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뜸의 거리
코노 후미요 지음, 홍성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서울사람은 아무것도 몰라요
 [만화책 즐겨읽기 135] 고노 후미요, 《저녁뜸의 거리》

 


  일본사람 고노 후미요 님은 히로시마에서 나고 자랐다 합니다. 그렇다고 히로시마 원폭 1세대나 2세대나 3세대는 아닙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는 했어도, 이 원자폭탄하고는 동떨어진 데에서 살았다고 해요. 원자폭탄이 떨어진 자리에서 살아가야 하던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저녁뜸의 거리》(문학세계사,2005) 끝자락에 그린이 말을 적는데, “나는 히로시마 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피폭자도 아니고 피폭 2세도 아니다. 피폭 체험을 말해 줄 친척도 없다. 원폭은 내게 있어 먼 과거의 비극이고, 동시에 ‘남의 집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섭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되는 이야기, 파고들어서는 안 될 영역이라 여겨 왔다. 그런데 도쿄에 와 살다 보니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이외의 사람은 원폭의 참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달리 그들은 알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국이 원폭의 참상을 모른 채 평화를 누리는 이 꺼림칙함은 내가 히로시마 사람으로서 느꼈던 부자연스러움보다 크게 생각되었다(10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린이 말이 아니더라도 일본사람은 꽤 평화로이 살아간다 여길 만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평화로이 살아간다 여길 만할 뿐 아니라, 이웃나라 평화를 괴롭힌다 여길 만하고, 일본 스스로 더 평화로우면서 아름다이 살아갈 길하고 동떨어진다 여길 만합니다.


  일본사람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일본사람은 평화도 전쟁도 원자폭탄도 전쟁무기도 모릅니다. 일본사람은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는 길도 사랑스레 품앗이를 하는 길도 모릅니다.


  그러면, 한국사람은 무엇을 알까요. 한국사람은 평화나 전쟁을 얼마나 잘 알까요. 한국사람은 원자폭탄이나 전쟁무기를 어느 만큼 알까요. 한국사람은 서로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제대로 알까요. 한국사람은 따사롭게 품앗이 하는 좋은 삶을 즐겁게 알까요.

 

 

 


- “미안해요, 안에는 엄마가 누워 계셔서. 게다가 어젯밤 비로 방안이 휘황찬란해요.” “휘황찬란?” “얼룩덜룩 벌레 기어간 자국요!” “하하하.” “…….” “…….” “가 가나야마 선수가 사백 개째 도루에 성공할까요?” “그럼요.” “하세가와 선수는 100승 할까?” “근데 히라노 씨, 대나무 껍질, 그거 왜 모으는 거예요?” “아, 짚신 삼으려고요. 출퇴근 할 때 구두 닳는 게 아까워서요.” (13쪽)
- “역시 그랬군요. 우리 집도 여기 살았던 고모가 원폭으로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도 히로시마 아가씨에게 뭔가 해 줘야겠다면서 짚신을 보내 주신 거예요.” “그래요. 아, 갑자기 온몸의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아요.” “히라노 씨.” (29쪽)


  전쟁무기로는 전쟁을 부를 뿐, 평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할 때에 쓰지, 평화를 지킬 때에 쓰지 않습니다. 평화는 평화가 부릅니다. 평화를 누리자면 평화를 일구는 쟁기와 호미와 낫과 가래가 있어야 합니다. 전쟁무기를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평화로이 노니는 들판과 평화로이 먹을거리를 얻는 논밭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무기 만드는 데에 돈을 써서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마을을 가꾸고 열매나무를 돌보며 아이와 어른 모두 즐거이 배우며 어깨동무하는 데에 돈을 써야 평화가 찾아옵니다.


