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놀이 어린이

 


 제 키보다 아주 클 뿐더러 꽤 무거운 대나무를 들고 노는 어린이. 어쩜 너는 그 무거운 녀석을 들고 놀 생각을 다 하니. 무엇이든 네 손에 들리면 놀잇감이 되니. 처음에는 제대로 들지 못해 낑낑거리더니 이제는 아주 가볍게 들고는 휘휘 돌리며 노는구나. (4345.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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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2-29 10:47   좋아요 0 | URL
볼때 마다 느끼지만 참 마당이 넓은 집에 사시네요,,,부럽사와요,,

파란놀 2012-02-29 22:50   좋아요 0 | URL
그래도, 우리 마을에서는
그리 넓은 마당도 아니더라구요 ^^;;;;;;
 

 

 

 


 나 스스로 느끼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6] 로버트 코왈크직(Robert Kowalczyk), 《Morning Calm》(Dawn press,1981)

 


 1969년에 평화봉사단과 함께 한국에 와서 세 해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고 하는 로버트 코왈크직(Robert Kowalczyk)이라고 하는 분은 1972년부터 일본 교토에서 살면서 사진을 찍고 대학교수로 일했다고 합니다. 바지런히 찍은 사진은 일본과 한국과 미국에서 선보였고, 이 가운데 한국에서 담은 한국 이야기를 《Morning Calm》(Dawn press,1981)이라는 책에 담아 일본과 미국에서 나란히 펴냅니다. 이 사진책은 로버트 코왈크직 님으로서는 첫 사진책이라 하는데, 이 사진책 뒤로는 네팔 카트만두와 포카라 골짜기를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고 해요. 이분은 ‘명희(Myung-Hee)’라는 분하고 혼인해서 ‘킴벌리(Kimberlye)’라는 아이 하나를 두었답니다. 사진책 《Morning Calm》에 담은 수채그림은 옆지기 명희 님이 그렸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모두 사진책 《Morning Calm》 책날개에 영어로 적힙니다. 로버트 코왈크직이라고 하는 분 발자취는 한국땅에서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한국사람들 삶자락 담은 사진책을 내고 사진잔치를 열며 한국 아가씨랑 혼인해서 아이를 낳기도 했으니, 한국이라는 나라를 퍽 사랑하며 아끼리라 보는데, 다른 잘 알려진 숱한 ‘한국에 뿌리내리는 외국사람’과 달리, 이분 이름은 깊이 숨겨집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헌책방이 있고 주한미군이 있습니다. 한국땅 헌책방 가운데 이 사진책을 받아들여 예쁘게 꽂은 데가 있었습니다. 주한미군 도서관은 부대에 새로 들어오는 병사가 읽을 수 있도록, 미군부대가 들어선 나라가 문화와 예술과 삶이 어떠한가를 알려주거나 가르치려고 온갖 책을 두루 갖추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갖춘 책들이 좀 묵거나 낡으면 ‘주한미군 부대가 있는 나라 헌책방’에서 돌려읽힐 수 있게끔 내놓습니다. 지난 1960∼70년대뿐 아니라 1980∼90년대에도, 2000∼10년대까지도, 주한미군 도서관은 한국땅 헌책방에 ‘꽤 좋으며 괜찮은 미국책’을 꾸준히 많이 내놓습니다.

 

 내 손으로 들어온 사진책 《Morning Calm》은 ‘US Army camp Red Cloud’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붉은구름 미군부대’라 할 텐데, 서울 용산에 있다고 합니다. 도서관 대출종이가 그대로 있어 이 사진책을 얼마나 읽었는가 살필 수 있는데, 1983년 1월 24일에 도서관에 들였고, 이때부터 꾸준히 읽힌 다음 2001년 7월 3일을 끝으로 더는 읽히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 사진책 《Morning Calm》에 실린 한국 모습은 1970년대입니다. 1981년에 나온 사진책 모습은 끝없는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에 발맞추어 하루가 다르게 바뀌거나 무너집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 무렵이면 꽤 아스라이 멀어진 옛이야기로 여길 만한 모습이에요. 2000년대가 될 무렵이면 좀 생뚱맞게 여길 만한 모습일 수 있어요. 미국땅에서 한국땅 미군부대에 새로 찾아오는 군인한테는 1970년대 모습을 담은 1981년 사진책이 더는 쓸모있다 하기 어렵습니다. 2000년대와 2010년대 미군부대에서는 새로운 ‘한국 이야기 깃든 모습 담은 사진책’을 갖추려 하겠지요. 게다가 이 사진책은 도시가 아닌 시골을 보여줍니다.

