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 오 분부터
저녁 여섯 시 오십 분까지
두 시간에 한 차례
읍내로 나가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

 

어른 1500원
어린이 800원.

 

20분 길을 구비구비
느긋하게 달린다.

 

걸어가면 두 시간,
자전거로 사십 분,
다섯 살 두 살
아이 데리고
옆지기와
아직 3000원이면
재미나게 마실.

 


4345.3.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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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06 : 오만방자


염라대왕의 총애를 듬뿍 받는다더니, 과연 오만방자하군요
《주호민-신과 함께 (이승편 上)》(애니북스,2011) 155쪽

 

  “염라대왕의 총애(寵愛)를 듬뿍 받는다더니”는 “염라대왕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는다더니”나 “염라대왕이 더없이 귀여워하고 아낀다더니”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과연(果然)’은 ‘참’이나 ‘참말로’나 ‘아주’나 ‘매우’로 다듬어 줍니다.


   사람들은 ‘오만방자’라는 꼴로 적잖이 생각을 나타내지만, 막상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따로 네 글자 한자말이 아닙니다. ‘오만’이랑 ‘방자’를 더한 낱말입니다. 먼저, ‘오만(傲慢)’은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을 뜻합니다. ‘방자(放恣)’는 “어려워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없이 무례하고 건방지다”를 뜻합니다. 곧, 오만이든 방자이든 ‘건방지다’는 소리입니다. 주제넘는다는 소리요, 젠체하는 꼴입니다.

 

 과연 오만방자하군요
→ 참 건방지군요
→ 참말 버릇이 없군요
→ 매우 버르장머리없군요
→ 이것 참 콧대가 높군요
→ 듣던 대로 잘난 척이군요
 …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건방지다’ 뜻을 살펴보면 “젠체하며 지나치게 주제넘다”라 나오고, ‘주제넘다’ 뜻을 찾아보면 “말이나 행동이 건방져 분수에 지나친 데가 있다”라 나옵니다. 두 낱말이 어떻게 다른가 풀이하지 않아요. ‘건방지다 = 주제넘다’로 풀이하고, ‘주제넘다 = 건방지다’로 풀이해요. 오락가락 돌림풀이입니다. 이래저래 엉망풀이예요.


  어쩌면, 국어사전 엮는 국어학자부터 한국말을 옳게 살피지 못하니, 여느 자리 여느 사람까지 한국말을 살뜰히 생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여느 자리 여느 사람부터 한국글을 옳게 쓰지 않으니, 국어사전 엮는 국어학자마저 한국글을 엉터리로 쓴다 할 수 있어요.


  주제넘은 소리가 되겠습니다만, 한국땅 어른들은 한국땅 아이들한테 말다운 말을 못 가르치거나 안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한국땅 지식인들은 한국말을 올바로 쓸 줄 모를 뿐더러, 슬기롭게 빛내지 않는구나 싶어요. 이 땅에서 이 나라 사람들이 사랑스러우며 아름답게 말꽃을 피우고 삶꽃을 나누도록 이끄는 길을 저마다 깨닫지 못하거나 헤아리지 않는구나 싶어요. (4345.3.22.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염라대왕한테서 사랑을 듬뿍 받는다더니, 듣던 대로 버릇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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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타이 도쿄 - 핸드폰으로 담아 낸 도쿄, 그 일상의 세포
안수연 지음 / 대숲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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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여기에 있고 저기에 없다
 [찾아 읽는 사진책 86] 안수연, 《케이타이 도쿄》(대숲바람,2007)

 


  새봄을 맞이하며 날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을 봅니다. 봄까지꽃을 보고, 별꽃을 봅니다. 매화꽃을 보고 광대나물을 봅니다. 나는 누가 이 꽃들한테 이런 이름 저런 이름을 붙였는지 잘 모릅니다. 풀꽃도감을 살펴보면서 이름을 헤아리고, 풀꽃 이름과 사진을 나란히 붙인 책을 읽으며 이름을 살핍니다. 어머니나 둘레 어른들이 가리키는 이름을 들으며 이름을 곱씹습니다. 때로는 내 마음대로 내가 바라보는 느낌을 떠올리며 이름을 가늠해 봅니다.


