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신기는 어린이

 


 동생 양말을 신겨 주는 사름벼리. 자주는 아니지만 곧잘 동생 양말을 신기려 애쓴다. 그러나 동생은 한창 기며 놀려 하니까 발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동생이 더 갓난쟁이일 때에는 꽤 수월히 신겼으나, 동생이 마음껏 기어다니니까 요사이는 양말 한 짝 신기는 데에도 꽤나 애먹는다. 아버지 도움을 살짝 받으며 끝까지 양말을 신긴다. (4345.2.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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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 밑 산들보라

 


 엉금엉금 이곳저곳 신나게 기던 산들보라가 밥상 밑까지 들어가서 논다. 밥상 밑에 무언가 있어 집어서 입에 넣고 놀려 하더니, 여기까지는 잘 하더니만 막상 다 놀고 나오려 하니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힌다. 앞으로도 옆으로도 뒤로도 기지 못한다. 찬찬히 생각하면 될 테지만 밥상 무게 때문에 몸을 일으키지 못하니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10초 남짓 기다리다가 밥상 밑에서 끌어내 준다. (4345.2.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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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26 22:48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하~~아기야, 너는 우는데 웃어서 미안해~
산들보라 우는 얼굴도 귀여워요. 앙~~^^

파란놀 2012-02-27 06:27   좋아요 0 | URL
아이가 나중에 커서
즐겁게 이 사진 돌아볼 수 있기를 꿈꾸어요~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 자연과 나 7
이우만 글.그림 / 마루벌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맑은 물과 바람이 없으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4] 이우만,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마루벌,2010)

 


 창릉내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고 합니다. 창릉내는 다른 여러 냇물과 똑같이 사람들과 푸나무와 들짐승과 멧짐승 모두한테 고운 물줄기 구실을 하며 오래오래 흘렀겠지요. 그러나, 창릉내는 이 나라 거의 모든 냇물과 똑같이 백 해가 채 안 되는 짧은 나날 사이에 콘크리트 옷을 입었어요. 콘크리트 옷을 한 번 입혔다가 벗겼다고 하지만, 처음 모든 목숨들한테 시원한 물줄기로 스며들던 때처럼 구비구비 흐르지는 않습니다. 창릉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냇물에서 멱을 감거나 빨래를 하지 않아요. 이 냇물을 길어 밥을 하거나 그대로 마시지 못합니다.


.. 하지만 새들을 만나려고 늘 먼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도시에 있는 작은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안의 작은 숲에서도 새들을 만날 수 있거든요 ..  (6쪽)


 사람 몸뚱이는 거의 다 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사람만 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여우도 곰도 개도 고양이도 물로 이루어졌어요. 풀도 나무도 꽃도 이와 같아요. 복숭아도 능금도 포도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산 목숨은 모두 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에요.

 

 곧, 물은 목숨이라 일컬을 만합니다. 물이 없으면 죽음이라 할 만합니다. 물을 마셔야 살고, 물로 이루어진 다른 목숨을 먹어야 내 목숨을 잇습니다.

 


.. 나는 물총새가 멋스러운 바위나 버드나무 줄기에 앉기를 바랐지만, 앉는 자리는 언제나 물총새 마음대로였어요. 물총새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흉한 콘크리트와 철근 줄기를 못마땅하게 보았을 테지만, 그곳은 이제 물총새와 내가 만나는 사랑방이 되었답니다 ..  (25쪽)


 아주 살짝이라 하더라도 바람을 마시지 않으면 숨이 끊어집니다. 바람을 들이마시며 숨을 잇는 사람이에요. 아주 조금이라 하더라도 몸에서 물기가 빠져나가면 목숨이 버티지 못합니다. 물을 마시고 물로 이루어진 밥을 먹으며 목숨을 건사하는 사람이에요.

 

 사람으로 살아가자면, 먼저 좋은 바람을 마셔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물을 마셔야 합니다. 또한,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좋은 바람과 물과 밥을 얻는 좋은 터에 좋은 보금자리를 지어야 합니다. 좋은 보금자리에서는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함께할 좋은 짝꿍을 만나 좋은 살림을 지어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안 좋을 때에는 삶이 버겁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어긋날 때에는 삶이 비틀거립니다.

