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
쇼도 가오루 지음, 박재현 옮김, 야마다 우타코 그림 / 가치창조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즐거이 살아가며 즐거이 읽기
 [어린이책 읽는 삶 11] 쇼도 가오루,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가치창조,2000)



- 책이름 :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
- 글 : 쇼도 가오루
- 그림 : 야마다 우타코
- 옮긴이 : 박재현
- 펴낸곳 : 가치창조 (2010.4.20.)
- 책값 : 8500원


 가을이 깊어지면서 나뭇잎이 하나둘 집니다. 찬바람이 싱싱 불면서 들판과 밭자락에서 끝없이 자라려 하던 들풀이 수그러듭니다. 앙상한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군 채 겨울나기를 할 테고, 들풀이 수그러든 들판과 밭자락은 이들 들풀이 거름이 되고 이불이 되면서 겨울살이를 하겠지요.

 날이 쌀쌀하니 소매 긴 옷을 챙겨 입습니다. 찬바람에 따라 긴옷입니다. 그런데, 여느 도시에서는 한여름에도 긴옷을 입곤 합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볼일을 보러 마실을 해야 할 때에도 긴옷을 챙겨야 합니다. 버스이든 기차이든 전철이든 온통 에어컨을 펑펑 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와글와글 북적이는 전철이나 버스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면 숨통이 막힐 테지요. 그렇지만 언제부터 왜 자동차에 에어컨을 달아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쐴 수 없는 노릇인가요. 지난날에는 기차도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었어요. 전철도 땅밑을 오가지 않고 땅위를 달릴 때에는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아들였어요.

 가만히 돌이키면, 자동차가 부쩍 늘어나면서 에어컨을 써야 합니다. 자동차가 부쩍 느는 바람에 버스를 타며 창문을 열면 매캐한 바람이 잔뜩 몰려들어 재채기가 나옵니다. 자동차를 모는 사람 또한 창문을 열기보다는 에어컨을 틀곤 합니다. 내 자동차를 비롯해 숱한 자동차가 내뿜는 매캐한 배기가스를 들이마시고 싶지 않으니까요.

 여름날 면사무소를 찾아간다든지, 은행에 들른다든지, 우체국에 가 본다든지, 무슨무슨 기관에 발을 디딘다든지 하면, 바깥하고는 너무 다른 차가운 바람 때문에 오슬오슬 떨곤 합니다. 그예 철을 잊습니다. 고스란히 날을 잊습니다.

 바깥 볼일을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합니다. 철을 잊은 터에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어떤 철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날을 잊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날을 누릴까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따순 바람과 함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살아갈 목숨을 텐데, 사람은 따순 햇살과 함께 차가운 물을 마시며 살아갈 목숨일 텐데, 철도 날도 잊는다면 무엇을 아는 목숨으로 살아낼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 이름 있는 고전적인 자동차는 아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부품을 모아서 만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다 … “너, 조수가 되어 일해 줄래?” “너라고 말하지 말아요. 나는 ‘미카’예요. 이름으로 제대로 불러 주세요.” …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광택, 녹슴, 곰팡이 예방’이라고 쓰여 있었어. 성분은 밀랍, 밍크오일, 부처꽃, 괭이밥의 이파리, 푸조나무의 껍질, 물잠자리의 날개 ..  (5, 32, 57쪽)


 즐거이 살아가는 사람은 즐거이 나누는 사랑입니다. 바삐 살아가는 사람은 바쁜 나머지 잊거나 잃는 사랑입니다. 즐거이 살아가는 사람은 즐거이 읽는 책입니다. 허둥지둥 살아가는 사람은 허둥지둥 앎조각을 쌓거나 자격증을 거머쥐려고 읽는 책입니다. 즐거이 살아가는 사람은 고마이 먹는 밥입니다. 돈벌이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은 돈벌이할 틈을 쪼개느라 밥맛을 하나하나 차분히 느낄 틈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자면 서로 즐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갈 사람은 바쁠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기에 꿈 한 자락 즐거이 나눕니다. 서로 사랑할 틈이 없기에 그만 매몰차거나 딱딱한 몸짓과 말투가 되고 말아요.

