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색잉꼬 2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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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싶은 일
 [만화책 즐겨읽기 153] 데즈카 오사무, 《칠색 잉꼬 (2)》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즐겁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에 안 즐겁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루하루 누릴 때에 사랑스럽고, 하고 싶지 않으나 밥벌이나 돈벌이라서 놓지 못한다면 안 사랑스럽습니다.


- “잠깐, 비켜 줄래, 꼬마 아가씨. 사인은 못 해 줘. 난 대역이거든.” “선생님, 제자로 삼아 주세요!” (7쪽)
- “어떻게 여길 찾았지?” “온 도시의 호텔과 여관을 다 뒤져서. 선생님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손님이 있는지 물어 봤어요.” “저기 말이지, 난 선생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야. 스타를 뒤쫓아 다닐 생각이라면 헛다리를 짚은 거야. 사람 잘못 봤다고.” “선생님의 무대를 보고, 온몸이 떨릴 정도로 감동했어요! 전 배우가 되고 싶어요.” (9쪽)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진을 찍고, 아이들과 살아가며, 옆지기와 살림을 꾸리고, 자전거를 타는 한편,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돌보고, 서재도서관을 꾸리며, 늘 풀숲과 멧자락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는 내 삶대로 내 하루를 느끼고, 내가 느끼는 대로 온누리를 톺아보며, 온누리를 톺아보는 결이 고스란히 내 눈길과 손길로 돌아옵니다.


  무엇보다 책으로 놓고 보자면, 나는 내가 읽고픈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어야 할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읽고픈 책이 되어야 읽습니다. 아름답다 싶은 이야기를 다루든, 놀랍다 싶은 이야기를 다루든, 내 마음속에서 어느 책 하나 읽고프다는 꿈이 피어올라야 비로소 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책읽기란 ‘줄거리 읽기’가 아닌 ‘삶읽기’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받아들인 좋은 넋은 고스란히 내 삶으로 스며들어, 내 꿈과 넋과 말이 새삼스레 거듭나도록 이끌어요. 어떤 책을 읽고 싶다 할 때에는, 오늘 내 삶을 한결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빛날 수 있게끔 다스리고 싶다는 뜻이에요.


  읽고 싶지 않은 책은 읽을 수 없습니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은 쓸 수 없습니다. 찍고 싶지 않은 사진은 찍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은 ‘직업’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채 돈을 벌며 집식구 먹여살린다는 뜻을 내세워 스스로 길을 잃곤 합니다. 이를테면, 직업사진가라든지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는 이들은 ‘사진을 늘 찍’지만, 스스로 가장 좋아할 만한 사진을 못 찍는 이가 너무 많습니다. 회사에서 바라는 사진, 주문한 손님이 바라는 사진, 신문사 편집장이나 사장이 바라는 사진 틀에 얽매이면서 ‘잘 팔릴 만하고 빈틈이 없으며 눈길 끌 만한 사진’으로 기울어져요. 즐겁게 찍는 사진이라거나 사진쟁이 삶을 밝히는 사진을 찍지 못해요.


  기자들이 쓰는 글이나 작가들이 쓰는 글도 이와 비슷해요. 스스로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삶이 드러나는 글이 아니라면 글이라 할 수 없어요. 내 손가락 같은 글이요, 내 발가락 같은 글이고, 내 머리카락 같은 글이에요. 내 허파와 같은 글이며, 내 염통과 같은 글이고, 내 콩팥과 같은 글입니다. 남한테 보여주거나 읽히려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내 삶을 밝히면서 빛내는 글이에요.

 

 


- “부잣집 아가씨라는 건가. 좋은 신분이군. 하지만 명배우는 돈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야. 의사라면 돈의 힘으로 될 수 있겠지만.” (10쪽)
- “남의 흉내만으론 무엇으로도 될 수 없어. 내가 프로 배우가 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지. 나는 왕부터 거지까지 여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어떤 흉내라도 낼 수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배우라고 할 수 없어! 잉꼬나 앵무새처럼 … 흉내라도 감동은 시킬 수 있어. 하지만 너는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아.” (16∼17쪽)


  누구나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할 때에 빛납니다.


