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글쓰기

 


  자는 아이들 얼굴에 파리가 자꾸 달라붙는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여는 내 얼굴과 등짝에도 자꾸 달라붙는다. 손으로 휘휘 쫓으면 살짝 날아 다시 내려앉는다. 파리는 마치 저만큼 날갯짓 잘 하는 목숨이 없기라도 하는 듯 날아다닌다. 파리는 파리대로 제 목숨을 누리는 셈이라 할 텐데, 이들은 아무리 길게 살아도 스무 날을 넘기기 힘들다. 제아무리 용을 쓴들 고작 ‘스무 날 권력’이라 할 테지만, 파리 날갯짓은 권력조차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파리채를 한손에 집어들고 파리를 잡으려 한다. 이래저래 용을 쓰며 이 방 저 방 재주 부려 날아다니던 파리는 이윽고 팍 소리를 내며 숨을 거둔다. 짜부라지며 죽는다. 스스로 뽐내던 잘난 날갯짓은 어디에도 없고 만다.


  파리는 처음 알에서 깨어 날갯짓을 즐길 수 있던 날부터 숨을 거두는 날까지, 파리 스스로 얼마나 좁은 울타리에서 좁은 눈으로 좁은 생각에 갇히는가를 깨닫지 못한다. 이제 막 깨닫는다 싶은 때에 그만 목숨을 잃는다. 사람들 살림집에서는 사람 손에 잡혀 죽는다. 바깥 들판에서는 제비나 박쥐한테 잡아먹혀 죽는다. 파리죽음이란 몹시 바보스러운 죽음, 또는 매우 어리석은 죽음, 아니면 아주 값없는 죽음을 가리킬밖에 없겠다고 느낀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도 파리가 날갯짓 자랑하듯 재주 부리는 모습을 보곤 한다. 왜 스스로 제 목숨을 깎아먹으며 바보짓을 할까. 왜 스스로 어설픈 겉치레 잔재주에 얽매일까.


  파리로 태어나든 사람으로 태어나든 치자꽃으로 태어나든 물봉선으로 태어나든 모두 같은 목숨이다. 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이요, 모두 값있는 목숨이다. 그러나, 사람도 파리도 스스로 값없는 목숨이 되도록 스스로 바보짓을 일삼곤 한다. 좋은 삶을 좋은 사랑으로 누리면 참으로 좋을 텐데. 좋은 꿈을 좋은 믿음으로 일구면 가없이 좋은 빛일 텐데. 글쓰기는 ‘파리 날갯짓’이 아니다.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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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73
바버러 쿠니 그림, 루스 소여 글, 이진영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2] 바버러 쿠니·루스 소여,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시공주니어,1997)

 


  내가 누군가한테 선물을 주고, 누군가는 나한테 선물을 줍니다.


  내가 누군가한테 선물을 준다고 내밀 적에, 나한테서 선물을 받을 이녁보다 이녁한테 선물을 주는 내 마음이 한결 뛰며 벅차고 기쁘지 않나 싶어요. 누군가한테서 선물을 받을 때, 이녁은 내가 좋아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서 살피기 마련이라 하는데, 이 선물은 다른 무엇보다 내 삶과 목숨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가를 느끼도록 해서 기쁜 일이로구나 싶어요.


  모든 선물은 내가 나를 기쁘게 한다고 느껴요. 남한테 주든, 살붙이한테 주든, 동무한테 주든, 풀과 나무한테 주든, 모든 선물은 나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답게 빛내는 손길이 된다고 느껴요.


  꽃밭에 물을 주든 뒷밭 고랑에 오줌 거름을 주든 좋은 선물입니다. 봄비가 내리든 봄바람이 불든 기쁜 선물입니다. 밥상을 차리든 밥상을 받든 고마운 선물입니다. 삶은 언제나 선물이에요. 어제 하루도 오늘 하루도 온통 선물이구나 싶어요.


  나는 내 어버이한테 선물이었을 테고, 나한테 우리 아이들이 선물과 같겠지요. 그런데 나는 나대로 나한테 선물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대로 저희 스스로 선물이에요.