 아이들이 반드시 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아이들 모두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대학교 문이 열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굳이 대학교에 가야 하지 않는다면 대학교 문턱은 높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이 나라는 아이들이 굳이 대학교에 가야 하지 않아요. 대학교 문턱이 너무 높거든요. 입시지옥 굴레가 너무 모질고, 대학교 배움값이 지나치게 비싸요. 이런 나라에서는 대학교는 부질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문턱이 낮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낌없이 마음을 여는 이웃이랑 사귀고, 허물없이 마음을 열어젖힌 동무랑 사랑을 나눌 노릇이에요. 문턱 높은 이웃하고는 사귀지 못해요. 허물 많이 뒤집어쓰려는 동무랑 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 꿈을 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꿈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고 해요. 먹어도 먹어도 또 좋은 꿈이 쌓인대요 … “엄마는 늘 바쁘니까 귀찮게 굴면 안 돼라고 말해요. 나도 할 수 있는 심부름이 있는데도요.” ..  (22, 33쪽)


 곡식은 좋은 밥입니다. 열매는 좋은 살입니다. 풀잎은 좋은 물입니다. 스스로를 기꺼이 내주어요.

 익은 벼는 스스럼없이 고개를 숙이면서 온몸을 밥으로 내줍니다. 무르익은 열매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리면서 온몸을 맛난 살로 내줍니다. 갓 돋은 풀잎은 싱그러운 빛을 뿌리면서 고운 내음 번지는 푸른 물을 내줍니다.

 사랑이면서 삶이에요. 삶이면서 사랑이에요. 흙은 누구한테나 밥을 내줍니다. 햇살은 누구한테나 밥을 먹입니다. 물은 누구한테나 밥을 베풉니다. 바람은 누구한테나 밥을 차려 줍니다.

 이야기책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가치창조,200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자동차 하나를 온사랑으로 보듬는 젊은이는 마을 이웃을 따사로이 사랑하는 길을 걸으면서 살림을 꾸립니다. 돈을 더 많이 벌려고 바둥거리지 않아요. 혼자 돈을 거머쥐려고 버둥거리지 않아요. 젊은이 삶을 아끼려고 애씁니다. 젊은이 나날을 사랑하려고 힘씁니다.


..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서 나는 아이코, 하고 생각했다. 주위에는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엄마나 아이들의 손을 잡은 아빠로 가득했다. 여자 아이는 장난감도 보지 않고,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부러운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갈까?” “네.” …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를 지켜봐 준 이가 있었다니! ..  (29, 69쪽)


 다만, 젊은이는 모든 사랑을 빈틈없이 갖추지 않습니다. 젊은이 한 사람이 온갖 사랑을 빠짐없이 건사하지 않아요. 아직 틈이 많아요. 아직 많이 모자라요. 그래, 그러니까 젊은이입니다. 비고 모자란 틈이 많기에 젊은이입니다. 천천히 배우고 천천히 깨달으며 천천히 사랑하기에 젊은이예요.

 새롭게 배우기에 젊은이입니다. 고맙게 맞아들이기에 젊은이입니다. 해맑게 어깨동무하기에 젊은이예요.

 아직 젊은 한 사람은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 같은 슬기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아직 젊은 두 사람은 쉰 해 예순 해 일흔 해를 살아온 할매나 할매처럼 깜냥을 갈고닦을 턱이 없습니다. 스무 살 젊은이는 스무 살 젊은이답게 여러 가지를 합니다. 스물두 살 젊은이는 스물두 삶 젊은이답게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여러 일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마주하면서 제 얼굴과 눈길과 마음을 가다듬는 젊은이예요. 젊은이는 “심부름집을 꾸리”면서 사랑을 배웁니다. 심부름집 일을 하면서 사랑을 느낍니다.


.. “태어나는 많은 것들에게는 봄바람과 빛이 필요하거든.” … “나는 젊은 시절에는 늘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이 세상에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 와서, 오히려 시간이 넉넉한 것처럼 생각이 드네요.” ..  (70, 84쪽)


 쇼도 가오루 님 글과 야마다 우타코 님 그림이 보드랍게 어우러진 이야기책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는 아주 대단한 삶을 담지 않습니다. 아마 이 책 비슷한 이야기는 어렵지 않이 다른 데에서도 찾아 읽거나 들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꽤 되리라 생각해요.

