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마당 기기

 


 바람이 꽤 세게 불지만 햇살은 더없이 포근한 낮. 아이 어머니가 둘째를 데리고 섬돌에 앉아 해바라기를 한다. 둘째는 햇살을 받고 어머니 품에 있다가는 아래로 구부정하고 엎드리더니 볼볼 기며 마당을 누빈다. 이것 만지다가 기고, 저것 만지며 다시 기고. 후박나무 그늘자리는 아직 겨울이니까 춥다. 아이도 느꼈을까. 그늘자리에서 기다가 햇살 나는 쪽으로 나오더니 다시 어머니 쪽으로 긴다. 용한 녀석. 이 마당이 시멘트 아닌 흙이었음 훨씬 좋았겠지. 나중에 이 시멘트 모두 걷어내고 싶다. (4345.2.20.달.ㅎㄲㅅㄱ)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주 2012-02-20 11:49   좋아요 0 | URL
기는 자세가 안정되어 보이네요^^
속도가 제법 나겠는걸요!ㅋㅋ

파란놀 2012-02-21 14:36   좋아요 0 | URL
아주 빨라서 참... 요 녀석을.... -_-;;;

책읽는나무 2012-02-20 17:13   좋아요 0 | URL
가속도가 붙기전에 무릎에 아플리케를 달아주셔야 할 듯해요.
시멘트 위를 기려면...음~ 가죽 아플리케를 추천하옵니다.
바지 무릎마다 동그란 훈장 달겠는데요.ㅎㅎ
예전 울애들도 윗옷은 멀쩡한데 바지가 죄다 무릎부분이 너덜너덜했었어요.

파란놀 2012-02-21 14:35   좋아요 0 | URL
무릎에 대는 건가 보죠?
시멘트 아닌 흙바닥을 기도록 해야지요~~ ^^;;

순오기 2012-02-21 02:53   좋아요 0 | URL
어머나 어머나~~~~ 산들보라!!
기저귀는 펄럭이고 하늘엔 흰구름 둥둥~ ^^

파란놀 2012-02-21 14:35   좋아요 0 | URL
오늘은 눈이 날려서
빨래를 걷었네요 ㅠ.ㅜ
 
히스토리에 Historie 1
이와키 히토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41] 이와아키 히토시, 《히스토리에 (1)》

 


 나는 지구가 동그랗게 생겼다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학교에서 ‘지구는 동그랗다’ 하고 가르치지 않았다면 지구가 동그란 줄 생각하지 않으며 살았지 싶습니다. 그렇다고 ‘지구는 네모낳다’ 하고 생각하는 일 또한 없으리라 느낍니다. 지구라는 곳이 동그랗든 네모낳든 그닥 대수롭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두 발을 디디며 누리는 삶을 생각하지, 지구 크기나 모양을 살피지 않을 테니까요.

 

 학교에서 ‘지구는 동그랗다’ 하고 가르칠 때에 ‘음, 그렇겠구나. 네모낳지는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판판하지 않고 둥그스름하다’는 느낌이 어떠한가 하고 궁금했습니다. 얼마나 널따란 땅덩어리이기에 둥그스름한 땅거죽이 둥그스름하다고 느끼지 못하며 지내는가 싶어 궁금했습니다. 지구별 깊은 곳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한복판을 바라보며 무엇이든 누구이든 곧게 선다고 하는데, 굴리는 힘이나 구르는 힘이나 어떻게 흐르는가 하는 대목이 궁금했어요. 바람에 부딪는 힘, 바람이 없을 때에 흐르는 힘, 햇살로 스며드는 빛과 따스함, 유리나 비닐을 한 겹 대었을 때에 따스함과 빛 말고 볕을 얼마나 받지 못하는가 하는 느낌, …… 이모저모 더 깊고 넓게 헤아리고 싶었어요.


