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읽는 사진책, 호시노 미치오(星野道夫)

 


 아이는 웬만한 책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웬만한 책이란 웬만한 놀이만큼 재미나지 않으니까요. 아이 어버이인 나는 웬만한 사진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웬만한 사진에 눈길을 둘 만큼 내 삶을 그 사진에 들이고 싶지 않으니까요.

 

 아이는 사진 한 장 두 장 살몃살몃 넘기며 아이 나름대로 즐길 만한 이야기를 엮습니다. 아이 어버이는 아이 어버이대로 사진 한 장 두 장 ‘아이가 읽는 결과 빠르기’에 맞추어 거듭 읽으면서 사진마다 어떤 이야기와 꿈을 새로 맞아들이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북극에서 곰 발자국을 좇으며 곰들이 어떻게 삶을 누리는가를 사진으로 담는 이는 예나 이제나 어김없이 있겠지요. 곰과 함께 봄을 맞고, 곰과 함께 겨울을 맞으며, 곰과 함께 배고픈 몸을 이끌며 먹이를 찾고, 곰과 함께 눈부신 봄가을빛 마음껏 누리는 사진쟁이는 틀림없이 있을 테지요.

 

 사진책 하나를 펼치면서 생각나라에 빠집니다. 아아, 나와 아이와 옆지기는 모두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책을 읽으면서 북극나라를 거니는구나. (4345.1.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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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作寫眞館 4卷 星野道夫「アラスカ」 (小學館ア-カイヴスベスト·ライブラリ-) (大型本)
호시노 미치오 / 小學館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벗님 앞에서 아름다운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46] 호시노 미치오(星野道夫), 《Grizzly》(平凡社,1985)

 


 앓아눕다가 자리를 박차고 겨우 일어난 지 이레쯤 되었나 싶습니다. 좋은 손님이 서울부터 전남 고흥 우리 사진책도서관까지 먼 마실을 하며 찾아오셨기에 처음으로 면내 가게에 술을 시켜 봅니다. 첫째 아이랑 나랑 둘이서 도서관에서 어울려 노는 동안, 옆지기는 집에서 둘째를 살살 달래며 재운 다음 현미가루케익을 굽고 꼴띠(꼴뚜기)지짐을 하며 매생이국을 마련합니다. 몸이 아직 시원찮은 나머지, 밥하기를 옆지기가 맡아 해 줍니다. 곱게 차린 밥상에 술 한 병 올려 좋은 손님이랑 나눕니다.

 

 한 달 조금 못 되게 마시지 않던 보리술을 모처럼 여러 병 마십니다. 아이들은 늦게까지 신나게 뛰놀다가 모두 새근새근 잠듭니다. 첫째도 둘째도 마음껏 뛰고 기며 놀다가는 한달음에 곯아떨어집니다. 그야말로 갑자기 아주 조용합니다.

 

 날은 따스해 깊은 밤이 되어도 쌀쌀하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 모자라지 않습니다. 마당에 내려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카만 밤빛을 느낍니다. 씻는방에 그득하게 쌓인 빨랫감을 바라보며, ‘뭐 이듬날 아침에 하면 되지. 정 많으면 새벽에 보일러 돌아가며 뜨신 물 나올 때에 조금 나누어 하면 되지.’ 하고 생각합니다.

 

 방으로 돌아옵니다. 셈틀 앞에 앉습니다. 조용하며 느긋합니다. 자, 이 좋은 느낌을 담아 글 한 줄 써 볼까. 그런데 막상 마음을 가다듬어 글 한 줄 쓰자니 도무지 어디에서인가 꽝꽝 막힙니다. 무엇이 막히지? 왜 막히지? 아, 한동안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셨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이 막히나? 고작 보리술 몇 병으로 이렇게 생각이 멈추나?

 

 한 시간 이십 분쯤 용을 쓰다가 그대로 드러눕습니다. 글쓰기는 용쓰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삶쓰기입니다. 삶을 스스럼없이 북돋우며 사랑하고 아끼는 넋이 샘솟지 않는다면 아무런 글 한 줄 쓸 수 없습니다. 글쓰기는 사랑쓰기입니다. 내 삶을 온마음 바치는 사랑으로 꿈꾸어 가꾸지 못한다면 어떠한 글 하나 낳지 못합니다.

