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사진으로 찍어야 아름다운가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7] 주명덕 사진·이상일 글, 《한국의 장승》(열화당,1976)



 오늘이 되어 새 사진이 반짝 하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제가 되어 옛 사진이 반짝반짝 빛나지 않습니다. 글피가 되어 다른 사진이 번쩍번쩍 나타나거나 반짝거리던 빛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모습이기에 더 빛날 만한 사진이 아닙니다. 골목개를 찍거나 골목고양이를 찍기에 더 예쁘거나 더 남다르지 않아요. 정치꾼들 모습을 찍으니까 더 볼썽사납거나 더 재미없지 않아요. 이름난 사람을 찍으니까 더 돋보이거나 빛나지 않습니다. 이름 안 난 사람을 담기에 덜 도드라지거나 덜 볼 만하지 않습니다.

 이제껏 아무도 사진으로 안 담던 모습이기에, 내가 처음으로 사진으로 담을 때에 빛이 나지 않습니다.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담던 모습인 만큼, 나까지 사진으로 담을 때에 따분하거나 틀에 박히지 않아요.

 새삼스럽거나 새롭다 할 만한 이야기를 다룬다 해서 사진답다 하지 않습니다. 낯설거나 놀랍다 할 만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해서 글답거나 그림답지 않듯, 사진답다는 이름은 쉬 얻지 못합니다.

 흔한 이야기라서 흔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잘것없다고 여긴대서 보잘것없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눈여겨보는 사람이 드물기에 눈여겨볼 만하지 못한 사진으로 나뒹굴지 않아요. 알아주지 않는 이야기를 찍기 때문에 알아줄 만하지 않은 사진으로 따돌림받지 않습니다.

 주명덕 님이 사진을 찍고 이상일 님이 글을 넣은 《한국의 장승》(열화당,1976)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한국의 장승》은 1976년에 1쇄를 찍고 1979년에 재판을 찍었다고 나옵니다. ‘재판’은 2쇄를 가리킬는지 3쇄를 가리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재판’이나 ‘중쇄’라고만 밝히기 일쑤였거든요.

 《한국의 장승》에 글을 넣은 이상일 님은 “환경이 바뀐 때문에 장승이 아름다움으로 변신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을 것인데,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11쪽/이상일).” 하고 이야기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옳다 할 만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 사람은 장승을 아름답다고 여겼을는지 아름답지 않다고 여겼을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굳이 아름답다고 여기며 장승을 세웠겠습니까. 아름다움을 빛내려고 장승을 세웠겠습니까. 장승은 장승이니까 세워요. 장승은 장승이기에 마을마다 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장승을 하찮게 여기거나 나쁘게 여기기에 장승을 꺾거나 분지르거나 뽑아 버리려나요. 장승을 모르니까 아무렇게나 다룰까요. 장승은 쓸데없다고 여겨 함부로 내치는가요.

 1970년대이든 2010년대이든 장승은 ‘사라지는’ 한겨레 삶입니다. 1970년대를 휘몰아치던 새마을운동은 흙으로 짓고 짚으로 이던 작은 시골집을 모두 밀어냈습니다. 시멘트로 벽을 바르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잇도록 했습니다. 마을길도 시멘트길로 바꾸고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쭉쭉 늘렸어요. 곧, 흙도 흙일꾼도 흙삶도 내팽개치는 첫무렵입니다. 이러한 물결에 휩쓸리며 장승이든 나무문이든 짚신이든 고무신이든 빨래방망이든 워낭이든 하나둘 자취를 감출밖에 없습니다.

 장승이 서던 자리에는 신호등이 서겠지요. 장승이 있던 자리에는 마을 이름 굵직하게 새긴 커다란 돌이 들어서겠지요. 장승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바라보겠지요. 장승 앞에서 절을 하던 사람들은 예배당 뾰족탑 앞에서 절을 하겠지요.

 달라지는 삶이요 삶터입니다. 달라진 삶이자 삶터인 만큼 신호등을 사진으로 찍고, 아파트를 사진으로 찍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을사람 모여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하며 부르던 노래가 사라지듯,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을 따라 흐르는 대중노래가 온누리에 넘실거립니다.

 벼베는 기계로 벼를 베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낫으로 벼를 베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우니, 애써 사진으로 찍기도 힘들지만 오늘날 굳이 사진으로 찍을 까닭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낫을 어떻게 쥐고 벼포기를 어떻게 잡으며 낫을 휘휘 쓸어야 하는가를 모르는 사람투성이일 텐데, 낫질하는 모습 사진을 누군가 찍는들, 이 사진에 서린 이야기를 누가 읽거나 느낄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장승》은 한국땅에서 장승이 재빠르게 사라지던 때에 찍은 사진을 그러모읍니다. 재빠르게 사라지지만 그나마 좀 남던 때에 찍은 사진을 갈무리합니다. 이제 201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한국의 장승”이건 “전라도 장승”이건 “경상도 장승”이건, 사진으로 담기조차 빠듯하리라 느낍니다. 어쩌면 이제는 이러한 이름을 붙이는 이야기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할 만하구나 싶어요. 이제는 “전남 영암군 금정면 쌍계사 터 장승”이라든지 “경북 충무시 문화동 장승”처럼 ‘가까스로 살아남았을까 싶은 장승 하나’만 날마다 숱하게 찾아가서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장승 하나만을 네 철 삼백예순닷새에 걸쳐 느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야 할까 싶습니다.

