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갑 끼고 매듭 풀고 맺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11.

 


  지난해에 마지막으로 책짐을 꾸리자며 책을 묶을 때까지 맨손으로 책을 묶었다. 맨손으로 책을 묶으면, 여느 때에 으레 집일을 많이 하느라 꾸덕살 딱딱히 박힌 내 손은 더 투박하고 더 딱딱하게 바뀐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실장갑을 낀 손으로는 책을 묶거나 풀면 손느낌이 썩 와닿지 않았다. 올들어 이 책들을 끌르며 곰곰이 생각한다. 실장갑을 낀 채 아주 가뿐하게 책을 묶기도 하고 끈을 끌르기도 한다. 끌른 끈을 실장갑 낀 손으로 슥슥 펴서 휘리릭 매듭을 짓고는 빈 상자에 휙 던져서 톡 넣는다.


  내 나이를 돌아본다면 책을 읽은 햇수가 꽤 길다 할는지 모르겠는데, 여태껏 책을 읽은 햇수 못지않게 책을 만진 햇수도 길다. 1995년부터 해마다 살림집을 옮기느라 책짐을 늘 묶고 끌르고 다시 싸고 또 풀고 하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언제나 내 등짐으로 책을 날랐다. 출판사에서 영업부 일꾼으로 한 해 동안 일하며 창고 책을 갈무리하느라 또 책을 수없이 만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한나절 동안 등짐으로 마흔 권짜리 전집 상자 270개를 혼자 등짐으로 나른 적 있다. 이오덕 님 남은 책을 갈무리한다며 또 책을 끝없이 만지작거렸다. 몇 만 권에 이르는 이오덕 님 책을 내 머리속에 찬찬히 아로새기며 어디에 어느 책이 있고 어디에 어느 원고가 있는가를 외우고 살았다.


  두 아이와 살아가기에 하루 한나절 겨우 책 갈무리에 쓸락 말락 한다. 고작 한나절 책을 만지는데 실장갑이 새까매진다. 집에서 건사하며 곱게 돌보려 하는 책들인데, 이 책들을 한나절 만지는 데에도 실장갑은 새까매진다. 내가 읽어 건사한 책들은 헌책인가 새책인가 그냥 책인가. 책을 털고 쓰다듬으며 제자리에 꽂느라 막상 책을 읽을 겨를을 내기 힘들지만, 오늘 하루는 이 책들을 만지작거리는 겨를을 냈다는 대목을 고맙게 여기며 싱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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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풀려나는 책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10.

 


  지난해 유월부터 구월까지 아주 신나게 책을 묶었다. 이 책들은 끈으로 묶인 채 짧으면 여섯 달 남짓, 길면 아홉 달이나 열 달 즈음 지내야 했다. 이제 이 책들을 하나하나 끌른다. 겨우 숨통을 트는 책들은 오래도록 묶인 나머지 끈 자국이 남는다. 돌이키면, 이 책들은 2010년 가을에도 꽁꽁 묶이면서 끈 자국이 남아야 했다. 이에 앞서 2007년 봄에도 꽁꽁 묶이면서 끈 자국이 남아야 했고, 2005년 가을에도 꽁꽁 묶이며 끈 자국이 남아야 했다. 나는 이 책들을 얼마나 자주 묶고 얼마나 자주 날랐으며 얼마나 자주 쌓거나 쟁여야만 했던가. 부디 다시는 더 끈으로 묶지 않기를 빈다. 앞으로는 고운 손길 예쁘게 타면서 살가이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새 책꽂이 먼지를 닦고 차근차근 자리를 잡는다. 자리를 잡은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천천히 풀려나는 책들이 좋아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좋고 책들도 좋다. 나도 기쁘고 책들도 기쁘다. 너덧 시간 쪼그려앉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며 책을 끌르고 꽂지만 힘들 줄 모른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로소 팔다리 무릎 어깨 등허리 몽땅 쑤시고 결리며 저리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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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14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도 사름벼리가 함께 했군요 ^^
마음은 바쁘시겠지만 그래도 제목에 쓰셨듯이 천천히 해나가세요.
묶고, 끌르고...그게 우리 사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란놀 2012-03-15 04:14   좋아요 0 | URL
묶고 끌르는 삶에서
사랑하고 아끼는 삶으로
천천히 거듭나고 싶어요.. @.@
 
京都迎賓館 (大型本)
平凡社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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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려는 사진책은 안 뜨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진책이 있으니 반갑다. 이 사진책은 나중에 장만해서 찬찬히 소개할 생각이지만, 그때에는 그때 또 쓰기로 하고, '무라이 오사무'라고 하는 사람이 빚는 '건축사진' 삶이 어떠한가 하는 이야기를 적바림해 본다.