 

 문득, 조지 풀러라는 미국사람이 한국전쟁 언저리에 찍은 무지개빛 사진을 담은 《끝나지 않은 전쟁》(눈빛,1996)이라는 사진책이 떠오릅니다. 한국전쟁 무렵 한국땅 모습과 여느 한국사람 이야기가 이 작은 사진책에 꽤 알뜰히 실립니다. 게다가 까망하양 사진이 아닌 무지개빛 사진입니다.

 

 

 

 

 

 

 

 

 무지개빛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1950년대 첫머리 여느 한국사람 모습은 ‘그리 지저분하’거나 ‘그닥 꾀죄죄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끼니 잇기 수월찮은 한국 어린이일 텐데 입성은 그럭저럭 수수합니다. 햇볕에 그을리고 흙땅을 밟는 흙빛 얼굴입니다. 까망하양 사진으로만 들여다본다면 자칫 ‘많이 시커멓게만’ 보일 얼굴이겠으나, 무지개빛 사진으로 들여다보니 아주 싱그러우며 튼튼해 보이는 ‘흙빛’ 얼굴이요 차림이에요.

 

 사진책 《Morning Calm》은 까망하양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 나오는 어른이나 어린이도 자칫 ‘많이 시커멓게만’ 보인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코왈크직 님은 당신이 마주하는 한국사람을 ‘그리 추레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닥 꾀죄죄하’게 보이는 모습으로는 찍지 않아요. 당신이 좋아하는 결을 살려 사진을 찍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이웃을 헤아리며 사진으로 옮깁니다. 그러고 보면, 로버트 코왈크직 님은 한국 아가씨와 짝을 지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면서 한국 아가씨하고 짝을 지었을 테고, 한국을 사랑하는 손길과 마음길로 두 사람 뜻을 사진책 한 권에 곱게 실었겠지요.

 

 

 

 

 

 

 

 

 “The pure, uncluttered atmosphere of the Korean countryside seemed capable of reaching buried chords in the heart of modern man. Nostalgia? Yes. but, also something more than a mere longing for things past. For the feelings presented by the people and places of the Korean coutryside are touching not because they are lost, but because they are here, some where, amid the problems and complexities of our lives. Perhaps in order to see these very important values we must in some way change the focus of our vision and allow ourselves the benefits of true gifts offered.”라는 말마디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로버트 코왈크직이 사진으로 담은 한국 모습은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왔을 때인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바라본 모습입니다.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이 한창 불타오르던 무렵이기도 하고, 시골마을 사람들 삶이 배어나는 사진이지만 이런 자국이 곳곳에 살짝 스며들곤 합니다. 고즈넉하면서 어여쁜 시골마을이지만, 이러한 시골마을까지 ‘슬픈 도시 물질문명’이 파고들려 해요. 돈을 더 벌라고, 돈을 더 쓰라고, 기계를 더 들이라고, 텔레비전을 보라고, 자꾸자꾸 무언가를 부추깁니다. 흙을 일구며 살아오던 이 겨레는 서로서로 돕고 아끼면서 살림을 곱게 꾸렸는데, 이 고운 살림을 스스로 저버리도록 무언가 자꾸 꼬드기며 시골을 망가뜨립니다.

 

 

 

 

 

 로버트 코왈크직 님 ‘한국 시골 사진’은 이 대목 이 갈림길에 선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라지려 하기에 더 예쁘게 감싸’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벌써 잊혀지거나 사라지고 만 모습이기에 꿈 같은 모습이라고 추켜세우지 않습니다. 좋은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사진으로 말합니다. 맑은 터전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맑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사진으로 얘기합니다.

 

 살아가는 빛이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살아가는 빛을 가만히 살펴 찬찬히 선보이는 사진입니다.

