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시스터즈 6
쿠마쿠라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또 보고 싶어요
 [만화책 즐겨읽기 110] 쿠마쿠라 다카토시, 《샤먼 시스터즈 (6)》

 


 내가 이제껏 즐긴 만화책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어릴 적에는 만화책이라 하면 그저 다 좋았습니다. 순정만화이든 명랑만화이든 딱히 가릴 까닭이 없었습니다. 어린 나날 만화책 가짓수가 얼마 없었으니까요.

 

 내 어린 날 일본만화 번역은 몇 가지 안 되었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일본만화를 훔쳐서 이름만 바꾼 만화가 적잖이 있기도 했으나, 어린 나날 즐긴 만화책은 으레 한국만화였습니다.

 

 중학생으로 접어들 무렵부터 〈드래곤볼〉이나 〈북두의 권〉이나 〈슬램덩크〉가 해적판으로 나옵니다. 이제 와 돌이키면, 국민학생 때에는 〈도라에몽〉이 〈동짜몽〉이라든지 다른 이름으로 바뀐 채 해적판으로 나왔고, 〈권법소년〉과 〈용소야〉 또한 해적판으로 나왔어요. 〈바벨2세〉와 〈캔디〉도 조그마한 해적판으로 나왔는데, 출판사를 알 수 없는 데에서 나와 문방구에서 파는 만화책이 쏠쏠히 있었습니다.

 

 이제 일본만화는 해적판으로 나오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 일본만화는 어엿하게(?) 정식번역판으로 나옵니다. 정식번역판이 나오면서 한국만화 볼 일이 무척 줄어듭니다. 굳이 일본만화를 훔치거나 베끼거나 흉내내는 한국만화를 볼 까닭이 없기도 하고, 그림결이나 짜임새나 줄거리나 고갱이가 얕은 한국만화를 돈 주고 장만할 뜻이 사라지기까지 합니다.

 

 일본에서 만화를 그리는 모든 사람이 ‘전담 편집자’가 따로 있다든지, 도움이가 따로 있다든지, 심부름꾼이 따로 있다든지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전담 편집자랑 도움이랑 심부름꾼을 거느리는 만화가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느끼기로는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분들은 그림결부터 많이 엉성할 뿐 아니라, 만화를 이루는 짜임새가 허술하고, 줄거리가 홀쭉하며, 고갱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만화는 웃기는 그림과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만화 또한 사람들한테 웃음꽃을 베풀 수 있으나, 그저 웃기려고만 한대서 만화가 되지 않아요. 무거운 이야기도 가볍게 풀어낼 수 있고, 가벼운 이야기도 무겁게 돌아보도록 이끌면서, 언제나 내 삶을 사랑스레 아끼는 맑고 푸른 넋을 보여주는 데에 만화가 뽐내는 기운이랑 빛줄기가 있구나 싶어요.


- “앞으로 너희들도 바깥세상에 나가야 하니까, 조금씩 현실적인 일을 생각해야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응.” … “할아버지는 제가 센신(기숙사 고등학교)에 가는 게 좋겠어요?” “글쎄다. 하지만 치토세(네 어머니)의 생각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언제까지나 같은 생활이 계속되지는 않으니까. 넌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으냐?” (11∼13쪽)
- “멀리 떨어지는 건 쓸쓸해.” “그럼 이치 고(등학교)에 가면 되잖아. 엄마가 뭐라든 관계없어. 같이 있자. 언니!” (26쪽)


 혼자 살아가며 만화책을 읽는 동안 내가 고른 만화책은 나 혼자 두고두고 건사할 만화책입니다. 옆지기와 만나 살아가며 만화책을 읽는 동안 내가 살피는 만화책은 둘이 함께 볼 만한 만화책입니다. 아이들 낳아 살아가며 만화책을 읽는 동안 내가 사들이는 만화책은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스스로 읽을 만한 만화책입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아이들한테 동시책과 동화책만 사 주는 어버이가 좀 괜찮다 싶은 어버이라 했습니다. 얼마 앞서부터는, 아마 열 몇 해 앞서부터는 한국 창작그림책이 곧잘 태어났기에, 이제 아이들한테 그림책 사 주는 어버이가 썩 괜찮다 싶은 어버이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동시책과 동화책과 그림책을 사 주던 어버이들이 그만 ‘영어책’ 사서 읽히는 슬픈 굴레에 빠집니다.