 돈은 없어도 돼요. 시원한 바람을 마실 수 있어야 해요. 자가용은 없어도 돼요.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해요. 아파트에서 안 살아도 돼요. 좋은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해요.

 

 어른이 되어 어떤 일자리를 얻는다 할 때에는, 돈을 더 버는 자리로 찾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일자리라 하더라도, 내 몸을 살리고 살찌우는 바람과 물과 밥을 누리는 가장 좋은 마을에서 가장 좋은 보금자리를 꾸릴 만해야 합니다.

 

 흐르는 냇물이 더러워 수도물이나 먹는샘물을 사다 마셔야 한다면, 수도물에까지 정수기를 달아서 써야 한다면, 이렇게 죽은 물을 마시는 사람 목숨은 얼마나 산 목숨이라 할까 궁금합니다. 날마다 부는 바람이 지저분해 재채기가 끊이지 않는다면, 공장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에 지저분해지는 바람으로 잿빛 하늘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한다면, 이렇게 죽은 바람을 마시는 사람 숨결은 얼마나 싱그러운 숨결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물과 바람이 아름답게 빛나지 않는다면 밥 한 그릇 빛나지 못합니다. 물과 바람이 좋지 않다면 밥 한 술 좋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좋은 삶을 누릴 때에 즐겁고, 좋은 사랑을 나눌 때에 기쁘며, 좋은 꿈을 이룰 때에 아름답다면, 자꾸자꾸 커지는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어야 해요. 도시를 더 크게 키우는 일자리에 얽매이려는 어른들은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생각하며 좋은 쪽으로 마음을 바꾸어야 해요.

 

 


.. 세차게 흐르던 창릉천 물살이 쌓아놓은 흙더미에 어느새 풀과 나무가 무성해졌어요. 창릉천의 아기 새들과 풀이 자라는 동안 뚝딱뚝딱 쿵쿵 요란한 소리를 내던 창릉천 옆 공사장에는 산자락을 가릴 만큼 아파트들도 자라났어요. 창릉천과 사이좋은 북한산 봉우리들 사이에 허락도 받지 않고 끼어든 회색빛 거인들이 참 밉살스러워 보이네요 ..  (43쪽)


 이우만 님이 빚은 그림책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마루벌,2010)를 읽습니다. 이우만 님은 창릉내에서 만난 물총새 한 마리 때문에 그림책을 그립니다. 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만, 잣나무도 대나무도 미루나무도 감나무도 아닌 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만 경기도 고양시 한켠 창릉내에서 물총새를 만났기 때문에, 벅찬 가슴으로 그림책 하나 내놓습니다.

 

 아마, 물총새 아닌 딱새를 만났더라도, 딱따구리를 만났더라도, 직박구리를 만났더라도, 아니 흔하디흔하다는 참새를 만났더라도, 그림책 하나 얼마든지 빚을 만합니다. 더 이름나거나 더 예쁘다 하는 새를 만나야 그림책 하나 그리지 않아요. 그림쟁이 가슴으로 왈칵 다가오는 빛나는 사랑을 깨우치는 새 한 마리 만날 수 있으면, 이 새 한 마리를 좋은 삶동무로 여겨 좋은 이야기 담는 그림책 하나를 빚을 만해요.


..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하천가 자갈밭이지만, 꼬마물떼새 가족에게는 더없이 특별한 보금자리예요 ..  (13쪽)

 

 


 다만, 그림쟁이 이우만 님은 창릉내에서 물총새를 만나기는 했으나, 물총새가 나누어 주는 빛을 듬뿍 나누어 받지는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쓸모없”다고 여기는 냇물이면 어떤가요. 나 스스로 쓸모있다고 여기는 냇물이면 넉넉해요. 나 스스로 사랑스레 돌보는 냇물이면 즐거워요. 나 스스로 아름답게 바라보며 좋은 꿈을 싣는 냇물이면 흐뭇해요.

