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랄다와 거인 비룡소의 그림동화 27
토미 웅거러 / 비룡소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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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순 사랑으로 짓는 밥이 맛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21] 토미 웅거러, 《제랄다와 거인》(비룡소,1996)

 


 군청에 들를 일이 있어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아침 열한 시 십오 분 버스를 타면 가장 따스할 때이니 돌아올 때에도 좋으리라 생각하는데, 첫째 아이는 열한 시가 다 되어 일어나고, 마당에 기저귀 빨래를 널자니, 큰길로 군내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글렀네, 두 시 버스를 타면 어설프게 되어 첫째가 낮잠을 또 건너뛸 텐데, 이래저래 걱정스럽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되지, 하고 다시 생각하니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천천히 밥을 차려서 차분히 짐을 꾸려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국을 끓입니다. 어제 마련한 반찬을 꺼냅니다. 아침을 먹습니다.

 

 둘째랑 첫째랑 아버지랑 나란히 콜록거리며 몸이 안 좋습니다. 아버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습니다. 조금 자고 일어나서 기운을 내야지.

 

 으슬으슬 추운 몸은 사십 분 즈음 누웠어도 그닥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시가 거의 다 된 줄 깨닫고는 부랴부랴 짐을 꾸립니다. 모처럼 느긋하게 나가나 했더니 오늘도 집을 나설 때에는 헐레벌떡입니다.

 

 읍내에 내릴 무렵 하늘은 우중충합니다. 해가 날 듯 말 듯하면서 고개를 내밀지 않습니다. 바람이 좀 찹니다. 생각해 보면 겨울이니 추울밖에요. 겨울바람이 안 차다면 외려 엉뚱한 셈이에요. 옆지기가 “올겨울에는 코트 입을 일이 없네요.” 하고 흘리는 말을 들으며 ‘어, 그러네. 참말, 이곳에서는 두툼한 겉옷을 입지 않네.’ 하고 생각합니다. 깊은 밤에는 살짝 영 도 밑으로 내려가는 날이 있어도, 아침이 밝으면 으레 영 도 위로 올라옵니다. 낮이 밝으면 빨래가 보송보송 잘 마릅니다.

 

 날씨가 따스하면 이렇게 좋다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조금만 헤아리면 스스로 깨달을 만하지만, 스스로 조금 더 헤아리지 못하다가 이렇게 말 한 마디 듣고서야 뒤늦게 알아챕니다.

 

 그래, 그러면 말야, 날씨를 느끼며 이렇게 좋구나 싶으면, 마음결 따스한 사람은 둘레 사람들한테 얼마나 즐겁고 넉넉하며 아름다운 셈일까. 나는 내 둘레 사람들한테 얼마나 따스하게 다가서는 사람일까. 멀디먼 사람들을 생각하기 앞서, 내 가까운 이웃한테, 내 살붙이한테, 내 좋은 동무한테, 나는 얼마나 따순 마음과 생각과 손길과 눈길로 어깨동무하는 사람일까.


.. 옛날에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이 혼자 외로이 살고 있었습니다 ..  (3쪽)


 볼일은 금세 마칩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바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서, 고흥시장에 들릅니다. 버섯을 살까 생각하며, 나는 왜 늘 같은 것만 사는가 하고 곱씹다가는, 오늘은 옆지기 말을 듣고 매생이를 두 뭉치 삽니다. 단단하게 뭉친 하나로 얼마나 먹는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옆지기가 잘 먹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나도 같이 잘 먹으면 되고요. 매생이를 샀으니 굴도 한 사발 삽니다. 굴을 사는 김에 갑오징어까지 삽니다. 지난가을에는 갑오징어 여덟∼열 마리에 이만 원쯤 했는데, 겨울 한복판에는 네 마리에 이만 원입니다. 그러나 갑오징어를 먹어 보면 여느 오징어는 못 먹는걸요. 녹동포구에 가면 갑오징어가 한결 값이 쌀 테지만, 도화면에서 녹동으로 오가는 버스는 없어서, 고흥읍으로 마실을 와야 합니다.

