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하게 혼자 앉는 어린이

 


  면이나 읍으로 마실을 가며 군내버스를 탈 때에 첫째 아이는 혼자 씩씩하게 앉는다. 저 혼자 손잡이를 척 잡는다. 손잡이를 안 잡고도 걸상에서 흔들리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다섯 살 사름벼리는 씩씩하고 예쁘다. (4345.5.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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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읽는 책

 


  길 옆으로 흐드러진 나무숲과 논밭과 멧자락과 냇물과 갯벌이 펼쳐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버스를 달리기도 하고 기차를 달리기도 합니다. 자가용이나 자전거를 달릴 때에 이러한 숲과 들과 바다와 냇물을 보기도 합니다.


  길 옆으로 가득한 아파트와 아스팔트와 끝없는 가게와 사람들을 바라보며 버스를 달리기도 하고 기차를 달리기도 합니다. 자가용이나 자전거를 달릴 때에 이러한 도시 한복판을 보기도 합니다.


  숲을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파트를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어떤 넋이 될까요. 들이나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어떤 꿈이 될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아스팔트길 끝없는 자동차 물결을 바라보며 달리는 길은 어떤 사랑이 될까요.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웁니다. 옆지기와 나는 따로 자전거에 탑니다. 내 자전거에는 두 아이가 앉아 어버이와 함께 달립니다. 논둑을 달리고 멧자락 옆길을 달립니다. 논둑에서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고, 멧자락에서는 들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큰길로 나와 면소재지와 가까워지면 자동차 소리를 듣습니다. 자동차는 한 대만 지나가더라도 휘잉 바람을 일으키며 시끄럽습니다. 다른 모든 소리를 잠재웁니다. 들길과 숲길과 멧길에서는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이야기를 이렁저렁 나눕니다. 자동차 드나드는 찻길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에라도 입을 닫아야 하지만, 말소리가 찻소리에 잠겨 하나도 안 들립니다.


  골목길을 두 다리로 걸을 때하고 공장 옆길을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아주 다른 느낌이요 삶입니다. 나무 우거진 숲 사이 흙길을 걸을 때하고 아파트 사이 돌길을 걸을 때에는 사뭇 다른 마음이며 하루입니다.


  사람들은 책을 읽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터전에 맞추어 책을 읽습니다. 사람들은 책을 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에 걸맞게 책을 씁니다. 사람들 스스로 누구하고 이웃하며 무엇을 곁에 두느냐에 따라 책읽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 스스로 누구하고 벗삼으며 어떤 보금자리를 일구느냐에 따라 글쓰기가 바뀝니다. (4345.5.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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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과 ‘나들이’와 ‘마실’
[말사랑·글꽃·삶빛 8] 생각을 하며 쓰는 말


  좋아하는 어린이책을 한 권 읽습니다. 일본사람이 쓴 글을 한국사람이 옮겼습니다. 군데군데 아쉽다 싶은 옮김말이 보입니다만, 속으로 아쉽네 하고 여긴 다음 지나칩니다. 이러다가 꼭 한 줄에서 오래도록 생각에 잠깁니다. 밑줄을 그은 다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라 할 만큼 사람들이 으레 이렇게 말을 하고 으레 이러한 말을 들으니까, 나 또한 이냥저냥 지나치면 그만일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거의 모두라 할 만한 사람들이 으레 쓰거나 듣거나 하더라도, 나부터 찬찬히 헤아리며 살짝 손질하거나 따사로이 보듬어도 좋을까 궁금합니다.

 

오소리 아저씨는 종이 옆에 ‘외출중’이라고 쓴 팻말을 걸어 놓고 세탁소 문을 나섰어요
《모이치 구미코/육은숙 옮김-숲 속 세탁소》(크레용하우스,2005) 16쪽

 

  내가 어린이책을 쓴다면, ‘세탁소(洗濯所)’라는 낱말부터 안 쓰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이책이니까요. 어린이들도 세탁소라는 가게쯤 안다 할 수 있으나, 아직 모르는 어린이도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 살아가는 집에 ‘세탁기’ 없는 곳은 없다 할 만하지만, 그래도 어린이책에 넣을 글을 쓴다 할 때에는 ‘세탁기(洗濯機)’라는 낱말마저 안 쓰고 싶습니다.


