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 세상이 쓸쓸하고 가난할 때 빛나는 그들에게, 삶을 물었다
이승환 지음, 최수연 외 사진 / 이가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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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한 그릇 함께 나눌 이웃
 [책읽기 삶읽기 105] 이승환·최수연,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2009)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2009)라는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돈 버는 걱정’에 목매달며 살아간다 하지만, 막상 스스로 ‘돈 버는 걱정’에 목매달고픈 사람은 없구나 하고. 사람들 누구나 ‘돈 버는 걱정’이 아니라 ‘즐겁게 누리고픈 삶’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 아지매들에게는 유명한 사진가보다는 생선 한 마리 더 파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게는 알은체하지 않고 ‘니 맘대로 찍어라’며 가만히 놔두는 것이 고맙다 ..  (12쪽/최민식)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합니다. 왜 돈을 벌려고 할까요? 아주 마땅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돈을 쓰려고 돈을 법니다. 돈을 쓸 생각이 없다면 돈을 벌지 않아요. 이를테면, 어느 재벌회사 우두머리라 하더라도 돈을 쓰려고 돈을 벌지, 그저 쟁이기만 하려고 돈을 벌지 않아요. 1억을 쓰고 싶으니 1억을 벌고, 100억을 쓰고 싶으니 100억을 벌어요.


  곰곰이 따지면,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도 돈을 법니다. 돈을 써야 할 곳이 있으니 돈을 법니다. 돈 버는 걱정 때문에 돈을 벌지는 않아요. 이모저모 돈을 써야 할 곳이 있다고 여겨 돈을 법니다.


  그런데, 돈 쓸 곳을 여러모로 많이 만들지 않으니까 굳이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좋은 나날을 더 기쁘게 여기기에, 돈을 벌려고 애쓸 품보다 하루하루 마음껏 누릴 품에 더 마음을 기울입니다. 홀가분하게 누릴 삶이 좋지, 돈을 버느라 보낼 나날이 좋을 수 없어요.


  곧, 나는 나대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나대로 내가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갑니다.


.. 이철수는 겨울에만 판화 일을 한다. 봄·여름·가을에는 들일만 한다. 겨울 동안 꼬박 판화에 매달려 100여 점을 만든다. 1년에 100점이라는 이야기에 ‘기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이철수는 ‘밥 먹고 하는 일이 이건데 도대체 그대들은 뭐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  (30쪽/이철수)


  우리 식구는 자동차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 식구는 자전거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식구는 자전거에 앞서 두 다리로 살아갑니다. 두 다리로 걷다가, 버스를 얻어타거나 택시를 잡아탑니다. 때로는 기차를 타 보고, 두 번쯤 비행기도 타 보았으며, 이렁저렁 배도 타 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자동차 없으면 퍽 힘들겠다고 여겨 버릇하지만, 젊은이도 늙은이도 꼭 자동차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잘 헤아릴 수 있으면 가장 즐겁습니다.


  곧, 무엇이 있어야 좋은 삶이 아닙니다. 무엇이 없으면 나쁜 삶이 아닙니다. 즐길 줄 아는 삶이 좋은 삶입니다. 누릴 줄 아는 삶이 예쁜 삶입니다. 생각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 때에 빛나는 삶입니다.


  더 있으니 좋을 수 없습니다. 덜 있어서 나쁠 수 없습니다. 하나를 누리든 둘을 누리든, 하나도 못 누리든 둘은 엄두도 못 내든 스스로 홀가분하게 생각하며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자동차를 얘기했지만, 멀리멀리 자주 나다녀야 한다면 자동차가 있으면 홀가분하겠지요. 그런데, 혼자 나다닌다 하면 자전거로 넉넉해요. 둘이나 셋이 나다닐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달거나 저마다 자전거를 몰면 돼요. 꼭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고, 어느 때에 맞추어야 하면 더 일찍 길을 나서면 됩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택시를 불러 짐을 싣고 달리면 돼요.