 

 

 


 서로가 서로를 찍는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3] 무라이 오사무(村井修), 《李朝の建築》(求龍堂,1981)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이 이웃 일본으로 찾아가 사진을 찍는다면, 어떠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어떠한 사람들을 만나고 어떠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일본을 찾아가기 앞서 일본 발자취를 얼마나 더듬고, 일본사람을 사진으로 담기 앞서 일본 문학과 문화를 어느 만큼 짚으며, 오늘날 일본이 누리는 삶을 어떻게 살피며 사진으로 드러낼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사람이 ‘일본 옛 문화’를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굿 사진을 즐겨찍던 김수남 님이 일본 류우큐우 옛 문화를 더러 사진으로 담기는 했다지만, 일본땅 곳곳을 돌며 온갖 문화와 문학을 골고루 보여주는 사진은 아직 만날 수 없습니다. 한국사람이 찍는 일본 모습이란 으레 도쿄 한복판 눈부신 가게들 늘어선 모습이기 일쑤입니다. 예쁘장하다는 가게들이나 골목에 머물곤 합니다. 맛집을 찾거나 멋집을 보여주곤 합니다. 꼭 이뿐입니다. 여우가 한갓지게 굴을 파는 자연을 살피거나, 미군기지를 몰아내자고 하던 류우큐우 마을사람 움직임을 짚거나, 일본땅 한겨레 웃음과 눈물을 고루 선보이거나, 하는 모습은 참 드뭅니다(아예 없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일본사람은 이웃 한국으로 찾아와 수없이 사진을 찍고 수없이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한국땅 맛집과 멋집을 이야기합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한국 옛 문화를 이야기합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비단길 발자취가 한국을 거친 흐름을 이야기합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조선 무렵 양반 물결이라든지, 한국땅 아름다운 자연이라든지, 백두산과 한라산이라든지, 서울 북촌이나 서울 골목길이라든지, 때로는 한국사람 스스로 느끼지 않거나 살피지 않던 데까지 골골샅샅 누비며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이야기를 따사롭고 넉넉하게 들려줍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한국사람은 제 나라 한국땅조차 제대로 밟지 않았구나 싶어요. 곰곰이 돌이키면, 한국사람은 제 겨레 발자국마저 찬찬히 읽지 않았구나 싶어요. 이래저래 살피면, 한국사람은 제 보금자리를 곱게 여미면서 아끼는 길조차 너무 멀구나 싶어요.


  무라이 오사무(村井修) 님 사진을 내건 두툼한 책 《李朝の建築》(求龍堂,1981)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李朝の建築》에는 무라이 오사무 님 사진 말고도 여러 사람 사진을 싣지만, 거의 모두 무라이 오사무 님 사진이요, 무라이 오사무 님은 《李朝の建築》에 실린 옛 조선 한옥을 샅샅이 누비듯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아주 틀림없는 일일 텐데, 무라이 오사무 님은 한국땅 조선 무렵 한옥을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기 앞서, 일본땅 옛 일본 옛날 집을 두루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았겠지요. 제 삶자락을 사랑스레 돌아보던 눈길로 이웃나라 삶자락을 사랑스레 돌아볼 수 있겠지요. 제 삶이웃을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던 손길로 이웃나라 삶이웃이랑 사랑스레 손을 맞잡을 수 있겠지요.


  한국에서 살아가며 눈부시게 파란 빛깔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느끼지 못하던 가슴으로는, 몽골이나 티벳이나 네팔이나 칠레나 수단이나 가나나 모잠비크로 찾아간다 한들 이곳에서 올려다볼 눈부시게 파란 빛깔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내 작은 마을 내 작은 집에서 내 옆지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느끼지 못하는 마음으로는,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베트남이나 수리남이나 뉴질랜드로 찾아간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마주할 이웃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하고 맞아들일 수 없습니다.


  삶은 이곳부터 삶입니다. 삶은 그곳까지 삶입니다. 사진은 여기에서 비롯합니다. 사진은 저기까지 사진입니다.

 

 

 


  두툼한 사진책 《李朝の建築》에는 무지개빛 사진을 꽤 많이 싣습니다. 까망하양 사진도 곧잘 싣습니다. 아직까지 한국땅 한국사진으로는 한국 옛집 사진을 담으며 무지개빛 사진으로 눈부시게 담는 손길이 꽤 모자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다른 빛살과 빛무늬를 무지개빛으로 담는 손길뿐 아니라, 까망하양으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 하고 담아내는 손길을 스스로 깨닫지 않습니다. 무지개빛으로 담을 줄 모르면 까망하양으로 담을 줄 모르고, 까망하양으로 담을 줄 모르면 무지개빛으로 담을 줄 모릅니다. 삶을 담을 줄 모르면 사진으로 담을 줄 모르며, 사진으로 담을 줄 모르면 삶으로 담을 줄 모릅니다.