  우리 마을에서 우리 식구가 맨 처음 만난 봄꽃은 ‘봄까지꽃’입니다. 나는 이 꽃을 ‘개불알풀꽃’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들었고, 나중에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왜 ‘봄까치꽃’이라 일컬을까 궁금해서 말밑을 찾아보는데, ‘-치-’라 적은 대목은 잘못이고 ‘-지-’로 적어야 올바르다 합니다. ‘봄까지꽃’이 올바르게 적는 이름이라 해요. 따뜻한 마을에서는 늦겨울부터 이른봄 사이에 피고 진대서 ‘봄까지꽃’이라 이름을 붙였다더군요.


  그렇지만, 잘못 붙었다는 이름 ‘봄까치꽃’이 훨씬 널리 알려진다고 해요. 아마 ‘개불알풀꽃’이라는 이름도 이와 마찬가지일 테지요. 일본 풀꽃학자가 이 이름을 붙여 그만 일제강점기에 이 이름이 들어왔다던데, 이 대목까지 살필 줄 아는 사람은 드물어요. 나도 이냥저냥 이런 이름 저런 이름 깊이 살피지 않으며 쓰지 않았겠느냐 생각해요.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풀이름 꽃이름 나무이름 어떻게 알려줄까 하고 생각하며 찾아보는 이즈음에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옳게 살피고 제대로 생각하며 바르게 살아갈 때에 아이들한테 옳은 이름 좋은 생각 바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나는 나대로 ‘봄까지꽃’한테 새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내가 나대로 붙인 새 이름은 내 아이한테 이어지고, 내 아이한테 이어진 이름은 내 아이가 낳을 아이한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찬찬히 이어지는 이름이 되면, 이 이름은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마을에서 따로 일컫는 이름으로 뿌리내려요. 별꽃도, 매화꽃도, 광대나물도 그래요. 나는 별꽃을 바라보며 참 작은 별 같구나 생각했는데, 참말 이름이 별꽃이었습니다. 매화꽃은, 글쎄, 매화라 하니 매화라 말하기는 했는데, 이 꽃을 바라보며 무엇을 떠올릴 만할까 하고 더 생각하면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요. 광대나물도 그렇고요.


  손전화에 딸린 사진 찍는 기능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안수연 님이 내놓은 《케이타이 도쿄》(대숲바람,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손전화 기계는 손전화 기계이지 사진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손전화 기계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화질이나 빛느낌이나 파일크기 모두 여느 사진 기계하고 대면 아무것 아니거나 초라하다 할 테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손전화 기계 또한 ‘사진기 구실’을 하고, 손전화로도 얼마든지 ‘사진 이야기’를 빚을 만해요.


  원고지에 써야만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 되지 않아요. 광고종이 뒤켠에 글을 써도 시가 되고 소설이 되며 수필이 돼요. 붓에 물감을 묻혀 종이에 그려야 그림이 되지 않아요. 모래밭에서 나뭇가지로 그려도 그림이 돼요. 오래 남아야 그림이고, 밀물에 쓸려 사라지면 그림이 아니란 법은 없어요.


  내 마음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하늘에 대고 손가락으로 그릴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눈망울에 그릴 수 있어요.


  사진이란 내 삶이 되고, 내 사랑이 되며, 내 이야기가 됩니다. 내 삶을 빛내는 길을 찾을 때에 사진이고, 내 사랑을 나누는 꿈이 되면 사진이요, 내 이야기를 도란도란 주고받는 자리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그렇게 몰래 찍으며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 순간이 내게 준 울림들이 알 수 없는 온기로 남아 케이타이를 쥔 손이 약간은 따뜻해져 왔다(14쪽).”고 하듯, 스스로 따뜻한 기운을 느끼거나 나눌 때에 사진이 태어납니다. “그 흐름과 섞임의 조화가 묘한 울림을 준다. 어느 장소인들, 당신이 발 딛고 살고 있는 곳이라면 그런 울림이 없으랴만(91쪽).” 하고 읊듯, 내가 살아가는 어디에서라도 사진을 빚고, 사진을 일구며, 사진을 펼칩니다. 서울에 가야 사진을 배우지 않고, 도쿄에 갔기에 사진을 배우지 않으며, 한국땅 시골마을에서 흙을 만지기에 사진을 못 배우지 않아요.


