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희망 - <월든>의 작가 소로우가 들려주는 숲의 언어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삶을 아름다이 일구는 씨앗
 [환경책 읽기 28] 헨리 데이빗 소로우, 《씨앗의 희망》

 


- 책이름 : 씨앗의 희망
- 글 :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옮긴이 : 이한중
- 펴낸곳 : 갈라파고스 (2004.5.18.)
- 책값 : 9800원

 


 (1) 나무씨앗, 사람씨앗


 내가 심은 나무라서 더 어여쁠 수 없습니다. 내가 심지 않은 나무라서 함부로 꺾어도 되지 않습니다.

 

 내가 심은 나무에는 내 사랑이 곱게 스며들어 기쁘고, 내가 심지 않은 나무라 하지만 이 나무들을 처음 심은 이들 사랑이 곱게 배어서 반갑습니다. 내가 심은 나무는 나뿐 아니라 내 둘레 모두한테 좋은 웃음이고, 내가 심지 않은 나무는 나한테까지 좋은 선물입니다.

 

 내가 심는 나무에는 내 사랑을 담습니다. 나와 내 살붙이와 내 동무와 내 이웃이 함께 내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내 이웃이 심은 나무는 내 이웃 사랑이 스며, 이 사랑이 내 이웃을 비롯한 뭇사람한테 고루 퍼집니다.


.. 풀 속에 돋아난 이끼처럼 보이던 작은 생명들은 나무들로 자라서 2백 년은 거뜬히 살 것이다 … 비단처럼 곱게 반짝이는 잎(씨앗의 섬세한 솜털 낙하산에게는 안성맞춤인)은 아기 왕자를 눕혀 두고 흔들어 주는 비단 테를 두른 요람 같다. 씨앗은 이렇게 매끈매끈한 천장 아래에 마른 채로 잘 보관되어 있다. 궂은 날씨에 오랫동안 닳아버린 거친 바깥 부분만 보면 이끼 가득한 지붕 같다. 그러니 길가의 흙에 내려앉는, 그저 여름 끝에 나오는 갈색의 낡은 것으로만 알았던 이것은 사실 귀한 보물이 든 작은 상자인 것이다 ..  (27, 116쪽)


 우리 집 뒤꼍에서 자라는 모과나무를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심은 모과나무가 아닙니다. 우리 이웃 할아버지가 심은 모과나무입니다. 아마 이웃 할아버지가 조금 더 젊은 할아버지였을 적에 심은 모과나무였을 텐데, 이웃 할아버지는 이 모과나무를 심어 꽃을 보고 열매를 봅니다. 이웃 할아버지가 심은 모과나무 한 그루 뒤꼍에서 자라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고마이 모과꽃과 모과열매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겨울에는 가지마다 자그맣게 올라온 새눈을 바라보며, 이 새눈이 싱그러이 피어날 봄을 기다립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사랑을 심습니다. 고이고이 자라날 사랑을 나무씨앗 하나에 담아 심습니다. 나무씨앗은 어린나무로 크고 어른나무로 우뚝 섭니다. 조그마한 나무씨앗 한 알이 우람한 어른나무로 자라기까지는 퍽 오래 걸립니다. 오래오래 살아갈 나무인 만큼, 어른나무로 우뚝 서기까지는 꽤 오랜 나날이 걸리겠지요.

 

 가만히 보면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아주 조그마한 사람씨앗이 어머니 몸속에서 열 달을 자랍니다. 어머니 몸속에서 나온 뒤로도 갓난쟁이를 거치고 어린이를 거쳐 푸름이로 자라면서 비로소 씩씩한 젊은이로 우뚝 서요. 한 해 다섯 해 열 해 스무 해에 걸쳐 씩씩하고 튼튼한 어른으로 거듭납니다. 곧, 사람씨앗이 싱그러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나날을 들여야 하듯, 나무씨앗 또한 싱그러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나날을 들여야 해요.

 

 하루아침에 꽃을 피우는 나무는 없어요. 하루아침에 열매를 맺는 나무 또한 없어요. 하루아침에 꽃을 피우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루아침에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나요.

 

 목숨을 낳아 목숨을 돌보면서 목숨을 잇는 일이 거룩하다면, 오직 하나뿐인 목숨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목숨이 어여삐 빛을 내면서 싱그러이 사랑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씨앗이나 사람씨앗 모두 어여삐 빛을 냅니다. 우뚝 선 나무와 사람 모두 싱그러이 사랑을 나눕니다.

 숲은 나무가 있어 아름답습니다. 지구별은 사람이 있어 아름답습니다.


.. 나는 처음에 이 바위가 어떻게 강물과 기슭 사이에 끼어들었나 궁금했는데, 사실 이 느릅나무들이 무사히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이 바위 덕택이다. 바위는 떠다니던 씨앗을 붙잡은 다음 싹이 터서 자라는 어린나무들을 보호했고, 지금은 나무들이 자랄 수 있도록 흙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먼 옛날 목처지에 굴러온 둥근 바위는 결국 한 무리의 나무를 자라게 했고, 지금은 그 나무들의 잎에 가려 모습을 감추고 있다 ..  (67쪽)


 아름다운 숲이지만, 돈을 바라며 함부로 베거나 망가뜨리면서 무너지는 숲이고 맙니다.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돈을 꾀하며 아무렇게나 뒹굴면서 망가지는 사람이고 맙니다.

