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국회의원

 


 읍내만 다녀오면 몸앓이를 한다. 읍내를 넘어 순천시내를 다녀와도 몸앓이를 한다. 순천시내를 넘어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라든지, 인천이나 서울이나, 일산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다녀와도 몸앓이를 한다. 멀리 갈수록 몸앓이는 더 모질고 여러 날 간다. 가깝다 하는 읍내를 다녀오면 하루쯤 몸앓이로 지나가는구나 싶으나, 여러모로 참 힘들다.

 

 읍내에 빵집이 여럿 있다. 시골 읍내에까지 파리바게뜨가 있었으나 지난해 끝무렵까지는 시골스러운 빵집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곳은 크게 넓히는 한편, 한쪽에 걸상을 여럿 두고는 마실거리를 판다. 읍내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꽤나 드문데, 크게 넓힌 빵집에는 사람들이 꽤 북적거릴 뿐 아니라, 알바하는 아이가 셋씩이나 있고, 빵을 굽는 일꾼은 둘이나 된다.

 

 읍내를 다녀올라치면 때때로 ‘국회의원 예비 후보자’를 만난다. 좁은 읍내이니, 이들이 한 번 읍내를 돌며 인사를 하면 어느 골목으로 새더라도 어김없이 얼굴을 마주치며 이름쪽을 받는다. 예비 후보자라는 이 가운데 여러 사람이 고흥 도화면에서 나고 자랐다 한다. 다만, 중학교 갈 무렵이면 하나같이 읍내로 나오고, 고등학교 갈 무렵이면 순천이든 광주로 나가며, 대학교는 아주 마땅히 서울로 나간다.

 

 전라남도 고흥군은 한국땅에서 손꼽힐 만큼 ‘주민이 줄어드는 시골’이다. 해마다 몇 천 사람씩 도시로 빠져나간다. 지난 2011년까지 7만을 가까스로 버티었으니, 해마다 몇 천 사람씩 도시로 빠져나간다는 숫자란 대단히 크다. 시골살이 하겠다며 들어오는 사람이 적잖이 있지만, 이들은 ‘꽤 나이를 먹은 사람’이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로 들어서는 ‘좀 젊다 싶은 사람’은 찾아보기 몹시 힘들다.

 

 고흥하고 이웃한 보성은 어떨까. 아마 보성도 젊은 사람은 가까운 도시인 순천이라든지 광주라든지 여수라든지 목포라든지 쉬 떠날 테지. 돈이나 뭐가 더 되면 대전이나 서울이나 인천이나 부산으로 갈 테지. 이리하여, 고흥군이랑 보성군은 국회의원을 내지 못한다. 고흥군이랑 보성군은 둘을 한데 묶어 국회의원을 한 사람만 내놓는다.

 

 고흥은 군이고, 보성도 군이다.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더라도 군이다. 군인 만큼 땅은 넓다. 땅은 넓되 사람이 적다. 서울이라든지 부산이라든지, 커다란 도시에서는 구마다 국회의원을 뽑는다. 이뿐 아니라, 구에서 두 사람을 뽑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서울이나 부산이라 한다면, 구를 둘로 쪼개야 하기까지 하리라.

 

 그런데, 국회의원을 ‘사람 숫자’를 세며 뽑는 일이 얼마나 알맞을까 모르겠다. 나로서는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에 눈길을 둘 까닭이 없는데, 요즈음 읍내를 다녀오면서 문득문득 ‘정치를 하거나 공무원 일을 하는’ 사람이란 무언가 하는 생각이 곧잘 든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공무원은 왜 있어야 할까? 이들이 없으면 어떨까?

 

 주민세이든, 보험료이든, 세금이든 왜 내야 할까 궁금하다. 새 고속도로를 왜 내고, 새 기찻길을 왜 내야 할까 궁금하다. 새 물건은 왜 만들어야 하지? 새 자동차는 왜 만들어야 하지? 아이들을 왜 학교에 보내야 하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친다는 생각들이지? 대학교는 무엇을 하지? 예술은 뭐고 문화는 뭐지? 문학은 뭐고 스포츠는 뭐지?

