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녹여서 쓰는 글


 힘겨운 아픔을 삭여서 쓰는 글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아요. 고단한 나날을 울면서 쓰는 글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아요. 괴로운 눈물을 곱씹으며 쓰는 글이라고 해서 나쁠 수 없어요. 다만, 힘겨운 아픔을 쓰든 고단한 나날을 쓰든 괴로운 눈물을 쓰든, 따순 사랑을 녹여서 쓰는 글일 때에 가장 좋아요.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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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소리 1
우사미 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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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만화책 즐겨읽기 76] 마키 우사미, 《사랑 소리 (1)》


 아이들은 사랑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또래동무를 사랑할 수 있고, 언니나 누나나 오빠를 사랑할 수 있으며, 어머니나 아버지나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어요. 모두들 사랑을 하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풀을 사랑하고 풀벌레를 사랑하며 풀꽃을 사랑하면서 씩씩하게 큽니다.

 사랑을 하는 아이들이기에 해맑으며 싱그럽습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아이들인 만큼 티없으면서 정갈합니다. 사랑을 꿈꾸며 사랑을 일구는 터라 노상 빛나면서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하는 어른 또한 맑고 밝습니다. 사랑을 하는 할머니도 맑으며 밝습니다. 사랑을 하는 갓난쟁이도 맑으면서 밝아요.

 사람은 밥을 먹어 목숨을 얻고, 바람을 마시면서 숨을 쉬며, 물을 받아들여 몸을 움직이는데, 밥과 바람과 물은 바로 사랑이 스며들 때에 제힘을 냅니다.

 사랑으로 지은 밥이라야 맛납니다. 사랑으로 지은 옷이어야 어여쁩니다. 사랑으로 지은 집이어야 포근합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손길이어야 따스합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꿈이어야 넉넉합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믿음이어야 튼튼합니다.

 사랑은 지식이 아닙니다. 이런저런 지식을 깨우친대서 사랑을 꽃피우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길잡이책이나 처세책이나 자기계발책을 읽는대서 사랑을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어요.

 사랑은 오직 삶입니다. 조잘조잘 떠드는 수다가 사랑이 될 수 없어요. 나날이 부대끼는 내 애틋한 삶에서 시나브로 샘솟는 사랑이에요. 언제나 복닥이는 내 아기자기한 삶에서 천천히 피어나는 사랑이에요.


- 난 아직 모른다. 사랑을 하면 내 가슴에선 어떤 소리가 나게 될까? (5쪽)
- “우리 아빠는 그림동화 작가야. 별로 인기는 없지만.” “흐응 굉장하다. 엄마는? 혹시 만화가 아냐?” “아, 엄마는 안 계셔. 내가 10살 때 돌아가셨거든. 아, 근데 우리 엄마는 글을 썼었어! 취미긴 하지만. 그리고 요리하는 것도 엄청 좋아했어. 먹는 거랑! 너네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나도 없어. 얼굴도 기억 안 나.” (38쪽)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어버이가 처음 베푼 사랑으로 새 목숨을 얻고, 어버이가 나누는 밥에 서린 사랑을 먹으며 숨결을 잇습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고 달리며 노래하는 보금자리에서 사랑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더 많은 놀잇감이나 더 많은 책이나 더 커다란 놀이터가 아닌, 살가운 사랑이 얼크러진 이야기와 흙과 햇살이 있을 때에 예쁘게 자라요.

 아이들이 예쁘게 자랄 만한 마을이라면 어른들도 예쁘게 어깨동무할 만한 마을입니다. 아이들이 푸석푸석한 얼굴로 겉모습 가꾸기에 사로잡히는 곳에서는 어른들도 푸석푸석한 얼굴로 겉치레 꾸미기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니까, 어른들부터 스스로 겉껍데기를 뒤집어쓰는 곳에서 아이들한테 겉껍데기에 휘둘리는 삶을 베푸는 셈입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사랑이 사랑을 부릅니다. 사랑이 없었기에 사랑을 모른다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사랑을 나눌 줄 모르고 맙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사랑을 찾아요. 내 마음은 늘 사랑을 좇아 움직입니다.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살았다면, 이 좋은 사랑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나날을 누리고,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지냈다면, 이 애틋한 사랑을 일구고 싶은 길을 걷습니다.


