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한테 학교는 마땅하지 않아요

 


 첫째 아이가 다섯 살을 누립니다. 첫째 아이는 돌 무렵부터 둘레 어른들한테서 ‘보육원’이나 ‘유아원’에 가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만, 아이는 이런 소리를 들어도 스스로 보육원이나 유아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그저 어른들이 저한테 말을 거는구나 하고 느꼈겠지요. 이제 다섯 살로 접어들고 보니, ‘어린이집’에 갈 때가 되었다는 소리를 자꾸 듣습니다. 시골에서는 나라에서 돈을 다 대니 아주 마땅하게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시골에서는 보육원이든 유아원이든 어린이집이든 돈이 들 일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딱히 돈이 들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  다 나라에서 돈을 댈 테니까요.

 

 나와 옆지기는 학교라는 곳이 마땅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이나 보육원이나 마땅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돈을 대는 보육원이나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이 ‘숲 배움터’라면, 아이더러 놀이 삼아 다니라고 해 볼는지 모릅니다. 나라에서 뒷배한다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한테 흙일과 물일을 찬찬히 가르치면서 집일을 일깨운다면, 곰곰이 생각해 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어린이집이든 어느 학교이든, 아이한테 지식만 집어넣습니다. 어느 배움터이든 배우는 터 노릇을 한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이한테는 마땅히 배우는 터여야 하고 살아가는 터여야 합니다. 아이들 보금자리는 삶터이자 배움터이고 나눔터입니다. 아이들 학교는 배움터이면서 삶터이고 나눔터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둘레 어른이 일하고 놀이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배우고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둘레 어른이 여느 자리에서 으레 쓰는 말마디를 귀기울여 듣고 하나하나 따라하며 배웁니다. 아이들은 여느 때 여느 사랑을 나누는 어버이와 둘레 어른 삶을 받아먹으며 저희 꿈과 이야기를 빚습니다.

 

 예방접종이든 영어이든 급식이든 지식이든, 나와 옆지기가 바라볼 때에 오늘 이 나라 어린이집이나 학교는 아이들한테 너무 끔찍한 불지옥이라고 느낍니다. 사람답게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가는 길을 아이들한테 하나도 안 보여줄 뿐더러 못나고 모진 도시 돈벌이로만 내모는 어린이집이나 학교라고 느껴요. 적어도 인권이나 평화나 평등조차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는 옳게 느끼며 배울 만하지 않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 이런저런 체험을 시키거나 학습을 시키거나 교육을 시키는 일을 못마땅하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며 모든 일을 스스로 겪으며 찬찬히 받아들여 배우니까요. 어버이인 나부터 스스로 옳게 살아갈 길을 찾고, 착하고 참다이 일하는 길을 살피고, 곱게 꿈꾸고 사랑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껴요. 이 길에서 아이들과 나란히 웃고 울면서 좋은 삶을 빚어야 한다고 느껴요.

 

 첫째 아이는 가시내로 태어나고 둘째 아이는 사내로 태어납니다. 둘째가 사내로 태어났을 때 ‘이 아이는 앞으로 군대를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옆지기는 ‘군대에 가지 않도록 어버이로서 온힘을 다해 애써’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끌려가야 한다면 군대에서 죽임과 괴롭힘과 주먹다짐에 물들거나 휩쓸리지 않고 따스한 사랑과 평화를 나눌 줄 아는 아이로 마음을 북돋우도록 힘써’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나는 옆지기 말을 듣고 적이 마음을 놓았어요. 사내를 낳은 어버이로서 할 몫은 ‘아이를 군대에 떠밀기’여서는 안 되거든요. 삶과 사랑과 사람 아무것도 없는 군대는 죽음수렁이거든요. 끔찍한 무기와 엉터리 계급과 바보스런 신분과 무시무시한 주먹다짐과 거친 말들이 춤추는 군대는 ‘사람 죽이는 솜씨’를 모든 사내한테 길들이는 못난 쓰레기터입니다.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데에 써야 할 돈으로 무기를 만들고 무기를 지키며 무기를 움켜쥐도록 하는 슬픈 데가 군대이거든요.