  과학자가 더 빼어난 전쟁무기 만드는 데에 머리와 품과 돈을 쓰는 동안 평화가 찾아올 수 없습니다. 전쟁무기 과학자를 키우는 나라에서 평화를 지키는 넋을 북돋울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을 전쟁무기 다루거나 건사하는 데에 내보내는 나라가 평화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구별 어느 나라라 하더라도 군대 없는 나라가 없고, 전쟁무기 건사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참말, 지구별 숱한 나라마다 군대를 두고 전쟁무기를 건사하니, 지구별에 평화가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자꾸 만드니까 지구별 어느 한쪽은 가난하거나 굶주립니다. 자꾸자꾸 만드는 전쟁무기를 자꾸자꾸 쓰니, 지구별 곳곳이 아픕니다.


  하루라도 빨리 전쟁무기는 거두어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래 젊은이들을 전쟁터나 군대에서 불러들여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젊은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치고 꿈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옷·밥·집을 누리는 슬기롭고 맑은 길을 즐겁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중앙정부나 지자체를 잊고, 작은 마을 작은 보금자리를 아끼는 어여쁜 삶을 누려야 합니다.

 

 


- 아무도 그 일을 말하지 않는다. 아는 것은 누군가 우리에 대해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런데도 살아남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사실은 그날 이후 내가 그렇게 생각되어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스스로 문득문득 깨닫는다는 것이다. (16쪽)
- 10년이 지났지만 원폭을 떨어뜨린 사람은 나를 보고 “해 냈다! 또 한 명 죽였어.” 하고 잊지 않고 생각해 줄까? (33쪽)


  우리는 누구나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태어납니다.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우리들은 사랑을 누릴 고운 목숨입니다.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펼치며 사랑을 꽃피울 아리따운 목숨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삶과 꿈과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이웃과 동무와 푸나무를 사랑합니다.


  서로서로 믿고 기댑니다. 서로서로 돕고 아낍니다. 서로서로 좋아하며 이야기꽃 피웁니다.

  바람 한 점을 사랑합니다. 햇살 한 조각을 사랑합니다. 물 한 방울을 사랑합니다. 풀잎 한 포기를 사랑합니다. 열매 한 알을 사랑합니다. 흙 한 알갱이를 사랑합니다.


  멧새가 지저귀고 들새가 노래합니다. 풀벌레가 속삭이고 아이들이 뛰어놉니다. 새와 벌레와 풀과 나무하고 벗삼던 아이들이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저희가 어릴 적 새와 벌레와 풀과 나무하고 벗삼듯, 저희가 낳은 아이들 또한 새와 벌레와 풀과 나무하고 벗삼는 길을 보여줍니다.


  평화는 평화로운 삶자락으로 누립니다. 평화를 지키는 길이란 나 스스로 미움·다툼·시샘 아닌 아낌·보살핌·어루만짐으로 이룹니다.

 


- “안녕. 이거 줄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야.” “줘도 돼?” “응, 다 외웠는걸.” “자, 다음 순서입니다.” “도우코, 책받침.” “알았어.” “네가 병원에 있어서 학교 마당의 벚꽃 배달 온 거야.” (47∼48쪽)


  돈을 더 벌어서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이름을 더 날려서 평화를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힘을 더 키워서 평화를 건사하지 않습니다. 알뜰살뜰 일구는 삶으로 평화를 지킵니다.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나날일 때에 평화를 맞아들입니다. 내 손으로 씨앗을 거두어 심고 돌볼 때에 평화를 건사합니다.


  냉이를 캐고 쑥을 뜯습니다. 배추씨를 심고 씨감자를 심습니다. 사랑을 캐고 사랑을 뜯습니다. 사랑을 심고 다시 사랑을 심습니다. 평화를 캐고 평화를 뜯는 나날입니다. 평화를 심고 다시 평화를 심는 터전입니다.


  아파트를 새로 늘릴 까닭이 없습니다. 시골마다 집이 텅텅 비어 남아도는걸요. 고속도로를 새로 닦을 까닭이 없습니다. 기름값이 어마어마하게 치솟는걸요. 공장을 새로 지을 까닭이 없습니다. 내 보금자리에서 내 살림을 아기자기하게 보듬으면 굳이 새 물건 새로 사서 새 쓰레기 빚지 않아도 돼요.


