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 - 강제 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
우토로를지키는모임 지음, 배지원 옮김, 권철 사진 / 민중의소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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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넋을 사진으로 담을 때
 [찾아 읽는 사진책 85] 우토로를지키는모임·권철, 《우토로》(민중의소리,2005)


 

  《우토로, 강제 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민중의소리,2005)이라는 책 하나 2005년 여름에 조용히 태어나 조용히 알음알음으로 읽히다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우토로 마을 사람들은 요즈음 어떻게 살아갈까요. 예나 이제나 억지로 쫓겨나야 할 판일까요. 이제는 느긋하게 살림을 꾸리며 마을을 곱게 돌보는 나날을 누릴까요.


  우토로라 하는 마을이 어떤 곳인지 나는 잘 모릅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으니 방송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렀다 하더라도 본 적이 없고, 따로 인터넷으로 찾아서 살펴본 적도 없습니다. 오직 책 몇 가지로 우토로 마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나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오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교토부 직원도 잽싸게 철수하고 우리들만 여기에 남겨졌습니다. 여기저기에 호박 심고, 감자 심고 그랬습니다(22쪽/김임생 할아버지 증언).” 하는 말마디를 찬찬히 곱씹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신 지난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높임말을 씁니다. 그렇구나, 높임말을 쓰는구나.

 


  처음 우토로 마을이 뿌리를 내리던 무렵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여기저기에 호박이랑 감자를 심었으면, 이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한국땅에서 흙일꾼 아들로 태어났겠지요. 한국에서 억지스레 일본으로 끌려가 막일을 해야 하는 판인데에도 호박씨랑 씨감자를 건사할 만큼, 할아버지를 비롯해 이곳 사람들은 흙을 아끼고 삶을 사랑하며 하루하루 고마이 누릴 줄 알았겠지요.


  호박꽃이 피고 감자꽃이 피는 모습은 얼마나 예쁠까 헤아려 봅니다. 이 두 가지 푸성귀만 심었을 턱이 없을 테니, 온갖 푸성귀와 곡식이 골고루 알맞게 자랐겠지요. 따순 봄햇살과 함께 숱한 들꽃과 풀꽃이 어우러졌겠지요. 그닥 넓지 않은 땅뙈기라 하더라도 작은 손으로 작은 밭을 일구며 곱고 좋으며 착한 마을이 되도록 땀을 흘렸겠지요.


  “낮은 임금에 강인한 노동력을 가졌다고 평가된 조선인 노동자 1300여 명이 중노동을 위해 각지에서 모집되었습니다(44쪽).” 하는 말마디를 되뇝니다. ‘대한민국’ 이름에 앞서 ‘조선’이던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던 일본 제국주의는 여느 흙일꾼을 막일꾼으로 부려먹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앞서 ‘조선’이던 때에도 궁궐 권력자와 지역 권력자는 여느 흙일꾼을 이곳저곳에 울력을 시킨다며 부려먹었어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여느 흙일꾼을 비정규직으로 부려먹다못해, 나라밖 착한 사람들마저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데리고 와서 부려먹습니다. 낮은 일삯과 대접과 눈길을 받으며 모두들 시름시름 앓습니다.

 

 


  “우토로 문제의 역사적 원인을 만든 것은 일본 정부이자 닛산차체입니다. 이 주역들을 빼고 원고와 피고만의 소송에서 우토로 문제가 근본적으로 풀릴 리가 없습니다(83쪽).” 하는 말마디를 헤아립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아파 울먹여야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이 나라에도 저 나라에도 힘·돈·이름 있는 사람들은 힘·돈·이름 없는 사람하고 살가이 나누는 길을 좀처럼 안 걷습니다. 서로서로 오붓하게 지내면 좋을 텐데요. 서로서로 살림을 나누고 사랑을 주고받으면 기쁠 텐데요. 넓디넓은 땅뙈기를 홀로 차지해서 무슨 재미가 있나요. 어마어마한 돈더미를 홀로 끌어안고서 무슨 즐거움이 있나요. 무시무시한 힘을 휘두른대서 어떤 보람이 있나요.