  어떤 낱말을 쓸까요. 어떤 낱말을 아이들한테 보여줄까요. 어떤 낱말로 아이들 생각밭에 말씨 하나 심을까요. 어떤 낱말로 아이들 넋과 꿈을 보듬는 길을 이끌면 즐거울까요.


  일본사람 모이치 구미코 님 어린이책을 헤아립니다. 모이치 구미코 님은 ‘사람’ 아닌 ‘들짐승’을 빗대어 어린이문학을 펼칩니다. 사람 아닌 들짐승이 나오기도 하는 만큼, 들짐승 사이에서 쓰는 낱말이라고 여기며 조금 더 다르게 새 낱말을 빚어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세탁소’ 아닌 ‘빨래집’이나 ‘빨래가게’라는 낱말을 쓰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빨래집’이나 ‘숲속 빨래집’ 같은 낱말을 넣고 싶습니다.


  나는 빨래를 늘 손으로 했습니다. 나는 스무 해 동안 손빨래를 했습니다. 스무 해만에 빨래하는 기계를 장만했지만, 빨래하는 기계가 집안에 들어왔어도 손빨래는 예전처럼 합니다. 기계가 할 수 없는 몫이 있거든요. 기계가 해 주더라도 사람이 손으로 주무르고 비벼야 하는 자리가 있어요.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빨래를 했’지, 따로 ‘손빨래를 하’지 않았어요. 얼마 앞서라 할 서른 해나 마흔 해쯤 앞서 이 나라에도 ‘빨래 맡는 기계’가 들어오면서 ‘기계빨래’와 다른 ‘손빨래’를 따로 나누어 가리킵니다. 곧, 빨래라 하면 예전부터 아주 마땅히 ‘손빨래’였는데, 이제는 빨래라 하면 아주 마땅히 ‘기계빨래’로 여겨요. 그러니 ‘손빨래’라는 낱말이 새로 생겨요. 되레 ‘기계빨래’라는 낱말이 생겨야 할 테지만, 막상 ‘기계빨래’라 말하거나 일컫는 사람은 아주 없거나 몹시 드물어요.


  하찮다 싶은 대목일까요. 어쩌면 하찮다 싶은 대목인 ‘빨래’요 ‘洗濯’인지 몰라요. ‘밥’과 ‘食事’라는 말마디도 하찮다 여길 만한지 몰라요. 나는 늘 밥을 먹지만, 둘레 사람들은 으레 “식사 하셨어요?”처럼 물어요. “밥은 먹었나요?” 하고 묻는 사람을 보기 매우 힘듭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옷차림’이나 ‘입성’이라는 낱말을 쓰지 않아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패션(fashion)’이라고 말해요.


  집에서 셈틀을 다루어 종이를 한 장 뽑는다 할 때에도 ‘종이를 뽑’거나 ‘종이에 글을 찍’는 일을 하지만, 막상 ‘종이뽑기’나 ‘종이찍기’처럼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적어도 한자말로 ‘인쇄(印刷)’라 하거나 영어로 ‘프린트(print)’라 해요. 종이를 뽑거나 글을 찍는 기계를 가리켜 ‘프린터(printer)’나 ‘인쇄기(印刷機)’라고만 하지, 딱히 한국말로 어떻게 가리켜야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반드시 한국말로 이런 낱말이나 저런 낱말이 있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해야지 싶어요. 꼭 국어사전에 어떤 한국말이 옳게 실려야 하지는 않아요. 다만, 어린이문학을 하든 어른문학을 하든, 문학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이들은 한국말로 슬기롭게 생각하면서 한국말을 빛내는 길을 살펴야지 싶어요.

 

 외출중 ↔ 나들이
 회의중 ↔ 이야기
 휴가중 ↔ 쉼
 식사중 ↔ 밥
 취침중 ↔ 잡니다
 공부중 ↔ ?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면 살림집에 아이 방을 따로 마련하기도 합니다. 이때에, 아이들은 문에 조그마한 푯말을 걸곤 합니다. 이런저런 말마디가 적힌 푯말을 건다 할 텐데, 으레 ‘-中’이라 하는 말투만 붙어요. 여러모로 한국말을 더 깊이 살피는 말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는 잘 모르지만, 요사이에는 아예 영어로 이렇게 가리키거나 저렇게 가리키기도 하겠지요. ‘공부중’이라 적기보다 ‘study’라 적는 사람이 더 많을 수 있어요. 가만히 보면, 학교에서 교사나 아이들 스스로 ‘공부한다’라는 말보다 ‘스터디한다’라는 말을 제법 자주 써요. ‘공부 모임’처럼 말하는 이는 드물고, ‘스터디 모임’처럼 말하는 이가 훨씬 많아요.