 

 어느새 아이들 곁에서 새근새근 자다가 새벽 네 시에 깹니다. 둘째가 쉬를 누며 잠을 깨 으앙으앙 자지러지게 울거든요. 아이 어머니가 보드라이 달래고 어르며 둘째를 다시 재우고는 다시 모두들 조용히 잠자리를 누립니다. 나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자리에 앉습니다. 지난 2010년 가을,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대우서점〉에서 장만하고는 오래오래 책상맡에 두며 틈틈이 들추고 바라본 사진책 《Grizzly》(平凡社,1985)를 생각합니다. 이 사진책을 펼치면 딴짓 하던 다섯 살 첫째 아이가 아버지 곁으로 뽀르르 달려와 “나도! 나도!” 하면서 함께 책장을 넘기며 보겠다고 방방 뜁니다. 다른 사진책을 펼칠 때에는 같이 보자 해도 보지 않더니, 이 사진책 《Grizzly》에는 왜 그리도 달려드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아이보고 손을 펴라 합니다. 손가락을 만집니다. “자, 손 씻고 보자. 손을 씻지 않고 이 책장을 넘기면 네 손그림이 종이에 묻어.”

 

 

 

 

 

 

 

 

 

 

 

 그러께 부산에서 《Grizzly》를 장만하면서, 처음에는 이 사진책 찍은 사람 이름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겉종이를 채운 사진만 바라보며 살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곰 찍은 좀 흔한 사진인가?’ 하고 생각하며 지나쳤습니다.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 책잔치 때에 여러 날 머물며 책을 다섯 상자 부피로 장만했는데, 그동안 이 사진책은 흘끗흘끗 지나치며 바라보았을 뿐, 막상 집어들어 책장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보아 하니,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 사진책을 눈여겨보지 않아요. 잘 보이는 자리에 펼쳐 놓았으나 좀처럼 팔리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수동 책잔치가 끝날 무렵, 나와 옆지기가 책을 실컷 장만하고서 이제 더는 책을 고르지 말자고, 책값으로 살림돈이 아주 바닥나겠구나 걱정스러울 무렵, 헌책방 일꾼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헌책방골목 사진을 찍을 무렵, ‘그래, 오늘로 책방마실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언제 또 이 책들을 구경하겠니. 사지 않더라도 구경은 하자.’ 하는 마음으로 ‘그냥 곰 찍은 좀 흔한 사진책’으로 여기던 《Grizzly》를 집었습니다.

 

 책 안쪽에는 사인펜으로 ‘엉성하게 휘갈긴’ 듯한 손글씨가 큼직하게 있습니다. 사진쟁이 이름이 넉 자 적힙니다. 한자로 ‘星野道夫 1986.4.4.’를 읽으며 그저 시큰둥합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참 글씨도 영 못 쓰는군.’ 그런데 막상 첫 사진을 펼치니 입이 쩍 벌어집니다. ‘어, 뭐야, 겉종이에 넣은 사진이랑 책 짜임새는 영 어설프면서 속에 깃든 사진은 뭐지? 흔하게 만든 흔하게 찍은 동물 사진이 아니었어?’

 

 사진 몇 장 넘기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스칩니다. 책날개를 펼칩니다. 사진쟁이 이름을 다시 읽습니다. ‘星野道夫를 어떻게 읽더라. 옳지. 옆에 영어로도 적는구나. Michio Hoshino.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라. 응, 호시노 미치오?’

 

 1952년 일본 치바에서 태어난 호시노 미치오 님은 1985년 11월 11일에 드디어 당신 첫 사진책 《Grizzly》를 내놓으면서 당신 사진길을 널리 알립니다. 그러니까,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만난 《Grizzly》는 바로 그 《Grizzly》입니다. 처음 내놓은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책이면서, 누군가한테 당신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서 드린 사진책이 부산 보수동 헌책방 한 곳에 널리 잘 보이는 자리에 펼쳐진 채 오래오래 있었구나. 그렇구나.