  나라와 나라가 ‘자유무역’을 하자고 협정을 한다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무역협정이라 한다면 ‘자유’에 앞서 ‘평화’와 ‘평등’을 적바림해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평화요 평등이며 통일을 아름다이 누리면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즐거운 삶이 아닌가 생각해요. 평화도 없고 평등도 아니요 통일도 없는데 자유만 내세운다 한다면, 이러한 자유는 얼마나 자유다운 일이 되나요. 자유라는 이름표만 붙일 뿐, 정작 힘센 이들이 힘여린 이를 내리누르는 돈벌이가 아니랴 싶어요.


  “왜 지금에 와서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까? 우토로에 일본사람이 반 정도만 살았었더라도 이런 짓은 못할 것입니다. 고국에서 쫓겨나와 걸레처럼 일을 시켜 왔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방치되어 왔는데, 이제는 지금 살고 있는 토지를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92쪽/문광자 할머니 증언).” 하는 말마디를 들으며 슬픈 마음을 누르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좋은 이웃으로 삼는다면, 걸레짝처럼 일을 시키며 부려먹다가 헌신짝처럼 내버리지 않습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이 일하다가는, 다 함께 웃고 떠들며 잔치를 벌이거나 쉬겠지요.


  참말, 《우토로》라 하는 자그마한 책에는 슬픈 이야기와 아픈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건설공사 관계로 알게 된 일본인도 어떻게 토지를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걱정을 해 줍니다. 마음은 대단히 고맙지만, 우토로 운동은 토지를 싸게 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103쪽).” 하는 말처럼, 우토로 이야기를 엉뚱하게 받아들이거나 잘못 살피는 눈길마저 있습니다. 땅을 싸게 사겠다는 우토로 마을 사람들이 아니지요. 고향나라를 빼앗긴 채 버려져야 했던 숱하고 기나긴 나날이 있고, 작고 여린 이웃들이 서로 어깨동무하며 살아온 작은 땅뙈기가 있으며, 버려진 땅뙈기에서 힘겨이 애쓰며 일군 고운 꽃누리를 함부로 쇠삽날로 깎거나 찍으려 하니까 온몸으로 외치는 목소리가 있어요.

 

 


  《우토로》에 실린 사진들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아프고 힘들며 외로운 사람들 얼굴과 몸뚱이가 찬찬히 드러납니다. 까망하양 빛깔로 담은 사진이 슬프며 힘겹고 서러운 이야기를 북돋웁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우토로 마을 사람들 이야기라 한다면, 아픈 이야기요 힘든 이야기에다가 외로운 이야기일 테니까, 까망하양 빛깔이 걸맞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호박씨랑 씨감자를 건사하며 심어 기르던 이야기가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호박꽃이랑 감자꽃이 흐드러질 봄날 어여쁜 꽃누리 마을, 우토로 마을, 새봄 예쁜 골목마을 모습이 눈앞에 어른어른합니다.


  작은 땅뙈기 작은 집들 작은 사람 모습은 참으로 작을 테지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안 아픈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나긴 나날을 울기만 하면서 살지는 않았으리라 느껴요. 눈물과 함께 웃음이 있고, 서러움과 함께 두레랑 품앗이가 있었으리라 느껴요. 눈물만 있었다면, 서러움만 가득했다면, 아픔과 생채기만 울부짖었다면, 우투로 마을 목소리가 곳곳에 울려퍼질 일은 없었으리라 느껴요.