 

 1969∼1971년 사이에는 이무렵대로 아름다운 빛이 이 땅에 감돌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덧 이때부터 마흔 해를 지난 2010년대에는 2010년대대로 아름다운 빛이 이 땅에 감돌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옛날과 오늘날은 다릅니다. 옛날과 같은 모습을 오늘날에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옛날은 옛날대로 아름다이 느끼며 누리는 삶입니다.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어여삐 느끼며 누리는 삶이에요. 옛날에도 수도물을 마셔야 하던 사람들이 있고, 오늘날에도 맑은 냇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어요. 옛날에도 자가용을 몰던 사람들이 있으며, 오늘날에도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름답게 얼크러지는 꿈을 꾼다면 아름답게 일구고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꿈을 꾼다면 사랑스레 일구고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넋이 삶이 되고, 삶이 사진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4345.2.28.불.ㅎㄲㅅㄱ)


― Morning Calm (로버트 코왈크직 사진,Dawn press 펴냄,1981)

 

 

 

 

 

 

 

 

 

 

 

 

 

 

 

조지 풀러 사진책은 알라딘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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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 마흔 해 앞서 삶자락을 담은 책이라 하는데, 미리보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사진과 글을 담았는지 궁금하다. 시골 사는 사람은 이러한 때 책 줄거리를 살피지 못하니 얼마나 서운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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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 일기- 청계천 40년 전
최협 지음 / 눈빛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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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순례
서문당 편집부 엮음 / 서문당 / 1988년 6월
평점 :
절판



 사진을 살리는 길, 사진을 빛내는 사랑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5] 임석제, 《韓國의 美, 古寺巡禮》(서문당,1988)

 


 1918년에 태어나 1994년에 숨을 거둔 임석제 님은 한국 ‘현대 리얼리즘 사진’을 일군 분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임석제 님 사진작품을 찾아보기란 아주 힘듭니다. 1940∼50년대에 찍었다고 하는 사진들을 ‘한국 현대 사진 역사’를 다루는 책에 띄엄띄엄 싣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사진책 한 권으로 갈무리해서 선보이지 못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벗고 나서며 이 같은 일을 하면 좋으련만, 또는 이 나라 사진 문화를 북돋우려고 하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이러한 일을 꾀하여 정부 뒷배를 받아 사진책을 내놓으면 좋으련만, 이 같은 일도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 《韓國의 美, 古寺巡禮》(서문당,1988)라는 196쪽짜리 사진책을 찾아내어 읽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사진을 1998년에 처음 배웠습니다. 사진을 처음 배울 때에 사진책을 장만해서 꾸준히 읽으며 스스로 내 눈길과 마음길과 삶길을 가다듬는 일까지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사진기 다루는 손길이랑 사진이 실리는 신문을 읽는 생각길만 배웠습니다. 다만, 나는 사진을 배우기 앞서 언제나 혼자 책을 사서 읽으며 여러 가지를 익혔습니다. 헌책방을 바지런히 돌아다니고, 도서관하고 새책방을 꾸준히 찾아다니면서, 내 나름대로 내가 헤아릴 수 있는 책은 스스로 모두 살피며 익히곤 했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던 때, 학교에서 사진책 사서 읽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나는 푼푼이 돈을 모아 헌책방과 새책방에서 사진책을 장만했습니다. 돈이 모자라면 그저 책방 한켠에 선 채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기계를 다루는 손길은 학교에서 배울는지 모르나, 이 손길 또한 스스로 사진기 단추를 얼마나 자주 많이 누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깨달았으며, 사진을 읽는 마음길이랑 사진을 찍는 눈길 또한 스스로 삶을 어떻게 누리느냐에 따라 새로워진다고 느꼈어요.

 

 

 새책방에는 없고 헌책방에는 드문드문 들어오는 《韓國의 美, 古寺巡禮》를 잘 알아보며 즐거이 장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韓國의 美, 古寺巡禮》가 헌책방에 들어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거나 알아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은 사진을 하는 대로 알아보거나 못 알아봅니다. 사진을 안 하는 사람은 사진을 안 하는 대로 알아보거나 못 알아봅니다.

