 비행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고속철도 또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자동차마저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자전거를 좋아합니다. 나는 내 두 다리를 사랑합니다. 언젠가 나이가 많이 들어 자전거를 탈 수 없거나 두 다리로 걸을 수조차 없이 된다면, 이때에는 한 자리에 가만히 누워 지내겠지요. 누워서 지내야 한다면 누운 자리에서만 둘레를 살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누워서 지내야 한다면, 누운 채 바라보는 내 둘레 삶자락을 사랑하면 됩니다. 아직 두 다리가 튼튼해서 자전거를 달릴 수 있다면, 자전거로 달리며 만나는 내 삶터 둘레 이웃 보금자리를 가만히 살피면서 사랑하면 돼요.

 “앙드레 케르테스가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나는 그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87쪽).” 하고 적바림하는 브레송 님입니다. 그래요, 브레송 님은 앙드레 케르테스 님이 사진기 단추를 누를 때마다 벌떡벌떡 일어서듯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느낍니다. 나는 브레송 님이 한 줄 두 줄 살며시 적은 글월을 읽으면서 손에 펜을 쥔 브레송 님 뜨거운 핏줄기를 느낍니다.

 피로 쓰는 글이고, 피로 그리는 그림이며, 피로 찍는 사진입니다. 피를 바쳐 부르는 노래요, 피를 바쳐 추는 춤이며, 피를 바쳐 이루는 삶입니다.

 내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내 사랑이 깃든 손발로 씩씩하게 일하며 일구는 삶을 좋아하는 내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4344.9.1.나무.ㅎㄲㅅㄱ)


― 영혼의 시선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글,권오룡 옮김,열화당 펴냄,2006.9.20./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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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숭아 어린이


 어머니가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였다. 아이는 지난해에 이어 봉숭아물을 들였다. 그렇지만, 잠자리에서 몹시 번거롭게 여긴다. 하는 수 없이 손가락을 싼 비닐을 모두 벗긴다. 손을 씻긴 다음 다시 잠자리에 누인다. 지난해에는 곯아떨어진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였기에 이듬날까지 얌전히 지냈을까. 아이가 일찍 잠들었으면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한결 짙에 봉숭아물이 배었을까.

 하루가 지나고 들여다본다. 고작 한두 시간쯤 쌌을 뿐인데 물이 제법 곱게 남았다. 얼마나 갈는지 모르나 이만큼 얇게 남은 봉숭아물도 고맙도록 곱다. 한 살을 더 먹어 다섯 살에 봉숭아물을 들일 적에는 잘 견디며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으려나. (4344.9.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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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냄새 (자동차가 사람을 죽인다)


 첫째가 또 “아, 냄새!” 하고 말하면서 코를 싸쥔다. 자가용이 없고, 자동차를 탈 일이 없는 우리 살림이기에, 어쩌다 한 번, 그야말로 한두 달에 한 번 자동차를 얻어 탈 때면, 자동차마다 켜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나부터 ‘아이고, 냄새야!’ 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 놔서’ 이렇게 느낀 그대로 곧바로 말로 내뱉지 못한다. 말없이 꾹 참는다. 옆지기는 이런 나를 보며 ‘왜 이리 찌푸린 낯’이냐고 묻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옆지기를 보면, 아마 나와 비슷하지 싶은데, ‘똑같이 낯을 찌푸린’ 모습이다. 왜냐하면, 아이들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자동차에서 켠 에어컨 바람이 내는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코로 쉼쉬기 힘드니까.

 아이는 자꾸자꾸 “아, 냄새!”를 되풀이한다. 에어컨을 켠 자동차이지만 아이를 생각해야 하기에 창문을 연다. 창문을 여니 바깥바람이 들어온다. 바깥바람을 쐬는 아이는 이제 코를 더 싸쥐지 않는다. 비로소 찌푸린 얼굴이 풀리고, 까르르 웃는다. 그러고 보면,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치고 ‘차 안에서 밝게 웃거나 맑은 눈빛을 보여주는’ 일이 거의 없다고 느낀다. 모두들 에어컨 바람에 찌들면서 ‘딱딱하게 찌푸리거나 굳은 얼굴’이 되고 만 탓이 아닌가 싶은데, 에어컨을 틀 때에는 등줄기나 목덜미를 타고 땀이 흐르는 일은 없을 테지만, 몸과 마음은 나날이 무너지거나 무디어지는구나 싶다. 그나마 창문을 열고 자동차를 몰면 낫다 할 테지만, 자동차를 이룬 플라스틱과 쇠붙이에다가 기름을 태우면서 나는 냄새와 뜨거운 기운, 여기에 아스팔트를 달리면서 고무바퀴가 닳아 날리는 먼지가 온몸으로 깃들 테니까, 어느 모로 보더라도 ‘사람 몸에 좋을 구석’이 없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면 이렇게 자동차를 모는 대로 몸이 망가진다.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꺼도 이렇게 자동차를 모는 대로 몸이 다친다. 자동차를 어쩌다가 한 번 얻어 타는 사람조차 몸이 찌뿌드드하면서 고달픈데, 날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자동차에서 한두 시간이나 서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몸이며 마음이 얼마나 고달플까. (4344.9.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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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9-02 18:16   좋아요 0 | URL
아이가 차를 안타 에어컨 바람의 냄새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냄새가 나는 이유중의 하나는 에이컨 필터가 오래되서 그럴수도 있습니다.에어컨 필터도 때가되면 갈아주어야 한는데 차 주인중에는 이를 모르는 분들이 많지요ㅜ.ㅜ

파란놀 2011-09-03 06:12   좋아요 0 | URL
오래된 차이든 새로 나온 차이든 다 에어컨 냄새가 나요.
둘째는 에어컨 바람을 쐬면 금세 눈이 발개진답니다.
필터도 필터이겠지만
에어컨이란 워낙 사람한테 나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