 

 숲은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가꾸며 스스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이 숲에 돈벌이 꾀하는 사람들 손길이 퍼지면서 그예 망가집니다. 사람은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가꾸며 스스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돈벌이에 홀리는 또다른 사람들 손길에 휘둘리거나 휩쓸리면서 그만 무너집니다.

 

 사람들이 애써 가꾸어야 살아나는 숲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힘써 가르쳐야 배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숲은 숲 스스로 오래도록 이어온 사랑과 목숨을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에 싱그러이 살아나며 숨쉽니다. 사람은 사람 스스로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사랑과 목숨을 스스로 깨달아 보살필 수 있을 때에 싱그러이 살아나며 숨쉬어요.

 

 헬리콥터로 ‘벌레 잡는 약’을 뿌려야 숲을 지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따로 솎아베기를 해야 나무가 잘 자라지 않습니다. 숲 스스로 나무를 다스리고, 나무 스스로 씨앗을 건사해요.

 

 학교에 보내야 삶을 배우지 않습니다. 회사를 다녀야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가슴속에 자리한 빛줄기를 알아채면서 곱게 어루만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스스로 일구는 삶을 바라봅니다. 사람들 누구나 마음속에 모신 꿈을 북돋울 때에 바야흐로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누립니다.


.. 나는 작은키참나무가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벌목꾼이 보기에는 쓸모없는 것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나무 중 하나며, 흰자작나무와 마찬가지로 뉴잉글랜드와는 떼놓을 수 없는 나무다 … 어떤 씨앗은 우리로서는 현미경으로나 봐야 할 정도로 작지만 그들에게는 엄연히 하나의 견과다 ..  (193∼194, 197∼198쪽)


 나무는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을 납니다. 나무는 한겨울에도 따순 햇살을 받아먹으며 씩씩하게 섭니다. 나무는 흐드러진 별빛을 받으며 저녁에 잠듭니다. 나무는 뭇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새벽을 열고, 들판을 가득 채운 풀들이 바람 따라 일렁이는 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한낮을 함께 즐깁니다.

 

 사람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꿈과 사랑을 먹으며 마음을 살찌웁니다. 사람은 어버이와 함께 땀흘려 움직이고 일하며 몸을 다스립니다. 두 다리는 흙을 밟습니다. 두 손은 흙을 만집니다. 두 눈은 흙을 바라봅니다. 코로는 흙내음을 맡습니다. 두 귀로는 흙에 깃든 목숨들이 내는 소리를 듣습니다. 살갗으로는 햇살 머금는 흙이 얼마나 촉촉한가를 느낍니다.

 

 나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려 하는가를 말없이 지켜봅니다. 사람은 나무들이 어떻게 숲을 이루어 아름다운 누리를 이루는가를 조용히 지켜봅니다.

 


 (2) 나무꽃, 사람꽃


 한 사람이 살아가자면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한 사람이 목숨을 잇자면 푸성귀이든 고기이든 곡식이든 얼마나 먹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한 사람 목숨을 잇는 먹을거리는 얼마만한 땅에서 거둘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넓은 집에서 살림살이를 얼마나 많이 건사하면서 살아야 아름답다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농부는 감자를 캐고 옥수수를 따면서도 이웃 숲 속에서 다람쥐가 자기보다 더 부지런히 리기다소나무의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 후손을 퍼뜨릴 씨앗이 필요하다면, 자연은 다람쥐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만 가지고도 만족하는 모양이다 … 웅덩이 곁에서 자라는 도깨비바늘이나 험한 절벽 위에서 자라기도 하는 도둑놈의갈고리는 자기들의 씨앗을 운반해 줄 짐승이나 사람이 그리로 지나갈지 어쩌면 그리도 잘 알까! ..  (31∼32, 35, 127쪽)


 우람하게 자란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냅니다. 느티나무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냅니다. 뽕나무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냅니다. 단풍나무도, 후박나무도, 살구나무도, 오얏나무도, 포도나무도, 모두 꽃과 열매와 씨앗을 내요.

 

 우람한 나무 둘레에 흙땅이 있으면, 이 흙땅에는 어김없이 씨앗이 떨어져 씩씩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우람한 그늘 밑이라 햇살 한 조각 받아먹기 만만하지 않지만,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다섯 해 차츰차츰 뿌리를 깊이 내리고 줄기를 높이 올립니다.

 

 나무는 사람들이 따로 어린나무를 심어야 자라지 않습니다. 나무는 처음부터 어미나무가 씨앗을 내어 흙에 떨구면서 퍼져 자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낳아 돌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라는데, 따로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를 다녀야 어른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햇살을 먹고 흙에 뿌리내리며 바람과 물을 마시며 자라는 나무이듯, 햇살 같은 사랑과 흙 같은 믿음과 물 같은 꿈과 바람 같은 이야기를 어버이한테서 받아먹으며 자라는 아이입니다.


