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바라는 책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 읽으라 했기에 읽을 수도 있는데, 누군가 이녁더러 이런 책을 읽으라 말했기에 읽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읽을 만하리라 여기니까 읽지, 억지스레 읽지는 않습니다. 교도소에서 꼭 읽으라며 내민 책이기에 하는 수 없이 읽는다 하더라도, 교도소에서 살아남자는 뜻으로 읽는다면, 이러한 뜻 또한 스스로 바라는 넋입니다.


  남이 시켜서 할 수 있는 내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내가 바라서 하는 일입니다. 글쓰기도 글읽기도 스스로 마음으로 우러나와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오지 않을 때에는 글 한 줄 못 쓰고 글 한 줄 못 읽습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와 배가 고프다 느끼기에 밥술을 듭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오지 않으면 어떠한 밥상 앞에서도 꼼짝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삶을 읽는 사람입니다. 더 좋은 삶을 읽을 수 있으나, 더 나쁜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영부영 삶을 흘리면서 어영부영 아무 책이나 함부로 읽기도 할 테고, 다부지게 삶을 아끼면서 어느 책이든 알차게 받아들이거나 살피기도 합니다. 곧, 스스로 삶을 어떻게 아끼려 하는가에 따라 책읽기가 달라집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만큼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살피며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또한 제대로 안 살피고 제대로 안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책이 될 글을 쓰는 사람은 삶을 쓰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아끼고 좋아하며 빛내고픈 삶을 글로 씁니다. 책쓰기란 언제나 삶쓰기일밖에 없습니다. 아름답다 느낄 만한 삶이든 엉터리로구나 하고 느낄 만한 삶이든, 어떠한 글이든 삶을 담는 글이 됩니다.


  책을 읽으며 내 이웃이 어떠한 삶을 어떠한 넋으로 일구는가 하고 들여다봅니다. 글을 쓰며 나 스스로 오늘 하루를 어떠한 꿈으로 누렸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어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나는 사랑을 꿈으로 이루고 싶어 글을 쓰며 책을 읽습니다. 나는 사랑을 맑은 빛으로 보살피고 싶어 글을 쓰는 한편 책을 읽습니다. 좋은 삶을 좋은 넋으로 누리고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좋은 말마디에 실어 글로 빛내고 싶습니다.


  이른새벽부터 노래하는 제비들은 여름비 내리는 들판을 마음껏 날아다닙니다. 비오는 날 먹이를 찾느라 훨씬 부산스럽게 다녀야 할 테지요. 나는 이른새벽에 뒷간에서 똥을 누며 제비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뒷간에 앉아 한손에는 책을 들어 펼치면서도 한귀로는 제비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가 쓰는 글은 아무나 읽을 수 없다고 문득 깨닫습니다. 아니, 내 글은 아무한테나 읽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한테만 내 글을 읽히고 싶습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싶은 삶을 어떻게 느끼며 어떻게 돌볼 때에 흐뭇할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한테만 내 글을 읽히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고맙게 맞이하면서 즐거이 누리고 예쁘게 마무리하고픈 꿈을 키우는 사람한테만 내 글을 읽히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얻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내 글에 지식이나 정보를 담고프지 않습니다. 내 글을 읽을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깜냥과 슬기를 북돋아 이녁 삶을 곱게 살찌울 수 있기를 빕니다. 내 글 담긴 책을 장만하여 읽을 사람들 누구나 이녁 스스로 이녁 보금자리를 곱다시 돌보면서 온 하루 흐드러지게 밝힐 수 있기를 빕니다. 이루고 싶은 꿈을 꾸면서, 나누고 싶은 사랑을 생각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5.6.18.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샤먼시스터즈 5
쿠마쿠라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무엇을 느낄 때에 웃으며 즐거울까
 [만화책 즐겨읽기 132] 쿠마쿠라 다카토시, 《샤먼 시스터즈 (5)》

 


  아침저녁으로 좋다고 느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는 하루라 한다면, 내 넋은 언제나 좋은 결로 보드랍습니다.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물소리도 모두 좋은 소리로 맞아들이면서 기쁜 노래잔치라 여깁니다. 이때에는 내 말소리 또한 노랫소리처럼 곱게 울릴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듣는 소리를 좋다고 느끼지 못할 때에는 내 마음이 말라붙습니다. 어느 때에는 골이 아프고, 어느 때에는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를테면, 끽끽 붕붕 소리 시끄럽게 울리는 자동차나 기차나 버스가 밤새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살아야 한다면, 느긋하게 잠들지 못하고 한갓지게 쉬지 못합니다. 이른바,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알쏭달쏭합니다. 자동차도 전철도 버스도 밤새 끝없이 달리는데, 이런 데에서 누가 어떤 삶을 살가이 일굴 만할까요. 들판에서 자라는 나무와 벼와 푸성귀 또한 고속도로나 기찻길 옆에서는 제대로 못 자라는걸요.


  그러고 보면, 송전탑이 선 들판에서도 벼는 힘을 잃습니다. 우람한 송전탑은 사람들 살아가는 집 둘레에 세우지 않습니다. 송전탑 전자파가 몹시 나쁘니까 사람들 살림집 둘레에는 안 세운다 할 텐데, 사람들이 먹는 벼가 자라는 들판 옆에는 어떻게 송전탑을 세울 수 있을까요. 사람들 살림집 곁에 고속철도나 고속도로를 내려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먹는 벼와 열매와 푸성귀가 자라는 들판 옆으로 고속철도나 고속도로를 낼 수 있을까요.


