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상말
 600 : 동병상련

 

.. 데어의 글에 웃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실은 동병상련의 웃음이랄까 ..  《폴 콜린스/홍한별 옮김-식스펜스 하우스》(양철북,2011) 83쪽

 

 “데어의 글에”는 “데어가 쓴 글에”나 “데어가 남긴 글에”나 “데어가 책에 적은 글에”로 손질합니다. ‘하지만’은 ‘그러나’나 ‘그렇지만’으로 손보고, ‘실(實)은’은 ‘따지고 보면’이나 ‘알고 보면’이나 ‘가만히 보면’으로 손봅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 :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김을 이르는 말. 《오월춘추》의
   〈합려내전(闔閭內傳)〉에 나온다
   - 그들은 전쟁터에서 동병상련한 사이다 /
     그 당시엔 그와 동병상련할 처지가 아니었다

 

 동병상련의 웃음이랄까
→ 나 또한 아팠기에 짓는 웃음이랄까
→ 아픈 마음에 짓는 웃음이랄까
→ 쓰겁게 짓는 웃음이랄까
→ 쓴웃음이랄까
→ 아픈웃음이랄까
 …

 

 중국 옛글에 나온다고 하는 ‘동병상련’입니다. 곧, 이 말마디 ‘동병상련’은 한국말 아닌 중국말입니다. 예부터 중국과 한국이 가까웠으며, 중국 문화가 한국 문화에 크게 그늘을 드리웠대서 이러한 중국말이 한국말 곳곳에 스며들었다 할 테지만,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국말로 넋과 얼을 빛내야 알맞아요. 한국사람이 굳이 일본말이나 미국말이나 독일말을 써야 하지 않듯, 애써 중국말을 써야 하지 않아요. 중국 옛책에 나온다는 말을 부러 외우거나 널리 쓸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새말을 빚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이를테면, “같은 병을 앓는(同病)” 사람이 “서로 가여이 여긴다(相憐)”는 뜻이라 한다면, “함께 + 앓이”처럼 새말을 빚을 만해요. 내 이웃 아픔을 내가 함께 앓으면서 아픔을 달랜다는 뜻이 돼요. “슬퍼하는 내 오랜 동무하고 함께앓이를 했다”처럼 쓸 수 있어요.

 

 곰곰이 생각하면 ‘어깨동무’라는 낱말에 새로운 뜻을 넣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 국어사전은 아직까지 ‘어깨동무’라는 낱말뜻으로 “(1) 상대편의 어깨에 서로 팔을 얹어 끼고 나란히 섬 (2) 나이나 키가 비슷한 동무” 두 가지만 싣지만, 사람들은 ‘어깨동무’라는 낱말을 “서로 돕는다”는 자리에서 쓰곤 해요. 그러니까, “어깨동무 (3) 서로 돕는 일”이 되어야 하고, “어깨동무 (4) 아픔을 서로 달래는 일”처럼 될 수 있어요.

 

 전쟁터에서 동병상련한 사이
→ 전쟁터에서 서로를 달래며 살아남은 사이
→ 전쟁터에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낸 사이
 …

 

 “싸움터에서 서로를 달랜” 사이를 가리킬 때에도 “싸움터에서 어깨동무한” 사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뜻과 느낌으로 살린다면, “싸움터에서 서로 어깨를 기댄” 사이라 적어도 돼요. “어깨를 맞댄”이라든지 “어깨를 겯은”이라든지 “어깨를 토닥인”처럼 적을 수 있어요.

 

 이 자리에서는 “함께 아파한”을 넣어도 되고, “함께 눈물웃음 쏟은”을 넣을 수 있으며, “함께 웃고 함께 운”을 넣을 만해요. 하나하나 생각을 기울이면 말문과 말씨와 말길을 차근차근 열 수 있어요.