.. 먹을 것 아껴서 필름과 인화지 사는 처지를 빤히 알기에 극구 사양했으나, ‘손님 대접할 정도는 버니 걱정 말라’며 검지로 헛총을 놓고는 낡은 르망을 몰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는 따뜻한 삐딱이였다 ..  (45쪽/김영갑)


  밥 한 그릇 나누는 삶이란 남한테 밥 한 그릇을 내어주는 삶이 아닙니다. 나부터 내 몸을 살찌우는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하다고 느끼는 삶입니다. 나 스스로 밥 한 그릇으로 내 삶이 넉넉하기에 내 이웃과 동무한테 밥 한 그릇 나눌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밥 한 그릇으로 내 삶이 넉넉하다고 여기지 못하면, 내 이웃이나 동무한테 밥 한 그릇 내밀지 못해요.


  내 마음속에 사랑이 예쁘게 피어날 때에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두루 사랑을 나누어 줘요. 내 마음속에 사랑이 피어나지 못한다면 내 이웃은커녕 바로 나 스스로를 사랑으로 돌보지 못해요.


  그러니까,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에 나오는 이 땅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밥 한 그릇 넉넉히 누릴 줄 알면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라면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같은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값이나 가방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이러한 책에 실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참 얄궂다 해야 할 텐데, 오늘날 한국땅 사람들은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같은 책을 사다 읽으면서, 막상 이녁 삶은 ‘밥 한 그릇으로 넉넉히 살찌울 사랑’이 되도록 건사하지 않습니다. 삶을 살찌우는 길은 오직 사랑인 줄 머리로 안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지 않고,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아요.


..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시인들은 다 위대하며, 심지어 문학의 열병을 앓고 있는 문청들에게는 시인은 곧 하느님이다 ..  (117쪽/김용택)


  도시사람들이 아파트를 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아파트를 버리고, 아파트를 빌리거나 장만하느라 들인 돈으로 ‘마당과 텃밭 있는 작은 집’을 마련해 오붓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호젓하게 햇볕을 누리는 마당이 집마다 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게 햇살을 머금으며 돌볼 텃밭이 집마다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참말 예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사람들 누구나 예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좁은 틈바구니에서 시멘트랑 아스팔트에 둘러싸이지 말고, 숲과 그늘과 나무와 흙과 햇살과 바람과 냇물이 시원한 터전에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빕니다.


.. “늘 내 운동의 마지막은 땅과 생명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예전에는 남녀평등, 노사평등을 외쳤으나 이제는 사람과 자연의 평등을 외쳐 나가야지. 이것도 지난날의 치열한 운동 못지않게 중요한 운동이거든. 이러한 소박하고 잔잔한 움직임이 계속 번져 나가 큰 물결이 됐으면 해요.” ..  (243쪽/조화순)


  도시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4대강 반대’를 외칩니다. 그런데, 스스로 살아내지 않는 이야기를 목청 높이 외친다 한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4대강 반대’를 하자면, 참말 이 같은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치집권자 정책하고 맞설 만한 삶을 꾸려야 마땅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4대강 반대’를 하고 싶으면, ‘4대강 언저리에 작은 집을 얻어 작은 시골살림 누리면’ 돼요. ‘4대강 둘레 작은 땅뙈기를 장만해서 작은 살림 즐기면’ 돼요.


  시골 땅값은 도시 집값하고 견주면 매우 싸요. 시골에서 내 밭과 땅을 누릴 때에는 먹고 입으며 자는 품은 아주 적어요.


  사람들 스스로 누릴 줄 알고, 가꿀 줄 알며, 사랑할 줄 알면 돼요. 사람들 스스로 누리지 못하고 가꾸지 못하는데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정치집권자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요. 사람들이 온통 도시로만 몰려드는데, 아주 마땅히 이런 토목공사를 밀어붙이겠지요. 사람들은 온통 도시로만 몰려들었으니까, 시골에서 살아가며 참말 온몸 부딪혀 ‘4대강 사업 얼마나 나쁜 줄 알아?’ 하고 따질 사람이 없어요.


