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牛) - 김진선 사진집
김진선 사진 / 사진과예술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곁에서 찾는 사랑스러운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96] 김진선, 《소(牛)》(사진예술사,2008)

 


  마당 한쪽에서 스스로 자라는 풀꽃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뒤꼍에 마련한 뒷밭에 첫째 아이와 함께 물을 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다른 분들은 봄날 어떤 봄꽃을 구경하고 사진으로 담는지 모르나, 나는 내가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 날마다 마주하는 들꽃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새로 돋는 풀이 어여쁩니다. 자운영 꽃빛이 예쁘다 느낍니다. 모과나무에 맺힌 앙증맞은 꽃송이를 쓰다듬습니다. 감잎 푸른 사이사이 막 몽글려고 하는 몽우리를 봅니다. 뽕나무는 오디가 맺히는데, 오디가 되기 앞서 피어난 꽃송이는 뽕잎 빛깔하고 같습니다. 느티꽃은 느티잎하고 꽃빛이 같은데, 뽕꽃도 뽕잎하고 꽃빛이 같습니다.


  봄꽃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봄날 들판과 멧자락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빛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봄빛을 사진책으로 살며시 옮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봄날 봄빛을 사진으로 옮기는 이들 가운데 ‘사진쟁이 보금자리에서 날마다 마주하는 봄내음’을 누리면서 사진길을 걷는 이는 드문 듯합니다. 여름날 여름빛을 사진으로 옮기든, 가을날 가을빛을 사진으로 옮기든, 겨울날 겨울빛을 사진으로 옮기든, 스스로 뿌리내려 살아가는 터에서 사진빛을 나누는 이는 퍽 드물지 싶어요.

 

 


  가난한 사람들 찾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터에서 마주하는 이웃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가멸찬 사람들 찾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더라도, 또 내로라하는 이들 찾아 인물사진을 찍더라도, 언제나 내 삶터에서 가장 가까운 데에서 살아가는 이웃을 마주하며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요. 꼭 어느 호텔 어느 전시장에서 마련하는 잔치마당에서 패션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패션쇼라는 이름이 붙는 곳에서 모델을 앞세워야 패션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도 패션사진은 태어납니다. 내 작은 집 작은 방에서도 패션사진은 태어납니다. 나 스스로 생각할 때에 내 사진이 태어납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는 결을 살피거나 살릴 때에 내 사진이 아름답습니다.


  사진책 《소(牛)》(사진예술사,2008)는 강원도지사로 일하던 김진선 님이 내놓았습니다. 김진선 님은 “사진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제시해야 하는 사진, 누구보다 자신있어 그 내밀한 진실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내 사진은 어떤 것일까? 그런 고심의 시간, 살아오면서 체험하고 인식한 내 기억을 모두 꺼내놓고 샅샅이 뒤져 보았다(4쪽)” 하고 스스로 묻습니다. 스스로 물은 다음 “그러고 보면 강원도 사람, 소, 사진이 갖는 기본적 공통점이 ‘정직’이다. 강원도지사가 소(牛)를 테마로 한 사진작품을 내놓는 이유다(5쪽).” 하고 스스로 밝힙니다.

 

 


  소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으나 아주 없지 않습니다. 소를 사진으로 찍되, 일소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훨씬 적습니다. 이와 함께, 싸움소를 사진으로 찍는다든지, 농장에서 풀을 뜯다가 고기로 팔릴 소를 찍는다든지, 좁은 우리에서 사료만 먹으며 젖을 내놓다가 머잖아 고기로 팔릴 소를 찍는다든지 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어쩌면, 고기소 될 소들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남녘땅 곳곳을 돌며 일소를 사진으로 담는 분은 있다 할 테지만, 남녘땅 곳곳 소우리를 찾아다니며 가엾게 갇힌 소를 사진으로 담는 분은 몇 사람쯤 될까요. 젖을 내놓다가는 고기소가 될 젖소를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는 분은 몇 사람쯤 있을까요.