 

 밥을 안 먹고 살아갈 사람은 없다. 물을 안 마시며 살아갈 사람은 없다. 바람을 안 들이키며 살아갈 사람은 없다. 밥과 물과 바람이 없다면, 누구라도 죽는다.

 

 가공식품이건 식당에서 사다 먹는 밥이건, 누군가 흙을 일구어야 만들 수 있다. 흙이 없으면 밥이란 없다. 소고기이든 닭고기이든 쌀이든 보리이든 밀이든 배추이든 당근이든, 흙이 있어야 얻는다. 게다가, 이 흙이란 농약과 비료로 찌든 흙이 아니라, 깨끗한 흙이어야 한다. 깨끗한 햇살을 누리고, 깨끗한 물을 마시며, 깨끗한 바람이 흐르는 곳에 있는, 깨끗한 흙이어야 한다.

 

 모든 도시는 쓸데없다고 느낀다. 모든 물질문명은 덧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시골은 차츰 사라지고, 도시는 자꾸 커진다. 시골은 나날이 더러워지고, 도시는 날마다 훨씬 지저분해진다. 시골에서 살아갈 사람은 부쩍 줄고, 도시에서 살려는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는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공무원은 한 사람조차 없어도 된다고 느낀다. 주민등록을 뭐하러 하나. 신분증이 왜 있어야 하나. 경찰은 왜 있어야 하나. 군인은 무얼 하는 사람인가. 모든 정치꾼과 공무원은 그야말로 시골 흙일꾼 등을 후리면서 쇠밥그릇 붙잡는 날라리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정 국회의원이 있어야 하거나 국회의원 일을 하고프다면, 이런 국회의원 몇 사람쯤 둘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국회의원은 마을에 따라 알맞게 두어야 한다. 도시는 워낙 사람이 많으니, 사람 숫자를 따져 더 둘 수 있으리라.

 

 국회의원이 300이든 3000이든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에 걸맞게 일을 하자면, 이들은 달삯을 ‘이제껏 받는 달삯과 견주어 ⅛만 받아도 넉넉’하다. 이보다 더 적게 받아도 넉넉하다. 국회의원은 한 달에 100만 원을 받고 일해도 된다. 다만, 국회의원한테는 ‘모든 찻삯을 거저’로 해 주면 된다. 덧붙여, ‘모든 밥값을 거저’로 해 주면 된다. 국회의원은 일해야 하는 사람이니, 찻삯이랑 밥값만큼은 세금으로 대면 된다. 그러나, 밥값은 한 끼니에 1만 원을 넘지 않게 해야지. 그리고, 국회의원은 배우며 일해야 하는 사람이니, ‘책값 또한 거저’로 해 준다. 무슨 책을 사서 읽든, 국회의원은 언제나 모든 책을 거저로 사서 읽도록 해 준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누구라도, 다달이 100만 원 일삯을 받으면서 ‘찻삯 밥값 책값’은 거저로 하면 아주 씩씩하고 튼튼하며 슬기로이 일할 수 있으리라 본다. 더없이 마땅하지만, 국회의원한테는 ‘전용 자가용’을 주면 안 된다. 늘 대중교통만 ‘거저’로 타야 한다. 그래, 국회의원한테는 ‘전용 자전거’ 한 대를 빌려줄 수 있으리라. 나중에 국회의원을 그만두면 다음 국회의원한테 물려주는 좋은 자전거 한 대를 빌려줄 수 있으리라.

 

 시골에서는 자전거 없으면 다니기 힘들다. 자전거만 있으면 시골에서 못 갈 곳이 없다.

 

 곧, 국회의원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자전거를 타고 한두 시간쯤 달려서 오갈 수 있는 넓이만 한 데에 한 사람씩 있으면 된다. 도시는 좁은 땅에 사람이 워낙 많으니,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도 들를 곳이 많아, 국회의원이 조금 더 많아야 하리라. (4345.3.4.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배고픈 개미 100마리가 발발발 I LOVE 그림책
엘리너 핀체스 지음, 보니 맥케인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을 줄세우는 바보스러운 어른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5] 보니 맥케인·엘리노어 핀체스, 《배고픈 개미 100마리가 발발발》(보물창고,2006)

 


 난 줄 맞추어 걷는 일을 참 싫어합니다. 그냥 걷고 싶은 대로 이리저리 하느작거리며 걸어도 좋고, 잰걸음으로 날쌔게 걸어도 좋습니다. 걷다가 마음껏 쉬어도 좋고, 쉬지 않고 끝까지 땀 뻘뻘 흘리며 걸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줄 맞추어 걷는 일은 그야말로 싫습니다.