 

 너무 마땅하지 않으니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지 않습니다. 너무 마땅하지 않으니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습니다. 너무 마땅하지 않으니 아이가 군대에 끌려가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너무 마땅하기에 가방끈이나 자격증 같은 굴레에 아이들이 얽혀들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어느 꽃보다 일찍 피어나며 봄을 부르는 봄까치꽃처럼 아이들이 맑고 환하며 어여삐 꿈과 사랑을 빚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아주 마땅하며 매우 아름다운 삶길을 스스로 고이 보살피면서 한결같이 빛나는 넋이기를 빕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아이들과 복닥이고 싶어요.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맡긴 채 돈 많이 벌러 바깥으로 나다니고 싶지 않아요. (4345.2.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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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2-24 12:18   좋아요 0 | URL
님은 제 후배랑 비슷한 생각과 삶을 사시는 것 같으세요
제 후배도 시골이라 하기엔 서울과 가까운데 살지만 시골살이를 하며 집에서 아이를 가르쳐요.
학교도 안 보낼 생각이라고 하네요 아직까지는.
그 용기가 참 대단하다 싶어요
제도권 교육이 맘에 안들지만 거부한다는 것은 어쩌면 용기가 필요해서요.
제 후배도 돈에 허덕이면서도 그렇다고 아이를 맡기고 돈벌러 가고 프지 않다더라고요
아니 절대 그렇게 안한다 하더라고요.
부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전 그러지 못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파란놀 2012-02-24 12:52   좋아요 0 | URL
용기나 믿음은 아니에요.
사람마다 사랑을 다르게 느끼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제도권학교에 아이들을 그냥 보내면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펼치거나 나눌 수 있어요. 누군가는 제도권학교에 아이들이 젖어들지 않으면서 맑은 꿈과 밝은 사랑을 꽃피우기를 바랄 수 있어요.

다만,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든 '사랑'을 생각해야 해요.

카스피 2012-02-24 21:16   좋아요 0 | URL
된장님의 생각이 훌륭하긴 하지만 이 사회가 그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지요.제가 아는 분도 고교 선생님이신데 아이는 어려서 활달하게 뛰어놀아야 된다며 아무 공부를 안시켰다고 하더군요.한글은 초등학교 들어가면 꺠쳐야 된다고....
근데 초등학교 들어가니 모든 아이들이 이미 한글을 깨쳐 그분 아이는 지진아 취급을 받고 교실안에서 바보 취급을 받아 결국 1년을 쉬었다고 합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파란놀 2012-02-25 07:00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은 훌륭하지 않아요.
사람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마땅한' 이야기일 뿐이에요.

아이들한테 '아무 공부'를 안 시켜서는 안 돼요.
그렇게 하면 바보가 되지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랑을 스스로 느끼도록
즐거이 어울려야지요.

아이는 스스로 익히고프면 한글이든 영어이든 쉽게 익혀요.

그리고, 그 아이가 한 해만 쉬었는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 아이 아버지가 어떤 넋이나 삶인가를
더 제대로 알지 않고서는
섣불리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감은빛 2012-02-25 09:26   좋아요 0 | URL
아이한테 학교는 마땅하지 않지만,
현재 대부분의 부모들은 학교 외에 마땅히 아이를 맡아줄 곳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학교를 조금이라도 더 마땅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우리 큰 아이에게
학교가 조금이라도 덜 끔찍한 지옥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파란놀 2012-02-25 10:29   좋아요 0 | URL
거의 모든 부모 스스로
아이와 함께 살아가려 하지 않고
시설에 맡기려 하기 때문에 힘들밖에 없어요.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하거든요.

학교는 '더 끔찍'하든 '덜 끔찍'하든
'지옥이기는 늘 같'아요.
학교가 지옥인 줄 느끼지 못하면,
학교 환경을 '개선'한다고 해서
학교가 '지옥이라는 틀'에서는 달라지지 않아요.

대학교와 자격증과 돈벌이로만 내모는 학교가 아닌,
삶을 사랑하는 터전인 좋은 배움마당이 되도록
어버이 스스로 살아가야 비로소
학교도 집도 아이와 어른도
탈바꿈하겠지요.

마녀고양이 2012-02-25 10:4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예방접종은 시키시는거지요? ^^

비슷한 또래를 모아서 일괄적인 교육을 하는 학교라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점은
공감합니다. 하지만 된장님의 교육관에 대해서 찬성하기도 반대하기도 어렵네요.
복잡한 문제예요. 그래도 된장님의 기본적인 생각에 공감합니다.
행동화에는 아직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2-02-25 11:10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in.co.kr/hbooks/4900742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 느낌글

http://blog.aladin.co.kr/hbooks/4777844
(예방접종을 잘못 이야기하는 그림책 비판하는) 느낌글

..

