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
시각장애어린이 미술교육 후원모임 ‘샌드위치’ 지음 / 사회평론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느낌글을 쓰고 나서도 어쩔 수 없이 생각하는데, 이 사진책 <마음의 눈>은 책이름부터 검색하기 너무 힘들고, 엮은이 이름으로도 찾아보기 너무 힘들다. 이런 대목을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따스히 만들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도 눈에 안 뜨이는 책이 되고 만다.)

 

 

 

 

 


 마음으로 바라보고 찍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03] 샌드위치 엮음, 《마음의 눈》(사회평론,2011)

 


  사진책 《마음의 눈》(사회평론,2011)을 읽었습니다. 시각장애어린이 미술교육 후원모임 ‘샌드위치’이 엮은 사진책으로, 제법 이름난 사진쟁이들이 도움이가 되어 ‘눈으로 보지 못하는 푸름이’들이 손에 사진기를 쥐어 찍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합니다. 머리말을 읽습니다. “‘우리들의 눈’에 경제적 후원을 하는 디자이너들의 모임 ‘샌드위치’는 4년 전 한 학교에 사진반을 만들었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눈과 동일시하는 그들이 소리로 느껴 마음으로 찍은 사진은 우리가 그들과 시각적 소통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으며 그들에겐 세상과 만나는 또 다른 방식을 열어 줬습니다(13쪽).”는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이 찍은 사진은 장님인 푸름이들이 ‘보며 즐길’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오직 ‘사진을 찍는 느낌’만 누릴 수 있습니다.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오는 줄 알 수 없습니다. 찍은 사진을 종이에 앉힌들 어떤 빛깔이거나 무늬인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사진책 《마음의 눈》은 장님인 푸름이들 사진을 큼지막하게 보여줍니다. 사이사이 여러 사진쟁이가 찍은 작품을 곁들입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을 도운 사진쟁이는 ‘무언가 다른 기법’을 쓰며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진쟁이가 찍은 작품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진쟁이 작품은 장님인 푸름이가 볼 수 없을 뿐더러, 느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사진들은 누가 보고 누가 누리라 하는 작품이 될까 궁금합니다. ‘무언가 다른 기법’을 쓴 사진쟁이는 무엇을 느끼거나 누릴까 궁금합니다.


  어딘가 구슬을 잘못 엮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할 수 있습니다만, 무언가 실타래를 잘못 잇거나 맺는구나 싶습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은 어떤 사진기를 썼을까요. 이 아이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사진찍기를 하며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두 가지 궁금한 이야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사진책 《마음의 눈》을 읽으며 두 가지 궁금한 대목은 더 엉키고 꼬입니다.


  홀로 생각에 잠깁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은 아무래도 완전자동 사진기를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빛이나 조리개를 스스로 맞출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진기도 ‘손가락으로 느끼면’서 빛이나 조리개를 맞추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더더구나 이 아이들한테는 ‘무지개빛 사진’이거나 ‘그림자빛 사진’이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이 아이들로서는 필름사진인들 디지털사진인들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써서 사진을 찍어 본 분이라면 누구나 알 텐데, 지구별 사진기 가운데 ‘왼손잡이’가 쓸 수 있는 사진기는 없습니다. 따로 주문해서 만들면 모르되, 모든 사진기는 오직 ‘오른손잡이’가 쓰도록 만듭니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손가락과 오른눈을 써서 사진을 찍도록 만들기만 합니다. 왼손잡이가 왼손가락과 왼눈을 써서 사진을 찍도록 이끌지 못해요. 꼭 이렇기 때문은 아니나, ‘오돌토돌하게 튀어나온 자리’가 있어 손가락만으로도 느끼며 빛과 조리개를 맞추도록 돕는 사진기 또한 없습니다. 이제는 모든 사진기가 자동으로 맞추어 주기도 하고, 사진기에 눈을 박을 때에 안쪽에 빛과 조리개 숫자가 뜨도록 나오기도 하지만, 손가락으로 단추를 만지작거릴 때에 곧장 알아채게끔 해 주지 않아요. 너무 마땅한 노릇일까 싶지만, 사진기와 사진찍기와 사진읽기 모두 ‘장님한테는 길을 열어 놓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진책 《마음의 눈》에서는 장님인 푸름이들이 사진을 찍습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은 저희 사진을 저희 ‘몸눈’으로 볼 수 없을 텐데, ‘몸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 몸눈으로 보기에 장님인 푸름이들 사진이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마치 노래 같고, 마치 속삭임 같으며, 마치 눈물 같고, 마치 웃음 같다가는, 마치 이야기 같습니다. 사진책을 덮고 나서 생각을 추스릅니다. 그래요. 장님인 푸름이들이 찍은 사진은 이 아이들 삶입니다.


