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왜 읽어야 할까

 


  둘째 아이는 일찍 일어난다. 매우 일찍 일어난다. 첫째 아이를 어떻게 돌보며 살았는가 더듬으면, 첫째 아이는 둘째보다 한 시간 반 즈음 더 일찍 일어났다. 첫째 아이와 살던 곳은 인천 골목집이었고, 이때에는 내가 새벽에 일어나 셈틀을 켜고 글을 쓸라치면 셈틀 불빛이 방 한쪽을 비추어 아이가 일찍 깰밖에 없었으리라 느낀다. 둘째를 낳고 살아가는 시골집은 자그맣지만 칸이 알맞게 나뉘었기에, 옆방에서 셈틀을 켜면 불빛이 조금만 샌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법이라 하지 않는가. 게다가, 일찍 일어나는 둘째는 아주 고맙게 새벽 여섯 시 반이든 아침 일곱 시나 일곱 시 반이든 똥을 한 차례 푸지게 눈다. 이러고 나서 두 시간쯤 뒤 거듭 똥을 푸지게 눈다. 아이 둘과 살아가며 다섯 해째 아침마다 아이들 똥치우기를 하고 똥빨래를 하면서 보낸다. 내 손은 똥을 치우고 빨래하는 손이요, 이 똥내 나는 손으로 글을 쓴다.


  어제 홀로 순천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녀왔다. 두 아이를 데리고 가려 했으나 옆지기가 둘 다 놓고 가라 했다. 첫째 아이라도 데려가 책방 아이하고 놀게 해도 좋으리라 생각했지만, 두 아이를 떼어놓지 말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첫째 아이를 데려가고 싶었으나, 아침부터 밥을 안 먹고 개구지게 놀며 낮밥조차 제대로 안 먹으려 해서, 집에서 밥을 먹으라 하고 혼자 나왔다. 이리하여 나는 고흥버스역부터 시외버스를 거쳐 책방에 닿고, 다시 시외버스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버스역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책 한 권을 읽고, 시외버스로 나가는 길에 책 한 권을 읽으며,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책 한 권을 읽는다. 헌책방에서는 책을 백 권 이백 권 삼백 권 …… 남짓 살피다가는 예순 권 즈음 장만했다.


  아이 둘을 떼어놓고 혼자 나들이를 한 적이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들과 다니면 아이들 바라보고 챙기느라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다. 아이들과 버스를 타고 돌아다닐 때에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아이 오줌기저귀를 갈고 똥바지를 빨며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아이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책을 손에 쥘 수 없다. 내 손에 빗자루를 들 때에 책을 나란히 들 수 없다. 이불을 털고 말리면서 책을 손에 쥐지 못한다. 아이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 몇 장 겨우 찍지만, 책을 펼치지 못한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그림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을 한 권이나마 기쁘게 펼칠 수 있었을까. 첫째 아이를 불러, 또는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혀, 그림책을 펼친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혀 준다고 말하지만, 막상 내가 읽고 싶으니까 그림책을 장만해서 아이들한테 읽힌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그림책 하나 골라서 읽기도 한다. 나는 나대로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찬찬히 넘기며 즐긴다.


  그림책을 덮고 아이가 눈 오줌을 치운다. 빨래를 걷고 갠다.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이랑 살을 부비며 논다. 사람들은 책을 왜 읽어야 할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책을 읽어서 무엇이 어떻게 좋아질까 헤아려 본다. 사람들은 책을 보배로 여기는가, 재산으로 삼는가, 자랑거리로 드러내는가, 좋은 벗으로 사귀는가, 반가운 스승으로 모시는가, 재미난 이야기로 느끼는가, 한 번 읽고 덮으면 끝이라 생각하는가.


  책을 책답게 사랑할 수 있으면, 이웃을 이웃답게 사랑할 수 있겠지. 그런데, 사람들이 먹는 쌀은 누가 지었을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을 때에 누구한테 표를 준 흙일꾼’이 지은 쌀을 ‘어떤 성향과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사다가 먹는가. 능금 한 알을 사다 먹는 사람 가운데 이 대목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숲길을 거닐며 나무 한 그루 누가 심었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마른오징어를 뜯어먹으며, 이 오징어를 손질한 사람 정치빛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며 전철을 타면서, 이 탈거리를 모는 일꾼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하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까.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이 아이가 앞으로 왼쪽이 될는지 오른쪽이 될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젖을 먹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정치를 하건 문학을 하건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즐겁게 걸어갈 뿐이다. 책은 무엇이고, 책에 담는 생각은 무엇이며, 책으로 빚는 글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책을 왜 읽어야 하고, 책을 읽는 사람은 무엇을 얻으면서 삶을 누리는가.


