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하루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거꾸로 생각한다. 아이는 제 어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하루가 얼마나 기쁜지 모를 만큼 재미날까.


  사람들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어느 책은 재미있다 말하고 어느 책은 재미없다 말한다. 어느 영화는 볼 만하다 말하고 어느 영화는 볼 만하지 않다 말한다. 거꾸로 생각한다. 책을 쓰거나 영화를 찍은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이나 ‘영화를 보는 사람’ 삶을 재미있다고 느낄까.


  아이가 빛종이 하나를 들고 달려온다. “비행기 접어 줘.” “저번에 접어 주었는데.” “비행기 접어 줘.” “기다려요. 아버지 다른 일 하니까.” “비행기 접어 줘.” “아버지 하던 일 끝나면 접을게.” “비행기 접어 줘.” 아이는 제가 바라는 뜻을 이룰 때까지 달라붙어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비행기를 접는다. 다 접은 비행기를 아버지가 휙 날린다. 꺄아. 소리를 지르며 웃는 아이가 비행기를 쥔다. 기운차게 날린다. 종이 한 장은 책으로 묶이고, 비행기가 되며, 놀잇감이 되다가는, 좋은 이야기로 숨결을 잇는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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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기저귀 빨래 책읽기

 


  첫째 아이가 태어난 2008년 8월 16일부터 내 삶에서 ‘빨래’는 아주 진득하게 자리잡았다. 이와 함께 ‘밥하기’라든지 여러 갈래 집일이 단단히 자리잡았다. 첫째 아이가 스스로 똥오줌 다 가리고부터 이제 ‘빨래’ 일이 많이 줄어들까 하고 생각했으나, 첫째 아이가 밤오줌을 다 가리고 나서 곧장 둘째 아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내 삶에서 ‘빨래’는 앞으로도 몇 해 진득하게 이어가리라 느낀다.


  갓난쟁이는 언제 똥이나 오줌을 눌 지 알 수 없다. 식구들이 밥먹는 자리에서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자다가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함께 나들이를 가는 길에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번쩍 안아서 예쁘다 말할 때에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그러니까, 아이들 빨래는 언제나 한다. 아침에도 밤에도 낮에도 새벽에도 언제나 한다. 똥기저귀나 똥바지 빨래라면 더더욱 언제나 한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 아버지로서 날마다 빨래를 한다. 아이들 아버지로서 날마다 빨래를 한 지 여러 해 되었다.


  문득 생각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빨래하는 아버지’는 몇이나 될까. ‘날마다 빨래하는 아버지’는 이 가운데 몇이나 될까. ‘날마다 똥을 주물럭거리며 빨래하는 아버지’는 이 가운데 몇쯤 될까.


  내가 국민학생이던 어린 날, 내 할아버지는 당신 몸을 쓰지 못해 으레 누워 지냈다. 내 어머니는 내 할아버지 똥오줌을 날마다 여러 차례 받았고, 이불이며 옷가지이며 으레 손으로 빨래를 했다. 빨래기계가 마땅히 없던 무렵이기도 했으나, 빨래기계가 있대서 똥이불이나 똥옷을 기계로 빨지 못한다. 손으로 빨아야 한다.


  나는 참 여러 해에 걸쳐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할아버지 똥옷을 빨래한 적은 없었지만, 똥이불을 빨래할 때에 어머니 곁에서 발로 밟는 일은 으레 거들었다. 그런데 내 어머니는 똥을 주무르면서 무어라 싫어하거나 꺼려한 적이 없었다고 느낀다. 그저 늘 하는 일이요,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삶이었다.


  아이들 똥을 날마다 숱하게 주무르기에 내 손과 몸에는 아이들 똥내음이 밴다. 내 옷가지에는 아이들 침내음이랑 오줌내음이랑 땀내음이 밴다. 이 삶이 싫다거나 이 삶이 못마땅하거나 이 삶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느 때였나, 꽤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아이가 눈 똥을 치우지 못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꽤 크게 놀랐다. ‘아이가 눈 똥을 치운 적 없다는 아버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크게 놀랐다.