 

 옆지기가 술은 안 사느냐고 해서 딱히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있으면 마실는지 모르나 몸에서 술을 부르지 않으니 굳이 사지 않습니다. 요 스무 날 사이에는 면내에서 막걸리만 가끔 사서 이틀이나 사흘에 한 병쯤 마셨어요. 오늘은 이런 막걸리마저 사지 않습니다.

 

 포두면 택시를 오늘도 부를까 하다가 읍내 택시를 그냥 타기로 합니다. 포두면 택시를 부르면 택시삯이 이천 원 싸요. 읍내 택시는 읍내로 돌아가는 길이 멀지만, 포두면 택시는 포두면으로 돌아가는 길이 반토막이에요.


.. 멀리 떨어진 어느 골짜기, 숲속 한가운데서 한 농부가 외동딸 제랄다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두 사람은 사람 잡아먹는 거인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  (8쪽)


 집으로 돌아와 빨래를 걷습니다. 빗방울이 가늘게 듭니다. 가랑비도 실비도 는개도 아닌 빗방울이 듭니다. 그래도 비가 쏟아붓지 않아 고맙습니다.

 

 옆지기가 자꾸 으슬으슬 춥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다른 날보다 살짝 춥구나 싶어요. 보일러를 돌리고는 자리에 누워 조금 쉬자고 생각합니다. 참말 조금 쉬는데 옆지기가 묻습니다. “오늘은 저녁 언제 먹어요?” 어느새 저녁을 해야 하는 때인가 싶어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기 싫구나 생각하다가, “벌써 다섯 시 넘었어요.” 하는 말에 벌떡 일어납니다. 이렇게 미적거리다가는 금세 해 떨어지고 어두운 저녁이 되면서 모두들 더 힘들어지니까요.

 

 읍내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는 아까 밑손질을 했습니다. 조금 품을 들여 얼른 차리면 됩니다. 아침에 먹고 남은 국은 뎁히면 됩니다. 갑오징어와 매생이 데칠 물을 스텐냄비 두 곳에 따로 끓입니다. 매생이는 아주 살짝 데쳐서 건지고, 갑오징어는 조금 더 데친 다음 건집니다. 이동안 굴은 흐르는 물로 여러 차례 헹구어 흙기운이 나오지 않도록 합니다. 물이 끓는 사이 초고추장을 더 마련합니다.

 

 하나하나 밥상에 올립니다. 아이가 젓가락이며 숟가락을 달라고 부릅니다. 수저를 안겨 자리에 놓으라 시키고, 갑오징어를 먹기 알맞춤한 크기로 썹니다. 옆지기는 아기를 업은 채 김치를 가져와서 가위로 자릅니다. 아이는 김치를 달라며 어머니 옆에 붙습니다. 국을 뜨고 밥을 풉니다. 모처럼 오징어를 데쳤더니 아이가 밥을 더 달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된 사람이 다른 때에도 이렇게 저녁을 차렸으면 좀 좋니, 하는 생각이 납니다. 옆지기는 푸짐하게 차린 밥상을 보기만 해도 좋다고 말합니다. 이것저것 값비싸게 장만해서 차리는 밥상이 아니라, 들판이나 바다에서 얻은 싱싱한 먹을거리를 조금만 손질해서 쉽게 올리는 밥상이니, 그저 보기만 해도 좋고, 먹을 때에도 좋겠지요.


.. 거인은 너무나도 굶주린 나머지 허둥대다가, 그만 바위에서 미끄러져 길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졌습니다. 거인은 발목이 삐고 코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어요. “어머나! 불쌍해라!” 제랄다가 소리쳤어요. 제랄다는 가까운 개울에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다친 거인의 얼굴을 닦아 주었습니다 ..  (16쪽)


 밥을 먹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여느 오징어라면 만 원에 너덧 마리는 줄 테지만, 맛이 달라요. 갑오징어는 두 마리에 만 원 치인 셈이지만, 세 식구가 저녁으로 먹으며 남습니다. 고흥에서는 갑오징어가 되든 고등어가 되든 물텀벙이 되든 갈치가 되든 퍽 싸다 할 만합니다. 우리 식구는 그리 많이 안 먹는 밥차림이니, 꾸준하게 하나씩 장만해서 먹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네 식구 올해로 여섯 해째 함께 살면서 이런 생각을 이제서야 하느냐고, 아니 이런 생각을 또 하느냐고, 참 부끄러이 혼자 뉘우칩니다.

