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바지 안 입고 내빼기

 


  쉬를 누어 바지를 버린 산들보라, 새 바지를 입자 하니 멀찌감치 내뺀다. 쳇.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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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닿기를 5
시이나 카루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만화책 즐겨읽기 155] 시이나 카루호, 《너에게 닿기를 (5)》

 


  아이 이름을 부릅니다. 아이를 ‘예쁜이’라고도 부르고, ‘똥똥이’라고도 부르며, ‘돼지’라고도 부르다가, ‘돼순이’나 ‘돼돌이’라고도 부르고, ‘오줌쟁이’나 ‘똥쟁이’라고도 부릅니다. 처음에 아이들은 어느 이름이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이런 이름이든 저런 이름이든 아이들 목숨에 깃든 넋은 한결같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를 바라보며 ‘바보’라느니 ‘똥개’라느니 하고 자꾸 부르면서 아이 스스로 이런 이름에 익숙해지면, 아이는 그만 ‘바보’가 되고 ‘똥개’가 됩니다. 어버이가 붙이는 이름이든, 동무들이 따로 붙이는 이름(별명)이든, 이 이름은 모두 아이 삶이 되어요.


  곧, 아이를 바라보며 ‘사랑이’라 부르면, 아이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님이 됩니다. 아이를 마주보며 ‘꿈이’라 부르면, 아이는 가없이 너른 꿈을 품는 벗이 됩니다. 아이를 얼싸안으며 ‘착한이’라 부르면, 아이는 그지없이 착한 빛을 나누는 이슬떨이가 돼요.


- “깨, 깨끗이 세탁한 거니까 걱정 마. 더러운 손수건 아냐.” (6쪽)
- “왜 내가 너랑 같이 이런 얘길 해야 돼?” “난 기쁜데. 이런 얘기 하는 거 처음이거든.” ‘이러니저러니 해도 쿠루미는 날 어엿한 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고 있는 거야. ‘그런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건, 쿠루미도 카제하야랑 마찬가지니까.’ (10쪽)

 


  아이를 바라보며 ‘사랑이’라 부를 때에는, 아이도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지만, 어른도 사랑스러운 어른이 됩니다. 아이를 바라보며 ‘미운이’라 부를 적에는, 아이도 미운 아이가 되면서, 어른도 미운 어른이 돼요.


  우리 어른들이 토론이나 논쟁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말다툼이나 말잔치를 벌일 때에,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듯 마구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어요. 나는 이런 모습을 문득문득 볼 때면 무척 슬프게 생각합니다. 왜 스스로를 갉아먹는 말을 해야 할까요. 왜 스스로 바보가 되는 말을 해야 하나요.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듯 내뱉는 ‘헐뜯는 말’은 맞은편을 헐뜯지 못해요. ‘헐뜯는 말’을 내뱉는 내 넋을 헐뜯을 뿐이에요.


  입으로 거친 말을 내뱉을 때에는 ‘거친 말 내뱉는 사람’ 스스로 거친 사람이 되고 거친 생각이 되며 거친 삶이 되고 말아요. 입으로 따스한 말을 노래할 적에는 ‘따순 말 노래하는 사람’ 스스로 따순 사람이 되고 따순 생각이 되며 따순 삶이 될 수 있어요.


  말은 생각을 다스려요. 생각은 말을 다스려요. 넋은 삶을 이끌어요. 삶은 넋을 이끌어요. 말과 넋과 삶은 언제나 한 흐름이기 때문에, 스스로 하는 말이 넋이 되고 삶이 돼요. 스스로 꾸리는 삶이 넋이 되며 말이 돼요.


- ‘우리는 똑같이 카제하야를 좋아하고 똑같은 사람을 똑같은 마음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같은 마음을 가졌어도 친구는 될 수 없구나. 그럼 우리는 뭐가 되는 걸까? 쿠루미. 아무것도 아닌 건가?’ (14쪽)
- ‘그 순간 내 세계는 모든 게 바뀌어 버렸다. 이름을 불러 준 그 순간, 난 이미 사랑에 빠져 버린 거야.’ (47쪽)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내 이름을 부른 사람은 ‘내 이름을 부를 때 마음’ 그대로 이녁 삶입니다. 내가 누군가 바라보며 이름을 부를 때, ‘이녁 이름을 부르는 내 마음’에 따라 내 삶이 달라져요. 믿음을 실어 이름을 부르면 서로 믿음직해요. 사랑을 품어 이름을 부르면 서로 사랑스러워요.


  사랑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서로를 사랑스레 부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안 이루어지는 까닭은 서로를 사랑스레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꽃은 꽃이 피기를 바라는 사랑이 온누리에 가득하기에 필 수 있습니다. 열매는 열매를 맺기 바라는 꿈이 지구별에 가득하기에 맺을 수 있어요. 잎사귀도 씨앗도 모두 잎사귀와 씨앗을 바란 넋이 있어서 피고 질 수 있어요. 새로 태어나는 목숨은 온 땅에 새 기운 넘실넘실 춤추기를 바라는 얼이 있어서 태어나요.