  아이가 눈 똥을 치운 적 없는 아버지라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눈 똥을 치운 적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못 치우지 않을까? 옆지기가 눈 똥은 치울 수 있을까? 살붙이가 게운 것을 치울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벗이 몸져 누우며 내놓은 똥오줌을 치울 수 있을까? 예쁘장한 아가씨들 젖가슴이나 엉덩이는 주무를 수 있어도,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똥은 주무를 수 없을까?


  똥을 주무르지 못하는 사내라면, 거름을 주무르지 못하겠지. 거름을 주무르지 못한다면 흙을 만지지 못하겠지. 흙을 만지지 못한다면 사랑을 아끼지 못하겠지.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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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5-30 00:02   좋아요 0 | URL
아기 똥기저귀를 빠는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요?
우리집 애 아빠도 아이들 키울 때 큰거 싸놓으면 나를 불렀죠.ㅜㅜ

파란놀 2012-05-30 00:29   좋아요 0 | URL
아버지들은... 스스로 아이였을 적 제 똥을
누가 어떻게 치웠을까쯤이라도 생각해야지
비로소 철들리라 느껴요...
 
가지 - 상 - 안달루시아의 여름 세미콜론 코믹스
구로다 이오우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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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보람
 [만화책 즐겨읽기 151] 구로다 이오우, 《가지 (상)》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 우체국으로 달립니다. 나한테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더운 여름이든 추운 겨울이든 따스한 봄이든 시원한 가을이든 늘 자전거를 달립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짐이 있을 때에도 한결 느긋할까 하고 어림해 보지만, 언제나 고개를 젓습니다. 자가용으로 더 빨리 달린대서 내 삶이 더 넉넉하거나 기쁘리라 느끼지 않아요. 이렇게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운 자전거를 천천히 몰 수 있을 때에 좋습니다.


  바람을 쐬고 햇살을 받습니다. 들새 노랫소리를 듣고 들벌레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누렇게 익은 보리를 바라봅니다. 논둑마다 풀을 싹 베거나 태웠는데, 이 사이를 비집고 새로 돋는 돈나물 작은 줄기와 작은 꽃을 바라봅니다. 돈나물 노랗고 작은 꽃은 자전거를 멈추고 찬찬히 들여다볼 때에 비로소 잘 보입니다. 아마 자가용을 달리면 볼 수 없겠지요. 논이나 밭마다 유채씨를 뿌려 노란 유채누리가 되도록 할 때에 사람들은 ‘노란 빛이 예쁘다’ 하고 여길는지 모르는데,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거나 두 다리로 느긋하게 걸을 때에는 언제나 모든 봄빛이 알록달록 어여쁘다고 느낄 수 있어요.


- “어이, 선생, 안녕하시오?” “아, 안녕하세요?” “선생은 농사짓는 거요, 아님 책을 읽는 거요?” “응? 아! 또 별난 사람 취급당하겠군. 농사짓다 잠시 책 좀 읽으면 어때?” (3쪽)
- “뭐야라니? 너야말로 이 시간에 뭐하냐? 차 좀 주라.” “잠깐만 기다려요.” “아빠를 위해 뭐 만들어 주는 거냐?” “아녜요.” “일은 찾았냐?” “으응.” “일을 안 하는 대신 뭔가 안 하냐? 자격증이나, 좋아하는 사람은 없냐?” “별로.” “너는 만날 ‘별로’냐?” “그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걸. 그런 건.” (189쪽)

 

 


  한창 논을 삶거나 모를 심은 논자락 옆을 달립니다. 즐겁게 달리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우리가 달리는 이 들길에서 쐬는 바람은 들바람이 되겠다고. 수레에 앉은 아이한테 얘기합니다. “벼리야, 우리는 들바람을 쐬면서 달려.” “들바람?” “응, 들바람이야.”


  들이니까 들바람일 뿐 아니라, 들일이요, 들노래이고, 들놀이예요. 들마실이 되고, 들사람이 되며, 들일꾼이라 할 테며, 들숨과 들삶과 들꿈이 돼요.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들길을 달립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들소리를 듣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만큼 들볕을 쐬고 들내음을 맡습니다.