  김진선 님이 내놓은 사진책 《소(牛)》에는 ‘들판에서 풀을 뜯다가 고기소로 팔릴 날을 기다리는 소’가 나옵니다. 김진선 님은 소 가까이 다가서기도 하고, 소 멀찍이 떨어진 채 바라보기도 합니다. 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는 사진이 있고, 소가 어떤 생각을 품는지 가늠하는 듯한 사진이 있습니다. 쉬는 소가 있고 움직이는 소가 있습니다. 무리지은 소가 있고 외따로 떨어진 소가 있습니다.

 

 


  사진책 《소(牛)》를 빚은 김진선 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었을까요. 사진책 《소(牛)》는 우리들한테 무슨 삶을 보여줄 만한 이야기밭이 될까요. 김진선 님이 어린 나날 보던 소와 사진책에 담긴 소는 서로 얼마나 떨어진 채 ‘같은’ 소라는 목숨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까요. 사진책으로 소를 마주하는 오늘날 사람들은 밥상에 오르는 소고기와 사진책에 나타나는 소를 어떻게 맞대어 생각을 북돋울까요.


  김진선 님은 소 아닌 돼지를 사진으로 찍으면서도 당신 꿈을 보여줄 수 있나요. 돼지 아닌 메뚜기를 찍거나, 메뚜기 아닌 개구리를 찍거나, 개구리 아닌 뱀을 찍거나, 뱀 아닌 갈매기를 찍거나, 갈매기 아닌 오징어를 찍는다면, 이때에도 당신 사랑을 보여줄 수 있나요.


  사람들은 마른오징어도 먹고 물오징어도 먹습니다. 오징어 잡는 고깃배가 바다를 넘실넘실 가로지릅니다. 누군가는 오징어잡이배에 올라타고는 오징어 낚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겠지요. 누군가는 바닷속으로 풍덩 들어가서 바닷속 헤엄치는 오징어 모습을 사진으로 옮기겠지요.


  양식장에서 넙치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을까요. 갯벌에서 조개 캐는 할머니들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을까요. 굴을 까고 조개를 까는 아줌마들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을까요. 스쳐 지나가는 사진이 아니라, 곁에서 오래오래 지켜보거나 함께 일하면서 찍는 사진으로 빚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이들 모습을 예쁘게 찍자면,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며 예쁘게 웃는 어른으로 지내면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난하게 살아가는 힘겨운 나날을 찍어 온누리에 알리자면, 나 스스로 가난한 사람들하고 한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며 힘겨운 나날을 몸소 겪으면 됩니다. 사진책 《소(牛)》를 내놓은 김진선 님은 ‘들판에서 풀을 뜯다가 고기소로 팔릴 날을 기다리는 소’를 바라보면서 어떤 넋이었고 어떤 얼이었으며 어떤 빛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소를 바라볼 때에 왜 ‘올바르다(정직)’고 여길까요. 흙에 기대어 흙을 일구는 사람이 아주 드문 오늘날에도 소는 옛날처럼 ‘올바르다’고 여길 짐승으로 삼을 만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사람들한테 소는 참말 무엇이고, 김진선 님이 사진으로 아로새긴 소에 서린 이야기와 꿈은 이 땅에서 참말 무엇이라고 말해야 좋을까 궁금합니다.


  해거름에 둥지로 돌아오는 처마 밑 제비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제비들은 새벽 일찍 깨어나 노래하며 먹이를 찾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지런히 먹이를 얻어 새끼들을 먹입니다. 시나브로 새끼들은 어른이 되겠지요. 어른이 된 제비는 날갯짓을 바지런히 익혀 가을날 무르익는 들판을 바라보며 더 따스한 곳으로 날아가겠지요. 그러고는 이듬해 따사로운 새봄에 옛 둥지로 찾아오겠지요. 문득, 시골집에서 살아가며 처마 밑 제비를 사진으로 담으며 이야기 엮는 사진쟁이는 한국에 몇 사람쯤 될까 궁금합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 소(牛) (김진선 사진,사진예술사 펴냄,2008.5.28./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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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입에서 나오는 말
[말사랑·글꽃·삶빛 9] 고사성어 아닌 삶말

 