- “쿠로누마는 오해받기 쉽지만, 이런저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사실을 말해. 그래서 난 쿠로누마가 ‘이렇다’고 하면 ‘그렇구나’ 하고 믿어.” (23쪽)
- “우와? 의외로 컬러풀하잖아?” “방은 나만 쓰니까, 안 어울려도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것 같아서.” “바보, 넌 생각이 너무 지나쳐.” (57쪽)

 

 


  참으로 이름을 부르는 대로 무엇이든 태어난다고 느껴요. 어떤 마음이 되어 이름을 부르는가에 따라 무엇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달라진다고 느껴요. 그래서, 시이나 카루호 님 만화책 《너에게 닿기를》(대원씨아이,2007) 다섯째 권을 읽으며 ‘이름’ 하나 사람들마다 어떻게 깃드는가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내 이름을 어떤 마음으로 붙여 주었을까요. 나는 내 아이한테 아이 이름을 어떤 마음으로 불러 주는가요. 나는 내 둘레 사람들 이름을 어떤 마음으로 부르는가요. 내 둘레 사람들은 내 이름을 어떤 마음으로 부를까요.


  기쁜 마음인가요. 슬픈 마음인가요. 사랑 담는 마음인가요. 미움 섞인 마음인가요. 즐거운 마음인가요. 뿌듯한 마음인가요. 믿음직한 마음인가요. 못 미더운 마음인가요. 《너에게 닿기를》에 나오는 아이들은 서로한테 어떻게 닿기를 바라면서 서로가 서로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이름을 부를까요.


- ‘마음 가득 보물이 늘었어.’ (60쪽)
- “고마워, 사와코.” “아냐, 난 한 것도 없는데.” “한 게 왜 없어? 네가 같이 있어 줘서 즐겁게 쇼핑할 수 있었잖아!” (126쪽)

 


  아마, 금도 은도 보석도 보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돈도 은행계좌도 땅문서도 자동차도 아파트도 보배가 되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저런 물질을 가득 품에 안는 사람이 가장 즐겁거나 사랑스럽게 살아가는지 알쏭달쏭해요. 마음속에 보배를 안지 않는 사람도 즐겁거나 사랑스럽게 살아가는지 아리송해요.


  어떤 나날일 때에 즐거울까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일 때에 사랑스러울까 헤아립니다. 사람은, 나무는, 꽃은, 새는, 벌레는, 풀은, 바다는, 하늘은, 구름은, 별은, 해는, 무지개는, 비는, 달은, 흙은, 바람은, 어떠한 결과 무늬와 빛깔일 때에 가장 빛나며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만화책 《너에게 닿기를》에 나오는 ‘사와코’를 둘러싼 아이들은 서로서로 가장 따순 마음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사랑을 보살핍니다. (4345.6.10.해.ㅎㄲㅅㄱ)

 


― 너에게 닿기를 5 (시이나 카루호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7.13.1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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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님,

수국 모습이 헷갈린다 하시니까,

수국 여러 갈래 가운데 하나

사진을 보여줄게요.

 

잘 살펴보셔요.

잘 보시면

왜 '수국'이 어떤 빛깔과 어떤 특징인지

금세 알아챌 수 있답니다.

 

- 2009.6.26.

- 인천 중구 전동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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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6-11 14:15   좋아요 0 | URL
저꽃이 수국이었나요?
제가 알고 있던 수국은 수국이 아니고,불두화였었나보군요.
음~~
나인님의 꽃사진이 아니었다면 계속 잘못 알고 있을뻔했어요.^^

친정집 마당에 있는 것도 수국이 아니었네요.
가장자리 둘레에 따로 꽃이 피어 있지도 않고
그냥 푸른빛이 또는 주먹만한 꽃송이가 피더라구요.
전 그게 수국화로 알고 있었어요.
그것도 그럼 불두화인가요?

파란놀 2012-06-11 14:53   좋아요 0 | URL
가장자리에 핀 꽃 말고
가운데에 있는 몽글몽글한 녀석들도
모두 꽃잎을 벌려요.

그런데 왜 불두화랑 수국이 다르냐 하면요,
불두화는 '머리통 모양'처럼 동그마니 꽃이 모이고,
수국은 '머리통 모양으로 안 생긴 꽃'도 많아요.

