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곳을 바라볼 줄 안다면, 내 삶을 아끼는 사랑을 어떻게 일굴 때에 아름다운가를 헤아리겠지요. 조금 더 작으면서 밝게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으면 훨씬 좋았겠구나 싶지만, 가덕도 숭어잡이 하나만 붙잡은 사진책으로도 고맙습니다. 빛깔 있는 사진책이라면 참으로 고왔겠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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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숭어잡이- 이강산 사진집
이강산 지음 / 눈빛 / 2011년 11월
40,000원 → 38,000원(5%할인) / 마일리지 1,14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11월 2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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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날 아이와 걷는 길
 [고흥살이 2] 자동차 거의 안 다니는 길에서 놀기



 빗방울이 들지 않으면 자전거를 끌고 면에 다녀오려 했습니다. 빗방울이 뚝뚝 듣다가는 후두둑 쏟아지기까지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는 놓습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면으로 갈까 싶으나 버스 때가 맞지 않습니다. 집에서 면까지는 2.1킬로미터. 네 살 첫째 아이가 제법 잘 걸으니까 우산을 쓰고 걸어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비는 내리다 멎다 합니다. 아이는 혼자서 우산을 펴겠다고 합니다. 아직 혼자 우산을 끄지 못하지만, 단추를 꾸욱 눌러 혼자 우산을 펼 수 있습니다. 아이한테 우산은 제법 크고 무겁다 할 만하지만, 아이는 이 우산을 씩씩하게 들고 기운차게 걷습니다.

 아이 작은 손가방을 아버지 우산 고리에 겁니다. 아이는 저도 이렇게 하겠다며 제 손가방을 달랍니다. “너한테는 무거울 텐데?” 아이는 십 미터쯤 제 우산 고리에 작은 손가방을 걸친 채 걷다가 “아버지, 이거.” 하면서 제 우산을 들며 손가방 도로 가져가라 합니다.

 비가 멎을 때에는 아버지한테 우산을 들어 달라 합니다. 제 손가방을 달랍니다. 이렇게 이십 미터쯤 가다가 “아버지, 이거.” 하고 다시 부르더니 제 손가방을 들어 달랍니다. “나, 뛸래.” 



 짐 하나 들지 않고 홀가분하게 달리는 아이는 아버지보다 앞서 갑니다. 혼자 두 팔 휘휘 저으며 앞서 달리다가는 뒤를 돌아보며 살짝 멈추었다가는 다시 달립니다. 길가에 선 큼지막한 글씨판을 보고는 “저게 뭐야?” 하고 묻습니다. 길가에 선 ‘30’이라는 숫자를 보고는 “저 동그라미 뭐야?” 하고 묻습니다. “응, 서른이야.” “서른?” “서른.”

 빈 논에 앉아 이삭을 줍던 참새떼가 파르르 날아갑니다. 까치떼도 멧비둘기떼도 화다닥 날아갑니다. 그저 옆에서 걸어갈 뿐이지만, 이 새들은 저렇게 멀리까지 내뺍니다.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호젓한 길입니다. 문득 앞에 뭔가 드러누운 모습이 보입니다. 이 길바닥 한복판에 차에 치여 죽은 짐승 한 마리입니다. 내장이 터져 비져나오고, 이빨이 톡 튀어나옵니다. 자동차가 조금 더 천천히 달린다면 이 짐승을 치지 않을 텐데요. 밤이라 하더라도 싱싱 내달리지 않는다면 멧짐승이나 들짐승이 슬프게 죽지 않을 텐데요.

 옆으로 논이 길게 펼쳐진 길을 걷습니다. 논자락 길이지만 시멘트로 닦인 널따란 길입니다. 경운기나 짐차가 다니자면 이렇게 널따랗게 시멘트로 발라야 하겠지요.

 마을 사이를 지나갑니다. 아이는 쉴 사이 없이 여기에 쪼그려앉고 저기에 쪼그려앉습니다. 다 벤 논에 자라는 풀을 쓰다듬으면서 “풀아, 잘 있어.” 하고 인사합니다. 늦가을에 피는 들꽃을 내려다보며 “꽃아, 잘 있어.” 하고 인사합니다. 몇 걸음 못 떼면서 여기 바라보고 저리 들여다보느라 바쁩니다. 이것을 만지고 저것을 건드리느라 부산합니다. 