.. 여새와 울새는 야생 벚나무가 어디 있는지 죄다 알고 있는 것 같다. 벌이나 나비를 구경하려면 엉겅퀴를 찾아보면 되듯이 이 새들은 벚나무를 찾아보면 틀림없이 구경할 수 있다 … 우리는 적어도 씨앗을 심지 않고서는 정원에 무언가를 자라게 하기 어렵다. 그러니 무언가가 저절로 씨앗을 퍼뜨리는 것을 보면 놀라게 마련이다 ..  (93, 105쪽)


 햇살을 받아먹지 못하는 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흙이랑 물이랑 바람을 받아먹지 못하는 나무는 그만 시들시들 말라죽고 맙니다.

 

 햇살 같은 사랑을 받아먹지 못하는 아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흙이랑 물이랑 바람 같은 꿈과 믿음과 이야기를 받아먹지 못하는 아이는 그만 시들시들 아픔과 생채기가 쌓이고 맙니다.

 

 햇살을 받아먹으면서 가슴속에 햇살을 품는 나무입니다. 이 햇살을 꽃으로 피우고 열매로 맺고 씨로 내는 나무입니다.

 

 햇살 같은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가슴속에 햇살 같은 사랑을 품는 아이입니다. 이 햇살 같은 사랑을 꽃 같은 꿈으로 길어올리고, 꽃다운 믿음으로 나누며, 꽃처럼 곱게 이야기보따리 펼치는 아이입니다.


.. 땅 자체가 바로 곡물창고이자 온상(묘상)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은 지표면을 거대한 생명체의 표피로 여기는 것이다 … 소나무가 잘리기 전에 씨앗은 이웃의 들판으로 날아가서 후손을 퍼뜨렸다.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소나무들이 온통 싹을 틔운 것이다. 이 소나무들은 너무 빨리 빽빽하게 자라서 이곳 사람들조차 7.5미터 길이의 무성한 소나무숲을 갈아엎거나 베어내지 못했다. 더욱이 이들 소나무 사이에 섞인 씨앗을 맺는 큰 참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좁고 긴 땅은 흔히 그러하듯 3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묘목이 가득했다 ..  (204, 224쪽)


 나무는 제 어미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씨앗에는 어미나무 온 사랑이 감돕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이어받습니다. 참으로 자그마한 씨앗에는 어버이 온 사랑이 깃듭니다.

 

 나무로 살아갈 모든 꿈과 사랑이 녹아드는 씨앗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나누거나 펼칠 모든 꿈과 사랑이 녹아드는 씨앗입니다. 씨앗으로 갈무리하는 나무 넋이고, 씨앗으로 그러모으는 사람 얼입니다.

 

 꽃이 피기를 꿈꾸는 씨앗입니다. 새롭게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씨앗입니다. 다시금 씨앗을 내며 빛나는 목숨을 나누고픈 씨앗입니다. 씨앗은 새로운 씨앗을 낳지만, 새로운 씨앗만 낳지 않아요. 씨앗은 먼저 꽃을 피워요. 꽃을 피우기까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잎과 줄기를 내요. 푸르디푸른 잎사귀로 온누리를 푸르게 가꿔요. 씨앗은 꽃을 피우면서 천천히 열매를 맺어요. 씨앗은 새로운 씨앗으로 퍼지기 앞서, 달콤한 밥을 나누어요.

 

 나무꽃뿐 아니라 사람꽃도 이와 같아요. 어버이가 맺는 사랑씨앗은 아이들이라는 새 목숨만 낳지 않아요. 어버이부터 스스로 아름다이 일구는 삶꽃을 피워요. 어버이부터 스스로 착하게 돌보는 꿈을 맺어요. 어버이부터 스스로 참다이 아끼는 보금자리를 뿌리내려요. 아이라고 하는 사랑꽃·사람꽃·꿈꽃이란 어버이 스스로 누리는 고운 삶꽃이 밑바탕이 되어 태어나요.

 


 (3) 《씨앗의 희망》 읽기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이 일군 책씨인 《씨앗의 희망》(갈라파고스,2004)을 읽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이 내놓은 책 가운데 《월든》이나 《시민의 저항》은 꽤나 읽히지만, 《씨앗의 희망》은 그닥 읽히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 왜 이토록 아름다운 책씨는 옳게 읽히지 못하는가 궁금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한국에서 《씨앗의 희망》이 읽히기는 몹시 어렵겠구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와 눈높이를 맞추고 들풀과 삶높이를 맞추는 이야기를 천천히 적바림하는 《씨앗의 희망》은 지식이나 정보로는 읽을 수 없어요. 지식을 얻거나 정보를 챙기려는 마음으로는 이 책을 읽을 수 없어요.

 

 자연 지식을 얻자 하면서 읽는 《씨앗의 희망》이 아니에요. 시골살이를 노래하는 《월든》이 아니에요. 도시 물질문명을 거스르자는 뜻을 보여주는 《시민의 저항》이 아니에요.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스스로 누리면서 작은 씨앗을 뿌리려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삶을 고치거나 손질하려는 뜻이 있을 때에, 비로소 이 책에 깃든 사랑씨를 맞아들일 수 있어요. 사랑씨를 맞아들이며 내 삶을 바꾸려고 해야 바야흐로 이 책을 따사로이 품을 수 있어요.