.. 살랑살랑 햇빛을 부채질하는 산들바람은 개미들이 가는 길을 바삐 재촉해요. 개미들의 텅 빈 배를 채워 줄 아주 맛난 것이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에요. 배고픈 개미 100마리가 발발발 한 줄로 행진하며 노래 불러요 ..  (5∼6쪽)


 줄 맞추어 걷기는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시킵니다. 이를테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데부터 어른들이 아이들더러 줄 맞추어 걸으라 시킵니다. 다음으로 초등학교에서 시킵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주 끔찍하게 시키고, 사내들은 군대로 끌려가 몹시 모질게 줄을 맞추어 걸어야 합니다(오늘날은 바보짓이 사라졌을까 궁금합니다. 부디 줄맞추기 바보짓이 사라졌기를 빕니다).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가 1987년까지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한 주에 두 차례씩 아침마다 ‘애국조회’를 하며 한 시간씩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꼼짝없이 줄 맞추어 서서 온몸이 뻣쩟해지다가는, 이십 분 동안 제식훈련 하듯 새롭게 줄 맞추어 걸어 교실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꼼짝없이 줄 맞추어 선 채, 차려와 열중쉬어를 되풀이하고 교장선생한테 거수경례 하도록 훈련을 합니다. 조금이라도 줄이 삐끗하다면, 교무주임이나 학생주임이라는 사람이 구령대에서 몇 학년 어느 줄 아무개를 빽 소리 나게 부릅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달음박질로 구령대로 올라가야 하고, 이렇게 올라간 아이는 온 학년 눈알이 쏠린 자리에서 선생한테 짝 소리 나게 따귀를 맞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줄을 똑바로 맞추어 서야 합니다. 이삼십 분에 걸쳐 교장선생 가르침말이 울리는 동안 꾸벅꾸벅 졸거나 머리나 다리가 간지럽다며 긁는 아이가 있으면, 각목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주임선생이나 담임선생이 갑자기 뒤에서 뻑 소리 나게 머리통이나 허벅지를 후려갈깁니다. 조잘조잘 나즈막한 소리로 얘기를 하던 아이도 선생한테 걸리면 따귀이든 발길질이든 주먹질이든 받아야 합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도 어디선가 나타난 무시무시한 얼굴 선생들이 아구통을 뻑 하고 날려요.

 

 

 

 이른아침 한 시간 동안 오줌을 참으며 서는 1학년∼6학년 수천 아이들은 난데없이 얻어터지거나 욕지꺼리를 들으며 하루를 엽니다. 아니, 한 주 첫 하루를 열고, 한 주 마지막 하루를 열어요. 더구나, 이렇게 꼼짝없이 온몸이 뻣뻣하게 굳도록 서서 바보가 되어야 했다가 드디어 교실로 들어가려 하는 때, 앞뒤 줄을 똑바로 맞추어 이십 분에 걸쳐 운동장을 빙빙 돌아 들어가는데, 조금이라도 줄이 흐트러지면 십 분을 더 빙빙 돌아야 하고, 교실로 들어가는데 계단에서 왁자지껄 떠들다 들어가는 모습이 주임선생한테 들키면 다시 운동장으로 불려나가 십 분씩 더 제식훈련 하듯 줄 맞추어 뻣뻣하게 걸어야 합니다.

 

 운동장을 빙빙 돌며 제식훈련 하듯 걸을 때에는 구령대 앞 교장선생 앞을 지나갈 때에 고개를 홱 돌려 경계를 붙이도록 했어요. 이런 경례 붙이기는 중·고등학생 때에도 똑같이 시켰습니다. 그나마, 중·고등학생이 된 뒤에는 국민학생 때처럼 한 주에 두 차례 애국조회를 안 하고, 한 주에 한 차례만 해서 무척 홀가분했어요.


