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널기


 조물조물 주물러서 헹구기까지 마친 빨래를 바가지에 수북하게 담아 마당으로 나온다. 마당에 빨랫대 세워 빨래널기를 할까 생각하다가, 앞으로 우리 밭이자 아이들 흙놀이터가 될 빈터로 올라간다. 빨랫대는 헌 시멘트기와로 받친다. 둘째 기저귀랑 첫째 옷가지를 넌다. 파란하늘과 고운 햇살을 받으면서 이 빨래가 보송보송 마르겠지. 모과나무 곁에서 빨래가 마르고 하얀구름 올려다보며 빨래가 마른다. 다 마친 빨래를 널고 나면 아주 말끔하고 개운하다. (4344.10.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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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0-30 20:53   좋아요 0 | URL
ㅎㅎ 이사간 집이신가요?

파란놀 2011-10-31 04:35   좋아요 0 | URL
새 보금자리 뒷터랍니다~
 
골목안 풍경 전집 - 김기찬 사진집
김기찬 지음 / 눈빛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오랜 나날 품을 들여야 할 골목길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66] 김기찬,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2011)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골목동네를 찾아와 골목길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빛살과 그림자를 어떻게 가누느냐에 따라 ‘내 눈에 비치는 골목동네 모습’뿐 아니라 ‘내가 찍은 사진에 그려지는 골목동네를 바라볼 다른 사람이 느낄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골목길을 끼는 골목동네 작은 집에서 살던 사람은 압니다. 골목동네를 찾아와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사람치고 ‘골목사람 삶과 넋과 꿈을 사랑스레 헤아리거나 어깨동무하며 사진기를 손에 쥐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를. 거의 언제나 ‘스쳐 지나가는 구경꾼 눈길과 마음길과 손길’로 사진기를 다룰 뿐, 정작 골목사람 삶과 넋과 꿈에 함께 젖어들면서 어깨동무하려 하는 사진쟁이는 아주 드물어 ‘사진기 어깨에 걸친 사람만 보면 얼마나 진저리쳐지는가’를.

 1938년에 태어난 김기찬 님은 2005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골목안 풍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책은 모두 여섯 권 내놓았고, 《잃어버린 풍경》과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도 하나씩 내놓았습니다. 김기찬 님 사진은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모을 만하다 할 텐데, 《골목안 풍경》은 이름 그대로 ‘서울 골목동네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풍경)’을 담아서 나누는 사진이야기입니다. 2011년 8월,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2011)이라는 이름을 달고 두툼하며 값싼 사진책이 새롭게 나옵니다.

 김기찬 님은 “어릴 적 아름답게 채색되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뛰어놀던 골목을 찾는다(33쪽).”고 말합니다. 아름다이 아로새겨진 옛이야기란 바로 ‘풍경’입니다. 지난날 김기찬 님 아름답던 나날을 돌이키면서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왜냐하면, 지난날 김기찬 님 어린 삶이 가난했건 가멸찼건, 집이 작았건 컸건, 식구와 형제가 많았건 적었건, 어찌 되든 김기찬 님 마음과 몸에 아로새겨진 어린 나날 이야기는 아름답다고 느끼기에, 이 아름다움을 찾아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김기찬 님이 아주 가멸찬 집안에서 태어나 먹고사는 걱정이나 입에 풀칠할 근심이 없이 자랐다면, 값지며 좋다 하는 옷을 아무렇지 않게 사다 입는 집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김기찬 님은 어린 나날을 어떻게 떠올릴 만했을까요. 아니, 굳이 어린 나날을 떠올리거나 어린 나날을 아름다이 떠올리거나, 어린 나날을 아름다이 떠올리며 오래오래 사진길 걸을 생각을 했을는지요.