 

 그림책 《제랄다와 거인》(비룡소,1996)을 떠올립니다. 토미 웅거러 님이 빚은 그림책 《제랄다와 거인》은 아이들 잡아먹는 거인한테 따순 마음을 나누어 줄 뿐 아니라, 따순 밥을 함께 나누어 주던 제랄다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제랄다는 누구한테나 스스럼없습니다. 제랄다는 꽃한테도 하늘한테도 아버지한테도, 또 거인한테도 이웃한테도 나무한테도 따사롭습니다. 예쁜 마음이요 착한 넋입니다. 살가운 손길이며 보드라운 눈길입니다.

 

 제랄다가 아주 대단하다 싶은 밥을 차리는지 모릅니다만, 또 그림책에서는 제랄다 밥하는 솜씨가 대단한 듯 나오기는 합니다만, 제랄다가 차리는 밥은 그리 대단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왜냐하면, 제랄다가 차리는 밥은 대단한 밥이 아니라 사랑 담은 밥이거든요. 사랑을 담이 이렇게도 빚고 저렇게도 빚어요. 사랑을 담고 따스함을 실어 배불리 즐길 수 있도록 내놓아요. 거인은 이처럼 사랑 담은 밥을 먹어 본 적 없기 때문에 제랄다가 차린 밥을 아주 맛있다고 느낍니다.


.. “맛있는데!” “근사해!” “세상에 이런 맛이!” “한 마디로 하늘나라 맛이야!” 거인들은 저마다 큰 소리로 감탄하며, 너도나도 제랄다에게 만드는 법을 알려 달라고 하지 뭐예요. 그때부터 거인들은 아이들을 먹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지요 ..  (26쪽)


 아주 남다르다 싶은 어떤 재주를 부리는 제랄다가 아닙니다. 그저 다 함께 더 즐거이 밥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면서 좋은 마음을 담는 제랄다입니다.

 

 제랄다는 이웃 거인 모두한테 어떻게 밥을 맛나게 차릴 수 있는지를 또다시 스스럼없이 알려줍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거든요. 누구라도 수월하게 좋은 밥을 차릴 수 있거든요.

 

 즐거이 꾸리는 삶을 사랑할 줄 압니다. 즐거이 꾸리는 삶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사랑할 줄 압니다.

 

 좋은 밥을 차리려고 애쓸 줄 압니다. 좋은 밥을 차리려고 애써 좋은 땀을 흘리며 흙을 일구거나 갯벌을 누비거나 바다를 돌아다닐 줄 알겠지요. 좋은 삶을 함께 누리려고 옷을 지을 줄 알고, 집을 돌볼 줄 알며, 아이를 보살필 줄 알겠지요. 좋은 꿈을 다 같이 이루려고 사랑을 꽃피울 줄 알 테고요.

 

 곰곰이 돌아보면, 제랄다는 우리 곁에 있습니다. 내 아이가 제랄다일 수 있습니다. 내가 바로 제랄다일 수 있습니다. 내 아이 마음은 제랄다 마음하고 같을 수 있고, 내 마음은 제랄다 마음하고 한동아리일 수 있어요. 아니, 누구나 제랄다하고 같은 마음 같은 사랑이지만, 스스로 바쁜 굴레에 매이거나 힘겨운 수렁에 빠지면서 그만 스스로 이름을 버린 거인처럼 뒹구는지 몰라요. 제랄다한테는 제랄다라는 이름이 있으나 거인한테는 거인이라는 ‘가리키는 말’만 있거든요. (4345.1.3.불.ㅎㄲㅅㄱ)


― 제랄다와 거인 (토미 웅거러 글·그림,김경연 옮김,비룡소 펴냄,1996.5.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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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 님 산문책을 읽고 나서 이러한 소설이 있는 줄 곰곰이 생각한다. 예전에 쓰신 글은 모조리 품절이나 절판인 듯한데 이 소설책도 설마 주문을 하면 품절이라고 하지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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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여인- 2007 제39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김비 지음 / 동아일보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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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1월 0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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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 즐겨찾는 이웃 분들이