 

 그와 동병상련할 처지가 아니었다
→ 그와 함께 아파할 처지가 아니었다
→ 그와 같이 아파할 때가 아니었다
 …

 

 “그와 함께 울 겨를이 아니었다”처럼 적어도 어울립니다. 함께 운다고 하는 일은 서로 겪어야 하는 아픔을 서로 달랜다는 뜻이거든요. 함께 아파하기, 함께 울기, 함께 부둥켜안기, 함께 얼싸안기, 이렇게 뜻과 느낌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서로서로 즐거이 나눌 말을 찬찬히 톺아봅니다.

 

 온 마음 기울여 사랑할 말을 찾습니다. 온 넋 담아 아낄 말을 살핍니다. 온 꿈 실어 주고받을 말을 가다듬습니다. (4345.1.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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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님과 알라딘 사이에 뭔 일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서로서로 저작권이 어떠한가를 제대로 바르게

알지는 못하는구나 싶어

이 글을 쓴다.

아무쪼록 모두한테 도움이 되길 빈다.

 


 저작권


 저작권을 제대로 알거나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나는 2003년 9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이오덕 님 책과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으면서 비로소 저작권을 제대로 알았다. 이오덕 님이 살던 나날, 당신 책을 펴낸 출판사 모두 저작권을 어기면서 당신 책을 펴냈을 뿐 아니라, 몇 억에 이르는 글삯을 떼먹은 출판사까지 있는 줄 깨달았으며, 이 골치아픈 일을 푸느라 나 스스로 신나게 저작권 공부를 해야 했다.

 

 곰곰이 돌이키면, 나부터 그동안 저작권을 꽤나 ‘짓밟으’며 글을 썼다. 이와 함게, 내 저작권 또한 꽤나 ‘짓밟히’며 내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았다.

 

 책마을에서 일하며 책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 가운데 저작권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으로 적힌 저작권으로 살피자면, 어느 책에서든 ‘한 줄 한 낱말’을 따서 ‘내 글에 넣어서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출판권자한테 서면으로 허락’을 받아야 한다. 전화로는 안 된다. 말로는 안 된다. 법으로 이렇다.

 

 ‘이름이 없다는 개인’이든 ‘언론사’이든 똑같다. 대통령이든 흙일꾼이든 똑같다. 누구라도 ‘글을 쓰면서 책에 적힌 한 줄’을 따서 쓰려 하면, ‘저작권자와 출판권자’한테서 허락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대가를 치러야(저작권 사용료) 한다. 라디오에서 책을 읽을 때에도 저작권 사용료를 치러야 할 뿐 아니라, 서면으로 허락을 받아야 한다. 교실에서 시를 읽어 줄 때에도 저작권자한테 허락을 받아야 할 뿐더러, 저작권 사용료를 치러야 한다. 법으로 이렇다.

 

 신문기사도 저작물이다. 출판사에서 내놓는 보도자료, 이른바 신간소개글 또한 저작물이다. 인터넷책방에 올라온 ‘출판사 신간소개글’을 따서 내 글에 넣어 느낌글(서평, 리뷰)을 쓰려 한다면, 이때에는 반드시 출판사 편집자한테서 문서로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저작권 사용료를 치러야 한다. 법으로 이렇다. 더욱이, 신문사에서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기사를 쓰더라도 출판사한테 허락을 받고 저작권 사용료를 치러야 옳다. 법으로 이렇다. 신문기사를 ‘나온곳(출처)’ 밝히고, 인터넷주소를 붙인다 해서 일이 풀리지 않는다. 신문사에서 이러한 글을 내용증명으로 ‘저작권 침해한 사람(신문기사 따서 쓴 사람)’한테 한 번 보내면, 이 내용증명으로 법 문서 효력이 나서, 법원에 명예훼손이라든지 저작권침해 소송을 걸면, 100%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 법으로 이렇다. 출판사에서는 신문사에 저작권침해소송을 걸 수 있다. 그러나, 신문사에 소송을 거는 출판사는 없다. 이렇게 하다가는 미운털 박힐 테니까.

 

 거꾸로, 내가 쓴 느낌글(서평, 리뷰)을 신문사에서 ‘내 허락을 안 받고 나한테 저작권 사용료 치르지 않고’ 실었다면, 이때에도 얼마든지 내용증명과 함께 피해배상 소송을 걸어 100% 내 권리를 되살릴 수 있다. 그뿐인가. 신문 1쪽 머릿기사로 사과글을 싣도록 할 수 있다. 법으로 이렇다.

