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095) 계속 1 : 계속 하고 싶으세요

 

.. 이 일 계속 하고 싶으세요? ..  《부서진 미래》(삶이보이는창,2006) 31쪽

 

 한 가지 일을 그치지 않고 죽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한 가지 일만 하기란 퍽 수월하기도 해요. 빨래 걱정, 치우는 걱정, 설거지 걱정, 밥하는 걱정 없이 내가 좋아하는 어느 바깥일 하나에만 마음을 쓴다고 생각해 봐요. 얼마나 수월하고 가뿐할까요.

 

 계속(戒屬) : 타이르는 일
 계속(繫束) = 기속(羈束)
 계속(繫屬/係屬)
  (1) 소속하여 매임
  (2) 남의 관리를 받음
 계속(繼續)
  (1)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감
  (2) 끊어졌던 행위나 상태를 다시 이어 나감
   - 오늘 강의는 지난 강의의 계속이다
  (3) 끊이지 않고 잇따라
   - 계속 쏟아지는 폭우 / 재판은 열흘 동안 계속 열렸다 /
     인구가 계속 감소되는 추세에 있다

 

 계속 하고 싶으세요?
→ 앞으로도 하고 싶으세요?
→ 꾸준히 하고 싶으세요?
→ 언제까지나 하고 싶으세요?
 …

 

 끊이지 않고 어느 일을 하는 모습을 놓고 ‘꾸준하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끊임없이’나 ‘그치지 않고’라 가리킬 수 있고 ‘곧게’나 ‘그대로’로 담아내도 됩니다. ‘거침없이-막힘없이-술술’를 때에 따라 넣어 보아도 어울립니다. ‘한결같이’라든지 ‘언제나’나 ‘언제까지나’를 넣을 수 있어요.

 

 국어사전 보기글로 나오는 “지난 강의의 계속이다”는 “지난 강의와 이어진다”라 다듬습니다. “계속 쏟아지는 폭우”는 “쉼없이 쏟아지는 세찬 비”나 “줄기차게 쏟아지는 세찬 비”로 다듬어 줍니다. “재판은 열흘 동안 계속 열렸다”라면 “재판은 열흘 동안 열렸다”로 풀어내거나 “재판은 열흘 동안 잇달아 열렸다”로 담아냅니다. “인구가 계속 감소되는 추세에 있다”는 “인구가 나날이 줄어든다”로 걸러냅니다.

 

 그냥저냥 쓸 수 있는 ‘계속’이라고 여기며 그대로 두고픈 분들이 제법 많으리라 봅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때와 곳에 걸맞게 털어내는 분들도 적잖이 있으리라 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고, 마음쓰기에 따라 다르며, 몸소 움직이기에 따라 다릅니다. (4339.6.4.해./4341.9.20.흙./4344.12.27.불.ㅎㄲㅅㄱ)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79) 계속 2 : 계속 책을 읽지 않았다

 

.. 엄마는 계속 린드그렌 선생님 책을 읽지 않았다 ..  《유은실-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창비,2005) 30쪽

 

 아이들한테만 책을 읽으라는 어버이가 많습니다. 아이들한테만 예절 노래를 부르는 어버이가 많습니다. 새치기 잘하고 쓰레기 아무 데나 버리면서 아이들한테는 ‘착하게’ 살라고 입만 나불거리는 어버이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이 나라 어린이와 젊은이가 나날이 마음이 무너지고 몸가짐이 나빠진다면 누구보다도 어버이들, 이 나라 아버지와 어머니들 탓이라고 느낍니다.

 

 엄마는 계속 책을 읽지 않았다
→ 엄마는 그 뒤로도 책을 읽지 않았다
→ 엄마는 그때부터 책을 읽지 않았다
→ 엄마는 그때나 이제나 책을 읽지 않았다
→ 엄마는 예나 이제나 책을 읽지 않았다
 …

 

 이 자리에 쓰인 ‘계속’은 ‘지난 어느 한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을 뜻하는군요. 이런 뜻으로 ‘계속’을 쓸 수 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그 뒤로도’나 ‘그때부터’를 넣으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그 뒤로 줄곧’이나 ‘그 뒤로 한결같이’처럼 꾸밈말을 뒤에 붙여도 잘 어울립니다. (4339.12.6.물./4344.12.27.불.ㅎㄲㅅㄱ)

 


 알량한 말 바로잡기
 (1365) 계속 3 : 계속 이 자리에 있었나요

 

.. 이 나무는 계속 이 자리에 있었나요? ..  《이세 히데코/김정화 옮김-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청어람미디어,2007) 41쪽

 

 언제나 한 자리에 있는다면 한결같이 있는 셈입니다. 한결같이 있는 사람은 달라지거나 바뀌는 일이 없이 있는 셈입니다. 달라지거나 바뀌지 않으니 내 몸이며 마음이며 튼튼하게 추스를 수 있을까요.