  두 아이가 서로 얼크러지며 논다. 한놈이 이리 달리면 한놈이 이리 좇는다. 한놈이 이리 뒹굴면 한놈이 이리 뒹군다. 한놈이 흙을 파헤치며 까르르 웃으면 한놈 또한 흙을 파헤치며 깍깍 웃는다. 가장 좋은 책은 내 곁에 있다. 가장 사랑스러운 책은 내 가슴에 품으면서 산다. (4345.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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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quoi28 2012-06-13 20:00   좋아요 0 | URL
어릴 때
책 읽어주는 사람 없이 자랐지요
어른이 되어서
내 아이한테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되었지요
지금은 학교에서 故事媽媽 되어
남의 아이들에게 ppt로 책 읽어주고 있어요
그건, 제가 그림책을 좋아하니까 즐겁게 보여주죠^^

파란놀 2012-06-13 20:07   좋아요 0 | URL
종이로 된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은 없었을는지 모르나,
삶으로 사랑을 들려준 분들은 많았으리라 믿어요.
이 힘이 있기에 오늘처럼 살아갈 수 있겠지요..
 

사진찍기
― 아이들은 어떤 이웃인가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감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글감이 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그림감이 있듯, 사진을 찍는 사람은 스스로 온 사랑과 믿음과 꿈을 담는 사진감이 있습니다.


  내 사진감은 ‘헌책방’입니다. 나는 1999년부터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헌책방을 처음 다닌 때는 1992년인데, 1998년 봄과 여름에 비로소 사진을 배우고서는 가끔 헌책방 언저리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다가, 1999년이 되어 내 삶을 들일 내 사진감은 헌책방으로 삼을 때에 가장 즐겁다고 깨달았습니다. 여섯 달 즈음 이곳도 찍고 저것도 찍으며 어느 사진감을 붙잡아야 할까 하고 살폈는데, 막상 나한테 가장 즐거운데다가 사랑스러운 사진감은 가장 가까이 있는 줄 뒤늦게 알아차렸어요.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도 내 사진감은 늘 헌책방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헌책방을 찾아갈 일은 아주 드물어, 몇 달에 한 번 나들이를 할까 말까 싶습니다. 그래도 나로서는 내 사진감이 헌책방이라 말합니다. 어제 모처럼 헌책방마실을 하며 사진기 두 대를 기쁘게 챙깁니다. 헌책방에 닿아 홀가분하게 책을 살피며 사진을 찍습니다. 오랜만에 왔으니 신나게 찍자고 생각하려는데, 사진기 단추를 얼마 안 누릅니다. 자주 다니며 자주 찍으면 나로서도 내 사진감을 한껏 북돋운다 할 텐데, 뜸하게 다니며 몇 장 못 찍으면 내 사진감을 이래저래 북돋우기 어렵다 할 텐데, 이 모습 저 모습 닥치는 대로 찍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시골집에서는 언제나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들과 마을 곳곳을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어느 결에 ‘아이들’이 내 새 사진감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아주 저절로 ‘골목길’이 내 새삼스러운 사진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을 때를 돌이키고, 골목길을 사진으로 옮길 적을 헤아립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을 내 가장 좋은 사랑을 기울여 사진으로 빚습니다. 아이들 사진을 함부로 찍지 못합니다. 우리 집 아이라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찍을 수 없습니다. 더 살피고 더 헤아리며 더 아끼는 손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내 보금자리 깃들던 골목동네 또한 이 삶터를 사랑하며 좋아하는 눈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길을 추억이나 개발이나 소외나 변두리 같은 이름표를 붙이며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내 꿈을 즐겁게 이루는 좋은 벗으로 여기는 사진감입니다.