 


.. 신기료 장수가 어쩌다가, 농부가 교회에 갈 때에 신는 구두를 고쳐 주는 날은, 맛있는 염소젖이 생겼습니다. 또 어쩌다가, 빵집 주인이 명절에 신는 구두를 고쳐 주는 날은, 바삭하고 커다랗고 맛있는 빵이 생겼습니다. 또 어쩌다가, 푸줏간 주인의 구두를 고쳐 주는 날은, 솥에 고기를 넣고 맛있는 스튜를 끓일 일이 생겼고, 국수와 야채도 생겼습니다 ..  (7쪽)


  나는 언제나 나한테 선물을 줍니다. 이 선물은 더없이 사랑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 선물은 가없이 끔찍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한테 좋은 선물도 주지만, 나는 나한테 나쁜 선물도 줍니다. 나는 나한테 가장 빛나는 사랑을 줄 수 있지만, 나는 나 스스로 나한테 가장 지저분한 시샘과 미움과 해코지를 줄 수 있어요.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나한테 하는 말입니다. 내가 남을 헐뜯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더라도, 이 말은 남을 헐뜯거나 비아냥거리지 못해요. 오직 나 스스로를 헐뜯거나 비아냥거릴 뿐입니다. 내가 남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말을 하더라도, 이 말은 남을 아끼거나 사랑해 주지 못해요. 언제나 나 스스로를 아끼거나 사랑해 줄 뿐이에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하는 옛말대로예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고울 때에 나한테 돌아오는 말이 곱습니다. 왜냐하면,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바로 나한테 하는 말이거든요.


  사랑받고 싶다면 나 스스로 사랑하면 돼요. 남이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거나 기다릴 수 없어요.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요. 내가 나를 사랑할 때에, 내 곁 내 좋은 이웃과 동무는 즐거이 어깨동무하면서 맑은 사랑을 한껏 북돋웁니다. 서로서로 맑은 사랑을 한껏 북돋울 때에 비로소 내 사랑이 네 사랑으로 옮아 가기도 하고, 네 사랑이 내 사랑으로 스며들기도 해요.

 

 


.. 한 달 한 달이 점점 더 힘겹게 전진해 갔습니다. 이건 모두 다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젊은 남자들은 총을 들고 어머니와 아이들 곁을 떠났습니다. 이 골짜기를 지키기 위해서요. 이제 가난한 신기료 장수에게 구두를 고쳐 달라고 할 일도 없어졌습니다. 모두들 교회에 가는 날에도, 밑창은 덜그럭거리고 뒷굽은 닮아지고 구멍과 단추와 끈은 아주 떨어져 나간 신발을 질질 끌고 갔습니다 ..  (10쪽)


  꿈을 꾸는 사람은 언제나 꿈을 누립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나눕니다. 돈을 버는 사람은 언제나 돈을 법니다. 주먹다짐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주먹다짐 쳇바퀴에서 맴돕니다.


  어떤 일 때문에 골을 부리거나 짜증을 내면, 골부림이나 짜증내기는 그예 내 곁에서 춤춥니다. 골부림이 차츰 소용돌이가 됩니다. 짜증내기가 천천히 큰 물결이 됩니다.


  어떤 일을 겪으며 살짝 웃으면, 웃음은 시나브로 내 삶에서 노래합니다. 웃음은 싱그러우면서 빛나는 몸짓으로 노래하며 내 넋과 말을 어루만져요. 말을 하는 입, 일을 하는 손, 움직이는 몸, 생각하는 마음, 나누는 사랑 모두 하나되어 아름다울 때에 내 하루는 늘 아름다운 빛깔로 반짝일 수 있어요.