 


  《우토로》 겉에는 꽃송이 하나 핀 모습이 담깁니다. 참 좋구나 하고 생각하며 사진을 읽는데, 꽃송이 하나 핀 모습은 겉그림 사진으로 그칩니다. 틀림없이 할머니 주름살과 할아버지 꾸덕살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하는데, 그렇더라도 작은 마을 작은 텃밭 한 평을, 작은 마을 작은 집 작은 빨래 한 장을, 작은 마을 작은 아이들 작은 놀이 한 가락을, 살포시 담아서 가만히 선보일 수 없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가난한 어버이’나 ‘가멸찬 어버이’를 만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사랑스러운 어버이’를 만납니다. 아이들은 ‘가난한 동무’나 ‘가멸찬 동무’를 사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동무’를 사귀어 ‘사랑스러운 놀이’를 즐겨요. 우토로 이야기에서 이와 같이 사랑스러운 사람들 사랑스러운 이야기 사랑스러운 사진을 마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어여쁘며 좋았을까 하고 꿈꿉니다. 왜냐하면, 우토로 마을 사람들은 꽃송이처럼 보드라우며 예쁜 넋이요 삶이며 사랑일 테니까요. (4345.3.17.흙.ㅎㄲㅅㄱ)


― 우토로, 강제 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 (우토로를지키는모임 엮음,권철 사진,민중의소리 펴냄,2005.7.23./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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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를 말하는 책이 세 가지 있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는 어느덧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졌고, 동화책 하나 남는다. 이 동화책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직 살았을 때 장만해 두어야 하겠지.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찬찬히 헤아리며 담아낸 책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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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의 희망 노래
최은영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3월
12,500원 → 11,250원(10%할인) / 마일리지 620원(5% 적립)
2012년 03월 1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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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흙

 


  일본에서 이름난 어느 소설쟁이를 기리는 대단한 전시관을 서울 노량진에 있는 헌책방 사장님이 읽던 일본 잡지에서 본 적 있다. 헌책방 일꾼 한삶을 마흔 해 넘게 일구는 사장님은 소설쟁이도 소설쟁이라 할 테지만, 이만 한 전시관을 마련한 일본도 일본이라 할 만하다고 들려준 이야기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아마 이때가 처음이었을까, 또는 더 예전에도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소설쓰는 이문열 님이 연 서당이라 할까 서원이라 할까 글터라 할까 싶은 자리를 차린 이야기를 어느 잡지에선가 읽은 적 있다. 소설쓰는 이문열 님을 어떻게 바라보건 말건, 책 하나로 얻은 돈으로 책과 글이 어우러지는 터전을 일군 일이 참 놀랍다고 느꼈다.


  내가 책을 쓸 수 있고, 내가 쓴 책으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이 돈으로 무슨 일을 할 때에 나 스스로 즐거우며 책으로 태어난 나무한테 고마우며 내 책을 읽은 사람한테 빛이 될 만한가를 헤아려 본다. 나는 시골마을 땅을 사면 좋을까. 시골마을 논과 밭, 여기에 문닫은 시골마을 작은학교를 사들여 이곳에 내 책들을 건사하고, 우리 식구들과 앞으로 태어날 먼 뒷사람들 삶을 보듬을 흙땅을 건사하면 좋을까.


  돈을 앞세우고 정치권력 거머쥔 이들은 흙일꾼한테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잔뜩 뿌렸다. 온누리 흙일꾼은 돈쟁이와 권력쟁이 서슬에 밀려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안 쓰는 흙일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흙하고 동떨어진 곳에서 돈만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도시사람은 흙으로 빚은 목숨인 내 몸뚱이를 잊은 채, 더 값싸거나 더 몸에 좋다는 먹을거리를 찾을 뿐이다. 삶을 잊거나 잃으며, 사랑 또한 잊거나 잃는 톱니바퀴나 쳇바퀴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내가 살아가는 밑힘이라면 무엇이든 흙에서 비롯하리라 생각한다. 좋은 밥도 좋은 물도 좋은 햇살과 바람도 흙과 함께 살가이 빛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쓸 수 있는 글 한 줄은 흙에서 비롯한다. 내가 찍을 수 있는 사진 한 장은 흙에서 꽃을 피운다. 내가 건넬 수 있는 말 한 마디와 우리 집 살붙이들하고 얼크러질 하루 또한 노상 흙에서 샘솟는다.