  문득 아이를 바라봅니다. 시골마을 어디에나 흔하게 피고 지는 들꽃을 한손 가득 꺾어 손에 쥐고 놉니다. 다섯 살 아이는 묻습니다. “나는 왜 꽃을 좋아해요?” 이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에는 어떤 말을 물을까 궁금합니다. 열다섯 살이 되고 스물다섯 살이 되면 또 어떤 말을 물을까 궁금합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는 늘 아이 곁에서 아이를 사랑스레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다면, 걱정할 일도 근심할 까닭도 없겠지요. 나는 늘 내 가장 빛나는 사랑으로 우리 집 빛나는 아이 삶빛을 사진으로 옮길 테고, 드문드문 헌책방마실을 하더라도 내 가장 반가운 웃음으로 내 더없이 아름다운 헌책방 책시렁을 사진으로 아로새길 테지요. (4345.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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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quoi28 2012-06-1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어여쁩니다~
맑고 밝고 따스한 기운이 저에게로 스며듭니다..^^

파란놀 2012-06-13 23:23   좋아요 0 | URL
모든 아이들은 모두 어여쁜데,
너무 많은 어버이들은
이녁 아이들이 얼마나 어여쁜 줄을 잘 모르는 듯해요.
가만히 바라보면
날마다 얼마나 놀라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데요...
 


 가뭄 책읽기

 


  순천에 있는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녀오는 길, 시골마을로 들어가는 저녁버스는 벌써 끊겼기 때문에 택시를 불러서 탄다. 택시 일꾼이 튼 라디오에서는 요즈음 가뭄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보령과 홍성 언저리 어디메에서는 사천 억원이나 들여 농업용수 댈 시설을 짓는다 하더니 몇 해가 지나도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보령에 지은 화력발전소가 물을 얼마나 쓰고, 이 화력발전소가 보령뿐 아니라 둘레 충청남도를 얼마나 망가뜨리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벙긋하지 못한다. 충청도에 숱하게 많은 공장과 골프장이 이 가뭄에도 물을 얼마나 펑펑 쓰는가 하는 이야기는 조금도 읊지 않는다.


  시골택시는 금세 우리 마을에 닿는다. 나는 내린다. 책으로 꽉 차 무거운 가방을 어기적어기적 메고 논 사잇길을 지나 대문을 연다. 고즈넉한 우리 마을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만 가득하다. 논 사이사이 도랑을 흐르는 물줄기를 내려다본다. 지난가을부터 올여름까지 이 도랑 물줄기가 끊긴 일을 본 적 없다. 우리 마을도 이웃 마을도 이웃에 이웃한 마을도 논물이나 밭물이 모자라다고 한 적이 없다고 느낀다. 지난겨울에 비나 눈이 하도 안 와서 마늘이 걱정스러웠다는 말이 몇 차례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 걱정할 무렵에는 으레 비가 내려 주었다. 외려 비가 너무 잦아 마늘이 걱정스럽다는 말까지 나왔다.


  전남 고흥에는 크고작은 못이 매우 많다. 마을마다 못이 어김없이 있다. 이렇게 못이 많은 시골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구들 다 함께 고흥으로 들어오고 나서 헌책방에서 ‘고흥을 이야기하는 묵은 책’을 틈틈이 찾아서 살피는데, 고흥은 먼먼 옛날에는 물이 모자라고 드문 고장이라고들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제 고흥에서 물이 모자라다는 말은 아무도 안 한다.


  깊은 밤을 지나고 하얗게 밝는 새벽녘, 어린 제비들 날갯짓 익히느라 마당에서 부산을 떨며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1980년대까지 고흥은 20만 안팎 살았다. 모두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았다. 1970년대에도 이만 한 숫자였고, 1950∼60년대에는 이보다 좀 적기는 하더라도 얼추 이럭저럭 되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고 2000년대로 접어들며 10만으로 줄더니, 2010년대에는 7만조차 안 된다. 앞으로는 훨씬 더 줄어들리라.


  고흥처럼 외진 시골마을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도시로 떠난다. 도시로 한 번 떠난 아이들은 좀처럼 시골로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대학교를 다닌다는 핑계와 일자리를 찾았다는 까닭을 들며 모두 도시에서 문명과 물질을 누리느라 바쁘다. 돈을 벌어 돈을 쓰느라 바지런을 떤다.


