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결에 물든 미국말
 (664) 블루버드(bluebird)

 

.. 케럴과 그녀의 남편은 블루버드를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  《커트 보네커트/김한영 옮김-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2007) 63쪽

 

 “캐럴과 그녀의 남편은”은 “캐럴과 그 사람 남편은”이나 “캐럴과 그이 남편은”이나 “캐럴네 부부는”이나 “캐럴과 옆지기는”이나 “캐럴네 집은”이나 “캐럴네 식구는”으로 다듬습니다. ‘노력(努力)했다’는 ‘애썼다’로 손질합니다.

 

 블루버드 : x
 bluebird : 파랑새

 

 미국문학을 한국말로 옮긴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랍니다. 따로 묶음표를 치지 않고 ‘블루버드’라고 적은 대목이 나왔거든요.

 

 곰곰이 생각에 젖습니다. ‘블루버드’라는 이름이 붙는 새가 따로 있으니 이렇게 옮겼을 수 있지만, 번역다운 번역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옮겼나 궁금합니다.

 

 미국사람한테는 틀림없이 ‘블루버드’입니다. 이 새는 미국에서만 살아갈는지 모르니, 미국말 그대로 ‘블루버드’로 적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문득 또 한 가지 궁금합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문학에 ‘파랑새’라는 이름을 적으면, 이 한국문학을 미국말로 옮길 때에 어떤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parangsae’로 옮겨야 할까요, ‘bluebird’로 옮겨야 할까요. (4344.1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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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4) 다종의 1 : 다종의 책

 

.. 그 후 나는 다종의 책을 출간하였다 ..  《윤형두-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범우사,1997) 24쪽

 

 “그 후(後)”는 “그 뒤”나 “그 다음”이나 “그러고 난 뒤”로 다듬습니다. ‘출간(出刊)하였다’는 ‘펴냈다’나 ‘내놓았다’로 손봅니다.

 

 다종(多種) : 종류가 많음
   - 한라산에는 다종의 식물이 자생한다 / 다종의 일용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다종의 책을 출간하였다
→ 여러 가지 책을 내놓았다
→ 여러 갈래 책을 냈다
→ 온갖 책을 펴냈다
 …

 

 “종류(種類)가 많음”을 뜻하는 한자말 ‘다종’이라 하는데, ‘종류’란 한국말로 ‘갈래’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한국말로 이야기한다면 ‘종류’이든 ‘다종’이든 애써 쓸 까닭이 없지만, 예나 오늘날이나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한국말을 글에 담지 않습니다.

 

 “갈래가 많음”이란 “여러 갈래”라는 뜻입니다. 여러 갈래 책이라 한다면 “온갖 책”이거나 “여러 책”이라는 뜻이에요. 글뜻 그대로 “여러 갈래 책”이라 할 수 있고 “온갖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온갖 갈래 책”이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다종의 식물이 자생한다
→ 온갖 식물이 자란다
→ 갖가지 풀과 꽃이 산다
 다종의 일용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 온갖 일용품을 생산합니다
→ 갖가지 일용품을 만듭니다
 …

 

 한 가지 한자말은 다른 한자말을 불러들입니다. 한 가지 한국말은 다른 한국말하고 사이좋게 이어집니다. 한 가지 한자말이 불러들이는 한자말은 새로운 한자말하고 잇닿습니다. 한 가지 한국말과 사이좋게 이어지는 한국말은 차근차근 온갖 한국말하고 알뜰살뜰 어깨동무합니다.

 

 올바로 말할 때에 올바른 낱말을 하나둘 엮습니다. 예쁘게 글을 쓸 때에 예쁜 낱말을 하나둘 맺습니다. 마음을 쓰는 만큼 말마디가 거듭나고, 사랑을 기울이는 만큼 글줄이 피어납니다. 좋은 말과 글이란 따로 없으나, 좋은 얼과 넋으로 좋은 말과 글이 새록새록 싱그러이 숨을 쉽니다. (4344.1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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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 범우문고 163
윤형두 지음 / 범우사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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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란
 [책읽기 삶읽기 91] 윤형두,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범우사,1997)

 


 책을 말하는 책이 나날이 쏟아집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첫무렵을 헤아리면, 이때에는 책을 말하는 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는 책읽기를 그닥 즐기지 않았으니 이무렵에 책을 말하는 책이 얼마나 있었는가 알 수 없으나, 1992년부터 헌책방마실을 하며 예전 책을 더듬어 본다면, 1980년대나 1970년대에는 책을 말하는 책이 몹시 드뭅니다. 책을 소개하는 책이든 책 발자취를 다루는 책이든 책문화나 책역사 톺아보는 책이든 좀처럼 찾아볼 수 없어요.