  책은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든 다음 빚는다지.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려 기나긴 해 무럭무럭 자라야 한다지. 곧, 나무란 흙이요, 책이란 나무이자 흙인 셈이다. 내가 내 이름을 박은 책을 내놓아 널리널리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아주 마땅히 시골마을 흙땅을 장만해야 알맞으리라. 시골마을 흙땅이 포근한 햇살과 따사로운 흰눈과 너그러운 구름과 해맑은 무지개와 시원한 달빛과 보드라운 풀잎으로 곱게 빛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마음을 쏟을 수 있으면 즐거이 누릴 삶이 되리라. (4345.3.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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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 생물 이야기 보고 느끼는 도감
오오노 마사오 글, 마쓰오카 다스히데 그림,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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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목숨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7] 마쓰오카 다쓰히데·오오노 마사오, 《땅속 생물 이야기》(진선출판사,2001)

 


  겨울눈이 온누리 흙을 하얗게 덮습니다. 겨울눈은 논밭을 덮고 멧자락을 덮으며 들판을 덮습니다. 겨울눈은 아파트 옥상을 덮고 아스팔트 까만 길을 덮으며 원자력발전소 지붕을 덮습니다. 춥디추운 겨울이 저물 무렵 온누리에 맑은 빗물 촉촉히 내립니다.


  맑은 빗물은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를 적시고 새봄을 알리는 작은 들꽃 풀잎을 덮으며 네 철 푸른잎으로 우거진 숲을 덮습니다. 이윽고 맑은 빗물은 큰도시 한복판 자동차 빗물을 때립니다. 높직한 아파트 유리창을 때립니다. 관공서와 초·중·고등학교 유리창을 때립니다. 이제 이 빗물은 나무를 타고 냇물이 되고, 시멘트로 만든 하수구를 거쳐 바닷물이 됩니다.


.. 나무가 자라면서 땅속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나무가 땅속 깊이 뿌리를 뻗으면 뿌리를 먹고 자라는 생물들이 많아집니다 ..  (6쪽)

 


  바람이 붑니다. 겨우내 차디차게 불던 바람이 잦아들며 봄내 포근하게 부는 바람으로 바뀝니다. 여름 동안 후덥지근하게 바람이 붑니다. 가을 동안 살랑살랑 따사롭게 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모든 목숨들한테 고운 숨결을 건넵니다. 아이도 어른도 고운 숨결을 누립니다. 해바라기도 수수꽃다리도 민들레도 냉이도 고운 숨결을 마시며 기운을 냅니다. 들쥐도 들고양이도 참새도 까치도 고운 숨결을 마시며 기운을 차립니다.


.. 썩어서 넘어진 나무 밑은 그늘이 져서 시원하고 눅눅합니다. 이런 곳에도 땅속에 사는 생물이 삽니다 ..  (15쪽)

 


  햇살이 따스합니다. 햇살은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따스합니다. 겨울이라서 차가운 햇살인 적은 없습니다. 여름에만 따스한 햇살이지 않습니다. 겨울에도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며 사람들을 살리고 푸나무를 살립니다. 봄에도 햇살이 따사로이 펼쳐지며 지구별을 살리고 지구별을 덮은 흙을 살립니다.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갑니다. 곰도 흙을 밟으며 살아갑니다. 까마귀도 흙을 밟으며 살아갑니다.

  보리는 흙에 뿌리내리고 살아갑니다. 벼도 흙에 뿌리내리고 살아갑니다. 시금치도 배추도 무도 당근도 하나같이 흙에 뿌리내리고 살아갑니다.