 

 계속 이 자리에 있었나요
→ 줄곧 이 자리에 있었나요
→ 늘 이 자리에 있었나요
→ 노상 이 자리에 있었나요
→ 죽 이 자리에 있었나요
 …

 

 꼭 한 자리에 있는다고 더 우람하거나 훌륭하거나 반갑지는 않습니다. 온갖 곳을 옮겨 다니면서도 아름답거나 어여쁠 수 있어요.

 

 어디에 있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어디에서나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수 있을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건 눈보라가 몰아치건 흔들릴 까닭이 없어요. 따순 바람이 분대서 휩쓸리거나 아무 바람이 없다 해서 내 사랑터를 떠날 까닭이 없어요. 나는 내가 가장 아름다이 여기면서 사랑할 만한 곳에서 예쁘고 상냥하게 사랑자리·삶자리·꿈자리·이야기자리를 껴안으면 즐거워요.

 

 이 나무는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있었나요?
 이 나무는 그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나요?
 이 나무는 한결같이 이 자리에 있었나요?
 이 나무는 씩씩하게 이 자리에 있었나요?
 …

 

 오래도록 사랑할 만한 일을 찾아야 즐겁습니다. 언제까지나 어깨동무할 만한 사람하고 살아야 아름답습니다. 늘 따사로이 마주보면서 언제나 포근하게 얼싸안을 이웃과 동무를 사귀어야 기쁩니다.

 

 거짓스레 꾸밀 까닭이 없는 삶입니다. 겉치레로 꾸밀 까닭이 없는 말입니다. 껍데기를 들씌운대서 돋보이지 않는 넋이요 꿈이며 매무새입니다.

 

 좋은 길을 한결같이 걸어가면 돼요. 좋은 꿈을 한결같이 북돋우면 돼요. 좋은 말을 한결같이 살찌우면 돼요. 좋은 삶을 한결같이 사랑하면 돼요. (4340.12.22.흙./4344.12.27.불.ㅎㄲㅅㄱ)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69) 계속 4 : 전화가 계속이야

 

.. “이렇게 능력 좋은 동생이 있는 줄 몰랐네. 아까부터 사장님 찾는 전화가 계속이야. 벌써부터 사장님 소리 들으면 앞으로 못해도 준재벌은 되겠다.” ..  《김이설-환영》(자음과모음,2011) 172쪽

 

 “능력(能力) 좋은” 같은 글월은 그대로 둘 만합니다만, “재주 좋은”이나 “좋은”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준(準)재벌”은 “재벌 비슷하게”나 “재벌 버금가게”나 “재벌 못지않게”나 “재벌 부럽지 않게”나 “재벌 비길 만하게”로 손질합니다.

 

 아까부터 찾는 전화가 계속이야
→ 아까부터 찾는 전화가 끊이지 않아
→ 아까부터 찾는 전화가 잇달아
→ 아까부터 찾는 전화가 빗발쳐
→ 아까부터 찾는 전화가 끝없어
 …

 

 말뜻 그대로 “잇달다”나 “끊이지 않다”로 풀어내면 알맞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즐겨쓰는 한자말 ‘계속’이요, 어린이책이나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나타나는 한자말 ‘계속’입니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부터 ‘계속’이라는 한자말을 앞으로도 오래오래 써야 하는가 곰곰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참말 이 한자말을 꼭 써야 하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어른들은 으레 ‘계속’을 말할 뿐, ‘잇달다’와 ‘잇따르다’ 같은 한국말은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아마, 동시나 동화에서조차 ‘잇달다’와 ‘잇따르다’ 같은 한국말을 찾아보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같거나 비슷한 뜻과 느낌으로 ‘끝없다’와 ‘그치지 않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 분도 참 드물어요. ‘끝나지 않다’라든지 ‘이어지다’ 같은 한국말로 삶을 그리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보기글처럼 전화가 오는 이야기에서는 ‘빗발치다’ 같은 낱말을 쓰곤 합니다. 전화라는 물건이 생긴 지는 얼마 안 되었으나 지난날 사람들은 ‘빗발치다’라는 낱말을 이 자리에 아주 알맞게 잘 썼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전화기에 불이 나다”라는 말이 있어요.