 호덕마을을 빠져나올 무렵, 시멘트를 깔지 않은 흙 논둑길을 봅니다. 아이랑 이 길로 접어듭니다. 아이는 또 쪼그려앉습니다. “이거, 반지 하는 풀이야.” 토끼풀 하나 톡 뽑으며 아버지한테 보여줍니다.

 호덕마을에서 나와 다시 찻길을 걷습니다. 아이는 찻길 한복판 노랗게 그은 금을 밟으며 달립니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아무 자동차가 안 보입니다. 십 분 남짓 아무런 자동차 없는 길을 걷자니 앞에서 군내버스 하나 다가옵니다. 아이를 불러 길가에 섭니다. 버스를 바라보며 손을 흔듭니다. 빗줄기가 조금 굵어집니다. 아이는 풀섶에서 강아지풀 하나 뜯습니다. 옆에 억새가 있기에 억새도 뜯어 보라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뜯은 강아지풀은 아버지한테 건네고, 제 작은 두 손으로 억새풀 하나 뜯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다가는 시든 꽃송이를 보고는 이 꽃송이를 셋 꺾습니다. 강아지풀이랑 억새풀은 한손에 쥐고, 시든 꽃송이 줄기 셋은 다른 손으로 쥡니다. 아버지는 우산을 펴서 아이한테 받칩니다. 빗줄기가 더 굵어집니다. 파리 한 마리 아이 우산 밑으로 들어옵니다. 



 이제 면에 들어서는 큰길입니다. 호덕마을과 동백마을을 지나 봉동마을로 나가는 찻길에는 드나드는 자동차 거의 없지만, 도화면으로 오가는 큰길에는 자동차가 제법 있습니다. 자동차가 여럿 오가니 아이가 외치는 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 빗방울은 거셉니다. 아이는 얼른 걸을 생각을 하지 않고 종알종알 이야기를 합니다. 걸음을 재촉합니다. 큰길에서 벗어나 마을길로 접어듭니다. 이제 차소리에서 풀려납니다. 자동차 드나드는 길이란 걸을 만한 길이 못 됩니다.

 우체국에 들릅니다. 아이 신과 양말이 몽땅 젖었습니다. 양말을 벗깁니다. 신은 그대로 신깁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걷습니다. 가게에 들러 파리끈끈이를 사고, 빵집에 들릅니다. 면사무소에 들러 서류 하나 받습니다. 빗줄기는 더 거세집니다. 아이를 안고 택시 타는 곳으로 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택시를 탑니다. 아이는 졸음이 가득한 눈이지만 끝까지 졸음을 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살짝이나마 잠들지 않습니다. 실컷 놀고 실컷 자며 실컷 다시 놀다가 밥을 실컷 먹으면 좋을 텐데.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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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안는 아이와 책읽기


 옆지기와 나는 처음 혼인을 하던 때부터 이제껏 따로 떨어져 지낸 나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몹시 적다. 내가 혼자 살아가던 날에는 내 나름대로 혼자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내 삶을 다스리는 길을 익혔고, 둘이 살아가던 날부터는 내 어수룩한 삶틀을 하나하나 깨면서 옆지기 말을 받아들이며 배운다. 따로 어떤 회사에 몸담을 생각이 없던 나인 만큼, 앞으로 살아갈 날을 헤아릴 때에 내 아름다운 나날을 내 삶을 살찌우는 길을 걷고 싶다. 돈을 더 벌어 내 꿈이나 뜻을 이룰 만한 책을 널리 펴내는 돈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돈을 적게 벌면서 내 꿈이나 뜻을 내 삶에서 이루며 천천히 쓴 글로 조그맣게 여밀 수 있다. 무엇보다 굳이 책으로 여미지 않더라도 날마다 즐거이 누리는 이야기를 빚을 수 있다.