.. 박주가리 하나가 믿음을 갖고서 씨앗을 무르익게 하고 있는데 세상이 이번 여름에 끝장날 것이라는 대니얼이나 밀러의 예언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 자연은 풀 베는 사람에게 잎은 내줄지언정 씨앗만은 지켜내는 것이다. 홍수가 와서 씨앗을 날라다 주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  (124, 133쪽)


 좋은 책은 추천도서가 아닙니다. 좋은 책은 고전이나 명작이 아닙니다. 좋은 책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아닙니다.

 

 좋은 책이라 하는 이름을 붙이자면, 나 스스로 좋은 삶으로 거듭나도록 이끄는 책이어야 합니다. 좋은 책이라 하는 이름은, 나 스스로 좋은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책에 붙습니다.


.. 놀랍고 원통하게도 스스로 그 땅의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린 참나무들을 모조리 태워 버리고 겨울에 호밀을 뿌려 버린 사실을 알았다! 그는 틀림없이 1∼2년 뒤에는 참나무가 다시 자라도록 내버려둔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그 사이에 호밀이라도 조금 심으면 분명히 돈이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234∼235쪽)


 이 나라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옳게 읽히지 못하는 일은 슬프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널리 읽힌다 한들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씨앗의 희망》을 옳게 읽기 앞서, 사람들 스스로 내 좋은 삶을 옳게 읽으며 새로 태어날 수 있어야 기쁩니다. 《씨앗의 희망》을 널리 읽기 앞서, 사람들 스스로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꿈을 나누어야 즐거운 나날인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반갑습니다.

 

 책 하나 더 읽는대서 나쁘지 않아요. 책 하나 안 읽었대서 나쁘지 않아요.

 

 삶을 사랑할 때에 좋아요. 사랑할 만한 삶을 착하고 참다이 느껴 맑고 밝게 어깨동무할 때에 좋아요. (4345.1.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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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2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과 열매 냄새가 가득해지시겠네요.
못 생겼다고 하지만, 정말 향이 좋죠.. 그윽하네요.

글을 읽으면서 햇살 비치는 숲길을 상상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한겨울, 문득 좋네요. ^^

파란놀 2012-01-28 13:23   좋아요 0 | URL
한겨울은 한겨울대로 좋은 나날이기에
새봄은 새봄대로 좋을 수 있어요~

페크pek0501 2012-01-2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라 하는 이름을 붙이자면, 나 스스로 좋은 삶으로 거듭나도록 이끄는 책이어야 합니다. 좋은 책이라 하는 이름은, 나 스스로 좋은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책에 붙습니다." - 이것, 당연한 말씀인데도, 제게 누군가가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 하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자신이 없네요. 그래서 한 수 배워 갑니다. ㅋ

파란놀 2012-01-29 06:33   좋아요 0 | URL
모두들 잘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너무 바쁘거나 매이는 삶 때문에
그만 잊고 말아서
스스로 좋은 책하고 멀어지지 않느냐 싶어요.

oren 2012-01-2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의 글을 읽어보니 어린 시절 시골에 살면서 온갖 풀과 나무와 씨앗들과 함께 뒹굴고 놀던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립게 느껴집니다.

그 시절엔 나무도 많이 심고, 또 가끔씩 열매나 과실을 얻기 위해 나무에 올라가기도 하고, 밤이나 대추를 많이 얻을 욕심으로 나뭇가지도 많이 꺾었던 기억도 나네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와 제대로 교감을 나누지도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에서의 무미건조한 삶을 새삼 되돌아보게 되고, 그런 삶을 너무나 당연시해 왔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게 됩니다.

파란놀 2012-01-29 06:36   좋아요 0 | URL
언제나라도 느낄 때가 가장 이를 때라고 했어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풀 나무 꽃 흙 햇살 바람 물
아낄 수 있는 길을
저마다 예쁘게 찾아나서면 즐거우리라 믿어요.

oren 2013-10-1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초에 쓰신 글이지만 오늘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방금 쓰신 글처럼 읽혀서 좋습니다.
 


 국립공원 마을에 화력발전소 짓지 마셔요

 


 왜 자꾸 시골에 화력발전소를 지으려 할까요? 왜 자꾸 시골에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려 할까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네 식구 아버지로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참말 시골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발전소를 지여야 하는 까닭이 무언가 깊디깊이 헤아려 봅니다.

 

 아무래도 시골은 땅값이 쌀 테지요. 아무래도 시골은 반대하는 목소리가 낮겠지요. 아무래도 시골에 발전소 짓겠다 하면 서울이나 큰도시에 있는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오는 일도 드물겠지요.