  이 아이들은 소리를 듣고 살아갑니다. 이 아이들은 냄새를 맡으며 살아갑니다. 이 아이들은 ‘어떤 모습이나 그림’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빛’을 껴안으며 활짝 누립니다.


  나는 언제나 새벽 두어 시 무렵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무렵 시골집 바깥에서 들리는 고요한 소리에 이끌려 일어납니다. 새벽 한두 시 사이까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는 아주 즐거운 자장노래입니다. 새와 벌레와 뭇목숨과 바람과 풀과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는 내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쉬도록 이끌며 새근새근 잘 자도록 도와줍니다. 이들 모든 소리가 고요해지는 새벽 두어 시 무렵 맑은 시골마을 기운은 비로소 나를 일으켜세워요. 고즈넉한 기운은 내가 가장 정갈하며 싱그러운 기운을 글 한 줄에 실을 수 있도록 도와줘요.


  사진책 《마음의 눈》을 여러 차례 읽으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장님인 푸름이를 도와 사진놀이를 하도록 이끈 ‘몸눈으로 볼 수 있는’ 사진쟁이들이 ‘완전자동 사진기’를 손에 쥐고, 오직 소리와 냄새에 따라서 사진을 함께 찍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오직 마음으로 느끼는 빛을 누리며 사진을 나란히 찍으면 얼마나 고울까 하고.

 

 

 

 

 


  오른손잡이 사진기를 왼손으로 쥐어 사진을 찍어 본 적 있는 사람은 압니다. 그저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겼을 뿐이지만, 새삼스럽게 보입니다. 오른눈 아닌 왼눈을 사진기에 대고 바라본 적 있는 사람은 느낍니다. 그예 오른눈에서 왼눈으로 바꾸었을 뿐이지만, 남다르게 보입니다.


  새로운 눈설미와 눈길 때문에 ‘소리와 냄새’로 사진을 찍으면 즐겁다는 뜻이 아닙니다. 장님인 푸름이도 장님 아닌 푸름이와 똑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요 이웃이며 동무이고 살붙이예요. 그렇지만 이 지구별에서, 또 이 한국땅에서, 장님인 푸름이하고 장님 아닌 푸름이가 서로 살가이 사귀거나 만날 자리란 거의 없어요. ‘장애인 학교’에만 다녀야 하는 장님 푸름이예요. ‘비장애인 학교’에만 다니는 장님 아닌 푸름이예요. 장님 아닌 푸름이들은 비장애인 학교를 다니면서 손말을 배울 일이 없고 점글 또한 배우지 않아요. 하나하나 옳게 따진다면, 한국땅 모든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내 이웃하고 생각을 나눌 말과 글’을 옳고 바르며 예쁘게 배울 수 있어야 해요. 한국땅 모든 아이들은 돈을 더 벌거나 이름을 더 떨칠 무기로 삼는 영어를 배울 노릇이 아니라, 한국땅 살가운 동무와 이웃할 ‘말(손말)과 글(점글)’을 찬찬히 익힐 수 있어야 해요.


  “나를 보는 어머니가 있어, 내 사진을 읽어 주는 선생님이 있어, 마음 한 자락 내어주는 이웃이 있어, 나는 기쁩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언젠가 하늘을 볼 수 있을 거예요(150쪽/이명숙).” 하는 아이들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는 언젠가 하늘을 볼 수 있으리라 글을 적지만, 아이는 늘 하늘을 보아요.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테고, 구름이 날아가는 내음을 맡을 테니까요. 햇살이 내리쬘 때에는 따스한 기운을 느껴요. 따스한 기운에 어리는 내음을 맡아요. 바람이 불 적에 바람이 풀잎과 나뭇잎 스치는 소리를 느끼며, 풀잎을 스치며 실어나르는 내음을 함께 맡아요.

 

 

 

 

 


  나는 생각합니다. 몸눈으로 보는 사람이 사진기를 손에 쥘 때에도 그저 몸눈으로만 보며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내가 내 사진을 찍을 때에는 몸눈으로 본 모습만 찍지 않아요. 내가 꽃을 찍을 때에는 꽃빛뿐 아니라 꽃내음과 꽃소리를 함께 찍습니다. 헌책방에서 책시렁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몸눈으로 보이는 책과 책시렁뿐 아니라 책에 서린 내음과 책마다 담긴 소리를 나란히 찍습니다. 헌책방 책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책장 넘기는 소리를 같이 찍습니다. 책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슬며시 웃는 소리를 조용히 찍습니다.