 

 

 

 

 

 

 

 

 

 

 

 2010년 9월 11일 저녁, 부산 보수동 여관방에서 잠들기 앞서 사진책 겉에 묻은 ‘세월 때’를 문질러 닦습니다. 옆지기랑 아이하고 사진 한 장 한 장 살몃살몃 넘기며 읽습니다. 다른 책들은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시골집으로 부치지만, 이 사진책은 아이 옷가지와 천기저귀로 꽉 찬 무거운 가방에 함께 넣어 등으로 짊어지며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고는 이태 동안 책상맡에 곱디곱게 모시며 틈날 때마다 들춥니다.

 

 슬슬 동틀 무렵입니다. 동틀 무렵 시골마을 바깥은 참으로 깜깜합니다. 나는 이 깜깜한 새벽빛이 좋습니다. 깜깜한 새벽하늘 가만히 바라보며 누우면, 이내 차츰차츰 부옇게 밝습니다. 파래지고 발개지고 노래지면서 하얗게 바뀌다가는 다시금 파란 빛깔이 온 하늘에 가득 찹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어여쁜 빛깔이 무지개처럼 춤을 추는 새벽이에요.

 

 호시노 미치오 님은 춥디추운 땅에서 북극곰처럼 눈밭과 풀밭을 뒹굴며 사진을 찍었겠지요. 수없이 사진을 찍으며 수없이 많은 밤과 낮과 새벽과 아침을 북극에서 맞이했겠지요.

 

 불빛이 아닌 햇빛을 보았겠지요. 동물원 우리가 아닌 드넓은 들판을 보았겠지요. 정수기 물이나 수도꼭지 물이 아닌 얼음장 곁을 흐르는 차디찬 물에서 헤엄치는 연어를 잡는 곰들이 뛰노는 물을 보았겠지요.

 

 아름다운 벗님 앞에서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으로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아름다운 꿈으로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한테 찾아온 사진책 《Grizzly》는 참으로 반갑습니다. 빠듯한 살림이라기보다 고단한 살림으로 사진책도서관을 용케 꾸리는데, 내 좋은 도서관 책꽂이에 《Grizzly》를 얌전히 꽂고는 언제라도 돌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옆지기랑 아이들이랑 마음껏 펼칠 수 있어 더없이 기쁩니다. 앞으로 서울이나 인천에서, 부산이나 대구에서, 파주나 춘천에서, 양양이나 함양에서 이곳 고흥땅 어여쁜 우리 도서관으로 사진책 구경하러 마실오는 이라면, 누구나 이 사진책 하나 흐뭇하게 손으로 살몃살몃 어루만지며 눈물과 웃음을 쏟을 수 있겠지요. (4345.1.15.해.ㅎㄲㅅㄱ)

 

 

 

이런 말 하기 뭣 하지만... 호시노 미치오 님 첫 사진책(데뷔작) 구경 즐거이 하신 분들은

추천 꾹 눌러 주셔요~ 이 세상에 거저가 어디 있습니까~ ㅋㅋㅋㅋ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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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1-16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귀한 사진책이었군요. 귀한 소재에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파란놀 2012-01-16 17:23   좋아요 0 | URL
이 글 다음으로
http://blog.aladin.co.kr/hbooks/5356700
요 글을 읽으면,
이 사진책 소개하며 안 올린 다른 사진을
볼 수 있는데,
다들 이 글까지는 안 읽으시는가 봐요... 이궁... ㅠ.ㅜ

마녀고양이 2012-01-16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네요, 사인이 든 귀한 책을 얻으셨네요.
읽으면서 제 맘이 찡해졌답니다. 가운데 사진, 물색이 손에 잡힐 듯 합니다.

파란놀 2012-01-16 17:24   좋아요 0 | URL
이태 앞서 사 놓고 이제서야 느낌글+소개글을 썼답니다.
ㅋㅋ
에궁...
사진으로 찍어서 보더라도
사진이 참 좋은
호시노 미치오 님 이야기들이에요..
 