 이야기책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는 젊은 한 사람이 젊은 한 사람대로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한 줄거리를 보여줍니다. 이 마을 이 사람은 이 마을 이 사람대로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저 마을 저 사람은 저 마을 저 사람대로 당신 이야기를 들려줘요.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다 다른 이웃들은 다 다른 사랑을 오순도순 나눕니다. 다 다른 사랑은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른 무지개옷을 입으며 가만히 흙에 뿌리내려 새잎을 냅니다. (4344.10.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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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ferry 2011-10-19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둘러보아요. 된장님의 서재에서는 긴장이 되요. 쉽게 쓰던 말들도 조심하게 되고......얼마나 많은 우리 말을 잊어가는 중인지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다정한 말투지만 그 안에 단단한 확신과 진정성을 담기위해 꾹꾹 눌러쓴 된장님의 비평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재능없고 노력을 게을리 하는 작가이거나, 무지한 독장의 입장이 되어 얼굴이 화끈거리고요. >~<::
동시에 된장님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들이 제 삶에 건강한 자극을 줍니다.:-)

파란놀 2011-10-23 05:11   좋아요 0 | URL
즐거이 살아가며 즐거이 읽고
즐거이 나눌 수 있으면 돼요~ ^^
 



 딱딱한 신


 딱딱한 아스팔트·시멘트·대리석·쇠판만 밟으며 살아갈 서울이나 큰도시인 탓에 모두들 딱딱한 신을 꿰고 딱딱한 눈길·얼굴·몸짓이 되고 마는군요. 흙을 밟으면서 살아간다면 말랑말랑한 신을 꿰며 발바닥이 단단해지고 몸·손·마음 또한 단단해져요. 맨발로 흙을 박차요. 서울사람은 딱딱한 신에 말랑말랑한 발을 감추고는 서로를 등치거나 들볶는 굴레에서 안쓰러이 허우적거려요. (4344.10.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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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어린이 책읽기


 서울은 시골서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를 송두리째 빼앗는데, 어째 서울이라는 곳은 조금도 맑지 않고 푸르지 않으며 싱그럽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린이가 많으나 어린이 웃음소리 듣기 힘들고, 아기들 많이 태어나지만 아기들 울음소리 듣기 어려우며, 푸름이 많으나 푸른 꿈결 마주하기 벅차며, 젊은이 넘치나 싱그러운 사랑 빛나지 못한다.

 서울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떤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서울서 푸르게 자라야 할 푸름이는 어떤 이야기를 가슴에 안을 수 있을까. 서울서 구슬땀을 흘릴 젊은이는 어떤 일을 신나게 붙잡을 수 있을까.

 서울을 스쳐 지나가기만 할 때에도 숨이 막힌다. 서울을 거쳐 일산으로 가거나 인천으로 가거나 춘천으로 갈 때조차 매캐한 바람 때문에 재채기가 나온다. 서울에 살짝 내려 가게에 들르거나 밥집을 찾을 때에는 눈알이 핑핑 돈다.

 어린이라서 어린이집에 가야 하지 않다. 푸름이라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과 학교옷과 손전화에 얽매인 채 대학입시에 목매달아야 하지 않다. 젊은이라서 영어와 자격증을 붙들고 큰회사 사무직이나 공공기관 공무원 펜대를 놀려야 하지 않다.