  내 삶을 빛내는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을 빛내는 사랑은 어떻게 길어올리는가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땅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기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미국이 갖은 전쟁무기를 만들었기에 평화가 이룩되지 않습니다. 일본이 전쟁무기를 갖추어 한국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대서, 일본이 아시아 곳곳에 퍼져 총칼을 휘둘렀대서, 이 지구별에 평화가 찾아왔을까요.

 

 


- “나도 그, 그러니까.” “…….” “전 잘 모르겠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너 피폭자와 결혼할 셈이냐?” “엄마.” “무엇 때문에 피난 보내고 양자로 주었겠니? 네 양부모한테는 뭐라 말할 거니? 왜 난 안 죽는지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아는 사람이 원폭으로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 (84쪽)
- “하지만 따라오길 잘 했어. 다음에는 엄마, 아빠와 같이 올래. 오면 엄마, 아빠도 분명 히로시마를 좋아하게 될 거야.” (86쪽)


  미국에서 온갖 농약과 항생제와 비료를 먹인 쌀과 열매와 곡식과 고기를 값싸게 사들일 때에 평화나 사랑이 찾아올까 궁금합니다. 칠레에서 포도와 포도술을 값싸게 사들이면서 자동차와 손전화와 전자제품을 비싸게 팔 수 있으면 평화나 사랑이 깃들는지 궁금합니다.


  우리한테는 집전화 하나 있으면 넉넉합니다. 집전화 없이 편지 한 장 적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편지 한 장 없이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전화기도 편지도 무엇도 없는 채, 사람들은 아주 오래고 오랜 나날 서로 믿고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자동차고 컴퓨터고 공장이고 신문이고 텔레비전이고 인터넷이고 없던 기나긴 지난날, 사람들은 즐겁게 어깨동무하고 두레와 품앗이를 펼치는 재미나고 멋진 삶을 누렸어요.


  전쟁을 벌이는 무기를 만들 때부터 평화가 사그라듭니다. 평화가 사그라드는 자리에서는 사랑 또한 사그라듭니다. 사랑이 사그라들 때에는 교육도 문화도 예술도 과학도 꿈도 이야기도 빛도 웃음도 나란히 사그라듭니다.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지 생각해야지요. 무엇 때문에 아이를 낳는지, 무엇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지, 무엇 때문에 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지 생각해야지요.

 

 

 


- “나나미, 내가 히로시마에서 무얼 했는지 아니? 올해는 형제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 있었던 내 작은누나의 50주기야. 그래서 생전 누나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만나 옛날 이야기를 들었지. 나나미, 넌 그 누나와 많이 닮았어. 네가 행복하지 않으면 누나가 슬퍼할 게다.” (97∼98쪽)


  고노 후미요 님 만화책 《저녁뜸의 거리》를 찬찬히 돌아봅니다. 만화책 《저녁뜸의 거리》는 원자폭탄 피해자가 히로시마에서든 도쿄에서든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합니다. 그런데, 막상 ‘원폭 피해 뒤탈’ 같은 이야기는 그닥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저, 수수한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삶을 누리고 싶던 ‘작은 목숨’이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살아가고 싶은 꿈을 들려줍니다. 사랑하고 싶은 나날을 들려줍니다. 따로 평화라는 낱말을 모르더라도 언제나 평화롭고 사랑스러울 작은 보금자리, 작은 마을, 작은 이야기, 작은 이웃, 작은 아이들, 작은 어버이, 작은 동무, 작은 꿈을 들려줍니다.