 

 꼬마물떼새 식구들한테만 더없이 남다르다 할 보금자리가 아닙니다. 이 창릉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더없이 남다르다 할 터예요.

 

 똑같이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창릉내 둘레 아파트하고 자동차 가득한 종로 큰길가 아파트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시멘트로 빽빽히 둘러친 한강이라 하더라도, 이 한강 둘레 아파트랑 깊은 밤에도 불빛 번쩍이는 압구정동 둘레 아파트랑 아주 달라요.

 

 숨을 쉴 수 있는 터에 깃드는 집이어야 합니다. 물을 아끼면서 마시고, 바람을 누리면서 마실 만한 곳에 짓는 집이어야 합니다. 밥 한 그릇에 담은 너른 우주를 헤아립니다. 쌀알 하나마다 깃든 깊은 사랑을 돌아봅니다. 목숨을 먹으며 목숨을 지키는 내 삶인 만큼, 내 목숨이 이 땅에서 얼마나 맑게 빛나도록 하루하루 새 꿈을 짓느냐 하는 대목을 톺아봅니다.

 

 생각하며 살아야 비로소 삶입니다. 참새이든 사람이든, 63빌딩에서 일하거나 지내더라도 밥(또는 모이)을 먹어야 목숨을 잇습니다. 신용카드로 끼니를 잇지 못해요. 밥을 먹어야 목숨을 이어요. 개미이든 사람이든,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일하거나 지내더라도 밥(또는 먹이)를 먹어야 목숨을 잇습니다. 은행계좌로 끼니를 잇지 못해요. 밥을 받아들여야 목숨을 빛내요.

 

 그림책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는 물총새 한살이를 살가이 보여줍니다. 그림책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는 도시 한복판이 되고 만 자연 한자락에서도 고운 숨결을 잇는 들새 한삶을 예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자연 도감’ 틀에서 머뭅니다. 자연 도감 틀을 한 꺼풀 벗고는 ‘자연을 누리는 기쁨’을 들려주거나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웃음꽃을 밝힐 수 있으면 한결 좋았을 텐데 싶어요.

 

 고마운 숨결인 창릉내일 테니까요. 반가운 삶터인 창릉내일 테니까요. 어여쁜 이야기꽃인 창릉내일 테니까요. (4345.2.25.흙.ㅎㄲㅅㄱ)


―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 (이우만 글·그림,마루벌 펴냄,2010.11.11./1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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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25 20:50   좋아요 0 | URL
이우만님이 그리신 수채화가 참 고와요^^
 


 잠자는 꽃 책읽기

 


 아직 겨울인 2월 끝무렵은 동짓날을 생각하면 해가 퍽 길지만, 봄이나 여름을 헤아리면 해가 꽤 짧습니다. 낮 서너 시를 지나면 차츰 기울고, 너덧 시쯤 되면 뉘엿뉘엿 해질녘입니다. 해질녘 아이와 함께 고샅길을 걷다가 아침에 들여다보던 봄까치꽃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앙증맞도록 작은 꽃송이는 거의 다 오므렸습니다. 이제 따순 햇볕이 고개 넘어 지니, 이 꽃들도 꽃잎을 앙 다물며 새근새근 잠들고 싶은 듯합니다. 이러다가 새벽을 지나 동이 트며 차츰 따뜻한 새날이 찾아오면, 밤새 오므리던 꽃잎을 벌려 새 햇살을 넉넉히 받아먹겠지요.

 

 새벽에 잠을 깨고 아침에 활짝 펴서 낮에 흐드러지며 저녁에 곱게 잠듭니다. 고요한 하루이고 즐거운 삶입니다. 맑은 소리이고 좋은 가락이며 기쁜 꿈입니다.