- “하지만 이민족이라 치더라도 자넨 노예엔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군.” “하하하! 그건 좀 차별적 발언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주성을 선호하는 그리스인에 비해 다른 민족 쪽의 노예 성향의 인간이 많은 건 확실할 거네.” “ 당연합니다. 이건 차별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인력을 쓰는 분업제도예요.” “물론 노예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 불과 며칠 간의 여행에서조차 짐을 질 자가 없으면 곤란하니까.” (20∼21쪽)

 


 학교에서 ‘지구는 동그랗다’ 하고 가르칠 때에는 ‘지구는 동그랗다. 이런 줄 알아.’ 하고는 넘어갑니다. 언제나 조각조각 나눈 지식으로만 가르치고 끝납니다. 나는 이런 조각지식이 내키지 않습니다. 학교에 다니던 때이든 학교를 마친 뒤이든, 조각난 지식이 아닌 오래도록 돌아보는 삶으로 헤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학교 안쪽에서든 바깥쪽에서든, 삶을 들여다보도록 놓아주지 않습니다. 조각지식에 매달리도록 내몹니다. 조각지식에 사로잡힌 채 온삶을 사랑하며 살아갈 길을 생각하도록 풀어놓지 않아요.

 

 나는 내가 살아가는 곳이 지구라는 ‘별’이건 아니건 대수롭다고 느끼지 않아요. 지구‘별’이면 어떻고 지구‘마을’이면 어떤가 하고 생각해요. 내가 숨을 쉬고 밥을 먹으며 잠을 자는 이 하루가 대수롭다고 느껴요. 어떻게 이 목숨을 건사하고, 내 몸뚱이를 이루는 크고작은 세포와 핏덩이와 물방울은 저마다 어떠한 목숨인가 하는 대목이 궁금해요. 나는 커다란 덩이 하나인 목숨이면서, 내 한 목숨 이루는 작은 목숨들이 얼마나 많은가 궁금합니다. 내가 느끼는 내 목숨이란 큰 덩이 하나일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 큰 덩이를 이루는 작고작은 목숨 하나로 살다가 이렇게 큰 덩이 하나로 바뀌었는지 모른다고 느껴요.

 

 이를테면, 뼈마디를 이루는 작은 점 하나가 나일 수 있습니다. 꾸덕살이 되다가 벗겨지는 살점 하나가 나일 수 있습니다. 길게 자라다가 똑똑 끊어지는 손톱 끄트머리가 나일 수 있습니다. 길게 자라다가 빠지는 머리카락 한 올이 나일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에도 온갖 목숨이 끝없이 깃들 테지요. 머리카락 한 올에 깃든 작디작은 목숨도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면 더 너른 목숨이 수없이 숨쉴 테지요. 그저 사람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뿐이에요. 조각난 지식으로는 헤아리지 못할 뿐이에요.

 

 거꾸로, 지구라는 별로 살핀다면, 지구라는 별은 너른 누리에서 아주 조그마한 점입니다. 어쩌면, 내 머리카락 한 올에 깃든 아주 조그마한 점 같은 목숨이 지구별일 수 있어요. 곧, 내 머리카락 한 올에는 지구하고 똑같은 별이 깃들어 싱그러이 살아갈는지 몰라요. 수십 억이라는 해는 큰 몸뚱이 하나로는 너무 기나긴 해라 할 수 있지만, 머리카락 한 올로 치면 아무것 아닌 아주 짧은 해일 수 있어요.

 


- “괜찮을까? 서두르지 않으면…….” “아뇨! 여기선 서두르지 않고 당당하게 가야 해요!¨ ‘서투르게 잘못 움직이면 오히려 위험해.’ (68쪽)


 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딱히 누가 나한테 이런 생각을 심었다고 할 만한가 잘 모르나, 나는 어린 나날부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이란 곧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시험 문제 답을 찾는 일은 생각이 아닙니다. 흩어진 지식조각을 꿰맞추는 일입니다. 조각을 찾거나 맞춘다 해서 생각을 한다 할 수 없습니다. 가지런히 늘어놓을 뿐이니까요.

 

 생각하는 일이란 짚과 흙을 물어 집을 짓는 제비하고 눈을 마주치며 ‘너는 오늘 어떻게 살았니?’ 하고 마음으로 물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고 느껴요. 파란 빛깔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너는 오늘 어떤 물방울을 그러모아 비를 뿌리려 하니?’ 하고 마음으로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라고 느껴요.