  일본사람이 어딘가 더 잘났기에 이웃나라로 찾아와 “이웃나라 옛 발자취와 모습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선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 어딘가 더 어수룩하기에 이 나라 골골샅샅 안 누비고 이 나라 골골샅샅 이야기를 안 적바림한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사진이란, 서로가 서로를 찍으며 이루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루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이루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이루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이루어집니다.

 

 


  나 혼자 바라보며 찍을 때에는 사진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치우친 눈길이 되거나 용두질이 되기 일쑤입니다. 나 혼자 생각하며 찍든, 나 혼자 사랑한다 외치며 찍든, 언제나 사진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믿으며 사랑하는 동안 시나브로 이루어지는 사진이에요.


  우리 집 좋은 살붙이를 사진으로 담든, 내 오래된 동무를 사진으로 담든, 아리따운 아가씨를 모델로 삼아 예쁜 옷을 입혀 사진으로 담든, 출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만나 시끌벅적 떠들며 술 한잔 걸치며 놀다가 사진으로 담든, 언제나 사진이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룹니다. 외길이 아닌 사진입니다. 외곬이 아닌 사진이며, 외통수 아닌 사진이에요.


  서로 손을 잡는 사진입니다. 서로 만나려는 사진입니다. 서로 아끼고 돌보며 믿으려는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못 본 척하지 못해요. 사진으로 찍기에 그냥 지나치지 못해요.


  사진으로 찍기에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나중에도 두고두고 떠올립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한 자리에 멈춥니다. 사진으로 찍기에 오래도록 머물기도 하면서 서로 웃음과 눈물을 살뜰히 빚습니다.


  일본사람 무라이 오사무 님은 아주 좋은 선물을 아주 스스럼없이 아주 수수하게 내밀었습니다. 아끼는 마음으로 사진을 빚고 사랑하는 손길로 사진을 일구어 좋아하는 눈짓을 하며 《李朝の建築》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었습니다. (4345.3.13.물.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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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3-14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건축 사진들을 참 좋아하는데,다른나라 사람이 어찌 이리 우리 동네 사진들을 고요하게 잘 찍었더래요? 찍는 구조나 방식이 꼭 우리손으로 찍은 것같으네요.^^
여튼..일본작가들은 어느방면에서나 고수들이 꼭 있어요.샘나게스리~

부디 더 분발하여 주세요.^^;;

파란놀 2012-03-14 16:06   좋아요 0 | URL
한국사람은 가끔 찍을 뿐,
또는 주어진 일감으로 찍을 뿐,
온넋을 들여 사랑스레 마주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담아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고수라서 잘 찍는 사진이 아니라,
마음을 담기에 즐거이 찍는 사진이 돼요.

2012-03-14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4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진 - 빛과 그림자의 예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18
캉탱 바작 지음, 송기형 옮김 / 시공사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서양에서 사진을 만들어 걸어온 길
 [찾아 읽는 사진책 82] 캉탱 바작, 《사진》(시공사,2004)

 


  사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갈피를 잡지 못하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야구를 하며 살아가는 이라 한다면, 스스로 야구가 무엇인가 하고 갈피를 잡지 않을 때에 흔들리거나 샛길로 빠집니다. 과학을 하든 문학을 하든, 예술을 하든 여느 공무원으로 일하든 늘 매한가지입니다. 시골 면사무소 일꾼으로 일할 때에는 시골사람다운 넋에 면사무소 일꾼다운 땀방울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늘 제 삶자리를 옳게 바라보며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 할 때에는, 어버이다운 꿈과 사랑을 짓는 나날이어야 합니다. 이래저래 아이가 태어났으니 어버이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살가이 꾸리는 좋은 살림을 빚을 때에 비로소 어버이라 할 만합니다. 나이를 먹기에 어른이 아니에요. 어른다이 살아갈 때에 바야흐로 어른입니다. 아이들 가운데 너무 이른 나이에 생채기를 많이 받거나 아픔이 잦은 나머지 ‘애늙은이’가 되는 슬픈 목숨이 있어요. 이 아이들은 스스로 얼마나 사랑스러운 나날이요 어린이다운 꿈인가를 생각하지 못해요. 그래서 겉으로는 아이들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까맣게 타들어 간 외로운 넋이에요.