 나는 1998년에 사진을 처음 배울 무렵 헌책방에서 김기찬 님 《골목안 풍경》 사진책을 곧잘 마주했습니다. 사진을 아직 모르던 이때에 《골목안 풍경》은 퍽 그럴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책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무렵은 대학교 앞 신문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한 달에 삼십이만 원으로 배움값이랑 책값이랑 살림돈을 대던 때라, 헌책방에서 《골목안 풍경》을 1만 원에 팔아도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눈으로 훑기만 했어요. 1999년 여름에 출판사에 일자리를 얻어 들어간 다음부터는 판끊어진 《골목안 풍경》은 헌책방에서 장만하고, 새로 나오는 《골목안 풍경》은 새책방에서 마련했습니다. 《잃어버린 풍경》과 《역전 풍경》도 따끈따끈하게 나왔을 때에 곧장 마련했어요. 이들 사진책은 처음 나올 때에 곧바로 마련하지 않으면 어느새 판이 끊어지거든요.

 사진길을 처음 걸을 때에 만난 김기찬 님 《골목안 풍경》은 ‘앞으로 내 사진감으로 구태여 골목길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도 되겠다’ 하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이 만하게 나오는 골목길 사진책이 있으니, 나는 나대로 내 사진감인 헌책방을 놓고 헌책방 사진이야기를 일구면 넉넉하리라 느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다.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도대체 인간의 체취를 찾을 길이 없다. 대신 마드리드의 뒷골목이나 멕시코 외곽에 오래된 도읍의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홍미진진한 이색 풍물이 그 나라의 진정한 얼굴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김형국,234쪽).”고 하듯, 김기찬 님은 골목길에서 사람내음과 사랑내음과 살내음을 느낀다면, 나는 헌책방에서 사람내음과 사랑내음과 살내음을 느낍니다.

 이러다가 지난 2007년에 내 살림터를 인천으로 다시 옮기면서 비로소 ‘인천 골목길’을 내 사진기로 담아 보았습니다. 2010년에 충청북도 멧골자락으로 살림터를 옮긴 뒤에는 음성 읍내 골목길을 내 사진기로 담아 보았어요. 올 2011년에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살림터를 옮기면서 고흥 시골마을을 내 사진기로 담아 봅니다.

 내 나날을 하나하나 돌이킵니다. 나 스스로 맨 처음에 내 사진감으로 ‘골목길’을 붙잡지 않은 까닭은 오직 한 가지였다고 느낍니다. 나 또한 인천 도화동 624번지에서 태어나 자란 골목사람이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고향마을 인천을 떠나 서울에 있는 대학교 둘레에서 살았고, 대학교를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간 다음에는 서울 종로구 평동 골목 기스락에서 살았어요. 이렇게 서울에서 지내던 때에는 ‘서울집’이라기보다 ‘헌책방 많은 서울’이라는 데가 내 삶터라고 여겼어요. 나는 인천사람이고 책을 읽는 사람이며 헌책방 책쉼터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아주 마땅히 내 사진감이자 글감은 ‘헌책방’이 될밖에 없어요.

 곧, 2007년에 고향 인천으로 돌아온 뒤에 골목동네 한켠 조그마한 옥탑집에서 두 해 반을 살고, 다른 골목동네 한켠 오래된 벽돌집 2층에서 한 해 즈음 사는 동안에는 내 사진감이 ‘(인천) 골목길’로 새로워져요. 이렇게 될밖에요. 내 삶터가 달라졌으니 내 사진감이 달라질밖에요.