 

 생각을 하면서 북돋우는 말입니다. 생각을 잃으면 잃는 말입니다. 겨레말이니 나라말이니 하는 굴레 때문에 살피는 말이 아니에요. 내 삶을 사랑하는 말이기 때문에 곰곰이 살피면서 북돋웁니다. 내 넋을 가꾸고 내 꿈을 보살피는 말입니다. 한자말이라서 나쁘거나 영어라서 끔찍하지 않아요. 넋과 꿈과 사랑을 아름다이 보듬을 말 한 마디를 어떻게 다스리거나 아껴야 하는가를 사람들 스스로 느끼며 헤아려야 합니다. (4344.1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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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자전거 태우는 어린이

 


 이웃집에 찾아온 세 살 아이가 우리 집에 놀러온다. 우리 집 네 살 아이는 누나답게 동생하고 잘 놀아 준다. 네 살 아이는 다리힘이 제법 붙었기에 세 살 동생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씩씩하게 몰 줄 안다. 이 아이가 다섯 살이 되고 여섯 살이 되면, 두 살이 되고 세 살이 될 저희 동생도 자전거 뒤에 예쁘게 태워 신나게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 아직 동생을 업을 만한 허리힘이나 다리힘까지는 없지만, 새해에 다섯 살이 되어 제 생일을 지날 무렵에는 동생을 업으며 돌아다닐는지 모른다. 이웃집 아이가 누나 자전거에 타고 노는 모습을 이 아이 어버이한테 한 장 뽑아서 보내야겠다. (4344.1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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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무늬 어린이

 


 아이가 입는 꽃무늬 옷이 예쁘다. 이제 첫째 아이는 제법 자라서 속에 입는 옷이 짧기 일쑤이다. 첫째가 입을 조금 큰 옷을 얻어야 할 때가 찾아온 듯하다. 아이가 기지개를 켜거나 두 팔을 번쩍 올리면 배꼽이 슥 나온다. 꽃은 풀밭에서 바라보아도 예쁘고, 아이 옷으로 스며들어도 예쁘며, 방바닥이나 벽에 담아도 예쁘다. 예쁘게 바라보라는 꽃일까. 예쁘게 맞아들이면서 나와 이웃을 예쁘게 바라볼 줄 아는 넋을 곱게 건사하도록 이끄는 꽃일까. 아름다움을 느끼는 가슴을 사랑하면서, 나 스스로 아름다운 꿈을 빛내라고 말을 건네는 꽃일까. (4344.1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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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서 책을 읽다

 