 

 시골사람이 전기를 많이 써서 시골에 발전소를 짓는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식구도 시골에서 살아가지만, 우리 집이나 이웃 어르신들은 전기를 얼마 쓰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땅에서 시골사람은 무척 적기도 한 만큼,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에서는 햇볕힘으로 고흥군 전기를 모두 댈 만큼 얻을 수 있어요. 전남 고흥은 굳이 화력발전소이든 원자력발전소이든 덧없습니다. 햇볕힘 얻는 전지판을 더 놓으면 돼요. 집집마다 지붕에 햇볕힘 전지판을 붙이면 됩니다.

 

 포스코건설에서 전남 고흥이라는 데에 2020년까지 화력발전소를 짓겠다고 합니다. 포스코건설은 처음에는 포항시에서 화력발전소를 지으려다가 주민 반대에 계획을 접었다고 하는데(2011년), 전남 고흥에 7조 원을 들여 화력발전소를 짓는다고 해요(2012년). 전남 해남에는 다른 건설회사에서 이 또한 7조 원을 들여 화력발전소를 지으려 한답니다.

 

 고흥도 해남도 전기가 모자라서 이곳에 발전소를 짓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전라남도 큰도시에서 쓸 전기가 모자라다고 여길 테고, 어쩌면, 부산이나 서울에서 쓸 전기를 이곳에서 뽑아내자고 여기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보면, 서울이나 인천이나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나 대전이나 울산이나, 이곳 큰도시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스스로 짓지 않습니다. 서울 초·중·고등학교 급식이나 대학교 구내식당 먹을거리는 ‘서울에서 흙을 일구어 얻은 곡식이나 푸성귀나 고기’로 마련하지 않습니다. 모두 ‘서울 아닌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 얻은 곡식이나 푸성귀나 고기로 마련합니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짓거나 길을 닦을 때에, 모래나 흙이나 자갈은 어디에서 가져올까요. 서울에서 얻을까요, 시골에서 가져올까요.

 

 지구환경이 크게 무너진다고 하면서, 쿠바에 있는 생태도시 아바나를 눈여겨본다고들 합니다. 쿠바 아바나가 얼마나 생태도시다운가는 제가 아바나를 찾아가지 못했으니 모릅니다만, 생태도시라 할 때에는 100% 자급자족을 하지 못하더라도 웬만큼 자급자족을 한다는 뜻입니다. 아바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먹는 밥을 아바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텃밭을 일구어 얻는다는 뜻입니다.

 

 시골땅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네 식구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식구들 깃든 전남 고흥이 아름다운 시골마을로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7조 원을 들여 화력발전소를 짓는다 할 때에, ‘특별지원 가산금’이 ‘건설비 5/1000에다가 세수입이랑 초기건설비 15/1000’라 합니다. 건설회사에서 내놓은 자료에 ‘3525억 원이 고흥군에 주어지’며 ‘고용창출 연인원 432만 명’이라고 밝힌다는데, 이 어마어마한 돈과 이 어마어마한 고용창출을 놓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문득 무척 궁금해요. 화력발전소를 짓는다면서 왜 3525억 원이나 고흥군에 주는가요? 화력발전소가 얼마나 ‘좋은(?)’ 시설이기에 3525억 원을 거저로 고흥군에 준다고 하나요? 고용창출 432만 명이라면, 발전소를 짓는 막일꾼 고용창출이 432만 명이나 된다는 뜻인가요? 고흥군 사람들은 거의 모두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데, 고작 7만 명이 될락 말락 하는 작은 군 모든 사람들이 몽땅 막일꾼으로 일하더라도 432만 명은 턱도 없는데, 1만 명 고용창출도 아닌 432만 명 고용창출이 된다 한들 무엇이 어떻게 발돋움할는지 궁금합니다.

 

 전남 고흥군에 짓는다는 화력발전소는 ‘나로도 우주센터’ 곁이요, 이곳 봉래면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입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나로도 우주센터부터 국립공원에 짓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지만 짓고야 말았습니다. 고흥군 봉래면 바닷가가 국립공원이라 한다면, 군과 정부는 이곳 국립공원을 어떻게 돌보고 어떻게 지켜야 걸맞을까를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를 지어 3525억을 거머쥐면, 이 돈으로 자연 터전을 지키는 데 쓸 마음인가요.

 

 아무래도, 해가 갈수록 전기가 모자라기에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싶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면 이렇게 걱정할 만합니다. 그러면, 왜 전기가 모자란지를 생각해야겠어요. 우리는 전기를 왜 이토록 많이 써야 하나요. 발전소를 더 지으려고 애쓰기보다, 전기를 덜 쓰고 석유를 덜 쓰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나요. 자가용을 줄이거나 자가용하고 헤어져야 하지 않나요. 자꾸자꾸 도시로 몰려들어 돈만 더 벌어들이는 삶길이 아니라, 내 사랑스러운 식구들 먹을거리부터 내 손으로 땀흘려 일구는 착한 삶길을 찾아야 하지 않나요.