  어느 나무나 스스로 맺고픈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낼 때에 빛납니다. 뽕나무는 오디를 맺습니다. 감나무는 감을 맺습니다. 능금나무는 능금을 맺고, 살구나무는 살구를 맺어요. 저마다 스스로 가장 빛날 만하며 좋아할 만한 꽃과 열매와 씨앗입니다. 포도나무는 배를 맺지 않아요. 배나무는 복숭아를 맺지 않아요. 복숭아는 모과를 맺지 않아요.


  장미가 더 예쁘지 않습니다. 민들레가 더 곱지 않습니다. 원추리가 더 맑지 않습니다. 호박꽃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솜다리가 더 그윽하지 않습니다. 모든 꽃은 저마다 가장 빛나는 무늬요 빛깔이며 결이고 냄새입니다. 탱자꽃은 탱자꽃으로서 가장 아름다우며 빛나요. 찔레꽃은 찔레꽃으로서 가장 어여쁘면서 맑아요. 콩꽃은 콩꽃으로서 가장 아리따우면서 향긋해요.


  사람은 숫자로 따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주민등록번호 같은 숫자로 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은행계좌 길이로 살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성적표 등수라든지 행동발달사항 점수로 매길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 사랑으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이제부터는 너 혼자의 힘으로 노력하는 거야. 너라면 분명 10년 후에는 대스타가 되어 있을 거야.” (28쪽)
- “자, 덤벼 보게. 알겠나, 응. 진정한 배우는 자신의 훈련을 위해 검술, 승마부터 발레까지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네.” (140쪽)


  나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좋아합니다. 지난겨울 된바람을 견디면서 봄철 개구리 노랫소리를 기다렸습니다. 마음속으로 개구리 노랫소리를 그렸습니다. 봄을 맞이해 여러 달째 보내며, 날마다 개구리 노랫소리를 마음에 담습니다. 아이 둘을 옆에 나란히 누여 재워 자장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도 귀로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집을 둘러싼 들판마다 거침없이 목청 높이는 개구리 노랫소리는 온 집안을 울립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자장노래에 개구리 노랫소리를 나란히 듣겠지요. 개구리 노랫소리는 아버지 자장노래를 뒷받침하는 결 고운 가락일 테지요.


  나는 들새 노랫소리를 좋아합니다. 지난가을에도 올봄에도 새벽부터 이듬날 새벽까지 쉬잖고 들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까치이든 까마귀이든 좋습니다. 참새이든 노랑할미새이든 좋습니다. 왜가리이든 해오라기이든 좋습니다. 제비도 직박구리도 동박새도 모두 좋습니다. 들새 스스로 가장 빛나는 목청을 돋우면서 들려주는 노래가 아주 좋습니다.


  나는 이 고운 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을 다스려요. 나는 이 고운 소리로 내 마음을 다스리면서 내 곁 고운 살붙이를 아끼고 싶어요. 내 목소리가 개구리와 닮다가는 또다른 개구리처럼 노랫소리 읊을 수 있기를 빕니다. 내 말소리가 들새와 닮다가는 새삼스러운 들새와 같이 노랫소리 종알거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후후, 일본은 신기한 나라군요. 증거만 없다면 나쁜 사람도 대낮에 활보하면서 살 수 있다니 말이죠.” “네, 정치가부터 재판관까지 도둑은 넘치니까요.” “우리 나라에서는 증거 같은 게 없어도 도둑은 바로 참수형이죠. 그래도, 일본은 좋은 나라예요. 누구든 자유롭고, 일본에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자유겠죠. 일본으로 유학 온 나는 좋은 추억을 만들고 가요.” “고국으로 돌아가면 결혼을 하십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말이죠, 아직 여자는 관습에 묶여서 자유가 없답니다. 좋아하는 연극도 아마 할 수 없겠죠. 이게 생에 마지막일 거예요.” (64∼65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칠색 잉꼬》(학산문화사,2011)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칠색 잉꼬’는 스스로 하고 싶어 연극을 합니다. 언제나 대역 배우로 그치는 연극 일이지만, ‘칠색 잉꼬’는 어릴 적부터 ‘대역’이 될밖에 없는 삶을 스스로 굴레로 짊어졌어요. 대역을 훌훌 털고 ‘주역이나 조역이나 단역’과 같이, 무대를 함께 빛내는 자리를 찾아가지 못해요.