 내가 볼 수 없는 눈

 


 나는 눈을 뜨고 무언가를 바라봅니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나는 내 바깥이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가만가만 돌아봅니다. 그러나, 막상 내 눈이 어떠한 모습이고 빛깔이며 무늬인가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나는 내 앞이나 옆이나 둘레에 있는 무언가를 살펴볼 수 있지만, 정작 내 몸뚱아리를 찬찬히 살피거나 훑거나 가늠하지 못합니다.

 

 나는 바라봅니다. 나는 나 아닌 남을 바라보면서 내 삶을 꾸립니다. 나는 살펴봅니다. 나는 나 아닌 어딘가를 들여다보면서 내 삶을 꾸립니다. 남들을 바라보는 나는 남들을 거울처럼 비추며 나를 되새기는 삶일까요.

 

 머리에 달린 눈으로 내 눈 내 몸 내 삶을 볼 수 없다면, 마음에 깃든 눈으로 내 눈 내 몸 내 삶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왼눈과 오른눈으로도 내 눈 내 몸 내 삶을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온몸과 온마음으로 내 눈 내 몸 내 삶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손가락을 움직이며 바라봅니다. 내 발바닥을 움직이며 바라봅니다. 내 살갗으로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바라봅니다. 내 귀로 소리와 결을 느끼며 바라봅니다. 내 입과 혀로 맛을 느끼며 바라봅니다. 가슴이 콩콩 쿵쿵 뛰면서 느끼는 모든 이야기들을 바라봅니다.

 

 내가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는 아무런 삶도 사랑도 사람도 보지 못하는 꼴입니다. 내가 나를 볼 수 있을 때에, 내 곁에 있는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사람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깊은 밤 달빛이 좀 여리구나 싶어 생각해 보니, 곧 설이기에 아직은 그닥 밝지 않겠구나 싶으면서, 시골마을에도 곳곳에 등불이 있어 달빛을 가리는구나 싶습니다. 그야말로 환한 보름달은 등불마저 잠재울 만큼 밝지만, 오늘은 달빛이 전기불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아니, 이기지 못하는 달빛이 아니라, 전기불빛에 스러지거나 가립니다.

 

 달빛이 비추는 마당이 좋습니다. 달빛이 잠자며 캄캄한 마당이 좋습니다. 전기불빛 스미는 마당은 슬픕니다. 전기불빛이 우리 마당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까지 흘러들면 슬픕니다.

 

 목숨을 살릴 수 있을 때에 빛입니다. 햇빛과 달빛을 먹어야 닭알이든 오리알이든 튼튼하고 씩씩하게 깝니다. 햇빛과 달빛을 먹어야 사람이든 푸나무이든 튼튼하고 씩씩하게 목숨을 잇습니다. 나는 햇빛을 마시고 달빛을 먹으며 햇빛을 바라보고 달빛을 누리고 싶습니다. (4345.1.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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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과 책읽기 2

 


 술을 마시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며 무슨 글을 쓸 수 있고, 술을 마시며 무슨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옛날 옛적부터 흙일이 무척 고되면 술을 마시며 새힘을 불러일으켜 다시금 연장을 쥐었다는데, 알딸딸하고 살며시 해롱거리는 기운으로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는데, 이렇게까지 하며 일을 하고 나면, 온몸이 그예 솜뭉치처럼 된다. 일하는 사람한테는 술이 무엇일까.

 

 술을 마시면서 아기를 볼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아기한테 젖을 물릴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사랑을 속삭일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배를 몰아 고기를 낚을 수 있을까. 술기운에 헤엄을 치면 얼마나 물살을 잘 가를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할 수 있을까.

 

 술을 만드는 회사는 아주 크다. 술을 만드는 회사는 회사원을 어마어마하게 거느린다. 술을 만드는 회사는 온 나라 곳곳에 큼지막하게 광고판을 붙인다. 온 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술을 아주 쉽게 사서 마실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셔야 할까. 술을 마시며 무엇이 기쁘거나 흐뭇하거나 재미나거나 좋을까.

 

 술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은 아닌가. 술이란, 사람들 스스로 생각을 멈추도록 하거나 생각을 않도록 하거나 생각을 잊도록 내모는 고임돌은 아닌가.