  말은 쓰는 사람 마음이니, 이렇게 쓰고 싶으면 이렇게 쓸 노릇이고, 저렇게 쓰고 싶다면 저렇게 쓸 노릇입니다. 이러쿵저러쿵 따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생각합니다. 내가 내 나름대로 내 말빛을 북돋우고 내 말결을 살찌우면서 나눌 만한 말마디를 생각합니다. ‘공부중’이라 쓰기보다 “나 공부해요”라 쓰거나 “나 책 읽어요”라 쓸 수 있어요. “배웁니다”라 써도 즐겁습니다. 한 마디로 “책”이라 적을 수 있어요. ‘외출중’은 “밖”으로 적고, ‘회의중’은 “말”로 적을 수 있어요. 한 마디로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두 마디나 세 마디로 맞추어 적어도 되고, 풀어서 적는 글로 갈무리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밖에 있어요”나 “바람 쐽니다”처럼 적습니다. “얘기 나눕니다”나 “이야기꽃”처럼 적습니다. (4345.5.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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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17 13:55   좋아요 0 | URL
숲속 빨래집... 너무 예쁜 말이예요.
세탁소보다 훨씬 동화에 어울리구요. 공부중 보다는 배웁니다... 네, 그것도 참 좋네요.

파란놀 2012-05-17 16:35   좋아요 0 | URL
동화에 어울리는 낱말을 아이들이 익숙하게 들으면
앞으로 어른이 되면서도
새롭고 싱그럽게 말을 빛내리라 느껴요

노이에자이트 2012-05-17 14:29   좋아요 0 | URL
이오덕 씨 책에도 이런 내용을 볼 수 있죠.

저는 옷거리가 좋다, 맵시난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요즘은 스타일리시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요.

파란놀 2012-05-17 16:35   좋아요 0 | URL
맵시라는 낱말은 거의 잊혀진 말이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날 만하기도 하다고 느껴요.
사람들이 이런 낱말을 모르니까 못 쓰거든요..
 
어머니전 -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소설이다
강제윤 지음, 박진강 그림 / 호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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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책에 이름 몇 글 적히지 않아도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8] 강제윤, 《어머니전》

 


- 책이름 : 어머니전
- 글 : 강제윤
- 그림 : 박진강
- 펴낸곳 : 호미 (2012.5.1.)
- 책값 : 15000원

 


  어머니는 딸을 낳고, 어머니는 할머니 되며, 딸은 어머니 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되며, 아들은 아버지 됩니다. 느티나무는 느티씨를 떨구어 어린 느티나무를 키웁니다. 단풍나무는 단풍씨를 떨구어 어린 단풍나무를 키웁니다.


  어린나무가 씨를 맺어 땅에 떨굴 때까지는 퍽 오랜 나날이 걸립니다. 사람들은 열매나무를 몇 해만에 금세 키우고 굵다란 열매까지 척척 열리게끔 하지만, 꽃을 피우든 열매를 맺든 하자면, 작은 씨앗 하나는 오랜 나날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며 잎을 틔웁니다. 여러 해나 열 몇 해 지나야 비로소 첫 꽃송이와 첫 열매를 맺어요.


.. “배추를 생으로 쌈 싸 먹고 채독에 걸리면 그 벌레가 사람 피를 빨아 먹어. 그냥 두면 죽어라우. 한디 옥수수 수염 대려 먹으면 나섰어.” 병이 있으면 병을 낫게 해 주는 약도 곁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옛날에는 약만 먹고 살았어. 도라지랑 더덕이랑 맨날 노물(나물)로 먹고 살았제.” 할머니는 그런 약초들을 캐다 팔아 자식들을 키우고 교육시켰다 … 할머니는 어제 딴 강낭콩 두 가마니를 삼천포 장에 내다 팔고 오는 길이다. 10킬로그램에 일만오천 원, 두 가마라 해 봐야 겨우 삼만 원이다. 씨 뿌리고, 키우고 결실을 얻어다 파는 값이 이토록 헐하다. 농사가 얼마나 천대받는 시대인가 … 저 고무 대야 속 작은 전복 하나에도 잠녀들 목숨 값이 들어 있다 ..  (13, 44, 67쪽)


