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씨 책읽기

 


  민들레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꽃을 피운다. 민들레는 줄기를 높게 올려 씨를 흩날린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꽃을 피우는 민들레인 줄 예전부터 알았지만, 막상 민들레가 씨앗을 퍼뜨릴 때에는 줄기를 높이높이 올리는 줄 ‘늘 바라보며 살았’어도 정작 제대로 깨닫거나 알아보지는 못했다.


  어떤 씨앗을 어디로 날리고 싶어 줄기를 이렇게 높이높이 올릴까. 어느 아이가 줄기를 똑 따서 신나게 후 불어 주기를 바라며 이렇게 높디높은 줄기를 뻗을까. 줄기를 뻗어 씨앗을 널리 흩뿌리고 난 다음, 민들레 삶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꺾인 줄기는 어떻게 아물까. 꽃도 씨앗도 줄기도 없는 민들레 잎사귀는 남은 삶을 어떤 꿈을 꾸며 보낼까. 꽃도 씨앗도 줄기도 없이 땅바닥에 납작 잎사귀 붙이며 끝삶을 누리는 민들레를 알아보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아이들과 흙땅을 밟으며 민들레하고 실컷 논다. (4345.5.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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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눕는 책읽기

 


  돌을 막 지난 둘째 아이가 마룻바닥을 뒹굴면서 논다. 아예 드러누워 논다. 서재도서관 마룻바닥은 아이들한테 좋은 쉼터이자 놀이터요 책터이고 삶터 구실까지 한다. 아직 바닥을 깨끗하게 닦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먼지가 좀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기고 뛰고 구른다. 아이들 옷은 금세 지저분해진다. 아이들 옷이며 손이며 금세 까맣게 바뀐다. 마음껏 구르며 논 다음, 신나게 뒹굴며 논 다음, 다 같이 마을 샘가로 간다. 샘가에서 모두 씻는다. 묵은 옷은 벗는다. 햇볕을 조금 쬐고 나서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러고 또 논다. 놀고 놀며 다시 논다. (4345.5.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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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닌 것이 없다 - 사물과 나눈 이야기
이현주 지음 / 샨티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가
 [책읽기 삶읽기 104] 이현주, 《사랑 아닌 것이 없다》(샨티,2012)

 


  아침에 일어나서 들새 소리를 들으며 뒷간으로 가서 똥을 눕니다. 똥을 한창 누고 나올 무렵 멧새 소리를 듣습니다. 섬돌에 신을 벗고 들어갈 무렵, 처마 밑 옛 둥지 손질해서 암수 짝을 이루어 새로 들어온 제비 두 마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집은 시골마을에 작은 집 하나만 마련했습니다. 우리한테는 꼭 이 집 한 채 얻을 돈만 있었거든요. 시골에서 살아가지만, 막상 밭이고 논이고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시골마을에서 예쁘고 즐거이 살아갑니다. 이웃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보는 밭을 바라보고 논을 들여다봅니다. 때때로 두레를 나가고 곧잘 일손을 거듭니다. 때때로 푸성귀를 얻고 곧잘 쌀을 얻습니다.


.. 마음을 모으지 않고서 어떻게 아름다운 가을의 황금 들녘을 볼 수 있겠는가? … 자네가 누구를 기·다·린·다·면 자네는 영원토록 그를 만나지 못할 걸세 … 사람이 사람으로 살지 않는 수도 있나 ..  (21, 75, 99쪽)


  이제 마을 논마다 물을 가득 댑니다. 물이 가득 찬 논은 무논이라 합니다. 무논에는 개구리가 오붓하게 살아갑니다.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개구리 노랫소리가 온 고을을 채웁니다. 낮보다는 저녁이나 밤에 더 개구지고 힘차게 울어대는데, 아무래도 낮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어 저희를 잡아먹으려 하기 때문일 테지요. 깊은 밤이나 새벽에 첫째 아이 오줌 누이러 바깥으로 나오면, 언제나 곽곽 크게 울어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즐깁니다. 첫째 아이는 오줌그릇에 앉아 쉬를 누며 꾸벅꾸벅 졸고, 아버지는 곁에서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붙들면서 개구리 이야기를 듣습니다.