 

 화력발전소를 짓는다는 7조 원은 7조 원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화력발전소에서 땔 석탄값을 생각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에서 나올 매연과 쓰레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를 짓는 중장비와 짐차가 내뿜을 배기가스를 생각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로 석탄을 실어나를 배가 오가며 바다에 흘릴 석유와 매연을 생각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가 한 번 서면 7조 원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전기를 얻는다며 들여야 하는 돈과 뒷치레가 너무나 큽니다. 7조 원이면 햇볕힘 얻는 전지판을 몇 개쯤 붙일 수 있을까요. 앞으로 화력발전소에 들일 자원값에다가 환경피해분담금을 햇볕힘 얻는 전지판을 집집마다 붙이는 쪽으로 쓴다면, 이 나라 대한민국은 얼마나 깨끗하며 환하게 빛나는 삶터로 거듭날까요. 고흥군이 눈먼 3525억 원이 아니라, 공장도 고속도로도 골프장도 기차역도 없이 정갈한 삶터로 이어가도록 더 힘쓴다면, 지구별 사람들은 쿠바 아바나만 생태도시로 바라보지 않고, 전남 고흥 또한 아름다운 생태마을로 여겨 숱한 사람들 발길이 찾아들어 저절로 지역살림을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돈에 홀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돈에 파묻히지 않으면 좋겠어요. 돈을 바라보며 우리 보금자리를 망가뜨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랑스레 살아갈 터전을 사랑스레 보살피면 좋겠어요. 사람은 종이돈이든 쇠돈이든 우걱우걱 씹어먹을 수 없고, 국을 끓여 먹지도 못해요. 사람은 맑고 기름진 흙에 씨앗을 심어 얻은 열매와 푸성귀와 곡식을 먹을 뿐이에요. 맑고 기름진 흙을 화력발전소로 더럽히고, 맑고 파란 바다를 화력발전소 매연과 쓰레기로 더럽힌다면,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어른들부터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요. 한국땅 깨끗한 삶터에는 끔찍한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끝없이 지은 다음, 깨끗하다 하는 머나먼 나라에서 거둔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값싸게 사들여서 돈을 치러 사먹어야 하나요. (4345.1.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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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6) 어제의 1 : 어제의 카레

 

.. “냉장고에서 약간 굳은 어제의 카레를 따뜻한 밥 위에 얹어, 녹여 가면서 먹는 거지.” ..  《아베 야로/조은정 옮김-심야식당 (1)》(미우,2008) 23쪽

 

 ‘약간(若干)’은 ‘조금’이나 ‘살짝’으로 다듬습니다. “먹는 거지”는 “먹지”나 “먹는 셈이지”나 “먹는단 말이지”로 손봅니다.

 

 어제의 카레를
→ 어제 만든 카레를
→ 어제 먹고 남은 카레를
→ 어제 미리 만든 카레를
→ 어제 해 놓은 카레를
 …

 

 만화영화 〈아따맘마〉를 한국말로 보다가 일본말로 보며 아래쪽에 뜨는 글을 읽으니, ‘한글로 옮긴 글’ 가운데 적잖이 ‘일본말’인 대목이 보입니다. 〈아따맘마〉뿐 아니라 다른 만화영화도 이와 비슷할 텐데, 사람들은 만화영화에 나오는 ‘한글로 옮긴 글’이나 ‘한국말로 옮긴 말’이 참말 한국말인지, 껍데기만 한국말인지, 일본말을 고스란히 옮긴 말인지를 살피지 못합니다. 살필 겨를이 없다 할 만하고, 살필 마음이 없는지 모르며, 살필 까닭을 못 찾는지 모릅니다.

 

 일본 만화책 《심야식당》을 한국말로 옮긴 책에서 읽는 글 또한, 이 글이 옹글게 쓴 한국말인가 아닌가를 헤아리는 사람은 몹시 드물거나 아주 드물거나 아예 없지 않으랴 싶어요. 아니, ‘심야’와 ‘식당’이라는 낱말을 이렇게 한글로 적바림하면 한국말이라 할 수 있는가를 돌아보는 사람은 있기나 할는지요.

 

 이제 ‘심야(深夜)’ 같은 한자말은 아주 익숙히 쓰는 한국말로 삼을 만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심야’는 남달리 쓸 만한 낱말은 아니에요. 그저 “깊은 밤”을 뜻할 뿐입니다. “깊은 밤”을 가리키는 한국말은 ‘한밤’이에요. 그러니까, 만화책 《심야식당》을 옳게 한국말로 옮기자면, 먼저 “심야식당” 아닌 “한밤식당”이어야 합니다.

 

 ‘식당(食堂)’ 같은 한자말 또한 널리 쓰는 한국말로 삼아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식당’이란 딱히 새롭거나 뜻깊은 낱말이 아니에요. 그저 “밥집”이나 “밥가게”를 가리킬 뿐입니다. 곧, 만화책 《심야식당》을 찬찬히 한국말로 헤아리자면, 바야흐로 “한밤 밥집”이나 “한밤 밥가게”인 셈이에요.

 

 어제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서 살짝 굳힌 카레
 어제 미리 해 놓고 냉장고에서 하루쯤 굳힌 카레
 어제 해서 냉장고에서 하루 굳힌 카레
 …

 

 오늘날 사람들은 ‘나이트’나 ‘미드나이트’ 같은 영어를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온갖 영어를 온갖 자리에 버젓이 씁니다.