거의 아줌마가 아닌가 하고 느끼며

이런 글을 써 봅니다 ^^;;;;;

 

 


 아줌마하고 놀기

 


 옆지기는 아줌마하고 논다. 옆지기는 뜨개하는 아줌마하고 셈틀로 만나며 논다. 옆지기가 만나는 뜨개하는 아줌마 얼굴을 본 적 없다. 목소리를 들은 적 없다. 어떠한 살림을 꾸리는지 모른다. 다만, 집일을 도맡고 아이들 보살피며 큼지막한 아들까지 건사하면서 뜨개질까지 할 뿐 아니라, 셈틀을 켜고 손수 찍은 사진을 붙여 글까지 쓰는 아줌마라고 떠올린다면, 참 놀랍구나 싶다. 뜨개하는 아저씨도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집일을 도맡고 아이들 보살피며 큼지막한 딸을 건사하면서 뜨개질에다가 손수 사진 찍은 사진을 붙인 글을 쓰는 ‘뜨개하는 아저씨’는 몇 사람쯤 될까. 어느 뜨개하는 아줌마는 이런저런 일에다가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까지 하겠지. 이러한 아줌마하고 살짝살짝 말꽃을 피울 수 있는 옆지기가 적이 부럽지만, 우리 집에도 아줌마가 한 사람 있으니 괜찮다.

 

 곰곰이 돌아보면 나도 아줌마하고 곧잘 놀지 않느냐 싶다. 아니, 아저씨하고 어울릴 때보다 아줌마하고 어울릴 때에 한결 마음이 놓인다. 아저씨하고 어울린다 할 때에는 집일을 조금이나마 맡는 아저씨일 때에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이고, 아이들 보살필 줄 아는 아저씨라 한다면 조금 더 마음이 놓이며, 뜨개질이건 바느질이건 책읽기이건 자전거이건 무엇이건 스스로 삶을 밝히는 길을 차근차근 찾는 아저씨일 때에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집에서 하는 일로 이야기꽃 함께 피우지 못하는 아저씨하고 있으면 거북하다. 집에서 아이들 마주하는 일로 이야기열매 함께 나누지 못하는 아저씨하고 있으면 어렵다.

 

 거꾸로 생각해 본다. 나는 아줌마하고 놀 때에 즐겁다 하지만, 아줌마는 나하고 놀 때에 즐거울까. 나는 한국땅 여느 아저씨하고 놀며 즐거운 적이 드물지만, 한국땅 여느 아저씨는 나 같은 사람하고 놀며 즐거울 일이 없지 않을까. (4345.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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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05 03:2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줌마하고 놀기, 지금은 설마 주무시겠지요?
하도 늦게까지 계시고 새벽 일찌기 글을 쓰셔서.

한국 아저씨도 된장님과 노는게 즐거워야, 행복한 한국이 될텐데요... ^^

파란놀 2012-01-05 08:20   좋아요 0 | URL
앞으로 우리네 어린 사내들이
좀 사람답게
잘 크는
사랑을 누리면 좋겠어요.... 이궁...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51) 존재 151 : 이 만화가 존재하는 것

 

.. 많은 서점의 취재 협조가 있기에 이 만화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소야 유키/설은미 옮김-서점 숲의 아카리 (5)》(학산문화사,2010) 191쪽

 

 “많은 서점의 취재 협조(協助)가 있기에”는 “서점들이 취재를 도와주었기에”로 다듬습니다. “-하는 것입니다”는 “-합니다”로 손보고, ‘감사(感謝)합니다’는 ‘고맙습니다’로 손봅니다.

 

 이 만화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 이 만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 만화가 있습니다
→ 이 만화가 태어납니다
 …

 

 이 보기글은 번역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일본사람 일본글을 한국글로 무늬만 바꾸었을 뿐입니다. 일본사람 일본 글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기에 무늬는 한글이라 하지만 한국글이라 할 수 없어요.