 

 아이들 스스로 영어를 돌아보면서 더 너른 누리를 바라보도록 이끄는 영어책이 아니라, 오직 더 일찍 영어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이른바 ‘조기교육 학습 도구’가 되는 영어책이기만 해요.

 

 아이들한테 굳이 책을 읽히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 좋은 삶을 바라보면서 무럭무럭 자라면 됩니다. 아이 어버이로서 당신 좋은 삶을 일구는 길동무 가운데 책을 정갈하게 사랑한다면, 아이들 또한 저희 좋은 삶을 돌보면서 책 또한 좋은 길벗으로 삼아요.

 

 동시책과 동화책과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닙니다. 아이들부터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나이 어린 아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푸름이도 읽고, 젊은이도 읽으며, 늙은 할매 할배도 함께 읽는 책이에요. 가만히 살피면, 오늘날 문학책이라 하는 책은 ‘읽히는 나이 테두리’가 너무 좁아요. 게다가 ‘읽히는 학력 울타리’ 또한 너무 높아요.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이나 미당문학상을 받는다는 작품을 푸름이나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선뜻 선물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머니한테 읽으라 내밀 만한지 궁금해요. 지하철 공사를 하는 일꾼이나 삽차와 짐차를 끄는 일꾼한테 이러한 문학책을 선물해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 “3학년은 좋다 이거야. 엄격하지만 막무가내는 아니야. 2학년들이 너무 심해. 게으름 필 구실로 1학년을 가르치면서 당치 않은 연습만 시키고, 3학년이 못 보는 곳에서 때리고, 기술 시험 상대로 쓰지, 잔심부름 시키지, 아 진짜 열받아.” “그런 사람은 많든 적든 어디에나 있지. 정말 싫어졌음 그만두는 게 어때?” (60쪽)
- “뭔가 사악한 것의 눈에 들었어. 그 녀석은 네가 밉다고 생각한 자에게 나쁜 짓을 한다.” “어떻게 안 돼요? 이대로는.” “쫓을 수는 있지만, 너 하기 나름이다. 진심으로 어떻게든 하고 싶으냐? 지금 상태라면 쫓아낸 시점에서 바로 또 다른 것에 홀릴 게다.” (70쪽)


 책 하나에서 아름다운 꿈을 바라볼 수 있다면, 동시책과 동화책과 그림책을 비롯해서 만화책과 사진책과 노래책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만화책은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어른들한테 좋은 마음밥이 됩니다. 사진책은 어른들한테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좋은 생각밥이 됩니다.

 

 삶을 느끼고 사랑을 헤아리며 꿈을 돌아보도록 돕는 이슬떨이 노릇을 하는 책이어야 합니다. 문학이어야 하거나 소설이어야 하거나 인문학이어야 하거나 사회과학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아름다운 책’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이 일구는 땀방울이 스미는 책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넋을 실은 책이어야 합니다.

 

 지식을 쌓는 책이 아니기에, 지식을 얻는 만화가 아닙니다. 정보를 나누는 책이 아닌 만큼, 정보를 살피는 만화가 아닙니다. 재미나게 읽는 책이 아닌 터라, 재미나게 읽을 만화가 아니에요.

 

 재미이든 즐거움이든 바로 내 삶에서 비롯합니다. 내 삶이 재미날 때에는 만화를 읽든 시를 읽든 인문책을 읽든 재미납니다. 내 삶이 즐거울 때에는 그림책을 읽든 사진책을 읽든 수필책을 읽든 즐거움이 피어납니다.