- “거짓말하는 사람이라도 겉모습만 좋으면 사랑받는군!” (21쪽)
- 마음 깊이 박혀 한편으로는 꿈처럼 덧없고 한편으로는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 같은 추억이었는데. 코우키한테는 그게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이었나 봐. (86쪽)
- “그런 특별한 일을 잊을 리가 없잖아.” 꿈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았던 그날들이 또렷하게 선명한 색으로 되살아난다. 내가 가슴에 소중히 품은 보물을 코우키도 소중히 여기고 있었던 거야. (92∼94쪽)


 마키 우사미 님 만화책 《사랑 소리》(대원씨아이,2009) 1권을 읽습니다. ‘중3’에서 ‘고1’로 들어서는 아이 ‘이치고’는 사랑을 꿈꿉니다. 사랑을 할 때에 가슴에서 어떤 소리가 날까 궁금해 하며 기다립니다. 열여섯 살 아이는 열여섯 살 아이대로 사랑을 꿈꿉니다. 이제껏 제 어버이와 둘레 사람들한테서 받으며 나눈 사랑에서 거듭나는, 새로 태어나는, 찬찬히 열매를 맺을, 이 아이 모든 꿈과 삶을 녹여내는 사랑을 꿈꿉니다.

 사랑을 꿈꾸기에 사랑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힘차고 맑은 소리를 기다리기에 힘차고 맑은 사랑이 태어날 수 있어요.

 열여섯 살 이치고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치고와 같은 나이일 때에, 또 이치고처럼 차근차근 푸른 넋을 빛낼 때에, 사랑을 간직하면서 따사로이 품에 안았겠지요. 좋은 사랑을 받고 좋은 사랑을 나누면서 한 살 두 살 맞아들였겠지요. 빛나는 다섯 살, 열 살, 열다섯 살, 스무 살, 스물다섯 살을 거쳤겠지요. 마흔 살에는 마흔 살대로 빛나고 예순 살에는 예순 살대로 빛날 수 있겠지요. 가슴이 뛰는 삶을 사랑하면서 하루하루 고마이 맞아들였겠지요.


- “오길 바랐던 걸까? 응. 오길 바랐어. 코우키랑 같이 별똥별 보고 싶었으니까.” (32∼33쪽)
- 내게 보여준 그 다정함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건 믿어. (134쪽)
- 온몸을 내달리는 심장소리. 아아, 이건, 사랑의 소리구나. (138∼139쪽)


 어린 나날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사랑하고는 동떨어진 곳에서 자라야 했다면, 살아야 했다면, 억눌려야 했다면, 시달려야 했다면, 이때에는 어떤 사랑이 숨쉴 수 있으려나요. 사랑이 빛나지 못하고 어두운 그늘이어야 했으면, 이녁은 눈부신 열여섯 나이에 어떤 나날을 보내야 하는가요.

 오늘날 이 나라 푸름이 삶을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 나라 푸름이들, 열다섯 열여섯 일일곱 푸름이들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살을 섞는 놀이가 아닌, 사랑을 하는 삶을 꽃피우는 이 나라 푸름이가 얼마나 될는지 곱씹어 봅니다.

 아니, 푸름이에 앞서, 이 나라 어른들부터 살을 섞는 놀이가 아닌, 사랑을 하는 삶을 꽃피우는 분이 얼마나 될까 가누어 봅니다.

 사랑할 줄 모르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똑같은 굴레를 씌우지는 않나요. 사랑과 동떨어진 채 살섞기만 하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똑같은 쳇바퀴를 물려주지 않나요.


- “넌 나에 대해 모르잖아. 여름에 잠깐 만났던 거 빼고. 네가 나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어? 나다운 게 뭐지?” (120∼121쪽)
- 코우키, 그런 미소를 보고 어떻게 혼자 두고 가란 거야? (165쪽)
-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걱정하는 거야!” (174쪽)
- 안아 주고 싶어. 이렇게 가늘게 떨고 있는 널, 내 모든 걸로. (183쪽)


 사랑할 수 있는 삶이라면 시험성적이야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삶이라면 이름난 대학교에 척척 붙는들 부질없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삶이라면 고등학교만 마치든 중학교만 마치든 즐겁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삶이라면 공무원시험에 붙든 사법고시에 붙든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삶이라면 흙을 어루만지며 누리는 나날이 참으로 즐겁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삶이라면 대통령이 된들 국회의원이 된들 시장이나 군수가 된들 덧없습니다.