  전쟁무기를 빚는 사람은 어떤 마음인가요. 전쟁무기를 쏘아대는 사람은 어떤 마음인가요. 총을 쏘아 누군가를 죽이면서 ‘그래, 평화를 지켰어!’ 하고 외치는 마음이 되나요. 무시무시한 폭탄을 비행기에 실어 마을과 들판과 멧등성이와 냇물에 마구잡이로 뿌려 터뜨리면서 ‘그래, 평화는 이 맛이야!’ 하고 외치는 마음이 되나요.


  ‘나는 내 아이를 나와 내 옆지기 사랑을 그러모아 낳겠어.’ 하고 속삭일 때에 바야흐로 평화가 된다고 느껴요. ‘나는 우리 아이들을 나와 내 옆지기 사랑으로 곱게 돌보며 아끼겠어.’ 하고 소근거릴 때에 시나브로 평화가 찾아온다고 느껴요. ‘나는 서로서로 기쁘게 마주보며 활짝 웃고 싶어.’ 하고 노래할 때에 살포시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느껴요.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도시사람도 서울사람도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평화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랑이 어떠한지 몰라요.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목숨이 어떠한지 몰라요. (4345.3.21.물.ㅎㄲㅅㄱ)


― 저녁뜸의 거리 (고노 후미요 글·그림,홍성민 옮김,문학세계사 펴냄,2005.11.21./7000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2-03-22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만화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이 만화는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대해서 반성하는 논조인가요?
2차 대전이나 원폭 피해를 다룬 일본 만화를 보면 전쟁중에 일본이 타국에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뼈져린 반성보다는 원폭의 피해만을 강조하는것이 많더군요.일본인들이 2차 대전중의 전쟁범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지도층과 지식인들의 은폐도 있었겠지만 그것 보다는 일본인 스스로가 그 점을 알려고 하지 않는것이 더 크단 생각이 듭니다.

파란놀 2012-03-22 12:48   좋아요 0 | URL
어떤 논조가 되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이야기를 펼치는 결에서
다 알려주니까요.

그리고,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짓을 뉘우친다 하더라도
전쟁이란 무엇이고 평화란 어떠한 삶인가를
밝히지 못한다면
부질없는 노릇입니다.

<히로시마>라는 그림책처럼 전쟁을 이야기하거나 원폭을 다루면
틀림없이 슬프며 딱하기 그지없습니다만,
<히로시마> 같은 그림책이 슬프며 딱한 까닭은
'피해자 처지를 도드라지게 그리기' 때문이 아니에요.

카스피 2012-03-23 10:54   좋아요 0 | URL
음 제 생각은 약간 다른데 과거를 반성하지 못한다면 과연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무엇을 꺠달을 수 있을까 생각됩니다.
독일에서도 신 나찌즘이 등장하긴 하지만 양차 대전을 일으킨 것을 철저히 반성한 독일 정부와 독일 국민은 이를 강력히 제재하지요.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정부와 이른바 지식층들이 합심해서 전쟁 범죄를 일으킨 일본의 죄과를 철저히 부정하고 숨기려고 하고 있지요.그러다보니 요즘 일본인들은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원폭의 피해와 극복을 다루는 만화역시 감동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왜 그런일이 일어나게 됬는지에 근원적 물음과 그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그건 지난 시절 추악한 과거를 미화하는 것에 불과하단 생각이 듭니다.

파란놀 2012-03-23 11:18   좋아요 0 | URL
어떻게 해야 '뉘우치기'가 될까요.
'뉘우치기'는 몇 차례쯤 해야 받아들일 만할까요.

한국사람 가운데 베트남에서 저지른 살인과 만행을
한 번이나마 제대로 뉘우친 적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모든 작품에서
모두 똑같이
'뉘우치기'를 집어넣으라 하는 일은
폭력일 뿐입니다.

<저녁뜸 거리>는 '감동적'인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
작품입니다.
'감동'이든 무엇이든,
또는 '교훈'이든 무엇이든,
억지스레 사과하라 하고 뉘우치라 하는 일은
하나도 즐겁지 않고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

뿌리(근원)란 무엇일까요.
전쟁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가던
보통 사람이
갑자기 전쟁통에 휘말리다가
갑자기 죽어 버리는 일을 놓고
이 사람들한테 무엇을 바라는가요?