  우리 집 첫째 아이가 다섯 살을 살아가는 어느 날 아침입니다. 이슬이 들판을 곱게 적십니다. 나란히 햇살을 받으며 마당에 섭니다. 들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문득 한 마디 합니다. “아버지 왜 (저 새들은) ‘은지 은지 은지’ 해요?” 함께 들새 노랫소리 듣던 아버지는 ‘찌삣 찌삣 찌삣’처럼 들었으나, 아이는 ‘은지 은지 은지’처럼 듣습니다. 아이 말을 되새기며 들새 노랫소리를 맞추어 봅니다. 아버지와 아이는 들새 이름을 모르지만, 이 들새가 노래하는 소리는 ‘은지 은지 은지’라 해도 잘 들어맞는구나 싶습니다. 다른 분들이 이 들새 노랫소리를 듣는다면 이와는 달리 적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마당에 놓인 자전거를 타려다가 “어, 젖었네.” 하면서 옷섶으로 자전거 안장을 닦습니다. 아버지는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젖지 않았어. 거기엔 이슬이 앉았어.” “이슥?” “아니, 이슬. 자, 여기도 봐. 여기 풀잎에 물방울이 맺혔지. 이 물방울을 이슬이라고 해.” “아, 이·슬.”


  차츰 밝고 노랗게 빛나는 햇살을 올려다보다가는, 마당 빙 둘러 자라는 들풀에 맺힌 이슬을 함께 내려다봅니다. 아이는 한손을 휘휘 저으며 손가락마다 이슬을 붙입니다. 풀잎 이슬을 아이 손가락으로 옮기는 이슬놀이를 합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와 이불을 빨래합니다. 손으로 비누를 바르고 비빔질을 하다가 빨래기계에 넣습니다. 아버지는 아이한테 ‘빨래기계’라 말하기에,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는 ‘빨래기계’라는 말을 익힙니다. 우리 시골집에 나들이하는 다른 분들은 우리 식구가 드디어 ‘세탁기(洗濯機)’를 들이며 손빨래에서 벗어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 아이는 바깥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는 ‘세탁기’라는 말을 들으면서 천천히 익힙니다.


  아이 어머니가 당근을 갈아서 잔에 담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당근즙(-汁)’이라 말하면 아이는 ‘당근즙’이라는 말을 들으며 배웁니다. 아이 어머니가 ‘당근 간 물’이라 말하면 아이는 새삼스레 ‘당근 간 물’이라 들으며 배웁니다.


  아이는 “나 밥 먹을래.” 하고 말합니다. 아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늘 ‘밥’을 먹기 때문입니다.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느 때에 “자, 우리 식사(食事)하자.”처럼 말했다면, 아이는 “나 식사 할래.” 하고 말하겠지요.


  얼마 앞서 읽은 책 《어머니전》(호미,2012)을 생각합니다. 《어머니전》이라는 이야기책은 섬마을 두루 도는 분이 섬마을 할머니들 삶을 조곤조곤 여쭙고 들은 말마디를 하나하나 아로새깁니다. 25쪽을 보면, “첫 숟갈에 배부를까. 방죽을 파 놔야 머구리(개구리)가 뛰어들제. 그물코도 삼천 코면 걸릴 날 있다고, 차분히 맘먹고 사시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43쪽을 보면, “마도를 똥막대기 만든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섬마을 할머니, 곧 ‘섬할매’ 입에서는 “첫 숟갈에 배부를까”라든지 “방죽을 파놔야 머구리가 뛰어들제”라든지 “그물코도 삼천 코면 걸릴 날 있다고”라든지 “똥막대기 만든다”라든지, 당신들 살아오며 몸으로 겪은 말마디가 톡톡 튀어나옵니다. 하나둘 샘솟습니다.


  한국말을 살피는 학자들은 섬할매 말마디를 으레 ‘속담(俗談)’이라든지 ‘격언(格言)’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리킵니다. 또다른 이름으로 ‘상말(常-)’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상말’ 뜻을 찾아보면 “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말”이라 나옵니다. 여느 사람들이 으레(常) 쓰는 말이기에 ‘상말’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여느 사람들이 으레 쓰는 말이 “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말”이라 합니다. ‘상(常)스러운’이란 무슨 뜻일까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상스러운 말’이란 어떤 말일까요? ‘상스럽다’는 “말이나 행동이 보기에 천하고 교양이 없다”를 뜻한다 합니다. ‘속담’이란 “속된(俗) 말(談)”을 가리킵니다. ‘속되다’는 “(1)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다 (2) 평범하고 세속적이다”를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 살피는 학자들 학문에 따른다면, 섬할매들 말마디는 ‘속되거나 상스러운 말’인 셈이요, 낮고 나쁜 말이라 일컫는 셈입니다.