 꿈에서 어느 헌책방을 찾아갔다. 책을 여러 권 산다. 이 책들을 신나게 읽는다. 퍽 골이 아플 만한 책인데 제법 술술 읽힌다. 그나저나, 꿈에서 헌책방을 다니고 책을 읽는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나는 책을 읽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면서 대학입시라는 굴레에 진저리를 친다. 이 즐겁고 아름다운 책이 있는데, 왜 부질없고 쓸모없는 시험문제를 달달 외우며 내 머리를 괴롭혀야 하느냐고 생각한다. 이윽고 나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안 계시고 형만 있다. 형은 내가 학교에 안 가는 일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라고 등을 밀지 않는다. 말이 없는 형은 내가 하고픈 대로 하란다. 이렇게 여러 날 집에서 책읽기만 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모처럼 학교에 찾아가 본다. 훤한 낮에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로 찾아간다. 모두들 대학시험을 치르려고 건물에서 바깥으로 나올 생각을 않는다. 넓은 운동장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나는 운동장 구석 등나무 걸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이렇게 몇 시간 햇살과 바람을 누리면서 책을 읽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꿈에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고등학교란 참 바보스럽단 말이지. 어떻게 이런 데에서 하루하루 끔찍하게 나를 못살게 굴며 버틸 수 있었을까. 아, 홀가분하다. 좋다.’ 이러다가 잠을 퍼뜩 깬다. 머리가 띵하다. 이게 무슨 꿈인가. 내가 늘 품던 생각이 꿈에서 나타났을까. 내가 누리고프던 지난날 바람이 이 나이가 되어 꿈에서 그려지는가. 곰곰이 돌이킨다. 나는 고등학교를 몹시 애타게 그만두고 싶었다. 나는 중학교부터 아주 애끓도록 집어치우고 싶었다. 삶도 사랑도 사람도 없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나를 미치게 내몰았다. 꿈을 키우지 않는 학교요, 꿈을 짓밟는 학교이며, 꿈하고 동떨어진 학교이다. 나는 학교옷 예쁘장하게 차려입으며 뒷골목에서 담배를 태우는 아이들뿐 아니라, 학교옷 말끔히 갖춰입으며 학원에 앉아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뒤적이는 아이들 모두 불쌍하다고 느낀다. 무엇을 하고 싶은 아이들일까. 무슨 길을 걸으며 어떤 삶을 누리고픈 아이들일까.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떤 배움터·꿈터·삶터·사랑터 노릇을 하는가. 꿈에서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는 내 몸과 마음은 홀가분하다. 그렇지만, 나 혼자만 홀가분하게 살아간다고 느끼니 슬펐다. 이 모진 울타리를 스스로 박차고 뛰쳐나오며 ‘내 삶’을 즐기려 하는 동무를 만나지 못해 안타깝고 서글펐다. 쉬를 누고 물을 마신다. 어제부터 읽는 동시집 《삼베치마》를 생각한다. 《삼베치마》도 참 아름다운 글이지만,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만큼 빛나지는 않는다. 《삼베치마》는 권정생 할아버지가 아주 젊은 날 처음 시쓰기를 하며 당신 꿈을 사랑하려던 조그마한 일기장 같다. 감자떡 먹는 식구들 이야기는 《삼베치마》를 쓰던 젊은 날 적바림하셨구나. (4344.1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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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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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 아줌마가 쓴 소설 읽기
 [책읽기 삶읽기 93] 김이설, 《환영》(자음과모음,2011)

 


 전라남도 고흥에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은 따스합니다. 겨울이 이렇게 따스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고맙습니다. 물이 꽁꽁 언다든지 눈이 펑펑 내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눈을 쓰느라 바쁘지 않아 고맙습니다. 올 사월까지 길가 눈을 쓰느라 손이 안 시린 날이 없었어요. 자가용 없이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시골버스 타는 우리한테는 찻길 눈쓸기를 할 까닭이 없지만, 택배 일꾼이 오가거나 웃집 사람들이 자동차 타고 오갈 때를 걱정하니까, 찻길 눈쓸기를 할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서너 차례 한두 시간 눈을 쓸면 코·귀·손·낯 얼마나 시린지. 그러나 이보다 눈쓸기를 하느라 집일할 겨를이 더 빠듯한 일이 고단합니다. 그나마 올 사월까지는 첫째 아이랑 옆지기 세 식구 살림이었기에 첫째 아이 빨래는 그닥 많지 않았어요. 다만, 이무렵 우리 멧골집 물이 언 나머지, 멧길 타고 올라가는 웃집에서 날마다 물을 길어다 쓰고 빨래랑 설거지도 웃집에서 했어요. 다섯 달 동안.

 

 지나고 보면 아득한 일이요, 지나고 생각하면 꿈 같은 일이며, 지나고 돌아보면 어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나 싶습니다. 아마 어떻게든 살아내는 하루요, 힘들며 고단하다지만 어디부터 샘솟는지 모를 새 기운을 끌어내 견디는 나날인지 모릅니다.