  어쩌면, ‘칠색 잉꼬’로서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면서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대목이 ‘대역’이기 때문에 대역을 할는지 몰라요. 주역이나 조역이나 단역으로 얼크러지기보다는, 스스로 가슴이 불타오르는 때에 대역으로 살짝 찾아들어 녹아들다가는 다시 조용히 사라지는 삶을 사랑하는지 몰라요.


- “뭐야! 모처럼 내가 일부러 왔는데 도망가는 거야? 내 기분을 좀 알아주면 좋잖아, 이 둔탱아.” (135쪽)
- “아이들의 연극은 응, 어른들의 연극하고 달라서 어둠이나 우울함은 필요가 없는 거지, 응. 그 대신 영웅이 필요해. 아이들은 응, 영웅을 동경하고 있으니까. 피터 팬은 응, 강하고 마음 착한 소년이니까 말이지.” “그렇군요.” “자네는 저 아이들을 실망시켜선 안 돼, 응.” (143쪽)

 

 


  ‘칠색 잉꼬’는 슬픈 사람일까요. 어쩌면, 이이는 슬픈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슬픔에 젖고 스스로 슬픔에 갇히는지 몰라요. 그러나, 슬픔은 기쁨과 같습니다. 기쁨은 슬픔과 같습니다. 스스로 아끼는 삶이라 한다면, 기쁨이 되든 슬픔이 되든 좋은 벗님입니다.


  아픔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괴로움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웃음을 먹거나 이야기를 먹어도 좋을 텐데, 자꾸자꾸 고된 길로 나아가고야 마는 사람이 있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스스로 길을 못 느끼거나 못 찾거나 못 알아본다 하겠지요. 어느 모로 본다면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갈 뿐이라 하겠지요.


  데즈카 오사무 님은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다고 여긴 한삶이었습니다. 전쟁통에도 가난에도 고단한 일더미에도 늘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다고 여긴 한삶이었으리라 느껴요. 그러니까 ‘칠색 잉꼬’가 되든, 한국땅 아무개가 되든,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마을에서 살림을 꾸리리라 느낍니다.


  나로서는 자동차 소리와 배기가스가 싫어 자동차한테서 가장 멀찌감치 떨어질 만한 호젓한 시골에서 살붙이들과 오순도순 어울릴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개구리와 들새랑 예쁘게 사귈 만한 한갓진 시골에서 살붙이들과 도란도란 삶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참말 하고픈 일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혁명을 이루고픈 이는 혁명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옳다’거나 ‘바르다’거나 ‘좋다’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일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가장 ‘사랑하면서 즐기고 누릴’ 만한 일을 할 때에 활짝 웃고 빙그레 웃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4345.6.2.흙.ㅎㄲㅅㄱ)

 


― 칠색 잉꼬 2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학산문화사 펴냄,2011.11.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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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 할머니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까지 한 바퀴 천천히 돌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 할머니를 뵙는다. 할머니는 나뭇가지 지팡이를 왼손에 쥐며 땅을 당기고, 비료푸대를 오른손으로 끌면서 집으로 돌아가신다. 할머니는 당신 손에 흙이 묻어 지저분하다며 아이를 안기 꺼리신다. “뭘 줘야 하는데 줄 게 없네.” 하시더니, 나무를 쌓으며 덮은 비닐 한쪽을 북 뜯어, 비닐보자기를 만든 다음 여기에 콩꼬투리 몇 줌 싸서 아이한테 내미신다.