  섬마을 두루 도는 어느 분이 섬마을 할매들을 만나지 않고, 서울이나 부산에서 교수님이나 학자님을 만났더라면 아마 ‘속담’이나 ‘상말’이 아닌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를 으레 들었으리라 봅니다. 이녁이 책을 낼 때에도 이녁 책에는 고사성어와 사자성어가 가득하리라 생각합니다.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란 ‘한자로 엮은 말’입니다. ‘고사성어’는 ‘중국 옛일을 한자로 적은 말’이요, ‘사자성어’란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자 넉 자로 적은 말’이에요.


  아이들은 늘 배웁니다. 아이들은 둘레 어른들이 나누는 말을 듣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전라남도 고흥에서 살아가면 전라남도 고흥말을 듣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경상남도 통영에서 살아가면 경상남도 통영말을 듣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시골할매하고 만나며 살아가면 아이들은 시골할매 말을 듣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면 아이들은 학원 강사나 학교 교사 말을 듣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면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말을 듣고 배웁니다.


  어른들도 노상 배웁니다. 어른들 스스로 어디를 일터로 삼느냐에 따라 어른들 스스로 듣고 배우는 말이 달라집니다. 어른들 스스로 찾아 읽는 책이나 신문이나 잡지에 따라 어른들 스스로 읽고 배우는 말이 바뀝니다.


  고장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는 고장말을 듣고 익힙니다. 사자성어나 고사성어 같은 한자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는 사자성어나 고사성어 같은 한자말을 익숙하게 여기며 익숙하게 씁니다. 영어를 으레 듣고 자라는 아이는 영어를 으레 받아들이며 영어로 아이 생각을 밝히며 살아갑니다.


  고운 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는 고운 말로 생각하며 이야기를 꽃피웁니다. 맑은 글을 읽고 자라는 아이는 맑은 글로 생각을 키우며 사랑을 나눕니다. 살가운 말을 들으며 자라는 아이는 살가운 말로 생각하며 꿈을 이룹니다. 따스한 글을 읽고 자라는 아이는 따스한 글로 생각을 돌보며 믿음을 다스립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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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5-21 13:23   좋아요 0 | URL
어머, 이뻐라,
벼리가 '왜 새가 은지은지 해요?' 하던가요?
그렇게도 들리는구나... 하기사, 짹짹 삐약삐약 등 하나의 말로 한정짓기엔
너무 아까운 아름다운 소리잖아요.

댓글 달면서, '한정짓기엔'을 우리말로 풀어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 망설이는데
생각나질 않아요. 가르쳐주세요, 된장님.

파란놀 2012-05-22 04:47   좋아요 0 | URL
'뭉뚱그리다'라 하면 돼요.

또는 "삐약삐약 같은 말로만 적기엔"처럼 적어도 되고요.

토씨 '-만'이 있으니
알맞게 잘 살리면 됩니다~

hnine 2012-05-21 15:51   좋아요 0 | URL
지난 번에 읽은 이정록 시인의 책에도 충청도 사투리가 나오는 대목은 저도 모르게 따라 읽어보게 되던데요. 이 책도 그럴 것 같아요. Thanks to하고 구입합니다 ^^

파란놀 2012-05-22 04:46   좋아요 0 | URL
어머니전 장만하시는가 봐요?
오오~
아무쪼록 즐거이 누려 주시리라 믿어요~ ^^
 


 '-적' 없애야 말 된다
 (1650) 창의적 1 : 창의적인 이름

 

그런 엉터리 영어를 가져다 우리가 국가 정책 용어에 버젓이 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말로 창의적인 이름을 붙이면 얼마나 좋을까
《배상복·오경순-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21세기북스,2012) 143쪽

 

  “우리가 국가(國家) 정책 용어(用語)에”는 “우리 나라 정책 말에”나 “이 나라 정책 낱말에”나 “우리 나라 정책에서 쓰는 말에”로 다듬고, “쓴다는 것은”은 “쓰는 일은”이나 “쓰면”으로 다듬습니다. “문제(問題)가 아닐 수 없다”는 “잘못이 아닐 수 없다”나 “크게 잘못이다”나 “참 말썽거리이다”처럼 손질할 수 있습니다.