 ‘열화당 미술문고’ 22번으로 나온 《한국의 장승》입니다. 주명덕 님이 찍은 장승 사진이 이 작은 손바닥책에 모두 담기지는 않았겠지요. ‘열화당 미술문고’ 22번은 이제 찾아볼 길이 없기도 합니다. 지난날 찍었으나 미처 못 담은 숱한 장승 사진에다가, 2010년에 새로 달라졌을 장승 사진을 더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한국의 장승”이라는 이름이 걸맞는 사진책 하나 그럴듯하게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살아온 발자취가 어떠한지 헤아리고, 한겨레가 살아가는 오늘이 어떤 모습인가를 곱씹으면서, 어제 오늘 글피로 이어지는 삶이란 우리들 저마다 얼마나 값있거나 뜻있는가를 되새기는 사진이야기를 사진쟁이 두 다리 튼튼하게 내딛는 싱그러운 삶길로 보여준다면 참 고맙겠구나 생각합니다. (4344.11.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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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인형의 행복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11
가브리엘 벵상 글.그림 / 보림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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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게 놀며 자라나는 즐거움과 그림책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4] 가브리엘 벵상, 《곰인형의 행복》(보림,1996)



 보금자리를 옮기느라 한 달 남짓 집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조촐히 지내기 퍽 힘들었습니다. 애써 한 자리에서 지내며 밥을 함께 먹더라도 미처 못 옮긴 짐에 아직 치우지 못한 짐이 한가득이요, 옆지기 어버이 살아가는 집에서 여러 날 머물 적에도 아이들 놀잇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달 하고 스무 날 만에 드디어 아이들 놀잇감을 이삿짐 나르는 짐차에 싣고 전남 고흥군 시골집으로 들어옵니다. 네 살 딸아이는 한 달 스무 날 만에 피아노를 만지고 놉니다. 아버지는 첫째 아이 놀잇감 가운데 인형을 곱게 담은 상자꾸러미를 맨 먼저 끌릅니다. 상자꾸러미를 끌러 아이를 불러 보여주지는 않고, 아이가 오가는 길목 잘 보이는 자리에 상자꾸러미를 열어 놓기만 합니다. 삼십 분쯤 뒤, 아이는 인형 상자를 이내 알아채고는 하나하나 꺼내어 “예쁘다” 하고 말하면서 잠자리맡에 한 줄로 나란히 앉힙니다.


.. “아니, 여기 또 있네! 이런 개울에서 무얼 하고 있어? 길을 잃어버렸니? 누가 너를 버렸어? 자, 우리 집으로 가자. 내가 보살펴 줄게.” ..  (4쪽)


 첫째 아이가 갖고 노는 인형 가운데 어머니(랑 아버지)가 사 준 인형은 딱 둘입니다. 옆지기(아이 어머니)가 꼭 한 번 사고프다 하던 인형 두 가지만 우리가 사서 아이한테 선물했을 뿐, 다른 인형은 모두 다른 사람이 놀다가 물려주었거나, 헌 물건 파는 데에서 값싸게 얻었거나, 옆지기가 어릴 적 갖고 놀던 인형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새 인형은 없습니다. 아이 나이하고 비슷한 인형이 없어요. 네 살 딸아이가 갖고 노는 인형들 나이가 서른 살 즈음 되었다고 할까요. 딸아이가 앞으로 이 인형들을 예쁘게 갖고 놀면서 예쁘게 건사할 수 있다면 딸아이가 낳을 딸아이한테 곱게 물려주면서 ‘예순 살 먹은 인형’이 될 수 있으며, 딸아이가 낳을 딸아이 또한 예쁘게 갖고 놀며 곱게 물려준다면 ‘아흔 살 먹은 인형’까지 될 수 있어요.

 아이들 갖고 노는 놀잇감을 찬찬히 바라봅니다. 옆지기가 어릴 적 옆지기 어머님과 아버님이 선물한 놀잇감이 꽤 많습니다. 옆지기 어린 동생이 갓난쟁이일 무렵 갖고 놀던 놀잇감 또한 퍽 많습니다. 첫째 아이는 제 어머니랑 외삼촌이 갖고 놀던 놀잇감을 살그머니 물려받습니다.

 이 가운데 아버지가 어린 날 갖고 놀던 놀잇감은 얼마 없습니다. 아버지라고 놀잇감이 얼마 없지는 않을 텐데, 참말 아버지 놀잇감은 얼마 없어요. 그렇다고 아버지 놀잇감이 모두 쓰레기터 어딘가에 묻히거나 불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럭저럭 아버지 놀잇감도 제법 남았어요.