 

 나는 임석제라는 분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이 사진책을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1998년부터 곧잘 이 사진책을 헌책방에서 보았으나 막상 이 사진책을 장만한 때는 2008년 언저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처음 사진을 배우던 무렵에는 ‘문화재 사진만 밋밋하게 깃든’ 사진책이라고 여겨 슥 훑고는 내려놓았어요. 나는 ‘문화재 같은 건물’을 찍을 마음이 없었거든요. 2008년 무렵에 비로소 이 사진책을 장만한 까닭은 ‘한국 현대 사진’ 이론을 다루는 책을 읽다가 이분 이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 이 사진책을 내놓은 분이 한국 현대 사진 역사에 이름이 나오는 그분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했습니다. 한국 현대 사진을 다룬 이론책에는 임석제 님이 1988년에 내놓은 《韓國의 美, 古寺巡禮》라는 책을 적바림하지 않았거든요. 이분이 1940∼50년대에 어떠한 작품을 내놓았는가랑 1950년대 끝무렵부터 ‘멧자락 찍는 사진’으로 탈바꿈했다는 말만 있었어요.

 

 

 1988년에 나온 《韓國의 美, 古寺巡禮》 책날개에는 1918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서 “개인전 열세 차례”를 열고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장 역임”에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이요 “사진동우회 명예회원”이라는 글줄만 짤막히 적힙니다. 사진을 찍은 이가 남기는 말은 한 줄로도 안 실립니다. 사진하고 동떨어진 불교학자 한 분이 쓴 글만 앞뒤로 실립니다. 불교학자가 쓴 글에는 사진 이야기란 없고, 이 나라 문화와 역사에서 절집과 불교가 어떻게 이바지했는가 하는 이야기만 있습니다.

 임석제 님은 너무 잊혀진 이름이라고 느낍니다. 임석제 님 사진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실마리조차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이해선 님은 1980년에 창작 사진책을 하나 선보였고, 2005년에 어여쁜 사진책 하나 번듯하게 새로 나오기도 합니다. 임응식 님은 문화훈장을 받고, ‘기리는 사진잔치’를 2012년에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눈부시게 열기도 합니다. 책으로도 전시회로도 좀처럼 만날 수 없다면, 임석제 님 사진넋이나 사진길이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묻히거나 잠잘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사진책 《韓國의 美, 古寺巡禮》만 읽으며 임석제 님 사진을 말해도 될까 궁금합니다. 임석제 님이 한창 젊던 무렵 스무 해 즈음 펼친 사진은 모르면서 이 사진책 하나로 사진쟁이 한길과 한삶을 이야기해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지만 슬프고, 하는 수 없지만 서운합니다. 그러나, 임석제 님이 지난날 같은 사진길을 걷지 않기 때문에 굳이 지난날 사진을 들추어 말할 까닭이 없을 수 있겠지요. 임석제 님은 한창 젊던 무렵 바지런히 걷던 사진길은 그치고 새 사진길을 걸은 만큼, 새 사진길을 놓고 이야기할 만하달 수 있겠지요.

 

 

 

 사진책 이름처럼 ‘옛절 나들이’를 하면서 옛절 자취를 보여주는 《韓國의 美, 古寺巡禮》입니다. 옛절 모습을 보여주고, 옛절에 깃든 돌탑을 보여줍니다. 옛절과 함께 나이를 먹는 굵고 우람한 나무를 보여줍니다. 옛절이 깃든 깊은 멧자락이 얼마나 아름답고 푸르게 우거진 숲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임석제 님이 찍은 옛절과 옛절 언저리 사진은 ‘옛절만 곱게’ 담기지 않습니다. 지구별에서 가장 아름답다 여길 만한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나라밖에 널리 내세울 만큼 훌륭한 문화재라는 모습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흔한 말로, ‘신비스러운’ 사진이 아닙니다. ‘고요한 아침 나라’ 같은 느낌이 없습니다. ‘국보나 보물이 된’ 값나가는 물건이라는 느낌조차 없어요.

 

 임석제 님이 담은 옛절과 옛절 언저리 모습은 ‘언제나 사람들하고 함께 살아낸 쉼터이자 믿음터’라고 느낍니다. 사진을 보아도 ‘절집을 드나드는 사람들 모습’이 꽤 자주 나타나요. 절집에서 붙인 걸개천이 곳곳에 보입니다. 우람한 나무 앞에 멋없이 박은 알림판도 보입니다. 예술스럽다거나 종교스럽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꽤 수수합니다. 퍽 투박해요. 부러 힘을 주어 찍은 사진이 아니에요. 괜시리 바람 넣은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으로만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에요. 이 사진을 보고 나서 절집 나들이를 하면 바로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겠구나 싶어요. 어깨에 힘을 뺀 채 홀가분히 담은 사진인 만큼, 푸근하다면 푸근하게 느낄 사진이요, 살갑다면 살가이 느낄 사진입니다.