예방접종은 병원균을 미리 집어넣는 일인데,
'산 균(생균)'이 아닌 '화학조합물 균'을 넣어요.
아이들한테 이러한 일을 할 수는 없기도 하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헤아린다면
예방접종은 국가권력으로
모든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끔찍한 짓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저희는 아무것 안 하며 씩씩하고 즐거이 잘 살아요~~~

기억의집 2012-02-27 09:23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저 보다 더한 분이 계시네요. 저도 울 애들 예방접종 다 하진 않았어요. 정말 기본적인 것만 했고 그나마 울 딸은 파상풍 주사 맞어야하는데 아직도 안 맞고 있어서 울 딸이 언제나 엄마, 나 파상풍 주사 맞아야 하는 거 아냐? 병원 갈 때 마다 묻곤 합니다. 그러면 아 맞아. 맞아야지~ 우리 담에 올 때 맞자. 이러고 맙니다.

심지어 저는 매년 독감예방 접종도 안 시킵니다.

된장님, 저는 된장님의 페이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해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고요.

기억의집 2012-02-27 09:04   좋아요 0 | URL
된장님 책에 맹신하지 마세요. 예방접종 과연 안전할까 라는 저 책들만 믿고 아이들에게 정말 기본적인 소아마비 백신이나 파상풍 백신 그리고 홍역백신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제가 가슴이 다 뜁니다. 정말 그 책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계시다면 예방접종이 왜 나왔는지 그리고 예방접종이 어떻게 발전 발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책 또한 읽어보시고 아이들에게 최종적으로 아, 맞히지 말자라고 하셨어야 하는데 저 책만 믿고 안 맞히신다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저 책은 검증의 검증이 안 된 책입니다. 추측일뿐이죠. 의학은 제약회사의 이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만스럽긴 하지만,


파란놀 2012-02-27 10:34   좋아요 0 | URL
저희는 책을 그리 믿지 않아요. 예방접종과 얽힌 책이라 해서 그걸 다 믿지 않아요. 그 자료를 살피면서 나와 아이들 몸에 얼마나 어울리느냐를 살펴서 받아들여요. 거꾸로, 예방접종을 믿으라 하는 책이 있다 해서 믿지 않아요.

무엇보다, 우리는 '아무런 제대로 된 자료'를 손수 얻을 수 없어요. 더구나, '제대로 정리한 자료' 또한 없어요.

왜냐하면, 예방접종'만' 맞았기에 돌림병에 안 걸렸는지, 다른 까닭 때문에 안 걸렸는지를 알 길부터 없어요.

그런데, 한 가지 통계는 있어요. 예방접종을 놓았건 안 놓았건 1900년대로 접어들면서 전 세계 모두 돌림병이 크게 줄었어요. 예방접종을 놓았기 때문에 돌림병이 줄지 않았어요. 돌림병이 크게 줄어든 까닭은 예방접종 때문이 아니라, '지구별 사람들이 보편으로 끼니를 잘 챙겨서 먹게 되고, 예전보다 조금 더 깨끗한 삶터를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책만 믿고 안 맞추는 일이란 바보예요. 아주 마땅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책이 검증이 안 된 책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어요. 예방접종이라는 화학약품부터 '검증이 안 되'었잖아요.

기억의집 2012-02-27 09:11   좋아요 0 | URL
의학은 여러 번의 검증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완벽하게 보호해 주는 권력이 없어 한편으로 천문학적인 배상의 고소의 위험을 안고 있으니깐요.

그리고 소아마비 백신 같은 경우 조나스 박사가 백신을 발명했을 때 제일 먼저 가족을 대상으로 삼았고 그 결과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와 무료 백신으로 배포되어 현재소아마비환자가 거의 없어진 경우입니다. 백신의 효용이 입증된 경우이죠. 조나스 박사의 경우,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제약회사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신념하나 만으로 무료 백신으로 배포할 것을 결정한 의학자입니다.

파란놀 2012-02-27 10:36   좋아요 0 | URL
백신은 사람과 환경에 따라 다 달라요.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약을 맞출 수 없어요.