 다만, 아버지 놀잇감은 종이상자에 차곡차곡 담겨 짐꾸러미 어딘가에 틀어박힙니다. 아버지는 어릴 적 갖고 놀던 놀잇감을 꺼내지 않습니다. 옆지기가 이녁 놀잇감을 아이한테 물려주며 예쁘게 건사하도록 이끄는 맑은 빛을 모르던 아버지이기에, 아이가 조금 더 자랄 때에 ‘네 아버지하고 함께 살아오던 낡은 물건’이랍시고 보여주기만 하겠구나 싶어요.


.. “누가 좀 가르쳐 줘. 사람들은 왜 나를 쓸모없다고 할까? 내가 그렇게 낡았니?” “조용히 해! 조용히 해! 그건 우리도 모두 마찬가지야. 그만 조용히 해!” ..  (9쪽)


 내 어린 날을 돌이킵니다. 내 어린 날 우리 어머니는 형이랑 내가 갖고 놀던 놀잇감을 틈틈이 그러모아 말끔히 내다 버리셨습니다. 형이랑 내 놀잇감을 말끔히 내다 버리고 나면, 형이랑 내가 쓰던 작은 방이 무척 넓게 보이고 시원해 보입니다. 그러나 허전합니다. 텅 비고 쓸쓸합니다. 동생은 으레 쓰레기터에 들어가 쓰레기내음으로 온몸이 절면서 버려진 놀잇감을 찾습니다. 이렇게 찾아서 돌려놓아도 어머니는 다시 버리셨고, 또 찾고, 또 버려지고 …… 끝끝내 아주 버려진 놀잇감이 많고, 끝까지 되살린 놀잇감이 제법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어린 날을 보낸 나머지, 내 살아남은 놀잇감을 쉽사리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아이가 마음껏 갖고 놀도록 이끌지 못해요. 바보스러운 생각만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옆지기 어머님이나 아버님은 옆지기 어린 나날 놀잇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한쪽에 잘 건사해 주셨습니다. 옆지기는 이런저런 놀잇감이 있었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옆지기는 어릴 적에 이 놀잇감들로 신나게 놀았고, 이제 이 놀잇감들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아이들이 갖고 놀도록 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손짓 몸짓이 무르익지 않았으니, 또 이것저것 궁금하기도 하니까, 혼자 섣불리 갖고 놀다가 부러뜨리거나 잃어버리곤 합니다. 이때에 옆지기는 딱히 무어라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혼자 곁에서 ‘아이고!’ 할 뿐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때때로 드물게 부러뜨리거나 잃어버리기는 해도, 늘 부러뜨리거나 잃어버리지는 않아요. 아니, 옆지기랑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옳게 사랑하지 못하는 날이나 참다이 살아내지 못하는 날에 이렇게 놀잇감을 망가뜨리거나 잃곤 합니다. 어버이부터 어버이답게 착하면서 슬기로울 때에는 아이들도 아이답게 착하면서 슬기롭습니다. 어버이부터 사랑스러우면서 해맑을 때에는 아이들도 아이답게 사랑스러우면서 해맑아요.


.. “콩콩아, 그만 울고 어서 자야지. 내일 보자, 안녕!” ..  (13쪽)


 두 아이 외삼촌인 옆지기 동생은 이듬해에 고등학생이 됩니다. 고작 세 해 앞서까지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아이들 외삼촌은 이녁이 어릴 때에 갖고 놀던 놀잇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기도 합니다. 아이들 외삼촌은 외삼촌대로 오늘 나이에 맞게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 즐깁니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 나이에 맞게 저희 놀잇감을 즐기면서 한 살 두 살 새로 먹겠지요. 아버지인 나는 아이들 노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더 갖고 놀지 않는 놀잇감’이 보이면 넌지시 집어서 조용히 상자에 담겠지요. 아이들이 앞으로 나이를 더 먹고 나서 돌려줄 수 있게끔, 아이들이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이 되면 슬그머니 내밀며 ‘너희 어버이는 돈 버는 재주가 없어 돈을 물려주지 못한다만,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을 줄만 알아 이런 것만 겨우 물려준다.’ 하는 글월 하나 붙이겠지요.


.. “그래 그래, 이건 네 거야. 자, 어서 가져가. 하나 더 가지고 싶다고? 그래, 그것도 가지렴! 안녕.” ..  (35쪽)