.. “멈춰!” 가장 작은 개미가 외쳤어요. “우린 지금 너무나 더디 가고 있어. 서두르지 않으면 먹을 게 더 줄어들 거야. 자, 그러니까 …… 25마리씩 네 줄로 가면 금방 갈 수 있겠다. 알았지?” ..  (14쪽)


 왜 어른이라 하는 사람은 아이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내 어린 나날 교사 노릇을 하던 이들은 이제 ‘젊은 교사였으면’ 마흔 줄 끄트머리이고, ‘늙은 교사였으면’ 벌써 흙으로 돌아갔다든지 예순 살 안팎인데, 그때 주임선생 자리를 꿰던 이들이라면 아마 손자와 손녀를 볼 나이일 테지요. 이분들은 당신 손자와 손녀한테도 ‘줄 똑바로 맞추어 걷기’를 시킬까요. 한 시간 동안 땡볕과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가만히 서도록 시킬까요.

 

 

 나는 중학생이 된 뒤에 애국조회에서 그럭저럭 조금 나아졌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국민학생 때에는 제식행진을 하며 교장선생 쪽으로 고개를 돌려 거수경례까지 시켰는데,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던 1987년은 바로 전두환 정권 끄트머리로, 인천은 서울 못지않게 민주주의 되찾기 운동 불길이 타올랐어요(이런 줄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만). 이리하여 이듬해,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에(안타깝게도 군인 노태우가 전두환 뒤를 이었지만), 내 중학교 1학년부터 ‘애국조회 제식행진을 하면서 교장선생한테 거수경례 붙이던 짓’ 하나는 사라졌어요. 다만, 거수경례는 안 하나, 고개는 교장선생 쪽으로 돌리는 짓을 시켰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으로 접어들던 때에 노태우가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며, 학교에서 교련 시간이 껍데기만 남고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러면서 ‘애국조회 줄 맞추어 걸리기’도 조금은 가볍게 바뀌었어요.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까지 미처 몰랐는데, 나중에 텔레비전으로 ‘북녘 이야기’를 보며 소름이 끼쳤습니다. 북녘 사람들도 남녘 사람들하고 똑같이 무시무시하게 제식행진을 하면서 ‘거룩한 우두머리’한테 고개를 홱 돌려 인사를 하거나 거수경례를 하잖아요.

 

 아, 아, 남녘 방송국에서는 북녘이 얼마나 틀에 박히고 판에 박히며 억눌린 사회인가를 보여주려고 이런 제식행진을 보여준다 할 테지만, 똑같은 제식행진을 남녘에서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어김없이 시키잖아요. 남녘과 북녘이 무엇이 다르다 하겠습니까. 서로 똑같이 ‘거룩한 우두머리 섬기기’를 시키는걸요.

 

 

 

 군대에서 야외훈련을 나가는 첫날, 곧 RCT·혹한기·혹서기·사단 작전평가·연대 작전평가·또 뭣뭣 끝없는 훈련 첫날, 대대 연병장에 두 시간 즈음 완전군장을 짊어진 채 줄을 빈틈없이 맞추어 땀을 뻘뻘 흘립니다. 대대마다 이렇게 ‘중대급 땅개 일반 병사’가 연병장에 줄을 맞추어 땀을 뻘뻘 흘리며 서서 기다리는 동안, 연대장이나 사단장이 이 부대 저 부대를 지프를 타고 돌며 ‘군장 검사’를 합니다.

 

 아, 아, 군장 검사란 참 얼마나 끔찍한지. 그러나, 군장 검사는 아무것 아니에요. 이제 훈련을 나가며 완전군장에 소총과 탄통을 짊어지고는 하루 여덟 시간 넘게 행군을 할 때에, 앞뒷 사람 줄이 이 미터 넘게 벌어지면 어디에선가 하사관 녀석들이 달려와서 개머리판으로 하이바를 꽝 하고 때리지요. 입으로 차마 내뱉지는 못하지만, ‘×새×’라는 말마디를 속으로 꿀꺽 삼킵니다.