  비닐보자기에 싼 콩꼬투리를 품에 안은 첫째 아이는 아주 좋아한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온다. 아이는 혼자 콩을 까겠다 말한다. 빈 그릇 하나 아이한테 건넨다. 아이는 씩씩하게 콩을 깐다. 그릇에 콩을 제법 담고는 소꿉을 챙겨 그릇에 담고 붓고 옮기고 나르고 하며 논다. 날콩 하나 씹더니 “아이, 맛없어.” 한다.


  아이가 깐 콩으로는 이듬날 아침에 콩밥을 지어야지. 아이가 아직 안 깐 콩으로는 마당 가장자리 꽃밭에 몇 알 함께 심을까 싶다. 아이 스스로 심고, 아이 스스로 돌보아, 아이 스스로 거둘 수 있기를 빌어 본다. 그러면, 나중에 아이가 콩을 이웃 할머니한테 선물할 수 있으리라. (4345.6.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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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드롭스를 찾아 읽다가, 문득 궁금해 살피니, 여러 가지 다른 만화책들이 보인다. 그나저나, 일본에서는 8.5권과 9권도 나왔는데, 한국에서는 이제야 8권 번역이로구나. 느리다, 느려도 참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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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속도위반결혼
타카시미즈 미네코 지음, 우니타 유미 그림 / 길찾기 / 2005년 5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12년 06월 0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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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886) 속 36 : 그림책 속

 

하지만 아이들은 자꾸 그림책 속으로 빠져든다 … 나는 몇 해 전 친한 벗들과 제주도에 여행을 간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강승숙-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보리,2010) 33, 39쪽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바로잡습니다. “몇 해 전(前)”은 “몇 해 앞서”로 손볼 수 있고, “친(親)한 벗”은 “가까운 벗”이나 “좋은 벗”이나 “살가운 벗”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 여행(旅行)을 간 기억(記憶)”은 “제주도에 나들이를 간 생각”이나 “제주도에 놀러간 이야기”나 “제주도에 마실 간 나날”로 손질해 봅니다.


  누군가는 ‘여행’이라는 낱말이 좋아 줄곧 이 낱말을 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굳이 ‘여행’이라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 ‘나들이’나 ‘마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말하든 좋습니다. 스스로 가장 즐거우며 기쁘다 여기는 낱말을 골라서 쓸 노릇입니다. 다만, 어느 낱말을 쓰든, ‘제주 여행’과 ‘제주 나들이’와 ‘제주 마실’은 똑같은 일입니다.

 

 그림책 속으로 빠져든다
→ 그림책으로 빠져든다
→ 그림책 이야기에 빠져든다
→ 그림책에 온마음 쏟는다
→ 그림책에 푹 빠진다
 …

 

  아침에 둘째 아이 똥바지를 빨면서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말글을 옳게 익힐 수 없습니다. 국회의원이나 도지사가 되고 나서 말글을 사랑스레 가다듬을 수 없습니다. 대학교수가 되거나 소설쟁이가 된 뒤부터 말글을 알맞게 추스를 수 없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익힐 말글입니다. 너나 당신이 아닌 바로 내가 예쁘게 가다듬을 말글입니다.


  여느 때에 늘 즐겁게 익히는 말글이 아니라 한다면, 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가 된들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된들, 한겨레 말글을 알맞거나 바르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쓰지 못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한결같이 가다듬는 말글이 아닐 때에는, 아이 어버이가 되든 아이 이모나 삼촌이 되든, 아이들과 함께 나눌 좋은 말글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제주도에 여행을 간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 제주도에 마실을 간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 제주도에 나들이 간 일을 떠올렸다
→ 제주도 마실을 헤아렸다
→ 제주도 나들이 생각에 푹 잠겼다
 …

 

  오늘 내 곁 좋은 사람들하고 사랑을 나누는 넋일 때에, 내가 다른 어느 자리에 들어서더라도 내 둘레 온갖 사람들하고 사랑을 나누는 넋입니다. 오늘 내 아이들과 주고받는 말마디가, 내 일터 내 삶터 내 놀이터 이웃들과 주고받는 말마디입니다.