  어떠한 사진이든 눈으로만 느낄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진이든 빛깔과 소리와 내음이 골고루 얼크러지기 때문에, 어떠한 사진을 읽든 내 모든 마음을 기울여 읽습니다. 빛과 무늬와 결을 읽는 한편, 소리와 내음과 느낌을 읽습니다. 사진이 좋다고 여기면, 빛도 좋지만 소리도 좋기 때문입니다. 무늬가 좋으면서 내음이 좋고, 결이 좋은 한편 느끼이 좋아서 사진읽기를 즐깁니다.


  누구나 마음으로 바라보고 찍는 사진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예쁘장하다는 빛깔을 담는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럴듯한 그림을 빚는대서 아름답지 않아요. 날씬한 몸매인 아가씨를 모델로 세우기에 아름다운 사진이 나오지 않아요. 마음으로 바라보며 찍는 사진이기에 아름답구나 하고 느껴요.


  장님인 푸름이들은 이야기 한 자락 들려줍니다. 장님인 푸름이들은 저희 삶을 온통 드러내어 사진과 글을 베풀면서 ‘몸눈으로만 보려 하는 어른’들한테, 이 어른들 스스로 잊거나 잃거나 놓치거나 놓은 이야기와 삶을 생각하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꿈을 들려줍니다. (4345.6.12.불.ㅎㄲㅅㄱ)

 


― 마음의 눈 (시각장애어린이 미술교육 후원모임 ‘샌드위치’ 엮음,사회평론 펴냄,2011.11.1./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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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글쓰기

 


  한겨울 쉼철을 맞이한 시골에서, 이장님 마을 방송은 으레 새벽 여섯 시에 울려퍼진다. 한여름 일철을 맞이한 시골에서, 이장님 마을 방송은 으레 새벽 네 시 사십 분에 울려퍼진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온 들판은 개구리 노랫소리가 한창 피어나고, 밤 열두 시가 가까우면 아주 무르익다가는 두 시 무렵까지 개구지게 이어지는데, 새벽 세 시에서 네 시로 접어들 즈음 거의 모두 잠든다. 이즈음 노래하는 개구리는 그야말로 한두 마리 있을까 말까. 밤에 노래하던 새들도 새벽 세 시에서 네 시로 접어들 무렵에는 아주 조용하다. 바야흐로 다섯 시까지는 새소리 한 점 찾아 들을 수 없다. 낮에 노래하는 새들은 다섯 시부터 바지런을 떨며 먹이를 찾는다.


  내가 도시 한복판에서 신문배달로 먹고살던 지난날, 언제나 새벽 한 시 오십 분에 일어나 짐을 추슬러 새벽 두 시 이십 분 즈음부터 자전거를 몰며 골목을 도는데, 새벽 세 시까지는 이래저래 술에 전 사람이 기웃기웃 보이지만, 세 시를 넘어 네 시에 접어들 때까지는 술꾼뿐 아니라 이웃 신문배달꾼조차 보이지 않는다. 골목을 청소하는 일꾼도 아직 나오지 않을 때라, 이 즈음 나는 홀로 아주 조용히 또 아주 홀가분히 바람 가르는 소리를 살짝 내며 신문을 넣었다.


  모든 목숨이 깊이 잠든 한때, 모든 목숨이 막 깨어나기 앞서, 모든 목숨이 가장 느긋하며 고요한 한때, 모든 목숨이 가장 호젓하며 보드라울 무렵, 나는 온몸이 땀으로 펑석 젖으며 하루를 열었다. 이제 나는 옆지기와 두 아이하고 살아가면서, 이 즈음, 새벽 세 시부터 네 시 사이 고요한 말미를 더없이 아끼면서 사랑한다. 내 슬기를 모으고 내 깜냥을 가다듬어 새벽에 글 한 줄을 쓴다. (4345.6.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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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97] 혼인 기리기

 