 

 사람들이 술을 마시도록 내모는 나라나 사회라면, 이러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이 살아갈 만할까. 술을 마시며 읊는 사랑과 평화는 얼마나 즐겁거나 너그러울까.

 

 사람을 틀에 가두는 나라에서 사람이 술을 마시도록 몰아세운다고 느낀다. 사람들 생각을 틀에 갇히도록 하는 나라에서 자꾸자꾸 술을 마시도록 밀어붙인다고 느낀다.

 

 아주 모처럼 보리술 몇 잔을 마시며 알딸딸하다. 알딸딸한 나머지 생각이 슬기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생각이 그만 멈추면서 멍하니 있고 만다. 이런 넋이라면 스스로 생각을 빚는 꿈을 키우지 못한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흘리는 이야기에 그저 빠져들밖에 없다. 그렇구나. 방송이란, 언론이란, 신문이란, 모두 술과 같지 않을까.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힘을 키워 삶힘을 일구도록 돕는 방송이나 언론이나 신문이 있을까. 사람들 생각을 한쪽으로 밀거나 가두는 방송이나 언론이나 신문이 아닐까.

 

 책을 읽을 때에는 이 책을 손에 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막상 곰곰이 헤아리노라면, 손에 쥔 책에서 밝히는 이야기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일쑤이다. 역사책은 어떤 역사를 밝히는가. 역사책에 적히는 역사란 누가 살아온 발자국인가. 역사책에 담는 역사란 내 삶에 얼마나 빛이랑 소금이랑 꿈이랑 사랑이 될 만한가.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낳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여느 수수한 밥과 옷과 집을 담아내지 않는 역사책이란, 얼마나 예쁘거나 싱그럽다 할 만한가.

 

 문학책은 어떤 문학을 보여주는가. 철학책은 어디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 생각을 들려주는가.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한테 값지고 뜻깊을 책이란 어떤 이야기일까.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나눌 만한 책은 누가 쓸 수 있는가. 어린이한테 읽히면 좋다는 책은 무슨 이야기를 다루는가. 아니, 책은 참말 사람들 스스로 생각을 깊거나 너르게 북돋우는 이야기밭 구실을 하는가.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힘을 다스리거나 넓히거나 아끼는 기운을 펼치는가.

 

 술을 마시면서 생각이 멈춘다.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생각을 살찌우지 못한다. 술을 마시도록 하면서 생각을 가로막거나 억누른다. 술을 마시지 않는 곳에서조차 생각이 비틀리거나 뒤틀리거나 비비꼬이도록 흔든다. (4345.1.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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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오기굿 한국의 굿 20
조흥윤 지음 / 열화당 / 1993년 3월
평점 :
절판


김수남 님 <한국의 굿> 사진책 스무 권 가운데 오직 하나만 검색됩니다. 그나마 이 한 권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20번 사진책으로 소개하는 글을 쓸까 하다가, 아무래도 상징성이 있어, 저는 1권으로 소개글을 씁니다.

 

 

 


 내 이웃과 사진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4] 김수남, 《한국의 굿 1 황해도 내림굿》(열화당,1983)

 


 1983년 7월 20일 첫선을 보인 ‘열화당 한국의 굿’ 스무 권 1번을 빛내는 《황해도 내림굿》(열화당,1983)은 첫 사진 첫 글을 “81년 6월 23일 서울 석관동에 있는 황해도 큰만신 김금화의 집에서 내림굿이 있었다(17쪽).’로 엽니다. 첫 장으로 깃든 사진은 책 뒤쪽에도 자그맣게 실립니다. 이 사진 한 장은 자그마치(?) 스무 권으로 꾀한 《한국의 굿》을 여는 실타래가 되면서, 이제껏 한겨레 굿놀이와 굿판과 굿잔치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바라보거나 가르치거나 생각하도록 이끌던 흐름을 따사로이 보듬으려는 손길이 됩니다. 엉뚱한 눈길을 바로잡는다든지, 터무니없는 손길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저 곱게 바라보는 사랑과 꿈을 이야기합니다.