.. 모든 개미들이 여기저기로, 위아래로, 앞뒤로, 뒤엉켜 뒤죽박죽이 되었어요. “아주아주 맛난 것이 무지무지 많을 거야. 자꾸자꾸 배가 꼬르륵꼬르륵 울리네. 야호 야호호!” ..  (23쪽)

 


 국민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열두 해, 군대에서 이태하고 두 달, 모두 열네 해에 걸쳐 ‘똑바로 줄맞추기’에 시달렸습니다. 줄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나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줄을 맞추어 선 사람은 사람이 아닌 톱니바퀴가 되어야 했습니다. 저마다 다른 넋이요, 모두 다른 꿈이고, 다 같이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는 느낄 수 없어요. 오래도록 뻣뻣이 굳어야 하는 몸으로 서서 버티는데, 누구 하나라도 몸이 아프거나 힘들어 비틀거리거나 줄에서 삐쭉 나오면, ‘저 아이 하나 때문에 모두 더 고되게 시달려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집니다. ‘줄에서 삐쭉 나왔으니 저 아이는 얻어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주 마땅하도록 새삼스레 길들여져요.

 

 어른들로서는, 또 교사들로서는, 줄을 착착 맞추어 서야 ‘숫자 세기’에 수월하리라 봅니다. 숫자를 잘 세어야 ‘무리에서 벗어난 녀석’이 있는가 헤아리기에 좋으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관리를 할 생각입니다. 붙잡아 가둘 생각입니다.


.. “멈춰!” 가장 작은 개미가 깽깽거리며 말했어요. “우리가 너무나 더디 기어왔어. 먹을 게 하나도 남지 않았잖아. 너희들이 줄을 맞추느라 너무 꾸물거려서 그래.” ..  (26∼27쪽)

 


 보니 맥케인 님 그림에 엘리노어 핀체스 님 글이 담긴 그림책 《배고픈 개미 100마리가 발발발》(보물창고,2006)을 읽으며 옛일을 떠올립니다. 아이들한테 숫자를 가르치기에 참 좋으며 재미난 그림책 《배고픈 개미 100마리가 발발발》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이 재미나고 좋은 그림책을 재미나며 좋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슬픈 내 모습을 자꾸 되새깁니다. 끔찍하도록 오래오래 길들여진 이 무서운 ‘줄맞추기’가 어쩌면 2010년대 오늘날 초·중·고등학교에도 남지 않았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을 줄맞추어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교실에서는 책상 앞에 줄을 맞추어 앉도록 시키고, 운동장에서는 또 운동장에서대로 줄을 맞추어 서거나 걷도록 시킨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근심스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배고픈 개미들은 개미들 버릇대로 그냥 한 줄로 걸어갔어도 됩니다. 아니면, 아무렇게나 걸어가도 돼요. 왜 그렇잖아요. 우리가 들판에 자리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을라치면 어김없이 개미가 볼볼볼 기어다녀요. 이때에 개미들은 아무렇게나 기어옵니다. 한 줄을 맞추어 기어오지는 않아요.

 

 개미들은 한 줄로 맞추어 움직일 때가 있기도 하지만, 여느 때에는 그냥 저희들 걷고픈 대로 걷지 않느냐 싶어요. 저희끼리 신나게 얼크러지며 걷는달까요.

 

 그러니까, 그림책 개미들은 처음부터 한 줄이든 두 줄이든 넉 줄이든 열 줄이든, 아무 줄을 안 맞추어 걸으면 돼요. 마음껏 걷고, 끼리끼리 수다를 떨며 걷고, 느긋하게 걷고, 잽싸게 걷고, 노닥거리며 걷고, 노래하며 걸으면 돼요.

 

 줄을 맞추어 걸으라 시키는 녀석은 못된 놈입니다. 줄을 세우려고 하는 녀석은 나쁜 놈입니다. (4345.3.4.해.ㅎㄲㅅㄱ)


― 배고픈 개미 100마리가 발발발 (보니 맥케인 그림,엘리노어 핀체스 글,신형건 옮김,보물창고 펴냄,2006.6.10./10500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12-03-04 08:33   좋아요 0 | URL
이책 예전에 아이들에게 읽혀준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줄을 맞춰 가는 장면들이 반복되던 장면에서 꽤 지루하게 읽어준 기억도 나고요
(아이들에겐 반복되는 구절이 있음 좋다고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반복되는 구절이 많이 나오면 읽는 사람 입장에선 아주 지겹더라구요.그래서 전 그런부분 나오면 절망입니다.ㅠ)
헌데 뒷부분에서 반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던 것같아요.
그림은 괜찮던데 말입니다.
내용은 그리 와닿지 않았던 것같아요.