 

 내가 ‘이름 안 난’ 사람이라서 피해배상을 못 받지 않는다. 피해배상을 받거나 물어야 하는 돈은 늘 같다. 다만, 법원에서 소송을 걸고 마무리짓자면 꽤나 오래 걸린다. 이러한 소송은 으레 저작권자(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빚은 사람)가 출판권자(출판사)한테 거는데, 출판권자는 흔히 3심까지 버틴다. 3심까지 버티면 피해배상할 돈이 부쩍 줄어들 뿐 아니라, 짧아도 서너 해나 대여섯 해까지 걸리기도 하니까, 소송을 거는 저작권자만 돈과 시간과 땀과 마음으로 끔찍하게 생채기를 받는다. 이리하여, 적잖은 출판사들, 게다가 이름났을 뿐더러 훌륭하다는 소리마저 든는 출판사들까지, 저작권법을 어기면서 저작권자 권리를 짓밟곤 한다.

 

 사람들이 제대로 모르기도 하고, 책마을 일꾼조차 잘 모르지만, 책을 내며 굳이 계약서를 안 써도 된다. 왜냐하면, 저작권법에서 지켜 주니까. 출판사에서 마련한 계약서에 도장을 쾅쾅 찍어도, 이 계약서는 저작권법에 따라 ‘아무 효력이 없’다. 왜냐하면, 출판사에서는 저작권법에서 밝히는 대로 계약서를 마련하지 않고, 출판사한테 좋도록 계약서를 요리조리 고치니까, 이렇게 고친, ‘표준계약서 틀’에서 벗어난 계약서는 나중에 법정 소송으로 가면, 아무런 효력을 내지 못한다. 이를테면, 표준계약서 틀로 밝히는 저작권법으로는, 출판계약은 ‘출판권 기간 기본 3년, 자동재계약 없음’이다. 그런데 출판사들은 출판사 편의에 따라 ‘출판 계약 5년, 자동재계약’이라는 글월을 집어넣는다. 곧, 이러한 계약서는 처음부터 출판사가 법을 어긴 채 쓴 계약서이기 때문에, 아무 효력을 내지 못한다. 저작권자가 도장을 찍었어도 법정에서는 무효로 친다. 왜냐하면, 출판권자가 처음부터 법을 어겼을 뿐 아니라, 저작권자한테 법을 옳게 알리지 않았으니까.

 

 저작권법은 어찌 보면 무섭다.

 

 저작권법은 찬찬히 살피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는’ 모든 사람들한테 마지막 버팀나무이자 든든한 울타리이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부디 저작권법을 스스로 익힐 노릇이다.

 

 스스로 저작권리를 지키고, 스스로 저작권리를 아낄 노릇이다.

 

 참말 마땅한 노릇인데, 내 느낌글(서평, 리뷰)이든 비평글이든 무슨 글이든, 글을 쓰면서 ‘내 글에 다른 사람(저작권자)이 쓴 글’을 다른 사람 허락을 받지 않고 실을 때에는 저작권법 위반이 된다. 저작권법 위반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저작권리 침해, 둘째, 사후보고와 사후보상 침해, 셋째, 성명표시 위반, 넷째, 인신공격.

 

 논문을 쓰면서 ‘다른 사람 논문 몇 대목 따오기’를 해도 저작권 위반이 된다. 반드시 다른 논문을 쓴 사람한테서 하나하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다만,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면서 글을 쓰자니 너무 번거롭거나 힘들거나 머리가 빠개지니까 이렁저렁 넘어가고, 서로서로 이렁저렁 넘어가면서 서로서로 저작권이 뭔지를 살피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살펴보자. 내가 인터넷책방에 올린 느낌글 저작권리는 누구한테 있을까? 인터넷책방에서 이래저래 규약을 세우고 뭐를 한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이 저작권리는 글쓴이한테 있다. 인터넷책방 관리자가 이 글(저작물)을 쓰면서 저작권자한테 제대로 연락하지 않거나 저작물 사용료를 치르지 않을 때에, 저작권법에 따라 저작권자가 내용증명을 보낸 다음 가까운 법원에 피해배상 소송을 걸면 100% 인터넷책방이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시간과 품과 땀이 걸리며 마음이 다칠 뿐, 100%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저작권법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저작권법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법은 법일 뿐이니까.