  ‘창의적(創意的)’은 “창의성을 띠거나 가진”을 뜻한다 합니다. ‘창의성(創意性)’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을 뜻한다 해요. 곧, ‘창의적’이란 “새로운 무엇을 생각하는”을 가리킨다 할 테지요. ‘-적’을 뺀 ‘창의(創意)’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새로운 의견을 생각하여 냄”을 뜻한다고 나와요.

  곰곰이 살피면, 국어사전 뜻풀이가 뒤죽박죽인 셈이에요. 한쪽에서는 ‘생각’이라는 낱말을 쓰고 다른 한쪽에서는 ‘의견(意見)’이라는 낱말을 쓰거든요. 한자말 ‘의견’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을 뜻한다 하기에, 참 얄궂습니다. 한국사람은 굳이 ‘의견’이라는 한자말을 안 받아들여도 얼마든지 ‘생각’을 빛내거나 북돋울 만하거든요.


  스스로 생각할 노릇입니다. 스스로 한국말을 생각하고, 스스로 한겨레 넋을 생각하며, 스스로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사랑을 생각할 노릇입니다. 어떠한 말로 어떠한 넋을 가다듬어 어떠한 꿈을 펼칠 때에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생각을 아름답게 가꾸고, 생각을 슬기롭게 돌보며, 생각을 알차게 일굴 노릇입니다.

 

 우리 말로 창의적인 이름을 붙이면
→ 우리 말로 슬기롭게 이름을 붙이면
→ 우리 말로 알맞게 이름을 붙이면
→ 우리 말로 아름답게 이름을 붙이면
 …

 

  어떤 정책에서 쓰는 이름을 붙이려 할 때에는 ‘잘’ 붙여야 합니다. 곧, “우리 말로 이름을 잘 붙여야”지요. 정책에서 쓰는 이름이든 다른 자리에서 쓰는 이름이든 ‘좋게’ 붙여야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로 좋은 이름을 붙여야”지요.


  하나하나 생각하면 환하게 알 만한데요, ‘창의’란, 또 ‘창의성’이란, 다시 ‘창의적’이란, “좋은 생각”이나 “환한 생각”이나 “슬기로운 생각”이나 “알맞다 할 생각”이나 “아름답다 여길 생각” 들을 일컫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는 “멋진 생각”이 됩니다. 어느 자리에서는 “대단한 생각”이 됩니다. 어느 자리에서는 “훌륭한 생각”이나 “빼어난 생각”이 되겠지요.

 

 창의적 계획 → 좋은 계획 / 슬기로운 계획
 창의적 방법을 고안하다 → 좋은 길을 찾다 / 새 길을 찾다
 창의적인 생각 → 슬기로운 생각 / 새로운 생각

 

  말뜻을 두루 살펴 “새 생각”이나 “새로운 생각”이라 이야기할 때에도 잘 어울립니다. “창의적이지 못하다” 할 때에는 “새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슬기롭지 못하다”거나 “좋지 못하다”는 뜻이에요. “창의적인 사람”이라 할 때에는 “생각이 새로운 사람”이라거나 “새롭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한 마디 말을 하더라도 생각을 북돋울 때에 아름다이 빛납니다. 한 줄 글을 쓰더라도 생각을 갈고닦을 적에 튼튼하게 바로섭니다. 삶을 빛내는 말이요, 꿈을 일구는 글입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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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엉터리 영어를 가져다 우리 나라 정책 이름에 버젓이 쓰는 일은 참 나쁘다. 우리 말로 슬기롭게 이름을 붙이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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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씨 주부 전업중! 1
하나코 마츠야마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회사원 말고 가정주부 되셔요
 [만화책 즐겨읽기 150] 마츠야마 하나코, 《쇼코 씨 주부전업중! (1)》

 