 

 

 

 국보 이름 붙은 문화재이니까 더 거룩하게 여겨야 하지는 않아요. 수수한 풀과 나무이기에 더 어여삐 바라보아야 하지는 않아요. 모두 사랑스러운 모습입니다. 저마다 애틋한 삶벗입니다. 서로서로 좋은 꿈길입니다.

 

 이야기를 품을 때에 즐거이 읽는 글이 됩니다.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 즐거이 누리는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를 빚을 때에 기쁘게 쓰는 글이 됩니다. 이야기를 일굴 때에 기쁘게 나누는 사진이 됩니다. 사진책 《韓國의 美, 古寺巡禮》는 절집을 나들이할 때에는 절집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느낀다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절집 아닌 배움집, 곧 초·중·고등학교를 찾으러 이 나라 골골샅샅 누비면, 이들 초·중·고등학교 둘레에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얼마든지 느낄 수 있어요. 자그마한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뿐 아니라, 조그마한 학교에서 청소하는 일꾼을 만나며 사진이야기 엮을 만합니다. 깊디깊은 두메에 깃든 학교 사택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고, 깊디깊은 두메가 둘레 숲과 멧자락과 냇물이랑 얼마나 어여삐 얼크러지는가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학교 아이들을 찍을 수 있으며, 학교를 아주 옛날에 마치고 할머니가 된 사람이나 아저씨가 된 사람을 찍을 수 있어요. 마을에서 나고 자라 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다녔고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을 수 있어요.

 

 사진은 더 도드라진 문화나 예술이 아닙니다. 사진은 더 거룩한 문화나 예술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예요. 사진은 더 모자라거나 덜 떨어진 문화나 예술이 아닙니다. 더 높지 않으나 더 낮지 않아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문화나 예술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문화이며 예술이에요. 삶으로 누리는 사진이고, 삶이 꽃으로 피어나는 사진입니다.

 

 

 

 국보급 문화재이든 국보 문화재이든 ‘문화재’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국보라서 더 훌륭하지 않으며, 국보가 아니라서 초라하지 않습니다. 모두 좋은 문화재이며, 모두 사랑스러운 삶자락입니다. 먼먼 옛날 어떤 살림살이가 오늘날에는 국보가 될 수 있고, 오늘날 어떤 살림살이가 먼먼 앞날 국보가 될 수 있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이곳 이 하루를 누릴 때에 즐겁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예쁘게 살아가며 누리는 내 이야기라면 흐뭇합니다. 사진은 언제나 오늘을 씁니다. 글도 늘 오늘을 씁니다. 지나간 아득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도 한다지만, 지나간 아득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기도 해요. 이를테면, 《韓國의 美, 古寺巡禮》처럼 문화재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는 지나간 아득한 이야기와 오늘 살아가는 이야기가 골고루 담깁니다. 곧, 이야기를 담을 때에 사진이 됩니다. 어제를 찍거나 오늘을 찍거나 앞날을 찍는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찍느냐 이야기를 못 찍느냐가 대수롭습니다. 이야기를 살릴 때에 사진이 살고, 이야기를 빛낼 때에 사진이 빛납니다. (4345.2.28.불.ㅎㄲㅅㄱ)


― 韓國의 美, 古寺巡禮 (임석제 사진,서문당 펴냄,1988.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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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05 : 남아수독오거서

 

잊힌 꿈에 대해 생각을 하곤 한다. 어릴 적 ‘남아수독오거서’라는 한자를 배울 때 처음 꿈을 가졌던 것 같다. 그때, 나도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물만두 홍윤-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 23쪽

 

 “꿈에 대(對)해 생각을 하곤”은 “꿈을 생각하곤”이나 “꿈이 무엇이었나 생각을 하곤”으로 손보고, “가졌던 것 같다”는 “가진 듯하다”나 “가졌으리라 본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다섯 수레 분량(分量)의 책”은 “다섯 수레만큼 되는 책”이나 “책 다섯 수레”로 손질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한문을 배워야 하는데, 이때에 으레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같은 한문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뜻이라는데, 중국 옛글에 나오는 말마디입니다.