 

 생각해 보면, 식물도감에 ‘활짝 핀 꽃망울’ 그림이나 사진만 실을 뿐, ‘잠자는 꽃망울’ 그림이나 사진을 싣지 않습니다.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꽃을 다루는 이들이 활짝 피는 꽃망울처럼 고요히 잠드는 새근새근 꽃자락을 나란히 보여주는 일이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두 얼굴이나 두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온삶을 살피고 온넋을 헤아리며 온빛을 담을 줄 알아야 합니다. (4345.2.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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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5 10:37   좋아요 0 | URL
저 아래 피었던 녀석들이 저렇게 옹크리고 자는건가요?
진짜 그런건가요? 이파리는 비슷한데.... 피곤한가봐요, 다들, 잘두 자는군요. ^^

파란놀 2012-02-25 11:04   좋아요 0 | URL
저 아래하고 같은 꽃이에요.
저녁이 되면 다들 이렇게
새근새근 자요~

진주 2012-02-25 20:52   좋아요 0 | URL
그쪽은 많이 따스한가봐요.
봄까치 꽃이 벌써 피었네요.
여기선 개불알꽃이라고 해야 알아 들어요^^;;

파란놀 2012-02-25 22:05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
꽃이 봉오리를 굳게 다물었네요~
 
태일이 2 - 거리의 천사
최호철 그림, 박태옥 글,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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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느질하며 배우는 어머니 삶
 [만화책 즐겨읽기 122] 최호철, 《태일이 (2)》

 


 둘째 아이 기저귀싸개 풀린 실을 꿰맵니다. 지난달에 하나는 꿰매었고 다른 하나는 미처 다 꿰매지 못한 채 책상에 올려놓았는데,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갑니다. 이웃집에서 얻어 첫째 아이가 먼저 쓰고 둘째 아이가 물려받아 쓰는 기저귀싸개도 실이 많이 풀려 꿰매야 합니다. 이런저런 집일이 많다며 미적미적 미루며 실올 풀린 채 쓰다가 그만 꽤 많이 풀어집니다.

 

 밤나절에 꿰매고 새벽에 더 꿰맵니다. 아침에 마무리를 짓고 다른 기저귀싸개도 꿰매야 합니다. 한창 바느질을 하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내 어린 날 양말이나 옷을 얼마나 꿰매어 주었는가를 하나하나 떠올리지 못합니다. 집식구 옷가지를 틈틈이 꿰매셨는데, 네 식구 양말이나 속옷이나 겉옷을 꿰매느라 얼마나 잠을 줄이셨는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합니다.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하고, 내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하고, 내 옆지기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하고, 내 옆지기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들은, 또 이분들을 낳은 어머니들은, 먼먼 지난날 하루를 어떻게 보내었을까 궁금합니다. 하루 내내 어떤 일을 하며 삶을 누렸을까 궁금합니다.

 

 아마 이른새벽에 일어나 늦은밤까지 손가락 하나 쉴 겨를 없지 않았으랴 생각합니다. 등허리 한 번 두들길 틈이 없는 하루이지만, 삶을 사랑하는 노래를 고이 건사하며 살림을 일구지 않았으랴 생각합니다.

 


- “작은집에서 주는 일이나 열심히 해요. 애들 공부시키고 좀더 기반 잡을 때까지 딴생각 말아요!” “이 여편네가 재수 없게! 하청 일 백날 해 봐야 기반은커녕 골병 들고 쪽박 차기 십상이야! 기회 있을 때 잡아야지!” “그리고 태일아! 큰집에 들렀다가 네가 다닐 학교 좀 알아봤다. 큰집 조카가 다니는 국민학교에 얹혀 있는 청옥고등공민학교라고, 너처럼 배운 게 늦은 아이들이 다니는 데란다. 공부 계속할 거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창 일손이 모자란 판에. 이제 막 재미 붙이는 아이한테!” (17∼19쪽)


 문학을 하는 이들은 역사소설을 씁니다. 방송국 일꾼은 역사연속극을 찍습니다. 역사소설이나 역사연속극에는 으레 이름난 사내나 힘있는 사내가 한복판을 차지합니다. 이를테면, 임금이나 신하나 지식인이나 싸울아비나 예술쟁이가 나옵니다. 궁궐에서 밥하는 여자가 역사연속극에 나오기도 했지만, 여느 시골마을 여느 살림집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돌보던 어머니들 이야기가 역사연속극에 한 차례라도 한복판에 나온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느 멧골자락 여느 멧골집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키우던 어머니들 이야기를 어느 누구라도 역사소설에서 다룬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삶이 궁금하고,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삶이 궁금합니다. 어떠한 책에도 글에도 영화에도 기록에도 남지 않은 여느 어머니들 삶이 궁금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누구나 스스로 궁금히 여기거나 꿈꾸는 모습대로 살아가지 않나 싶습니다. 궁금히 여기는 모습과 똑같이 살아가지는 않을 테고, 꿈꾸는 모습과 똑같이 살아내지는 못할 수 있을 터이나, 스스로 몸으로 살면서 시나브로 알아차리거나 깨닫지 않으랴 싶어요.