 가브리엘 벵상 님이 일군 그림책 《곰인형의 행복》(보림,1996)을 아이와 함께 읽습니다. 나는 이 그림책을 두 아이가 아직 이 땅에 찾아오지 않고, 옆지기 또한 아직 모르던 때부터 혼자 즐거이 읽었습니다. 나하고 함께 살아갈 옆지기가 있을까 없을까 모르던 때부터 그저 혼자 즐겁게 읽었습니다. 내 숨결이 사랑이 되어 작은 씨앗으로 빚어지는 예쁜 아이들이 태어날는지 안 태어날는지 알 노릇이 없던 때부터 그예 홀로 신나게 읽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네 살이 된 때에 이 그림책을 새로 장만합니다. ‘아버지가 보던 책’은 따로 있는데, ‘딸아이가 볼 책’을 구태여 다시 장만합니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예전에 혼자 보던 그림책이 많습니다. 이 그림책마다 아이 손자국이며 연필 자국이며 가득 묻습니다. 두 번 다시 살 수 없는 옛날 그림책에까지 아이가 볼펜으로 죽죽 그림을 그려 아이고야 한 적이 있으나, 그래도 어쩌는 수 없이 고맙게 여기자고 느껴요. 애틋한 물건으로 치면 슬프지만, 살가운 물건으로 치면 새 살이 돋는 셈이거든요. 참말 앞으로 우리 딸아이가 저처럼 예쁜 딸아이를 낳아 돌보는 날을 맞이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으면, 나는 내 딸아이가 낳은 딸아이를 무릎에 앉히고는 “자 봐라, 여기 이 그림과 줄이 너희 어머니가 너희 할아버지 알뜰히 여긴 책에 남긴 선물이란다.” 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마 어느 날은 ‘딸아이가 낳을 딸아이’가 할아버지한테 여쭙겠지요. “왜 이 그림책은 두 권이 있어요? 어, 이 그림책은 세 권이나 있네?” 하고. 그러면 할아버지가 될 나는 “너희 어머니가 신나게 보느라 다 낧거나 닳으면 너희가 볼 수 없으니, 앞으로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보여주고 싶어 부러 한두 권 더 장만해서 갖춘 책이란다.” 하고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어쩌면, 《곰인형의 행복》은 2040년까지 판이 안 끊어질 수 있고, 2040년 무렵 우리 딸아이가 딸아이를 낳을 때에도 새책방에서 찾아볼 수 있어, 새책으로 장만한다면, 오래오래 묵은 내 그림책과 내 딸아이 그림책에다가 ‘딸아이가 낳은 딸아이’ 그림책 세 가지가 한 자리에 놓이리라 생각합니다. (4344.11.10.나무.ㅎㄲㅅㄱ)


― 곰인형의 행복 (가브리엘 벵상 글·그림,보림 펴냄,1996.7.3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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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책을 장만한다 생각하면서 늘 잊곤 한다. 다음에는 잊지 말고 아직 못 산 책들 하나씩 사도록 담는다.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집 보기- 치히로 아트북 3,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2년 1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1년 11월 10일에 저장
구판절판
눈 오는 날의 생일- 치히로 아트북 5,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3년 1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1년 11월 10일에 저장
구판절판
치치가 온 바다- 치히로 아트북 6,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3년 7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1년 11월 10일에 저장
절판

아기 오는 날- 치히로 아트북 4,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3년 7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1년 11월 1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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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그림책 - 그림책을 선택하는 바른 지혜 행복한 육아 15
마쯔이 다다시 / 샘터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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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밥으로 함께 나누는 책·삶·이야기
 [어린이책 읽는 삶 12] 마츠이 다다시, 《어린이와 그림책》(샘터,1990)



- 책이름 : 어린이와 그림책
- 글 : 마츠이 다다시
- 옮긴이 : 이상금
- 펴낸곳 : 샘터 (1990.6.15.)
- 책값 : 8000원



 (1) 삶과 책


 오리들이 줄을 맞추어 냇물을 가릅니다. 어미 오리를 따라 새끼 오리들이 물갈퀴질을 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더 따뜻한 곳을 찾아 헤엄치는 오리들 꽤액꽤액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풀벌레가 풀밭에서 노래합니다. 자동차 오가지 않는 호젓한 시골자락 풀섶에서 수많은 풀벌레가 저마다 노래합니다. 이 나라에서 남녘자리는 한결 따뜻하기에 십일월을 넘어서도 이처럼 풀벌레 노래를 들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늦가을로 접어들며 앙상한 나무가 되는 위쪽 마을에서도 풀벌레는 아직 풀노래를 부르는지 궁금합니다. 자동차들 매캐한 바람으로 가득한 도시에서도 풀벌레가 목숨을 이으며 풀빛사랑을 노래하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밤 첫째 아이 밤오줌을 누겠다 할 때에 아주 고단한 몸을 겨우 일으켰지만, 그닥 상냥하지 못한 말투로 아이를 다그쳤습니다. 옛 보금자리 책짐과 남은 살림을 옮기느라 여러 날 몸이 고단하고 짐을 다 옮기며 살가죽과 뼈마디 속속들이 쑤시고 결리는 터라 그만 아이한테 딱딱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말았습니다.

 내 입에서 나온 찬 말씨에 나조차 놀랍니다. 쏟은 물은 담을 수 없듯,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어요. 나는 참 딱한 아버지로구나 싶어 슬픕니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한테 왜 이렇게 따사로운 가슴을 나누지 못하는가 싶어 괴롭습니다. 이렇게 딱딱하게 굴자면, 뭣 하러 한결 포근하면서 너그러운 새 보금자리로 찾아왔는가 싶어 눈물이 납니다.