 

 남아수독오거서
 男兒須讀五車書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
 사내는 모름지기 책 다섯 수레는 읽어야 한다
 사람은 책 다섯 수레는 읽어야 한다
 …

 

 내가 중학생 때에 이 말마디를 처음 들었는지 국민학생 때에 처음 들었는지 가물가물합니다. 아마 중학생에 앞서 국민학생 때에 들었으리라 떠오르는데, 이 말마디를 처음 들으면서 ‘책을 많이 읽으라’는 뜻보다 ‘왜 ‘사람’이 아닌 ‘남자’라고 말하나’ 싶어 몹시 거슬렸습니다. 척 보아도 남자와 여자를 갈라 놓는 말마디이니까요.

 

 중학생이 되어 영어를 처음 배울 때에 ‘man’이나 ‘men’이라는 낱말이 꼭 ‘사내’만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듣습니다. 으레 ‘사내’를 가리키는 낱말이지만, 때와 곳에 따라서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했어요.

 

 나는 이때에도 퍽 거슬렸습니다. 그렇다고 영어를 쓰는 나라나 겨레나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았어요. 말마디에 이토록 ‘사내와 가시내를 금긋는 넋’을 담아야 하는가 싶어 슬펐어요.

 

 이모저모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여느 사람들 여느 말에서는 사내와 가시내를 따로 금긋는 말마디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똑같이 사람이고, 사내를 가리키는 말마디이든 가시내를 일컫는 말마디이든 서로 고르게 어우러져요. 1900년대로 접어들어 소설을 쓰는 이들이 일본 말투를 엉성하게 들여와 ‘그 = 3인칭 사내 가리키는 대이름씨’, ‘그녀 = 3인청 가시내 가리키는 대이름씨’처럼 엉뚱하게 쓰며 이 말마디가 퍼지고 말았지만, 한겨레 말글에서 ‘그’는 ‘사내와 가시내를 가리지 않고 누구한테나 두루 쓰는 대이름씨’일 뿐입니다.

 

 다섯수레 책읽기
 다섯수레 책
 다섯수레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남아수독오거서’라는 말마디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이에요. 이 말마디는 한국말 아닌 중국말이거든요. 중국사람 스스로 즐겁게 쓰려고 지은 말마디입니다.

 

 다시금 생각을 기울입니다. 나는 한겨레붙이입니다. 나는 한국땅에서 태어나 한국사람이랑 이웃으로 지내며 한국말을 씁니다. 나는 한국말을 예쁘게 빛내고 싶습니다. 사람들한테 책을 넉넉히 읽으며 생각을 넉넉히 살찌우라는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면, 아무래도 나는 한국말로 이 뜻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다섯수레 책읽기”라 할 수 있어요. 한 마디로 간추려 ‘다섯수레’라는 낱말 하나 빚을 만해요.

 

 뿌리는 중국 옛글입니다. 중국 옛글에 나온 이야기를 한겨레 나름대로 삭히면 ‘다섯수레’로 옮길 만해요. 글잣수는 한결 적고, 뜻은 한결 또렷하며, 쓰거나 말하거나 듣기에 한결 살갑다고 느낍니다.

 

 한국말 빛깔을 살리면서 조금 더 재미나게 말삶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다섯수레’뿐 아니라 ‘여섯수레’나 ‘일곱수레’라 할 수 있어요. ‘열수레’나 ‘여든수레’라 할 수 있습니다. 열 살에는 ‘열수레’, 스무 살에는 ‘스무수레’, 서른 살에는 ‘서른수레’라 하면 돼요. 나이에 따라 수레 하나씩 늘려, 일흔 살에는 ‘일흔수레’가 되고, 여든 살에는 ‘여든수레’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 삶과 넋을 살찌우는 말을 빛냅니다. “모름지기 열 살에는 열 수레어치 책을 읽고, 일흔 살에는 일흔 수레만큼 책을 읽으라 했다.” 하는 새 한겨레 이야기를 빚으면서 꿈과 사랑을 일굽니다. (4345.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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