일본 시골에서 조용히 농사짓다가
갑자기 원폭을 맞고 죽은 사람한테
무엇을 바라는가요?

일본 바닷마을에서 조용히 고기를 잡다가
갑자기 원폭을 맞고 죽은 사람한테
무슨 사죄와 원망을 바라는가요?

참말, '뿌리'란 뭐고 '피해'란 뭐며
'반성'이든 뭐든 무엇인가요?

학교를 다닌 적 없고
아이들이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죽어야 했고
쓸쓸하게 동네 작은 가게를 지키던 할머니가
원폭을 맞고 갑자기 죽었을 때에
이 할머니네 아이들은,
우연하게 히로시마 바깥으로 나가서
살아남을 수 있던 아이들은,
나중에 원폭과 전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우두머리와 군인과 장교와 정치꾼과 경제꾼들 아닌,
또 지식인과 기자들 아닌,
보통 사람한테 무엇을 바라는가요?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35) 개의 12 : 두 개의 쌀

 

이에 비해 앞으로 수입될 미국 쌀의 예상 가격은 10만 원이 채 안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마트에 두 개의 쌀이 동시에 진열되어 있을 때 어느 쌀을 사 먹겠습니까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철수와영희,2012) 25쪽

 

  “이에 비(比)해”는 “이와 견줘”나 “이와 달리”로 다듬고, ‘수입(輸入)될’은 ‘들어올’로 다듬으며, “미국 쌀의 예상(豫想) 가격(價格)은”은 “미국 쌀값은 아마”나 “미국 쌀값은 얼추”로 다듬어 봅니다. “동시(同時)에 진열(陳列)되어 있을 때”는 “나란히 놓였을 때”나 “한자리에 놓였을 때”로 손질합니다.

 

 두 개의 쌀이 (x)
 두 가지 쌀이 (o)

 

  한국사람은 쌀로 밥을 지어 먹습니다. 한국사람은 쌀밥을 먹습니다. 보리를 섞어 먹거나 콩이나 수수나 기장을 섞어 먹기도 합니다. 곡식을 먹는 셈인데, 어느 곡식을 먹든 내 몸을 알맞게 살찌우려 합니다.


  쌀을 푸대에 담습니다. 푸대는 자그마해 일 킬로그램 들이가 있고, 조금 큰 삼 킬로그램이나 오 킬로그램 들이가 있습니다. 십 킬로그램이나 이십 킬로그램, 때로는 사십 킬로그램 푸대가 있어요. 푸대를 셀 때에는 ‘하나 둘 셋’이라고 할 때가 있으며, ‘한 개 두 개 세 개’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부터 ‘한 섬 두 섬 석 섬’처럼 쓰기도 했습니다.


  보기글에서는 ‘푸대에 담긴 쌀’이라는 뜻에서 ‘두 개’처럼 적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쌀푸대 두 개’라 안 적고 ‘쌀 두 개’라 적으니 어딘가 얄궂습니다. 쌀알이 꼭 둘 있다는 셈인지 무슨 소리인지 살짝 아리송합니다. 더군다나 “두 개의 쌀”처럼 토씨 ‘-의’를 붙이니 더 얄궂습니다.