  “도쿄의 저녁 시간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그들의 생활 풍경이 유난히 푸른빛 저녁 시간과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98쪽).”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좋아하는 삶일 때에 좋아하는 손길로 좋아하는 사진을 빛냅니다. 사랑하는 삶일 때에 사랑하는 눈길로 사랑하는 사진을 읽습니다. 내 매무새가 내 손길이고, 내 몸짓이 내 춤사위입니다.


  “방법은 그 다음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왜 나는 사진을 찍고 있는가? 왜 나는 사진을 선택했는가? 그럼 그는 왜 사진을 찍고 있는 걸까(172쪽)?” 하고 늘 물을 수 있으면, 언제나 생각할 수 있으면, 노상 되뇔 수 있으면, 내 가슴속에 사진이라는 씨앗이 살포시 뿌리내리겠지요. 사진이라는 씨앗이 천천히 싹을 틔우고 줄기를 올리겠지요. 이윽고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겠지요. 마지막으로 새로운 씨앗을 내놓을 테고요.

 

 


  스스로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가르칩니다. 스스로 가르치는 사람은 스스로 배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사진을 찍습니다.


  어느 사진학과에 들어가야 이름난 사진쟁이가 된다, 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로 배움길을 떠나야 멋진 사진길을 걷는다, 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 이 마음이 작은 씨앗이 된다면, 스스로 사진을 키울 수 있습니다. 사진을 키우는 나날이란, 곧 내가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남자들의 마음속엔 영원한 소년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난 여자들의 마음속엔 소중히 물을 주어 정성껏 기르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202쪽).”는 이야기처럼, 내 마음밭에 뿌린 씨앗이 나무 한 그루로 자라도록 돌보는 나날이, 내가 살아가는 나날이요, 내가 이루려는 꿈을 가꾸는 나날입니다.


  사진은 저기에 없지만, 저기에 있다고 여기면 저기로 가면 됩니다. 사진은 여기에 있으나, 여기에서 못 본다고 느끼면 여기에서 떠나면 됩니다. 좋은 삶 궂은 삶이 없듯, 좋은 사진 궂은 사진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삶을 마음껏 누리고, 사랑하는 나날을 즐겁게 빛내면 언제나 아름다이 활짝 웃는 사진이고 이야기가 됩니다. (4345.3.22.나무.ㅎㄲㅅㄱ)


― 케이타이 도쿄 (안수연 사진·글,대숲바람 펴냄,2007.7.3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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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파리채 쥐고 어디 가니

 


  누나가 마음껏 마을길을 누비고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산들보라는, 섬돌부터 손바닥 척척 소리를 내며 기더니, 혼자 대문을 넘어선다. 이윽고 마을길에 접어들고 누나가 달리는 모습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어디로 기어야 할까 망설인다. 좋은 햇살과 좋은 바람이 두 아이를 어루만진다. (4345.3.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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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있어 만난 사람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0] 사진공모, 《화보 이산가족찾기》(민족통일중앙협의회,1983)

 


  1983년,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이무렵 텔레비전으로 ‘이산가족 찾기’ 이야기를 곧잘 보았습니다. 우리 집에는 헤어지거나 잃은 식구가 없는 줄 아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 이야기를 자주 보고 자주 눈물지었습니다. 모두들 전쟁이라는 끔찍한 생채기 때문에 헤어지고 잃으며 아프던 나날을 보냈고, 누군가는 반가이 새 사랑을 이으며 누군가는 쓸쓸히 빈터를 떠납니다. 퍽 어린 내 눈은 눈물을 흘리며 생각합니다. 다른 어느 일보다 내 살붙이를 잃거나 서로 떨어지고 마는 일이 아주 슬플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지울 수 없는 응어리가 되는구나 하고.