 김기찬 님은 “골목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늘 골목에 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일하곤 했다. 그런데 몇 해 지나지 않아 할머니를 영정 속에서 볼 수 있었다(385쪽).” 하고 말합니다. 김기찬 님 사진책 《골목안 풍경 전집》을 차근차근 들여다본 분이라면 문득 느끼리라 보는데, 김기찬 님이 담은 ‘서울 골목길’은 그야말로 좁습니다. 그야말로 좁을 뿐 아니라 빈터가 아주 드뭅니다. 모든 길바닥이 시멘트로 깔리고, 작은 풀씨나 풀꽃이나 나무 하나 자랄 틈바구니가 없어요. 드문드문 스티로폼 꽃그릇이나 헌 플라스틱통 꽃그릇을 구경할 수 있지만, 비어서 헐리는 집이 없어 조그마한 텃밭이나 꽃밭 한 자락 마주하기란 몹시 힘들어요. 왜냐하면, 서울은 땅값이 아주 비싼데다가 사람이 워낙 넘치듯 많아, 골목동네에서도 ‘빈터’가 생길라치면 어김없이 사람 하나 누일 방 하나 뚝딱 섭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나중에 옆지기를 만나 아이를 낳고 살던 골목동네는 《골목안 풍경 전집》에 나오는 ‘서울 골목길’하고 사뭇 달라요. 인천 골목동네는 서울 골목동네하고 크게 달라요. 서울은 사람들이 온 나라에서 모여드는 곳입니다. 인천은 사람들이 온통 서울로 빨려드는 곳입니다. 일터를 서울에 두고 새벽과 밤마다 지옥철에 시달리는 데가 인천입니다. 이른새벽을 지나 밤이 될 때까지 온통 고요하고 썰렁한 인천 골목동네입니다. 그런데 이 썰렁한 인천 골목동네는, 서울로 빨려든 사람을 뺀 다른 사람들, 이른바 ‘나머지’ 사람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고요한 삶터’를 빛다르게 일구어요. 길바닥 한켠 시멘트나 거님돌을 깨고는 밑바닥 흙을 손바닥으로 보듬어 텃밭이랑 꽃밭을 일굽니다. 시멘트로 깔린 골목길과 당신 살림집 시멘트 담벼락 사이에 길다랗고 좁다란 텃밭이나 꽃밭을 만듭니다. 버려진 통이나 그릇을 하나하나 여러 열 해에 걸쳐 그러모아 새롭게 텃밭이나 꽃밭을 삼습니다. 이웃집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비고 만 집이 헐리거나 스스로 무너지면, 이웃집이 서울로 떠나 비고 만 집이 쓰러지거나 스스로 허물어지면, 이렇게 빈 자리 시멘트 찌끄러기와 돌조각을 바지런히 골라 집터 가장자리에 빙 둘러 울을 낮게 쌓으며 텃밭으로 새로 일굽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는 어디에서나 ‘빽빽한 집들 틈바구니에 어김없이 깃든 텃밭’을 만날 수 있어요. 벽돌로 지은 2층 골목집에서 살던 때에는 1층 집임자 할아버지가 새벽 대여섯 시부터 집 안팎을 비로 쓸고 낮에 또 한 번 쓸며 저녁에 다시금 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이 오는 날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어느 골목동네 어느 골목집이든 눈을 비질하는 소리를 듣고 모습을 보았어요.

 김기찬 님은 “이 집을 계단집이라고 했는데 아주머니들이 많이 모여들어 정담을 나누는 곳이었다. 오른쪽에 앉아 이가 아프신지 인상을 쓰고 계신 분이 왕초 할머니시다. 이곳에 모이는 분들 중에 연세가 제일 많아 왕초 언니라고도 했다 … 11년 후, 그동안 왕초 할머니와 나는 많이 친해졌다. 왕초 할머니가 사진 촬영하는 나를 놀리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550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참 틀림없다 싶은 이야기입니다. 김기찬 님은 오래도록 다리품을 팔아요. 아니, 다리품을 판다기보다 오래도록 골목동네 사람들하고 이웃으로 지내요. ‘이웃으로 지내기’에 자주 찾아와서 인사를 여쭙니다. 이웃으로 지내니까 꾸준히 찾아와서 말을 섞고, ‘기념사진’을 찍어서 베풉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며 살던 지난날, 나날이 골목동네 허물어 아파트 올려세우려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정책 탓에 ‘쓰러지고 퀘퀘하며 지저분한데다가 어두운’ 골목동네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개발정책에 쓰려는 공무원이 퍽 자주 돌아다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골목동네 사람으로서 날마다 골목길을 거닐면서 골목가게를 드나들고, 골목길 저잣거리에서 장보기를 하며, 무럭무럭 크는 아이 손을 잡고 골목마실을 즐겼습니다. 나 또한 골목동네 사람인 만큼 골목꽃 내음을 아이랑 함께 느끼고, 우람하게 자란 골목 감나무이든 골목 대추나무이든 골목 호두나무이든 골목 복숭아나무이든 참 예쁘다고 느끼면서 아이한테 감꽃과 대추꽃과 복숭아꽃부터 감 열매랑 대추 열매랑 복숭아 열매가 맺히는 모습까지 두루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이하고 골목마실을 하면서도 ‘재개발 때문에 사진 찍으러 다니슈?’ 하는 핀잔과 따가운 눈길을 잔뜩 받아야 했어요.