  흙이 있기에 좋은 나날입니다. 흙이 있어 기쁜 삶입니다. 흙이 없을 때에는 아무런 목숨도 더 살아가지 못합니다. 흙하고 한몸이 되는 풀과 나무가 있어 흙에 보금자리를 트는 짐승이 있습니다. 범도 여우도 승냥이도 멧돼지도 모두들 흙이 있을 때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먹이를 얻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흙이 얼마나 고마운 줄 짐짓 잊습니다. 흙을 잊은 사람들이 흙을 파헤치고 돌을 파묻습니다. 흙을 잊는 사람들이 흙을 치우고는 바닥에 돌을 깝니다. 집을 으리으리하게 짓습니다. 궁궐을 으리으리하게 올립니다. 흙에서 열매와 푸성귀를 얻던 사람들이 흙을 저버리고는 창을 만들고 칼을 갈아 전쟁을 만듭니다. 흙에서 삶을 누리고 사랑을 익히던 사람들이 흙을 등지고는 돈을 만들고 이름값을 만들며 무리힘을 만듭니다.


  사람도 살고 푸나무와 벌레와 뭇짐승이 살던 터에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사람만 들어설 수 있는 높은 탑과 절집과 무덤이 생깁니다. 오래지 않아 제철소며 발전소며 공장이며 하나하나 생깁니다. 그나마 흙으로 이루어졌던 길은 시멘트로 덮여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더 두껍고 단단한 아스팔트로 바뀝니다.


  어느덧 도시가 나타납니다. 도시에서는 흙 한 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래도록 흙 한 줌 없던 도시에서 사람들이 죽고 쓰러집니다. 온통 공장과 가게와 건물과 길로 넘치던 도시에 조그맣게나마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숲터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 숲터는 흙이 햇살과 바람과 물을 머금어 이루는 고운 삶터가 아닙니다. 돈으로 짓고 돈으로 가꾸며 돈으로 허무는 땅입니다.

 

 


.. 매미의 애벌레는 나무 뿌리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자랍니다. 그런데 그 매미 애벌레의 몸을 자기 집으로 만들어 사는 버섯도 있습니다. 땅속에서 썩은 잎을 먹고 자라는 장수풍뎅이의 애벌레가 보입니다 ..  (24쪽)


  사람들 숫자는 차츰 늘어납니다. 10억이니 20억이니 30억이니 하다가는 50억을 넘고 60억을 넘습니다. 앞으로 사람들 숫자는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을까요. 지구별을 온통 뒤덮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공룡처럼, 사람들 또한 끝없이 늘어나며 흙을 없애는 짓을 일삼을 테니, 사람들 스스로 언제 어떻게 사라지는구나 하고 깨닫지 못하면서 사라지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들 모두 온통 화석으로 남으면서 먼먼 뒷날 새로운 목숨이 이 지구별에 깃들 때에 ‘지구별에서 사라진 공룡’처럼 ‘지구별에서 사라진 사람’을 파내어 박물관에 놓거나 전시관에 세우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공룡 그림책’을 그리고 ‘공룡 영화’를 찍듯, 아마, 즈믄 해쯤 뒤에는, 아니 고작 백 해나 쉰 해쯤 뒤에는 사람이 싸그리 사라지고, 이대로 십만 해나 백만 해쯤 지나서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고는 ‘백만 해 앞서 잘난 척하며 지구별을 망가뜨리던 사람’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그리고 영화로 찍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요. 도서관에는 어떤 책을 꽂으며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요. 도서관은 사람살이를 어떻게 바라보도록 이끌며, 사람들 스스로 어떠한 삶을 일굴 때에 아름다운 꿈을 품으며 착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가르칠 수 있는가요.


  학교는 어떤 데일까요. 학교에서는 어떤 교과서로 어떤 학문을 갈고닦아 사람들이 서로서로 어떤 이야기를 꽃피우도록 이끄는가요. 흙이 무엇이고 흙이 어떠하며 흙으로 무엇을 이루는가를 이 지구별 학교는 얼마나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알려줄까요.