  고흥에는 골프장이 없다. 고흥에는 변변한 공장 하나 없다. 포스코에서 포항제철과 광양제철 전기를 댈 발전소를 짓는다며 고흥을 들쑤시기는 하나, 고흥은 온통 흙과 바다에 기대는 시골인 터라 발전소하고도 동떨어지고, 어떤 개발이나 관광하고도 멀찍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고흥에서 먹는샘물 파겠다며 땅속에다가 구멍을 크게 뚫는 일도 없다.


  도시사람은 제주섬에다 구멍을 큼직하게 뚫고는 ‘제주 삼다수’를 아주 싼값으로 사다 마신다. 도시사람은 제주섬 곳곳에 골프장을 만들고는 농약과 물을 아주 어마어마하게 쓴다. 도시사람은 제주섬으로 나들이를 다니며 호텔이나 여관에서 물을 아주 펑펑 쓴다. 제주섬은 예부터 물이 드물며 물을 몹시 아끼는 곳이라 했지만, 오늘날 제주섬에서 물을 아끼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오랜 붙박이 흙일꾼 말고 제주섬에서 물을 누가 아낄까.


  깊은 밤이 되어도 깜깜하기만 한 시골 고흥에서는 전기 쓸 일이 매우 드물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냉각기’를 써야 하기에 물을 엄청나게 써댄다. 물건을 만들어 도시로 보내는 공장은 물을 어마어마하게 써댄다. 도시사람이 운동 삼아 다닌다는 골프장은 물을 억수로 써댄다. 숲과 멧자락을 밀어 마련하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와 아파트는 이 둘레를 메마른 벌판으로 바꾼다.


  곧, 가뭄이 든다 하면, 온통 도시 때문이다. 도시사람이 쓸 물건을 만드느라, 도시사람이 쉰다는 골프장을 건사하느라, 도시사람이 ‘깨끗한 물을 값싸게 사다 마시’도록 시골 한복판에 구멍을 뚫어 물을 퍼내느라, 도시사람이 자가용과 버스와 전철을 타고 돌아다니느라, 여기에 시골로 관광 다니는 사람들이 호텔이나 여관에서 물을 펑펑 써대느라, 시골에 가뭄이 들밖에 없다. 또 하나, 도시사람은 시골사람이 흙에서 거둔 곡식이나 ‘시골에서 키우는 고기짐승’을 돈을 치러 사다 먹는다. 곡식이든 짐승이든 물을 먹어야 자란다. 도시사람이 여느 살림집에서 수도꼭지를 더 튼다 해서 물을 더 흘리지 않는다. 도시라는 얼거리가 온 나라를 가뭄이 들게 할 뿐 아니라, 어느 시골마을은 아주 끔찍하게 메마른 땅이 되도록 내몰고 만다.


  가뭄이라 한다. 그러면, 도시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가뭄을 그으려면 도시사람은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신문에 글을 싣고 방송에서 말을 보태면 가뭄을 적실 수 있을까? 바보스러운 공무원을 탓하고,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면 가뭄이 사라질 수 있을까? (4345.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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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quoi28 2012-06-13 19:21   좋아요 0 | URL
도시사람으로
무지해서 저지른 악행들을 뉘우칩니다.
생각없고 어리석고 부끄럽고 뻔뻔했음을...

파란놀 2012-06-13 19:49   좋아요 0 | URL
에구... '나쁜 짓'을 뉘우칠 까닭은 아무한테도 없어요.
무엇이냐 하면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운가'를 생각해야 해요.
내가 참말 즐겁게 살아가면서
내 이웃도 즐거이 어깨동무하며 웃는 삶인가를
찬찬히 돌아볼 수 있으면 돼요.