 

 오늘날 사람들 말버릇은 먼 옛날부터 고이 이어졌다고 느낍니다. 먼 옛날부터 한국말 아닌 중국말을 이웃 한국사람이랑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버젓이 쓰던 흐름이 고스란히 이어졌으니, 지난날에는 중국말을 한국말인 듯 거들먹거리며 썼다면, 오늘날에는 영어를 한국말인 양 거들먹거리며 씁니다. 지난날에는 중국말을 마치 한국말을 하듯 아무렇지 않게 썼다면, 오늘날에는 영어를 꼭 한국말이라도 되는 듯 아무렇지 않게 써요.

 

 어떻게 살아가야 아름다운 내 나날인가를 생각할 때에, 내 삶과 넋과 말이 아름다이 꽃피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며 사랑할 때에 기쁜 내 하루인가를 돌아보아야, 내 삶과 넋과 말에 사랑이 깃드는 꿈을 어떻게 건사할 수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생각을 잃으니 말을 잃습니다. 사랑을 잊으니 말을 잊습니다. 생각을 찾으며 말을 찾습니다. 사랑을 빛낼 때에 말을 빛냅니다. (4345.1.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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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 피는 꽃은 작다. 나무에 달리는 꽃도 그닥 크지 않다. 그러나, 그림책에 나오는 꽃은 어쩐지 모두 너무 크다. 들판에서 바라보는 내 눈에 예쁘게 담기는 꽃들을 그림책에 담아 아이들하고 나눈다면 가장 즐거울 테지만, 그래도... 이 그림책은 어떠할까 하고 믿어 보고 싶다.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서천꽃밭 한락궁이
김춘옥 글, 한태희 그림 / 봄봄출판사 / 2011년 9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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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23
야마모토 켄조 글, 이세 히데코 그림, 길지연 옮김 / 봄봄출판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과 어떤 삶을 꾸리고 싶은가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29] 이세 히데코·야마모토 켄조,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봄봄,2011)


 어버이가 쓰는 말이 아이가 쓰는 말입니다. 어버이는 이녁이 아이였을 적에 이녁을 낳아 함께 살아가던 어버이가 쓰는 말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씁니다. 처음에는 이녁 어버이가 쓰던 말로 생각하고 꿈꾸며 살아가지만, 차츰차츰 이녁 스스로 부대끼는 삶터에서 듣고 보며 읽는 말마디로 생각하고 꿈꾸며 살아갑니다. 천천히 자라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을 무렵, 이제는 이녁 나름대로 새로 갈고닦은 말과 지난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을 이녁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이녁 아이는 앞으로 스스로 갈고닦을 말에다가 이녁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을 어우르면서 새로운 말삶을 돌보겠지요.

 

 어버이가 꾸리는 삶이 아이가 배우는 삶입니다. 어버이 자리에 선 나는 나 스스로 꾸리는 삶 그대로 아이한테 하나하나 가르칩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풀이랑 흙을 쓰다듬으며 밥이랑 옷이랑 집을 건사하는 매무새 모두 어버이가 아이한테 차근차근 가르칩니다. 씨앗을 심어 알뜰히 돌보는 삶을 가르칠는지, 노래와 놀이와 이야기 모두 판에 박은 울타리에 갇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삶을 가르칠는지, 죽은 글과 지식을 책이나 텔레비전으로 가르칠는지, 모두 나 스스로 판가름합니다.

 

 어버이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아이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살림을 꾸립니다. 아이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픈가를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제 어버이하고 사랑을 나눕니다.

 

 좋은 삶을 바란다면 좋은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삶을 이루는 길을 어떻게 갈고닦아야 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좋은 삶을 함께 꾸리는 나날은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목숨을 잇는 밥은 어떻게 마련해서 어떻게 차리는가를 생각합니다. 목숨을 돌보는 옷은 어떻게 지어 어떻게 입고 간수하는가를 헤아립니다. 목숨을 다스리는 집은 어떻게 세워 어떻게 돌보는가를 살핍니다.


.. 세발이는 이 길을 마음대로 돌아다녀. 그 누구도 세발이를 가둬 두지 못해. 어느 날은 거리를 온통 굴러다니기도 하지. 그러면 온몸이 쓰레기투성이가 돼 … 세발이는 마음이 아주 넓어.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가면 반갑다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그건 “같이 놀래?”라고 하는 인사야. “당장 꺼져!” 같은 말은 절대 안 해 ..  (4쪽)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다이 자라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동무를 사귀거나 이웃을 만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머리가 트거나 생각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일자리를 얻거나 돈을 벌 수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가슴속에 샘솟는 사랑을 아끼면서 스스럼없이 나누는 길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제 다리로 디딘 터전을 곱게 돌보는 길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목숨을 살찌우는 밥을 찾아야 합니다. 목숨을 북돋우는 옷을 알아야 합니다. 목숨을 빛내는 집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돈으로 되는 밥이 아니요, 돈으로 이루는 옷이 아니며, 돈으로 만드는 집이 아닙니다. 사랑도, 꿈도, 생각도, 이야기도, 어떠한 돈으로도 일구지 못합니다. 사랑도, 꿈도, 생각도, 이야기도, 바로 나 스스로 일구는 삶으로 빚습니다.