 어린이 자리란 무엇인가. 어린이가 손에 쥘 연장이나 책이란 무엇인가. 푸름이 자리란 어디인가. 푸름이가 두 발로 설 땅이나 터란 어디인가. 젊은이 자리란 있는가. 젊은이가 부둥켜안을 이웃과 어깨를 겯을 동무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거의 모든 책은 서울에서 만들고 서울에서 팔려 서울에서 읽힌다. 이 서울이란, 이 서울 삶이란, 이 서울 사람들이란, 얼마나 아름답거나 착하거나 참다웁기에, 서울에서 책을 만들어 서울에서 읽히려 하는가. (4344.10.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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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집이 우리 집일까


 우리 식구 새로 살아갈 집을 계약하러 길을 떠나 여러 날 보냈다. 이제 앞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돌아와서 남은 짐을 둘러본다. 책을 쌓아 둔 자리에서 책꽂이 넷이 바닥에서 스며 올라온 물기에 젖어 곰팡이가 잔뜩 핀 모습을 본다. 우리 책들을 멀리멀리 실어 옮기자면 돈을 얼마쯤 치러야 할까. 이삿짐 나르는 곳에서는 이런 일을 해 본 적은 없겠지. 예상이든 견적이든 내기 퍽 힘들 테지.

 전화를 기다리면서 곰곰이 생각한다. 어느 집이 우리 집일까. 어디를 두고 우리 집이라 이야기해야 하나. 집 계약 하는 일 때문에 인감증명이 있어야 해서 전입신고를 먼저 했다. 전입신고를 했으니 내 몸이 있는 이곳은 우리 집이라 할 수 없을까. 아직 모든 짐이 이곳에 있는 만큼 짐차에 실어 옮길 때까지는 이곳을 우리 집이라 해야 할까.

 멧자락 작은 집은 시월 한복판을 넘어서면서 퍽 쌀쌀하다. 하루라도 집 옮기는 일을 늦추면 몸과 마음이 무척 고되겠다. 새 보금자리 계약이든 책을 들일 자리 새로 짓는 일이든 얼른 마무리될 수 있기를 꿈꾼다. 비 새는 지붕과 천장 한쪽을 손질하는 일이 금세 끝날 수 있기를 비손한다. 아이들이 맑은 달빛을 고요히 올려다보면서 마음껏 뛰놀 보금자리에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이웃하고 어우러질 나날을 바란다. (4344.10.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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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10.12.
 : 새벽안개와 가을들판



- 새벽 여섯 시 삼십육 분 음성역 기차를 타기로 한다. 집에서 새벽 여섯 시 사 분에 나선다. 바깥은 안개가 짙게 낀다. 멧골집이라 새벽안개가 더 짙게 오래 간다. 짐을 꾸리고 자전거를 마당에 세운다. 문을 잠그고 가방을 멘다. 자전거에 올라탄다. 1분쯤 마당에 자전거를 세우기만 했는데에도 안장에 이슬이 앉는다. 기어를 넣는데 삐걱삐걱한다.

- 손이 꽤 시리다. 무릎도 좀 시큰하다. 이른새벽에 자전거를 몰면 이런가. 문득, 지난날 신문배달 하던 나날을 떠올린다. 신문은 봄이고 겨울이고 날마다 같은 때에 일어나 같은 때에 돌린다. 언제나 새벽 두 시 무렵에 일어나 신문을 챙겨 바구니와 짐받이에 싣고 달렸다. 한여름에도 깊은 새벽은 썰렁하기 마련이요, 이제 와 돌이키면 내 몸이나 내 자전거는 새벽 내내 찬기운을 맞아들이면서 애먹었겠구나 싶다. 신문배달 자전거는 다른 자전거보다 일찍 삭고 일찍 망가질밖에 없겠다.

- 손도 몸도 자전거도 똑같이 얼어붙는다. 한겨울 신문배달 하던 일을 되새긴다. 장갑을 두 겹으로 끼더라도 손가락이 금세 언다. 짐자전거를 탄 지 오 분이 채 안 되어 손가락부터 언다. 다음으로 발가락이 언다. 그렇다고 두툼한 장갑을 낄 수 없다. 장갑이 두툼하면 바구니에서 신문을 집지 못한다. 신문을 돌릴 수 없다. 신문배달 일꾼은 실장갑을 두 겹으로 끼며 겨울나기를 해야 한다. 새벽 두 시 무렵부터 다섯 시 무렵까지 차디차게 얼어붙은 몸으로 골목을 누비면서 신문을 돌린다.