  아이들한테 들을 느끼도록 할 수 있어 좋다고 느낍니다. 아이들과 함께 내가 이 들을 느낄 수 있으니 좋다고 느낍니다. 우리 식구들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도시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도시가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도시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자전거수레에 탄 채 찻길을 달린다면, 아이들은 무얼 느낄까요.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동차?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동차 사이에 끼거나 자동차 배기가스로 콜록콜록 재채기가 끊이지 않는 일? 아스팔트 뜨거운 기운과 온통 까마득한 건물들?


- “맥주 좀 주시겠어요?” “몇 살인지 말하면 주지.” “18.” “안 되지, 그럼.” “괜찮아요. 날라리니까.” (10쪽)
-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아.” “안심하라니까. 그냥 나만 따라와.” “어디에든 데려다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어디에라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흙이 있는 곳은 안 되는 거였네.” “흙이 없는 곳으로 가자.” (39쪽)

 

 


  바람을 느끼지 못하며 자전거를 달릴 때에도 시원할 수 있겠지요. 햇살을 누리지 못하며 걸을 때에도 홀가분할 수 있겠지요. 들풀과 들꽃을 바라보지 못하며 지낼 때에도 푸성귀를 사다 먹거나 열매를 사다 먹을 수 있겠지요.


  바람이 불어 아이들 콧등을 간질이고, 내 콧등을 간질입니다. 햇살이 내리쬐며 아이들 얼굴을 태우고, 내 얼굴을 태웁니다. 풀내음이 퍼지며 아이들 몸을 휘감고, 내 몸을 휘감습니다.


  제비는 들판을 잰 날갯짓으로 낮게 납니다. 까마귀는 커다란 날개를 확 펼치며 천천히 납니다.


  나는 나대로 자전거를 달리며 두리번두리번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수레에 앉아 두리번두리번 바라봅니다. 둘째 아이는 수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고개를 누나한테 기댄 채 잠듭니다.

  조용한 시골 한낮입니다. 햇살이 뜨거운 낮입니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무그늘 밑에 모여 앉아 낮밥을 자십니다. 낮밥을 먹고는 다시 뙤약볕 견디며 들일을 하시겠지요. 당신들 먹고 당신 아이들 먹으며 도시사람 먹을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일구겠지요.


- “왜 가지를 던지는 거야? 남는 거야?” “아, 저, 죄송합니다.” … “던지지 말고 먹으면 좋을 텐데. 싫어하는구나.” “아니, 그게. 먹긴 하지만 별로 맛이 없다고나 할까요.” “요코시마 중사는 애들 입맛이구나.” (80∼82쪽)
- “할아버지가 입원하셨어. 문병이라도 다녀오렴.” “됐어요.” “그래? 그럼 착실히 공부해. 사립이라서 비싸니까. 할아버지는 오토바이 사고라니. 불량학생도 아니고 말이야. 너 학원 제대로 가고 있니? 가끔 땡땡이 치지? 수험이 없다고 해서 빈둥대다간.” “잔소리 좀 그만해요.” (89쪽)

 

 


  이른아침에 한 차례 빨래하고, 무르익은 아침에 다시 한 차례 빨래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수레에서 내리고 밥을 차린 뒤, 내 몸을 씻으며 빨래 한 차례 더 합니다. 이윽고 다시 빨래 한 차례를 더 할 테고, 떨어지는 해가 아쉬워 또 한 차례 빨래를 할 테지요.