  사진은 한국사람이 빚지 않았습니다. 사진은 한국사람이 누리지 않았습니다. 사진기는 한국사람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람처럼 거의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마음껏 사진을 찍는 지구별 사람도 없으리라 느낍니다. 참말, 한국사람은 사진 없이는 죽을 사람 같습니다.


  필름이나 메모리카드를 쓰는 사진기 말고, 손전화로 찍는 사진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합니다. 어린이부터 할멈 할아범까지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지만, 막상 ‘사진을 누가 만들었을까’라든지 ‘사진을 왜 만들었을까’라든지 ‘사진이 어떻게 이 나라로까지 흘러들어 널리 퍼졌을까’ 같은 대목을 헤아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서양사람 캉탱 바작 님이 엮은 《사진》(시공사,2004)이라 하는 책을 읽습니다. 책이름은 더도 덜도 아닌 ‘사진’입니다. 오직 사진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따지고, 오로지 사진이 어떻게 흘러왔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이 기념할 만한 회의가 있고 며칠이 지나자 벌써 “광학 기계 상점들은 다게레오타입 애호가들로 붐비게 되었다. 역사적 기념물과 각종 건물 및 조각품 들에 사진기를 들이대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자기 집 창가에서 보이는 전망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했다. 가장 형편없는 사진조차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낳을 정도로 이 기법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것이었고 당연히 경이롭게 받아들여졌다(24∼25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프랑스이든 영국이든 독일이든 어디이든, 유럽에서 처음 사진기계를 만들어 특허를 내놓을 무렵, 이들은 너나없이 온갖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건사하고 싶었다 합니다. 그러면 이무렵, 이른바 1800년대 끝무렵 즈음 한국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한겨레 사람들은 어떤 삶을 누리고, 어떤 넋을 빛내며,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요.

  사진이 처음으로 한국땅에 들어올 무렵, 사진기를 쓰는 한국사람도 나타날 무렵, 여러모로 서양사람이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찍을 무렵, 일본사람조차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 한국땅 골골샅샅 사진으로 담을 무렵, 한국사람은 이 사진을 어떻게 느끼거나 바라보았을까요.


  오늘날 한국사람은 1800년대 끝무렵과 1900년대 첫무렵에 서양과 일본에서 한국땅 골골샅샅 누비며 한겨레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듯,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인도나 네팔이나 티벳이나 몽골이나 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나 여기저기로 찾아다니면서 온갖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라밖 가난한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가난을 얘기하고, 나라밖 해맑은 자연을 사진으로 찍으며 자연을 노래하며, 나라밖 여느 사람을 사진으로 옮기며 삶과 꿈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미국에서는 대개 이름없는 떠돌이 사진사들이 사진 제작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37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해마다 모든 초·중·고등학교에다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까지 졸업사진책을 내놓습니다. 혼인사진이나 돌사진은 으레 사진첩 한 권으로 두툼하게 묶입니다. 졸업사진책이든 혼안사진책이든, 이러한 사진책에 사진쟁이 이름이 박히는 일은 없습니다. 갓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이를 찍는 어버이는 제 아이들 사진에 제 이름을 새기지 않습니다.


  “초기의 영국 칼로타입 사진가들은 사회학적으로 상당히 동질적인 부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춘 그들은 과학만이 아니라 예술에도 관심이 있었고, 돈과 시간이 충분하여 오락과 취미에 탐닉할 수 있었다(40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사진은 틀림없이 어떤 모습을 꾸밈없이 담는다 합니다. 사진은 참말 어떤 모습을 내가 바라보는 대로 옮긴다 합니다.


  그러면, 내가 바라보는 어떤 모습을 고스란히 옮기는 일은 어떤 값을 하나요. 사진기가 1/100초이든 1/1000초이든 시간을 잘라내어 어떤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 하는 일이란 어떤 뜻을 담나요.


  사진을 찍는 일이란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 일이 될까요. 사진으로 찍어 어느 모습 하나를 되새기는 일이란 내 삶을 얼마나 좋아하는 일이 되나요. 사진으로 찍힌 삶과 사진으로 안 찍힌 삶은 서로 얼마나 다를까요.