그리고, 이 사진처럼, 수국은 가장자리에 꽃이 먼저 피고
가운데 꽃도 나란히 피잖아요.
이와 달리 불두화로 많이 알려진 꽃은
가운데 꽃들이 몽글몽글 한꺼번에 몰려서
모두 같이 피어나지요.
(그러나, 수국도 '한 갈래'만 있지 않으니
불두화와 비슷하게 피는 꽃도 있어요)

무엇보다, 불두화가 먼저 꽃을 피우고,
불두화가 질 무렵, 그러니까 6월부터 7월에 꽃을 피우는
수국이니까,
'날과 달'을 살펴,
꽃이 피는 때를 헤아리며
꽃잎이며 잎사귀이며
가만히 견주어 보셔요.

사진 몇 장만으로는 둘을 나누어 알려주기는 좀 힘들기도 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69) 눈물의 1 : 눈물의 결혼식

 

저희 두 사람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눈물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안재구,안영민-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아름다운사람들,2003) 32쪽

 

  요즘은 한국말 ‘혼례식’이나 ‘혼인식’을 쓰는 사람은 거의 사라지고 ‘결혼식(結婚式)’을 말하는 사람만 남습니다. 예식을 치르는 곳을 ‘혼례마당’이나 ‘혼인식장’이라 하지 않고 ‘결혼식장’이라고만 하고, ‘웨딩홀’ 같은 영어가 널리 퍼지는 터라, 앞으로는 말이 더욱 무너지거나 흔들리겠다고 느껴요. 말밑이 한자로 이루어진 낱이라 하더라도 한겨레 삶과 이야기를 담은 낱말이 있고, 일제강점기에 억지로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쓰이다가 자리잡고 만 얄궂은 낱말이 있어요. ‘결혼’과 ‘결혼식’은 바로 뒤엣것, 어쩔 수 없이 쓰이다가 잘못 자리잡은 얄궂은 낱말입니다.

 

 눈물의 결혼식
→ 눈물로 얼룩진 혼례잔치
→ 눈물로 범벅이 된 혼례잔치
→ 눈물이 가득한 혼례마당
→ 눈물바다가 된 혼례마당
→ 눈물 아니면 말할 수 없는 혼례마당
 …

 

  혼례를 치르는 자리가 어떠했다는 소리일까요. ‘눈물이 나는’ 혼례잔치였는지, ‘눈물 없는’ 혼례잔치였는지 뚜렷하게 말해야지요. 그냥 “눈물의 결혼식”이라고 뭉뚱그리고 나면 여러모로 멋없는 말, 뜻도 두루뭉술하고 어설픈 말이 됩니다. 눈물이 나는 혼례마당이라면, ‘슬픈’을 넣어도 좋고, ‘가슴 아픈’을 써도 어울립니다. ‘가슴이 찢어지는’이나 ‘눈물바다가 된’처럼 적어도 돼요.


  보기글을 다듬으며 생각해 보는데, 우리들은 우리 말을 한결 잘하려고 힘쓰거나, 올바르게 쓰거나 알맞게 쓰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다 아는 말이니 더 배울 구석이 없는 한국말이라고 느끼지는 않나 모르겠어요. 좋은 책을 새로 알아보고 찾아보면서 마음밭을 다스리듯이, 날마다 몸을 다스리는 좋은 밥 한 그릇 받아안고 고맙게 먹듯이, 날마다 쓰는 말과 글도 알뜰히 추스를 수 있도록 날마다 조금씩 마음을 기울여 주면 반가울 텐데요. (4339.1.22.해./4345.6.10.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저희 두 사람 혼례잔치는 말 그대로 눈물바다였습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39) 눈물의 3 : 눈물의 바다

 

난 옆에 앉아 있는 덴코짱을 슬쩍 훔쳐보았다. 저 상냥한 눈 속에 눈물의 바다가 있었다니
《노다 미치코/김경인 옮김-덴코짱》(양철북,2011) 53쪽

 

  “앉아 있는”은 “앉은”으로 다듬어 줍니다. ‘있는’은 받쳐 주는 구실을 하는 움직씨가 아닙니다. “서 있는”도 “누워 있는”도 모두 잘못 쓰는 말투예요. “선”과 “누운”으로 다듬어야 알맞아요.

 

 눈물의 바다가 있었다니
→ 눈물바다가 있었다니
→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다니
→ 눈물로 바다를 이루었다니
→ 눈물이 바다처럼 있었다니
→ 눈물이 바다만큼 있었다니
 …

 

  눈물이 많이 흘러 바다와 같다면 ‘눈물바다’예요. 눈물이 흐르고 흘러 냇물과 같다면 ‘눈물내’나 ‘눈물강’이나 ‘눈물냇물’이겠지요. 웃음이 넘치고 넘쳐 바다와 같을 때에는 ‘웃음바다’예요. 곧, 눈물바다·웃음바다·사랑바다·꿈바다예요. “눈물의 바다”처럼 사이에 ‘-의’를 넣지 않아요.