  나는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무렵 학교에서는 ‘우리 고장 문화재’라든지 ‘우리 고장 천연기념물’이라든지 ‘우리 고장 기릴 만한 훌륭한 분’이라든지 알아보는 숙제를 내주곤 했습니다. 이런 숙제를 받을 때면 언제나 골머리를 앓습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인천은 으레 ‘서울로 가려다 못 가고 남은 뜨내기’가 모이는 곳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서울과 가깝다 보니, 서울에서 쓰는 물건을 만드는 공장이 동네마다 많았어요. 문화재라든지 천연기념물이 있을 턱이 없으리라 느꼈어요. 동무들은 이래저래 골치를 썩이다가, 갈매기라든지 비둘기라든지 적곤 합니다. 갈매기나 비둘기가 천연기념물일 턱이 없지만, 쓸거리 또한 없거든요. 기릴 만한 훌륭한 분을 찾는 숙제도 힘들었습니다. 조선이든 고려이든 고구려이든 백제이든 옛조선이든, 인천에서 나고 자란 훌륭한 분이 누가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젓기만 했어요. 오늘날 들어 비로소 ‘한글 점글 만든’ 박두성 님이라든지  ‘진보 정치를 꿈꾸었다’는 조봉암 님이라든지 들곤 하지만, 어릴 적에는 이런 이름을 듣도 보도 알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 ‘내 고장 기릴 사람’ 이름을 역사책에서 훑다가 하품만 흘렸는데, 내가 숙제에 적을 훌륭한 분이라면 마땅히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고,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어요. 역사책에도 교과서에도 이름을 안 올리지만, 꿈과 사랑을 심은 아름다운 분이기에 넉넉히 ‘기릴’ 만하고 마음으로 되새길 만해요. 해마다 6월 7일을 맞이하면, 나와 옆지기는 서로 함께 살기로 다짐한 뜻, 곧 혼인날을 기립니다. (4345.6.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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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내가 심은
나무도 좋고

 

남이 심은
나무도 좋으며

 

사람이 안 심고
씨앗으로 퍼져

 

스스로 자라는
나무도 좋다.

 


4345.5.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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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의 철학 - 십대를 위한 철학 길라잡이
이케다 아키고 지음, 김경옥 옮김, 현놀 그림 / 민들레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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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으로 살고, 생각으로 사랑하고
 [푸른책과 함께 살기 95] 이케다 아키코, 《열네 살의 철학》(민들레,2006)

 


- 책이름 : 열네 살의 철학
- 글 : 이케다 아키코
- 옮긴이 : 김경옥
- 펴낸곳 : 민들레 (2006.3.15.)
- 책값 : 9000원

 


  나 스스로 느긋하게 가다듬는 마음일 때에는 책을 읽으면서 무척 느긋합니다. 하루하루 온갖 일을 치르며 바쁘다 하더라도 마음이 느긋하기 때문에 스물네 시간 가운데 잠은 서너 시간 쪽잠으로 자고 스무 시간을 일에 매인다 하더라도 십 분이나 이십 분 말미를 내어 책을 읽으며 참으로 느긋하다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느긋하게 가다듬지 못하는 마음이라면, 아무런 일이 없고 하루 스무 시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지 못할 뿐더러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사랑으로 부풀지 못해요. 마음가짐에 따라 책읽기가 달라집니다.


  내가 무엇을 더 배울 때에도 책을 읽는 눈은 달라집니다. 내가 무엇을 더 겪은 뒤에도 책을 읽는 결은 달라집니다. 그런데, 무엇을 더 배우거나 더 겪는다 할 때에도, 내 마음으로 느끼며 스며드는 이야기가 되는구나 싶어요. 마음으로 느끼며 스며들지 않고서는 배우지 못하고 겪었다고 여기지 않아요. 마음으로 느끼며 비로소 배우는구나 하고 느끼고 겪는구나 하고 여깁니다.


  곧, 마음가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꿈이 달라지고, 이야기가 달라지며, 사랑이 달라집니다.


  마음을 슬기롭게 쓸 때에, 슬기롭게 책을 읽고 슬기롭게 집일을 하며 슬기롭게 이웃을 사귑니다. 마음을 곱게 쓸 때에, 곱게 말을 하고 곱게 웃음을 지으며 곱게 밥을 차립니다. 마음을 정갈히 가눌 때에, 정갈히 편지를 쓰고 정갈히 밭을 일구며 정갈히 걸레질을 합니다.


.. 산다는 게 멋지다거나 시시하다거나 하는 건 스스로 자기 삶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지 … 관념이 현실을 만들지, 현실이 관념을 만드는 건 결코 아이야 … 사회도 바꿔야겠지만 우선 내가 먼저 변하는 게 중요해 … 사회란 사람들 저마다의 관념인 까닭에 각자가 좋아지지 않고서 사회를 좋게 만드는 길은 어디에도 없어 …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타인을 사랑할지도 알 수 없는 법이지 … 과학의 발달을 진보라고 한다면, 진보란 편리해지는 걸 뜻하는 건가? 과연 진보를 ‘편리해지는 것’이라고 정의해도 괜찮을까 ..  (10, 92∼93, 113, 163쪽)


  내 마음이 흔들린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 삶은 그저 흔들립니다. 내 마음이 무겁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거나 내 삶은 그예 무겁습니다. 내 마음이 아프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내 삶은 그대로 아파요.