 


.. 얕은 곳이나 깊은 곳이나 땅속에는 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흙이 딱딱하든 부드럽든 생물의 집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아무리 어둡고 눅눅해도 이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땅속은 언제나 많은 생물들로 북적거립니다 ..  (30쪽)


  마쓰오카 다쓰히데 님 그림과 오오노 마사오 님 글로 이루어진 그림책 《땅속 생물 이야기》(진선출판사,2001)를 읽습니다. 흙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숱한 목숨붙이 가운데 흙땅 아래쪽에서 지내는 목숨들 삶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이 흙땅 아래쪽 목숨들을 눈여겨볼 일이 드뭅니다. 사람들은 이 흙땅 아래쪽 목숨들이 있기에 사람이 사람다이 삶을 누릴 수 있는 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흙땅 아래쪽 목숨들은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살아갑니다.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살아갑니다. 흙에 깃들어 흙을 사랑하고, 흙을 품에 안으며 흙을 아끼는 하루하루를 누립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마당에서 달리고 기고 뛰며 놉니다. 큰아이는 신나게 달리고 작은아이는 볼볼 깁니다. 큰아이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작은아이는 이것저것 손에 쥐고는 입에 넣습니다. 마당이 흙땅이라면 아이들은 틀림없이 땅을 파며 놀겠지요. 시골집도 이제 모두 시멘트 마당이 되었기에, 아이들은 시멘트로 덮인 마당에서 뛰고 기며 놉니다. 시골에서 살아가지만, 시골에서조차 흙을 만지거나 누리거나 보듬기는 퍽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이 시멘트 마당에서 시멘트를 어떻게 걷어내야 할까를 생각합니다. 시멘트 없이 흙으로 바닥을 이룬 터에 흙으로 살림집 하나 짓는 나날을 꿈꿉니다.


  그림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삶은 흙에서 오고, 삶은 흙에서 마무리합니다. 숨결은 흙에서 샘솟고, 목숨은 흙에서 얻습니다. 사랑은 흙에서 태어나고, 믿음은 흙에서 꽃피웁니다. 새 봄철, 따순 바람을 느끼며 큰아이하고 뒤꼍 땅뙈기 한쪽에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네 식구 좋은 밥이 될 좋은 푸성귀 얻기를 꿈꾸며 씨앗을 심습니다. 봄비는 씨앗을 살찌우고, 봄바람은 씨앗을 품으며, 봄햇살은 씨앗을 어루만집니다.


  오늘 흙땅 아래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작은 씨앗들은 흙땅 아래쪽에서 어떤 나날을 누릴까요. 작은 씨앗들은 언제쯤 흙땅 위쪽으로 새싹 하나 틔우며 새로운 나날을 맞이할까요. (4345.3.16.쇠.ㅎㄲㅅㄱ)


― 땅속 생물 이야기 (마쓰오카 다쓰히데 그림,오오노 마사오 글,김창원 옮김,진선출판사 펴냄,2001.4.2./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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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 앤 리브로 Library & Libro 2012.3
Library & Libro 편집부 엮음 / 도서관미디어연구소(잡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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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과 라이브러리, 책과 리브로
 [책읽기 삶읽기 101] 도서관미디어연구소,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

 

 

 


  도서관과 책을 이야기하는 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를 읽습니다. 2012년 3월에 33호이니 아직 얼마 안 되었지만, 이제부터 꾸준히 내놓을 수 있으면 머잖아 50호를 넘고 100호를 넘으며 200호를 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내놓은 책이기에 뜻있거나 값있지 않고, 새로 내놓는 책이기에 어설프거나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책이든, 책을 일구는 사람들이 따사롭고 사랑스레 글 하나 빚을 수 있느냐에 따라 뜻이랑 값이 달라집니다.