 

 그렇다고 나는 ‘카피레프트’를 외치지 않는다. 내 글은 내 땀이요 내 삶이며 내 사랑이니까.

 

 그저 나는 내 온 삶을 들인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저마다 당신들 삶자리에서 좋은 사랑씨앗 뿌려 사랑열매 거두는 좋은 꿈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카피라이트나 카피레프트는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삶을 누리면서 내가 지키고 싶은 좋은 꿈과 사랑을 착하고 예쁘게 지키고 싶다. 살아가다 보니 이래저래 하면서 법을 좀 골때리도록 배워야 했을 뿐이요, 법을 곰곰이 배우다 보니, 내가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가 하는 길을 천천히 찾자고 다짐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말잔치를 떠나,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는 꿈을 실은 글을 빚을 수 있으면 즐겁다. 나눌 만한 글을 쓸 때에 즐겁다. 돈을 버는 글을 쓰면 덧없다. (4345.1.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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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1-20 10:54   좋아요 0 | URL
저작권법이 뭔지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는데 된장님의 글을 읽어보니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군요. 인터넷의 발달과 블로그의 등장으로 사실상 '1인 출판'과 '1인 미디어'의 시대가 열리면서 (한편으로는) 법이 너무 뒤처져서 현실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가졌었는데, 된장님의 글을 읽어보니 '법은 법'이다 싶군요. 인터넷 공간에서 한때는 '퍼나르기'가 무슨 미덕처럼 아무런 거리낌없이 퍼져나갈 때도 있었고, 이 곳 알라딘에서조차 '펌글'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던 기억도 새삼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이번 일을 계기로 '남의 권리를 제대로 존중하고 지켜줘야 내 권리도 제대로 지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된장님 글의 마지막 문장은 정말 명언이네요.)

파란놀 2012-01-20 11:55   좋아요 0 | URL
'한국저작권위원회'라는 곳이 있어요.

이곳에서 저작권법 '전문'을 꼼꼼히 읽어 보시면 여러모로 저작권법이 무엇인지 조금은 짚을 수 있어요.

이런 다음, 저작권위원회에서 '표준으로 만든' 출판계약서를 읽으면, 출판사들이 얼마나 멋대로 저작권법을 어기면서 계약서를 만드는가를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출판사들이 쓴 계약서는 99% 이상 '원천무효'가 된답니다. (그런데 이건, 책을 내는 분들만 알 수 있겠네요. 이궁. 그래도 알라딘서재에는 책을 내는 분이 퍽 있으시니까, 부디 저작권위원회 표준출판계약서를 읽어 보시면 좋겠어요)

이러한 여러 법조문과 표준계약 사항 들을 보면, 온라인매체나 포털사이트에서 만드는 규정과 규약 또한 '소비자인 우리들'이 법으로 따질 때에 우리가 누릴 권리가 무엇인가를 환히 알 수 있어요.

저작권법에는 어떠한 '편의'도 봐주지 않아요. 오직 '법'에 따라 모든 사람한테 고르게 '권리 지키기'를 할 뿐이에요.

다만, 이 저작권법을 잘 써야지, 악용하면 그야말로 입에 재갈을 물리는 꼴이 되기 때문에 몹시 위험할 수 있어요. 우리 나라는 기본법을 살피면, 법으로는 꽤 잘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다들 편의라든지 다들 그렇게 하니까 따라한다는 투로 하면서, 법을 어기거나 비트는 일이 너무 많기 일쑤예요.