이런 삶은 '뉘우침'도 '자아비판'도 아니에요.
좋은 꿈과 사랑을 나눌 길을
스스로 내 삶에서 빛내자는 소리예요 ....

pourquoi28 2012-06-13 20:2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는 먼저 뉘우쳐야 해요.
된장 님의 글과 사진을 읽거나 보고 있으면
저의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가짜를 벗겨내고
진짜만을 내 안에 담아내는 모습에서 느낌이 많아요
 


 시외버스

 


  이리저리 흔들리던 시외버스인데, 갑자기 흔들림이 줄어든다. 순천에서 고흥으로 들어가는 저녁 일곱 시 반 시외버스에는 모두 다섯 사람이 탔는데, 저녁 여덟 시 즈음 되어도 아직 훤한 햇살이 버스 창가로 스며드는 이즈음, 시외버스 모는 일꾼이 등불을 켠다. 시외버스 안이 더 환하게 밝아진다. 아, 시외버스 일꾼인 아저씨는 당신 아들(또는 막내동생)과 같은 아저씨인 내가 시외버스 창가에 앉아 저녁빛에 기대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을 뒷거울로 보고는 내 눈이 다칠까 근심하셨는가 보다(나는 마흔에 가까운 아저씨이고, 시외버스 일꾼은 예순에 가까운 아저씨이다). 고마운 손길, 고마운 마음, 고마운 생각이 천천히 감돈다. 나는 그만 볼펜을 내려놓고 책은 무릎에 올려놓은 채 머리를 걸상에 폭 기댄다. 살작 눈을 감고 쉬기로 한다. 그러나 이윽고 눈을 뜨고 다시 책을 읽는다. 조용히 알맞게 달리는 시외버스 밝은 불빛에 기대어 시집 한 권을 즐겁게 읽는다. (4345.6.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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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34 : 붉게 상기

 


자신들의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 바라보던 세 사람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기까지 했다
《최수연-산동네 공부방》(책으로여는세상,2009) 165쪽

 

  “자신(自身)들의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는 “제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나 “저희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로 손보면 됩니다. 보기글에서는 글쓴이가 나이가 위인 어른들을 가리키기에, 이럴 때에는 “아주머니들이 손수 이름을 써 넣고”나 “아주머니들이 스스로 이름을 써 놓고”나 “아주머니들이 당신 손으로 이름을 써 넣고”처럼 손보면 한결 나아요. “세 사람의 얼굴”은 “세 사람 얼굴은”이나 “세 분 얼굴은”으로 손질합니다.


  그나저나 이 글월에서는 “붉게 상기되기까지”가 얄궂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말 ‘상기(上氣)’는 “흥분이나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짐”을 뜻하거든요. “얼굴이 붉어짐”을 뜻하는 한자말 ‘상기’인 만큼 “붉게 상기되기까지”로 적으면 “붉게 얼굴이 붉어지기까지”라 말하는 꼴이에요.

 

 얼굴은 붉게 상기되기까지
→ 얼굴은 붉어지기까지
→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기까지
→ 얼굴은 붉은 빛이 되기까지
 …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상기’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그녀는 황급히 오느라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하고 “목소리와는 달리 붉게 상기돼 있었다” 같은 보기글이 나란히 실려요. 국어사전 보기글조차 얄궂게 겹말로 적은 꼴이에요. 더욱이, “목소리와는 달리 붉게 상기돼 있었다”라는 보기글은 소설쓰는 황순원 님 작품에서 따서 실었다고 해요. 소설쓰는 분마저 ‘상기’라는 한자말 뜻과 쓰임을 제대로 모르던 셈이에요.


  앞으로 이 국어사전 보기글은 바로잡힐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이 국어사전을 들출 한국사람은 이 국어사전 보기글 또한 얄궂게 뒤틀린 줄 깨달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한국사람 스스로 ‘상기’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살피며 뜻과 쓰임을 헤아리려 할까 궁금합니다. 애써 이 낱말 뜻과 쓰임을 헤아리려고 국어사전을 뒤적이면서,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가다듬으려는 넋을 북돋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얼굴은 붉어집니다. 얼굴은 달아오릅니다. 얼굴은 홍당무가 됩니다. 얼굴에 붉은 꽃이 핍니다. 얼굴에 발갛게 노을이 듭니다. 얼굴은 노을빛으로 젖습니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합니다. 마음을 쓰고 마음을 씁니다. 사랑스럽게 나눌 말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주고받을 말을 가만가만 돌아봅니다. 내 마음은 아름답게 여밀 수 있습니다. 내 넋은 해말갛게 빛낼 수 있습니다. 내 이야기 싣는 글 한 줄은 고운 노랫가락처럼 울려퍼질 수 있습니다. (4345.6.12.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세 아주머니는 당신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 바라보다가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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