  시골살이 빨래를 조금씩 잦습니다. 기계를 쓰면 아침 한 차례로 끝이지만, 돌쟁이 둘째가 내놓는 오줌기저귀와 오줌바지를 서너 장쯤 모아 그때그때 시원한 물기운 느끼며 손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하며 더위를 식힙니다. 빨래가 마당에서 마르며 개운합니다. 빨래는 햇살을 듬뿍 머금으며 아이들을 따사롭게 품습니다. 저녁이 되어 옷가지를 개면, 낮 동안 옷마다 그득히 밴 햇살이 내 손으로 새삼스레 스밉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생각합니다. 오늘을 누리는 즐거움을 생각합니다. 뒤꼍에 심은 감자는 꽃망울이 자그맣게 달립니다. 며칠쯤 지나면 감자꽃 예쁘게 맺히리라 생각합니다. 감자꽃 옆으로는 노란 토마토꽃이 달리고, 노란 토마토꽃 둘레로는 온갖 들꽃이 흐드러집니다. 이제 뽕나무 열매는 차츰 발갛게 될 테고, 발간 오디는 우리 네 식구 좋은 밥거리가 될 테지요. 고개를 들어 뽕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사다리를 가져와 오디를 따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돌을 실이 묶어 나뭇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싶지 않아요. 뽕나무는 마음껏 하늘바라기를 하며 자라도록 두고 싶어요. 나와 아이들이 천천히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오디를 하나둘 따서 먹고 싶어요. 못 따는 오디는 새가 먹어도 되고, 땅으로 떨어져도 돼요.


- “여어, 중사.” “여, 앗. 그, 그게 아니라, 이름이 뭐예요?” “다카하시.” “제 가지를 먹어 주세요. 다카하시 누나.” “응.” “쓸모없게 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만났으면 해서, 그러면 좋겠다 싶어서, 그날 이후로 이렇게 됐어요. 쓸모없게 되지 않고, 가지가.” “고마워.” “조금 먹긴 했지만, 맛있어요? 제 가지? 어, 어땠어요?” “응, 괜찮았어.” (100∼101쪽)
- “평일 낮에 수퍼나 편의점 아닌 데서 쇼핑하는 것 행복하구나. 이런 말도 해 보고.” (187쪽)

 

 


  구로다 이오우 님 만화책 《가지》(세미콜론,2011) 상권을 읽었습니다. 상권과 하권으로 된 만화책 가운데 첫째 권을 읽으며 여러모로 놀랍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줄거리로 만화를 그리기도 하니 놀랍고, 이만 한 만화책이 한국에 옮겨질 수 있으니 놀랍습니다. 이제 이 나라에서도 이처럼 만화책 하나 추스를 수 있을까 궁금하고, 만화책 하나 빚는 얼이란 삶을 사랑하는 얼인 줄 느낄 만화쟁이가 하나둘 늘어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참 마땅한 일이지만, 그림을 잘 그린대서 만화를 잘 그리지 않습니다. 글을 잘 짜 넣는대서 만화가 재미나지 않습니다. 문예창작학과를 다녔기에 글을 잘 쓰지 않아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어긋나지 않기에 글이 재미나지 않아요. 값비싼 장비를 다루어야 사진을 잘 찍지 않고, 나라밖에서 여러 해 배웠으니까 사진이 놀랍거나 재미나거나 뛰어나지 않아요.


  살아가는 결을 살릴 때에 만화가 싱그러이 숨쉽니다. 살아가는 꿈을 다스릴 때에 만화가 푸르게 빛납니다. 살아가는 사랑을 나눌 때에 만화가 예쁘게 피어납니다.


  그야말로 살아가는 보람이에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밥을 지어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흙을 일구어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노래를 불러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자전거를 타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뜨개질을 해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빨래를 해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걸레질을 하고, 눈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무등 태우고 들길을 걸어요.


- “나 말이야.” “응.” “연애라든지 결혼이라든지, 애 낳는 것, 그런 것들 전부 안 하고 살려고 해. 맘먹었어.” “그래. 하지만 알 것 같아.” “진짜?” “남들만큼 다 하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렇지?” (197쪽)
- “그리고 너 학교는?” “아, 그렇구나. 학교 가야지. 많이 배웠습니다.” “아니, 뭘.” (220쪽)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면 좋겠어요. 우리 어른들 스스로 사랑을 마음껏 누리면 좋겠어요. 우리 어른들이야말로 사랑스레 살아가는 보람을 마음껏 빛내면서, 우리 아이들이 ‘환한 빛’을 늘 느끼며 아끼도록 이끌면 좋겠어요.


  더도 덜도 아니잖아요. 아이한테 100만 원짜리 옷을 사 입혀야 예쁘지 않아요. 99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98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 39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38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 9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8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 1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이웃집에서 얻어 입힌들,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사랑스레 건네는 옷 한 벌을 고맙게 받아서 예쁘게 입어요.