  통계나 숫자나 이론이나 비평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오직 내 몸뚱이로 움직이는 삶으로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요. 밥 한 그릇을 나누자면, 내 몸을 움직여 밥 한 그릇을 지어야지요. 밥을 하고 밥을 푸고 밥그릇을 내밀어야지요. 머리로만, 입으로만, 말로만 외친다 해서 어느 하나 이룰 수 없어요. 밥 한 그릇 나눌 이웃이 누구요, 밥 한 그릇 내밀 내 모습이 어떠한가를 슬기롭게 살펴야 해요. (4345.6.4.달.ㅎㄲㅅㄱ)


―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이승환 글,최수연·임승수·방상운·장기훈 사진,이가서 펴냄,2009.11.2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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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드롭스 4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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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이 살아가는 넋
 [만화책 즐겨읽기 152] 우니타 유미, 《토끼 드롭스 (4)》

 


  하루 스물네 시간 갓난쟁이하고 붙어서 보내는 삶을 헤아리자면, ‘아이를 낳아’야 합니다. 때로는 스스로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다른 이가 낳은 아이를 맡아서 돌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물건이 아닙니다. 사람은 목숨입니다. 사람은 귀염둥이짐승이 아닙니다. 물과 먹이를 차려 놓고 휭 하고 집을 나선 다음 슬그머니 돌아와도 안 죽고 스스로 끼니를 챙겨먹는 집짐승과 같지 않아요.


  갓난쟁이도 아직 많이 어린 아이도 ‘어버이’ 노릇을 할 어른 한 사람이 늘 곁에 붙어야 합니다. 아이가 밥을 먹을 때이든, 아이가 잠을 잘 때이든, 아이가 똥오줌을 눌 때이든, 아이가 뛰놀 때이든, 아이가 노래할 때이든, 아이가 옷을 갈아입을 때이든, 곁에서 어버이 노릇 하는 어른 한 사람 스물네 시간 꼼짝없이 붙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 “여기 희한하네. 처음 왔는데도 할아버지 집 같아.” “대체 무슨 일이야? 일요일에 (아이) 책가방까지 다 챙겨 오고!” “아, 미안.” (17쪽)
- “레이나를 생각해 봐도, 그리고 내 생활력을 봐도, 그걸 실행에 옮기는 건 절대 만만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에는 그냥 지금 이대로가 그나마 나은 것 같아. 난 취직하자마자 바로 결혼했으니까, 젊을 때는 좋은 아내가 되는 것만 생각하고 살았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레이나를 지킬 방법도 그것밖에. 아, 그래도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느긋하게 지냈더니 기분이 좀 나아졌어.” (62∼63쪽)

 

 


  대통령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나이 일흔 넘은 할아버지라고 다르지 않아요. 사람들한테서 독재자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이들 모두 갓난쟁이였을 적, 당신 어머니나 아버지한테서 깜찍하게 사랑받으며 살았어요. 당신 어버이가 하루 스물네 시간 꼬박 붙어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리고 하면서 사랑으로 돌보았어요.


  오늘날 도시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아줌마’를 참 나쁘거나 얄궂은 모습으로 그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몽땅 도시에 몰려들어 살아가기에, 이 도시 물질문명 사회가 엉터리로 그리는 ‘아줌마’ 모습에 쉬 길듭니다.


  시골에서 지내는 아줌마와 도시에서 지내는 아줌마는 아주 달라요. 게다가 ‘도시 아줌마’라 하더라도 이 아줌마들은 ‘누군가한테 어머니’입니다. 이 아줌마들은 내 어머니일 수 있고, 내 이웃이나 동무 어머님일 수 있어요. 모두 누군가 ‘어른이 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돌본 어버이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이 대목을 놓치거나 잊거나 젖힙니다. 아줌마라 하는 자리는 아무나 들어설 수 없는 줄 살피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 아줌마라는 자리에 서는 여자가 맡는 몫을 ‘아저씨’ 자리에 서는 남자가 옳고 사랑스레 나누어 맡지 않을 뿐더러, 아줌마와 아저씨가 낳아 사랑으로 돌본 딸아들 또한 스스로 즐거이 나누어 맡지 않아요.


- “말은 이렇게 해도, 남편도 날 안 봐 주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보람이 없어. 누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면서 사는 건지.” (36쪽)
- “나는 항상, 결혼하고 나서부터 계속, 내 마음을 닫고서 살아왔단 말야! 가끔 내 맘대로 하면 안 돼? 그 사람들(시집 식구) 조금은 괴롭히면 안 돼?” (40쪽)

 

 


  집안일을 반씩 갈라 맡는대서 남녀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남자가 설거지와 청소와 빨래쯤 한대서 여남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집 등기나 은행계좌를 반씩 가르거나 공동명의를 한대서 절대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등은 금긋기나 편가르기는 아니거든요. 평등은 돈이나 재산이나 보배나 숫자로 따지지 않거든요.