  아침에 맞이하는 하늘은 ‘아침하늘’이에요. “아침의 하늘”이 아니에요. 아침에 바라보는 바다는 ‘아침바다’예요. “아침의 바다”가 아닙니다.


  슬픔이 가득해서 눈물이 콸콸 쏟아진다면 ‘눈물바다’입니다. 눈물로 바다를 이룹니다. 눈물이 바다처럼 있습니다. 눈물이 마치 바다만큼 있어요.


  슬픔은 바다처럼 깊거나 넓을 수 있습니다. 기쁨 또한 바다처럼 깊거나 넓을 수 있어요. 사랑도 꿈도 믿음도, 미움도 시샘도 헐뜯음도 모두 바다만큼 드넓을 수 있어요. 우리는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슴에 품을 때에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몸짓과 매무새로 살아갈 때에 곱게 빛날 수 있을까요. (4345.6.10.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난 옆에 앉은 덴코짱을 슬쩍 훔쳐보았다. 저 상냥한 눈 속에 눈물바다가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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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

 


  “똥오줌도 못 가리네.”라 읊는 말을 어릴 적부터 들었다. 철이 없이 날뛰는 풋내기를 가리킬 때에 으레 읊는 말이라고 들었다. 어릴 적 동무들 사이에서 서로서로 놀리며 이 말마디를 읊기도 했다. 가만히 돌이키면, 어릴 적 나나 동무들 모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에다가 “아직 똥오줌 못 가릴 녀석”일 텐데, 우리들은 서로서로 이 말마디를 읊으며 스스로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지 못했다.


  아이 둘을 보살피는 하루하루 누리면서 생각한다. 첫째 아이가 밤오줌을 다 가려, 이제 기저귀 빨래에서 홀가분해지는구나 하고 느낄 무렵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어느덧 다섯 해째 날이면 날마다 기저귀 빨래에 아이들 옷가지 빨래에 쉴 겨를이 없다. 어디 마실을 다니더라도 아이들 옷가지로 가방 하나 두툼히 챙긴다. 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동안 쌓인 빨랫감을 빨래하느라 부산을 떤다. 첫째 아이는 낮오줌도 밤오줌도 잘 가리지만, 어느 하루 아주 신나게 뛰논 날은 자다가 그만 바지에 살짝 쉬를 하기도 한다. 둘째 아이는 이제 돌을 갓 지났으니 똥이고 오줌이고 가리지 못한다. 아무 데나 아무 때나 스스로 누고플 때에 눈다. 책상맡에서도 밥상자리에서도 똥이고 오줌이고 눈다. 돌을 지난 아이 똥오줌 가리기를 하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저귀를 푼 채 돌아다니도록 하니까, 온 집안은 그예 똥내와 오줌내 가득하다. 첫째 아이 적하고 똑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날마다 서너 차례씩 둘째 아이 똥바지 빨래를 하고, 날마다 스물∼서른 차례 오줌바지 빨래를 한다. 그야말로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하고 살아간다.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더러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주라 하는 심부름을 시키지 못한다.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더러 똥 마려우면 얘기해, 하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곰곰이 살피면, 아이가 똥이 언제 마려운가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오줌을 누고 싶어 할 때를 깨달을 수 있다. 스물네 시간 아이하고 붙어 지내는 어버이라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다.


  이리하여, 옛날 옛적부터 ‘아버지 구실 하는 사내’는 으레 잊거나 모르지만, ‘어머니 노릇 하는 가시내’는 으레 온몸과 온마음으로 헤아리면서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하고 얘기꽃을 피우”곤 한다.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을 타이르는 길,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을 달래는 길,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을 따숩게 사랑하며 아끼는 길 들을 여느 가시내는 어머니 자리에 들어서면서 슬기롭게 맡는다. 아버지 자리에 들어서는 여느 사내는 으레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지내지 않으며 바깥으로 떠돌기만 하니까, 막상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과 어떻게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가”를 안 깨달을 뿐더러 알려고도 하지 못하기 일쑤이다.


  사람은 갓난쟁이일 적에 똥오줌을 못 가린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은 나이를 제법 먹어 어른이 되었다 하더라도 똥오줌을 못 가리기도 한다.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도 스스로 철이 들려 하지 않을까.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철없이 살아가는가.


  아, 그렇구나. ‘철’이란 여러 뜻이지. 사람이 철이 들자면, 날씨인 철부터 느끼며 살아야 한다. 봄에는 봄철을 느끼고 여름에는 여름철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온마음으로 아로새길 때에 철을 찬찬히 익힌다. 가을철을 모르거나 겨울철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값’을 한다는 철 또한 익히지 못한다. 꽃철 모내기철 가을걷이철 나물철 김장철 들을 두루 살피며 사랑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사람철을 헤아리면서 사랑철과 믿음철을 하나하나 짚을 만하구나 싶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은 요 한두 달 사이 제비철로 흐드러진다.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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