내가 어느 매체에 쓴 글을 알라딘서재에 올리려 한다면, '매체에 실릴 때'에 신문사에서는 신문사대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바꾸니까, 매체에 보내기 앞서 '내가 쓴 원글'을 올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_-;;;;

그러니까, 로쟈 님은 굳이 어느 매체에 올린 글이라 밝히지 말고, 인터넷주소도 걸지 않으면 돼요. 그냥 로쟈 님이 쓴 원글 그대로 알라딘서재에 스스로 띄우면 저작권법이고 뭐고 아랑곳할 일이 없기도 하답니다 @.@

..

더 생각해 보면, 언제나 '내 새로운 글'을 쓰면 돼요. 다른 사람 글을 인용하느라 땀흘리지 말고, 내 생각을 밝히면 되지요.

그리고, 저작권법에서 인용 예외에 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를테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인용하는 일은 '저작권 인용'에서 예외가 돼요...

oren 2012-01-20 13:11   좋아요 0 | URL
세세한 살명을 덧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순수한 '나의 창작글'이야 문제가 안되겠지만, 저같은 경우는 창작글을 써봐야 대체로 '잡문' 수준밖에 쓸 수가 없으니, 자꾸만 훌륭한 글과 좋은 글들을 찾아 인용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템플턴경의 평생 결심 한가지가 "출판하고 싶지 않은 글은 절대 쓰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독자들의 수준을 높여주는 것이어야 하며, 결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는데,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는 그저 조용히 책이나 읽어야 하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마립간 2012-01-20 17: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립간입니다.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습니다.
로쟈님의 글에 대한 알라딘의 해석은 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학계에서는 자신이 쓴 글이라고 해도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자기 표절'이라고 하며 저작권의 침해로 보는데,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신문사에 기고한 글이 아래*와 같은 해석이 나왔을까요. 특정 신문사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된장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쓴 원 글'을 게제해서 저작권 시비를 피한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여쭙고 싶은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기)표절 시비와 무관할까하는 의문이 남아 글을 남깁니다.
* http://blog.aladin.co.kr/mramor/5368534 ; Box안에 있는 알라딘의 답변

파란놀 2012-01-20 18:34   좋아요 0 | URL
내가 쓴 글을 놓고까지 신문사가 그렇게 따지려 들면, 이렇게 하면 그런 그물은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신문사에서는 신문에 글을 앉힌 모양새를 갖고 '편집권'이라고 따질 수 있는 노릇이니, 글을 쓴 사람은 신문에 앉혀지지 않은 원글 모습 그대로(텍스트로만) 올리면 아무런 시빗거리조차 될 수 없다는 말이에요. (극한 상황을 이야기한 대목인데, 다행스럽게도 극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고, '내가 쓴 글은 그렇게 올려도 괜찮다'고 알라딘에서 답변해 주었으니 참 고마운(?) 셈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마립간 2012-01-21 09:06   좋아요 0 | URL
답변 감사합니다.
 


 바닥에 두꺼운종이 깔고 앉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1.14.

 


 바닥깔개가 틀림없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집에도 도서관에도 없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이가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읽으며 놀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참 힘들다. 그러다 문득, 두껍고 큰 골판종이가 있다는 생각이 난다. 커다란 골판종이를 바닥에 깔아 본다. 꽤 괜찮다. 여러 겹 깔아 본다. 썩 좋다. 깔개를 바닥에 대어 찬기 올라오지 않도록 막은 다음 골판종이를 위에 깔면 훨씬 좋겠다고 느낀다.

 

 내가 쓰는 책으로 글삯을 많이 벌면, 이리하여 이 초등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통째로 장만할 수 있을 때에는, 바닥을 새로 하면서 불을 넣는 무언가 마련해서 누구나 신을 벗고 들어와서 드러누워 책을 읽을 자리를 꾸미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고 꿈을 꾼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어설프나마 책갈무리를 하면서 아이가 놀 자리를 꾸미자.