 김기찬 님은 “골목에 들어서면 늘 조심스러웠다. 특히 동네 초입에 젖먹이 아기들을 안고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은 동네에서 쫓겨나기 알맞은 행동이었다. 사실 젊은 엄마들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은 내 나이도 오십이 넘어서였다.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590쪽).” 하고 말합니다. 참말 옳은 말입니다. 나는 서른을 좀 넘긴 나이에 골목길 사진을 찍으며 ‘나이가 어려 꽤 힘들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나이가 어리거나 젊다 해서 골목길 사진을 못 찍으란 법이란 없어요. 나이가 어리거나 젊으면 나이가 어리거나 젊은 결대로 골목길을 새삼스레 바라보고 느끼면서 사진으로 담으면 돼요. 다만, 나어린 사람이 여느 골목사람이랑 이웃이나 동무로 사귀며 지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나어린 사람은 나어린 때이니까 몇 차례 드나들며 사진찍기를 하겠구나 하고 여기거든요. 나이 조금 먹으면 다른 사람하고 똑같이 골목동네를 다시 안 찾아오겠거니 하고 여기거든요. 그렇다고 나이든 사람이 오래도록 골목마실을 한다거나 한결 푸근하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나어린 사진쟁이한테 골목 할매나 할배는 으레 ‘자네가 아직 젊으니까 좋아(예뻐) 보인다고 말하지.’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나이든 사람한테는 ‘나이든 사람이 어린 나날 옛이야기 서린 모습을 찾으러 왔나 보다.’ 하고 여겨 버릇합니다. 젊은 사람이 골목동네를 날마다 몇 시간씩 거닐면서 사진을 찍으면 ‘젊은 양반이 뭐 할 것이 없어 이런 동네에서 사진을 찍나?’ 하면서 혀를 끌끌 차곤 합니다. ‘사진으로 뜻을 이루거나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벌려면 골목동네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되니까 오지 말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나이든 사람한테는 ‘나이들어 돈벌 걱정을 안 해도 될 만하니 이렇게 사진을 찍으러 다닐 수 있다.’고 여기곤 해요.

 젊은 사진쟁이한테 골목길 사진이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구경꾼으로 사진을 찍으려 할 때에는 쉽지 않습니다. 작은 ‘골목집’을 얻어 젊은 ‘골목사람’으로 지내는 동안 ‘골목마실’을 날마다 마음껏 누리면서 ‘골목가게’에 드나들고 ‘골목고양이’랑 눈인사를 나눈다면, 골목동네에서 피어나는 어여쁜 빛깔이 시나브로 내 몸과 마음으로 짙게 스며든다고 느끼리라 믿어요. 작은 골목집 한 곳에서 두서너 해쯤 달삯을 내고 지낸다면, 두서너 해 뒤에 다른 골목집 한 곳에서 또 두서너 해쯤 달삯을 내고 산다면, 두서너 해 지나고 나서 또다른 골목집 한 곳에서 다시금 두서너 해쯤 달삯을 내고 살아간다면, 김기찬 님은 《골목안 풍경》 사진이야기로 사진꽃을 피운 결하고 나란히 놓을 아름다운 ‘골목삶 사진책’ 하나 싱그러이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오랜 나날 품을 들였기에 내놓을 수 있는 《골목안 풍경 전집》입니다. 오랜 나날 사랑을 들이면 온 나라 골목동네마다 모두 새로우면서 다 다른 빛줄기 감도는 따사로운 골목길 사진책이 골고루 태어나리라 믿어요. (4344.10.29.흙.ㅎㄲㅅㄱ)


― 골목안 풍경 전집 (김기찬 사진,눈빛 펴냄,2011.8.27./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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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0-3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사진을 보니 지금과는 무척 다른 느낌을 주는군요.불과 얼마전 일일텐데 정말 많이 바뀐것 같습니다.