 

 사진책 《한국의 굿》 스무 권을 펴낸 열화당 출판사 편집부는 책머리에, “무속사진을 찍는 사람이 학자일 경우에는 사진이라고 하는 전달매체의 특징을 백분 살리는 데에 미흡하여 무속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놓치기 쉽다. 그와 반면에 사진전문가일 경우에는 무속 내용에 대한 이해에 한계가 있어 그 본령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있다. 때문에 때로는 본래의 의미와 품위를 왜곡 변질시키는 무속사진이 시각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공개되는 경우조차 없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무속이 어찌해서 우리 문화의 고향일 수밖에 없는가를 깨닫고 느끼게 하기보다는 사라져 가고 있는 관광자료에 불과한 민속이나 미신이라고 설명하려는 무속사진들이 더이상 쏟아져 나오기 전에, 전국의 무속을 정리하고 무속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릴 시점에 이르렀다(이 책을 간행하면서,12쪽).” 하고 적습니다. 나는 이 첫머리 글을 읽던 고등학생 때(1991년)나 오늘(2012년)이나 늘 같은 마음입니다. 책 하나 내놓으며 이렇게 머리글을 붙이던 일이란 1976년에 태어난 잡지 《뿌리깊은 나무》와, 이곳에서 1981년에 내놓은 《민중 자서전》이랑, 1983년에 내놓은 《한국의 발견》 뒤로는 처음이자, 이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이러한 말마디를 새로 듣기 어렵지 않나 싶어요.

 

 곰곰이 헤아리면, 이와 비슷한 말마디를 내놓은 책으로 ‘대원사 빛깔있는 책들’이 있다고 느껴요.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삶에서 문화를 읽고 전통을 느끼며 역사를 살피는 이야기책이 거의 태어나지 못하는 채, 으레 연구실과 자료실에서 쌓이는 연표와 통계는 온통 ‘수수한 여느 사람들을 다스리는 권력자’ 쪽에서 바라보는 책만 쏟아지는데, 《한국의 굿》 스무 권은 이러한 사진밭 흐름에 좋은 사랑씨앗이 되려고 했구나 싶어요.

 

 더 되짚으면, 이들 책에 앞서 예용해 님이 1963년에 빚은 《인간문화재》(어문각)라는 책이 있기에, 한겨레 삶자락을 살가이 돌아보는 기틀을 닦을 수 있다고 말할 만합니다. 따로 책이라는 틀로 무언가 보여주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스레 살았어요. 애써 역사나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하루하루 즐거우며 고맙게 맞이했어요. 누군가 조선 막사발을 첫손 꼽지 않더라도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막사발을 썼고 수저를 썼어요. 한겨레 문화와 역사와 예술과 전통이라 한다면, 밭을 일구는 호미 한 가락입니다. 쌀겨나 티를 까부르는 키 하나입니다. 옷을 기우는 바늘 하나이고, 갓난쟁이한테 대는 기저귀 하나예요. 궁중에서 입는 옷이 되어야 전통이나 문화가 되지 않아요.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살림집에서 늘 입는 옷이 바로 전통이나 문화예요. 그런데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서는 이러한 옷을 전통이나 문화라고 바라보지 않아요. 그저 삶입니다.

 

 사진책 《한국의 굿》 스무 권에 나오는 굿판 굿마당 굿잔치 굿놀이 사람들 몸가짐과 차림새 또한 남다르다고 여길 모습이 아닙니다. 그저 예부터 이녁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랑한 모습이에요. 애써 돋보이도록 꾸미는 모습이 아니에요. 여느 삶 모습이에요. 일부러 도드라지게 덧대는 모습이 아니에요. 꾸밈없이 살아가는 모습이에요.

 

 더 높지 않으나, 더 낮지 않습니다. 더 높여야 하지 않고, 더 낮춰야 하지 않아요.