 좋아하면 돼요. 걱정하면 돼요. 마음을 기울이면 돼요. 가만히 바라보며 포근히 감싸면 돼요. 아끼는 넋으로 곱게 사랑하면 아름답습니다. (4344.11.6.해.ㅎㄲㅅㄱ)


― 사랑 소리 1 (마키 우사미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9.3.1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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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깔=꿀색 - 한 해외 입양인의 이야기
전정식 글.그림, 박정연 엮음 / 길찾기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을 꽃피우는 꿈
 [만화책 즐겨읽기 75] 전정식, 《피부색깔=꿀색》(길찾기,2008)


 가장 아름답다고 할 만한 곳이 따로 있는지 잘 모르지만, 가장 아름답다고 할 만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 해서 내 삶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둘째로 아름답거나 셋째로 아름다운 곳에서 산대서 내 삶이 덜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고 느끼지 않으며, 막째로 아름다운 곳에서 살기에 내 삶이 찌그렁뱅이가 될 턱이 없다고 느껴요.

 가장 좋다고 할 만한 일이 따로 있는지 잘 모르지만, 가장 좋다고 할 만한 일을 하며 지낸대서 내 삶이 가장 좋을 수 있으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둘째로 좋거나 셋째로 좋다는 일을 하기에 내 삶이 덜 좋을 수 있다고 느끼지 않으며, 막째로 좋은 일을 하니 때문에 내 삶이 꾀죄죄하거나 볼품없을 수 없다고 느껴요.

 어디에서도 내 삶입니다. 어떤 일이어도 내 나날이에요.

 주어진 삶을 고스란히 겪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주어졌기에 마냥 받아들여야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 삶은 주어진 삶이 아니라, 사랑이 열매를 맺어 태어난 삶이거든요. 하늘에서 톡 떨어진 삶이 아니라, 고운 사랑이 따사로이 만나 태어난 삶이니까요.


- 서울의 그 경찰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를 2000명의 친구들이 있는 그 미국식 고아원에 데려다줬으니 말이다. 친구도 생겼고 배가 고프면 먹을 수 있었다. (18쪽)
- 홀트 할머니에 대해, 감사를 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지금도 모르겠다.  세계로 흩어져 입양된 한국 아이들이 20만 명이나 된다. 너무 많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홀트 할머니께 감사하자. 만일 한국에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나는 분명히 군대에 강제징집됐을 것이다. 아니면 굶어죽었을지 모른다. (28∼29쪽)
- 의혹이 내 안에 자리잡았다. 대답 없는 질문들이 내 머릿속에 밀려들었다. 나는 누굴까? 왜 한국은 나를 버린 걸까? 왜 나는 백인이 아닌 거지? (91쪽)


 살아가는 뜻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내 나름대로 얼마나 꽃피우면서 즐길 수 있는가입니다. 살아가는 길은 오직 한 갈래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내 깜냥껏 얼마나 꽃피우면서 누릴 수 있느냐예요.

 나와 옆지기한테서 사랑을 받은 두 아이는 두 아이 나름대로 살아가겠지요. 두 어버이 사랑을 받는 두 아이는 두 아이 깜냥껏 꿈을 키우겠지요.

 어버이가 어리석게 길을 걸으면 아이들도 한동안 어리석은 길에 휘둘립니다. 어버이가 슬기로이 뜻을 나누면 아이들도 시나브로 슬기로이 뜻을 나눌 수 있겠지요.

 맑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어버이 곁에서 맑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입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손 흔드는 사람들 둘레에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아이예요. 기쁘게 차린 밥상 앞에 기쁘게 앉는 아이입니다. 살며시 쓰다듬는 손길대로 살며시 쓰다듬는 손길을 동생한테 물려주는 아이예요.


- 프랑스가 (한국처럼) 똑같이 둘로 갈라진다면, 이산가족이 얼마나 나올까. 그리고 홀로 버려지는 아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하지만 프랑스는 한국이 아니다. 그렇게 쉽게 아이들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입양한다. (23쪽)
- 거기서 멈췄더라면 괜찮았을 거다. 하지만 다음 말이 이어졌다. “양동이 속의 썩은 사과는 잘 자란 다른 사과도 썩게 만든다!” 더 명확하게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제는 네가 ‘내 아이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86쪽)


 전정식 님이 그린 만화책 《피부색깔=꿀색》(길찾기,200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전정식 님은 프랑스말로 만화를 그리고, 남녘땅에서 살아가는 박정연 님이 한국말로 옮깁니다. 전정식 님은 맨 처음 한국말을 배우며 살았으나, 이내 프랑스말 쓰는 나라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프랑스말을 쓰는 나라에서 살아가며 한국말 쓰는 사람들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기에 만화책 《피부색깔=꿀색》을 프랑스말로 그리고, 이 만화책이 한국말로 옮겨집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전정식 님이 그린 만화는 어떤 만화 갈래에 넣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전정식 님 만화는 한국 만화일까요, 벨기에 만화일까요. 전정식 님 작품은 한국 문화인가요, 세계 문화인가요.