 

 2000년대로 접어들 무렵부터 한국에도 책을 말하는 책이 제법 나타납니다. 2010년대에 가까워지고 2010년대를 넘어서면 책을 말하는 책 가운데 어린이책을 말하는 책이 퍽 늘어납니다. 가만히 보면, 어른문학을 놓고 비평하는 책은 곧잘 나왔지만, 어린이문학을 놓고 비평하는 책은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 씀)이 첫끈이라 할 만하고, 아직 이만 한 높이와 깊이를 보여주는 어린이문학 비평은 없다 할 만합니다. 어린이책을 말하는 책이라면, 《어린이와 그림책》(마츠이 다다시 씀)만 한 책이 없는데, 어린이문학을 두루 살피는 아름다운 책으로 《현대 어린이문학》(우에노 료 씀) 하나 더 있어요. 다만, 이 두 가지 책은 번역책이요, 한국사람이 읽은 한국책을 놓고 한국 어린이와 어버이한테 읽히도록 내놓은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말하는 책’은 마땅히 없구나 싶어 아쉬워요.


.. 대학에 와서는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재미도 없는 책들을 골라 읽었다. 남들이 다 사 보는 월간 《사상계》란 잡지는 거의 빠뜨리지 않고 읽었다. 또 해석할 수도 없는 《타임》, 《뉴스위크》도 사 보았다 … 그 후 나는 다종의 책을 출간하였다. 주부들이 가족의 육체를 위하여 식탁에 반찬을 갖추어 놓는다면, 나는 정신적인 식탁에 반찬을 마련해 주기 위해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  (17, 24쪽)


 출판사 범우사 큰일꾼 윤형두 님이 내놓은 조그마한 책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범우사,1997)를 읽습니다. 윤형두 님은 커다란 책도 내놓으나,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처럼 자그마한 책도 함께 내놓습니다. 출판사 큰일꾼이 당신 책삶을 다루는 책을 내놓는다 할 때에, 이렇게 조그마하고 값싼 책을 내놓은 적이 또 있을까 싶도록, 윤형두 님이 내놓는 책은 남다릅니다.

 

 윤형두 님은 당신 책에서, 책을 만들면서 느끼는 책마을 이야기를 다루고,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책삶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린 날부터 책을 가까이하며 당신 넋을 일군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이들어서까지 책을 가까이하며 책으로 얻은 열매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조금 더 홀가분하게 ‘책과 삶’, ‘책과 사람’, ‘책과 사랑’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대목은 아쉽다 할 만하지만, 이렇게 느낄 아쉬움은 젊은 뒷사람이 쓰다듬으면서 북돋우면 됩니다. 윤형두 님은 당신과 같은 나이인 어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갈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줘요. 주절주절 푸념을 늘어놓는 늙은이가 될는지, 서울 탑골공원 같은 데에 주루루 앉아 해바라기하면서 옛날이야기에 젖는 늙은이가 될는지, 관제데모행사에 경품 받으러 몰려다니는 늙은이가 될는지, 아니면 언제나 젊은 늙은이가 될는지, 언제나 일하는 늙은이가 될는지, 언제나 흙을 만지는 시골 늙은이가 될는지를 보여줍니다.


.. 어릴 때부터 활자매체인 책을 대하지 않은 사람은 커서도 신문을 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찾기보다는 리모콘을 들고 TV 앞에 가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그런 상황을 상상해 보자. 신문은 휴지가 되고 신문사는 문을 닫게 된다. 그래서 외국 신문사는 독서운동을 끊임없이 전개하고 좋은 지면에 책광고를 할애하고 광고료는 다른 업종보다 싸게 한다. 우리 나라 신문들도 인쇄매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간 스포츠지가 그렇게 많은데도 종합일간지가 문화 면보다 스포츠 면을 더 할애하고 있으며, 일반 연애기사보다 출판기사가 훨씬 적다는 것은 구독층의 선호에 영합하면서 인쇄매체로서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아닌가 본다 ..  (101쪽)


 인천 배다리에는 여든 넘은 나이로 헌책방 일을 붙잡는 할배가 한 분 있습니다. 한국전쟁 무렵 황해도에서 인천으로 건너와서 헌책방 일을 처음 한 뒤 이제껏 헌책방 일을 놓은 적 없는 할배는, 저녁마다 술 한잔 기울이면서 ‘살아가는 보람’을 누립니다. 다른 여느 할배는 방구석에 갇히거나 늙은이 모아 가두는 건물에 얽매이지만, 인천 배다리 헌책방 할배는 예순 해 넘는 책삶을 일구어요.