 

 번역하는 분이 너무 바쁜 나머지 번역을 못했을 수 있습니다. 책을 내는 곳에서 너무 바쁜 탓에 한국글로 가다듬지 못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번역 아닌 번역이 참 많습니다. 번역 아닌 번역으로 책을 내놓아도 사람들은 잘 읽습니다. 잘 읽고 잘 새기다가는 어느새 이러한 번역 글투에 젖어듭니다.

 

 처음에는 올바르지 않은 줄 알거나 느끼다가도,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칩니다. 더 지난 다음에는 나도 모르게 번역 글투로 글을 쓰고, 이 글투가 내 말투로 스며듭니다.

 

 이 만화를 그릴 수 있습니다
 이 만화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

 

 사람들 눈과 손과 입과 귀에 익은 글투도 한국 글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날 한국사람 누구나 익숙하게 쓰는 글투나 말투라면 애써 손사래치거나 물리치거나 나무랄 수 없다 말할는지 모릅니다.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면 그만이니까요.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하면 그만일 테니까요. 고개를 젓고 눈을 감으면 그만이라 하니까요.

 

 그러나 나로서는 눈을 감지 못하고 고개를 젓지 못합니다. 나는 한국땅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사람인걸요. 나는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사람인데요.

 

 가장 아름다이 살아가고픈 꿈을 말 한 마디에 싣고 싶습니다. 가장 어여삐 어깨동무하고픈 사랑을 글 한 줄에 담고 싶습니다. (4345.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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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 김수남 사진굿
김수남 사진, 고운기.양진.백지순 글과 사진 정리 / 현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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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삶을 걸쳐 사랑하기에 사진으로 찍는다
 [찾아 읽는 사진책 75] 김수남, 《魂, 김수남 사진굿》(현암사,2007)

 


 고등학생이던 때 《한국의 굿》(열화당)이라는 사진책 스무 가지를 처음 보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책이 있는 줄 이야기하지 않았고, 읽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이 나라에서는 굿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더러, 벌써 사라지고 없는 푸닥거리로 여길 뿐입니다.

 

 그무렵 인천에서는 황해도 굿을 해마다 벌이는 자리가 있었다고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든 동네에서든 굿구경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한국 문화를 가르치든 한국 사회를 들려주든, 우리 겨레 굿이 무엇이고 어떻게 펼쳐지며 왜 하는가를 밝히거나 알려주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1992∼1993년, 나한테는 고등학교 2∼3학년이던 때에 인천에 있는 일곱 군데 도서관을 요일에 맞추어 찾아가며 열람실을 뒤집니다. 《한국의 굿》이라는 책이 있나 헤아립니다. 스무 권을 다 갖춘 도서관은 아예 없고, 그나마 한두 권조차 없는 데마저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찾아서 읽지 못하는데, 부평에 있던 헌책방에서 《한국의 굿》을 대여섯 권쯤 만납니다. 나중에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에서도 여러 권 만납니다. 동인천에 있는 새책방 대한서림과 동인서관에서 이 책을 한 권이라도 보았던가 가물가물합니다. 부평에 있던 새책방 한겨레문고에는 이 책이 있었는지 갸웃갸웃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생은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없고 새책방에서 찾을 수 없는 책은 헌책방에서 살펴야 하는구나.’

 

 대학생이 되어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갑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장 많이 들어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가운데 굿을 알거나 보거나 생각하거나 들은 동무는 없습니다. 선배도 후배도 똑같습니다. 나는 내 고등학생 때 하나둘 그러모은 《한국의 굿》을 가방에 짊어지고 대학교로 가서 동무와 선후배한테 이 책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대학생쯤 된다면 한국 문화 한 가지쯤 옳게 알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을 붙이며 책을 빌려줍니다.