- 그래도 나는 나은 셈이지,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늘 새벽 여섯 시 사 분에 길을 나섰으니까. 이십 분 남짓 달리면 기차역에 닿으니까. 그러나 손가락이 얼어붙기 때문에, 한손씩 갈마들며 엉덩이에 대고 녹인다.

- 새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길이기에 가방이 퍽 무겁다. 이번 길에는 새로 얻을 집에서 며칠 묵으면서 집 손질을 하고 도서관 책을 옮길 자리를 다져서 이동식주택 짓는 일까지 맡겨야 한다. 작은 버너랑 부탄가스를 챙긴다. 옷가지도 조금 더 챙긴다. 이래저래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숯고개 오르막을 넘는다.

-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 이제 자전거로 이 길을 달릴 일은 없을까. 이 자전거는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 작은 집에 둘 테니까, 다시 충주 멧골집으로 돌아와서 마지막 짐을 꾸려 짐차에 싣더라도, 자전거로 이 길을 다시 달릴 일은 없으려나. 어느덧 음성 읍내로 접어들고, 어둑어둑한 길을 지난다. 음성역에 닿는다. 한숨을 몰아쉬며 자전거에서 내린다. 손가락이 꽁꽁 얼어붙었다. 주머니에 손가락을 찔러넣는다. 몇 분쯤 손가락을 녹이고 나서야 꼬물락꼬물락 움직일 만하다. 자전거는 기차 타는 곳까지 끌고 가서 뜯어야겠다.

- 음성역부터 대전역까지는 무궁화 기차를 탄다. 대전역에 내려 서대전역으로 달린다. 그러나, 대전역부터 서대전역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찬찬히 보여주는 길그림이 없다. 대전역에서 청소하는 일꾼한테 말씀을 여쭌다. 이 말씀대로 달리며 도청 앞에서 왼쪽으로 도는데, 도청 앞에서 왼쪽으로 꺾는 길이 두 갈래. 이런, ‘어느 왼쪽’으로 가야 하나. 깊은 왼쪽 말고 안쪽 왼쪽으로 가기로 한다. 어디로 가든 길은 이어지겠지. 한동안 달리며 저 옆으로 갔어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몇 분쯤 그대로 달리다 보니 드디어 길알림판이 나온다. 내가 달리는 이 길이 맞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 서대전역에 닿아 먼저 뒷간에 들른다. 기차 들어올 때를 기다린다. 기차역 일꾼이 “접이식 자전거이지요?” 하고 묻는다. 싱긋 웃으며 “네.” 하고 대꾸한다.

- 고속철도에는 자전거를 접어서 예쁘게 모실 자리가 있다. 다만, 이 자리는 ‘승무원 자리’. 고속철도 승무원한테 미안한 일이지만 이곳에 둔다. 승무원이 앉을 자리는 기차 칸 사이사이 빈 데에 둘 더 있기에, 미안하면서도 여기에 두기로 한다. 자전거 몸통 잘 보이는 데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큼직하게 적는다. 기차에 자전거를 실을 때에는 붙임쪽지를 챙겨서 붙이면 한결 잘 보이겠다고 생각한다.

- 광주역에 닿다. 그런데 이곳이 ‘광주역’인지 ‘광주송정역’인지 헷갈린다. 고속철도는 광주송정역으로 달리지 않나. 물어 볼 사람이 없어 알쏭달쏭해 하다가 그냥 달려 보기로 한다. 어느 쪽이든 시내 안쪽으로 가야 시외버스 타는 데가 나올 테니까. 대전에서처럼 내 느낌을 믿고 달린다. 내 느낌을 믿고 달리다가 엉뚱한 데로 빠지는 적이 곧잘 있는데, 오늘은 용케 내 자전거가 제길을 잘 찾는다. 무등경기장을 왼쪽으로 낄 무렵 시외버스 타는 곳을 알리는 길알림판이 드러난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자전거로 건널목을 건너는데 까맣고 커다란 자동차가 푸른불인데에도 씽 하고 지나가려 한다. 깜짝 놀라서 멈춘다. 자동차도 멈춘다. 버젓이 푸른불이요, 이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과 자전거가 있는데 왜 함부로 내달리는가.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야 하시는가.