 

 다만, 헌책방 할배는 책을 읽지 못합니다. 책을 다루고 책을 팔지만 책읽기로 당신 삶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책을 못 읽기도 하지만 글을 못 쓰기도 합니다. 책을 만지면서 책을 못 읽고, 책을 다루면서 글을 못 써요. 그래서, 윤형두 님 같은 분은 적잖은 책을 써내며 여러모로 이름을 날리지만, 헌책방 할배는 적잖은 사람들한테 씨알 같은 삶말을 들려주면서도 헌책방 할배 이름을 아는 이는 아주 드물어요.

 

 아마 우체국 일꾼은 헌책방 할배 이름을 알겠지요. 이웃 헌책방 일꾼도 헌책방 할배 이름을 알 테지요. 동네에서 오래오래 늙은 이웃도 헌책방 할배 이름을 알 테고요.


.. 그러나 한국에서의 서점들이 출판물 중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 문고본이다. 진열해 놓은 면적만큼 매상고를 올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행본 한 권을 팔면 6∼7천 원인데, 문고본 한 권에 1∼2천 원이니 문고본 서너 권을 팔아야 단행본 한 권 값인데 손도 많이 가고 한정된 구매자에게 가능하면 고가의 책을 팔아야 경영 합리화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108쪽)


 나는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를 내놓은 윤형두 할배가 좋다고 느낍니다. 나는 인천 배다리 헌책방 할배가 좋다고 느낍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 흙일꾼 할배와 할매 모두 좋다고 느낍니다. 옆지기와 나를 낳은 ‘하루하루 늙는 어버이’,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 할배와 할매가 참 좋다고 느낍니다.

 

 삶을 들려주는 할배는 예쁩니다. 삶을 보여주는 할매는 아름답습니다. 책이란 삶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책은 아름다이 살아온 나날을 찬찬히 그러모으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지식을 담을 때에는 책이 아니라 지식꾸러미입니다. 정보를 실을 때에는 책이 아니라 정보꾸러미입니다.

 

 책은 오직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책은 언제나 삶꾸러미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책은 베스트셀러도 아니요 스테디셀러도 아닙니다. 추천도서나 명작도서 또한 책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아요. 삶을 담은 이야기보따리요, 사랑을 싣는 이야기꾸러미이면서, 사람을 드러내는 이야기꿈만 책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4344.12.13.불.ㅎㄲㅅㄱ)


― 책이 좋아 책하고 사네 (윤형두 글,범우사 펴냄,1997.12.20./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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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두 님 작은 책 느낌글을 쓰려고 살피다가, 윤형두 님이 얼마 앞서 새책 하나 내놓았다는 발자국을 본다. 2011년 9월에 나온 새책 차례를 죽 살핀다. 새로 쓰신 글이로구나 싶으면서도, 그동안 내놓은 책에 모두 되풀이한 이야기를 자서전처럼 다시 적으셨구나 싶다. 이렇게 당신 발자국을 적바림하는 일도 좋으나, 당신이 읽은 새로운 책 이야기를 찬찬히 그러모아 내놓는 일이 더 낫지 않을까. 아니면, 범우사 책들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 보면 더 뜻있을 텐데. 많이 아쉽다. 그러나 잊지 않고자 마이리스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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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출판인의 자화상
윤형두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11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1년 12월 1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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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헌터
이반 로딕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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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는 예쁜 길
 [찾아 읽는 사진책 71] 이반 로딕, 《페이스 헌터face hunter》(윌북,2011)

 


 사진을 찍는 길이란 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 글을 쓰는 길이란 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길도, 노래를 부르는 길도, 연극을 하는 길도, 하나같이 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

 

 시골마을에서 흙을 만지면서 일구는 길 또한 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 사랑스러운 짝꿍을 만나 아이들을 낳고 함께 살아가는 길 또한 내가 살아가는 길이에요. 밥을 차리는 매무새라든지 집안을 쓸고닦는 일 또한 내가 살아가는 길이에요.