 

 아이들 옷가지나 기저귀싸개를 바느질하면서 어머니들 삶을 곰곰이 돌이킵니다. 옆지기가 양말을 뜰 때에 어떤 삶과 꿈일까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집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가슴에 살포시 안을까 헤아립니다.

 


- “그깟 공부가 대수야? 어차피 중간에 끝낼 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사는 법이야. 빨리 기술 익혀서 돈 버는 게 최고야.” “야, 놀라운데. 자네 빠른 솜씨도 솜씨지만 태일이가 자넬 쏙 빼닮은 것 같아. 허허, 수고했어.” “아니, 더 자지 않고 벌써 일어났어?” “며칠 만에 학교 갈 생각 하니 잠이 안 와요.”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잤는데.” “오랜만에 반장이 학교 가는데 늦지는 말아야죠. 진도도 쫓아가야 하고, 아버지 일도 마쳤으니.” “어디 가냐?” “학교에.” “일 잘한다고 또 일이 들어왔다. 딴생각 하지 말고 일 시작하자!” “여보!” “저, 오늘은 학교에 다녀오면, 안 될.”“뭐 해? 빨리 짐 내리고 정리해야지!” (64∼65쪽)


 내 바느질은 꽤 서툴다고 느낍니다. 어릴 적에도 서툴었고 오늘도 서툽니다. 그렇지만 내 바느질은 서툴기는 하면서 내 어머니가 하던 바느질을 시늉으로는 따라합니다. 실을 자를 때, 바늘코에 꿸 때, 바느질을 마치고 마감할 때, 내 손놀림에서 문득문득 어머니 얼굴을 떠올립니다. 아하, 그래, 내가 우리 아이들만 하던 때, 또는 우리 아이들보다 조금 크던 때, 내 어머니는 나를 옆에 앉히고 이렇게 바느질을 하셨지.

 

 서툰 바느질이기 때문은 아니지만, 바느질을 하노라면 으레 바늘에 찔립니다. 몇 해쯤 앞서는 바느질을 하다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면 뜨끔 하면서 빨간 핏망울이 번졌어요. 엊저녁 바느질을 하며 몇 차례 손가락이 바늘에 쿡 찔리는데, 찔리고 나서 뜨끔 하지 않는데다가 아무런 핏망울이 비치지 않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 꾸덕살이 얼마나 단단히 박혔는데 이쯤 바늘 박힌다고 피가 돌겠느냐 싶다가, 내 어머니도 이러하지 않았겠느냐고, 내 옆지기 어머니도 이와 같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골무를 손가락에 끼는 까닭은 바늘에 찔리기 때문이 아니라, 가느다란 바늘을 잡고 두꺼운 천을 꿸 때에 힘을 덜 쓰고 일을 빨리 끝내려 하기 때문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재봉틀 밟는 사람들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내 어릴 적 우리 집에도 재봉틀이 있었는데, 빌린 재봉틀인지 산 재봉틀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재봉틀을 밟는다면 밤늦도록 할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재봉틀까지 둘 만큼 옷을 손질하고 이불을 꿰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딸린 식구들 옷을 지어야 한다는 소리일 테니까요. 재봉틀 밟으며 잠이나 제대로 이룰까요.

 

 그러고 보면, 재봉틀 아닌 베틀은 먼먼 옛날 어머니들 등허리를 얼마나 고되게 했을까요. 베틀을 밟던 먼먼 옛날 어머니들은 하루가 얼마나 길었을까요.