  마음 한켠에 응어리를 숨긴 채 활짝 웃으며 뛰놀 수 있겠지요. 마음 한쪽에 피고름이 흐르더라도 짐짓 모르는 척 지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마음을 숨기지 못해요.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내 얼굴에 낱낱이 드러나요. 내 몸가짐 구석구석에 마음속 이야기와 움직임이 찬찬히 뱁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어떻게 피어날까요. 내 마음에 따라 내 몸이 움직일까요. 내 몸이 움직이는 결에 맞추어 내 마음이 바뀔까요.


  몸을 튼튼하게 돌보며 마음을 튼튼하게 돌볼 수 있을까요.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몸 또한 단단히 추스를 수 있을까요. 몸과 마음은 따로라거나 어느 쪽이 먼저라 할 수 없이 함께 흐를까요.


.. 자연이 만들었고 그 자체가 자연인 몸은 새까맣게 잊은 채, 겉으로 보이는 몸만을 몸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지 …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누가 태어날지 몰랐는데, 바로 너희들이 태어났다는 이 오묘한 만남의 감동을 잊고 있단 말이지. 단지 타인과 타인이 만났을 뿐이라는 사실은 잊은 채 ‘내 아이’라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는 거지. 그래서 종종 당신들(부모) 생각대로 너희(아이)들을 만들려고 하는 거야 … (내 몸을) 내다 팔 수도 있다면 진짜로 소중하게 여기는 건 아니지. 그렇다면 그럴 경우 마음은 소중하게 여기고 있느냐 하면, 몸을 팔 수 있다는 그 생각이 바로 마음을 파는 것이어서 이것 역시 같은 거지 … 뭐 때문에 사는지 사유하지도 않고 어쨌든 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수명을 늘이기 위한 생명 기술만 엄청나게 발전시키고 있지 ..  (59, 81, 123, 168쪽)


  언제부터였나, 나는 늘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개구지게 놀며 ‘다른 동무들과 견주어 힘이 모자라는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야구 놀이를 할 때에 동무들은 홈런을 뻥뻥 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칠 힘이 없습니다. 방망이를 짧게 잡고 공을 잘 맞추어 수비가 빈틈으로 보내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축구 놀이를 할 적에 동무들은 으레 공이 있는 데로 우르르 몰리는데, 어차피 축구는 골문으로 가기 마련이니까, 나는 사람도 공도 없는 빈 곳에서 어디로 이 공과 사람이 갈까를 미리 헤아려 좋은 자리를 지킵니다.


  중학교로 들어서며 놀이보다는 공부에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중학교부터 저녁 늦게까지 교실에 붙잡아 가두며 입시공부를 시켰어요. 억지로 붙들리며 시험문제만 달달 외워야 하는 시멘트 감옥에서 ‘교과서로 가르치는 지식과 정보가 얼마나 옳으며, 이 지식과 정보가 앞으로 얼마나 오래 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대학입시까지 마치면, 이렇게 외우는 지식과 정보는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고작 시험 한 차례 치르려고 여러 해 시멘트 감옥에 꽁꽁 묶인 채 바보스레 지내야 하나 싶어 딱했습니다.


  이리하여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책읽기를 생각합니다. 대학입시에서 논술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교과서 아닌 책을 읽으며 내 생각자리를 넓히려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은 나더러 ‘생각을 하라’ 하고 말했지만, 제도권학교 교사가 말하는 ‘생각’은 내가 품는 ‘생각’과 달라요.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 생각을 하고 싶지, 시험성적을 잘 낸다거나 바보스레 시험공부에만 매달리는 다른 동무와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요.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 길이로 바보처럼 되어, 똑같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는 내 꿈과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며 교과서보다 교과서 아닌 책을 가방에 더 많이 챙깁니다.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할 적에도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보다 다른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나란히 펼치고 읽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때에도 이런 책읽기는 그대로 잇습니다. 문득문득 돌이킵니다. ‘내가 시험문제 하나를 더 풀어 0.01점을 올리는 일’과 ‘오늘 하루 내 삶을 누리는 책으로 생각을 빛내는 일’하고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울까 하고 돌이킵니다. 나는 새벽 다섯 시 사십 분에 집에서 나섭니다. 새벽버스를 타고 학교로 옵니다. 학교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고요한 시멘트 감옥에서 창가에 앉아 가방에서 ‘교과서 아닌 책’을 꺼내고, 동무들이 오기까지 한 시간 반 즈음 ‘교과서 아닌 책’을 호젓하게 읽습니다. 비록, 창가 자리라 하더라도, 내 고등학교 창문 바깥으로는 화학공장 굴뚝이 가득합니다. 화학공장에서 버리는 쓰레기물을 거르는 처리장 매캐한 연기가 교실로 스며듭니다. 햇살은 조각처럼 쪼개어진 채 들어옵니다. 나는 좋은 햇살 누리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나는 좋은 모습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삶을 누리고 싶다는 사랑을 헤아립니다.