 

 풀잎을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말을 겁니다. 꽃잎을 콧잔등으로 살살 부비며 말을 겁니다. 개미를 손등에 올려놓고 말을 겁니다. 씀바귀를 냠냠 씹으며 씀바귀가 흙에 뿌리내리며 보낸 나날을 헤아립니다. 젓가락을 손에 쥐며 어떤 쇠붙이가 어떤 땅속에 묻혔다가 누가 캐고 다듬고 빚어 이 젓가락 모양이 되었을까 하고 돌이킵니다.

 


- ‘당시 우리 집 정도의 재력이면 가정교사를 몇 명 붙여 수업을 집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 히에로뉴모스의 생각은 달랐다. 형 히에로뉴모스도 평범한 학교에 다닌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좋다. 집에는 ‘도서실’도 있고,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글을 읽을 수 있다. 가장 마음 편안한 상태에서 세계가 펼쳐진다. 심지 굳은 걸음걸이……. 중요한 것이다. 가정교사가 매일 오게 되면 망가지고 만다.’ (132∼133쪽)


 이와아키 히토시 님 만화책 《히스토리아》(서울문화사,2005) 첫째 권을 읽습니다. 기원전 사람 이야기를 다룬다는 만화책인데, 나로서는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이 ‘기원전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예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나처럼 숨을 쉬고 물과 바람을 마시며 밥을 먹다가 새근새근 잠드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나는 오늘 숨을 쉽니다. 이이는 어제 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가 더 숨을 쉬지 않을 먼 앞날 숨을 쉬겠지요.

 

 만화책 주인공이 걸었던 길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고 되뇝니다. 내가 오늘 밟은 땅은 어떤 느낌으로 내 온몸으로 스며들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앞으로 디딜 곳은 어떠한 삶과 사랑과 사람이 얼크러진 빛줄기 서릴까 하고 꿈꿉니다.

 


- “저번에도 말했잖니! 저런 사람들하고는……, 핫! 살아가는 세상이 다르니까 쉽게 말을 섞으면 안 된다고!” “그래요? 모두 좋은 사람들이던데.” “어머나, 얘가!” “그런데, 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었니?” “응, 아저씨들이 먼저 말을 걸어 왔는데, 페르시아의 얘기 몇 개 해 뒀더니 아주 좋아하더라구요.” (154∼155쪽)


 생각하는 사람일 때에 오늘을 느낍니다.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어제를 느낍니다.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모레를 느낍니다. 오늘과 어제와 모레가 흐르는 결을 살피고, 오늘과 어제와 모레가 어우러지면서 태어나는 내 삶을 받아들입니다.

 

 어떤 손재주와 무슨 글솜씨를 뽐내는 생각이 아닙니다. 삶을 밝히는 생각입니다. 사랑을 깨닫는 생각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생각입니다.

 

 내 이름을 드날리려는 생각이 아닙니다. 내 살붙이를 찬찬히 굽어살피고, 내 동무를 가만히 어루만지며, 내 이웃을 따사로이 어깨동무하는 생각입니다.

 

 좋은 꿈을 생각합니다. 내 온몸에 차근차근 아로새길 좋은 사랑을 생각합니다. 내 마음으로 빚을 착한 삶 참다운 길 아름다운 터를 생각합니다. 역사란, 어느 이름난 사람들 발자국일 수 없습니다. 역사란, 생각하는 사람들 꿈을 그러모아 두고두고 대물림하는 좋은 이야기밥입니다. (4345.2.20.달.ㅎㄲㅅㄱ)


― 히스토리에 1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오경화 옮김,서울문화사 펴냄,2005.4.25./4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똥별 책읽기

 


 늦은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고 칭얼노래 부르는 두 아이를 데리고 뒤꼍으로 나와 ‘이렇게 깜깜하고 조용한 밤, 너희들 코 자야지. 자, 하늘에 있는 별을 좀 보렴.’ 하고 이야기하던 이레쯤 앞서 별똥별을 본다. 어어, 별똥별이네, 별똥별을 보면 마음속으로 한 가지를 빌라 했는데, 하고 생각할 무렵 스윽 하고 멧등성이 너머로 사라진다.