  오직 사랑으로만 살피는 평등입니다. 오직 사랑일 때에만 이야기할 수 있는 평화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빛내는 자유이고 민주입니다.


  자유나 민주는 참말 자유나 민주가 되려면 반드시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사랑 없이 펼치려는 자유나 민주는 껍데기 자유나 겉치레 민주입니다.


  흔히들 ‘언론 자유’를 외치는데, 언론 자유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글 한 줄을 쓰거나 기사 한 꼭지 쓰거나 사진 한 장 찍으며 스스로 사랑을 담지 않을’ 때에는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거나 해코지하는 언론이 되고 맙니다. 이럴 때에는 ‘언론 자유’가 아닌 ‘언론 폭력’이 돼요.


  정당 이름에 ‘진보’라는 낱말을 넣어야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당 이름에 ‘민주’라는 낱말을 넣기에 민주가 이루어지던가요? 아닙니다. 진보도 민주도 스스로 ‘사랑’을 나누거나 펼치거나 빚으려는 매무새가 아닐 때에는 으레 껍데기일 뿐이에요. 무엇을 하려는 진보일까요. 무엇이 되려는 민주일까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는 자리에서만 진보나 민주라 한다면, 얼마나 부질없거나 덧없을까요. 삶에서 사랑을 누리지 않는 사람들이 이루려는 진보나 민주가 참으로 진보나 민주다울 수 있을까요. 삶에서 사랑스러운 글과 말을 빚지 않는 사람들이 언론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 ‘당연한 일이지만, 보호자의 나이며 직업, 출신이 전부 제각각이고, 할아버지 할머니에 큰 형제들도, 어린애들도 있고, 취직했을 땐 세상이 넓어진 기분이 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여기(학교)가 더 넓을지도 몰라.’ (85쪽)
- ‘아아 그런가. 나도 마찬가지인가. 작년 겨울에 린도 감기에 걸리긴 했지만, 하루이틀 사이에 나아서 회사도 그렇게 오래 쉴 필요 없었다. 하지만 가령 그게 독감이었다면? 회사는 어떻게 했을까? 게다가 나도 옮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끔찍! 솔직히 작년에는 둘이서 사는 데 익숙해지기 바빠서 그런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 (96∼97쪽)

 

 


  즐거이 살아가는 넋을 생각합니다. 즐거이 살아가자면 이때에도 반드시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사랑 없는 삶이라면 즐겁지 않습니다. 사랑 있는 삶이라야 즐겁습니다. 곧, 남녀평등이든 여남평등이든 무슨무슨 평등이든 평화이든, 바로 사랑을 담아야 즐겁고 오롯하며 빛납니다.


  남녘과 북녘은 서로서로 끔찍한 전쟁무기를 비무장지대에 잔뜩 갖다 놓고 두 나라 젊은이를 왕창 몰아 놓습니다. 전쟁무기를 서로한테 들이대면서 평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더구나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총알을 재고 머리통을 겨누면서 ‘나는 평화를 바라요’ 하고 말한대서 평화이지 않아요. 총알도 총부리도 모두 녹여 호미나 낫이나 가래나 쟁기로 바꾸어 즐겁게 흙을 일구어야 비로소 평화예요. 전투기도 잠수함도 구축함도 전차도 모조리 없애야 바야흐로 평화예요. 군대도 군인도 모두 사라져야 시나브로 평화예요.


  그런데, 전쟁무기가 사라졌어도 학력이 남으면 평화란 찾아오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제도권교육을 밀어붙이면 평화는 깃들지 못합니다. 교과서로 아이들을 옭아매고 입시지옥으로 아이들을 괴롭힌다면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시골 흙일꾼이 되자며 입시지옥에서 다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아파트 평수 더 넓은 집을 차지하며, 더 비싸고 커다랗고 새까만 자가용을 몰고 싶어 입시지옥에서 머리 터지게 다툽니다. 아이들은 오로지 돈 때문에 입시지옥 싸움을 벌이는데,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런 불구덩이에서 헤매도록 밀어붙입니다.