  한 해 두 해 살같이 흐릅니다.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금세 지납니다. 사람들은 반가운 이끼리 서로 만납니다. 사람들은 낯선 이하고도 마음을 열며 사귑니다. 사람들 살아가는 이 터에서는 어느 무엇보다 서로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일이 가장 큰 셈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돈을 더 많이 번다든지, 가방끈을 더 길게 늘인다든지, 책을 더 많이 읽는다든지, 땅을 더 늘린다든지, 이름을 더 높인다든지 하는 일이란, 언뜻 보기에 꽤 기쁘다 여길는지 모르나, 막상 돈을 더 벌거나 가방끈을 더 늘리거나 책을 더 읽는대서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내 삶을 사랑하고 내 곁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온통 부질없는 셈 아닌가 싶어요.

 

 


  지난날 우리 겨레는 땅덩이를 둘로 쪼개어 서로 치고받으며 싸웠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군대로 끌려가서 죽고, 군대로 끌려가지 않은 사람도 죽습니다. 누가 누구를 도왔으니 죽고, 누구는 또 누구를 도왔기에 죽습니다. 어느 한쪽을 믿거나 따른다는 뜻이 아니라, 전쟁무기가 온 나라 골골샅샅 짓밟으며 까부수기 때문에 이리 몸을 옮기고 저리 몸을 옮깁니다. 몸과 마음을 붙이던 고향마을에서 떠나고야 맙니다.


  학교에서 먼 옛날 세 나라 이야기를 배울 때에 가까운 옛날인 1950년 전쟁을 떠올렸습니다. 고구려와 신라와 백제, 여기에 가야까지 하면 네 나라인데, 고구려이든 신라이든 백제이든 가야이든 모두 ‘한겨레’라 했어요. 고구려만 한겨레이거나 가야만 한겨레가 아니에요. 백제는 한겨레가 아니라 말하지 않고, 신라는 두겨레나 세겨레라 일컫지 않아요. 그런데, 이들 같은 겨레는 다른 나라로 쪼개져 서로 땅을 넓히거나 빼앗으려고 끝없이 싸움을 벌였어요.


  먼 옛날, 이 땅덩이 이 겨레 옛사람은 스스로 좋아서 싸움을 벌였을까 궁금합니다. 임금님이 이웃나라로 쳐들어가 땅덩이를 넓히자 외치는 바람에 싸움판에 휩쓸리지 않았나 궁금합니다. 먼 옛날이나 가까운 옛날이나 여느 사람들은 싸움터에서 죽고 고향마을에서 그만 애꿎게 죽지 않았나 싶어요.

 

 


  오늘 우리 나라는 경기도·경상도·강원도·전라도·충청도·제주도처럼 나뉩니다. 꼭 나누어야 하지 않으나, 삶터와 삶자락에 따라 나누어요. 먼 옛날, 우리 나라라 한다면 서로 싸우지 말고 한쪽은 고구려, 다른 한쪽은 백제, 또 한쪽은 가야와 신라, 이렇게 사이좋게 나누어 서로 즐거이 살림을 꾸리며 어려울 때에는 돕고 기쁠 때에는 함께 잔치를 벌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생각합니다. 굳이 한덩어리가 되어 한 임금님이 다스려야 하지 않으니까요.


  비매품으로 나온 《화보 이산가족찾기》(민족통일중앙협의회,1983)를 헌책방에서 문득 마주합니다. 이러한 책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한 장 두 장 넘깁니다. 한창 ‘이산가족 찾기’가 온 나라를 들끓던 무렵, ‘민족통일중앙협의회’라 하는 곳에서 ‘이산가족 사진공모’를 했다 하고, 이 사진공모에서 입선한 작품을 그러모아 화보 하나 마련했다 합니다.