의학 처방은 다 다른 사람한테 다 다른 처방을 해야 해요. 같은 약을 쓴다 하더라도 쓰는 약 부피와 가짓수는 달라져요. 똑같이 포장된 제품을 똑같은 양으로 먹이거나 맞추는 일은 다 다른 사람 몸을 살피지 않는 일이에요.

그리고 '무료 백신'이란 없어요. '무료'인 듯 보이지만, 정부기관에서 큰돈으로 사들여서 '거저인 듯 보이며' 내놓을 뿐이에요.

기억의집 2012-02-27 09:18   좋아요 0 | URL
그가 유상배포를 결정했다면, 아직도 소아마비는 우리들의 곁에서 맴돌았을 거에요. 예방접종에 대한 완전부정은 이러한 신념의 의학자까지 나쁜 놈으로 매도하는 것이고 어떠한 방식으로도 인류에 공헌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의지를 꺽는 것이라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나 빛과 그림자는 존재 하거든요. 적어도 내 아이를 안전만이 아니고 타인의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예방접종은 하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홍역예방 접종 하지 않으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고 유학 또한 가지 못합니다. 학교에서나 다른 나라에서는 홍역 예방접종을 강제적으로 원하니깐요.

파란놀 2012-02-27 10:38   좋아요 0 | URL
앞서 말한 이야기도 있으나, 소아마비이든 다른 병이든 1900년대로 접어들며 크게 줄어든 까닭은, 전 세계에 널리 의학 접종과 처방을 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영양을 살리는 고른 밥을 알맞게 잘 먹으면서 좋은 환경을 누릴 수 있으면 누구나 병이 나아요.

폐렴이 아무것 아닌 병이 되고, 또 도시에서는 병원을 아무리 다녀도 폐렴이 낫지 않으나, 시골로 가서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고 잘 자면 다 나아요.

가장 좋은 약품은 좋은 자연 환경을 누리며 흙을 밟고 일하면서 스스로 제 먹을거리를 거두는 삶이에요.

이러한 것은 책에서 배우지 않아요. 흙에서 배우고 자연에서 배워요.

기억의집 2012-02-27 09:17   좋아요 0 | URL
아이는 부모 소유가 아닙니다. 부모의신념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아이는 사회의 일원으로 되고 싶어 할 수도 있어요. 정말 초등학교에 안 보내실 건가요. 아이가 원한다 하더라도요.

된장님, 다시 한번 아내분과 상의해보세요.

파란놀 2012-02-27 10:40   좋아요 0 | URL
아이는 부모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아주 마땅히, 아이들이 즐겁고 올바르며 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장 좋은 길을 아이들한테 보여주면서, 어버이부터 스스로 살아내야지요.

학교는, 아이가 바라면 가겠지요. 이 글에서도 썼는데... -_-;;;;;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으면 아이가 갈 뿐이에요. 학교란 아주 자그마한 길 가운데 하나이니, 굳이 말려야 하거나 없애야 하지는 않거든요.

우리는 시골에서 '시골 자연학교'를 만들 생각도 있어요. 굳이 제도권학교를 보내거나 다른 대안학교를 찾아 보낼 일은 없으니까요. 나와 옆지기가 교사가 되어 우리 아이들부터 가르치는 시골 자연학교를 세울 수 있거든요.

'사회의 일원'이란, 제도권 틀에 똑같이 맞추는 일이 아니라, 살기 좋고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터전을 일구어 좋은 이웃으로 지내는 일이라고 느껴요.

긴 말씀과 깊은 걱정 고맙습니다~~~~ ^^
 


봄까치꽃 논둑
[고흥살이 8] 새봄 알리는 작은 들꽃

 


 며칠 몹시 따스한 저녁을 누렸습니다. 보일러를 돌리지 않고도 방 온도가 18도였어요. 이렇게 따스한 나날이라면 틀림없이 들판 어딘가에 꽃이 피었을 텐데 싶어 대문을 열고 집 앞 논둑에 섭니다. 참말 그러면 그렇지. 대문 앞 논둑에는 줄지어 봄까치꽃이 파랗고 작은 꽃잎을 터뜨렸어요.

 

 언제부터 꽃망울을 터뜨렸을까? 오늘 알아본 꽃망울이 이만큼이라면 훨씬 앞서 꽃망울 터뜨렸겠지. 아직 따스한 바람이 불기 앞서부터 꽃망울 터뜨리지 않았을까? 눈이 펑펑 쏟아지며 금세 녹던 며칠 앞서에도 이 꽃잎들은 눈을 맞으면서 맑은 파랑을 듬뿍 베풀지 않았을까?