  좋은 생각이 밑거름이 되어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좋은 생각이 밥 한 그릇 되어 아이들이 자랍니다. 좋은 생각이 물 한 모금 되어 아이들이 우뚝 섭니다. 좋은 생각을 품으라 하는 삶입니다. 좋은 생각으로 아끼라 하는 삶입니다. 좋은 생각으로 살붙이를 보살피라 하는 삶입니다. 좋은 생각이 아닐 때에는 어느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가까운 살붙이부터 이웃과 동무 모두를 괴롭히거나 들볶는 슬픈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 프리츨은 우린 돼지가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프리츨은 그 작은 남자한테, 얼음처럼 싸늘한 그 파란 눈과 으르렁대는 그 입을 보고 겁에 질려 버렸습니다 ..  (20쪽)


  바버러 쿠니 님 그림과 루스 소여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시공주니어,199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스위스 멧골마을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던 신기료 장수는 언제나 꿈을 꾸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이름을 드날리거나 무시무시한 주먹힘을 거머쥐려는 바보스러운 꿈이 아니라, 아이들과 사랑스레 하루를 누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늘 고맙게 맞이하는 새 하루를 빛내는 꿈을 꾸었습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들판을 사랑하는 꿈을 꾸었어요.


  그런데, 아늑하며 즐겁던 멧골마을에도 전쟁이 기어들어요. 멧골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요. 이 멧골마을을 비롯해 지구별 곳곳에서 권력을 거머쥐려 하는 바보들이 전쟁을 일으켜요. 바보들은 이 멧골마을뿐 아니라 지구별 곳곳을 어지럽혀요. 덧없는 전쟁무기와 군대를 키우고, 젊은 사내들한테 번쩍거리는 군인옷과 무기를 선물하면서, 젊은 사내 스스로 바보가 되도록 내몰아요.

 

 


.. 신기료 장수는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이구나. 나는 그 이야기가 할아버지들이 손자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티롤 요정) 로린 왕이 해마다 크리스마스에 딱 오두막 하나만, 딱 한 식구만 골라 찾아와 마법을 부려 자기가 가진 보물을 나누어 준다는 옛이야기가 있단다.” ..  (31쪽)


  선물은 노상 내가 나한테 할 뿐이에요. 아이들은 노상 아이들 스스로 서로서로 선물하며 살았어요. 가난한 신기료 장수네 세 아이는 형이 동생을 아끼고 동생이 형을 사랑하며 살았어요. 여러 날 굶더라도 혼자 배를 채우려 하지 않아요. 여러 날 굶으면서도 서로를 더욱 따스히 보살펴요. 아버지도 아이들도 웃음을 예쁘게 가꾸어요. 끼니를 건너뛰는 날이 이어지더라도 활짝 웃으며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워요.


  이리하여, 스위스 멧골마을 가난한 신기료 장수 네 식구한테 스위스 멧골 요정이 사뿐사뿐 찾아들고, 스위스 멧골 요정은 가난한 신기료 장수 네 식구한테 가장 걸맞다 싶은 선물을 스스로 누리도록 따순 손길을 내밀어요.


  선물은 스스로 빚어 스스로 누린다니까요. 사랑은 스스로 빚어 스스로 나눈다니까요. 미움도 전쟁도 슬픈 생채기도 스스로 빚어 스스로 망가뜨린다니까요. (4345.6.10.해.ㅎㄲㅅㄱ)

 


―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 (바버러 쿠니 글,루스 소여 그림,이진영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6.11.18./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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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자꽃 책읽기

 


  지난 2011년 가을, 전남 고흥 시골마을로 보금자리를 얻어 들어오면서, 이웃 할아버지가 일구던 밭에서 자라던 치자나무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치자나무가 어느 나무인 줄 제대로 알아보지는 못했어요. 뒤꼍에 치자나무를 스무 그루쯤 심었다고 하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여겼지, 스무 그루쯤 되는 치자나무가 어느 녀석을 가리키는지 몰랐습니다.


  한 해를 지나 여름을 맞이하니, 이웃 할아버지가 일구는 밭에서 자라는 나무에 하얗게 꽃망울 맺힙니다. 참으로 하얀 조각과 같다고 느끼며 바라보다가, 문득 이 꽃망울 맺히는 나무가 그 치자나무였다고 깨닫습니다. 소담스레 큼지막합니다.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늦봄에 피어 이른여름에 지는 찔레꽃은 올망졸망 앙증맞은 하양이라면, 이른여름에 피는 치자꽃은 한 떨기 햇살 같은 하양이로구나 싶어요.