  우리 집 뒤꼍 뽕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이 뽕나무에서는 오디가 맺힐 테고, 오디가 맺히기 앞서 뽕꽃이 필 텐데, 뽕꽃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합니다. 봄맞이 숱한 들꽃과 나무꽃을 말하는 사람 많은데, 막상 이른봄 찾아드는 느티꽃이라든지 굴참꽃이라든지 떡갈꽃을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얘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아무래도 하얗거나 노랗거나 분홍빛 감도는 꽃잎 아니고는 익숙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붉은 빛이거나 보라빛 아니라면 꽃잎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단풍나무에는 단풍꽃이 핍니다. 은행나무에는 은행꽃이 핍니다. 소나무에는 솔꽃이 필 테지요. 나무는 줄기를 굵고 높고 튼튼히 뻗으면서 꽃을 피웁니다.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습니다.


  사람은 생각을 하고 사랑을 나누며 차근차근 씩씩한 어른이 되면서 몸속에 씨앗을 품습니다. 몸속에 품은 씨앗으로 아이를 하나만 낳을 수 있고, 열을 낳을 수 있습니다. 씨앗을 모두 목숨으로 맺어야 하지 않아요. 씨앗은 씨앗대로 몸속에서 곱게 깃들다가 몸안으로 스며들 수 있어요. 씨앗은 좋은 꿈을 만나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어요. 씨앗은 새로운 씨앗으로 이어지며 우리들 살아가는 지구별을 아름다이 돌보는 밑힘이 될 수 있어요.


  돌이켜보면, 나무들은 나무씨를 내며 지구별을 푸르게 가꿉니다. 풀들은 풀씨를 내며 지구별을 푸르게 돌봅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씨를 내어 지구별을 어떤 빛깔로 가꾸는가요. 사람은 사람씨를 맺을 때에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사랑을 나누는가요. 사람은 저마다 몸에 품은 씨앗을 알뜰히 건사하나요. 사람은 스스로 몸에 품은 씨앗을 예쁘게 아끼나요.


.. “부친 모친 가시고 나니 갈 일이 있나.” 이제는 할머니가 스스로 고향이 되었다 … 장소가 고향이 아니다. 사람이 고향이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고향이다. 할머니는 이미 스스로 자식들의 고향이 되었으니 어디에 달리 고향이 있겠는가 ..  (39, 189쪽)


  아침이 되어 아이들이 하나둘 깨어납니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하나둘 잠듭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 무언가 집일을 해 보려 하지만, 내 몸도 고단해서 아이 곁에 나란히 쓰러집니다. 아이들이 잘 때에 함께 자고, 아이들이 일어날 때에 같이 일어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보다 몇 시간 일찍 일어납니다. 아이들이 깨기 앞서 하루를 열며 아침을 맞습니다. 아침밥 차리려고 부엌일을 하든, 아이들 옷가지 빨래하려고 밑빨래를 해 두든, 아이들이 새근새근 꿈나라를 누빌 때에 조용히 일어납니다.


  내 어머니도 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이와 같았겠지요. 내 아버지도 내가 어린이였을 무렵에 이와 같았겠지요.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아 돌본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와 같았을 테고, 차근차근 거슬러 올라가며 마주할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이와 같았을 테지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는 언제나 아이들하고 함께하면서 아이들보다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널리 살피며 더 깊이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는 늘 아이들하고 복닥이면서 아이들보다 더 힘을 쓰고 더 사랑을 북돋우며 더 꿈을 키웁니다.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받은 사랑을 누립니다. 내 아이들은 나와 옆지기한테서 받는 사랑을 누립니다. 사랑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사랑을 물려주지 못하는 어버이는 사랑 없이 메마르게 살아갑니다.


  나무는 씨앗에 무엇을 담을까 생각해 봅니다. 풀은 씨앗에 무엇을 실을까 헤아려 봅니다. 어른나무는 작은 씨앗이 앞으로 어떻게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기 바랄까요. 봄날 짙푸르게 우거지는 풀들은 저희 풀씨가 앞으로 어떤 땅에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기를 꿈꿀까요.