 

 이렁저렁 하루치 책갈무리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논둑길을 걷는다. 조금 돌아 찻길을 거닐 수 있지만, 난 이 길이 더 좋다. 흙을 밟을 수 있는 길이 즐겁다. 흙을 밟을 때에는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아주 싱그러운 기운이 올라온다고 온몸으로 느낀다. 우리 아이들부터 좋은 흙기운을 듬뿍 누릴 수 있기를 꿈꾼다. 나는 늘 꿈을 꾼다. 이 꿈 저 꿈 신나게 꾼다. 생각해 보라. 꿈을 꾸었기에 사진책도서관을 열었고, 좋은 옆지기를 만났으며, 아이를 둘 낳고,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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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16.
 : 대문 여는 손

 


-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띄워야 한다. 지난 한 해에 걸쳐 아이들과 부대낀 시골살이 이야기를 그러모은 동시꾸러미가 있어, 이 꾸러미를 출판사 일꾼한테 보내려고 한다. 동시책을 내줄는지 안 내줄는지 알 길이 없다. 더구나, 동시책을 내지 않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일꾼한테 글꾸러미를 보낸다. 동시책을 펴내는 출판사가 여럿 있으나, 나로서는 이들 출판사 가운데 내키는 데가 없다. 나는 말놀이 동시를 쓰지 않고 쓰지 못하며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우리 아이하고 즐길 동시를 쓰고, 우리 아이와 비슷한 나이로 무럭무럭 자라날 아이들이 함께 읽으면 좋으리라 여기는 동시를 쓰기 때문이다.

 

- 곧 설날이기에 서둘러 우체국으로 가자고 생각하며 자전거수레를 몬다. 이렁저렁 고뿔 기운 가라앉은 첫째를 수레에 태운다. 수레에 타고 마실을 한다니 타기 앞서부터 아주 좋아한다. 너하고 자주 들길이나 멧길을 거닐어야 하는데, 미안해.

 

- 마을을 한 바퀴 빙 돌고 나서 면내로 달린다. 겨울이지만 마치 봄과 같은 날씨라 춥지 않다. 아이는 수레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노래소리 들으며 다리에 더 힘을 주어 발판을 밟는다.

 

- 편지를 부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를 수레에서 내린다. 대문 빗장을 연다. 아이는 대문 한쪽에 붙어 문이 닫히지 않게끔 붙잡는다. 고 자그마한 손으로 용을 쓰며 붙잡는다. 아버지가 왜 얼른 안 들어오냐고 부르면서도 놓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예쁘게 찍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이 착하고 어여쁜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는 얼마나 고마운 선물을 늘 누리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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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글쓰기>(호미)가 나와서 고흥집으로 왔어요.

발행일은 2012년 1월 3일로 되었는데,

책방 배본은 금요일에 될 수 있는지, 설이 지나야 되는지 알 수 없네요 ㅠ.ㅜ

 

'전남 고흥 사진책도서관 1평 지킴이'가 되신 분한테는

http://blog.aladin.co.kr/hbooks/5137783

 

 

책을 부쳐 드리는데,

따로 안 부쳐도 된다고 말씀하신 분한테는

안 부칠게요 ^^;;;

(책방에 들어가면 기쁘게 장만해서 읽고

 곳곳에 알려주셔요 @.@ 아아아~~~)

 

 

 

 

 

 

 

 

<뿌리깊은 글쓰기>는 영어를 착하게 잘 쓰자는,

어쩌면, 영어 잘 쓰자라는 말보다는,

영어한테 잡아먹히는 한국말을

착하게 사랑하자는,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두루두루 사랑받는 책이 되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한국말과 영어를 옳게 가누면서

말로 빚는 슬기로운 넋을

사랑스레 일군다면 기쁘겠어요.

 

이렇게 된다면,

이 책을 읽어 주는 분들은 사랑스러운 넋이 되고,

출판사한테는 책 낸 보람을 일구며,

글을 쓴 사람한테는 시골도서관 일구는 밑돈을 모으겠지요 @.@/

 

 

 

첫째 책 <생각하는 글쓰기>랑

둘째 책 <사랑하는 글쓰기>와

셋째 책 <뿌리깊은 글쓰기>가

착하고 예쁘게 사랑받으면

넷째 책도 태어날 수 있을 텐데,

부디~ 좋은 꿈 이루어지기를 빌어 봅니다.

 

혼자 만세!

하고 부르며 축하술 마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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