.. 도서관은 독서실 정도의 개념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지식을 탐구하는 곳인 동시에,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이 만나고 모이는 곳이 도서관이다. 이 두 속성을 공간적으로 푸는 과정에서 도서관 전체를 하나의 도시처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  (12쪽/독일 건축가 이은영)


  대학교에 문헌정보학과가 있습니다. 사서자격증이 있고, 나라 곳곳에 크고작은 도서관이 섭니다. 대학교에도 도서관이 있고, 중·고등학교는 입시지옥인 한편 크고작은 도서관을 이럭저럭 갖춥니다. 초등학교에 도서관 마련하는 일이 널리 퍼졌으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한켠에도 아이들 읽힐 책을 꽂곤 합니다.


  사람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에는 으레 도서관이나 책꽂이를 갖춥니다. 책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책을 들어 사람을 배웁니다. 곧, 책 하나는 이야기 하나 담는 그릇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틀과 흐름과 넋을 보여주는 길동무나 길잡이 구실을 함께 합니다.


  사람은 어린이일 때나 어른일 때나 배웁니다. 어린이도 서로서로 가르치고, 어른도 서로서로 가르칩니다. 나이 다섯 살이든 열다섯 살이든 마흔다섯 살이든 여든다섯 살이든, 싱그러이 살아가는 넋이라면 언제나 배우고 늘 가르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마움과 즐거움을 누릴 때에는 무엇이든 기쁘게 배우고 예쁘게 가르칩니다. 오늘 하루 어제 하루 고맙고 즐겁게 누린다고 느끼지 못할 때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어느 것도 가르치지 못해요.


  스스로 즐거울 때에 스스로 즐겁게 배웁니다. 스스로 고마울 때에 스스로 고맙게 가르칩니다. 어떤 지식이라서 배우지 않고, 어떤 지식이기에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자격증을 배우지 않으며, 어떤 자격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삶을 가르치고 삶을 배워요. 삶을 느끼고 삶을 좋아해요.

 

 


.. 좋은 시는 우리를 무감하게 길들이지 않고 매일 새롭게 아파하며 신생하게 한다 ..  (26쪽/이은정의 시읽기)


  날마다 즐거이 누릴 삶인 줄 느낄 때에는 시를 읽으며 내 넋이 온통 시가 됩니다. 언제나 고맙게 누리는 사랑이라고 느낄 때에는 그림 하나 읽으며 내 얼이 가득 그림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글 한 줄은 글 한 줄이 되어 즐겁습니다. 노래 한 가락은 노래 한 가락이 되어 기쁩니다. 그림 한 장은 그림 한 장이 되어 아름답습니다.


.. 서점에 가서 비닐에 포장된 이 책을 뜯어 보지 말자. 책값을 아까워 하는 사람은 영혼이 가난해진다 ..  (29쪽/류대성의 청소년책 읽기)

 


  논밭에서 땀흘리기를 아까워 할 때에는 곡식이든 푸성귀이든 제대로 얻지 못합니다. 땀방울 알뜰히 흘릴 때에 맛나게 먹을 곡식이랑 푸성귀를 거둡니다. 나무는 언제나 힘껏 길어올린 밥과 물을 가지마다 골고루 보내며 싱그러이 꽃을 피우고 소담스레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을 사랑스레 여길 때에 아이가 씩씩하고 맑게 자랍니다. 아이하고 부대끼는 하루를 살가이 보듬을 때에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큽니다.


  책값을 아깝다 여길 때에는 책으로 일굴 넋이 말라비틀어집니다. 품값을 아깝다 여길 때에는 내 삶이 말라비틀어집니다. 아이하고 손 맞잡으며 마실을 다니거나 아이하고 밭고랑이 나란히 앉아 김매기를 싫어할 때에는 내 밥그릇이 말라비틀어집니다. 아이하고 고운 말 어여쁜 말 섞기를 귀찮다 여길 때에는 내 말이 말라비틀어집니다.