  내가 퍽 어려 국민학교에 다닐 무렵,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언제나 ‘장래 직업 조사’를 했습니다. 해마다 한 차례씩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싶은가’ 하고 물었습니다. 6학년쯤이었나, ‘직업 적성 검사’를 받기도 했다고 떠오릅니다. 국민학교 마치고 들어갈 중학교를 어디로 골라야 하는가를 따지는 검사였을 텐데, 이런 검사를 중학교 3학년 때에도 했는지 아리송하지만, 아마 이런저런 비슷한 검사와 조사는 참 많았겠지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하고 묻는 자리에서는, 이를테면 ‘공장 일꾼’이라든지 ‘시골 일꾼’은 아예 목록에조차 들지 않습니다. 도시 학교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길을 말하지도 보여주지도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도시 학교는 김을 맨다든지 씨앗을 심는다든지 나무를 사랑한다든지 하는 삶을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도시라는 곳이 움직이자면 공장이 꼭 있어야 하는데, 막상 공장에서 일할 아이들한테 어떤 마음이 되도록 이끌어야 하는가 하는 대목 또한 살피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요. 으레 하는 말이란 ‘회사원’이나 ‘공무원’입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겠다고 적는 일은 교사들한테 트집을 잡히지 않으며, 어버이들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운동선수’나 ‘예술가’를 적는 아이들은 좀 엉뚱하다 여기다가는, 나이 들면 알아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바뀌겠거니 여기곤 했습니다.


  국민학교에서 가시내 가운데 ‘주부’를 적는 아이가 더러 있었습니다. 아마 이 아이 어버이가 ‘가시내이기 때문에 더 학교 보낼 뜻이 없다’고 늘 밝히니 주부라 적었구나 싶어요. 가시내 가운데에는 주부를 적는 아이가 있는데, 사내 가운데에는 주부를 적는 아이가 없습니다. 사내가 ‘장래 희망’이나 ‘장래 직업’으로 주부라 적으면 무슨 미친 짓이느냐며 꾸짖거나 두들겨팼습니다.


- “여보, 일 열심히 하고 와. 우리 집안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니까, 내가 내던지고 온 커리어와 사회적 지위를 대신해 내 몫까지 열심히 하고 와!” (5쪽)
- “글쎄, 우리 남편이! 전업주부는 남자한테 기생해 사는 존재일 뿐이래요!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그렇게 따지면, 남편 분도 회사에 기생해 사는 것뿐이잖아요.” (18쪽)

 

 


  나는 국민학교 마친 지 스물다섯 해가 흘렀습니다. 고등학교 마친 지 열아홉 해가 지났습니다. 이제 와 예전 일과 삶을 하나하나 되짚습니다. 내가 열두 해 다닌 학교에서는 나한테든 동무한테든 ‘집안일’ 하기를 가르친 적이 따로 없습니다. ‘집안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가르친 적도 없습니다. 아니, ‘집이란 어떤 곳인가’부터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집은 어떻게 보살펴야 좋은가’를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집 바깥인 ‘사회’가 어떠한 곳이며, 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사회는 어떻게 흐르는가를 가르치거나 이야기했다고는 느끼지 못합니다. 학교는 오직 시험공부와 시험성적만 따졌을 뿐,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나 넋이나 뜻이나 꿈은 하나도 안 건드리는 데라고 느껴요.


  회사원으로 일하는 분은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분은 공공기관이 무엇을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회사는 회사원한테 어떻게 일삯을 줄 수 있을까요. 공공기관은 공무원한테 어떻게 일삯을 주고 연금을 줄 수 있을까요.


  회사가 없거나 공공기관이 없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회사가 있거나 공공기관이 있는 이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멋지거나 좋거나 훌륭할까요.


  운동선수나 연예인은 이 나라를 얼마나 빛내는가 궁금합니다. 예술가나 문학가는 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궁금합니다. 교사나 학자는 이 나라를 얼마나 아끼는가 궁금합니다.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은 이 나라를 얼마나 살찌우는가 궁금합니다.