 

 그래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해 주셔요.’ 하는 한 마디를 마음속으로 빈다. 짧은 동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한 가지는 오직 이 하나 아닌가 싶다. 이도 저도 더 떠올리지 못한다. 아마, 다른 막바지에서도 이렇게 빌지 않을까. 국민학교 사학년 때였가, 고향마을 인천에서 저녁나절 어머니 심부름으로 가게에 다녀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별똥별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에도 ‘누군가 한 사람을 사랑하게 해 주셔요.’ 하는 한 마디를 빌었다.

 

 아이들은 별똥별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 혼자 보았다. 머잖아 아이들도 별똥별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 어머니도 곧 별똥별을 보리라 생각한다. 우리 시골집 밤하늘에는 별이 촘촘히 뜨니까, 이 너른 밤하늘을 등에 지고 살다 보면 별똥별이 예쁘게 찾아들리라 믿는다.

 

 곰곰이 떠올리면, 군대에서 보초를 서던 깊은 밤, 한 시간 사이 별똥별을 일곱이나 본 적 있다. 하늘이 넓게 트이고 뭇별로 반짝이는 곳이라면 어렵잖이 별똥별을 만난다고 느낀다. 하늘이 좁고 전깃불 번쩍이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별똥별이 못 찾아들리라 생각한다. 달도 별도 없는데 별똥이 어떻게 있을까. 달도 별도 생각하지 않는데 별똥을 어찌 생각할까. 달도 별도 잊는데 별똥이 왜 찾아올까. 달도 별도 느끼지 않는데 별똥을 누가 느낄까.

 

 별똥별 바라보며 가슴이 찌릿 울린 적 있는 사람이라면 밤하늘 그림을 그릴 때에 한쪽 자리에 조그맣고 예쁘게 별똥 지나가는 발자국 담을 테지. 별똥 발자국 그리고 싶어 일부러 밤하늘을 그림으로 빚겠지. (4345.2.20.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서관에 간 사자 웅진 세계그림책 107
미셸 누드슨 지음, 홍연미 옮김, 케빈 호크스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가 어떤 책을 어디에서 읽나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2] 케빈 호크스·미셸 누드슨, 《도서관에 간 사자》(웅진주니어,2007)

 


 책은 알맹이를 읽습니다. 껍데기를 읽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회사원일 수 있고, 흙일꾼일 수 있으며, 대통령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깡똥치마를 입을 수 있고, 구멍나고 헐렁한 바지를 입을 수 있으며, 알몸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선 채 읽을 수 있고, 누워서 읽을 수 있으며, 앉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일본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버마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책을 읽습니다. 원어민강사가 책을 읽습니다. 실업자가 책을 읽습니다.

 

 양복을 빼입은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한 달쯤 빨래하지 않은 옷을 걸친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학교옷 입은 고등학생이 책을 읽습니다.

 

 책은 누구한테나 열립니다. 이 사람한테는 열리고, 다른 사람한테는 안 열리는 책이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가멸찬 사람도 똑같은 책값을 치러 책 한 권 장만합니다. 가난한 사람도 가멸찬 사람도 똑같은 책을 똑같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습니다.


.. 어느 날, 도서관에 사자가 왔어요. 사자는 곧바로 대출 창구를 지나 자료실로 들어갔어요 ..  (5쪽)

 


 책은 줄거리를 읽습니다. 눈으로 글자를 좇으며 읽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읽든, 누구나 책은 줄거리를 읽습니다. 줄거리를 읽는 책이기 때문에, 책을 손에 쥔 사람마다 다 달리 받아들입니다. 저마다 살아온 나날에 비추어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저마다 쓸모와 찾을모가 다른 만큼, 같은 책 같은 줄거리라 하더라도, 이 줄거리를 가슴으로 삭이는 느낌과 맛이 다릅니다.

 

 아마, 누군가는 독후감이나 보고서 숙제 때문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삶을 밝히는 눈을 북돋우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자격증을 따거나 수험 공부 때문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그저 즐거워서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지식을 한껏 쌓으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파헤치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이름난 사람이 썼기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마음에 환히 켜지는 등불을 깨닫기에 읽겠지요.