파란놀 2011-10-31 02:59   좋아요 0 | URL
서울에서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서울을 벗어나기만 하면
인천에서든 부산에서든 목포에서든
또 다른 동네에서든
어렵잖이 만날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답니다..
 


 잘 자렴


 아버지는 아침에 집 고치는 일을 하고, 어머니는 둘째를 재우고 나서 첫째랑 마을 한 바퀴 마실을 한다. 첫째랑 두 시간 가까이 마을 한 바퀴 돌기를 했기에 고단함이 몰려들어 낮잠을 잔단다. 아버지는 잠든 아이 곁에 살며시 누워 함께 눈을 붙이다가는 책을 조금 읽는다. 시골집으로 옮기고 나서 처음으로 느긋하게 드러누워 본다. 그래 봤자 얼른 다시 일어나 청소와 손질을 마저 해야 하지만, 이렇게 함께 낮잠 조금 자고 책도 살짝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지. 이 좋은 날을 좋은 넋으로 좋은 꿈을 키우면서 누리자. 아이야, 잘 자렴. 자고 일어나서 또 신나게 놀렴. (4344.10.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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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와 다시 책읽기


 우리 집 뿌리를 잃은 채 한 달 남짓 떠돈 끝에 드디어 마련한 새 보금자리에서 이모저모 집 손질을 얼추 마무리짓는다고 느껴 아이가 볼 그림책을 몇 권 장만한다. 아이가 볼 그림책까지 몽땅 짐을 묶었고, 이 짐은 아직 가져오지 못할 뿐 아니라, 바깥으로 떠돌면서 아이가 그림책 하나 느긋하게 펼칠 겨를이 없었다.

 오늘 낮 우체국 일꾼이 소포꾸러미를 갖다 준다. 책이 왔구나. 가위도 아직 없어 드라이버로 소포꾸러미를 끌른다. 아이가 볼 그림책부터 꺼낸다. 아버지가 읽을 책도 몇 권 곁들였다. 아이는 참으로 모처럼 제 집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림책을 넘긴다. 이제 밤나절 다 함께 잠들기 앞서 모두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잠자리에 누울 무렵,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한테 그림책 한두 권 읽어 줄 수 있겠지. 다음주나 다다음주 무렵에 책짐을 옮길 수 있을까. 부엌과 끝방 청소와 벽종이 바르기를 끝낸다면 책짐을 옮길 텐데, 다 끝마치지 못하더라도 먼저 책짐부터 옮기고 나중에 손수레로 살림짐을 나를까 싶기도 하다. (4344.10.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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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의 정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과 살가이 함께 살아가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 데이비드 스몰·사라 스튜어트, 《리디아의 정원》(시공주니어,1998)


 우리 식구는 집을 옮겨 다닙니다. 네 식구 살림을 꾸리기 앞서 혼자 지내던 때에도 으레 집을 옮겨 다녔습니다. 혼자 지내던 때에는 집에 온통 책을 쟁이느라 해마다 부쩍 늘어난 책을 더 넉넉히 건사할 집을 찾아 옮겨 다녔어요. 살림살이는 얼마 안 되고 책만 잔뜩 꾸려 조금씩 넓은 살림터를 찾았습니다.

 네 식구 살림을 꾸리는 오늘날에도 책짐은 참 많습니다. 그래도 여느 살림살이가 제법 늘었다 할 만할 텐데, 옆지기가 뜨개질을 할 때에 쓰는 실과 바늘을 뺀다면 옷가지랑 그릇과 냄비가 살림살이 모두라 할 만합니다.