.. 끝까지 읽었다고 해서 그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독서란 그 책 속에 쓰여진 내용을 이해하고서야 비로소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책을 읽는 데에는 글자를 읽는 것과는 다른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그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글자를 읽을 수 있다 해도 독서는 할 수 없는 것이 아닐는지요 … 독서란 책을 읽고 있는 시간보다 읽고 난 후의 시간이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체험이나 사상과 견주어 보고, 다시 한 번 작중 인물을 생각하는 일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매우 귀중하고 충실한 시간입니다. 자신을 보는 시간이지요 ..  (8∼9, 15쪽)


 간밤에 빗방울이 조금 들었습니다. 어제와 그제 아침에 빗줄기가 조금 뿌렸다고 합니다. 책짐을 아주 커다란 짐차 석 대에 그득그득 눌러담아 옮기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빗방울은 몹시 골치아픕니다. 이 비 때문에 짐차를 책 내릴 곳 앞까지 대지 못합니다. 책 내릴 옛 흥양초등학교 들머리는 옛 학교 빌려쓰는 사람들이 트랙터로 땅을 갈아 나무를 심어서 흙길이 무르거든요. 비가 안 오면 이럭저럭 딱딱해 차가 들어가지만 비가 오면 물컹해서 차바퀴가 빠집니다. 하는 수 없이 실비를 맞으며 등짐을 지고 책을 나릅니다. 밤 열두 시 넘을 때까지 네 시간 남짓 등짐을 나릅니다.

 이삿짐 나르는 일을 하는 일꾼 가운데 둘은 이주노동자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한국까지 와서 이 무거운 책꽂이와 책들을 나르려나요. 이들 젊은 이주노동자는 고향나라에서 무슨 꿈을 꾸며 배우고 살다가 한국에 와서 이 고되고 모진 일을 새로 배워서 하나요.

 이주노동자 두 사람은 몹시 지쳐 짐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눈이 풀리기까지 합니다. 이주노동자를 부리는 한국사람도 매우 지쳐 숨이 턱에 닿을 뿐 아니라 길바닥에 드러누울 판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길바닥에 드러눕는다든지 어디로 내뺀다든지 못 합니다. 짐차에 실린 책들을 모두 빼내어 나르지 못하면, 저도 일꾼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모두들 헉헉거리면서 조금씩 짐을 나르고 또 날라 깊은 밤에 겨우 일을 끝마칩니다.

 일꾼들을 떠나 보내며 생각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이렇게 많은 책을 왜 짊어지고 다니는가 돌아봅니다. 이 많은 책짐이 있기에 우리 식구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 찾아 깃들기 무척 힘들지 않나 헤아립니다.

 살아가는 나날은 사랑입니다. 살아가는 나날은 짐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나날은 따사로운 믿음입니다. 살아가는 나날은 무언가에 눌리거나 매이거나 휘둘릴 수 없는 고운 꿈입니다.


..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어린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 자신이 자기를 위해 그림책을 읽어 보라는 점입니다 … 어른이 읽어도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 많습니다. 좋은 그림책은 거의 다 어른이 읽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어떤 이는 어른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좋은 책이라고 말합니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린이가 정말로 좋아하는 그림책은 어른도 아주 즐거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 그림책을 읽고 엄마 자신이 즐거움·기쁨·공감을 느꼈을 때, 우리는 그 기쁨과 즐거움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자녀에게 전하고 싶어지겠지요. 읽는 사람이 이렇게 따뜻한 가슴으로 책을 읽어 나가면 엄마의 마음은 당연히 듣는 어린이에게 전달됩니다 ..  (26, 27, 28쪽)


 새 아침을 맞습니다. 지난 5월부터 새 보금자리를 꿈꾸며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책짐을 싸고 집일을 하며 글쓰기를 하던 눈코 뜰 새 없던 하루하루를 돌이킵니다. 이제부터 느긋한 삶으로 느긋한 책과 느긋한 살림을 돌보면서 느긋한 사랑을 꽃피울 수 있을까 가늠합니다. 좋은 보금자리에서 조촐히 지낼 수 있으면, 조촐한 꿈으로 조촐한 글을 누리면서 조촐한 이야기꽃 피울 수 있나 곱씹습니다.

 흙을 아끼는 삶일 때에는 흙을 아끼는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겠지요. 이웃과 동무를 아끼는 삶일 때에는 이웃과 동무를 아끼는 줄거리 담은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겠지요. 나무를 아끼는 삶일 때에는 나무를 아끼는 넋이 서린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겠지요.

 좋아하는 삶에 맞추어 좋아하는 책이 달라집니다. 좋아하는 이야기에 맞추어 좋아하는 삶길이 달라집니다. 좋아하는 꿈에 따라 내 일과 놀이가 달라집니다.

 좋아하는 삶이 없을 때에는 좋아하는 책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꿈이 없을 때에는 좋아하는 책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좋아하는 사랑이 없을 때에는 살아가는 보람이 없어요.


.. 훌륭한 그림책을 읽어 준다는 것은 읽어 주는 사람이 그 훌륭한 내용을 자기의 것으로 하여 어린이에게 전하는 특권을 가지게 되는 셈이지요 … 언어는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것이며, 또한 언어의 기능은 인간이 인간에게 말을 하는 것이 기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린이는 어른의 언어를 모방하면서 자신의 언어를 획득합니다. 만일, 어른의 언어가 빈약하다면 풍부한 언어를 획득할 수 없지요. 유아의 언어는 어른이 준 표준에 따라 창조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레코드로 획득한 언어는 어린이의 마음의 성장을 촉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계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  (57, 59, 122쪽)


 좋은 열매라고 여길 만한 책 하나 가슴에 품으면서 내 삶을 누립니다. 좋은 사랑이라고 느낄 만한 사람 하나 어깨동무하면서 내 삶을 빛냅니다. 좋은 길이라고 믿는 꿈을 시나브로 이루면서 내 삶을 즐깁니다.