  여름바람이 치자꽃 하얀 꽃망울을 가볍게 스치며 온 들판을 두루 감돌아 갓 심은 볏모마다 사름빛을 반짝이며 시원스레 붑니다.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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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다’와 ‘틀림없다’
[말사랑·글꽃·삶빛 13] 겹말을 못 느끼는 가슴

 


  오늘날에는 초등학생도 인터넷을 켜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찾아봅니다. 초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집안에 국어사전이 없더라도 찾기창에 낱말 하나 넣으면 아주 빨리 말풀이를 살필 수 있습니다. 애써 컴퓨터를 안 켜더라도 손전화를 누르면 말풀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날처럼 가방에 두툼한 국어사전을 들고 다닐 일이 없습니다. 집안에 두툼한 국어사전 안 갖추어도 될 만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척 궁금합니다. 이제 오늘날에는 따로 국어사전을 챙기지 않아도 낱말뜻과 쓰임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는데, 참말 오늘날 사람들은 컴퓨터나 손전화로 ‘한국말 낱말뜻’을 찬찬히 살피거나 헤아릴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한국말 낱말뜻’을 알아보려고 애쓸까요.


  점글 읽는 아이 이야기가 나오는 일본문학 《덴코짱》(양철북,2011)을 읽다가 115쪽에서 “엄마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하다. 틀림없다.”와 같은 글월을 봅니다. 나는 이 글월에서 몇 가지 아쉽다고 느낍니다. 먼저 ‘것’과 ‘게’를 잇달아 넣어 아쉽습니다. 다음으로 ‘느끼고 있는’처럼 적은 글투가 아쉽다고 느낍니다. 두 말투 모두 알맞거나 바르게 쓰는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곁에 있다는 것을’은 ‘곁에 있는 줄’로 손질해야 알맞아요. ‘느끼고 있는’는 ‘느끼는’으로 바로잡아야 올발라요. ‘현재진행형’ 꼴은 영어에 있지, 한국말에 없어요. 이 대목에 나오는 ‘느끼고 있는’ 같은 말투는, 영어에 있는 현재진행형을 일본사람이 ‘-하는 中’처럼 옮긴 말투를 다시 한국사람이 ‘-하는 중’으로 잘못 옮기다가, ‘-하는 가운데’나 ‘-하고 있는’처럼 잘못 옮긴 꼴이에요.


  이 다음으로 또 한 군데 아쉽다고 느껴요. 글월 끝에 나오는 “분명하다. 틀림없다.”가 아쉬워요.


  왜 아쉬울까요. 왜 나는 이 대목이 아쉽다고 느낄까요.


  한번 생각해 보셔요. 이 대목은 거리끼지 않고 쓸 만한 말투일까요. 이 같은 글월은 알맞거나 바르거나 좋다 할 만할까요. 누구나 이처럼 쓸 만한가요.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을까요. 사람들마다 달리 쓰는 말투 가운데 하나이니까, 개성으로 여겨야 하나요.


  나는 국어사전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먼저, 한자말 ‘분명(分明)’ 말뜻을 찾아봅니다. ‘분명’은 “틀림없이 확실하게”를 뜻한다 합니다. 이 말풀이에 나오는 다른 한자말 ‘확실(確實)’도 찾아봅니다. ‘확실’은 “틀림없이 그러함”을 뜻한다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말 ‘틀림없다’를 찾아봅니다. 이 낱말은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다”를 뜻한다 해요.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으니 찬찬히 갈무리해 봅니다. ‘분명 = 틀림없이 확실하게’라 했으니, ‘분명 = 틀림없이 틀림없이 그러하게’인 셈입니다. 곧, 한자말 ‘분명’과 ‘확실’은 한국말이 아닌 한자말이라는 소리예요. 한국사람이 굳이 안 써도 될 한자말이라는 얘기예요. 한국사람이 쓸 낱말은 오직 하나 ‘틀림없다’라는 뜻이에요. 일본문학 《덴코짱》에 “분명하다. 틀림없다.” 하고 나왔으면, 이 대목은 잘못되었다 할 수 있어요. 말놀이를 한다면 모르되, 말놀이라 하더라도 퍽 어설프거나 어리석은 말놀이인 꼴이에요. 마치, “고마워. 땡큐.”라 말하는 꼴이거든요. “잘 가. 바이바이.”라 말하는 꼴이요, “좋아. 굿.”이라 말하는 꼴이에요.