파란놀 2012-03-04 09:43   좋아요 0 | URL
네, 저희도 그림만 보고 샀어요 ^^;;;

이야기는 영...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오직 그림 때문에 별을 다섯 주었고요,
이야기로는 아이한테 읽힐 마음이 없어요 ^^;;;;;;;;
 


 시를 쓰는 마음

 


 시를 맨 처음 쓰던 때는 고등학교 1학년. 한창 입시지옥에 시달리던 나날이었기에 고달픈 몸을 쉬고 아픈 마음을 달랠 좋은 삶동무 시였다.

 

 다음으로 시를 쓰던 때는 신문배달로 먹고살던 스물, 스물하나, 스물넷, 스물다섯. 하루하루 끼니 잇기로도 벅차던 살림이었기에 배고픈 몸을 달래고 시린 마음을 적실 좋은 길동무 시였다.

 

 이러고 나서 오래도록 시를 잊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으로 종잡지 못하던 삶이었기에.

 

 아이를 하나 낳고, 아이를 둘 낳으며, 비로소 다시 시를 쓴다. 두 아이 뒤치닥거리일는지 두 아이와 살림하기일는지 두 아이 사랑하기일는지 잘 모른다. 두 아이랑 노닥거리기 때문에 시를 쓸 수 있는지 모른다. 두 아이 늘 바라보며 맑은 눈빛에 내가 폭 젖어드는 터라 시를 쓸 수 있는지 모른다.

 

 이제 시골마을 조그마한 보름자리에서 온통 홀가분한 꿈을 꾸며 흙을 밟고 나뭇줄기 쓰다듬으며 풀잎을 어루만질 수 있기에, 또다시 시를 쓴다. 꿈동무 시로구나 싶다. 어쩌면 사랑동무 시일 수 있겠지.

 

 하늘이 좋아 시를 쓴다. 도랑물 소리가 즐거워 시를 쓴다. 새봄 풀벌레 소리를 기다리며 시를 쓴다. 바람에 나부끼는 기저귀 퍼덕 소리와 후박나무 꽃잎 색색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를 쓴다. 아이들 사근사근 잠자는 숨소리를 느끼며 새벽녘 시를 쓴다. (4345.3.3.흙.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12-03-03 19:43   좋아요 0 | URL
두 아이랑 노닥거리기를 사랑하실 줄 아시기 때문에 시를 쓰실 수 있는 거라고 생각되어요. ㅋ
새봄 풀벌레 소리를 사랑하실 줄 아시기 때문에 시를 쓰실 수 있는 거라고 생각되어요. ㅋ

파란놀 2012-03-04 04:0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 새벽까지 깨어 옆에서 떠들면...
참 고달프답니다... ㅠ.ㅜ
 

초승달

 


별빛까지 잠든
그믐밤
비로소
물러서며
초승달
예쁘게 뜬다.

 

첫째 아이
손톱 끝에도
초승달
둘 뜬다.
오늘도 미처
못 깎이고 재운다.

 


4345.2.29.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산들보라 딸기 쥐기

 


 둘째 아이한테 딸기 한 알 쥐어 준다. 딸기를 으스러지도록 쥔다. 물이 뚝뚝 흐른다. 방바닥 깔개가 온통 빨갛게 물든다. 그래 그래 이 깔개를 아버지가 잘 빨아 줄게. 넌 네 딸기를 네 마음껏 신나게 갖고 놀렴. 네 옷도 다 빨고 네 몸도 얼굴도 다 씻길게. (4345.3.3.흙.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12-03-03 19:45   좋아요 0 | URL
그런 아빠가 있어서 행복한 아이입니다. ^^

파란놀 2012-03-04 11:10   좋아요 0 | URL
잘 놀아 주기도 해야지요... 이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