  논 옆을 지나갈 때에 가끔 개구리가 뽀롱 튀어나옵니다. 멋모르는 개구리는 찻길로 올라섭니다. 찻길로 올라선 개구리라 하더라도 우리 마을 언저리로 지나가는 차는 매우 드뭅니다. 한참을 내다 보더라도 차 한 대 지나갈 일이 없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우리 마을 무논 개구리는 나그네 자동차한테 치여 죽거나 밟혀 떡이 될 일이 없다 할 만합니다. 아이들과 마실을 다니며 길바닥을 내려다보아도 납짝꿍이 된 떡개구리는 아직 못 보았어요.


.. 기차에서 내리기 직전, 서둘러 안경알을 닦는다. 안경이 스스로 안경을 닦지 못한다는 사실이 따스한 위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면서 … 타고난 목소리보다 크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나무 이름이지 나무가 아니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나무 이름이 아니라 나무에 붙여진 이름이다 ..  (46, 58, 177쪽)


  엊그제 이웃집 마늘밭 일손을 조금 거들었습니다. 그리 안 넓은 밭뙈기인데,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마늘을 캐고 엮고 나르고 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당신 딸아들을 모두 도시로 보내고 늙은 몸 움직여 마늘을 심고 돌보다가 캡니다. 도시 사람은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허리 구부러지며 일군 마늘을 돈 몇 푼 치러서 사다 먹습니다.


  참 고된 일이기에 당신 딸아들한테 마늘밭 일이건 무논 일이건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돈을 더 벌려고 짓는 흙일이 아니라, 시골마을에서 조용하면서 오붓하게 살아가는 꿈과 사랑을 누리려고 짓는 흙일이라 한다면, 굳이 밭뙈기에 마늘만 가득 심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여러 푸성귀를 골고루 심을 만하고, 여러 열매나무를 알뜰히 심을 만해요.


  식구들 먹을 푸성귀라면 아주 마땅히 풀약이고 비료이고 안 쓰겠지요. 살붙이들 먹을 열매라면 아주 마땅히 거름만 낼 테며, 흙이 보드랍고 기름지도록 땀을 흘리겠지요. 이렇게 일구어 거두는 열매와 곡식과 푸성귀라 한다면, 저잣거리에 내다 팔더라도 제값을 옳게 받을 수 있으며, 흙일꾼이건 도시사람이건 모두 좋으며 흐뭇하리라 느껴요.


.. 사랑 아닌 것도 사랑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명심해 두어라. 이 세상에는 사랑의 표현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없음을 … 세상에 순결하지 않은 물건이 있는가 … 이 땅에 생명이 있든 없든,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랑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길밖에는 걸어야 할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  (84, 96, 164∼165쪽)


  우리한테 아직 땅이 없지만, 오래지 않아 넉넉하고 너르며 푸른 땅뙈기가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는 우리 땀과 똥오줌으로 땅뙈기를 한결 푸르며 어여삐 아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마을마다 흙을 살찌우고 땅을 북돋우며 이웃을 사랑하는 꿈결이 널리 퍼지리라 생각합니다. 이제껏 시골에서는 어린이와 젊은이를 온통 도시로 보내기만 했지만, 앞으로는 도시 어린이와 젊은이가 모두 시골로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서로서로 겨루거나 서로서로 밟고 올라서서는 살아갈 수 없거든요. 사람은 서로서로 믿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거든요. 사람은 서로서로 기대고 돌보며 얼싸안을 때에 살아갈 수 있어요. 사람은 서로서로 웃고 얘기하며 밥을 나눌 때에 살아갈 수 있어요.


  돈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밥을 먹는 사람이에요. 기름이나 자가용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풀을 먹고 열매를 먹는 사람이에요. 아파트를 먹지 못하고, 아파트는 오래지 않아 허물어야 해요. 사람은 흙을 먹고 흙을 누며 흙을 물려받아요.