..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지 못하고, 그 마음도 알지 못하는 건 작은 나로만 보고 있기 때문이야 … 도둑질이나 폭행, 살인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런 법이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있어도 그게 자기를 구속한다고 느끼지 않아. 그 사람의 자유는 조금도 규제받지 않는 셈이지 … 현실을 움직이는 건 관념이어서 관념이 바뀌지 않으면 현실도 바뀌지 않는 거야. ‘더 나은 사회에서, 더 잘 산다’는 관념이 진정으로 뭘 뜻하는지 자기 스스로 판단하지 않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당을 만들고, 자기 자신이 나아지려는 노력 없이 사회만 바꾸려고 한 셈이야. 설령 그런 사회가 실현됐다 하더라도 내용은 그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을 거란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  (74, 98, 108쪽)


  고등학교를 마치며 고향이던 인천을 떠납니다. 이제 대학교가 있는 서울에서 지냅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한 해 동안 지옥철을 타고 대학교를 다녀 보는데, 이제껏 왜 ‘지옥철’이라 이름을 붙였는가를 온몸으로 깨닫습니다. 선풍기조차 없이 창문만 열어 더위를 식히는 국철은, 인천에서 잠만 자고 서울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날마다 새벽과 밤마다 오징어떡처럼 찡기면서도 손에 책을 꼭 쥡니다. 새벽전철에는 꾸벅꾸벅 조는 사람투성이입니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밟히면서 나는 책을 펼쳐 꿈누리로 빠져듭니다. 몸은 괴롭지만 마음은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밤전철에는 술에 절은 사람투성이입니다. 여기서 비틀거리고 저기서 시끄럽습니다. 나는 책을 펼쳐 온통 시끄러운 소리와 어지러운 냄새를 잊으려 합니다. 아니, 책을 펼치면 어떠한 소리도 냄새도 나한테 스며들지 않습니다. 나는 책과 함께 사랑누리를 생각합니다.


  서울 이문동에 있는 대학교에서 인천 주안역까지 막전철을 타고 오면 으레 밤 한 시 가깝습니다. 주안역에서 내린 다음 마을버스 마지막차를 기다립니다. 이때에도 가로등 불빛에 기댄 채 책을 읽습니다. 새벽에 전철에서도, 낮에 학교에서도, 저녁에 동아리방이나 과방이나 술집에서도, 밤에 전철과 버스역에서, 어느 누구도 손에 책을 안 쥔다고 느낍니다. 아주 드물게, 이 늦은 막버스 기다리는 주안역에서 누군가 손에 책을 쥔 사람이 보이곤 했는데, 이럴 때면 마음속에서 불이 켜집니다. 나는 외롭지 않다고, 나한테는 이렇게 좋은 이웃이 이름도 낯도 모르지만, 어디에선가 즐겁게 살아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불이 켜져 환합니다.


.. 사람들은 곧잘 ‘우정이 깨졌다’고 말하곤 해. 하지만 깨지고 마는 우정은 진정한 우정이 아니었을 따름이야. 진정으로 중요한 뭔가로 서로 이어져 있었다기보다 이해 관계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어 … 내가 사는 이곳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너희들이 알아야만 하는 건, 어느 쪽이 옳은가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바르게 살아갈까가 아닐까 … 나와 인류 전체는 다른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아지지 않으면 인류 전체도 좋아지지 않는 거야 ..  (112, 148, 170쪽)


  대학교에 들어간 이듬해에 아주 인천을 떠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새벽전철과 밤전철로 오가느라 지치기도 지치지만, 찻삯이 아깝습니다. 무엇보다 고단한 전철길에서 시달릴 때에 읽는 책은 마음닦이를 하며 읽더라도 제대로 마음을 가다듬기 힘들다 느낍니다. 더욱이, 서울에서 잠잘 데 얻어 지낸다면, 서울 곳곳에 있는 헌책방을 두루 돌며, 내가 아직 모르는 더 깊고 너른 책바다에 뛰어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린 날, 내 국민학생 적 내 어머니가 부업으로 하던 신문배달을 떠올립니다. 신문사 지국은 먹고자는 사람이 많다고 했지. 대학교 앞에도 신문사 지국 있지 않을까.