 

 아이 스스로 생각길을 여는 밑돌이 되기에 글을 가르칩니다. 아이 스스로 생각문을 여는 밑거름이 되기에 씨앗을 만져 심도록 합니다. 아이 스스로 생각날개 펴는 밑바탕이 되기에 실과 바늘을 놀려 옷을 짓도록 합니다. 아이 스스로 생각결 추스르는 밑자락이 되기에 온몸을 움직여 신나게 뛰고 달리고 구르고 노래하게 이끕니다.


.. 세발이는 킁킁거리며 내 몸 냄새를 맡아. 혹시 내 마음이 변하지 않았을까 살피는 거야. 간지러웠어 ..  (10쪽)


 누구나 내 보금자리가 배움자리입니다. 어느 아이나 ‘나를 낳은 어버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삶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아이라도 ‘나를 낳은 어버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좋다 하는 배움자리를 찾으려 한다면, 내 삶자리 또한 이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아주 훌륭하다 하는 배움자리가 있다면, 내 삶을 꾸리는 일을 이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또는, 내 삶을 꾸리는 일을 찾는 데에서 아주 훌륭한 배움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데에서 아주 좋은 배움자리를 일구어야 합니다.

 

 목숨을 누이는 집이고, 목숨을 싱그러이 보살피는 집입니다. 교통이 좋다거나 문화시설이 가까이 있다거나 하대서 마련하는 집이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살아갈 집이요, 언제나 내 몸을 추스르는 집이며, 언제라도 쉬고 일하며 살림을 이루는 집입니다.

 

 나무를 심어 쓰다듬는 집입니다. 씨앗을 뿌려 내 몸을 살찌울 밥을 얻는 집입니다. 아이들하고 나눌 사랑을 펼치는 집입니다.

 

 학습능력이나 수행평가란 무엇일까요. 행동발달이나 학력신장이란 무엇일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시험문제 쇠사슬을 덮어씌워 바보가 되도록 내몰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시험문제 가득한 책을 쑤셔넣어 멍청이가 되도록 만들까요.


.. 언제부터 이렇게 있었을까?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내가 몇 번을 부르자 세발이는 눈을 뜨고 나를 봤어. 초롱초롱한 눈이야 ..  (24쪽)


 야마모토 켄조 님 글에 이세 히데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봄봄,201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발이 셋인 개와 ‘말 없는 말을 나누’며 사귄 ‘나(주인공)’는 어버이를 잃고 다른 집에 맡겨집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미움을 받습니다. 삶을 누리지 못하고, 눈칫밥을 먹습니다. 꿈을 키우지 못하고, 내동댕이쳐집니다. 미움받고 버림받는 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삶을 누리지 못하고 눈칫밥을 먹는 내가 집(얹혀 사는 집)에서 무엇을 함께할 수 있을까요. 꿈을 키우지 못하고 내동댕이쳐지는 내가 마을에서 어떻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요.

 

 세발이는 세 발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두 발로 서서 살아갑니다. 다리 하나 잃어 외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다리 넷 멀쩡해 네 발로 살아가는 개와 고양이가 있습니다.

 

 몸뚱이는 멀쩡하다지만 마음이 메마르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뚱이는 다치거나 아프지만 마음이 너그럽고 따사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삶이란 어떠할 때에 삶이고, 사랑이란 어떠할 때에 사랑일까요. 나는 내 아이하고 어떤 삶을 함께하면서 어떤 사랑을 꽃피울 때에 아름다울까요.


.. 차를 탔어. 세발이가 나를 보았어. 나는 손을 흔들지 않았어. 수없이 눈으로 말했으니까 손을 흔들지 않은 거야 ..  (30쪽)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습니다. 내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 아이였던 나도 스스로 길을 찾습니다. 나를 낳은 어버이도 나를 낳기 앞서까지 아이로 살아가며 길을 찾습니다. 서로서로 삶을 함께하면서 무언가를 가르치고 무언가를 배우며 무언가를 나란히 들여다봅니다.

 

 그림책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에 나오는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즐겁거나 아름다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그림책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에 나오는 들개는 어떻게 지내야 즐겁거나 아름다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어버이 잃은 나를 맡은 다른 집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서로 어떻게 바라보며 삶을 꾸려야 즐겁거나 아름다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외톨이로 지내는 나를 바라보는 학교와 마을 동무들은 서로서로 어떻게 어깨동무해야 즐겁거나 아름다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놀림받고 따돌림받고 미움받는 세발이인데, 이 세발이를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은 왜 놀림과 따돌림과 미움으로 세발이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나는 아이들과 좋은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옆지기와 좋은 사랑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사랑이 자라는 터가 되기를 꿈꿉니다. 우리 삶자리는 사랑이 열매를 맺는 누리로 아름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4345.1.27.쇠.ㅎㄲㅅㄱ)


―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이세 히데코 그림,야마모토 켄조 글,길지연 옮김,봄봄 펴냄,2011.3.10./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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