 

 


- “결혼을 결심한 건, 밖에서 잠깐 만나는 것만으로는 그에 대해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전 그를 보고 늘 생각했어요. ‘왜 늘 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걸까?’ 알고 보니 같은 옷을 몇 벌씩 갖고 있는 거더라고요.” (9쪽)
- “전업주부란 말씀이신가요? 그, 가사를 노동으로 보지 않는 남성지에서 분류상 ‘일을 하지 않는 여성’이라 표기하며 남녀의 ‘협력’ 하에 만들어 가야 할 가정임에도 어째선지 남편만을 ‘가장’이라 부르고, 컴퓨터로 가계부를 쓸 정도로 하이테크 가전을 잘 사용하고 있지만, 무조건 기계치로 단정지을 뿐 아니라, 없어지면 바로 곤란해 하면서도 보통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평가가 너무나도 낮은 바로 그, 전업주부라고요?” “응. 바로 그거.” (75쪽)


  오늘날 한국땅에는 직업군인이 있습니다. 이웃나라에도 직업군인이 있습니다. 낱낱이 살핀다면, 직업군인 숫자는 꽤 많습니다. 직업군인이란 ‘군인을 직업으로 삼는’ 셈인데, 군인이 하는 일이란 ‘사람 죽이기’입니다. 적으로 삼는 사람을 죽이는 짓을 갈고닦거나 배우는 데가 군대입니다. 곧, 적군이든 아군이든 사람을 죽여야 비로소 군인 노릇을 잘 하는 셈이요, 군인이 된 사람이라면 ‘사람을 잘 죽여’야 ‘좋은(?)’ 군인이라 할 만합니다.


  직업군인은 어떤 일을 할까요. 직업군인은 이 나라를 지킬까요. 직업군인은 평화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만한가요. 직업군인으로 일하면서 한 집안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다면, 이이 직업군인은 살붙이와 아이들을 사랑과 믿음과 꿈으로 어여삐 보살필 만한가요.


  회사원으로 일하는 어버이는 살붙이와 아이들한테 어떤 사랑과 믿음과 꿈을 들려줄까요. 공무원으로 일하는 어버이는 살붙이와 아이들한테 어떤 사랑과 믿음과 꿈을 나눌 만할까요.


  아이들이 어버이 뒤를 이어 회사원이 되면 좋은가요. 아이들이 어버이 뒤를 따라 공무원이 되거나 직업군인이 되면 좋은가요. 아이들이 어버이 뒤를 좇아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되면 좋은가요.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무엇을 보고 느끼면서 앞으로 어떤 삶을 꾸려야 좋은가요.

 

 


- “여보세요? 취급설명서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요. 이 끝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주부라도 가능하다’란 말의 뜻은 뭔가요? 요즘 나온 가전은 취급상 그렇게 어려운 부분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간단히 조립할 수 있는 걸로 아는데요?” (23쪽)
- “남편 혼자 (집에) 둬도 괜찮아?” “저녁 준비 해 놨으니까 데우기만 하면 돼.” “그, 그 뒤에 그릇은 어떻게 해?” “자기가 씻어 두는데?” “굉장하다! 세상에 그런 남자도 있구나.” “…….” (93쪽)


  마츠야마 하나코 님 만화책 《쇼코 씨 주부전업중!》(대원씨아이,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회사에서 ‘부장’ 자리에 있던 아가씨가 ‘혼인을 한다’면서 부장 자리를 덜컥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됩니다. 부장이었던 쇼코 씨는 이제껏 전업주부는 생각해 보지 못했고 겪지 못했다면서, 새롭게 살아가고픈 꿈을 키웁니다. 마지못해 전업주부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전업주부가 됩니다. 밥을 차리며 언제나 새롭게 손맛을 북돋웁니다. 집안을 가다듬고 돌보며 새롭게 살림을 빛냅니다. 다만,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대서 아이를 낳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사랑 하나를 빼고는, 쇼코 씨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을 스스로 가장 즐겁게 걷습니다.


- ‘쇼코 씨를 지키고 싶다. 그런 일념으로 마코토는 복싱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 프로 라이센스 획득.’ “프로의 주먹은 흉기니까, 경기 외엔 사용하지 말고,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냥 같이 도망가 줘.” (88쪽)
- “아무튼 내가 가사일을 하지 않는 건, 아내를 외조하는 남자가 남자답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생물의 생명활동의 주된 임무는 번식이잖아요. 다시 말해, 아이가 있는 부부의 일은 육아가 훨씬 더 중요하고, 그걸 보조하기 위해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게 아닌가요?” “좋아. 그럼 내가 주부를 하겠어!” (114쪽)

 


  2010년대 한국땅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돈을 줍니다. 아이를 둘 낳으면 돈을 더 주고, 아이를 셋이나 넷쯤 낳으면 ‘애국자’라는 이름표까지 붙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넋이나 아끼는 손길이 아닌, 아이를 돈으로 여기는 나라 정책입니다. 왜 갓난쟁이마다 돈셈을 해야 할까요. 왜 갓난쟁이를 돈으로 사고팔려 할까요.