 

 책방에 서서 책을 읽습니다. 커다란 새책방 한쪽에 서서 책을 읽으면 티가 나지 않습니다. 작은 헌책방 한쪽에 쭈그려앉아 책을 읽어도 티가 나지 않습니다. 새책방에서는 새로 나온 책을 읽으나, 오래도록 안 팔린 채 꽂히기만 한 책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는 예전에 판이 끊어진 책을 찾아 훑기도 하지만,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으나 누군가 즐거이 사서 읽다가 내놓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 아무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어요. 도서관 규칙에 사자에 대한 것은 없었으니까요 ..  (9쪽)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돌아보면, 책을 손에 쥘 겨를조차 없기 일쑤인데, 아이들 눈빛이 좋은 책이고, 아이들 손짓 발짓이 멋진 책이며, 아이들 목소리가 해맑은 책이곤 합니다. 이 땅뿐 아니라 온누리 수많은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고 돌보고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면서 둘도 셋도 없이 어여쁜 ‘아이책’을 읽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자락 논밭을 일구는 흙일꾼은 호미와 낫과 쟁기를 부려 손발과 얼굴 모두 흙빛으로 바뀌는 나날을 보내며 ‘흙책’과 ‘풀책’과 ‘하늘책’을 읽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가서 고기를 낚는 바다일꾼은 ‘물고기책’과 ‘바다책’을 읽으리라 생각해요.

 

 종이에 글로 담는 책이란, 이 땅 숱한 이야기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점 하나라고 느낍니다. 많디많은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 간추려 종이에 글로 담는다고 느낍니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듭니다. 종이로 바뀌는 나무는 나무로 숲에서 살아가는 동안 저마다 다른 숲삶을 알알이 아로새깁니다. 책장을 넘겨 종이 내음을 맡을 때에는 잉크 내음이나 화학처리 내음이 난달지 모르지만, 이 화학약품 냄새 밑바닥에는 흙에 뿌리내리고 햇살을 받아먹으며 잎사귀 푸르게 늘어뜨리던 우람한 나무에 아로새긴 기나긴 나날 이야기에 서린 냄새가 깔려요.

 

 시골 숲에서 책을 읽으면 시골 숲바람을 맞으며 책 알맹이를 받아먹습니다. 도시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 깜깜한 땅밑 시끄러운 쇠바퀴 소리에 흔들리면서 책 알맹이를 받아먹습니다. 아이들 재우고 나서 모로 누워 책장을 넘기면 새근새근 숨소리 들으며 책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시외버스에 앉아 책장을 넘기면 멀미 나며 어지러운 머리로 책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 사실, 사자는 도서관에 딱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사자는 커다란 발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도서관을 걸어 다닐 수 있었어요. 이야기 시간에는 아이들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등받이가 되어 주었지요. 게다가 이제 도서관에서는 절대 으르렁거리지 않았어요 ..  (18쪽)

 

 


 케빈 호크스 님이 그림을 그리고 미셸 누드슨 님이 글을 쓴 그림책 《도서관에 간 사자》(웅진주니어,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간 사자》에 나오는 ‘사서 맥비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규정·규칙·법규를 따집니다. 언제나 무슨무슨 규정을 찾고, 노상 어떤저떤 규칙을 헤아립니다.

 

 관리직이라는 자리라면 어쩔 수 없을까요. 공무원이라는 자리라면 어찌할 길이 없을까요.

 

 도서관에는 사자라고 못 들어가란 법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라고 도서관에 가지 말란 법 없습니다. 열여섯 살에 아기를 낳은 어머니라서 도서관에서 가로막을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대서 도서관을 드나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누구나 도서관에 드나들되, 책 하나에 깊이 마음을 쏟는 다른 사람들을 헤살 놓지 않으면 돼요. 침을 묻히며 책장을 넘긴다든지, 책장을 몰래 오린다든지, 거칠게 책장을 뒤적인다든지 하는, 애먼 짓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호젓하게 책을 즐길 수 있으면 돼요. 나와 내 아이와 내 아이가 낳을 아이가 오래오래 책 하나 두고두고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라고 여기는 매무새라면 돼요.