- “난 어렸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리던 시기가 있었어. 조마경. 마물과 본성을 비춘다는 거울. 그게 우리들의 눈이야. 많은 어른들이 어린 나에게 온갖 물건을 보였지. 난 수상한 도구로서 찬양받고, 경멸당하고, 버림받았어.” “…….” “넌 왜 여기 왔어?” “아, 저기, 엄마의 권유로.” “그래. 너도 부모에게서 버림받았구나. 그래서 여기에 버려졌구나.” “아냐! 그런.” “그럼 여기 오기 전엔 어땠어?” “이, 일 때문에 부모님과는 떨어져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여동생과.” “여동생도 비슷한 뭔가가?” “웅.” “역시. 귀찮은 아이를 할아버지한테 억지로 맡겼구나.” “네가 뭘 아니?” “알아. 난 잘 알아. 너의 거울인걸.” “넌 괴로워하며 지내 왔구나. 구름이 꼈어.” “너한테도 꼈어.” (115∼117쪽)
- “게다가 난 네가 아니야! 옛날에 조마경에 대한 얘기를 할아버지께 들었어. 마물을 거울이 비추는 게 아니라, 비추는 거울이 마물인 경우도 있대.” “내가 마물이라는 얘기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얘기야. 그리고 조마경이라면 태양도 비출 수 있는 거잖아. 밝게 비추는 태양도 될 수 있어.” (120∼121쪽)


 쿠마쿠라 다카토시 님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2007) 여섯 권째 읽습니다. 《샤먼 시스터즈》 여섯 권째에서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삶과 죽음이 여느 사람들 여느 자리에서 어떻게 스며드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여느’ 사람이라 했지만, 나도 여느이고 너도 여느입니다. 대통령도 여느이고 군수도 여느입니다. 법관도 여느이지만 4대강사업 밀어붙이는 홍보부장도 여느입니다.

 

 누구나 여느이기 때문에 누구나 남다른입니다. 누구나 남다른 삶을 남다른 사랑으로 남다른 꿈을 일굽니다.

 

 모두들 가장 착하게 살아갈 나날입니다. 모두들 가장 참다이 누릴 나날입니다. 모두들 가장 아름다이 꽃피울 나날입니다. 삶도 아름답고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삶도 기쁘고 죽음도 기쁩니다.


- “가르쳐 줘. 어떻게 하면 쉽게 홀리지 않는지, 피할 수 있는지. 잠시라도 좋으니까.” “홀리게 하는 존재에게 그걸 묻다니. 재밌는 아가씨네. 좋아. 상대해 주지.” (147쪽)


 내가 살갗으로 쓰다듬는 코앞에서 마주해야 삶이 아닙니다. 내가 두 다리를 흙에 디딜 때에만 삶이 아닙니다. 내 몸은 스러져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내 넋은 홀가분하게 온누리를 떠돌 수 있습니다. 내 몸은 흙에 묻혀도 내 넋은 온 별나라를 누비면서 마음껏 빛날 수 있습니다.


- “언니, 할머니는?” “아.” “할머니. 할머니! 야스시! 우리 할머니 어디 갔는지 알아?” “무슨 소리야? 우리끼리 왔잖아. 할머니라니 무슨 소리야?” “아, 너야말로 무슨 소리니?” (198∼199쪽)
- “할머니도 나은 지 얼마 안 됐으니, 쉬세요.” “그래. 고맙다.” “어디 가?” “미즈키가 일어났다고 모두에게 알려줘야지.” “안 그래도 돼! 여기 있어요.” “계속 있을 거란다.” (204∼206쪽)


 사랑스러운 님은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님은 코로도 느끼고 귀로도 느끼며 살갗으로도 느낍니다. 사랑스러운 님은 마음으로도 느끼고 생각으로도 느낍니다. 가슴으로도 느끼는 사랑스러운 님이요, 꿈으로도 느끼는 사랑스러운 님이에요.