 벌이가 많지 않으니 살림 늘어날 일이 없는지 모릅니다. 벌이가 있어도 딱히 뭘 장만하거나 갖추는 데에 안 쓰니 살림은 이냥저냥 적은지 모릅니다. 벌이가 있으면 옆지기는 실이랑 바늘을 사고, 나는 책을 사니까, 우리 집에는 책이랑 실만 있다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거의 새로 사지 않습니다. 이웃한테 말씀을 여쭈어 이웃 아이들이 많이 자라며 더 못 입는 옷을 얻습니다. 이웃이 먼저 아이들 옷을 그러모아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 집에 마실을 오면서 아이들 새옷을 주시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 저녁을 다 먹고 나서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우리 집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제가 외삼촌네서 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면서요? 할머니에게서 들으셨어요? 아빠가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이제는 아무도 엄마에게 옷을 지어 달라고 하지 않는다는걸요 ..  (6쪽)


 집에 빨래기계를 들이지 않기에 날마다 손빨래를 합니다. 기계가 한꺼번에 빨래를 해내고 물기까지 퍽 많이 짜내면 집일을 한결 덜 만하다 하겠지만, 빨래기계를 쓴대서 집일이 줄어든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외려 집일이 더 늘어나지 싶어요. 이런저런 기계나 장비가 쓸모없다고 여기지 않아요. 쓸 기계는 쓰고 쓸 장비는 쓰지만, 나는 내 손을 쓰면서 집일을 하고 싶어요. 손을 쓰면서 집일을 하는 모습 그대로 우리 아이들하고 지낼 때에 즐거워요.

 그제 저녁 아이들을 씻길 때에 첫째 아이한테 대야에 물을 받아 낯과 손을 씻으라 한 다음에 아이 옷가지를 빨래하자니 네 살 아이는 “벼리(아이 이름)는 빨래 못 해요. 아버지가 빨래 해요.” 하고 말합니다. 더 어릴 적에는 저도 빨래를 한다며 아버지 옆에 궁둥이 디밀고 앉아 조그마한 손으로 쪼물딱쪼물딱 주무르더니, 이제는 못 한다고 말합니다. 마당에서 비질을 하면 저도 비질을 하겠다며 아버지 빗자루를 빼앗으려 해서 아이 몫으로 건넬 빗자루를 따로 둡니다. 걸레질을 하면 아이가 저도 하겠다며 아버지 걸레를 빼앗기에 걸레를 여럿 마련합니다. 밥상을 행주로 닦을 때에도 아이는 제가 하겠다며 나섭니다. 수저 놓기는 아예 아이한테 맡깁니다. 아이는 집에서 저희 어머니랑 아버지랑 동생이랑 함께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을 맡아요. 아버지 사진기를 안 떨어뜨리면서 들고 다닐 줄 압니다. 물병을 들고 나를 줄 압니다. 뜨거운 국을 후후 식혀 어머니나 아버지보고 마시라며 내밀 줄 압니다. 혼자서 옷을 갈아입을 줄 압니다.

 씩씩하며 다부진 아이는 씩씩하고 다부지게 하루하루 맞이합니다. 예쁘며 맑은 아이는 예쁘며 맑게 새날을 누립니다.

 어버이는 이 씩씩하며 다부진 아이랑 어울리면서 씩씩하며 다부지게 살아가자고 새로 다짐합니다. 어버이는 이 예쁘며 맑은 아이랑 복닥이면서 예쁘며 맑게 지내자고 거듭 헤아립니다.


.. 이 동네에는 집집마다 창 밖에 화분이 있어요! 마치 화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제 봄이 오기만 기다릴 거예요 ..  (12쪽)


 그림책 《리디아의 정원》(시공주니어,1998)을 읽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책방에서 장만하면서 읽고, 아이가 집에서 찬찬히 넘기면서 읽습니다. 《리디아의 정원》은 1930년대 미국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가난한 나머지 리디아라는 아이는 저희 어버이랑 함께 살아가지 못합니다. 시골에서 할머니랑 살아가며 흙을 만집니다. 노상 흙을 보듬으면서 일굽니다.