  아무쪼록 어떻게 말을 하고 어찌 글을 써야 알맞을까를 찬찬히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을 곱게 담는 말을 살피고, 내 뜻을 맑게 빛내는 글을 그릴 줄 알면 좋겠습니다. (4345.3.21.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이와 견줘 앞으로 들어올 미국 쌀값은 얼추 10만 원이 채 안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가게에 두 가지 쌀이 나란히 있을 때에 어느 쌀을 사 먹겠습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12-03-21 08:40   좋아요 0 | URL
어찌 글을 써야 알맞을까 찬찬히 헤아리는 것
참 어려운 일 같아요

파란놀 2012-03-21 08:58   좋아요 0 | URL
찬찬히 헤아리면 길은 잘 열려요~
헤아리지 않을 때에는 길이 안 열리고요~
 

햇살

 


마당에서 세발자전거 타는 누나
대청마루에 엎드려 바라보다가
후박나무 빨간 봉우리
포근한 햇살 머금은 바람
살가이 부는 삼월 아침
어린 동생도 마당으로 내려와
섬돌부터 후박나무 그늘까지
볼볼볼 기어갑니다.

 

햇살은 오줌기저귀를 보송보송 말리고
바람은 양말과 바지를 곱게 말리며
들새는 마늘밭 사이 날며 노래하는
조용하며 보드라운 하루.

 


4345.3.16.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てるてる はるひ―父さん 晴日を撮る。 (單行本)
石川 厚志 / 雷鳥社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버이가 물려주는 선물, 사진첩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4] 이시카와 아츠시(石川厚志), 《てるてるはゐひ 父さん 晴日を撮る》(雷鳥社,2011)

 


  어버이가 아이한테 땅이나 돈을 물려주는 일이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가 제 삶을 즐거이 누릴 좋은 보금자리가 될 땅을 물려주는 일은 하나도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가 제 사랑을 마음껏 꽃피우도록 도울 돈을 물려주는 일은 조금도 잘못이 아닙니다.


  어버이는 아이들과 지낼 보금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보금자리는 아름다운 터여야 하고, 이 보금자리는 어버이가 흙으로 돌아가고 나서 아이들이 새로운 삶을 일구며 새 아이들을 낳을 만한 터여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먹여살리려고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꼭 돈을 벌어야 하지는 않아요. 어버이 스스로 몸을 놀려 곡식이나 푸성귀를 거둘 수 있습니다. 열매를 딸 나무를 돌볼 수 있어요. 바다나 냇물에서 고기를 낚을 수 있어요. 반드시 돈을 벌어 가게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차릴 때에 좋은 밥이 되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땅을 물려받든 돈을 물려받든 할 수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받고 싶으면 받고, 딱히 안 받아도 된다 여기면 안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더없이 따사로우며 아름답다 싶은 보금자리를 어여삐 일군다고 느끼면, 이곳에서 오래오래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좋은 터를 언제까지나 어여삐 보살피며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어버이가 살던 곳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며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새 아이들을 낳습니다. 이윽고 이 ‘어른이 된 아이’들은 제 어버이처럼 흙으로 돌아갑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천천히 어른이 되고, 다시금 제 어버이가 했듯이 새 아이들을 낳고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랑으로 삶을 일구는 터전이라면 더없이 좋은 보금자리라고 느껴요. 지구별 사람들 누구나 사랑으로 삶을 일구는 터전을 누려야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랑이 깃든 땅이라면 어버이와 아이 모두한테 좋습니다. 사랑이 피어나는 돈이라면 어른과 어린이 서로한테 좋습니다.


  먼먼 옛날, 책이나 사진기나 붓이나 종이나 다른 어느 하나 없던 때, 어버이는 아이들과 좋은 땅과 좋은 밥과 좋은 옷과 좋은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누면서 살가이 물려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이 생기고 책을 만든 뒤, 먼먼 어버이 무렵부터 찬찬히 이어온 아름다운 이야기를 글로 빚어 책에 담아 아이들한테 물려주기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붓과 종이를 만든 다음, 먼먼 어버이 적부터 고이 이어온 빛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실어 책에 묶어 아이들한테 물려주기도 했으리라 생각해요. 이제 사진기를 만들어 마음껏 누리는 오늘날, 내 가까운 살붙이부터 사진으로 살포시 옮겨 책으로 이루고는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구나 싶어요.