 

 좋은 기운은 늘 내 곁에 있습니다. 나쁜 기운 또한 노상 내 곁에 있어요.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좋은 기운으로 감쌀 수 있고, 나는 내 몸과 마음을 형편없이 나쁜 기운으로 망가뜨릴 수 있어요.

 

 내가 바라는 대로 내 삶을 이룹니다. 내가 뜻하는 대로 내 삶을 이끕니다.

 

 나는 나부터 가장 좋은 길을 걷고 싶습니다. 가장 좋다고 여기는 일을 찾으면서, 가장 좋다고 꿈꾸는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아름다이 웃는 내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해맑게 노래하는 내 옆지기를 보고 싶습니다. 즐거이 춤추며 어깨동무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싶습니다. (4345.1.27.쇠.ㅎㄲㅅㄱ)


― 샤먼 시스터즈 6 (쿠마쿠라 다카토시 글·그림,정재은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7.3.15./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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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손으로 책을 펼친 어린이

 


 나는 몇 살부터 만화책을 읽었는지 모른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나는 만화책을 꽤 많이 보기에 우리 아이는 어린 나날부터 만화책을 곧잘 펼친다. 요즈음 함께 보는 만화영화에서 해님을 빛살이 한 줄로 죽죽 퍼지듯 그리는데, 아이가 해를 그린답시고 만화영화에 나온 모습대로 그린다. 꽤 어처구니가 없으나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예전에는 해를 이렇게 그리지 않았잖니. 옆지기가 아이더러 밖에 가서 해를 보고 오라 이야기한다. 아이는 바깥에서 해를 바라보더니, 아이 눈부셔, 하고는 방으로 돌아와서 제 눈으로 바라본 대로 해를 그린다. 예전과 같은 해 그림이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그림책을 장만할 때면, 줄거리도 줄거리이지만 그림이 어떠한가를 살필밖에 없다. 마냥 예쁘게 그리려 하는 그림책은 도무지 손이 닿지 않는다. 참 어여쁘다 싶은 그림이기에 장만하는 그림책이 있기도 하지만, 억지스레 예쁘게 그리는 그림은 하나도 달갑지 않다.

 

 아이는 아톰 만화책이랑 도라에몽 만화책을 참 자주 들여다본다. 글을 모르니 그림만 볼 텐데, 이제 그림만 보면서 줄거리를 퍽 알아채는 듯하다. 제 아버지가 책을 읽을 때에 으레 한손으로 쥐고 다른 한손으로는 볼펜을 쥐니, 아이는 제 아버지 모습을 고스란히 따라한다. 한손으로 자그마한 만화책을 들어 펼치려 한다. 그래, 한손으로 읽어도 좋기는 한데 잘 잡아야 책이 안 망가진단다. (4345.1.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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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1-27 01:27   좋아요 0 | URL
된장님~~외람된 말이지만 육아일기를 묶어 펴내셔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아이를 잘 키우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파란놀 2012-01-27 08:05   좋아요 0 | URL
바지런히 그러모아서 잘 해 봐야지요 ^^

이구궁, 어쩌면, 아직 못 하는 대목이 많고
어설픈 대목이 잦아,
이런저런 날들을 모아 이렇게 적을 수 있는지 몰라요.