- 광주에서 고흥 들어가는 시외버스 표를 끊는다. 내가 선 줄에 있는 두 사람이 몹시 오래 끌며 표를 끊는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저희 표를 다 끊었으면 뒤에 선 사람을 생각해야지요. 한 사람 두 사람이 일 분 이 분 질질 끄는 바람에 뒷사람은 그만 차를 놓칠 수 있어요. 당신들한테는 가벼운 수다요 ‘이제 표를 끊었으니 느긋할’는지 몰라도, 표를 끊으려고 기다리는 사람한테는 다른 일이 돼요.

- 고흥읍에서 내린다. 짐칸에서 자전거를 내릴 때에 버스 일꾼이 내려서 바라본다. 도와주려고 하셨나 보다. “거그 말고 뒤에 실었으면 바퀴를 빼지 않고도 통째로 실을 수 있는디.” “아, 그래요. 그러면 다음에는 그렇게 할게요.”

- 우체국에 들러 편지 한 통을 부친다. 김밥집에 들러 김밥 두 줄을 산다. 우리 식구가 살아가고픈 마을까지 자전거로 달리기로 한다. 고흥읍에서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까지 군내버스로는 20분. 자전거로는 몇 분이 걸릴까.

- 14시 08분에 고흥읍에서 벗어난다. 읍내에서 포두 쪽으로 나오는데, 읍내에서는 길이 판판하지만, 도양과 포두로 갈리는 길부터 오르막이다. 신호리에서 읍내로 나올 때에 읍내 막바지는 내리막이 될 테니까, 이때에는 괜찮겠지. 한참 오르막을 달리고 나서 포두면에 접어들 때까지는 내리막. 거꾸로 읍내로 나올 때에는 이곳까지 오르막이 되겠구나. 14시 24분 포두면. 조그마한 면내를 슬슬 지나간다. 나중에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 이 길을 달릴 때를 어림해야 하니 애써 빨리 달리지 않는다. 포두면을 벗어나 도화면 쪽으로 가는 길도 오르막. 면내나 읍내만 길이 판판하고 면과 읍을 잇는 길은 다 오르내리막인가. 이래저래 다리힘을 많이 써야 한다고 느낀다. 14시 37분 도화면 들머리. 도화면 길알림돌을 바라보며 새로운 오르막을 맞이한다. 고흥읍부터 신호리까지는 오르내리막이 세 차례로군. 퍽 만만하지 않겠다. 생각보다 오가는 자동차가 많다. 그러나, 자전거로 시골길 달리는 시간이 기니까 오가는 자동차를 많이 만난다 할 수 있겠지. 또, 고흥군에서 고흥읍을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14시 47분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 마을회관 앞. 도화면 들머리부터 이곳까지 오는 동안 자동차가 거의 없다. 그래, 이렇게 마을 깊이 들어오는 데로는 오갈 차가 없겠지. 77번 국도까지만 자동차가 조금 있다 할 테지.

-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오기까지 자동차에 치여 죽은 짐승을 제법 많이 보았다. 군내버스를 타고 움직일 때에는 길죽음짐승을 거의 헤아리지 못했다. 아니, 버스를 타면 길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길죽음짐승을 거듭 밟고 지나가더라도 느끼지 못한다. 길죽음짐승은 그야말로 떡처럼 납작하게 눌린다. 어느 길죽음짐승은 찻길 맨 바깥 하얀 줄 너머인데에도 떡이 된다. 어떻게 이러할 수 있을까. 이 자리에서 치여 죽고 떡이 되었다면,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일부러 하얀 금 바깥으로 달렸다는 소리일밖에 없다.

- 마을 빈집에 닿아 혼자 청소를 하다가 문득 떠올라, 자전거를 몰고 도화 면내로 가서 가게에서 막걸리 두 병이랑 담배 한 보루를 사다. 가게 할머니가 “으떻게 이런 데까지 와서 젊은네가 살려고 할까?” 하고 묻는다. “좋은 마을에서 아이들하고 잘 살고 싶어서요.” 하고 말씀드린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갓 벤 나락을 말린다고 온통 노란 빛깔. 나락내음 흙내음 땀내음. 나락 사이를 자전거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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