 

 올여름까지 지낸 멧골집하고 견주면 따스한 겨울이지만, 고흥 시골마을 겨울도 겨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바람은 드세면서 차갑습니다. 아침에 똥을 눈 둘째 갓난쟁이 기저귀를 빨래하고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를 빨래해서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너는데, 손가락이 꽁꽁 업니다. 빨래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기저귀들은 금세 업니다. 아침이니까 이렇게 얼지만, 차츰 따뜻해지는 낮햇살을 받으면 스르르 녹으며 바로 마르겠지요.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이러했어요. 이른아침에는 빨래들이 죄다 얼어붙다가 낮하고 가까우면 스르르 녹으며 빨리 말라요. 낮에 빨래 한 차례 더 하면 해가 저 멧등성이에 가까울 무렵 다 마르고, 해가 떨어지기 앞서 빨래 한 차례 더 해서 어른들 두툼한 옷가지 물 안 떨어지게끔 말려서 방으로 들이면 잠자리에 들어 이듬날 일어날 무렵이면 보송보송 마릅니다.


.. 쌓인 눈을 잔뜩 퍼먹으면 이 갈증이 가라앉을까 …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버스 정류장 하나 없는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이런 풍경 속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혹은 몇 시간 뒤엉켜 관계를 하는 데 돈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 일당 사만 원짜리가 한 시간에 십만 원도 벌 수 있었다 … 좋은 일인가. 생전 처음 보는 사내 앞에서 옷을 벗고 받는 돈이었다 …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뜨듯한 국물을 먹는 사람들은 풍요로워 보였다 … 주인 내외는 나 같은 아줌마는 없었다며 일당백이라며 추켜세웠다. 사람 하나 더 쓰자고, 이대로는 일 못 하겠다고 뻗대지 않게 하려는 수였다 ..  (10, 16, 59, 81, 113, 168쪽)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이란, 두 아이와 살아가지 않고서야 모릅니다. 세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이라면 세 아이와 살아가지 않고서야 모를 테지요. 네 아이와 살아간다든지 다섯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도 그래요. 이처럼 살아내지 않고서야 알 턱이 없어요.

 

 어림은 해 보겠지요. 아이 하나와 살아가면서 두 아이 살림살이를 어림해 보겠지요.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세 아이랑 네 아이 살림살이를 어림해 볼 테지요.

 

 우리 집 첫째는 돌이 지나고부터 낮에 기저귀를 풀며 오줌 누이기를 시켰습니다. 두 달 즈음 이곳저곳 스스로 못 참고 오줌이나 똥을 누며 집일이 잔뜩 늘어났지만, 이렇게 뒷치레를 하면서 아이는 스스로 오줌가리기와 똥가리기를 익혔어요. 아이는 제 어머니 아버지하고 하루 내내 함께 붙어서 살아가고, 제 어버이를 지켜보고, 제 집식구를 바라보면서 제 삶과 버릇과 꿈을 가다듬습니다.

 

 세 살에 아직 낮기저귀를 못 떼고, 너덧 살에 아직 밤기저귀를 못 떼며, 대여섯 살까지 기저귀를 채운다면, 이 기저귀도 종이기저귀라면, 이 아이가 어떤 어버이하고 어떤 삶을 꾸리는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 아이는 이 아이대로, 이 아이 어버이는 이 아이 어버이대로 얼마나 즐겁거나 신나거나 기쁘거나 좋거나 아름답다 할 만한 삶을 일구는가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를 바라보고, 이 두 아이와 같이 먹고 자며 일어나는 옆지기를 바라봅니다. 우리들은 무슨 꿈을 키우면서 무슨 이야기를 꽃피우는 사람일까요. 우리들은 이 작은 보금자리를 어떻게 돌보면서 우리들 마음결을 어찌저찌 보살필 수 있을까요.


.. 자기는 나쁜 사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앙연히 줘야 할 돈인데 왜 제가 생색을 내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 남은 반찬만 갖다 버릴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식구도 갖다 버렸으면 싶었다 … 나는 내 안의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몰랐다 … 내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불을 끄고 잤단 말이지 … 엄마는 어디서 살아? 뭐 하고 살아? 자식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는 해? 이런 걸 물어 보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나는 방법을 몰랐다 … 몇 년 만에 만난 모녀 사이인데, 할 말이 참 없었다. 하고 싶은 말들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말들만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26, 46, 97, 104, 143, 170쪽)


 김이설 님 소설 《환영》(자음과모음,2011)을 읽습니다. 두 아이와 옆지기하고 살아가는 김이설 님이 써낸 소설을 읽습니다. 김이설 님은 어떤 삶을 스스로 돌보고 두 아이와 일구며 옆지기랑 사랑하면서 소설을 쓸까요. 김이설 님 소설에는 김이설 님 삶이 어떻게 스며들어 빛날까요.