.. 아주머니는 난생처음 본 나그네지만, 집에 들렀으니 뭐라도 대접하고 싶었던 게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넙죽 받아먹는다. 평생 다시 마주칠 일 없을 나그네한테 베푸는 마음이란, 대체 어떤 마음일까 … “오늘 연락선으로 들어오셨습니까. 우리 손죽도가 훤합니다.” 할머니는 손죽도를 찾아와 준 나그네에게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  (105, 156쪽)


  섬마을을 돌며 ‘어머니’한테서 이야기를 듣는 강제윤 님이 빚은 《어머니전》(호미,2012)을 읽습니다. 《어머니전》에 나오는 이들은 강제윤 님한테 어머니라 할 만한 분입니다. 누군가한테는 이들 ‘어머니’가 ‘할머니’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한테는 이들 ‘어머니’가 ‘동무’일 수 있습니다.


  강제윤 님이 섬마을에서 만나는 예순 일흔 여든 아흔 줄에 접어든 어머니 들은 하나같이 일을 합니다. ‘일’이라 했지만, 당신들 어머니 삶을 이어온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맞이합니다.


  바다에 나가든 물을 만지든 흙을 보듬든, 어머니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아주 늙은 오늘까지 일을 하고 삶을 꾸리며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들은 언제나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씁니다. 어머니들은 어디에서나 아이들을 사랑하고 흙을 사랑하며 들판을 사랑합니다.


  몸으로 아이를 품는 어버이라서일까요. 몸으로 아이를 품지 않더라도 가슴으로 아이를 품는 어버이라서일까요. 아버지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은 왜 어머니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처럼 따스하거나 너르거나 깊다고 말하지 않을까요. 아버지들은 왜 스스로 아이한테 따스하며 너르면서 깊은 사랑을 물려주려는 넋을 품지 않는 듯 보일까요. 아버지도 아이였을 적에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았을 텐데, 아이일 적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스스로 어버이가 된 다음 아이한테 얼마나 어떻게 물려주는 삶일까요.


.. 다 밥 먹고 살자고 사는 세상 아닌가. 밥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섬이라고 무엇이 다르랴. 많은 사람이 도시에 살지만, 그들 또한 밥벌이를 위해 직장이라는 섬에 갇혀 살지 않는가 … 어느 쪽이든 자동차를 타고 서둘러 왔다가 서둘러 떠난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도 대개는 섬에 몰입하기보다는 놀이나 식도락에 몰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섬에 와서도 섬을 보지 못한다 … “조개도 옛날 같지 않고 밤낮 자디잘아유. 원래 이게 물물이 크는 건데 밤낮 봐야 콩알 같아. 삶아 논 것마냥 안 커요.” 보름 한 물때마다 몰라보게 씨알이 굵어지던 것이 이제는 삶은 조개처럼 아예 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근처에 있는 보령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매연 때문이다. 나무들도 시들시들하다가 썩어 주저앉는다. 밭작물도 제대로 자라는 것이 없다 ..  (159∼160, 162, 174쪽)


  ‘밥 먹고 살자’는 누리입니다. 나도 먹고 너도 먹으며 함께 살아가자는 지구별입니다. 어른도 밥을 먹고 아이도 밥을 먹습니다. 사람도 밥을 먹고 벌레도 밥을 먹습니다. 나무도 풀도 꽃도 새도 나비도 밥을 먹습니다. 저마다 밥상이 다르고, 저마다 집이 다르며, 저마다 아기씨가 다릅니다. 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사랑을 피우면서 생각을 빛냅니다.


  밥은 얼마나 어떻게 먹을 때에 즐거울까요. 내 몸을 따스하게 채우는 밥은 얼마쯤 먹을 때에 흐뭇할까요. 밥은 어떻게 차릴 때에 기쁠까요. 내 마음을 너그러이 보듬는 밥은 누구하고 먹을 때에 아름다울까요.


  고속도로는 누가 지을까요. 제철소와 발전소는 누가 지을까요. 고속철도는 누가 지을까요. 공항과 항구는 누가 지을까요. 군대는 누가 만들까요. 탱크와 전투기와 항공모함은 누가 만들까요. 경제발전은 왜 이루어야 할까요. 사회복지와 문화예술은 왜 이루어야 하나요. 대학교에는 왜 가야 하고, 인터넷은 왜 해야 하나요.