 

 


- “와, 뭘로 이렇게 불을 지폈어?” “미안해, 형! 아버지가.”“아버지! 왜 교과서를 땔감으로 다 태웠어요? 네? 아버지!” “춥다! 문 닫아라.” (95쪽)


 최호철 님 만화책 《태일이》(돌베개,2007) 둘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실린 작품으로 다 읽었기에 낱권책으로 나왔을 때에 따로 찾아보지 않았으나, 우리 집 아이들이 나중에 무럭무럭 자라 스스로 글과 그림을 함께 읽으며 ‘젊은 전태일 삶’을 헤아리고 싶다 할 때에 《전태일 평전》과 나란히 내밀려면 이 낱권책을 찬찬히 먼저 살펴야겠다고 느껴 새로 읽습니다.

 

 만화책 《태일이》는 《전태일 평전》이나 전태일 님 수기 이야기하고 사뭇 다릅니다. 사뭇 다르다 하는 소리는 줄거리가 다르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여느 자리 여느 사람은 전태일 님 평전이나 수기만 읽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어렵거든요. 어떠한 마을에서 어떠한 살림을 꾸리고 어느 만큼 고단하게 밥을 굶고 힘겨이 일거리 붙잡으며 지냈는가를 헤아리기 어려워요. 1960년대 허름한 달동네 집살이를, 잠 한두 시간 달게 누리지 못하며 일해도 너무 벅찬 살림을, 불 땔 나무조차 없이 매서운 한겨울 추위를 견디어야 하던 나날을, 스스로 살아내지 않고서 어느 만큼 느끼거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글을 읽으며 이러한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지 못하면, 그림이나 만화를 읽는대서 이러한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참다이 그리지 못해요. 글을 읽을 때부터 이 삶자락을 내 마음속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하고, 내 몸으로 이 삶결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 누가 봐도 비참한 생활이었지만 이른봄 차가운 밤공기를 견디며 모처럼 어머니와 태일은 서로 이불을 덮어 주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었다. (166쪽)


 《태일이》 둘째 권은 ‘젊은’ 전태일에 앞서 ‘푸른’ 전태일입니다. 한창 푸른 잎사귀를 돋으며 꿈을 꾸려 하는 전태일을 보여줍니다. 싱그러운 몸과 마음으로 싱그러운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싶은 전태일 삶이 《태일이》 둘째 권에 찬찬히 담깁니다.


- ‘그때 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아직도 서울에서 방황하고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정말 모두가 고맙다. 어떻게든 끝까지 공부해서 지금도 거리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5원의 동전을 받기 위해 양심까지 다 내주어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33쪽)


 푸른 전태일은 배우고 싶습니다. 어떤 돈이나 이름이나 힘 때문에 배울 뜻이 아닙니다. 더없이 푸른 잎사귀인 만큼 더없이 따사로운 햇살을 먹고픈 마음 그대로 배우고 싶습니다. 푸른 잎들이 햇볕을 바라보며 한껏 푸른 빛을 뽐내듯, 푸른 전태일 또한 머리와 가슴과 꿈과 사랑을 북돋우는 온누리를 배우고 싶어요.

 

 배우면서 일하고 싶어요. 배우면서 살고 싶어요. 배우면서 사랑하고 싶어요.

 

 이런 지식 저런 정보가 아닌, 삶을 배우고 싶어요. 이런 학문 저런 교과서가 아닌,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좋은 동무들이랑 좋은 나날을 배우고 싶어요. 좋은 교사하고 좋은 마을살이를 배우고 싶어요. 좋은 어른들과 함께 좋은 두레와 품앗이를 배우고 싶어요.

 

 만화책 《태일이》 둘째 권을 읽는 나도 새롭게 배웁니다.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나도 날마다 새롭게 배우고픈 꿈을 키웁니다. 내 새 삶을 배우고, 내 어버이들 옛 삶을 배우며, 우리 아이들한테 앞으로 다가올 삶을 배우고 싶어요. (4345.2.25.흙.ㅎㄲㅅㄱ)


― 태일이 2 (최호철 글·그림,돌베개,2007.11.5./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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