  글쓰기를 잘 하려고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거나 학교를 다니기에 글쓰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여느 때에 나 스스로 생각을 알뜰살뜰 추슬러야 글쓰기를 차근차근 익힐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주어지는 사랑이란 없고, 갑작스레 떨어지는 솜씨란 없어요. 천천히 누리는 사랑이기에 천천히 빛나는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하나하나 북돋우는 꿈이기에 시나브로 이루는 꿈으로 뿌리내려요.


  삶이 피어나는 말입니다. 삶이 드러나는 글입니다. 삶이 열매를 맺어 말이 되고, 삶이 씨앗을 뿌려 글로 자랍니다.


  한결같이 삶을 살피며 아낄 수 있는 한겨레이기를 빕니다. 한결같이 이웃을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한겨레이기를 바랍니다. 한결같이 내 목숨을 보살피며 풀과 나무와 흙과 햇살과 바람과 물을 좋아할 줄 아는 한겨레이기를 비손합니다. (4345.6.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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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아이들은 자꾸 그림책으로 빠져든다 … 나는 좋은 벗들과 몇 해 앞서 누린 제주도 마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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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호각 창비시선 230
이시영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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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삶은 어떤 빛깔인가
[시를 노래하는 시 18] 이시영, 《은빛 호각》

 


- 책이름 : 은빛 호각
- 글 : 이시영
- 펴낸곳 : 창비 (2003.11.20.)
- 책값 : 6000원

 


  예전에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서 혼자 살던 무렵, 자그마한 자전거를 이끌고 경상남도 하동으로 달린 적 있습니다. 마침 서울에 볼일이 있었기에 서울부터 자전거를 달려 충청북도 음성 멧골집에 닿았고, 집에서 가볍게 짐을 꾸려 시골길을 내처 달렸습니다. 길그림 종이를 펼쳐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을까 하고 어림했는데, 막상 먼 시골길을 구비구비 돌며 찾아가자니, 킬로미터 숫자하고는 퍽 동떨어질 만큼 오래 걸렸습니다. 자칫 하동까지 너무 늦게 닿겠구나 싶어, 늦게 닿으면 애써 자전거를 몰아 혼례잔치에 가는 보람이 없다 싶어, 저녁나절 남원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이듬날 구례까지 더 달리고서, 구례읍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넘어갔어요. 나는 자그마한 자전거를 몰았기에 더 작게 접어 시골버스에 탔고, 시골버스는 구례읍 작은 멧골마을을 구비구비 돌았습니다.


  천천히 읍내를 벗어나 이웃 읍내로 가는 시골버스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시골버스는 오래된 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타고 내릴 적마다 오래오래 기다린 다음 다시 천천히 달립니다. 외길이라 돌아나와야 하는 어느 멧골마을에 닿아 십 분 남짓 쉰 버스가 다시 달릴 적, 이렇게 외딴 길로 난 멧골마을이라 한다면 나 같은 사람이 들어와서 조용히 살기에 딱 어울리겠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다만, 자전거를 타고 이 마을 오르내리자면 좀 애먹겠다고 느낍니다.


.. “이형, 요즈음 내가 한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원이야, 삼만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 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  (최명희 씨를 생각함)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가 어쩌다 무슨 볼일이 생겨 순천 기차역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찾아가, 기차를 갈아타고 서울 쪽으로 갈라치면 으레 구례역을 지납니다. 기차를 타고 구례를 지날 때에는 예전에 자전거와 시외버스로 구례를 지나던 때하고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여기 구례에도 비닐집이 꽤 많다고 느낍니다. 여기 구례도 이곳저곳에서 드나드는 찻길이 많아 여러모로 나그네나 길손이 많이 들락거리겠구나 싶습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오늘날 이 나라 땅뙈기 어디라 하더라도 찻길이 아주 잘 뚫립니다. 나라에서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찻길을 자꾸자꾸 새로 놓습니다. 화석에너지를 안 쓰는 자동차는 아직 제대로 굴러다니지 않는데, 화석에너지만 먹는 자동차를 끝없이 만들고, 화석에너지로 구르는 자동차 다닐 길만 끝없이 닦습니다. 자전거로 다니거나 두 다리로 오갈 호젓하며 느긋한 길은 도무지 어느 지자체에서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자전거 관광길’이나 ‘도보 여행길’을 놓는 데에는 목돈을 들이는데, 막상 시골마을 사람들이 ‘찻길 싱싱 내달리는 자동차’한테서 놓여날 만한 느긋하고 좋은 거님길을 닦는 데에는 거의 한푼도 안 들인다고 느껴요.