마녀고양이 2012-01-28 12:37   좋아요 0 | URL
벼리가 아톰을 읽고 있군요?
그런데 일본 원서책인가 봐요... 집중해서 읽는 저 모습 좀 봐. ^^

파란놀 2012-01-28 13:23   좋아요 0 | URL
만화책은
일본판이
한국판보다 훨...씬
예쁘고 보기 좋답니다 ㅠ.ㅜ

그림책을 보아도 그래요.
일본에서 만든 그림책은 빛느낌도 종이느낌도
참 좋아요... 이궁... ㅠ.ㅜ
 

알라딘 첫 화면에 떴기에, 소노 아야코 님 새로운 책이라고 여겼는데, 2002년에 나왔던 <중년 이후>가 새옷을 입고 나왔구나. 새로 나온 책에는 사진이 겉에 들어갔네. 예전에 읽은 책인데 다시 사고프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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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이후- 나의 가치를 발견하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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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신문 읽기 1 : 1만 원입니다

 


 네 식구 면으로 마실을 다녀온다. 우체국에 들를 일이 있어 열두 시 반 즈음 길을 나선다. 열두 시 반에는 읍내에서 우리 마을 앞을 거쳐 면내로 가는 버스가 떠나니, 조금 걷다 보면 군내버스를 만나리라 생각하며 시골길을 걷는다. 동백마을에서 신기마을 거쳐 원산마을 앞을 지날 때까지는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한 낮. 원산마을 지나 호덕마을로 들어설 무렵에는 바람이 싱 분다. 아이, 차갑구나. 문득 뒤를 돌아보니 군내버스가 싱싱 달려온다. 옳거니, 아이들 태우고 버스에 타자.

 

 버스삯 1100원씩 2200원을 내고 탄다. 우체국에 들러 아이들 세뱃돈을 통장에 넣는다. 둘째 아이 통장 뒤쪽이 읽히지 않아 새로 해야 한다며 서류를 떼야 해서 면사무소에 가기로 한다. 면사무소에서 서류를 떼며 〈고흥신문〉 한 부 얻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군내버스를 타며 2200원을 낸다. 마을 어르신을 버스에서 뵙는다. 아침에 버스 타고 나와서 동창모임 사람들하고 어울려 논 다음 낮 즈음 해서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오신다고, 2200원이면 즐거이 놀 수 있다고 말씀한다.

 

 아이들과 복닥이며 지친 몸을 두 시간 즈음 드러누워 풀고는, 낮에 면내에서 챙긴 〈고흥신문〉을 읽는다. 오로지 고흥군에서만 받아서 읽을 수 있는 이 신문에는, 〈농어민신문〉 같은 데에서조차 읽을 수 없는 이야기가 실린다. 생각해 보면, 전라남도 지역신문이더라도 고흥이나 장흥 이야기를 알뜰히 담지 못한다. 광주에서 나오는 지역신문이라지만 고흥이나 화순 이야기를 알차게 담을까. 서울에서 나온다는 중앙일간지에서는 고흥이든 담양이든 시골마을 이야기를 어느 만큼 담으려나.

 

 “한우파동, 사료값 인상 생산비도 못 건져”라는 이름이 붙은 글을 읽는다. 마을 어르신들 모인 자리에서 ‘소값이 3만 원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곧잘 들었기에, 뭔 소리인가 했다. 신문글을 읽으니, 참말 소값이 지난 12월부터 폭삭 주저앉아, 젖소 수컷은 지난 2011년 12월에는 2만 4천 원이었고, 새해 1월부터는 1만 원이란다. 한우 암컷은 아직 360만 원이라지만 지난해에는 438만 원이었고 그러께에는 630만 원이었단다. 그러면, 세 해 앞서나 네 해 앞서는 얼마였을까. 틀림없이 해마다 떨어지는 소값이었으니까, 다섯 해 앞서나 여섯 해 앞서는 더 높았겠지. 그리고, 해마다 소값이 폭삭 주저앉는다며 시골마을 어르신들 모두 눈물을 흘렸겠지.

 

 이러한 이야기가 얼마나 중앙일간지에 실리나 궁금하기에 인터넷을 켜고 살펴본다. 중앙일간지에서는 소값이 얼마에서 얼마로 떨어졌는가 하는 이야기를 찾아볼 길이 없다. ‘소값 폭락’이나 ‘소값 파동’이라는 말마디는 보여도, 정작 소값이 얼마나 되는가를 옳게 알아보고 제대로 다루는 글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그러면, 중앙일간지를 읽을 도시사람은 소값이 어떠한가를 어느 만큼 알까. 소 한 마리를 ‘고기를 얻을 만큼’ 기르기까지 사료를 얼마나 먹여야 하고,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를 어느 만큼 살갗으로 헤아릴까.