 

 논둑에는 봄까치꽃이라면 멧자락에는 무슨 꽃이 피었을까 궁금합니다. 이제는 따스한 나날이니까 집식구 모두 멧자락 마실을 가며 봄꽃 구경을 해야겠어요. (4345.2.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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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20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손희정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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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슴속 아름다운 별빛
 [만화책 즐겨읽기 120] 이시키 마코토, 《피아노의 숲 (20)》

 


 밤하늘 별빛이 밝습니다. 다만, 밤이 되어 온누리가 조용히 어두운 데에서만 밤별이 빛납니다. 밤이 되었어도 밤 같지 않게 훤한 전깃불빛이 번쩍거린다면 밤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훤한 전깃불빛이 없더라도 찻길에 자동차들 줄줄이 늘어선다면 밤별은 깃들 자리가 없습니다.

 

 낮에는 땅에서 아이들 눈빛이 밝습니다. 아이들 눈은 맑은 꿈과 밝은 사랑을 두루 나누면서 빛납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은 어린 나날부터 고운 넋을 고스란히 건사한다면 아이들하고 나란히 빛나는 눈길로 온누리를 바라봅니다.

 

 온누리 어느 곳에나 빛이 있습니다.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습니다. 바다에도 있고 멧자락에도 있습니다. 빛은 아이와 어른을 골고루 살립니다. 빛은 풀과 나무와 꽃을 살립니다. 빛은 바람을 타고 마을을 두루 흐릅니다. 빛은 물결을 따라 골골샅샅 누빕니다. 빛은 고운 목숨이 되어 내 몸으로 스며듭니다. 빛은 예쁜 꿈이 되어 내 마음에서 새로 태어납니다.


- ‘자신의 피아노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는 화가 됐어. 그때 평소처럼 노미스로 쳤다면 탈락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거다. 아마도.’ (10∼11쪽)
- “그런, 네가 사과할 필요 없어. 난 승부에 진 거니까. 비웃는다고 해서 딱히.” “승부란 생각 안 해.” “응, 카이는 그렇겠지.” (25쪽)

 


 날마다 먹는 밥은 쌀알입니다. 쌀알은 겨를 벗긴 볍씨입니다. 볍씨는 벼가 맺은 열매입니다. 벼는 수백 볍씨를 맺으며 제 씨앗을 퍼뜨리려 합니다. 다른 풀도 벼처럼 수백 씨앗을 맺어요. 사람은 이 가운데 벼나 밀을 즐겨먹으며 목숨을 이어요. 곰곰이 살피면 ‘풀씨’를 먹으며 살아간다 할 텐데, 겨를 벗긴 볍씨 가운데 노란 씨눈까지 깎아내어 먹는다면 막상 목숨을 먹는다 하기 어려워요. 밥을 먹을 때에는 노란 씨눈이 싱그러이 살아숨쉬는 쌀을 먹어야 해요.

 

 시금치나 배추를 먹을 때에는 잎사귀를 먹습니다. 무나 당근을 먹을 때에는 뿌리를 먹습니다. 감자랑 고구마는 밭흙을 캐내어 먹습니다. 나무에 달린 능금이랑 배랑 복숭아랑 포도를 따서 먹습니다. 풀을 먹느냐 고기를 먹느냐는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는 터전에 따라 제 먹을거리를 찾습니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쉽게 얻는 먹을거리로 목숨을 지킵니다. 들판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들판에서 쉽게 얻는 먹을거리로 목숨을 지켜요.

 

 그러면, 도시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은 무슨 먹을거리를 쉽게 얻나요? 과자? 케익? 햄버거? 피자? 라면? 세겹살? 돼지고기튀김? 닭튀김?

 

 아이들은 저마다 쉽게 얻는 먹을거리에 따라 숨결을 얻습니다. 바닷것을 얻어 목숨을 지키면 바다에서 살아숨쉬는 넋을 받아들이며 목숨을 북돋웁니다. 들것을 얻어 목숨을 지키면 들에서 살아숨쉬는 얼을 맞아들이며 목숨을 살찌워요. 그렇다면, 도시에서 살아가며 가게에서 과자랑 가공식품을 사다 먹는 아이들은 어떤 것에서 어떤 넋이나 얼을 받아먹는가요. 어떤 꿈을 키우고 어떤 사랑을 돌보는가요.