- 프랑스어를 배워 가면서 한국말은 잊어버렸다. 이상하게도 새로운 언어를 배워 가던 이 시기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내가 정말 한국말을 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58쪽)
- 나는 하고 싶은 질문이 무척 많았다. 가령, 한국 정부가 세계 곳곳에 수천 명의 한국 아이들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것이 수치스럽지 않은지도 궁금했다. 그들(벨기에 유학생)의 의견이 궁금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보여준 선의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대답을 얻진 못했다. (223쪽)


 누군가는, 아니 내 곁에 있던 살가운 사람은 죽습니다. 나도 모르거나 나도 아는 어떤 슬픔과 아픔이 깊이 쌓인 끝에 죽습니다. 누군가는, 아니 내 곁에 살던 살가운 이웃이나 동무는 이곳에서 살든 저곳에서 살든 슬프거나 아픈 응어리가 쌓입니다. 누군가는, 아니 내 곁에서 마주하는 사람은 즐거이 한삶을 누립니다. 누군가는, 아니 내 곁에서 어우러지는 사람은 웃고 울며 떠들고 노래합니다.

 살아가는 터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살아가는 마음에 따라 삶이 거듭납니다. 살아가는 이웃에 따라 삶이 새롭습니다. 살아가는 사랑에 따라 삶이 빛납니다.

 좋아하는 꿈으로 좋아하는 삶을 일굴 수 있습니다. 괴로운 응어리로 고단한 삶을 보낼 수 있습니다. 아끼는 빛살을 가슴으로 포옥 감싸며 웃는 나날일 수 있습니다. 미움과 시샘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되어 퀘퀘한 쇠사슬일 수 있어요.


-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이모는 나더러 머리를 자기 무릎에 기대라고 했다. 물론 나는 마다하지 않았다. 너무 좋았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따뜻했다. 이모는 내게 손을 얹었다. 나는 그 행복의 순간을 만끽했다. (70∼71쪽)
- 만일 우리의 길이 교차하게 되어 있다면, 나는 엄마에게 걸맞게 의젓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둘 중, 죄책감의 무게로 더 힘들었을 사람이 엄마일 테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운명을 걱정해 왔을 사람이 바로 엄마니까. (149쪽)


 만화책 《피부색깔=꿀색》을 생각합니다. 만화책 《피부색깔=꿀색》은 한국에서 나라밖으로 보내진 아이들 삶을 다룹니다. ‘홀트 해외입양’에 따라 유럽 어느 나라로 보내진 아이가 어린 나날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한국땅에서 어머니를 잃거나 빼앗긴 아이들은 나라밖에서 새어머니를 찾으면 좋다 할 만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처럼 배를 곯거나 따돌림을 받거나 손가락질을 받지 않을 뿐더러, 학교에 갈 수 있고 놀잇감을 마음껏 얻을 수 있으며 군대에 끌려갈 일이 없는데다가 남녀차별에 시달리지 않아도 돼요.

 그러니까, ‘홀트 해외입양’은 참 좋은 제도이자 복지인지 모릅니다. 한국에서 입시지옥으로 앓아누울밖에 없는 모든 어린이와 푸름이를 나라밖으로 보내면 좋을는지 모릅니다.

 뭐하러 한국에서 ‘등록금 낮추기 운동’을 해야겠습니까. 뭐하러 한국에서 ‘4대강 막기 운동’을 해야겠습니까. 경제성장율이 얼마요, 세계경쟁력이 어떠하고 외치는 오늘날에도 한국 아기들은 유럽이나 미국으로 잘 팔립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한국 아기들을 귀엽게 바라보며 기꺼이 돈을 치러 받아들여 줍니다. 유럽으로 간 아기들은 한국에서처럼 무상급식이니 무어니 들볶일 까닭이 없어요. 유럽에서 어린 나날과 푸른 나날을 보낼 아이들은 대학교에 거저로 들어갈 뿐 아니라, 더 훌륭하고 아름다이 배울 수 있어요. 학원 뺑뺑이를 안 해도 됩니다. 참고서와 문제집에 억눌리지 않아도 됩니다. 푸른 나날을 교육방송 들여다보느라 흘려보내지 않아도 돼요.