 

 그래, 젖소 수컷 한 마리에 1만 원. 그러면, 이 젖소 수컷 한 마리를 잡을 때에 돈을 얼마나 치러야 할까. 젖소 수컷을 팔아야 하는 시골사람은 돈 한 푼을 쥐기는커녕 외려 돈을 물어야 하는 판이다. 그렇다고 구덩이를 파고 날목숨을 죽일 수 있을까. 시골마을에서 스스로 소를 잡아 먹도록 할 수 있을까.

 

 소값이 떨어지는 까닭은 딱 하나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이다. 그런데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 하는 까닭은 경제발전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을 꾀하는 이 나라인 까닭에 자동차 공장은 밤새 불을 밝히고, 손전화 만드는 공장 또한 쉴새없이 돌아간다.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쓰는 전자제품을 집안 가득 들이고, 회사에서 달삯쟁이로 한삶을 누린다. 고기집에서 고기값이 떨어질 일은 없다. 아마, 고기집에서는 수입 소고기 아닌 한국 소고기를 다룬다면 훨씬 적은 값으로 장만해서 더 비싼 값으로 팔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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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을 기다리는 마늘밭
 [고흥살이 5] 시골바람·겨울바람·살랑바람

 


 가을걷이 끝낸 논은 겨우내 쉽니다. 가을걷이 마친 밭은 겨우내 마늘밭이 됩니다. 날이 추운 시골마을에서는 겨우내 마늘을 심지 못합니다. 날이 포근한 시골마을에서는 가을걷이를 마치기 무섭게 바지런히 두레를 하면서 마늘을 심습니다. 마늘을 심고는 비닐을 씌웁니다. 비닐을 씌우지 않으면 마늘 아닌 다른 풀이 돋을 때에 김매기 할 엄두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골마을에 일흔 여든 아흔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은 채 흙을 일구지 않는다면, 겨우내 마늘밭에 비닐을 안 씌울 수 있을까요. 시골마을에 스물 서른 마흔 젊은 사람들 오순도순 모여 겨우내 마늘밭을 건사한다면, 마늘밭이든 파밭이든 보리밭이든 무슨무슨 밭이든, 저마다 두레를 하면서 김을 매고 막걸리 한 사발 즐거이 나눌 만할까요.

 

 여덟 달째 함께 살아가는 갓난쟁이 아이를 안거나 업히고, 새해에 다섯 살이 된 아이는 걸려 면내로 마실을 갑니다. 우리 시골집 앞자락 밭에는 이웃 할머니들이 알뜰히 심은 마늘이 자랍니다. 우리 시골집 옆자락 밭에도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함께 심어 돌보는 마늘이 자랍니다. 오가는 자동차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골길을 걷습니다. 이웃마을 밭뙈기에도 마늘이 자랍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늘이 몸에 좋다느니 마늘을 어떻게 먹으면 맛있다느니 하고 이야기하지만, 막상 마늘을 어떻게 심고, 어찌저찌 돌보는 줄 헤아리지 않습니다. 마트에 비닐로 수북히 쌓인 ‘깐마늘’ 값을 어림하거나, 고기집에서 접시 내밀어 ‘마늘 더 주셔요’ 하고 말하기만 합니다.

 

 마늘 또한 풀입니다. 마늘 또한 풀이기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며 잎을 틔웁니다. 꽃을 피우고 푸른 빛깔 흐드러지게 뽐내요.