 고마운 하루입니다. 고마운 책입니다. 고마운 사람입니다. 고마운 사랑입니다. 고마운 아이들입니다. 고마운 웃음입니다.

 밝은 햇살로 아침을 맞아들이는 아이들이 맑은 별빛을 올려다보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밝은 햇살 아침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어버이 또한 밝은 햇살 아침 어른이 됩니다. 맑은 별빛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어버이 또한 맑은 별빛 어른이 돼요.

 나는 책삶을 일굽니다. 책으로 일구는 삶입니다. 나는 삶책을 읽습니다. 삶을 갈무리한 책을 즐깁니다.


 (2) 어린이책 읽기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실은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을 장만합니다. 어여쁜 꿈을 어우러 놓은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을 갈무리합니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내 나날을 착하게 보듬는 슬기로운 이야기 담은 어린이책을 읽고 나서, 차곡차곡 집안에 갈무리합니다.

 아이들을 낳기 앞서부터 어린이책을 즐깁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 ‘책’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기에 어린이책도 읽고 어른책도 읽어요. 책을 좋아하기에 사진책·만화책·시책·동화책 골고루 읽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어린이책은 글로만 이루어지기도 하고,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그림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이루어지기도 해요. 그리고, 어린이책은 노래를 함께 담아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찬찬히 돌아보면, 어린이책은 그림책과 사진책이 아주 많습니다. 자연이나 사물이나 사람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책을 찬찬히 살핀다면, 그림과 사진을 어떻게 다루거나 손질하거나 가다듬으면서 책을 빚느냐 하는 얼거리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어린이 눈길과 눈높이를 살펴야 하고, 그림 한 장을 그리면서 어린이 꿈과 사랑을 돌아봐야 하며, 글 한 줄을 쓰면서 어린이 마음과 넋을 읽어야 합니다.


.. 공상력은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힘입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서 가져 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린이의 세계를 보는 입장이 다릅니다 … 나는 원래부터 교육은 어린이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린이가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어린이가 나쁜 것이 아니고 어른이 나쁘며, 책이 나쁩니다 … 어른들은 흔히 얼핏 보고 귀엽게 느껴지는 그림이나 눈을 끄는 색채에 더 마음이 끌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진작 어린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보면 어른들의 기호와는 확실히 다른 것을 알게 됩니다 …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가운데는 어른의 눈으로 볼 때 별로 눈에 들지 않는 그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책의 그림은 ‘귀엽다’든가 ‘색이 밟고 예쁘다’ 등의 조건이 사실상 중요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그림이 얼마만큼 풍부하게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가’이며 ..  (23, 112, 161쪽)


 일본사람 마츠이 다다시 님은 《어린이와 그림책》(샘터,1990)을 내놓습니다. 어린이가 읽는 책에서 그림이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책에서 그림이 어떻게 큰 자리를 이루는가를 이야기해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사서 읽힙니다. 아이들이 좋아할까 재미있게 느낄까 하고 헤아리기보다 아이들한테 도움이 될까 하는 대목을 생각합니다. 아이들 교육과 지성과 감성을 생각합니다. 아이들 꿈과 사랑과 믿음을 생각하면서 그림책을 고르는 어버이는 퍽 드뭅니다. 아이들이 서너 살이나 대여섯 살이나 일고여덟 살뿐 아니라 열두어 살과 열대여섯 살과 스물한두 살에도 즐겁게 펼칠 그림책을 고르지 못해요.

 네 살 어린이한테 알맞다는 그림책은 네 살 어린이만 읽을 그림책이 아닙니다. 네 살 눈높이일 어린이부터 즐길 수 있다는 그림책입니다.

 일곱 살 어린이한테 걸맞다는 그림책은 일곱 살 어린이한테만 읽힐 그림책이 아닙니다. 일곱 살 어린이 눈길일 무렵부터 기쁘게 맞아들인다는 그림책이에요.


.. 그림책의 그림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이야기가 담겨진 그림’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보여주는 일에 지나치게 역점을 둔 디즈니 영화의 질과, 독자에게 찬찬히 이미지를 그려 나가게 하는 문학과의 큰 차이에 나 자신의 어리둥절함이 작용했겠지요.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는 잘텐의 〈밤비〉와 디즈니의 귀여운 〈밤비〉가 엄연히 따로따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즈니의 〈밤비〉는 군데군데 어떤 장면을 기억할 수는 있으나, 어미 사슴과 아기 사슴의 사랑의 이야기를 되새기게 하지는 않습니다 … 사람들은 디즈니 그림책을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 색채가 곱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색은 죽은 색입니다. 게다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생생한 움직임이 완전히 상실되어 있습니다. 죽은 색채와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는 그림, 그것이 디즈니의 그림책입니다 … 그림책은 유아가 일상생활 속에서 늘 보아 온 것을 확대경으로 비춰 보았을 때 신선한 발견과 놀라움을 얻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36, 40∼41, 172쪽)


