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동백꽃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마을 울타리를 살며시 넘겨다보면, 어느 집이나 동백꽃이 거의 다 떨어졌다. 우리 집 동백나무만큼 봉우리를 터뜨릴 줄 모른다. 우리 집 후박나무도 좀처럼 봉우리를 벌리지 않는다. 날마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늘 그 모습 그대로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그러나, 동백꽃이든 후박꽃이든 그야말로 아주 따사로운 날씨가 이어지며 더는 찬바람에 꽃잎 떨구지 않아도 될 때까지 곱게 참으며 기다리지 않을까.


  봉우리를 앙 다문 동백나무를 들여다본다. 해가 잘 드는 자리에 새 동백꽃 한 송이가 잎을 활짝 벌린다. 손을 뻗어 살며시 만진다. 줄기에 달린 잎도 보드랍지만, 이 꽃잎은 어쩜 이리 보드라울 수 있을까. 온누리 어떤 종이라 하더라도 꽃잎처럼 보드랍고 튼튼하며 향긋하게 만들 수 없겠지. 꽃잎은 며칠 지나 꽃대에서 떨어지면 이내 시들고 만다지만, 활짝 벌렸을 때이든 가랑꽃이 되든 늘 싱그러이 빛나는 목숨이기 때문에 이토록 보드라우며 튼튼한데다가 향긋할 수 있겠지.


  새 아침을 맞이해 아이들이 잠에서 깬다. 둘째는 내 무릎에 누워 더 잔다. 첫째는 방문 한쪽을 열고 앉아 책을 읽는다. 먹이를 찾으며 날아다니는 새들 소리를 듣는다. 햇살은 차츰 밝아진다. 날은 더 따스해진다. 오늘 하루 좋은 이야기 그득 우리 곁에 찾아오리라 믿는다. (4345.3.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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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진스키 할머니를 위한 선물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0
린 스미스-애리 그림, 마릴린 레이놀즈 글,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할머니들 밝은 웃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51] 린 스미스 애리·마릴린 레이놀즈, 《카진스키 할머니를 위한 선물》(시공주니어,2003)

 


  꽃은 언제부터 이토록 고운 빛깔 마음껏 뽐내며 어여뻤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지구별에 아직 사람이라 하는 목숨붙이가 없던 무렵부터 일찌감치 어여쁜 꽃이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고양이도 개도 까마귀도 종달새도 아직 없던 때, 어쩌면 지렁이도 무당벌레도 아직 없던 때, 어쩌면 벌과 나비마저 아직 없던 때, 이 어여쁜 꽃들은 스스로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지고 또다시 피고 하면서 이 지구별을 지켜보았을까 되새겨 봅니다.


  나는 어떤 지식책이나 백과사전이나 과학책에서도 ‘들꽃 발자취’ 이야기를 찾아 읽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떤 다큐방송이나 논문이나 도감에서도 ‘들꽃 한삶’ 이야기를 살펴 읽을 수 없습니다. 너무 마땅한 노릇인지 모르나, 사람은 아직 사람들 오랜 발자취조차 옳게 아로새기지 못해요. 고작 백 해쯤 앞선 때 사람들 밥상에 어떤 반찬이 올랐는지, 고작 이백 해쯤 앞선 때 사람들이 흙을 어떻게 일구었는지, 고작 오백 해쯤 앞선 때 사람들이 옷을 어떻게 지었는지, 하는 이야기조차 찬찬히 갈무리해서 책 하나 여미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한테는 생각 한 자락 있습니다. 내 몸뚱이가 오늘 이렇게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먼먼 옛날부터, 아득히 먼먼 옛날부터, 아스라이 먼먼 옛날부터, 어떠한 결과 무늬가 내 몸에 곱게 아로새겨졌는가 하고 떠올릴 수 있는 생각 한 자락 있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이 지구별 먼먼 옛날 모습을 생각합니다. 이 지구별 아득히 먼먼 옛날 꽃들이 어디에서 피어났던가 하고 생각합니다. 아스라이 먼먼 옛날 지구별 꽃들은 어떤 빛깔 어떤 무늬 어떤 모양이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 할머니는 프랭크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었어요. 오랜 세월 동안 하도 많이 웃어서 얼굴에 주름살이 주글주글했고, 몸에서는 마른 꽃이나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처럼 좋은 냄새가 풍겼지요 ..  (4쪽)

 

 


  따로 들여다보아 주는 사람이 없던 때에도 꽃들은 저마다 어여쁜 빛깔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따로 들여다보아 주는 사람 또는 어떤 목숨을 만난 뒤로는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는 어여쁜 빛깔로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꽃이든 나무이든 흙이든 풀이든 따사로이 쓰다듬는 손길을 느낍니다. 꽃도 나무도 흙도 풀도 차갑게 짓밟거나 걷어차는 발길을 느낍니다. 온누리 모든 꽃은 사랑 맑게 어리는 고운 눈길을 알아챕니다. 지구별 모든 꽃은 무시무시하게 내리꽂는 차디찬 쇠삽날을 알아챕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가 새까맣고 꾸덕살 가득한 손으로 흙을 북돋우며 꽃송이를 살며시 쓰다듬는 결을 느끼는 꽃송이입니다. 도시 책상맡 건설업자와 정치꾼이 허여멀겋고 기름 투실한 손으로 저 흙에 쇠삽날 꽂고 쇠막대기 박으라 외치는 차가운 윽박지름을 느끼는 꽃송이입니다.


  따사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따사로운 빛을 베푸는 꽃입니다. 차갑게 돈을 버는 사람들한테 온몸 내던져 죽음으로 빛을 보여주는 꽃입니다. 꽃은 늘 꽃입니다. 바라보고 알아채는 사람한테도 꽃이요, 안 바라보고 안 알아채는 사람한테도 꽃입니다.