- “다이키치 씨, 이럴 때는 허둥거리면 안 돼요. 어른부터 침착해야죠. 괜찮다고 말해 줘야죠.” “글쎄, 그게요, 린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 거라.” “그렇지 않아요. 할 수 있어요! 문화제 다녀오는 길에 린은 다이키치 씨한테 계속 매달려 있었어요. 아이는 고열이 나기 전에 남한테 달라붙거나 어리광을 부리거든요.” (116∼117쪽)
- ‘린의 체력은 열 때문에 눈 깜짝할 사이에 소진됐다. 왜 린에게 이런 일이. 왜 내가 아닌 걸까? 나라면 이런 감기는 아무것도 아닌데. 이 안타까움은 뭘까. 젠장 젠장 젠장.’ (120∼121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10) 넷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다이키치’는 여자친구도 애인도 없이 살아가는 ‘아저씨’입니다. 짝꿍이 될 ‘아줌마’가 없으면서도 아이를 맡아 돌봅니다. 아이를 맡아 돌보는 아저씨 삶을 일구면서 회사 일거리를 바꾸었습니다. 살아가는 흐름도 바꾸고, 집안살림도 바꿉니다. 사귀는 동무가 바뀌고, 스스로 찾는 이야기를 바꿉니다. 낳은 아이가 아니지만 스스로 사랑으로 맡아 돌보는 아이입니다. 아저씨인 다이키치는 스스로 아저씨 삶을 좋아합니다. 아저씨로 살아가며 둘레 아줌마가 어떤 사람인가를 찬찬히 헤아리며 깨닫습니다. 아저씨이자 아버지로 당신 삶과 꿈과 사랑을 맑게 빛냅니다.


- “아이랑 있는 시간도 자기 시간이니까.” “남의 부모라고 딱히 특별한 건 없지 않을까.” “나가서 둘러보면, 사방에 엄마 아빠들인걸.” “아아, 그래. 그렇구나!” (204∼205쪽)


  책을 덮으며 곰곰이 돌이킵니다. 나는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버지 자리에 있기는 있는데, 막상 아버지 자리를 얼마나 잘 헤아리는지 스스로 궁금합니다. 아버지 노릇, 아버지 삶, 아버지 사랑, 아버지 꿈, 아버지 이야기, …… 들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집 처마에서 함께 살아가는 제비들은 바지런히 새끼들을 먹이며 돌봅니다. 이제 날갯짓을 가르치며 서로서로 파란하늘 마음껏 휘저으리라 봅니다.


  내가 아이들한테 물려줄 날갯짓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스스로 누리는 날갯짓은 어떤 사랑일까요. 내가 즐거이 빛내면서 아이와 함께 어여삐 돌볼 삶은 어떤 그림일까요. 즐거이 살아가는 넋을 나부터 어떤 무늬와 결로 아로새기는가를 천천히 되새깁니다. (4345.6.4.달.ㅎㄲㅅㄱ)

 


― 토끼 드롭스 4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애니북스 펴냄,2010.7.16./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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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2년 1월 첫째 주 토요일치 <한겨레신문>에 실은 글입니다. 그무렵 실은 글에서 몇 군데를 손질해서 이곳에 걸쳐 놓습니다. '함께살기'라는 이름을 얻은 까닭을 밝힌 글입니다. 제 알라딘서재 이름은 '함께살기' 아닌 '된장'인데, 다른 곳에 글을 쓸 때에는 어디에서나 '함께살기'라는 이름을 씁니다. 알라딘서재에서는 무언가 다른 이름을 쓰고 싶었기에 '된장'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


 토박이말을 잘 써 보자
 (21) 함께살기


  한 해 마지막날은 섣달그믐입니다. 그러면 한 해 첫날은? 집집마다 새로 걸 달력엔 1월 1일을 으레 ‘신정’이라고 적어요. ‘happy new year’나 ‘謹賀新年’을 찾는 한국땅에서 새해 첫날을 ‘새해 첫날’답게 맞이하기 퍽 힘듭니다. 참말, 새해에 처음 맞이하는 날이니 ‘새해 첫날’이라고 달력에 적을 만하지만, 이와 같이 달력에 적바림하는 곳은 아주 드뭅니다.