  뜻이 같은 여러 나라 말을 한 자리에 잇달아 쓰는 일은 ‘겹말’이에요. 한국말로는 ‘겹말’이고, 한자말로 나타내면 ‘중복표현(重複表現)’이에요. 사람들은 “역전 앞” 같은 말투만 겹말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이지만, “분명하다. 틀림없다.” 또한 겹말이에요. 알맞고 바르게 다듬어 본다면, “틀림없다. 그렇다.”라든지 “틀림없다. 바로 그렇다.”라든지 “틀림없다. 참말 틀림없다.”처럼 적을 수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며 말하지 않으면 겹말인지 아닌지 느끼지 못하고 말아요. 스스로 생각하며 말할 때에는 겹말이 나타날 일이 없어요. 스스로 생각을 북돋우지 않는다면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상큼하게 말하지 못해요. 스스로 생각을 북돋울 때에 비로소 사랑스럽거나 어여쁘거나 해맑게 말할 수 있어요.


  말빛은 내 삶빛이에요. 삶빛이란 나 스스로 일구는 넋빛이에요. 내 넋을 가꾸는 손길에 따라 내 삶은 한결 빛날 수 있고, 슬프게 헤매거나 어지러이 떠돌 수 있어요. 슬기롭게 가꾸는 넋빛이 삶빛으로 깊어지도록 이끌며 내 말빛을 빛내요. 어리석게 내팽개치는 넋이라면 삶도 말도 꿈도 사랑도 모두 어영부영 흩어지며 빛을 잃어요.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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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코짱
노다 미치코 지음, 오타 도모 그림, 김경인 옮김 / 양철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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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점글책 없는 도서관, 장님 없는 학교
 [푸른책과 함께 살기 96] 노다 미치코, 《덴코짱》(양철북,2011)

 


- 책이름 : 덴코짱
- 글 : 노다 미치코
- 그림 : 오타 도모
- 옮긴이 : 김경인
- 펴낸곳 : 양철북 (2011.10.24.)
- 책값 : 8000원

 


  한국에서 살아가는 나는 도서관을 딱히 싫어하지 않지만 그리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딱히 도서관에 찾아갈 겨를이 없기도 하고, 도서관을 찾아갈 때에 내가 즐길 만한 책이 얼마나 될까 잘 모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새벽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열지 않습니다. 도서관에 있던 책들이 적잖이 버려지며 헌책방 책시렁에 꽂히곤 합니다.


  한국땅 도서관은 처음 건물 하나 지을 때에는 무척 번듯하게 짓곤 합니다. 그렇지만, 나날이 새로 나오는 책을 꾸준히 받아들이다 보면 처음 지은 건물로는 모자라니 책 둘 자리를 꾸준히 새로 지어야 하지만, 막상 새 건물 지으며 책시렁 넓히는 도서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국땅 도서관은 묵은 책을 버리고 갓 나온 책을 들이며 좁다란 자리를 버티기만 할 뿐이라고 느껴요.


  한국에 있는 도서관이 도서관답지 못하다고 느끼기에, 나는 내 나름대로 서재도서관을 꾸밉니다. 내가 내 돈을 들여 장만해서 읽은 책을 건사하는 내 서재를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서재도서관입니다. 여느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건사하기도 하고, 여느 도서관에서는 갖출 생각이 없으나, 나로서는 좋아하고 바라는 책들을 즐거이 장만해서 건사하기도 합니다. 한국땅 도서관에서는 서른 해나 쉰 해쯤 묵은 책을 찾을 길이 없다 할 수 있는 만큼, 내 서재도서관에서는 쉰 해이건 일흔 해이건 내가 갖추기만 하면 우리 아이들이 언제라도 손으로 만지면서 펼칠 수 있도록 꾸밉니다.