.. 프랭크와 할머니는 둘도 없는 친구였어요. 프랭크는 곧잘 컴컴한 계단을 지나 할머니가 계신 다락방으로 놀러 가곤 했지요. 할머니와 프랭크는 따뜻한 차를 몇 잔이나 마시기도 하고, 할머니가 어렸을 때 찍은 사진도 같이 보았어요 ..  (10쪽)

 


  린 스미스 애리 님 그림과 마릴린 레이놀즈 님 글로 빚은 그림책 《카진스키 할머니를 위한 선물》(시공주니어,2003)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할머니는 언제부터 할머니였을까요. 그림책에 나오는 할머니는 언제부터 ‘이웃 프랭크라는 아이가 맡기에 참 좋다 싶은 내음’을 풍기는 할머니였을까요.


  온누리 어느 할머니나 푸근하며 좋은 할머니일까요. 지구별 모든 할머기가 사랑스러우며 따사로운 넋을 나누어 주는 할머니일까요.


.. 하지만 할머니한테는 이미 찻잔이랑, 찻잔 받침, 반짝이는 귀고리, 중국제 장식품, 레이스로 짠 깔개, 플라스틱 꽃, 가죽 케이스에 든 펜까지 다 있는걸요. 프랭크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난 가게에서 파는 물건보다 훨씬 더 좋은 걸로 선물할 거야.’ ..  (18쪽)

 


  생각해 보면, 나쁜 넋일 사람이란 없습니다. 모진 넋일 사람이란 없습니다. 궂은 넋이거나 미운 넋일 사람이란 없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 아무개라 하더라도, 하나같이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 태어납니다. 어디에서 어떤 돈을 벌고 어떤 짓을 하는 사람이든,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어머니 몸에서 천천히 자랐고, 따스한 어머니 품에서 차근차근 자랐습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낳고, 어머니는 나를 낳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되고, 어머니에서 이윽고 할머니가 됩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이 다음에 무엇이 될까요.


  들판과 멧자락을 고운 빛깔로 가득 아로새기는 꽃들은 이 다음에 무엇이 될까요. 지구별을 고운 빛깔로 환하게 물들이는 꽃들은 앞으로 무엇이 될까요. 사람들한테 맑은 꿈과 밝은 사랑을 일깨우는 꽃들은 이제부터 무엇이 될까요.


.. 할머니가 프랭크의 턱을 살짝 들어올리며 말했어요. “이보다 더 멋진 선물은 없을 거다. 이젠 같이 살 식구가 생겼으니까. 그래도 나는 우리 프랭크가 날마다 아기고양이를 보러 왔으면 좋겠구나. 약속할 수 있지?” 할머니의 눈가에 자글자글한 웃음이 번지자, 프랭크는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아주 좋아졌어요 ..  (26쪽)

 


  슬픈 눈물은 홀가분하게 똑똑 흘리고 나서, 천천히 좋은 삶으로 거듭나면 됩니다. 기쁜 웃음은 널리 나누고 나서, 찬찬히 좋은 삶을 일구면 됩니다.


  사람들 밝은 웃음은 눈물에서 비롯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 환한 웃음은 좋은 사랑에서 비롯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 해맑은 웃음은 고단한 가시밭길에서 비롯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 좋은 웃음은 멋진 꿈에서 비롯했는지 모릅니다.


  할머니들 밝은 웃음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웃집 아이한테 맑고 밝게 웃음꽃 나눌 줄 아는 할머니들 삶은 어디에서 어떤 나날을 누리며 여기까지 왔을까요. 나는 어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될까요.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어버이가 되고, 어떤 어른이 될까요. (4345.3.29.나무.ㅎㄲㅅㄱ)


― 카진스키 할머니를 위한 선물 (린 스미스 애리 그림,마릴린 레이놀즈 글,강무홍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3.7.10./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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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파리채 좋아

 


  산들보라가 마당을 길 때에 맨손으로 기면 되련만, 굳이 노란 파리채를 한손에 쥐고 긴다. 한손에 무얼 쥐면 길 때에 번거롭거나 거추장스럽지는 않니? 한손에 거추장스럽더라도 이렇게 길 때에 한결 좋거나 즐겁니? 바닥을 파리채로 탁탁 때리며 기는 산들보라 머리와 온몸에 봄햇살 드리운다. (4345.3.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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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꽃 꺾는 어린이

 


  사름벼리가 대문 언저리에서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자라나는 들꽃을 꺾는다. 그냥 눈으로 보아도 되는데 꼭 꺾어서 손에 한 움큼 쥐며 논다. 이러다가 이내 이 들꽃을 잊고는 다른 놀이에 접어들기도 하고, 부엌에 놓은 물잔에 꽃을 담기도 한다. 누나가 옹크리고 앉아 꽃을 꺾는 모습을 본 산들보라는 어느새 누나 곁으로 기어와서 무얼 하는가 구경한다. (4345.3.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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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3-30 23:04   좋아요 0 | URL
오우 둘째가 벌써 대문 밖 마실을 나가네요.태어난지 얼마 안된것 같은데 벌써 돌이 지났나요?

파란놀 2012-03-30 23:46   좋아요 0 | URL
아직 두 달 더 지나야 돌입니다~
 

아직 한국에 제대로 소개 안 된 일본 만화쟁이가 아닌가 싶은데, 그림이 어떠한가를 하나도 살피지 못하니, 이 만화를 살 만한지 어떠한지 하나도 헤아리기 어렵다. 그림 하나만 보면 내 느낌을 알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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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치며 읽고 싶은 책- 나치 미사코 단편집
나치 미사코 지음, 한나리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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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3월 2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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