.. 사자는 그 뒤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규칙을 어겼으니까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거든요. 사자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문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맥비 씨는 눈치 채지 못했어요. “관장님, 메리웨더 관장님! 사자가 규칙을 어겼어요. 사자가 규칙을 어겼습니다!” ..  (26쪽)

 


 ‘메리웨더 관장’은 사자가 규칙을 어긴 일이 없으니 괜찮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굳이 규칙을 따지지 않더라도 사자가 반가우면 도서관에서 받아들일 노릇입니다. 규칙을 어겼더라도 사자가 좋으면 규칙을 고칠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이 그리 크지 않아 새로운 책을 더 받아들일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되거든요. 묵은 책은 버리고 새로운 책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도서관을 늘릴까요. 책꽂이 사이사이에 새 책꽂이를 놓을까요. 책꽂이 위에 새 책꽂이를 붙이고 사다리를 놓을까요. 도서관 둘레에 다른 도서관 하나를 열어 새로운 책은 그곳에 둘까요.

 

 도서관 손님으로 사자를 받아들이는 규칙을 마련해도 되겠지요. 규칙이란 아예 없애고 서로 즐거운 책삶을 누리자고 할 수 있겠지요. 책은 누구한테나 책이니까요. 책에 깃든 넋은 누구한테나 좋은 씨앗이니까요. 책으로 나누려는 이야기는 누구한테나 사랑이니까요. (4345.2.19.해.ㅎㄲㅅㄱ)


― 도서관에 간 사자 (케빈 호크스 그림,미셸 누드슨 글,홍연미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7.2.15./9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自然紀行
강운구 글.사진 / 까치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이야기 찾아나서는 사진마실
 [찾아 읽는 사진책 78] 강운구, 《자연기행》(까치글방,2008)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면서 저절로 별자리를 그릴 수 있습니다. 별자리 이름이나 크기나 모양이나 잘 모르지만, 이모저모 모인 별을 뭉뚱그릴 만하다고 느낍니다. 따로 무슨무슨 자리라고 알지 못하더라도 서로서로 어떻게 엮으면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나 밤하늘 뭇별을 이 나라 어디에서나 올려다볼 수 있지는 않습니다. 깊은 시골자락에 깃든 집에서 올려다봅니다. 읍내나 시내에서는 뭇별을 올려다보기 어렵습니다. 커다란 도시로 나가면 달빛을 느끼기조차 어렵습니다.

 

 어릴 때 인천에서 살아가며 별자리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책을 읽은 적 있지만, 막상 밤하늘 뭇별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없었어요. 밤하늘 별은 올려다보지 못하며 별자리 책만 뒤적인들, 별이고 별자리이고 밤하늘이고 알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강운구 님이 내놓은 사진책 《자연기행》(까치글방,200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강운구 님은 “우리 나라의 식물사전에는 수선화가 화훼식물로 분류되어 있다. 그것은 야생의 수선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주 남녘 대정 땅의 수선화는 엄연히 야생으로 여러 대를 이어오고 있다(14쪽).” 하고 말합니다. 식물사전이든 식물도감이든 적잖이 다리품을 팔지 않으면 엮을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이 땅 골골샅샅 누비며 이 같은 사전과 도감을 내놓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미처 못 디딘 땅이 있을 테고, 아직 살피지 못한 꽃과 풀과 나무가 있겠지요. 어느 꽃은 아주 드물게 아주 좁은 데에서만 피고 질 수 있으니까요. 어느 꽃이 피고 지는 아주 조그마한 터에 때맞추어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면 어느 꽃이 있는 줄조차 모를 수 있으니까요.

 

 

 

 망원경이 있으면 도시 한복판에서라도 밤하늘 별을 살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막상 도시 한복판에 깃들면서 밤하늘 별을 느끼려 하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도시 한복판이란 밤별이랑 동떨어진 곳이니까요. 경제성장과 경제개발에 온넋 쏟는 도시 한복판이지 않겠어요. 더구나, 도시 한복판에서는 밤별뿐 아니라 낮꽃 또한 동떨어진 곳이로구나 싶어요. 낮에 마주할 나무하고도 풀하고도 새하고도 동떨어진 곳이겠지요.