  따지고 보면, 이런 모습은 시골이나 도시나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도시사람 살아가는 동네에서도 자동차 다닐 길만 널따랗지, 정작 사람들 기쁘게 오갈 여느 거님길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아이들이 마음 놓고 유치원이나 학교를 오가기 힘들어요. 아이 손 잡는 어버이가 느긋하게 길을 거닐기 힘겨워요.


  요사이는 시골에도 자동차 굴리는 이가 많다지만, 허리 굽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으레 두 다리로 걷습니다. 때로 경운기를 몰고 때로 오토바이나 전동휠체어를 몬다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밑길이라 한다면 ‘걷는 길’이 되어야 하는데, 걷는 길만큼은 찬찬히 놓이지 못합니다.


.. 잠실시영아파트가 재건축으로 곧 헐린다고 한다. 베란다에 저보다 큰 장독대들을 이고 장장 삼십년을 버텨온 13평짜리 공중 시멘트 집. 언제 한번 지나면서 보니 빈민굴도 그런 빈민굴이 없었는데 싯가가 3억 7천이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  (잠실시영아파트)


  걸을 수 없는 길이라 하면, 이러한 길이 닿는 데에서는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느긋하게 걸을 만한 길이 없다면, 이러한 데에서는 사람이 살아가기 팍팍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걸을 만한 들길이며 멧길이 있을 때에, 사람이 즐거이 살아갈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걸을 만한 길이 호젓하고 느긋한 곳이라면, 사람이 살아가기 아름답거나 좋거나 빛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도시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기 좋은 데가 있습니다. 오토바이 함부로 달리지 못하는 구불구불 호젓한 골목이 있는 동네는 도시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기 좋다고 느낍니다. 자동차 새된 소리에서 홀가분한 동네라면 도시에서도 이웃과 이웃이 어깨동무하기에 좋고,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놀며 자라기에 좋다고 느낍니다.


  자동차가 끝없이 드나들며 새된 소리를 자꾸자꾸 들어야 한다면, 이러한 시골은 시골답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시골이라 하더라도 들새와 멧새 노래하는 소리가 아니라, 자동차 붕붕거리는 새된 소리라 할 때에는, 사람들 넋과 얼을 곱게 건사하기 힘들구나 싶어요.


.. 어렸을 적 석양녘이었다. 따스한 참새들의 알을 꼭 한 알만 얻겠다고 가만가만 새들이를 타고 올라간 여동생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처마밑에 막 손을 집어넣었을 때였다. 콩닥거리는 참새들의 알 대신 차고 미끄러운 것이 쓰윽 고개를 내밀고 나왔다. 굵고 긴 구렁이였다 ..  (집지킴이)


  시집을 읽습니다. 집식구 먹을 밥을 마련하면서 시집을 읽습니다. 밥물 올린 냄비가 끓는 소리를 들으며 시집을 읽습니다. 국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시집을 읽습니다. 도마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며 밥상을 닦는 동안 시집을 읽지 못합니다. 밥냄비 국냄비 모두 올리고 설거지 한 차례 마치고 나서 슬며시 한숨을 돌릴 무렵, 손가락에 물기가 다 말랐다 싶으면 슬그머니 시집을 읽습니다.


  이시영 님 시집 《은빛 호각》(창비,2003)을 읽습니다. 책이름으로 붙은 ‘호각’을 놓고 “호각이 뭐지?” 하고 혼잣말로 묻습니다. 호루라기인가? 서로 힘이 어슷비슷하다는 소리인가? 만주사람 뿔피리인가? 굴 껍데기인가?