 

 이리하여, 한겨레에서 문화를 찾거나 예술을 바라거나 전통을 지키려 하는 어떤 흐름이 있다면, 김수남 님이 사진기를 들고 ‘한국의 굿’을 찍었다 할 때에, 어느 자리에선가는 ‘한겨레 옷’을 찍을 법했어요. ‘한겨레 집’을 찍고 ‘한겨레 밥’을 찍으며 ‘한겨레 길’과 ‘한겨레 논밭’과 ‘한겨레 바다’와 ‘한겨레 마을’을 찍을 만했어요. 이리하여, ‘한겨레 마을’까지는 아니나 《제주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단 자그마한 이야기책이 반석이라는 출판사에서 꽤 많이 나온 적 있어요. 엮음새가 너무 투박하기는 했으나, 제주섬에서 제주 마을만 돌아본 ‘제주의 마을 시리즈’는 참으로 소담스러운 선물이라 여길 ‘여느 사람 삶을 톺아보려는 사랑몸짓’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유산을 두루 돌아다니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문화유산을 두루 밟으며 한겨레 옛삶을 살필 만해요. 이러한 데에 애틋하게 눈길을 보내는 삶이라 한다면, 언젠가는 ‘한겨레 오늘 삶’을 깨달아, 전통이든 역사이든 문화이든 예술이든 어디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는 하나도 없는 줄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우리는 ‘엉뚱하게 적바림되며 참뜻하고 동떨어질까 걱정스러운’ 한국굿 이야기를 소담스레 담은 《한국의 굿》 스무 권을 만날 수 있어요. 아쉽다면,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가까스로 만난다 할 텐데, 아직 우리 스스로 우리 오늘 삶을 착하며 곱게 돌아보거나 보듬는 손길이랑 눈길을 북돋우지 못한 탓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아직 ‘한겨레 골목길’조차, ‘한겨레 숟가락’조차, ‘한겨레 비녀’조차, ‘한겨레 바지랑대’조차, ‘한겨레 구멍가게’조차 꾸밈없이 바라보며 얼싸안지 못해요.

 

 201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한테 1980년대는 서른 해나 지난 아스라한 옛삶입니다. 2040년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한테는 2010년대 오늘은 참 아스라한 옛삶이에요. 2070년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2010년대는 무척 아스라한 옛삶이에요.

 

 전통이나 문화나 역사나 예술은 어디 멀리 있지 않아요. 바로 오늘 우리가 두 발 디딘 이 자리 삶자락이 전통이요 문화요 역사이며 예술이에요. 내가 살아내는 하루가 전통이에요. 내가 누리는 보금자리가 문화예요. 내가 먹는 밥이 역사예요. 내가 살붙이랑 나누는 이야기가 예술이에요.

 

 《한국의 굿 1 황해도 내림굿》 책날개 뒤쪽에 김수남 님이 적은 맺음말을 읽습니다. “아마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좌절과 희망, 이런 것들을 가장 극렬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굿판일 게다. 어차피 사회와 시대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그래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까지 되어 버린 굿을 찍으면서 지난 10여 년간의 작업이 최소한 하나의 증언,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기를 꿈꾼다. 한 계층이 처한 시대적 상황, 그리고 그 속한 사회에서 변모해 가는 삶의 현장을 남기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나로서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김수남 님은 ‘굿판을 사진으로 찍었다’기보다 ‘사람들 살아가는 터전’을 사진으로 찍은 셈입니다. 김수남 님 좋은 이웃을 예쁘게 사귀면서, 이 이웃들하고 사진으로 이야기꽃을 피운 셈입니다. (4345.1.14.흙.ㅎㄲㅅㄱ)

 


― 황해도 내림굿 (김수남 사진,김인회·최종민 글,열화당 펴냄,1983.7.20./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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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1-1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굿』이라는 책을 지난달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살펴본 적이 있었답니다. 정말 인상적이고도 다양한 사진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어찌보면 우리들 삶의 깊숙한 뿌리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도 딱 한권의 책만 있던데, 알라딘 서재에서 이 책에 관한 멋진 글을 만나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요. 아름답고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파란놀 2012-01-14 23:09   좋아요 0 | URL
예나 이제나
이만 한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는 늘 틀에 박힌 대로만 배우고 길들여지니
학교를 다니며 사진을 배우면 찍지 못한다 할 텐데,
그래도 누군가 한 사람 이렇게 남겼으니
고마운 노릇이라고 여겨야 할까 싶기도 해서
많이 슬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