 시골 아닌 도시에서 일자리가 없어 고달픈 아버지는 어떻게든 도시에서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도시 일자리를 찾습니다. 이동안 리디아라는 아이는 도시에 있는 외삼촌 댁에서 지내기로 합니다. 리디아네 어머니는 옷을 기워 파는 일을 하는 듯한데, 사회와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까 리디아네 어머니한테서 옷을 사서 입는 사람이 싹 끊겼는가 봐요. 이리하여, 리디아는 퍽 어린 나이일 테지만, 어머니하고도 아버지하고도 떨어진 채 살아가야 합니다. 돈이 없는 탓에 아버지를 볼 수 없고, 가난한 나머지 어머니 품에 안길 수 없어요.

 리디아네 어버이는 왜 리디아를 도시로 불러들이려고 할까요. 리디아네 어버이는 왜 리디아와 함께 리디아네 할머니랑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아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돈을 안 벌어도 되지 않나요. 먹고살 길이란 먹을거리를 손수 일구어 얻어도 열리지 않나요. 꼭 돈을 장만해서 먹을거리를 가게에서 사다 먹어야 하나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 거둔 먹을거리를 사람들한테 팔 때에도 돈을 얻지 않나요.


.. 집에서 오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저도 더 자주 편지를 쓰도록 할게요. 보내 주신 꽃씨들을 심느라 바빠서요. 깨진 컵이나 찌그러진 케이크 팬에다 꽃씨를 심고 있습니다. 할머니, 흙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으세요? 아래 공터에서 질 좋은 흙을 좀 가져왔거든요 ..  (17쪽)


 리디아는 시골에서 할머니랑 살아가는 때에도 흙을 만지고 푸나무랑 사귑니다. 리디아는 도시로 찾아가서 외삼촌이랑 지내는 때에도 빵반죽뿐 아니라 흙을 함께 만지고 꽃하고 사귑니다. 아버지는 리디아한테 흙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리디아한테 흙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리디아는 할머니랑 어울리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흙을 바라보고 흙을 밟으며 흙을 보듬습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목숨이요, 살아숨쉬는 나날에는 흙에서 기운을 얻어 씩씩한 넋을 키우는 줄 느낍니다.

 그러니까, 살가이 함께 살아가면 됩니다.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같이 지내면 됩니다. 사랑스레 손잡으면서 나란히 아끼고 좋아하면 돼요.

 작은 집에서 살아가면 됩니다. 서울 강남에서 한 평에 일 억이 넘는 아파트를 장만해야 내 삶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마흔 평 마당과 마흔 평 텃밭 딸린 스무 평 작은 집을 천만 원에 장만해서 조용히 살아가면 됩니다. 큰도시에서 전세돈 삼천만 원이나 오천만 원짜리 방이나 집을 얻으려고 용을 쓸 수 있지만, 시골에서 집과 논밭을 자그맣게 장만해서 우리 집 먹고살 길을 흐뭇하게 열면 돼요.

 무상급식에 목매달지 않아도 돼요. 집에서 손수 도시락을 마련하면 되지요. 반값등록금을 꼭 이루어야 하지 않아요. 애써 대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내 삶길을 예쁘게 열 수 있어요. 대통령이나 서울시장이 청년일자리를 몇 만 개씩 만들 까닭은 없어요. 시골에서 할머니랑 할아버지만 흙을 일구도록 등돌리지 않으면 되거든요. 펜대를 잡거나 셈틀을 또닥거려야 일자리이지 않아요. 버스를 몰거나 지하철을 몰거나 공장 기계를 돌려야 일꾼이 되지 않아요.

 리디아는 빵반죽을 주무르지 않아도 예쁜 아이입니다. 리디아는 저희 아버지나 어머니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지 않아도 아름다운 아이입니다. 리디아는 ‘원예사’나 ‘정원사’가 아닙니다. 리디아는 혼자서 어여쁘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슬기롭게 깨닫는 아이입니다. (4344.10.28.쇠.ㅎㄲㅅㄱ)


― 리디아의 정원 (데이비드 스몰 그림,사라 스튜어트 글,이복희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8.3.3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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