 

 읽을 만하다 싶은 책 하나를 살피는 몸짓이든, 책 하나를 찾아서 손에 쥐어 넘기는 몸가짐이든, 언제나 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생각을 하고, 살아가며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합니다. 내 모든 모습은 내가 태어나서 이제껏 살아온 발자국입니다.

 

 내가 무엇을 배운다 할 때에도 내가 여태 살아온 흐름에 맞추어 배웁니다. 내가 살아온 발자국을 거슬로 배우지 못합니다. 새롭게 배운다거나 새삼스레 거듭나고 싶다면, 내가 살아온 길을 고쳐야 합니다. 내 삶자락을 새롭게 고칠 때에 나는 새로운 사진결 글결 그림결 노래결을 피웁니다. 내 삶자락을 새롭게 고치지 않고서는 새로운 넋이나 꿈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지식을 쌓는대서 달라지는 삶이 아닙니다. 내 온몸과 온마음을 바쳐서 삶을 뜯어고칠 때에 비로소 달라지는 삶입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다 하는 꿈이 없으면서 삶이 달라질 수 없습니다. 어떻게 꿈을 이루고 싶다 하는 뜻이 없으면서 삶이 아름다울 수 없어요.

 

 이반 로딕 님 사진책 《페이스 헌터face hunter》(윌북,2011)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이반 로딕 님은, ‘길거리 멋쟁이’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이반 로딕 님은 ‘길거리 멋쟁이’를 사진으로 찍을 뿐이지만, 이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은 저마다 달리 느껴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패션사진으로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얼굴(초상)사진으로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여행사진으로 받아들일 만하고, 누군가는 도시에서 멋을 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엮는다고 받아들일 만합니다. 그러니까, 《페이스 헌터face hunter》에 담긴 모습은 사진입니다. 패션이나 작품이나 예술이나 상업이나 다큐가 아닌 사진입니다.

 

 “나는 패션잡지 편집자들이 왜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면서 재미없는 직업모델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지구를 반 바퀴씩 날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만약 나처럼 일한다면 훨씬 쉬울 텐데 말이다. 훌륭한 도시로 여행을 가서 그 동네에 사는 아름다운 멋쟁이를 찾아낸 다음 그녀를 놀이터로 데리고 가서 아이들에겐 사탕을 주면서 저리 가라고 하고 미끄럼틀을 타고 논다. 그런 다음 셔터를 누르면 된다(172쪽).”는 말을 헤아립니다. 이반 로딕 님은 길거리 멋쟁이를 사진으로 담을 테니, 이 사진은 아무래도 패션잡지에 실릴 만하겠지요. 아무래도 패션잡지를 자주 들추고, 패션잡지 편집자를 자주 만날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쓰면서 ‘재미없는 직업모델’을 찍는 이는 패션사진가만이 아니에요. 다큐사진을 하든 얼굴사진을 하든 무슨 사진을 하든, 웬만한 사진쟁이는 으레 틀에 박힌 사진찍기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삶을 느끼지 못합니다. 곁에서 언제나 어깨동무할 사랑스러운 벗을 깨닫지 못합니다. 꿈을 함께 나누고 사랑을 나란히 즐길 이웃과 동무를 좀처럼 알아채지 못해요. 인도·티벳·네팔·몽골로 가야 비로소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나라로 찾아가 이러한 나라 아이들 웃는 모습을 담아야 다큐사진이지 않습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야만 전쟁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미국으로 가야만 현대사진을 배우지 않습니다. 유럽으로 찾아가야만 예술사진을 느끼지 않아요.

 

 “때로는 한 도시에서 5시간을 헤매고도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할 때가 있다. 정말 놀라운 걸 보지 못했을 때이다. 마침내 찍을 사람을 찾았을 때 나는 사진의 구도를 잡으려고 한다. 보통 주변을 조금 돌아보면서 적당한 배경을 찾는 것이다. 말하자면 즉흥적인 연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256쪽).”는 말을 돌아봅니다. 참으로 놀라운 모습은 내 마음밭에서 싹틉니다. 참으로 놀라운 모습을 느끼며 알아채는 결은 내 가슴속에서 샘솟습니다. 나 스스로 놀랍도록 아름다이 살아가는 나날일 때에야 비로소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어여삐 꾸리는 삶일 때에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서 어여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 사진기로 담을 모든 빛줄기는 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려요.