 


.. “제대로 본 거야? 어떤 애였는데?” “완전히 천사 같았다니까!” … 교실로 들어선 설사는, 그러니까 하라이 타로 선생님은 싱글벙글 웃으며 뒤에 서 있는 여자애를 교실로 불러들였다. “들어와. 여기가 4학년 1반 교실이다.” 눈을 감은 아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  (13∼14쪽)


  나는 손말을 할 줄 모르고, 점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 그러나, 중학생이던 때에 처음으로 지역 도서관에 찾아가 본 뒤 궁금하게 여겼어요. 나처럼 입으로 말을 하고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펼칠 책 말고,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어야 할 사람이 펼칠 점글책은 어디를 가야 볼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요즈음은 이럭저럭 나아져서 점자도서관이 따로 있다고 하고, 여느 도서관 한켠에 점글책을 두기도 한다지만, 눈으로 읽는 사람이 볼 책조차 넉넉히 건사할 자리가 모자라다는 한국땅 도서관 모습을 헤아린다면, 점글책을 얼마나 갖출는지 아리송해요.


  눈으로 읽는 책은 낱권책 한 권이어도, 점글책은 두툼한 열 권이 되기 일쑤예요. 게다가 점글책은 책시렁에 빡빡하게 꽂으면 안 됩니다. 눕혀도 안 됩니다. 한국땅 도서관마다 ‘새로 나오는 책 사들이는 돈’이 적다고 목소리 높은데, 점글책 만들거나 마련하는 돈은 얼마나 들일는지 또한 알쏭달쏭해요. 아니, 여느 출판사에서 점글책을 내놓아 주기는 할까요. 여느 출판사에서 점자도서관 일꾼이나 자원봉사자가 점글책을 만들기 수월하도록 한글파일을 선선히 나누어 주기는 할까요. 점글책과 함께,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즐기도록 말책(녹음책)을 알뜰히 갖추는 도서관은 얼마나 있을까요.


  점글책은 한국땅 도서관에 몇 가지쯤 있을까요. 점글로 된 도감이나 사전은 몇 가지쯤 있을까요. 점글로 된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이나 일어사전은 제대로 있을까요.


  말책은 한국땅 도서관에 몇 가지쯤 있을까요. 한글을 모르는 사람도 말책을 듣겠지만, 눈이 어두워진 사람도 글책 읽기 어려우니 말책을 들으면 좋을 텐데, 말책을 알뜰살뜰 갖추는 도서관이 제대로 있기나 할까요.

 


.. “카렌은 지난달에 미국에서 귀국했다. 다섯 살 때까지는 일본에서 살았어. 일본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해. 점자도 막힘없이 술술 읽을 줄 알지. 못하는 게 없는 친구다. 그런데 눈이 보이지 않는다.” … 귀여운 얼굴은 마치 즐거운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웃고 있는데? 방금 전에 작은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맑디맑은 목소리가 우리 머리 바로 위에서 노래했는데? ..  (17∼18쪽)


  입으로 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눈으로 읽지 못할 때에는 손말이나 점글을 씁니다. 한국땅에는 입으로 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눈으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사람 스스로 제도권학교에서든, 구청이나 군청 같은 곳 문화강의 같은 데에서든 손말과 점글을 가르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어쩌면, 어떠한 구청과 군청에서도 구민이나 군민한테 손말과 점글을 안 가르칠는지 모릅니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기까지 ‘도서관에 점글책 없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막상 ‘왜 손말이나 점글을 제2외국어로 안 가르치는가’ 하는 대목을 궁금해 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고등학교에서 손말이나 점글 가운데 하나쯤 가르쳤다면, 대학시험에서도 손말이나 점글을 푸는 문제가 나온다면, 온통 대학입시지옥으로 흐르는 한국 삶자락이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다만, 손말이나 점글은 시험문제가 되어야 하지는 않아요. 삶이 되어야 올발라요. 삶이 될 때에 아름답습니다.