.. 자네가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데, 내가 무슨 말로 장단을 맞춘단 말인가 … 누가 나를 버렸는지 그건 모를 일이나 나는 버림받지 않았네. 아무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버릴 수 없으니까 … 나는 나무요 흙이요 물이요 공기요 태양이요, 나는 모든 것이다 ..  (64, 92, 111쪽)


  이현주 목사님 생각주머니를 담은 《사랑 아닌 것이 없다》(샨티,2012)를 읽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은 온갖 ‘것’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먼저 말문을 열기도 하고, 나중에 말문을 열기도 합니다. 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개구리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마, 파리라든지 제비라든지 모기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책을 다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누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까.


  뒤꼍 뽕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앞마당 노랑붓꽃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처마 밑 제비들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마을 들새랑 멧새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논둑 자운영이랑 광대나물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오월이 무르익으며 한껏 해맑은 찔레꽃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벌써 꽃씨 날리는 민들레 줄기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나는 내가 사랑할 만한 누군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며 서로 어깨동무할 만한 벗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 손길이 그득 밴 부엌칼이랑 도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빨래비누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 책들과 연필과 베개와 자판과 옆지기 뜨개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느 무엇보다 우리 사랑스러운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며, 우리 어여쁜 두 아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하고, 우리 좋은 동무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또, 하느님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지구별이랑, 숲이랑, 바다랑, 해랑, 달이랑, 별이랑, 구름이랑, 빗물이랑, 무지개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4345.5.24.나무.ㅎㄲㅅㄱ)


― 사랑 아닌 것이 없다 (이현주 글,샨티 펴냄,2012.3.9./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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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랑붓꽃 책읽기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노랑붓꽃이 곱게 핀다. 마당 한쪽에 노랑붓꽃이 있는 줄 몰랐다. 꽃이 피고서야 비로소 노랑붓꽃이로구나 하고 깨닫는다. 다른 풀도, 다른 나무도, 잎이 돋거나 꽃이 피지 않고서야 좀처럼 알아보지 못한다. 나뭇가지만 앙상히 있을 때에 어떤 나무인가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아주 조그마해서 티끌이나 흙알 같아 보이는 풀씨를 바라보며 정작 풀씨인지 아닌지 가누지 못한다.


  그러나, 꽃으로 피어나기 앞서도 꽃이요 풀이며 나무이고 목숨이다. 꽃으로 곱게 피어나기 앞서도 어여쁜 꽃이며 풀이고 나무이자 목숨이다.


  가슴속에 품은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씨앗이다. 마음속에 안은 아리따운 꿈이 있는 목숨이다. 이제 노랑붓꽃은 한창 꽃내음 들려주다가 천천히 지겠지. 노랑붓꽃이 지고 나면, 아하 이 풀잎이 노랑붓꽃잎이구나 하고 생각하겠지. 우리 집 마당뿐 아니라 길가에서도, 들판에서도, 멧자락에서도, 이와 비슷한 풀줄기를 바라보면 ‘이 풀줄기는 어떤 꽃을 피울까’ 하고 생각하겠지. (4345.5.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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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무지개빛과 그림자빛

 


  우리 집 어여쁜 아이를 날마다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어떤 뚜렷한 그림을 그리며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어여삐 자라나는 모습을 하루하루 적바림하겠다는 뜻으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여쁜 모습을 사진책 하나로 꾸며 주고 싶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마주하는 이 아이 빛깔이 참 좋다고 느껴 절로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나는 날마다 우리 아이들 새롭게 마주하며 새롭게 사진으로 옮기면서 내 ‘사진 손길’을 나날이 새롭게 가다듬습니다.


  엊그제 저녁, 아마 일곱 시 즈음인데,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 멧등성이 너머로 사라집니다. 그래도 마을은 훤합니다. 네 식구 즐겁게 천천히 마실을 나옵니다. 찔레꽃 내음을 맡고 찔레꽃 몇 닢 따먹을 생각으로 마실을 나옵니다. 해가 넘어간 뒤라 사진기로 아이들 모습을 담을 때에 셔터값이 매우 낮습니다. 감도를 400으로 맞추어도 셔터값 1/15초 나오기 빠듯합니다. 이윽고 감도를 800으로 높이지만 셔터값은 1/8초가 됩니다. 그래도 찔레꽃 내음과 빛깔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갓난쟁이를 품에 안고 손떨림 없이 사진을 찍습니다.