  “부유한 부르주아지를 겨냥한 초호화판 사진관들은 대도시의 중심가에 자리를 잡았다 … 로열층에 위치한 사진관은 대리석과 수정으로 치장되었다. 사진관에 들어서면 치과병원의 대기실보다는 응접실에 더 가까운 방이 손님을 맞이했다(59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사진책 《사진》을 읽는 내내, 돈이 없고 이름이 없으며 힘이 없는 사람들이 누렸음직한 사진 이야기는 한 줄로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사진이 없고, 고단한 사람들한테는 사진이 멀며, 아프거나 슬프거나 힘든 사람들 둘레에는 사진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술을 하거나 신문기자 일을 하는 사람 가운데 몇몇이 뒷골목을 드나들며 사진 몇 장 찍곤 한다지만, 막상 뒷골목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제 삶자리를 사진으로 옮기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글을 쓰는 사람 가운데에는 뒷골목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옮기는 이가 더러 나타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가운데에도 제 어둡거나 슬프거나 힘겹던 지난 삶자락을 낱낱이 옮기는 이가 드문드문 나타납니다. 그런데, 삶이든 무엇이든 꾸밈없이 담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는 사진 갈래에서만큼은, 좀처럼 여느 자리 여느 삶 여느 이야기 여느 꿈 여느 사랑을 들려주는 사진쟁이를 만나기 어려워요.


  “남북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의 철도 회사들은 사진가들을 고용하여 그들에게 한창 진행중인 철로 건설 사업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기차가 통과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도록 했다(79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참 옳구나 싶으면서 참 슬프네 하고 느낍니다. 무언가 먹고살 길을 찾자면, 돈이 있는 사람이 시키는 일거리를 얻어야 한답니다. 어찌저찌 살림을 꾸릴 길을 걷자면, 돈이 될 사진을 찍고, 돈을 거머쥔 사람한테 가까이 다가서야 한답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다면, 참으로 이와 같다면, 내 좋은 보금자리에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빚으면서 내 좋은 꿈과 사랑을 살가운 이야기로 빚는 사진길을 걸으면 될 노릇 아니랴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돈을 버는 삶이 아닌, 내 삶을 사랑하며 누리는 나날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그지없이 아름다운 모습 아니랴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이란 고스란히 드러내는 빛살이요, 삶이란 고스란히 누리며 어깨동무하는 빛줄기일 테니까요.


  오늘날 한국땅에서 사진을 배우고 싶다 말하는 푸름이와 젊은이는 으레 서양 학문을 배우고 서양 문화흐름을 좇으며 서양으로 몸소 찾아가 사진학교를 다닙니다. 아무래도 사진이 태어나고 널리 퍼진 데는 서양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기 때문이고 일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좀 달리 느낍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꼭 에스파냐라든지 덴마크로 글배움을 하러 가야 할까 궁금합니다. 시를 쓰거나 동화를 쓰거나 희곡을 쓰는 사람이 애써 칠레나 스웨덴이나 독일로 글배움을 하러 떠나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림을 그리고픈 이가 네덜란드나 벨기에나 영국으로 그림배움을 하러 찾아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내 곁 좋은 삶을 깨닫고 내 둘레 좋은 사람을 느끼며 내 자리 내 모습과 내 꿈과 내 사랑을 헤아리면서 사진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면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 스스로 내 자그마한 사진기 하나로 ‘내 새로운 사진길’을 열면서 ‘내 고운 꿈 실은 사진역사’를 이루면 어떠한 그림이 될까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특허가 될 수 없던 사진입니다. 처음부터 누구한테서 배우지 못하는 사진입니다. 고스란히 담는 사진이라는 빛깔이기 앞서, 내 눈길은 내 삶을 얼마나 고스란히 바라보며 고스란히 맞아들이고 고스란히 즐길 줄 아는가를 스스로 찾을 때에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노래이든 영화이든 춤이든 만화이든 시나브로 예쁘게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서양사람은 서양나라에서 서양물결대로 사진을 이룹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국결대로 사진을 일굽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사람대로,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누구나 제 삶을 사랑하는 결대로 사진을 보듬습니다. (4345.3.14.물.ㅎㄲㅅㄱ)


― 사진 (캉탱 바작 글,시공사 펴냄,2004.2.28./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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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60) 바닥살이

 

북망산에 간다 한들 바닥살이 아니드냐
《박영근-솔아 푸른 솔아》(강,2009) 25쪽


  바닥에서 살아가는 나날이기에 ‘바닥살이’입니다. 이른바 한자말로 하자면 ‘빈민생활(貧民生活)’쯤 될 테지요. 이보다 더 가난하게 살아가는 나날이라면 ‘밑바닥살이’가 될 테고, 그야말로 아무것 없이 쓸쓸하며 힘겨운 나날일 때에는 ‘맨바닥살이’가 됩니다.


  시를 쓰는 이들은 말을 빚습니다. 말로 꽃을 피우고, 말로 삶을 살찌웁니다.


  글을 쓰는 이들은 넋을 짓습니다. 글로 사랑을 나누고, 글로 믿음을 북돋웁니다. (4345.3.1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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