 


.. 지난 2월 24일 ‘손바닥TV’에 출연해서는 “시인이 시는 안 쓰고 왜 그런 곳에 가 있느냐고 하는데, 이게 모두 시”라며 웃었다 ..  (39쪽/송경동 시인 만나기)


  모든 하루가 모든 책입니다. 모든 삶이 모든 이야기입니다. 시가 아닌 삶이란 없습니다. 시로 태어나지 않는 삶이란 없습니다. 시로 빚지 못할 삶은 없습니다. 시로 영글 수 없는 삶이란 없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소설로 태어납니다. 모든 이야기는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철학이든 다른 이름 다른 옷을 입고 태어납니다.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며 시를 쓸 줄 알기에 삶을 쓸 줄 압니다. 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할 줄 알기에 시를 쓰며 삶을 누릴 줄 압니다. 아픈 몸과 마음을 달래며 끙끙 앓기에 시를 쓰고 삶을 읽을 줄 압니다.


  아이한테는 어버이 말 한 마디가 사랑밥입니다. 어버이한테는 아이 말 한 마디가 믿음밥입니다.

 


..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이런 자리에서 이런 영어를 쓰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쓰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담으며 사랑할 말을 이렇게 놓치거나, 잃거나, 버렸구나’ 하고 더 깊이 생각하는 넋으로 곱게 추스르면 좋겠습니다.” ..  (42쪽/《뿌리깊은 글쓰기》 소개)


  좋은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좋은 넋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밥상을 차리지 못합니다. 좋은 꿈이 아니고서는 좋은 말이 샘솟지 않습니다.


  삶을 책 하나로 꽃피우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할까요. 삶을 책 하나로 갈무리하며 열매를 맺으려는 사람들은 어떤 꿈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할까요.


  다달이 나오는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는 어떤 사람들 어떤 삶과 어떤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을까요.

 


.. 우리 도서관(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의 요즘 동향을 보면 교과 과정에 연계된 책들이 가장 많이 대출된다. 다른 도서관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몇 학년과 연계된 문학 읽기라든가, 과학 교과서와 연계된 과학 원리와 같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통계를 보는 입장에서 문학이나 학습 원리를 순수하게 바라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  (84쪽/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 대표 김윤순)


  아이들이 학교 교과서를 더 잘 외우도록 돕는 부교재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린다 하면, 도서관이 설 뜻은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지식을 외우고 점수를 따는 시험만 치르도록 하는 학교라면, 학교가 설 값어치는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아이들 삶을 사랑하며 아이들 꿈을 밝히는 책을 만나지 못한다면, 아이들 믿음과 이야기를 북돋우는 어버이하고 하루하루 예쁘게 누리지 못한다면, 아이들한테 도서관은 어떤 뜻인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동무를 곱게 사귀며 즐거이 어깨동무하지 않고서, 서로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점수따는 겨루기를 일삼는다면, 학교란 이 지구별에서 아무 값어치를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98쪽짜리 조그마한 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하나로 어떤 삶을 밝힐 만할까요. 조그마한 잡지 하나는 사람들 삶에 얼마나 스며들 만할까요. 조그마한 잡지 하나에 서린 이야기 하나는 우리들 아름다운 터전을 얼마나 따사로이 품을 만한 손길이 될까요.

 

  초등학교에 들어서는 ‘잉글리쉬 존’처럼, ‘코리아’ 아닌 한국땅이지만, 도서관보다는 ‘라이브러리’를 말해야 합니다. 책을 책이라 적기보다는 ‘冊’으로 적어야 맛이라 여기는 지식인이 꽤 많고, ‘book’으로 적는 기자가 무척 많으며, 그예 ‘리브로’를 이야기하는 책일꾼이 많습니다. (4345.3.16.쇠.ㅎㄲㅅㄱ)


―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 (도서관미디어연구소 엮고 펴냄,2012.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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