  살아가는 보람은 오로지 하나예요. 사랑입니다. (4345.5.29.불.ㅎㄲㅅㄱ)

 


― 가지 (상) (구로다 이오우 글·그림,송치민 옮김,세미콜론 펴냄,2011.3.18./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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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탕 2020-03-0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좋네요. 책 많이 추천해주세요.

파란놀 2020-03-06 23:0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만화책 이야기는
꾸준히 쓰니
즐거이 읽어 주셔요 ^^
 

[함께 살아가는 말 94] 그림자빛

 

  나는 사진을 찍기 때문에 사진을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주고받는 말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는 사진을 사랑스레 찍고 싶기 때문에 사랑스레 찍을 사진을 생각합니다. 사진을 사랑스레 찍을 때에 서로서로 사랑스레 주고받고 싶은 말을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그래서, 나로서는 ‘카메라’나 ‘촬영’ 같은 말이 달갑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그저 ‘사진기’로 ‘찍을’ 뿐입니다. 나는 ‘사진 찍는 사람’이나 ‘사진쟁이’일 뿐, ‘사진작가’나 ‘포토그래퍼’가 아닙니다. 나는 ‘사진말’을 붙이지 ‘캡션’을 붙이지 않아요. 다른 분들은 ‘플래쉬’를 터뜨린다 하지만, 나는 굳이 ‘불’을 터뜨리며 찍지 않습니다. 나는 사진기를 손에 ‘쥘’ 뿐, ‘그립’을 쓰지 않습니다. 때때로 ‘세발이’를 쓰지만, ‘트라이포트’나 ‘삼각대’를 쓰는 일은 없어요. 무엇보다, 내 눈으로는 온누리가 ‘무지개 빛깔’ 아름다운 모습이로구나 싶어 ‘무지개사진’을 찍습니다. 꼭 ‘칼라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빨강이라 하더라도 모두 같은 빨강이 아니듯, 까망이나 하양도 늘 같은 까망이나 하양이 아니에요. 그래서 ‘까망하양’으로 이루어졌다 하는 ‘흑백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도, 여러모로 헤아린 끝에, 빨강도 푸름도 파랑도 노랑도 ‘까망하양’ 결로 다 달리 녹여내어 품는 ‘그림자사진’으로 찍는다고 이야기합니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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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아버지 좀 찍어 주어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가 거의 없는 탓에 시골마을 어른들이 논이나 밭에서 일할 적에 논밭을 뒹굴거나 가로지르며 뛰노는 아이들이 참말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는 어디에서나 거의 혼자 뒹굴거나 뛰어놉니다. 마늘을 캐고 엮어 경운기에 실은 마늘밭은 차츰 넓어지지만, 이 덩그러니 드러난 흙밭을 뒹굴 놀이동무가 따로 없습니다. 아이는 놀이동무가 딱히 없지만, 스스로 놀이동무를 찾습니다. 나무하고 놀고, 풀이랑 놉니다. 고욤나무 밑에서 고욤꽃송이 주워 놉니다. 고추꽃을 바라보고, 돌 틈 마삭줄에 맺힌 하얀 바람개비꽃을 들여다봅니다.


  아이 아버지가 아이를 부릅니다. “아버지 일하는 모습 좀 찍어 주어.” 다섯 살 아이는 아버지 사진기를 들고 마늘밭 귀퉁이에서 사진 여러 장 찍습니다. 꼭 여섯 장 찍고는 사진기를 내려놓습니다. 잘 찍어 주었나. 잘 찍었겠지, 하고 믿으며 하던 일을 마저 합니다.


  이윽고 이웃집 마늘밭 일손 거들기를 마칩니다.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는 이내 아버지 손을 놓고 먼저 저 앞으로 힘차게 달음박질을 합니다. 달리고 또 달려도, 뛰고 또 뛰어도 기운이 넘칩니다. 좋구나, 좋은 삶이고 사랑이구나, 하고 느끼며 아이 뒷모습을 기쁘게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며 아이 뒷모습을 참 자주 찍습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 뒷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씩씩하게 달리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꽃밭이나 풀밭에 옹크리고 앉아 꽃이랑 얘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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