 

 책을 빌려준다기보다 읽으라고 밀어붙이는 셈이었구나 싶은데, 옳게 다 읽고 돌려준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만 스윽 넘기고는 뒤에 붙은 글은 읽지 않기 일쑤입니다.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이가 많습니다. 나 혼자 멀디먼 전철길에 책을 되읽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철을 타고 자가용을 타며 비행기를 타는 오늘날 한국사람한테는 《한국의 굿》은 영문을 알 수 없고 뜻을 짚을 수 없는 머나먼 ‘미개 나라’ 이야기입니다. ‘문명 나라’ 사람으로서는 가끔 방송을 타는 다큐멘터리 흉내를 낸 모습을 들여다보면 되지, 굳이 책으로까지 읽으며 머리에 담을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쟁이 김수남 님이 흙으로 돌아간 다음 나온 사진책 《魂, 김수남 사진굿》(현암사,2007)을 읽습니다.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써서 엮은 책이로구나 싶지만, 글이나 사진이 좀처럼 환하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편집이 퍽 어수선합니다. 글도 사진도 한눈에 확 사로잡도록 엮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이래 가지고 한국 문화와 사회에는 거의 눈길을 안 두는 오늘날 사람들을 이 책에 어떻게 끌어들일까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김수남 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무당이 놀라운 춤사위를 벌이는 그림도 많으나, 애틋하게 눈물겨운 그림도 많습니다. 어여삐 빛나는 그림도 많으며, 눈부신 무지개 그림도 많아요. 김수남 님 사진책은 으레 겉그림이나 대표작으로 흑백사진만 내세우곤 하는데, 《魂, 김수남 사진굿》에도 실린 어여삐 빛나는 무지개빛 사진을 겉에 곱게 깔면서 보드랍고 따사로이 이야기를 펼치는 엮음새로 책을 냈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김수남 님 사진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은 좀 덜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호감을 가진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13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김수남 님 스스로 좋아해서 사진을 찍고, 김수남 님한테 사진을 찍힌 이들 또한 스스로 좋아서 사진으로 찍힙니다.

 

 뭐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 아니에요. 한국 문화와 사회 가운데 한 가지를 붙잡아 담은 사진이에요. 한국 문화와 사회 가운데 김수남 님이 좋아하며 사랑할 만한 이야기 하나를 바라본 사진이에요.

 

 김수남 님은 한국 굿에서 외국 굿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1980년대에 굿 사진을 찍고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어찌할 수 없는 모습이었을 텐데요, 김수남 님이 사진으로 담는 한국 문화를 ‘굿’ 다음으로 ‘밥’이나 ‘밭’이나 ‘길’이나 ‘옷’으로 삼았다면, 아마 이때에는 밥굶기 딱 좋았으리라 봅니다. 요즈음도 한국 굿뿐 아니라 한국 밥과 한국 밭과 한국 길과 한국 옷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는 누군가 있다면, 그야말로 밥굶기를 다짐하면서 사진길을 걷겠지요. 그래서 오늘날 사진쟁이 가운데 어느 누구도 여느 사람들 밥먹기와 밭일과 길(골목길·고샅길·논둑길·멧길·바닷길·들길)과 옷차림을 찬찬히 담아내지 않아요. 모두들 그럴듯한 그림이나 돈벌이 되는 사진으로만 흘러요.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다행히 내 카메라는 의식들을 안 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미리 가는 것이다. 한 지역에 뭔가가 있다고 하면 미리 간다(46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함께 어우러질 만큼 좋아하는 사람하고 부대끼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행사가 펼쳐진 때’에만 뚝딱 사진을 찍고 떠나지 않습니다. 일찌감치 찾아와서 노닥거립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퍼질러 앉아서 노래하며 놉니다.

 

 혼인잔치 사진을 찍는 사람은 20분쯤 앞서부터 신부대기실을 찍고 신랑신부 행진과 주례 같은 모습을 찍겠지요. 그러나 짧은 행사를 마치고 밥을 먹을 즈음 장비를 챙겨 돌아갑니다. 혼인잔치 ‘행사’를 찍는 사진관 일꾼이 아닌, 혼인잔치 ‘잔칫날 좋은 일’을 기리려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혼인잔치를 앞두고도 찾아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잔칫날에는 일찍부터 자리를 잡을 테며, 잔치가 다 끝나고 나서도 오래도록 머물며 서로 기뻐해 주겠지요.

 

 사진만 따로 있는 일은 없습니다. 삶과 함께 사진입니다. 사진만 동떨어져 작품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삶과 함께 얼크러지면서 사진이야기 일굽니다.