  그러고 보면, 고등학교가 되어서야 제2외국어로 가르칠 노릇이 아니라, 어린이집부터 가르칠 노릇이라고 느껴요. 다섯 살 아이들한테부터 어린이집에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손말은 어린이집부터 가르치고, 점글은 초등학교부터 가르쳐야지 싶어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쓰도록 가르치면서, 한국땅 살가운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삶을 사랑하게끔 손말과 점글을 늘 가슴으로 맞아들이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 덴코짱은 점심시간 동안 계속 두꺼운 책만 읽고 있다. 아마도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위한 책인 것 같다. 새하얗고 깨알 같은 점들이 두꺼운 종이 위에 가득 튀어나와 있다. 텐코짱은 고개를 약간 쳐들고 자랑스러운 듯 엄청 빠르게 두 검지로 점들을 짚어 나간다. 가끔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눈물을 닦을 때도 있다 … 그나저나 점자책을 읽을 때 덴코짱의 그 기쁨에 찬 얼굴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보물산에 있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  (35, 38쪽)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는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열두 해를 다니면서, 같은 반에서든 한 학교에서든 언제나 비장애인 동무들만 만났습니다. 장애인 동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에서도 장애인 동무는 하나도 못 보았어요. 언제나 비장애인 동무만 마주했어요.


  더 생각하면, 내가 다닌 학교들 가운데 바퀴걸상을 타고 다닐 만한 건물이던 곳은 없습니다. 목발을 짚고 다닐 만한 건물도 없습니다.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알아볼 만한 건물도 없습니다. 비장애인 학교와 장애인학교가 뚜렷하게 갈려, 서로 만나거나 사귀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깨동무를 할 만한 겨를도 자리도 없어요. 장애인학교와 어깨동무를 맺는 비장애인학교조차 구경하기 힘들어요.


  다시금 생각을 기울입니다. 신문이고 잡지이고 책이고 인터넷이고, 온통 비장애인이 쓰도록 만듭니다. 장애인이 읽을 신문이나 잡지나 책은 얼마나 될까요. 장애인이 쓰기 좋도록 꾸민 인터넷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러나, 신문이나 잡지나 책이 ‘점글로도 찍어 준다’ 하더라도 장애인 권리와 삶을 헤아린다 할 수 없어요. 점글로 찍기는 찍더라도 ‘신문이나 잡지나 책에 담는 이야기’가 장애인으로 지내는 사람들 꿈과 사랑을 따사로이 어루만지지 않는다면 덧없어요.


  그렇잖아요. 비장애인이 읽는 신문이나 잡지나 책인데, 이런 신문이나 잡지나 책에 ‘도시사람 아닌 시골사람’ 이야기가 얼마나 실리나요. 도시사람 아닌 시골사람이 읽을 만한 이야기를 얼마나 다루나요. 도시 노동자 말고 시골 흙일꾼이 즐거이 읽으며 새길 만한 이야기는 얼마나 짚는가요.

 


.. “미후네, 넌 손가락으로 글자 읽을 수 있어?” ..  (39쪽)


  아이들과 살아가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군내버스를 탈 때면 그리 바쁘지 않습니다. 군내버스 모는 일꾼은 우리 식구가 모두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시골버스는 자리가 넉넉해, 장날이 아니라면 으레 빈자리 많습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올 때 보면, 우리 식구가 탈 때뿐 아니라, 이웃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탈 때에도 버스 일꾼은 오래도록 버스를 멈추어 기다립니다. 버스에 타려고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오시든 헐레벌떡 달려오시든 가만히 기다립니다. 어느 할머니가 헐레벌떡 달려오실라치면, ‘어차피 기다리는데 뭘 그리 서두르시느냐’고 얘기하곤 합니다.

  아이들과 어쩌다 도시로 마실을 나가면, 버스를 타든 전철을 타든 무척 애먹습니다. 도시에서는 우리 식구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도시는 어디나 다 바쁩니다. 차를 바삐 몰고 거칠게 몹니다.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느 버스 일꾼이든 택시 일꾼이든 모두 어슷비슷합니다. 어쩔 수 없겠지만, 도시에서 ‘돈을 벌거나 사회활동 한다는 사람은 으레 비장애인 어른’이거든요.