  벌써 꽤 지난 일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돌아볼 만한 사진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헤어진 식구를 찾는 사람들 낯빛은 하나같이 슬픕니다. 헤어진 식구를 서른 몇 해만에 드디어 찾은 사람들 얼굴빛은 하나같이 눈물바람입니다.

 

 

 


  슬픔 가득한 사진을 바라봅니다. 눈물젖은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사진공모란 이모저모 많다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까지 사진공모를 해야 했을까 싶기도 한데, 이렇게 사진공모가 있었기에 이날 이곳 이 사람들 눈물과 아픔과 생채기를 먼먼 뒷날까지 찬찬히 들려줄 수 있구나 싶어요. 좋은 뜻으로든 아픈 목소리로든, 누군가 어떤 이야기 하나 빚고 나면, 이 이야기는 책이라는 자리로 그러모아 오래오래 물려주면서 새로 거듭나곤 합니다.


  사진은 흔히 기쁜 자리에서 찍습니다. 누군가 어떤 잔치를 벌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혼인잔치이든 돌잔치이든 생일잔치이든 예순잔치이든, 잔치판하고 잘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학교에 처음 들어가는 자리라든지, 학교를 마치는 자리라든지, 학교에서 상을 주고받는 자리라든지, 누군가를 기리거나 누군가한테 손뼉 쳐 주는 자리하고도 잘 어울리는 사진입니다.

 

 


  이와 달리 슬프거나 궂은 자리는 사진하고 잘 어울린다고 여깁니다. 누군가 죽었다든지, 누군가 다쳤다든지, 누군가 괴롭거나 힘든 일이 있다든지, 가난과 굶주림에 찌들리는 살림이라든지, 슬프거나 궂은 자리에서 어느 한 사람이 사진기를 들면 이내 눈살을 찌푸려요. ‘어디 함부로’ 사진기를 들이미느냐 손가락질합니다. 어쩌면, 헤어진 식구를 찾는다는 자리에서 벌인 ‘사진공모’도 적잖은 사람들한테서 손가락질을 받지 않았을까요. 방송국이며 신문사이며 잡지사이며, 여기에 개인으로 사진기를 걸친 사진작가들까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바짝 들이대니, ‘바라는 사람은 안 오’고 사진기만 춤을 추니 대단히 성가시거나 더욱 괴롭지 않았을까요.


  바라던 사람을 만난 사람들 눈물바람 모습은 누가 사진을 찍더라도 다 괜찮아 다 괜찮아 하고 외치며 기뻐했으리라 느낍니다. 바라던 사람을 만나지 못해 며칠이고 배를 곯으며 눈이 퀭한 모습은 가까운 살붙이가 사진을 슬쩍 찍으려 해도 다 싫어 다 싫어 하고 손사래치며 못마땅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나는 《화보 이산가족찾기》를 넘기면서, 헤어진 아픈 사람들 응어리진 마음을 읽습니다. 따로 공모전이 없었으면 1983년 그무렵에 ‘헤어진 아픈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책 하나로 엮으려던 움직임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어디에 지진이 나 마을이 갈라지고 무너진다 하더라도 이러한 아픔과 생채기를 적잖은 이들이 사진으로 담아 금세 사진책 하나로 갈무리해요. 먼발치 사람들까지 아픔을 나누고 생채기를 달래요.

 


  슬픈 사람들 앞에서 사진기를 들이미는 일이란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내키지 않는 사진을 넘어, 한겨레 모두한테 아픔을 보듬고 생채기를 달래며, 이 겨레가 앞으로 어떻게 살림을 꾸리며 살아야 좋은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넋이라 한다면, 얼마든지 사진을 눈물로 찍고 슬픔으로 담으며 사진책을 빚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공모 1등을 하려는 사진은 사진이 아닐 테지만, 사랑을 나누려는 사진은 사진이에요.


  사람을 찾는 사진입니다. 사랑을 찾는 사진입니다. 삶을 찾는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빚고 꿈을 이루는 사진입니다. (4345.3.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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