 


- “2차 때의 연주. 슈우헤이의 새로운 피아노였지. 최고로 멋진 연주였어.” “패배한 날 위로해 주는 거야? 동정받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아니야! 위로 같은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라고!” (27∼28쪽)
- ‘우리에겐 평생을 걸고 자신의 음악을 추구할 수 있다는 행복이 있는데도, 물론 평생을 추구해도 음악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되는 건, 짧은 인간의 생애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거둘 수 없는 성과겠지만.’ (87쪽)
- ‘아지노 선생님과 카이를 연결한 건 나였다고 분해 했지만, 그건 잘못된 거였어. 아지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카이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거야. 카이가 무대에 서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까지 쫓아올 수도 없었을 테고, 이렇게 성장할 수도 없었을 거야.’ (120쪽)


 이시키 마코토 님 만화책 《피아노의 숲》 스무 권째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피아노의 숲》에 나오는 ‘카이’는 숲 아이입니다. 카이는 ‘숲 아이’답게 숲에서 자라난 넋을 피아노 가락으로 옮깁니다. 숲에서 스스로 사랑하고 믿으며 꿈꾸던 나날을 고스란히 들려주어요. 사람들이 카이 피아노 선율에 가슴이 저릿저릿 울린다면, 사람들은 ‘숲을 잃거나 잊은 꿈과 사랑’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받아들이던 푸른 넋을 도시에서 지내며 오래도록 잊거나 뒤로 젖히느라 정작 사람들 가슴에 촉촉히 젖어들어야 하던 푸른 이야기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아노의 숲》 스무 권째에서 카이는 동무 슈우헤이한테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얘기해요. “2차 때의 연주. 슈우헤이의 새로운 피아노였지. 최고로 멋진 연주였어.” 하고요. 슈우헤이는 이제껏 ‘피아노 교본’에 실린 대로만 피아노를 두들겼어요. 울타리에 갇힌 슈우헤이였고, 틀에 사로잡힌 슈우헤이였어요. 그런데 이제 슈우헤이는 이녁 나름대로 사랑하면서 이녁 스스로 꿈꾸던 노래가락을 비로소 조금 선보여요. 카이는 이 노랫가락을 놓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도 이 노랫가락을 즐겼어요. 슈우헤이도 피아노를 치면서 이 가락에 깊이 젖어들었어요(19권에서).

 

 다만, 슈우헤이가 되든 카이가 되든 심사위원이 되든 관객이 되든, 이 새로우며 좋은 노랫가락이 다음 경선까지 올라갈 만한 노랫가락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이렇게 피아노를 치지 않았거든요. 처음에는 온통 틀에 사로잡힌 피아노에 물들었거든요.

 


- “나는 소우스케의 방임주의엔 찬성이지만, 돌이키기 늦어질까 두려워.” “방임은 아닌데요. 지켜보는 겁니다. 잘 보고 있으면 알 수 있으니까.” “정말인가? 카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 “하하, 거기까지는 무리겠지만, 도움이 필요한 때인지는 거의 알죠.” (67쪽)
- “네 아버지가 아파트 입구를 점거하고 있어. 빨리 전화해서 어떻게든 해 봐. 너, 어른스럽게 결과를 받아들여. 시위하듯이 행방을 감추다니. 그렇게도 부모에게서 걱정받고 싶어? 난 너 같은 응석받이 울보가 너무 싫어.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108∼109쪽)


 쇼팽이든 슈베르트이든 베토벤이든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을 대단히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당신 노래를 좋아하며 즐긴 사람들일 뿐입니다. 스스로 제 노래결을 생각하고 제 노래꿈을 빚으며 제 노래사랑을 펼친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제 노래결을 생각할 때에 아름다운 노래가 태어나요. 제 노래꿈을 빚을 때에 나부터 둘레 사람 누구나 기쁘게 들을 노래가 샘솟아요. 제 노래사랑을 펼칠 때에 내 삶이 아름다이 빛나면서 참다이 뿌리내립니다.

 

 카이한테는 숲 피아노입니다. 슈우헤이한테는 도시 피아노일 테지요.

 

 숲 피아노라서 더 뛰어날 수 없습니다. 도시 피아노라서 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건 저마다 사랑하며 꿈꾸는 빛을 누릴 수 있으면 됩니다. 어느 때이건 스스로 아끼며 보살피는 빛을 나눌 수 있으면 돼요.