  시골마을은 일흔이나 여든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시골버스 일꾼은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어버이가 버스에 타든, 초등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버스에 타든, 아주 익숙하게 누구라도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 시동을 다시 겁니다.

 


.. “히로시? 다테노 히로시 말이지? 가까이 오면 고양이 냄새가 나니까 금방 알 수 있어.” 히로시 집에서는 고양이를 다섯 마리나 키우고 있다. “나는?”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오줌 냄새라고는 제발 하지 말아 줘∼. “책 냄새가 나. 그리고 아기 냄새도.” 지난해에 우리 집에 여동생이 태어났거든! … “곧 여름이 오려나 봐!” 덴코짱이 이렇게 말했다. “바람한테서 여름 냄새가 나?” “그럼! 바람도 나무도 흙도. 그리고 파도 소리에서도 나는걸.” ..  (46, 81쪽)


  장애인이라는 이름표가 붙는 아이들과 비장애인이라서 이름표가 안 붙는 아이들은 한 학교 한 교실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는 숫자로 매기는 시험성적이 대수롭지 않거든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삶을 배우고 사랑을 물려받아야 하거든요. 아이들을 시험점수 기계로 만들자면, 아직까지 안 바뀌는 제도권학교 틀을 그대로 이어야겠지요. 아이들을 대학벌레로 만들거나 대기업벌레로 만들자면, 오직 비장애인 아이들만 한데 몰아놓고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때려잡으며 시험공부만 달달 시켜야겠지요.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넋을 맑으며 슬기롭게 키우도록 북돋우는 배움터라 한다면, 아주 마땅하고 홀가분하게 모든 아이들이 두루 다닐 수 있어야 해요.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배움삯 때문에 골치를 앓으면 안 돼요. 모든 학교는 나라돈으로 대야 해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나라돈으로 대야 해요. 장학금은 따로 없어도 돼요. 나라에서는 군대를 없애야 하고, 부질없는 토목건설을 그쳐야 해요. 나라돈은 써야 할 곳에 아름답게 써야 해요. 아이와 어른 모두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길을 걷도록 도와야 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놓은 울타리를 걷어야 해요.


  시골 군내버스 일꾼들이 늘 할머니 할아버지 태우며 마주하면서 ‘오래 기다리고 되도록 거칠게 안 몰기’를 몸으로 익힐 수 있듯,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학교와 일터와 삶터 어느 곳에서나 서로 살가이 만나고 얼크러질 수 있어야 비로소 이 나라 한국은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으리라 믿어요.

 


.. 촛불이 켜져 있든 꺼져 있든 덴코짱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늘 어두운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 “눈이 보이는 사람은 어둠이 무섭겠지. 근데 내 앞에 있는 건……, 뭐랄까? 어둡지도 밝지도 않아. 그냥 내가 있는 세계일 뿐이야. 그리고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지.” ..  (109∼110쪽)


  노다 미치코 님이 쓴 푸른문학 《덴코짱》(양철북,2011)을 읽습니다. 어린이문학이라 해도 되고 푸른문학이라 해도 됩니다. 그냥 문학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냥 이야기책이라 해도 좋아요. 아무튼 《덴코짱》은 일본사람 노다 미치코 님이 지난 2009년에 쓴 이야기요, 2009년은 ‘알파벳 점글’을 슬기롭게 빚은 루이 브라유 님이 태어난 지 이백 돌이 되는 해였다고 해요.


.. “내 별명은 덴코짱이라고 해. 점자로 된 책만 읽는다고 친구들이 지어 준 거야.” ..  (22쪽)


  한국땅에서도 ‘점글아이’가 차츰차츰 늘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한국땅에서도 ‘손말아이’가 하나둘 늘어날 수 있기를 꿈꾸어요. 아이들부터 점글아이와 손말아이로 거듭나고, 어른들 또한 아이들 사랑을 받으며 점글어른과 손말어른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으면 기쁘겠어요. 따로 점자도서관을 많이 세워도 아름답지만, 이 나라 모든 여느 도서관마다 점글책을 ‘여느 글책’하고 똑같이 알차게 갖출 수 있으면 아주 어여쁘리라 생각해요. (4345.6.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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