  무엇을 하며 살아갈 때에 기쁜 하루일까요. 무엇을 누리는 삶일 때에 아름다운 꿈일까요. 무엇을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면서 즐기면서 고마운 나날일까요.


.. 나그네는 수백 년을 이어 온 이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 못내 애석하다. 문화재란 무엇일까. 이미 사라져 쓸모없는 관청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과연 문화적 가치가 있는 일일까. 저 오래된 마을과 집과 돌담과 나무와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문화재가 아닐까 … 이 마을에도 돌담 대신 담장들은 대부분 블록 벽돌담이다. 사십여 년 전,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때 돌담을 헐어 버리고 쌓은 것이다. 돌담은 수백 년 세월에도 변함없이 튼튼한데 저 벽돌은 벌써 썩어서 시커멓다 … 이들 섬에는 각기 드라마 촬영장과 영화 촬영지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이 관광 상품으로서, 가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풍광 좋은 해변마다 촬영장이 들어서고 그것들이 마치 섬을 대표하는 문화처럼 선전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오래된 섬살이의 흔적들은 증발해 버리고 가상의 드라마가 현실의 자리를 대체해 버렸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수천 년 역사의 섬에서 고작 내세울 것이 멜로드라마나 영화 촬영장뿐이라면 그것은 코미디다 ..  (17, 54, 162쪽)


  어머니들이 살아가는 오늘은 고스란히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삶이야기’이고, 하루를 지나면 ‘옛이야기’입니다. 아버지들이 살아가는 오늘 또한 하나하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삶이야기’이고, 이듬날부터는 ‘옛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이야기를 짓습니다.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이야기를 짓습니다. 더 좋다거나 더 궂다 싶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더 기쁘다거나 더 슬프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살아가며 누리는 이야기입니다. 살아가며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살아가며 웃고 우는 이야기입니다. 좋다 싶은 일을 마주하면 좋다 싶은 생각으로 이야기를 빚습니다. 궂다 싶은 일을 부딪히면 궂다 싶은 생채기로 이야기를 빚습니다.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되기도 하고, 푸른개구리는 엄마개구리 말하고 어긋난 짓을 일삼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눈도 코도 귀도 손도 발도 하나뿐인 아이는 홀로 씩씩하게 크며 힘센 기운을 착한 곳에 씁니다. 팥죽을 나누어 먹은 밤알이며 까치이며 늙은 할멈을 거들어 범한테서 작은 보금자리를 지킵니다. 콩쥐도 팥쥐도 모두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흥부도 놀부도 한결같이 귀여운 아이입니다. 방귀를 뀌어도 며느리요, 바느질이 서툴어도 옆지기입니다. 낫질을 잘 해도 옆지기일 테고, 글을 못 읽어도 사위일 테지요.


  모두들 사랑스럽게 얼크러지며 밥을 먹는 삶입니다. 저마다 살가이 어깨동무하며 밥을 나누는 삶입니다. 어머니들은 섬에서 수천 해 수만 해를 살았습니다. 따로 이름 석 자 없이도 아이를 사랑으로 낳고 사랑으로 돌봅니다. 족보나 역사책에 이름 몇 글 적히지 않아도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도 사랑으로 키웁니다. 《어머니전》은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어머니 삶”입니다. “어머니 사랑”입니다. “어머니 꿈”입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며 즐거이 누린 고운 빛입니다. (4345.5.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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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출판사 사진책은 웬만하면 미리보기도 책소개도 따로 없기 일쑤이다. 이 사진책에서 사진을 찍은 '아일라'가 누구인지를 밝혀야지, 해설을 적은 '정진국'이 누구인지를 밝히면 무얼 하나. 어쨌든 믿고 장만하며 사진을 읽기는 하나, 출판사에서 이런 대목에 마음을 조금이나마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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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라가 사랑한 동물 이야기- 온가족이 함께보는 헝가리 여성사진가 아일라의 동물사진 앨범
정진국 글, 이일라 사진 / 눈빛 / 2012년 5월
18,000원 → 17,100원(5%할인) / 마일리지 52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2년 05월 1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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