 

 

 

 마늘은 마늘꽃, 배추는 배추꽃, 벼는 벼꽃, 보리는 보리꽃, 능금은 능금꽃, 배는 배꽃, 무는 무꽃, 복숭아는 복숭아꽃을 피워요. 살구는 살구꽃이 지면서 맺는 열매입니다. 앵두는 앵두꽃이 지면서 맺는 열매예요. 매실은 매화가 지며 맺는 열매입니다.

 

 모든 풀·꽃·나무는 흙땅에 씨앗을 떨구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립니다. 모든 풀·꽃·나무는 고우면서 기름진 흙이 있어야 하고, 맑으면서 따사로운 햇살이 있어야 하며, 밝으면서 싱그러운 바람이 있어야 해요. 우리들이 먹는 마늘이건 배추이건 벼이건 보리이건 능금이건 배이건 무이건 복숭아이건, 흙이랑 햇살이랑 바람이랑, 여기에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있을 때에 알차게 여물어요. 곧, 사람들은 마늘만 먹지 않아요. 사람들은 마늘을 먹으며 흙과 햇살과 바람과 물을 함께 먹어요. 흙과 햇살과 바람과 물을 먹으며 사람들 목숨을 이어요. 크고작은 도시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 덮이지만, 시골마을 논밭만큼은, 또 멧자락만큼은 오직 흙으로 덮인 땅에 풀약이나 비료가 흩날리지 않아야 모두들 사랑스레 목숨을 돌볼 수 있어요.

 

 시골바람이 불어 시골마을을 감쌉니다. 겨울바람은 마늘밭을 훑고 지나며 마늘잎이 더 튼튼하도록 다스립니다. 살랑바람은 마늘알이 옹글게 여물도록 재촉합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늘밭 앞에 다섯 살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마늘잎을 쓰다듬습니다. 우리가 심은 마늘이 가득한 밭뙈기는 아니지만, 우리 이웃들 예쁘게 심어 알뜰히 가꿀 흙자락이에요. 여덟 달 갓난쟁이는 마늘밭 스치는 따순 바람을 느끼고, 아이들과 마실하는 어버이는 앞으로 장만해서 돌보고 싶은 텃밭을 생각합니다. (4345.1.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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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27 12:29   좋아요 0 | URL
와우, 이런 곳에서 사시는군요.
가슴이 탁 트이는 게 좋아보입니다.^^

파란놀 2012-01-28 00:15   좋아요 0 | URL
새로 들어와 여러 달 지내며 너무 어지럽고 고단해
마실을 제대로 못 다녔는데,
이제, 다섯 살 맞이한 아이하고
날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뒤꼍 땅뙈기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마녀고양이 2012-01-28 12:40   좋아요 0 | URL
글쿠나,, 겨울에는 마늘밭이 되는거군요.
첨 알았어요... 마늘꽃, 마늘알이 영글어 가는군요.

춥진 않으셔요? 경기도보다 남쪽이라 좀 따스하시려나요?
마지막 사진, 참 좋아보입니다. 모녀가 무엇을 저리 가리킬까요?

파란놀 2012-01-28 13:24   좋아요 0 | URL
경기도나 서울 같은 데보다 10도는 따스해요~
ㅋㅋ

냇물에 가득한 물고기를 바라보다가
물고기 잡아먹는 해오라기를
나란히 보는 모습이에요~

oren 2012-01-29 00:43   좋아요 0 | URL
시골 풍경사진이 참 아름답고 청명해 보입니다.

작년 11월 하순에 목포,영암,해남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봤는데, 서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너무 따스해서 '따스한 남쪽지방'에서 사는 사름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된장님께서 그런 포근하고 따스한 동네에서 사시는군요.

파란놀 2012-01-29 06:41   좋아요 0 | URL
오~ 다음에는 고흥도 마실해 보셔요.
고흥이나 장흥은 또 다르기도 해요.
고흥보다 북쪽인 벌교는
고흥과 달리 눈이 많고 조금 춥기도 하지만,
참 재미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