  시집에 붙은 이름은 아랑곳하지 않기로 합니다. 시를 쓰는 분들이 으레 선보이는 말잔치는 들여다보지 않기로 합니다. 나는 싯말에 깃든 이야기를 읽고 싶습니다. 나는 싯말에 깃든 이야기를 읽으며 내 삶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내 둘레 이웃들이 어떤 좋은 삶을 누리며 시 하나 적바림하여 나한테 좋은 노래를 선물해 줄까 하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시영 님 시집 《은빛 호각》은 전라남도 구례와 서울특별시를 꾸준히 갈마듭니다. 먼먼 옛날, 어린 이시영 꼬마가 전남 구례에서 뛰놀거나 뒹굴던 이야기가 흐르다가는, 늙은 이시영 할아버지가 평양에도 갔다가 서울 언저리 어디에도 살다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 통일을 염원하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김정숙휴양소 건너편 비탈진 밭에서는 작은 감자알들이 땡볕 아래 탱탱히 익어가고 있었고 ..  (장외場外)


  한참 시집을 읽다가 문득 헤아립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옛 시골마을 그리는 노래’를 적바림했을까 하고. 이렇게 옛 시골마을 그리는 노래를 적바림하고 싶다면, 스스로 도시를 떠나 꿈에도 그리는 좋은 시골마을로 돌아가면 될 텐데 하고.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시골을 꿈꾸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날을 버틸 수 있을 테지만, 시골에서 어여삐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마음껏 누리며 스스로 더 환하게 빛날 수 있을 텐데 하고.


.. 봄이 오면 / 자운영 장다리 꽃피고 / 탱자꽃 바람에 흩날리는 / 그런 고향 다시는 없으리 ..  (고향 생각)


  봄이 오면 어느 시골이건 자운영 장다리 꽃핍니다. 유채 찔레 꽃핍니다. 유월로 접어든 전남 고흥 시골마을 밭자락이나 멧자락에는 바알간 들딸이나 멧딸이 흐드러집니다. 쉴새없이 따먹고 다시 따먹습니다. 찔레꽃 하얗게 눈부신 사이사이 돈나물 노랗고 자그마한 별꽃이 빛나고, 고샅길 돌울타리 누비는 마삭줄은 흰바람개비 꽃내음 물씬 퍼뜨립니다.


  이제 감자는 하얗거나 보얀 꽃망울 맺습니다. 뽕나무는 바알갛게 익는 오디를 내놓습니다. 노란 감꽃과 고욤꽃은 천천히 지면서 푸르게 푸르게 익습니다. 매화나무 열매는 차츰 굵은 알로 바뀝니다. 함박꽃 지고 후박꽃 떨어집니다. 마을마다 논물 가득 찰랑이고, 새벽부터 이듬날 새벽까지, 아침부터 이듬날 아침까지, 저녁부터 이듬날 저녁까지, 무논 개구리는 신나게 노래합니다.


.. 송아지가 볼이 미어져라 상큼한 햇짚을 넣고 씹는다 ..  (가을)


  시인 이시영 님은 시집 《은빛 호각》에서 당신 시골집 구례와 당신 살림집 서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갑니다. 사이사이 북녘땅 어딘가를 마실합니다. 무슨무슨 손님으로 북녘땅을 마실할 수 있은 듯합니다. 그러면, 이시영 님한테 ‘그리운 터’는 세 군데가 될까요. 구례, 서울, 북녘.


  이제 시집을 덮습니다. 시집을 덮고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시인 이시영 님이 지나온 나날은 어떤 빛깔이라 할 만할까요. 가을빛일까요. 봄빛일까요. 자운영빛일까요. 송아지빛일까요.


  시집을 읽는 나는 어떤 빛깔로 꾸리는 삶일까요. 내 삶빛은, 내 넋빛은, 내 몸빛은, 내 사랑빛은 어떠한 무늬와 결과 내음을 풍기며, 오늘 하루 새로우며 즐겁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시 한 줄 쓸 수 있는 사람은 삶자락 한켠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4345.6.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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