 

 “상업적인 사람들이 하도 거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바람에 21세기에는 더 이상 사진에서 무엇이 진정한 포즈인지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것만은 거짓이 아니다. 나는 이 두 사람에게 ‘하트를 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278쪽).”는 말을 생각합니다. 참다운 사진은 참다운 삶에서 비롯합니다. 착한 사진은 착한 삶에서 태어납니다. 아름다운 사진은 아름다운 삶에서 스며나옵니다. 사진을 찍는 한길을 걸어가려 한다면, 나 스스로 어떤 삶길을 걸어가려 하는가부터 짚어야 합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꿈을 꾸면서 어떤 사람들하고 어떤 사랑을 나누는 삶을 일구려 하는가부터 살펴야 해요. 삶길을 튼튼하고 씩씩하게 붙잡은 다음에 사진길을 튼튼하고 씩씩하게 붙잡습니다. 삶길을 이루는 사랑길을 어여삐 보살피거나 돌볼 줄 안 다음에 사진길을 이루는 손길을 어여삐 보살피거나 돌볼 수 있어요.

 

 “수많은 스트리트 패션 사진작가들이 자석에 끌리듯 브랜드를 좇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슨 브랜드를 입고 있어요?’라고 묻는다.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난 쇼핑 안내서를 쓰는 게 아니란 말이다(18쪽).”는 말이 좋습니다. 인도에서 찍든 티벳에서 찍든 네팔에서 찍든 몽골에서 찍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찍든 인천에서 찍든 강릉에서 찍든 영월에서 찍든 고흥에서 찍든 여수에서 찍든 대단하지 않아요. 대통령을 찍거나 군수나 시장을 찍는대서 보잘것없지 않습니다. 내 어버이를 찍든 내 아이를 찍든 하잘것없지 않아요. ‘누구를 찍었나’에 앞서 ‘사진을 찍었나’를 살피면 됩니다. ‘어떻게 찍었나’에 앞서 ‘어떤 삶을 어떻게 느끼며 찍었나’를 헤아리면 됩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나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느끼면 넉넉합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하고 얼크러지면서 나 스스로 사랑하는 사진을 담으면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는 길은 내 꿈을 살아내는 길입니다. 사진을 찍는 예쁜 길은 내 꿈을 살아내는 예쁜 길입니다.

 

 나한테 빛나는 사랑을 알아차려 주셔요. 나한테 값진 꿈을 붙잡아 주셔요. 나한테 소담스러운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놓아 주셔요. 사진을 이루는 싹은 내가 꾸리는 오늘 하루 조그마한 삶을 밑거름 삼아 돋습니다. (4344.12.13.불.ㅎㄲㅅㄱ)

 

― 페이스 헌터face hunter (이반 로딕 글·사진,박상미 옮김,윌북 펴냄,2011.6.15./1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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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13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표지부터 <사토리얼리스트>랑 매우 비슷하네요. 번역자도 같고요. 소개글 찾아 읽어보니 사토리얼리스트의 작가와 쌍벽을 이루는 사람이라네요.
남이 하지 않는 방법이더라도 자기 뜻을 소신있기 펼치는 사람이 귀하지요. 그런 뜻을 알아볼 수 있는 눈들을 그래도 아직 여기 저기 많이 살아있다고 믿어요, 역시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요.
작가는 자기 뜻을 사진으로 나타내고 저는 그의 작품을 보며 이 사람은 이 사진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헤아리고. 저에게 사진책을 보는 재미는 그런데 있는 것 같아요.

파란놀 2011-12-13 08:11   좋아요 0 | URL
사진을 자연스럽게 잘 찍었어요.
사토리얼리스트하고 거의 비슷하지만
퍽 달라요.
사토리얼리스트보다 이 책이 한결 낫구나 싶어요.

다만, 이 책이나 저 책이나 `번역`을 안 하다 보니...
`사토어쩌구`이든 `페이스어쩌구`이든
한국말로 번역을 해야지요 -_-;;;;

사진을 좀 많이 좋아하면서 사진쟁이로 한길을 걸어가려 하는 사람이라면
찬찬히 돌아볼 만하다고 느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