  늦저녁 찔레꽃 사진을 찍다가 생각합니다. 첫째 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 나는 첫째 아이를 안고 업고 하면서 인천 골목동네를 여러 시간 누볐습니다. 그때에도 아이를 한손으로 안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기 쥐어 사진을 찍었어요. 나는 일찍부터 ‘한손 사진찍기’를 가다듬은 셈이었을까요. 더 거슬러 헤아립니다. 옆지기를 만나기 훨씬 앞서, 나 혼자 살림을 꾸리던 풋풋한 신문배달 젊은이였을 적, 한손으로 짐자전거를 몰고 다른 한손으로 바구니 신문을 한 장씩 꺼내어 허벅지에 탁탁 튕기어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은 다음 ‘자전거로 골목을 달리는 채’ 신문 한 장 휙 대문 위쪽 빈틈으로 던져 넣어 골목집 문간에 사뿐히 놓이도록 했습니다. 나는 이무렵부터 ‘한손 아이 안고 한손 사진기 들어 찍기’를 갈고닦은 셈이었을까요.


  무지개빛 사진으로 찍다가 까망하양 두 가지 빛깔인 그림자 사진으로 찍습니다. 퍽 오랜만에 그림자 사진을 찍는다고 느낍니다. 새삼스럽고 남다르다 느낍니다.


  그리고, 문득 떠올립니다. 다른 분들이 어떤 낱말을 쓰든 나는 그닥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학자나 전문가나 비평가께서 어떤 낱말로 사진 이야기를 펼치든 나는 딱히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말을 씁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시골마을에서 네 식구 조용히 살아가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삶을 내가 사랑할 만한 작은 사진기로 날마다 즐거이 아로새깁니다. 이리하여, 나는 내 나름대로 ‘사진말’을 갈무리합니다.


  나는 ‘칼라’ 사진이라고 말하기보다 ‘무지개(빛)’ 사진이라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칼라(color)’ 또는 ‘컬러’는 영어라 할 수 없습니다. 워낙 널리 쓰는 낱말입니다. ‘color’는 한국말 아닌 외국말이지만, 이 낱말을 외국말로 느끼거나 여기는 젊은이나 어린이는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컬러’이든 ‘칼라’이든 따로 가르치거나 들려주고 싶지 않아요. 우리 집 아이들이 나중에 영어를 배우며 이 낱말을 익히거나 들으면 모르되, 어버이인 나부터 아이들 앞에서 이 낱말을 읊고 싶지 않아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니, 굳이 곰곰이 생각하지 않아도 환하게 떠오릅니다. 나는 “무지개 사진을 찍겠어!” 하고.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든,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든, 숲과 들판을 사진으로 담든,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든, 내 눈으로는 ‘무지개처럼 고운 빛깔’을 봅니다. 이리하여, 나는 으레 ‘무지개(빛)’ 사진을 찍어요.


  엊그제 모처럼 까망과 하양이 어우러지는 사진을 찍으며 새롭게 생각합니다. ‘무지개(빛)’ 사진과 나란히 서는 ‘까망하양’ 사진이라 말할 수 있는데, ‘까망하양’이란 ‘그림자(빛)’라 할 만하구나 싶어요. 햇볕을 받건 형광등을 받건, 사람이든 제비이든 박쥐이든 옷장이든 치마이든 모두 ‘똑같은 빛깔 그림자’입니다. 이른바 ‘흑백(黑白)’이라 일컫는 사진은 ‘그림자빛’을 찍는 셈이라 할 만해요.


  그림자빛은 까망이거나 하양이지 않습니다. 같은 까망이라도 그림자 자리마다 짙기가 다릅니다. 어느 곳은 더 짙고 어느 곳은 더 옅습니다. 같은 하양이라도 그림자 자리마다 더 밝거나 더 어둡습니다.


  깊은 밤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가 그림책 읽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살며시 무지개빛 사진을 찍습니다. 환한 낮 개구지게 뛰놀다가 글씨 쓰기를 익히려고 방바닥에 엎드린 아이가 연필을 놀리는 모습을 말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슬며시 그림자빛 사진을 찍습니다. 참 좋은 하루를 날마다 기쁘게 누립니다. 사진은 나한테 늘 고마우면서 예쁜 삶벗입니다. (4345.5.24.나무.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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