 첫째 아이를 낳고부터 집에서 보내는 겨를이 훨씬 늘어난다. 여섯 달 남짓 한글학회에서 일하며 새벽에 집을 나서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만, 돈벌이로 삶을 바꾸었기 때문이 아니다. 옆지기 어머님이랑 옆지기 어린 동생이랑 함께 살 집을 얻어 지내려 했기에, 이렇게 하면 옆지기랑 아이랑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고, 이렇게 하자니 인천에서는 달삯을 제법 치르는 집을 얻어야 했다. 옆지기 어머님하고 옆지기 어린 동생이 오지 않는 바람에 우리 식구는 아침저녁으로 힘들게 만나는 여섯 달 남짓을 보내야 했는데, 이런 나날을 보낸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식구들이 떨어서 지내야 하는 일을 하면 안 되겠다고 깊이 깨달았다. 돈을 번다며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하루를 거의 다 보내고 나서, 지친 몸으로 겨우 얼굴을 본다면, 이때에 무슨 이야기와 무슨 사랑과 무슨 꿈이 피어날 만할까.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아이 모습을 바라보지 못할 뿐 아니라, 날마다 새로이 무르익는 옆지기 삶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돈을 조금 쥔다 한들 어떤 보람이 있을까.

 아버지랑 어머니가 늘 함께 지내듯, 첫째 아이는 동생이랑 노상 함께 지낸다. 아직 여섯 달짜리 갓난쟁이인 터라 첫째 아이 놀이동무가 되기 힘들지만, 한 해만 지나도 좋은 놀이동무가 될 테고, 두 해가 지나면 살가운 놀이벗이 되겠지. 시골마을에서 서로 돕고 아끼는 좋은 삶지기가 되리라.

 네 살 아이가 한 살 아이를 껴안고 논다. 첫째 아이가 아버지 등을 타고 놀고 난 뒤에 가끔 한 살 아이를 첫째 아이 등에 업혀 본다. 너도 아버지 등에 업혔으면 동생도 업어 봐, 동생은 못 업으면서 아버지한테 업히려고만 하지 마.

 첫째 아이가 유아원이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데를 다닌다면 무엇을 배울까. 이 아이는 유아원이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데에서 어떤 동무를 사귀고 어떤 말을 익히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어버이로서 내가 아이한테 따사로우며 좋은 말을 물려준다고는 느끼지 못한다. 조금 더 사랑스레 다가서지 못하고, 한결 너그러이 감싸지 못한다고 느낀다. 나부터 새로 배우며 살아갈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은 아니다. 나부터 이 삶을 예쁘게 즐기면서 곱게 사랑할 때에 아이는 시나브로 따사로우며 좋은 말로 따사로우며 좋은 넋을 북돋우리라.

 사랑스레 껴안아야지. 싱그럽게 어루만져야지. 해맑게 보살펴야지. 내 삶이고 네 삶이며 우리 삶인걸. 내 집이고 네 집이며 우리 집인걸. 내 보금자리이고 네 보금자리이며 우리 보금자리인걸. 아침까지 새근새근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동생이랑 어머니 아버지랑 또 즐겁게 뛰놀자. 차갑게 바뀌는 바람 시원하게 맞으면서 파란 빛깔 하늘과 볼그스름 물드는 멧자락을 얼싸안자.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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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일어나서 빨래하기


 새벽에 일어나서 빨래를 해야 한다. 새벽에 빨래를 한두 차례 하지 않으면 아침에 너무 바쁘다. 아침 일찌감치 밥차림을 헤아려야 하고 이부자리 개고 뭐를 하노라면 한두 시간 아닌 서너 시간 홀라당 지나간다. 새벽에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거나 보일러를 한 시간쯤 돌리고 끌 무렵 기지개 켜고 일어나 빨래를 해 놓아야 비로소 아침에 느긋하다.

 고요히 잠든 마을 한켠에서 새벽빨래를 하며 새벽소리를 듣는다. 빨래를 비비고 헹구는 복작복작 소리를 낸다. 새까만 바깥을 바라본다. 다 마친 빨래를 한손에 걸치고 어두운 방을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다 마른 빨래는 방바닥에 미리 깐다. 빨래는 따뜻하게 올라오는 기운을 받아들인다. 옷걸이에 기저귀랑 옷가지를 하나씩 건다. 방마다 알맞게 나누어 넌다. 글조각 조금 매만지다가, 방바닥에 드러누워 허리를 펴다가, 다시금 기지개를 켠 다음 빨래를 갠다.