 어버이로서 그림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을 아이가 좋아할까 좋아하지 않을까는 그닥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부터 이 그림책이 내 마음밭에 좋은 이야기밥인가를 생각합니다. 한 장씩 넘기며 생각합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그림책 하나 건넬 어버이로서, 나부터 좋아하고 즐기는 그림책이 될 때에 우리 아이도 좋아하며 즐길 만한 그림책이 돼요. 나로서는 썩 재미없거나 따분하다는 그림책을 아이가 아주 좋아하거나 즐길 수 없어요. 어버이만 ‘그림책 하나에 서린 어설프거나 모자라거나 얕은 셈속’을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그림책 하나에 감도는 어리숙하거나 얄팍하거나 못난 꿍꿍이’를 느껴요.

 좋은 그림책은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아닙니다. 백만 권 넘게 팔릴 만한 그림책이 있고, 십만 권 넘게 팔릴 만한 그림책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힌다 해서 우리 아이까지 읽을 만하다고 여기지 않아요. 첫판이 다 팔리지 않는 그림책이라 하든, 아직 한국에 옮겨지지 않은 나라밖 그림책이라 하든, 사랑스러운 손길을 타지 못한 그림책이라 하든, 나와 아이가 하루하루 고마운 삶을 받아들이는 이야기길이면 넉넉하구나 싶어요. 아버지가 드러누워 찬찬히 즐기는 그림책을 바라보던 아이가 아버지 품으로 꼬물꼬물 기어들면서 함께 보고 싶어 하는 그림책이면 좋구나 싶어요. 아이가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제 넋을 고스란히 바치며 들여다보는 그림책이면 아름답구나 싶어요.


.. 억지로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읽게 하거나, 그림책으로 지식을 늘리거나, 글자를 가르치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은, 어른이 어린이로부터 그림책의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의 인간적 성장을 비뚤어지게 하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 정말로 어린이는 객관적으로 책을 읽습니다. 책에 쓰여 있는 대로 그 말과 문자대로 읽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뒤에 숨은 뜻을 파헤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린이를 위한 책은 절대적으로 알기 쉽게 쓰여져야 합니다 … 어린이는 선한 것이 승리한다는 법칙을 옛날이야기 속에서 수없이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성장에 매우 의미 깊은 일이 아닐까요. 이 감각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근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65, 68, 175쪽)


 오줌을 눈 아이 촉촉한 기저귀를 갑니다. 뽀로록 하며 똥을 눈 아이 축축한 기저귀를 갑니다. 온몸이 뻑적지근하더라도 기저귀를 갈아 빨래를 합니다. 날마다 꾸준하게 빨래를 합니다.

 손빨래 하는 우리 집은 날마다 틈틈이 빨래를 합니다. 해가 잘 나는 날은 바깥에 널어 말리고, 저녁에는 방 곳곳에 옷걸이로 걸칩니다. 날마다 꾸준히 손빨래를 하니까 첫째 아이는 곁에서 빨래를 구경합니다. 다 마른 빨래를 걷어 갤 때면, 첫째 아이가 곁에서 “나도 갤래.” 하면서 빨래개기 시늉을 하고 놀이를 하는데, 네 살 아이는 돌배기 때문에 빨래개기 시늉이자 놀이를 하더니 네 살 막바지에 이르러 무척 정갈하게 빨래개기를 해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돌이키면, 참말 쉴 겨를이 없습니다. 그나마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아버지라서 이렇게 집일을 도맡아 하면 ‘그 집 아내는 남자를 잘 만났네’라든지 ‘그 집 여자는 좋겠네’ 같은 말을 듣습니다. 내가 집일을 도맡으면서 좀 엉성하거나 어리숙한 대목을 짚으며 찬찬히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이는 드뭅니다. 함께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또는 집일을 어느 한 사람이 도맡는 일이 어떠한 삶무게인가를 헤아리려는 사람은 퍽 드물어요.

 옛날 어머니들은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날 어머니들은 책을 얼마나 느긋이 읽을 만한가요. 옛날 어머니들은 책 하나 읽지 못하면서 아이들 가르치거나 돌보는 몫을 어떻게 도맡았을까요. 오늘날 어머니들은 바쁜 틈에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가요.


 (3) 이야기책 《어린이와 그림책》


 마츠이 다다시 님 이야기책 《어린이와 그림책》(샘터,1990)을 생각합니다. 마츠이 다다시 님은 ‘그림책을 이야기합’니다. 마츠이 다다시 님은 그저 ‘그림책을 이야기합’니다. ‘명작 그림책을 풀이하’거나 ‘유명 그림책을 알리’지 않아요. ‘그림책을 풀어헤치’거나 ‘그림책을 뜯어 살피’지 않습니다. 마츠이 다다시 님은 오직 ‘마츠이 다다시 님부터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고 나서 ‘마츠이 다다시 님이 아이들이랑 함께 나누’고픈 그림책을 이야기해요.