  내 어버이는 내가 어릴 적부터 제금나기 앞서까지 나를 찍거나 나를 둘러싼 우리 식구들 함께 얼크러진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사진첩 하나 마련합니다. 이 사진첩은 내 어버이가 나한테 베푸는 선물입니다. 나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 아이들 사랑스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푼푼이 그러모아 사진첩을 이룹니다. 이 사진첩은 내가 내 아이들한테 베푸는 선물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날이 무럭무럭 클 테고, 저마다 무럭무럭 크고 나서 나한테서 받은 선물을 곰곰이 돌이켜, 저희 새 짝꿍과 저희 새 아이들한테 새삼스러우며 새롭다 할 사진첩을 기쁘게 선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시카와 아츠시(石川厚志) 님이 빚은 사진책 《てるてるはゐひ 父さん 晴日を撮る》(雷鳥社,2011)를 읽습니다. 아이 하나가 맑은 빛을 마음껏 뽐내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책입니다. 사진책 마지막은 《てるてるはゐひ 父さん 晴日を撮る》를 가득 채우는 가시내가 동생 손을 살포시 쥐며 잠든 모습입니다. 두 아이와 날마다 복닥이는 내 삶을 돌아보며 사진책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 또한 이 사진책 딸아이처럼 첫째를 딸아이로 맞이해서 돌봅니다. 나 또한 이 사진책 갓난쟁이 둘째처럼, 우리 집 갓난쟁이 둘째하고 늘 북적거립니다.


  첫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동생을 따숩게 껴안을 줄 압니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가방을 메고 혼자 마실을 다녀오겠다며 마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올 줄 압니다. 첫째 아이는 헛간에서 호미를 찾아내어 마당 가장자리 흙자리를 콕콕 쫄 줄 압니다. 첫째 아이는 물잔을 나를 줄 알고, 밥상에 수저를 놓을 줄 압니다. 첫째 아이는 동생한테 물을 먹일 줄 알고,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빨래를 갤 줄 압니다. 첫째 아이는 종알종알 노래를 부를 줄 알고, 세발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휘휘 돌 줄 압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를 날마다 사진으로 담습니다. 첫째 아이 모습을 담고 둘째 아이 모습을 담습니다. 두 아이가 얼크러져 노는 모습을 담고, 두 아이가 잠든 모습을 담습니다. 두 아이를 씻기다가 때때로 사진 한 장 담고, 두 아이와 밥을 먹으며 사진을 담습니다. 두 아이와 마실을 다니며 사진을 담고, 두 아이가 혼자 놀거나 울거나 뛰거나 무얼 할 때면 가만히 바라보다가 사진을 담습니다.


  두 아이가 아직 나한테 찾아오지 않던 지난날에도 사진을 찍고,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사진을 찍습니다. 아직 두 아이가 찾아오지 않던 때에는 다른 이야기를 다른 사진으로 담으며 살았습니다. 이제 나는 내가 오래도록 사진으로 담던 이야기보다 두 아이와 살아내는 나날을 사진으로 더 많이 더 오래 더 자주 더 깊이 더 넓게 더 즐거이 사진으로 담습니다.


  내 어버이도 나와 같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합니다. 내가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 내 어버이도 나와 같이 느꼈을까 하고 떠올려 보곤 합니다. 내가 내 아이와 사랑스레 어울리며 하루를 빛낼 때에, 내 어버이도 나와 같이 느끼며 하루를 고맙게 누렸을까 하고 곱씹어 보곤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빛입니다. 나도 어린 나날 좋은 빛이었습니다. 나는 좋은 빛으로 태어나 좋은 빛으로 크면서 어른이 되어, 또다른 좋은 빛인 아이들을 낳습니다. 내가 낳은 좋은 빛인 아이들은 저마다 무럭무럭 자라 앞으로 새 어른으로 우뚝 설 테고, 이 아이들은 또다른 빛이 될 새 아이들을 낳겠지요.