-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최악은 내가 왜 불행한지 이유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식으로 음식을 먹으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 보면, 무의식적으로 내가 죽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입양아 유리는 훨씬 빠른 길(권총 자살)을 택했다. 역시 입양아인 유리의 누나는 마약 과용으로 죽었다. 다리가 짧았던 입양아 브뤼노는 목을 매달았다. 입양된 내 누이 발레리는 알 수 없는 자동차 사고 이후 죽었다. 입양아 안느는 혈관을 끊어서 죽었다. (254∼255쪽)


 사랑을 꽃피우는 꿈이면 넉넉합니다. 하루에 한 끼니를 굶든, 옷 한두 벌로 살아간다 하든, 조그마한 집 작은 방 한 칸에서 지내야 하든, 사랑을 꽃피우는 꿈이 있을 때에는 거리끼지 않습니다. 밥하는 일꾼을 따로 두든, 예쁜 옷을 마음껏 장만할 수 있든, 널찍한 집에서 신나게 뛰놀 수 있든, 사랑을 꽃피우는 꿈이 없을 때에는 언제나 어둠이 깃듭니다.

 밥을 먹으며 목숨을 잇는 사람인데, 밥이란 목숨으로 이루어집니다. 화학조합물이나 화학방정식 아닌 목숨인 밥입니다. 고스란히 목숨인 밥이에요. 사람들 목숨을 잇는 밥은 사랑으로 지어요. 밥솥에 안치든 냄비에 안치든, 밥은 목숨을 살찌우는 목숨이에요. 사랑은 목숨으로 살아숨쉬어요. 사랑은 목숨이 깃들기에 빛나요. 사랑은 목숨과 목숨을 잇는 징검돌이에요. 사랑은 온 목숨을 예쁘게 보듬는 착한 손길이에요.

 전정식 님이 벨기에로 보내지지 않고 한국에 남았을 때에도 만화를 그릴 수 있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전정식 님이 한국에 남아 홀로 살아남으면서 만화를 그리는 어른으로 자랐을는지 곱씹어 봅니다. 아마, 전정식 님은 한국에서 지냈더라도 만화를 좋아하며 삶으로 받아들였겠지요. 한국에서 지내는 모든 이야기를 꾸밈없이 털어놓으며 꿈과 사랑을 길어올리는 만화를 그렸겠지요.

 벨기에로 보내지는 삶이라 할 때에도, 스스로 아파하면서 찬찬히 받아들였기에 이러한 삶을 그대로 만화에 담을 수 있겠지요. 아픔은 아픔대로 내 삶을 살찌우는 밥이거든요. 슬픔은 슬픔대로 내 삶을 북돋우는 벗이거든요. 기쁨은 기쁨대로 내 삶을 이루는 노래예요.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내 삶을 빛내는 그림이에요.

 만화책 《피부색깔=꿀색》은 ‘해외입양’을 꼬집지 않습니다. 만화책 《피부색깔=꿀색》은 벨기에나 프랑스나 유럽 나라가 멋지거나 앞선 나라라며 추켜세우지 않습니다. 만화책 《피부색깔=꿀색》은 착하게 살아가려는 예쁜 사랑을 나누고픈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모든 길은 하나예요. 모든 꿈은 하나예요. 모든 삶 또한 하나예요. 사랑이 꽃피우는 터 하나예요. 사랑을 먹으면서 사랑을 낳는 보금자리 하나예요. (4344.11.5.흙.ㅎㄲㅅㄱ)


― 피부색깔=꿀색 (전정식 그림,박정연 옮김,길찾기 펴냄,2008.1.15./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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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가지러 간다. 오늘과 내일 충주 살림짐 마지막으로 싸서, 월요일에 짐차에 싣고, 화요일에 고흥으로 온다. 이렇게 가지고 와야 비로소 '집 옮기기'를 끝낸다. 책을 옮기는 일은 늘 커다란 울타리였다 할 테지만, 큰짐이라 할 테지만, 나는 울타리나 큰짐으로 여긴 적이 없다. 그렇지만 함께 살아가는 살붙이한테는 다를 수 있었겠지. 

아무튼, 이제 바지런히 길을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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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미 마키 단편모음도 한 권 있구나. 왜 몰랐을까. <사랑소리> 다 읽고 <마음단추> 2권부터 주문할 때에 이 단편모음을 빠뜨리지 말아야지. 잊지 않게끔 따로 담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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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미 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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