 마츠이 다다시 님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날마다 차근차근 북돋운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지식이나 정보나 학식이나 상식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철학이 깊어지거나 역사를 넓게 돌아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마츠이 다다시 님이 그림책을 읽는 까닭은 ‘그림책에 깃든 사랑’을 느끼면서, ‘내 오늘을 이루는 사랑’을 고마이 여기는 넋을 아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언제부턴가 남에게 말을 하고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소중함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그것은 말의 무게가 없어졌고, 말 속의 의미가 가벼워진 탓이겠지요 … 그림책이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인공적인 것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깜찍하고 즐겁고 뒷맛이 달콤한 책이 많아졌습니다 … 그러나 어딘가 공허합니다. 그냥 한 번 지나치는 데는 즐겁지만 뒤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달콤한 맛은 남지만 마음속 깊이 남는 공감이 없습니다 ..  (66, 187쪽)


 《어린이와 그림책》(샘터,1990)이 한국말로 옮겨진 뒤로 한국에서도 ‘그림책 비평’을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니, 1990년대를 한참 지나고 나서 한국땅에도 비로소 ‘그림책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책’이 천천히 나왔고, 이 ‘그림책이라 할 만한 책’을 이야기하는 글이 나와요. 요즈음에는 ‘그림책 비평’이나 ‘그림책 평론’을 퍽 어렵지 않게 찾아 읽을 수 있기도 해요.

 다만, 아직 이 나라에는 ‘비평+평론’은 있으나 ‘즐김+느낌’은 드물어요. 그림책을 즐기는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그림책을 나누는 기쁨을 노래하는 사람은 몹시 드물어요.

 삶으로 바라보는 그림책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삶으로 곰삭이는 그림책을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삶에서 꽃피우는 그림책으로 되새기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철학그림책이나 자연그림책이란 따로 없습니다. 그저 그림책이에요. 그저 책입니다.

 아이들은 천재도 영재도 귀재도 뭐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예 아이들이에요. 더 잘난 아이나 더 못난 아이란 없어요. 더 잘난 그림책이든 더 못난 그림책은 없습니다.


.. 어린이가 좋아한다는 것은 ‘들어갈 만한 세계’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 텔레비전이란 기계가 기른 인간은 무엇이 될까요 … 어린이가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을 어린이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 어린이는 그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 같은 책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봅니다 … 그림책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만드는 책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세계를 어린이의 마음속에 펼쳐 주기 위해 만드는 책입니다. 외형의 호화로움에 눈을 빼앗기지 말고 그 그림이 진정 그 이야기의 삽화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를 간파해야 합니다 ..  (81, 124, 153, 184쪽)


 이야기책 《어린이와 그림책》(샘터,1990)은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이 착하며 참답고 고운 넋을 사랑하는 길’을 ‘그림책에서 어떻게 찾거나 나누거나 즐기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그림책으로 읽는 사랑입니다. 그림책으로 꽃피우는 꿈입니다. 그림책으로 이루는 삶입니다.

 그림책 하나는 웃음으로 읽습니다. 그림책 하나는 눈물로 읽습니다.

 그림책은 가슴으로 읽습니다. 그림책은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림책은 온몸으로 읽습니다. 그림책은 따사로운 손길로 아로새깁니다.


.. 어느 날 화가 한 분이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추위와 어둠과 가난함을 모르고 인간은 성장할 수 없지요. 요즘 아이들은 이 세 가지를 통 모르고 자랍니다.” ..  (128쪽)


 이름난 대학교 이름난 교수한테서 그림을 배운대서 그림책을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이 그리지 못합니다. 나라밖 이름난 출판사에서 나왔거나 나라밖 이름높은 책잔치에서 상을 받았기에 아이들이 사랑할 만한 그림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마음밥이 될 만한 이야기일 때에 그림책입니다. 마음밥으로 무르익을 만한 삶일 때에 그림책으로 태어납니다. 마음밥답게 나누는 자리에 있을 때에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이 아끼고 어버이인 내가 아끼는 그림책은 몇 권을 다시 사서 간직하다가 이웃한테 선물할 때마다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사랑하고 어버이인 내가 사랑하는 그림책은 낡고 닳을 때까지 펼치거나 넘기면서 고맙습니다. 좋은 꿈을 먹는 좋은 삶을 좋은 손길로 담으니까 좋은 그림책 하나 애틋합니다. (4344.1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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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길수 책>이 어느 분 책인가 했더니, 이분 책이었구나. 내가 이분을 헌책방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나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머리말 미리읽기를 해 보니, 그동안 헌책방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낳았던 분이었네. 그 소담스러운 책들 겉그림을 이렇게 목록으로 만들어 보여준 일은 참 대단하다. 책값 10만 원은 그닥 비싼값이 아니구나 싶다. 애쓰셨다. 난 돈을 만들어야 이 책을 살 수 있겠지.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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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길수책- 한국근현대도서목록 1895~2010
윤길수 엮음 / 비(도서출판b) / 2011년 10월
100,000원 → 90,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0원(5% 적립)
2011년 11월 0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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