- “슈, 슈우헤이는 남의 재능은 알아차리면서, 왜 자신의 재능은 모르는 걸까. 왠지 화가 나.” (36∼37쪽)
- “나는 언제나 벼랑 끝에 서 있던 것뿐이야.” (113쪽)
- ‘이 곡은 내게 잘 어울리는 작품이야! 나는, 어떻게든 이 곡을 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올라온걸! …… 첫 주자로 치는 건 운이 없는 거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 나는 이 곡을 누구보다도 빨리 치고 싶었어!’ (210, 212쪽)

 


 콩쿨 때문에 피아노를 친다면 덧없습니다. 대회 때문에 피아노를 연습한다면 슬픕니다. 연주회 때문에 피아노를 갈고닦는다면 안타깝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지만, 내가 피아노를 칠 때에는 ‘남들이 들으라’는 뜻이 아니거든요.

 

 남들이 들어 주면 고맙습니다. 남들이 사랑해 주면 기쁩니다. 그러나, 남들이 들어 주거나 사랑해 주기 앞서, 내가 치면서 내가 듣는 피아노예요. 내가 사랑하면서 내가 즐기는 피아노예요.

 

 내가 쓴 글은 남한테 읽히려는 글에 앞서 나 스스로 되읽는 글입니다. 내가 쓰는 글은 남한테 보여주려는 글이 아니라 내 삶을 아름다이 빛내고픈 꿈을 싣는 글입니다.

 

 카이는 숲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좋은 어머니와 좋은 이웃을 사귀었고 좋은 자연을 누렸습니다. 슈우헤이한테는 좋은 터전이나 이웃이 많지 않았다 할 테지만, 카이라고 하는 좋은 동무가 있어요. 팡 웨이한테든 소피한테든 다들 매한가지입니다. 좋은 터전 좋은 이웃 좋은 살붙이 좋은 동무한테서 사랑을 받은 꿈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피아노 가락으로 옮깁니다. 삶이 피아노가 되고, 피아노가 삶이 됩니다. (4345.2.23.나무.ㅎㄲㅅㄱ)


― 피아노의 숲 20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손희정 옮김,삼양출판사 펴냄,2012.2.10./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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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 사진잔치 엽서

 


 2011년 12월 1일부터 2012년 1월 29일까지 인천 남구 도화동에 자리한 수봉도서관에서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라는 이름으로 조그맣게 사진잔치를 열었다. 내 인천 골목 사진으로 인천 공공기관 한 곳에서 사진잔치를 열었기에 참 기뻤다. 사진잔치를 마친 사진들은 도서관 한쪽에 남겠지. 마음에 드는 사진을 누군가 챙길는지 모르고, 어쩌면 창고에 쌓여 먼지를 먹을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골목동네 이야기 한 자락 남을 수 있다고 느껴 고맙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인 인천이지만, 옆지기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광명이다. 옆지기가 태어나 자란 광명은 들판이 있고 흙길이 있던 아스라한 골목동네였으나, 이제 광명은 온통 아파트누리로 탈바꿈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인천에는 골목동네가 곳곳에 많이 남기는 했어도, 온통 아파트누리로 한창 바뀐다. 갯벌을 메워 공항을 짓고 발전소를 지으며 새도시를 짓는다. 호젓한 골목동네에서 어여쁜 꽃송이 피어나기 너무 벅차다.

 

 나랑 옆지기가 나고 자란 터하고는 사뭇 멀디먼 전라남도 고흥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살아간다. 우리 네 식구는 이곳 고흥에서 뿌리를 박으며 살아갈 꿈을 키운다. 어디 멀리 나갈 일 없도록 살아가고, 애써 도시로 마실을 나가지도 않는다. 이리하여, 내 사진으로 사진잔치가 고향에서 열렸으나, 나랑 옆지기랑 아이들은 찾아가서 구경을 하지 못한다. 사진잔치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사진잔치 때에 쓴 엽서를 받아서 구경한다.