  대학교 과방으로 오는 신문에 끼워진 신문값 고지서에 적힌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겁니다. 신문사 지국으로 갑니다. 국민학생 적부터 신문배달을 했다고 말하며, 이곳에서 먹고자며 신문을 돌리기로 합니다. 이러면서 차츰 학교 전공 과목 수업하고 멀어집니다. 교재 한 권을 내가 먼저 혼자서 하루 동안 읽으면 그만일 텐데, 이 작은 교재로 한 학기나 한 해를 가르치고 배우는 얼거리가 내키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던 대학교와 몸으로 겪는 대학교가 너무 다릅니다. 고등학생 적을 되새깁니다. 그래, 중학교나 고등학교도 교과서 한 권으로 한 해를 가르치잖아. 그런데, 이때에는 교과서 말고도 문제집과 참고서를 얼마나 많이 보는데. 대학교는 수업도 설렁설렁에다가 교재도 너무 얇고. 이래서 무슨 학문을 하지?


  대학교 옆 헌책방에서 온갖 책을 찾아 읽습니다. 대학교 구내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을 합니다. 내 깜냥껏 50분 일하고 10분 쉬면서 틈틈이 책을 읽습니다. 나는 50분 일한 만큼 내 근무기록일지에 ‘50분 일하고 10분 쉼’이라 숫자를 적는데, 어떤 사람은 일도 안 하면서 근무시간을 되게 길게 적습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 말고 없는데, 근무기록일지를 보면 이름은 적히되 얼굴이 안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게 뭔가?’ 싶어 도서관 일꾼한테 여쭙니다. ‘어머, 학생은 그렇게 안 했어요?’ 도서관 일꾼은 근로장학생으로 이름 올린 학생치고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없어, 늘 그러려니 한다고 말합니다. 구내도서관 근로장학생 일은 석 달만 하고 그만둡니다. 그러고 나서 학교 구내서점에서 일합니다. 학교 구내서점에서는 일하는 티가 금세 드러나고, 일하는 보람을 스스로 뿌듯하게 느낍니다. 그렇지만, 나날이 ‘대학교가 참 싫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합니다.


.. ‘생각한다’는 건 다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야 … 그렇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일 뿐이지. 자기 스스로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생각하니, 이상이 현실로 될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 누구나 내면을 아름답게 가꿔 가야 해. 겉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면 말이지. 겉만 가꿔서는 안 돼. 전부 얼굴에 드러나니까. 이미 다 드러났는데도 눈치 채지 못하는 이는 바로 자기 자신뿐이야 … 사람들의 삶은 그들 자신이 하고 있는 말 그대로가 아닐까 … 살인을 저지르거나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게 자기한테 좋을 거라고 여기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러지는 않을 거야 … 나쁜 행귀가 결국은 자기한테도 나쁜 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서슴없이 나쁜 행위를 연달아 저지르게 되지 ..  (11, 104, 134, 151, 175, 176쪽)


  강의를 제대로 안 듣고, 강의 교재 말고는 스스로 다른 책을 찾아 읽지 않으며, 근로장학생 이름은 거짓으로 올리고, 시험을 치를 적에 훔쳐보기를 일삼는데다가, 화장과 술과 살섞기에만 마음을 기울이는 대학교는 몹시 짜증스럽다고 느낍니다. 대학생이 되면 고등학생 때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이 많이 책을 읽을 줄 알면서, 마음과 생각과 꿈과 슬기를 빛내야 하지 않겠느냐 느끼는데, 막상 이렇게 길을 걷는 동무를 만나기 힘듭니다. 선배라 하는 사람은 학년이 위라 하며 높임말을 쓰라고만 시킬 뿐, 모두들 취업이라는 문 앞에서 또다시 영어 공부에만 빠져듭니다. 대학생 선배 가운데 앞사람다운 모습이나 길잡이 같은 매무새나 이슬떨이 같은 넋을 보여주는 이를 만나지 못합니다.


  이제 나는 생각을 굳힙니다. 이런 대학교라면 비싼 돈을 치르며 다닐 까닭이 없다고.