  한때는 ‘신정-구정’이라 했고 ‘민속의 날’이라는 어줍잖은 말까지 썼지요. 우리는 ‘설날’을 지켜고 즐기며 ‘설빔’을 입는데. ‘설날’이란 이름을 되찾기마저 무척 힘들었습니다. 독재정권이 명절 이름을 엉터리로 뒤바꾸었다 하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명절뿐 아니라 제 넋을 고이 건사한다면 ‘설’도 ‘날’도 잊거나 잃을 까닭이 없습니다. 내 마음을 내가 지킬 때에는 이 나라 달력에 12월 31일을 ‘섣달그믐’으로 적을 수 있고, 1월 1일은 ‘새해 첫날’로 적을 수 있어요.


  새해 첫날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 예부터 주고받던 좋은 말(덕담)을 떠올리며 ‘함께살기’라는 낱말 한 마디를 건네렵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 더불어 살아가는 꿈, 서로 아름답게 어울리는 사랑, 부대끼고 껴안고 부둥켜안으며 따뜻하게 살아가는 빛”, 이 모두를 한 마디로 갈무리해서 ‘함께살기’라는 낱말에 담아 봅니다.


  낱말책을 뒤적여 보면 ‘공동체(共同體)’라는 낱말이 있어요. 가만가만 살펴봅니다. ‘공동체’란 한자말 뜻을 풀어 한겨레 낱말로 담아낼 때에도 “함께 살아가기”요, 곧 ‘함께살기’가 돼요. 그래서 이웃과도 동무와도 어른아이 가르지 않고 모두 ‘함께살기’를 하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당과 야당도 ‘함께살기’를 하고, 남북녘도 ‘함께살기’를 하며, 〈한겨레〉와 〈조선일보〉도 ‘함께살기’를 하다가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도 ‘함께살기’를 하는 한편, 돈 많은 이와 가난한 이도 ‘함께살기’를 하고요, 기업주와 노동자도 ‘함께살기’를 하고, 도시와 시골도 ‘함께살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대통령도 이 나라 여느 사람들과 ‘함께살기’를 하며, 세계축구대회를 함께 치르는 한국과 일본도 ‘함께살기’를 하며, 다툼이 아닌 나눔과 사랑과 평화로 서로를 다독이면 더없이 반갑겠습니다.


  싸우고 죽이고 다투는 데 들이는 돈이 너무 많아요. 새해 나라살림 돈에서도 문화를 살리거나 사회를 살리는 돈보다 무기를 사고 군대를 거느리는 돈이 가장 큽니다. 이런 돈 한 푼 두 푼을 애먼 전쟁무기로 바꾸지 말고, 내 나라 말글을 살리고 내 겨레 삶을 살리며 내 마을 보금자리 북돋우는 데에 쓰며 ‘함께살기’를 할 수 있는 새해를 함께 꿈꿀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내 삶을 가꾸며 내 말을 함께 가꾸면 참으로 아름답겠습니다. (4334.12.24.달./4345.6.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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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에 '우리 말 이야기'를 같이 띄운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이 글은 걸치지 않았더군요. 그러께에 썼던 글입니다. 제 서재에 꾸준히 찾아오시는 분이야, 제가 글 끝에 붙이는 'ㅎㄲㅅㄱ'가 무슨 뜻인 줄 다 아실 테지만, 어쩌다 한 번 들르거나, 이제 처음으로 들르는 분들은 뭔 소리인가 여길 테니 이렇게 글을 붙입니다. [사진책 도서관 편지] 게시판 글을 읽으면, '함께살기(ㅎㄲㅅㄱ)'라는 이름을 볼 수 있으니, 제가 이런 글을 띄우지 않아도 다 알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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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 함께살기

 

  1994년부터 ‘함께살기’라는 이름을 씁니다. 줄여서 ‘ㅎㄲㅅㄱ’처럼 적곤 합니다. 어제 은행에 가서 통장갈이를 했더니 은행 일꾼은 ‘ㅎㄲㅅㄱ’가 아닌 ‘해서’로 읽더군요. 어떻게 이리 읽을 수 있나 싶은 한편, 사람들이 당신 이름을 적바림하는 자리에 으레 알파벳을 쓸 뿐 한글로 쓰는 일이 드무니 어쩔 수 없구나 싶었습니다. 한글 닿소리로 내 이름을 적바림하는 사람은 아직 몇몇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용케 한글 닿소리 이름을 적바림하고 한글로 내놓는 글이름 하나 마련했습니다. 어릴 적 이웃집에 사는 형이 저한테 옷 하나 선물해 주었는데, 당신이 다니던 서울산업대학교에서 후배들이 만들어 준 옷 앞자락에 “함께 사는 길”이라는 글월이 적혔어요. 이 글월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이 글월을 줄여 ‘함께살기’란 이름을 내 깜냥껏 지었고, 어느덧 스무 해 가까이 이 이름을 즐겨씁니다. 제가 “함께 사는 길”을 슬기로우며 알차게 이루어 내기에 이 이름을 쓰지는 않습니다. 이모저모 부딪히고 배우면서 차근차근 이루고픈 꿈이기 때문에 이 이름을 좋아하고 아낍니다. (2010.5.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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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05 01:55   좋아요 0 | URL
ㅎㄲㅅㄱ라 마치 히브리어를 보는 듯한 느낌이네요.히브리어는 자음만의 글이라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고대 성경같은 경우 해석에 상당한 논란이 있다고 하네요^^