 

 “저 자연의 품속은, 자연의 것은 더 아름답다. ‘자연을 보호하자’라고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연을 보호할 만한 능력이 물론 없다. 그것을 있는 자리에 그대로 두고 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자기 집, 자기 방으로 못 옮겨서 안달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한 해에 두어 번, 들이나 산의 숲에 가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곳의 모든 꽃은 그 사람의 것이다(33쪽).” 하고 읊는 말마따나 자연 터전은 나날이 파먹힙니다. 곰곰이 살피면, 사람들은 자연을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파먹으면서 경제를 살찌웁니다. 자연을 파헤치면서 돈벌이를 합니다. 자연을 망가뜨리면서 국립공원을 세웁니다. 국립공원 아닌 데는 마음껏 무너뜨리고, 국립공원조차 신나게 어지럽혀요. 강운구 님이 “헉헉대며 꼬박 4시간은 올라야 이르렀던 노고단이 지금은 시암재의 주차장에서 쉬엄쉬엄 30분쯤 걸으면 된다. 망가진 덕택이다(198쪽).” 하고 외치지 않더라도, 이 나라 사람 누구나 한껏 망가진 한국 자연을 찾아볼 수 있어요.

 

 이리하여,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꿀풀이나 다른 꽃을 따서 향기로운 꿀을 빨아먹곤 했었다(38쪽).” 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옛날 옛적 어른들 이야기처럼 됩니다. 오늘날 아이들로서는 꿀풀이든 다른 꽃이든 따며 놀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들판과 멧자락과 냇가와 바닷가에서 마음껏 하루 내내 뒹굴거나 뛰놀도록 풀어놓는 어른부터 없어요. 아이들이 두어 살만 되어도, 아니 한두 살만 되어도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넣잖아요. 아이들은 보육원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지잖아요.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때부터 ‘대학입시 수험생’처럼 되어 영어도 배우고 한자도 배우며 갖은 지식을 머리에 꾹꾹 눌러담아야 하잖아요.

 

 

 

 똑똑해지는 오늘날 아이들이 아닙니다. 지식만 많이 갖추는 오늘날 아이들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고, 이웃을 아끼는 넋이란 없으며, 나와 동무를 사랑하는 꿈이란 없어요. 곧,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름을 불러 준다고 다 나의 꽃이 되는 것은 아니다(51쪽).” 하는 말처럼, 아이들 스스로 누구를 어떻게 왜 좋아하거나 사랑하면서 기쁜 나날인가를 느끼지 못하고 맙니다. 아이들 스스로 삶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길하고는 너무 동떨어지고 맙니다.

 

 아름다이 살아갈 나날인데 아름다이 품을 꿈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이웃인데 사랑스레 북돋울 얼을 가누지 못합니다. 착하게 꾸릴 살림인데 착하게 보듬을 손길을 느끼지 못합니다.

 

 강운구 님이 내놓은 사진책 《자연기행》은 한국땅 골골샅샅 두 다리로 밟으며 안쓰러이 느낀 이야기를 다룹니다. “식물사전에 올라 있는 이 풀(개불알풀)의 호적명 대신에 시골에서는 ‘봄까치꽃’이라고 부른다(65쪽).”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꽃 한 송이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아름답고, 멀리 물러서서 무리를 보면 화려한 빛깔이 눈부시게 아름답다(8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구보다 강운구 님한테 아름다울 이야기를 찾아나섭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강운구 님 스스로 알아주겠다 생각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만나며 얼싸안습니다.

 

 나한테 아름답게 스며들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내 눈으로 밤하늘 올려다보며 뭇별을 곱게 사랑할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내 손으로 들판 억새를 쓰다듬으며 싱긋 웃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호미를 쥐어 흙을 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씨앗 한 알 건사하며 내 사랑을 듬뿍 쏟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글 한 줄 쓰면서 내 꿈을 살포시 실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진 한 장 찍으면서 내 하루를 고맙게 여길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그런데, 사진책 《자연기행》은 여러 매체에 실은 글을 그러모은 탓인지, 똑같은 이야기를 자꾸 되풀이합니다. 똑같이 되풀이하더라도 곰곰이 되새길 만하다 볼 테지만, 이 작은 책에 미처 싣지 못한 더 너른 이 나라 자연마실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⅜쯤 차지하는 되풀이하는 이야기는 덜고 새 글과 새 사진을 담으면 얼마나 살뜰하고 푸진 이야기책이 되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4345.2.19.해.ㅎㄲㅅㄱ)


― 자연기행 (강운구 글·사진,까치글방 펴냄,2008.7.10./15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