 

 인천 골목길 사진을 찍어 사진잔치를 열고 사진책도 하나 내놓았는데, 나는 막상 ‘골목길’이라는 낱말은 잘 안 쓴다. 틀림없이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내가 골목길에서 바라보고 느끼며 함께 살아내던 이야기는 ‘골목꽃’이기 때문이다. 곧, 내 사진은 ‘골목길 사진’이 아니라 ‘골목꽃 사진’이다. 나는 골목길에서 ‘길’도 ‘풍경’도 ‘어린이’도 ‘할머니’도 ‘집’도 보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골목동네 보금자리를 환하게 밝히며 싱그러이 보듬는 꽃송이 하나만 보고 느끼며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꽃이 있어 골목길이 환하다. 꽃이 있어 시골마을이 훤하다. 꽃이 피어 골목동네에 열매와 새로운 씨앗이 맺는다. 꽃이 피어 시골자락에 열매랑 새로운 씨앗이 흐드러진다. (4345.2.23.나무.ㅎㄲㅅㄱ)

 

 

 

 

(골목꽃 이야기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들여다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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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23 17:24   좋아요 0 | URL
정겨운 골목길 풍경이네요!
우리 대구엔 아주 꼬불꼬불하고 좁다란, 일제시대 때 지은 집들도 있는 그런 골목들이 있어요. 갑자기 그런 골목이 그립네요.

파란놀 2012-02-23 19:01   좋아요 0 | URL
아, 대구에 계시군요.
대구에는 시청역과 동대구역 사이던가,
그쪽에 <대륙서점>이라고 하는 훌륭한 헌책방이 있어요.
경북대 뒷문에도 무시무시하게 책이 쌓인 헌책방이 있고요.

대구 골목길도 어여쁘다고 생각해요~

2012-02-25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2-02-24 21:31   좋아요 0 | URL
인천은 뭐랄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같아요.송도 신도시같은 경우는 정말 테크노밸리같단 생각이 드는 반면 옛 공단 지역은 과거 7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것 같더군요.

파란놀 2012-02-25 22:05   좋아요 0 | URL
어디나 옛날과 오늘날이 함께 있는데,
인천은 좀 이런 편차가 되게 커요..
 


 짝양말 책읽기

 


 짝양말을 신은 아이가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아이는 한동안 조용하다. 나도 이때에는 숨을 살며시 돌리며 책장 조금 넘길 만하다. 밀린 다른 집일을 할 수 있지만, 이때에는 나도 조금은 쉬고 싶다.

 

 나도 한 차례 쉬며 방바닥에 모로 누워 책을 읽는다. 그러나 자꾸 짝양말에 눈이 간다. 아이가 예쁘게 놀 때에는 예쁘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느라 내 종이책을 읽지 못하고야 만다. 사진기를 손에 쥔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말끄러미 바라본다. 곰곰이 돌이킨다. 나도 어린 날 짝양말 신기를 즐겼을까. 내가 짝양말을 신으려 하면 내 어머니는 어떤 낯빛이었을까. 빨래거리 늘어난다고 싫어하셨을까. 보기 안 좋으니 얼른 벗으라 하셨을까. 재미나다며 웃으셨을까. (4345.2.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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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23 17:32   좋아요 0 | URL
저도 저렇게 신었는데, 문제는,
다 큰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러고 싶었다는 거 아닙니까 ㅠㅠ
오래토록 짝짝이 양말을 신고 싶었던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엄격한 부모님과 언니'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된다,라면서 자꾸 못하게 야단치니까
일찍감치 졸업할 일을 오래 질질 끓었던 거 같아요.
(중딩 때는 어쩔 수 없이 양말은 짝으로 반듯하게 신고
운동화 끈을 연두와 초록, 노랑과 연두 이런 식으로 다르게 꿰 신었지요.
학교 갈 적엔 흰색으로요 ㅋㅋ)

저는 애들이 자라면서 하는 행동은 웬만한 건 그냥 둬요.
손가락 빨기 같은거요. 이것도 성장하면서 거치는 과정이니까요.
애들이 하고 싶은 만큼 하고 나면 안 하게 되더라구요.


파란놀 2012-02-23 18:48   좋아요 0 | URL
잘 맞추어도 좋으나
잘 맞춘다는 일이란
틀에 박히는 일이
아닌 줄을
사람들 스스로 잊도록
내몰리지 않느냐 싶어요.

곰곰이 생각하면
짝양말이란
아이들일 때부터 누구나 좋아하는 멋이라 할 테고,
이 멋은
'삐삐'가 그야말로 아름답게 보여주었어요~

아이들 어머니가 되어
짝양말을 신어도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