  나는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한테 좋은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나와 옆지기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예쁘게 일구는 보금자리를 잘 다스려 아이들 또한 앞으로 오래오래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예쁘게 일굴 보금자리가 되도록 물려줄 수 있습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한테 좋은 돈을 남길 수 있습니다. 큰돈이느냐 작은돈이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 푼이든 만 푼이든, 아이 스스로 제 삶에 꽃을 피우도록 돕는 좋은 돈을 물려줄 수 있어요. 여기에 나는 우리 아이들을 날마다 기쁘게 담은 사진을 사진첩 하나로 갈무리해 선물로 베풀 수 있습니다. 또는 사진첩 여러 권을 물려줄 수 있고, 어쩌면 한 해에 한 권씩 따로 만들어 베풀 수 있으며, 아예 다달이 한 권씩 두툼히 묶어 남길 수 있어요.

 


  집집마다 다 다른 빛을 품고 다 다른 사랑을 누리며 살아갈 아이들 모습을 다 다른 어버이가 다 다른 눈길과 손길로 어루만지는 좋은 사진으로 사진첩을 하나씩 빚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합니다. 아마, 사진이 태어난 뒤 가장 아름다이 빛나는 그림이요 이야기면서 꿈이 아닐까 싶어요. 모르기는 몰라도, 사진이 태어나고 나서 사진이 가장 많이 가장 자주 가장 널리 쓰이는 곳은 바로 ‘어버이가 낳은 빛인 아이들을 담는 보금자리’가 아니랴 생각해요.


  반짝반짝 봄날, 아버지는 맑은 날을 찍습니다(책이름입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날, 어버이는 맑은 사랑을 찍습니다. 반짝반짝 좋은 날, 어머니는 꿈을 찍습니다. (4345.3.20.불.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2-03-20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참 해맑네요....

따스한 돈이라면 물려줘도 좋겠지요. 보금자리 하나 물려주었으면 싶구요.
그런데 따스함과 차가움의 균형을 다들 맞추기 힘든가봐요, 더 많이 물려주겠다고, 다른 사람을 밟고 밟아서 모은 돈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하는걸 보면.... 어쩐지.... ㅠ.

벼리랑 보라는 참 좋겠어요,
아버지가 얼마나 예쁜 사진첩을 물려줄까 싶어지네요.. 부러워요. ^^

파란놀 2012-03-20 12:07   좋아요 0 | URL
마고 님도
날마다 한 장씩 갈무리해서
한 해가 저물녘
성탄절 저녁에
사진첩 하나 만들어 선물해 보셔요.

알라딘에 사진첩 만드는 기능 생겼잖아요~
 


 골짜기 냇물 어린이


 키가 작은 어린이는 여느 어른처럼 허리를 숙여 골짜기 냇물에 손을 담그지 못합니다. 키가 작은 어린이는 돌바닥에 엎드려 손을 뻗어야 비로소 냇물에 손을 담급니다. 물이끼 하나 끼지 않는 맑은 냇물에 손을 넣어 휘휘 젓습니다. 멧새들 아름답게 지저귀고 살랑바람 앙상한 봄나무 가지를 흔듭니다. 골짜기와 숲속에서 놀고 내려오는 길에 다람쥐 한 마리 슬쩍 우리를 구경하다가 얼른 나무를 타고 올라갑니다. (4345.3.20.불.ㅎㄲㅅㄱ)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12-03-20 09:39   좋아요 0 | URL
와 정말 근사하네요.
냇물이라니
시골정취가 느끼집니다.

파란놀 2012-03-20 12:01   좋아요 0 | URL
음.. 여기는 시골이니까요~~ :)

마녀고양이 2012-03-20 12:03   좋아요 0 | URL
물 차갑지 않나요?
아직 겨울같은데, 거기는 봄이 왔나요?
햇살이 따스해보여서, 참 좋네요.. 이제 봄이 그리워요.

파란놀 2012-03-21 04:17   좋아요 0 | URL
시원해요.
여기는 벌써 봄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