파란놀 2012-06-05 08:29   좋아요 0 | URL
저는 한글만 알고 히브리 글자를 몰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12-06-05 07:23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부끄럽지만 저도 이제 알았네요.^^
매번 보면서 무슨뜻이었을까? 궁금했었습니다.
여쭤보리라 생각했다가 또 까먹고,
지난번 아이들의 이름도 물어보고 까먹다 한참만에 사전을 찾았어요.ㅋ

파란놀 2012-06-05 08:29   좋아요 0 | URL
이런 거를 늦게 알아챘다고 부끄러울 일이 없어요.
그저 그런 이름일 뿐이에요.
 


 콩순이 책읽기

 


  이웃 할머니한테서 푸른콩을 얻었다. 오직 우리 집 아이들이 예쁘기 때문에 얻은 콩이다. 그런데 나는 살짝 달리 생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와 옆지기는 우리 마을 어르신들한테는 ‘막내아들’이나 ‘막내딸’ 뻘이기에, 당신 아들딸을 아끼는 마음으로 우리 식구를 아껴 주시기도 한다고 느낀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주말을 맞이하면 곧잘 ‘자가용’을 보곤 한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동백마을에는 자가용 있는 집이 한 군데도 없다. 이장님만 짐차 하나를 몰고, 다른 분들은 경운기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아무 기계가 없다. 자가용을 모는 이는 마을 어르신들 아들이거나 딸이다. 곧, 마을 어르신들 아들딸이 어르신들을 뵈러 주말 맞아 찾아올 때에 자가용이 곳곳에 서곤 한다.


  처음 우리 동백마을에 들어올 때에는 둘레 분들이 ‘여기 참 살기 좋은 곳이에요’ 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헤아리지 못했다. 들과 멧자락이 좋고 포근하기 때문인가, 하고만 여겼는데, 지내고 보니, 마을 어르신들 아들딸이 퍽 자주 찾아온다. 아마, 시골마을치고 ‘도시로 떠난 아들딸’이 우리 마을처럼 자주 찾아오는 데는 썩 드물지 않을까 싶다. 어버이날이 낀 저번 달에는 한창 마늘밭 일로 바쁠 때였는데, 온 마을에 ‘차 댈 데가 모자랄 만큼’ 자가용이 득실득실했고, 마늘밭에도 젊은 사람과 어린 아이 얼굴이 자주 보였다.


  이웃 할머니한테서 푸른콩을 얻어 콩보따리를 들고 온 첫째 아이는 저 스스로 콩을 다 까겠다고 한다. 그래서 안 도와주기로 하고 빈 그릇 하나를 내민다. 네가 다 까서 담아 주렴. 첫째 아이는 한참 콩을 깐다. 많이 더디다. 곁에서 꼬투리 몇 내가 까서 담는다. “벼리야, 콩을 깔 때에는 꼬투리를 이렇게 잡고 뒤집으면 금세 잘 깔 수 있어.” 콩까기를 몇 차례 보여주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마당에서 콩을 깐다. “다 깠어요.” 하고 부르며 아이가 들어온다. 그릇을 들여다보는데 얼마 안 된다. “다 깠어?” “네, 다 깠어요.” 마당을 내다 본다. 콩꼬투리가 많이 남았다. 1/20도 안 깐 듯하다. 아마 이만큼 까며 퍽 힘들었는지 모른다. 잘 했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콩순이가 깐 푸른콩으로 아침에 밥을 지어 다 함께 먹었다. (4345.6.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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