 밤빨래나 새벽빨래는 나 혼자 아무도 몰래 하는 집일. 옆지기도 아이도 모른다. 어쩌면 옆지기나 아이는 알아챌는지 모른다. 이부자리 한쪽에 있어야 할 아버지가 없으니까. 뒹굴며 자는 아이가 아버지 쪽으로 뒹굴며 발을 뻗거나 손을 휘두르며 아무것도 채이거나 만져지지 않으니까.

 아이가 뒹구는 소리가 나면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 깃을 여민다. 빨래를 다 개고 나면 바야흐로 홀가분하게 글조각 붙잡을 수 있다.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나한테 주어진 아주 고마운 두 시간. 새벽 네 시부터 새벽 여섯 시까지 바지런히 글을 빚는다. 새벽 한 시나 두 시에 빨래를 했으면 새벽 너덧 시 무렵까지 글조각을 붙잡다가 졸음에 겨워 드러눕는다.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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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58) 네잎토끼풀


.. 이제 곧 베어질 풀이지만 그래도 조심조심 뜯어서 꽃팔찌도 만들고, 꽃잎 바람개비도 만들었다. 엮어서 안경도 만들고 꽃머리띠도 만들었다. 네잎토끼풀 찾기도 했다 ..  《강우근-동네 숲은 깊다》(철수와영희,2011) 56쪽

 어릴 적부터 토끼풀을 보았습니다. 토끼풀을 바라보며 ‘클로버(clover)’라 일컫는 동네 어른이나 학교 교사가 있었기에 중학교에 들어 영어를 배우기 앞서부터 ‘토끼풀 = 클로버’인 줄 알았습니다. 다만, 두 가지 이름이 한 가지 풀을 가리키는 줄 알면서 으레 ‘세잎클로버’와 ‘네잎클로버’라고만 말했어요. 그러니까, 동무들끼리 “와, 토끼풀이다!” 해 놓고는 “네잎클로버 찾아야지!” 하고 말한 셈이요,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자.”고 하면서도 “넌 네잎클로버 찾았니?” 하고 말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이른바 어른이라는 자리에 선 다음, 고향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여러 해 지냈습니다. 이동안 만난 다른 어른이나 이웃이나 동무들하고 토끼풀 이야기가 나올 때에 거의 모두 ‘토끼풀 = 클로버’인 줄 알아듣지 못합니다. 국어사전이든 영어사전이든 찾아보면 금세 알 텐데, 식물도감을 들여다보면 뻔히 알 텐데, 참 많은 사람들이 토끼풀이랑 클로버는 다른 풀이라고 여깁니다. 더군다나 ‘네잎토끼풀’ 같은 말은 안 쓰고, 어쩌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도무지 못 알아듣습니다.

 세잎토끼풀
 네잎토끼풀
 닷잎토끼풀


 좋은 일을 불러들인다면서 네 잎 달린 토끼풀을 찾아 책 사이에 곱게 끼워서 말립니다. 어느 날에는 다섯 잎 달린 토끼풀을 만납니다. 흔히 마주하는 토끼풀은 세 잎인데, 세잎토끼풀도 네잎토끼풀 못지않게 예쁩니다. 잎사귀를 만지작거리는 느낌이 좋고, 꽃송이 쓰다듬는 결이 좋아요. 아침에 손가락에 반지를 걸고는 저녁에는 풀숲에 곱다시 내려놓습니다. 내 손가락과 함께 있어 주어 고맙다고 절을 합니다.

 꽃으로 만들어 꽃반지입니다. 꽃으로 엮어 꽃머리띠입니다. 꽃으로 짜기에 꽃팔찌예요. 토끼풀꽃반지입니다. 토끼풀꽃머리띠예요. 토끼풀꽃팔찌입니다.

 남녘땅 고흥 들판을 아이하고 거닐며 때때로 토끼풀을 만납니다. 네 살 아이는 토끼풀을 바라보며 “어, 이거 반지 하는 풀이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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