  가만히 보면, 2010년대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웃나라에서 ‘색시’를 돈으로 사들입니다. 중국에서 색시를 사들이고, 베트남과 필리핀에서 색시를 사들입니다. ‘혼인해서 아이를 낳으려는 한국 여자’가 너무 적다며, ‘혼인해서 아이를 낳아 줄 여자’를 이웃나라에서 돈을 치러 사들입니다.


  사랑을 빛내며 혼인하는 삶이 차츰 시듭니다. 사랑을 빛내며 혼인하여 살다가 사랑을 꿈꾸며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은 자꾸 멀어집니다.


  나라에서 ‘아이를 하나만 낳으라’고 외치기에 아이를 하나만 낳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얼른 혼인해서 아이들 쑥쑥 낳으라’고 외치니까 아이를 여럿 쑥쑥 낳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 될 두 사람이 아름다이 사랑하면서 낳을 뿐입니다. 혼인은 가시내와 사내가 서로 곱게 사랑하면서 맺을 뿐입니다. 일이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을 스스로 가장 곱게 밝히면서 찾을 뿐입니다. 직업이란 돈만 버는 일거리가 아니라, 내 삶을 가장 예쁘게 누리면서 좋아할 만한 자리입니다.


  만화책 쇼코 씨는 즐겁게 전업주부가 됩니다. 스스로 전업주부가 되어, 전업주부란 어떻게 좋은가를 느낍니다.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나날은 어떠한 ‘살림꾼’ 노릇을 하면서 이녁 삶을 빛내는가를 생각합니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던 때, 또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때, 나는 내 ‘장래 희망 설문조사’ 종이에는 다른 이름을 적어 넣었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가정주부’라는 말을 아로새겼습니다. ‘희망 직업’ 1순위나 2순위에는 다른 이름을 적어 넣었고, 3순위쯤에는 ‘살림꾼’이라는 이름을 적어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주부’라 적었다가 지우개로 지우고 반듯하게 ‘살림꾼’이라고 적었습니다.


  두 아이와 살아가며 집일을 도맡는 내 모습을 되새기니, 내 삶자리는 벌써 어린 나날부터 나 스스로 이렇게 가닥을 잡으며 이어왔구나 싶습니다. ‘가사노동’이나 ‘육아노동’이 아니라 ‘집살림 누리는 삶’입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 쇼코 씨 주부전업중! 1 (마츠야마 하나코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2.6.15./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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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학교쯤 다니지 않고서야 페스탈로찌라는 사람을 알아보려 하지 않으리라 느낀다. 어쩔 수 없는 한국 사회 골칫거리인데, 삶을 배우거나 삶을 살찌우거나 삶을 사랑하는 길하고 자꾸자꾸 멀어지니, 이러한 사람들 이야기를 찬찬히 살피지 못한다.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페스탈로찌는 "가난하고 힘없으며 외로운 아이들이 슬기롭게 삶을 배우며 사랑하는 길을 열려"고 애쓴 사람이다. 페스탈로찌 때문에 '초등 보통 교육'이 생겼는데, 페스탈로찌가 세운 '초등 보통 교육'과 '오늘날 제도권 의무교육'은 너무 다르다. 왜냐하면, 페스탈로찌는 '의무'교육이 되도록 바라거나 꿈꾸지 않았다. 페스탈로찌는 아이들 스스로 홀로서는 밑틀과 밑힘을 갈고닦도록 도우려고 '보통'교육을 했을 뿐이다.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놀며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어울리는 길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의무'교육은 무엇을 하는가. 오직 시험점수와 대학바라기로만 나아가지 않나. 이 그림책을 읽으려는 어른들이 부디, 생각 좀 잘 추스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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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학교- 페스탈로치
강무홍 지음, 허구 그림 / 양철북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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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5월 2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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