 

 “외국 작가는 돈 주고 데려오면서 왜 한국 작가들에게는 그저 개인의 희생만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52∼53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전국에 있는 문화재단이라든지 문화체육관광부라든지 공공기관이라든지 대학교라든지 기업이라든지, 바로 오늘 우리 삶을 아끼며 사랑하는 손길로 우리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글·그림·만화·사진·춤·노래·연극·영화 들로 담아낼 수 있으며 즐겁습니다.

 

 볍씨 한 알에 싹을 틔워 싱그러이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운 다음 이삭이 패는 흐름을 곱게 사진으로 담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담는 사람을 뒷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수수한 여느 일을 사진으로 담는 눈물과 웃음이 얼마나 보람차면서 사랑스러운가를 느끼는 뒷배를 해야 합니다. 바느질과 뜨개질을 비롯해 재봉틀질을 하는 모든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야 해요. 밥하기와 설거지를 사진으로 빚을 수 있어야 해요. 손빨래이든 기계빨래이든 사진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해요.

 

 “사진 하면 아트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지만, 사실은 기록성이 사진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나는 사진이 예술뿐 아니라 역사라든가 사회 가운데에 무언가를 남겨야 하고, 그렇게 해서 자기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104쪽).”고 말하는 김수남 님입니다. 사진기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사진기로 적바림(기록)’하면서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니 무어니 하기 앞서 예술작품으로 선보이는 사진작품은 ‘적바림하는 사진’이어야 해요. 적바림하지 않고서는 예술도 문화도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적바림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적바림하는 대목’만 뽑아내어 예술작품으로 빚는다 하면, 그야말로 예술일 뿐 사진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연필이나 붓을 놀려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라 하지 글이라 하지 않아요. 글자를 그리더라도 그림이 되지 이야기 담긴 글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기로 무언가를 찍었대서 모두 사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연필로 만화를 그리며 풍선에 말을 적었어도 그저 만화이지 글이라 하지 않아요. 오늘날 숱한 만듦사진은 예술 테두리에 넣어야지, 만듦사진을 사진으로 다룰 수 없어요.

 

 “20년 전의 사진을 들고 간 나에게 그리 오래 자신을 찍은 사진을 소중히 생각해 줘서 고맙고 또 고맙다고 눈물을 흘린다(201쪽).”고 말하는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먼 훗날 자신들의 문화를 얘기해야 할 때 나의 사진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말을 현지 지식인들로부터 들을 때마다 나는 슬픔을 느낀다. 우리들의 옛 모습을 서양사람들이 찍은 것이 많아서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문화를 사랑하고 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가슴, 남의 것이 훌륭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그 가슴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277쪽).”고 말하는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안타깝다 할 수 있고 슬프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김수남 님은 사진으로 담았는걸요. 나라밖 누군가는 김수남 님이 애써 사진으로 찍어 주어 고마운걸요. 우리도 이 나라로 찾아온 누군가 찍어 준 사진이 있어 고마워요.

 

 어떤 외국사람은 한국 삶자락 담은 사진을 비싼값에 팔 테지만, 퍽 많은 외국사람은 돈 한 푼 안 받고 당신이 찍은 사진을 모두 선물합니다.

 

 외국사람이 바라보는 한국 모습이라 해서 ‘한국 모습이 아니’지 않아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 모습이라 해서 ‘한국 모습을 옳고 바르며 참답고 착하게 담았’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사랑하는 사람이 글을 쓰며, 사랑하는 사람이 그림을 그려요.

 

 굿을 사랑할 수 있던 사람이 굿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흙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흙일꾼 한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패션모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패션사진을 빚겠지요.

 

 다만, 요사이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한동안 붙잡는 ‘사진 찍힐 대상’으로만 바라보면서 지나가고 마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한 번 사랑하고 끝날’ 이음고리가 아닌데, 온삶을 걸쳐 고이 만남끈을 잇지 않곤 해요. 새로운 소재나 새로운 주제는 없어도 돼요. 사진길을 걷는 사람한테는 오직 온마음 바쳐 사랑할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면 넉넉하면서 따뜻해요. (4345.1.3.불.ㅎㄲㅅㄱ)


― 魂, 김수남 사진굿 (김수남 글·사진,고운기·양진·백지순 풀이글·정리,현암사 펴냄,2007.2.5./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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