  생각을 갈무리하고 싶어 일찌감치 군대에 들어갑니다. 군대에서는 스스로 아무 생각을 안 하며 살자고 생각합니다. 살아남고 싶으니까, 총칼을 든 살인무기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바보스러운 지식이 깃들지 않기를 바라니까, 군대에서는 생각을 잊기로 합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스스로 생각을 잊은 채 살아가노라니,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하나 끈이 끊어진 듯 갑갑합니다. 가슴이 꽉 막힌 채 무언가 좀처럼 이어지지 않습니다. 실타래가 엉킨 듯합니다.


  그래요. 생각을 잊은 채 살다 보니, 나한테 무엇보다 아름다우며 대수로운 ‘꿈’과 ‘사랑’을 찾아볼 수 없어요. 내 눈빛에서 꿈이 사라지고, 내 눈길에서 사랑이 스러져요. 생각을 안 하는 사람한테는 꿈이 없고, 생각을 잊는 사람한테는 사랑이 없어요.


..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바로 마음이 하는 거지. 그래서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는 건 그걸 만든 사람의 마음가짐,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이 ‘진짜인가 가짜인가’와 다르지 않아 … 누군가가 자기답게 자기 모습 그대로 있다는 사실에 반했다는 걸 가짜는 알지 못하지.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지 못해서 다른 사람 흉내를 내거나 인기몰이에만 신경 쓰게 되는 거야 … 우주 전체라는 게 어쩌면 사유하는 정신인 내가 그렇게 사유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 누군가 그릇된 사유를 한다면 그것 역시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거야 ..  (140, 141, 159, 203쪽)


  이케다 아키코 님이 쓴 푸른책 《열네 살의 철학》(민들레,2006)을 읽었습니다. 열네 살부터 열일곱 살 푸름이들이 생각밭을 키우도록 이끄는 책이라 하는데, 《열네 살의 철학》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청소년이 생각을 키우도록 하기’에 그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푸른 나날을 보낸 어른 가운데 푸르던 그무렵 생각을 못하던 이들한테 이제부터 즐겁게 생각을 빛내자 하는 이야기를 함께 들려줍니다. 푸른 나날을 보내고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낳으며 이 아이들이 푸름이가 된 사람한테도, 아이들한테만 읽히는 책이 아니라 푸름이를 돌보는 어버이 또한 나란히 읽으면서 오늘을 사랑하는 생각을 가다듬자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 자기한테도 타인한테도 좋은 것을 말하기 때문에 언론은 자유로워야 해. 자기한테도 타인한테도 좋은 건 누구한테나 옳은 말이야. 누구한테나 옳은 말을 하는 경우에는 그 말을 할 ‘내 자유’를 굳이 주장하지 않아도 돼. 곧, 사람은 옳은 말을 할 자유를 가지지, 옳지 않은 말을 할 자유를 갖고 있지 않아. 그래서 그런지 세상에서 보면 누군가 옳지 않은 말을 할 때면 꼭 ‘언론에는 자유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 건 내 자유다.’ 하고 주장하곤 해 … 느끼지 못하면 알았다고 할 수 없어. 머리로 알았을 뿐인 지식이나 어딘가에서 꾸어 온 지식 따위에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꿀 만한 힘이 담겨 있겠어 ..  (188, 221쪽)


  책을 꼭 읽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꼭 봐야 하지는 않습니다. 회사원이 반드시 되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돈을 반드시 벌거나, 혼인을 반드시 하거나,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하지는 않아요.


  다만,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러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이루려는 꿈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나누고픈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린이책은 왜 어린이책이라는 이름이 붙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책은 누가 읽으라는 책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푸른책은 누가 읽으면 좋을 책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을 쓰는 넋은 무엇이고, 책을 읽는 뜻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목숨을 건사하는 밥 한 그릇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햇살 한 조각을 생각하고, 바람 한 점을 생각하며, 풀 한 포기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하기에 살아갑니다. 생각하기에 사랑합니다. 생각하기에 꿈꿉니다. 생각하지 않기에 ‘몸뚱이는 어엿이 있어도 죽은 목숨’과 같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니 사랑은 메마르고 미움과 시샘과 헐뜯기와 비아냥이 춤춥니다. 생각하지 않는 만큼, 어떻게 내 삶을 빛낼까 하는 꿈은 어디에도 자라지 않아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생각으로 사랑합니다. 마음으로 온누리를 빛냅니다. 생각으로 지구별을 보살핍니다. 마음으로 내 몸을 살찌웁니다. 생각으로 내 이웃과 살붙이와 동무를 어깨동무합니다. (4345.6.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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