 

 《환영》을 펼쳐 차근차근 읽는 동안 ‘오늘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내가 중학생 때부터 읽은 소설을 쓴 어른’은 누구였는가 생각합니다. 1970∼8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1950∼6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또 1930∼40년대에 나온 한국소설은 으레 ‘어떤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일구는 어른’이 썼는가 곱씹습니다.

 

 이 나라에서 아줌마가 소설을 쓴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 나라에서 아줌마가 아줌마 눈길과 생각과 삶과 마음과 사랑과 믿음과 꿈으로 소설을 써서 내놓은 지는 얼마나 되었으려나요.

 

 197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라면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요. 195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라면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1930년대에 소설을 쓰는 아줌마는 있었을까요.


.. 왜 만날 나만 돈을 내놨을까 … 떡이 되도록 취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뻔했다 … 아버지는 자식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대상은 오로지 엄마였다 … 뭘 봐요. 돈 없다는 사람 처음 봅니까? ..  (106, 108, 163쪽)


 문학·문학성·문학정신이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삶·삶빛·살림살이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백 사람이면 아흔아홉 사람이 아니라 백 사람 모두 도시에서 살아가려 하는 오늘날, 만 사람이면 겨우 한두 사람 시골에서 살까 말까 한 요즈음, 한국문학과 한국소설에서 담아내며 나눌 이야기라면 어떠한 삶 어떠한 꿈 어떠한 빛깔이 될까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 네 살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신나게 뛰고 달리며 노래하고 춤춥니다. 쉴 사이 없이 종알거리고 떠들며 꽁알꽁알합니다. 이 아이한테 어떤 밥을 먹여야 좋을까 생각합니다. 이 아이랑 밥을 먹고 나서 무슨 놀이를 즐길까 생각합니다. 이 아이를 놀게 하면서 어버이는 무슨 일을 붙잡으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바깥은 바람이 찬데 집에서든 밖에서든 치마만 입겠다는 이 아이를 어찌 달래야 좋을까 생각합니다.


.. 예쁘고 좋은 걸 보면 아이부터 생각났다 … 하루가 너무 길었다. 아이의 살냄새가 그리웠다 …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었다 …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첫 한 발짝 떼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  (15, 22, 30, 187쪽)


 소설책 《환영》을 덮습니다. 꿈을 꾸는 꿈으로 살아가는 실마리에서 빛을 살그머니 붙잡으며 눈물꽃 피우는 사람 하루살이를 떠올립니다. 왕백숙집 아줌마가 이럭저럭 눈물겹게 모은 돈으로 ‘버스 정류장 하나 없’다 싶은 깊은 시골마을에 작은 보금자리랑 논밭을 마련해 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꿉니다. ‘하루에 버스 몇 대 겨우 지나가는’ 시골마을에 조그마한 살림집이랑 논밭을 장만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꿉니다. 더는 물가에 얽히지 않으면서 시원한 샘물을 마시며 꿈을 꾸는 꿈으로 살림을 돌볼 수 있는 앞날이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듭 꿈을 꿉니다. 못난쟁이투성이 살붙이라 하지만 돈을 벌어 돈을 쓰고 돈으로 꾸리는 살림에서 벗어나 사랑을 벌어 사랑을 나누는 살림을 헤아릴 수 있으면, 이리하여 그림자 같은 나날이 아니요, 서로 반가운 이야기꽃 피우는 나날이라면, 더없이 좋을 텐데 하고 꿈꿉니다.

 

 글을 읽으며 “엄마한테 전화를 받다”라든지 “엄마한테 들었다” 같은 말투가 자주 보입니다. 이때에는 ‘-한테’가 아니라 ‘-한테서’ 토씨를 붙여, “엄마한테서 전화를 받다”와 “엄마한테서 들었다”처럼 적어야 올발라요. 제가 읽은 책은 5쇄인데 모두 ‘-한테’로만 나왔기에, 이 소설을 읽을 분들을 생각해서 군말 한 마디 붙입니다. (4344.12.26.달.ㅎㄲㅅㄱ)


― 환영 (김이설 글,자음과모음 펴냄,2011.6.17./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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