- “다음엔 그 공장 뒤까지 가 볼까. 그 부근엔 아직 가 본 적이 없으니까. 필름이 더 있어야겠네.” (19쪽)
- “그 카메라 한동안 빌려 주마.” “정말요?” “난 별로 안 쓰니까. 필름은 네가 사려무나.” “가지가 나무가 되기도 하겠지.” (36쪽)
- “카메라 담당 힘들겠다.” “아냐. 도움이 되는 거 같아서 즐거워. 수학여행 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뻐! 나, 여럿이 여행하는 거 처음이거든.” (115쪽)
- “너 정말 뻔뻔하다. 우리 사진 다 망쳐 놓고서. 지금부터 다시 찍자고?” “시, 시끄러워.” “찍자.” (150쪽)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뿐 아니라, 공항 또한 사람들한테 덧없으리라 느낍니다. 이런 찻길, 저런 기찻길, 그런 하늘길이 없이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오가며 살겠느냐고 따질는지 모르는데, 참말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가 없으면 서로서로 만나러 오갈 수 없을까요. 참말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움직여야만 서로서로 만나러 오갈 수 있을까요.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더 빨리 더 한갓지게 더 짐을 싣고 다닐 만하기에, 이 지구별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더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드나드는가요.


- ‘안 되겠다, 나. 중요한 일은 잊어버리고. 아무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긴 하지만.’ (24쪽)
- “미즈키. 이런 지팡이, 언젠가는 썩는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때 넌 어떻게 할 테냐?” (32쪽)


  1950년 언저리에 한국땅에서 크나큰 전쟁이 터진 적 있습니다. 이무렵, 모든 초·중·고등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모든 학교는 문을 닫으면서, 모든 학교는 ‘군대 건물과 막사’가 되었습니다. 학교 교실은 군인 간부들 회의실이 되고, 운동장은 병사들 천막을 치는 막사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공항은 전투기와 폭격기가 드나드는 자리가 됩니다. 전쟁이 터지면 항구는 구축함이나 잠수함 같은 ‘무기 실은 배’가 드나드는 자리가 됩니다. 전쟁이 터지면 철길은 무기와 자원을 실어 나르는 길이 됩니다. 전쟁이 터지면 모든 찻길은 군대 짐차와 전차가 드나드는 길이 됩니다.


  전쟁이 터지면 모든 옷공장은 군인옷을 짓습니다. 모든 다른 공장도 군대에서 쓸 물건을 만듭니다. 총을 만들고 총알을 만듭니다. 여느 사람들이 쓸 물건은 공장에서 만들지 못하기도 하지만, 만들 수도 없습니다. 낫이나 쟁기나 호미를 만든다 하면 중앙정부에서 큰소리로 나무라겠지요. 낫이나 쟁기나 호미를 들고 들판에 나간다 하면 군인들은 큰소리로 꾸짖겠지요. 연필을 들고 아름다운 사랑을 시로 짓는다든지, 아름다운 삶터를 그림으로 옮긴다 하면, 정부 공무원이나 군인들은 코웃음을 치며 무슨 짓을 하느냐고 깔보겠지요.


  온통 전쟁통인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합니다. 전쟁통인 나라에서는 겨우 학교를 다니더라도 아이들은 전쟁놀이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서로를 죽이면서 나도 죽는 전쟁인 줄 아직 살갗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다리가 잘리고 머리에 구멍이 나야 비로소, 아아 전쟁이었구나, 하고 깨닫다가 숨을 거둡니다. 깨달을 만하면 모두 죽습니다.


  온통 전쟁투성이인 곳에서는 젊은 사내도 전쟁터로 끌려가고 젊은 가시내도 전쟁터에서 몸을 팔아야 합니다. 온통 전쟁판인 데에서는 웃음꽃이 피지 못합니다. 그예 눈물바다입니다. 내가 너를 죽여도 눈물바다요, 네가 나를 죽여도 눈물바다예요. 이쪽에서든 저쪽에서든 모두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총알과 미사일이 넘나드는 지구별은 아니라 할는지 모르나, 이 지구별은 우리 눈에만 잘 안 보인다 할 뿐, 수없이 온갖 총알과 미사일이 넘나드는 싸움별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믿으며 서로를 아끼는 길이 아니라, 서로서로 돈과 이름과 힘을 홀로 거머쥐려 하는 싸움누리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왜 대학교에 계급이 붙을까요. 왜 일자리마다 일삯이 다를까요. 왜 시골에서는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써서 흙을 일구어야 할까요. 왜 고등학교는 사람됨을 못 가르치고 입시문제만 집어넣을까요. 왜 어른들은 아이들과 사랑스러운 나날을 누리지 못하면서, 그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교에 집어넣은 채, 하루 내내 돈벌이에만 마음과 몸을 빼앗겨야 할까요. 왜 영어에 그토록 목매달아야 하나요. 왜 텔레비전을 쳐다보며 웃고 울어야 하나요. 왜 도시에는 숲이 없을까요. 왜 국립공원에까지 굴을 뚫고 케이블카를 놓을 뿐 아니라, 국립공원 한복판에 화력발전소를 짓겠다며 밀어붙이기까지 할까요(포스코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인 고흥 바닷가에 화력발전소를 지으려 합니다).


- “바보구나.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져.” (54쪽)
- “레이코. 레이코가 아픈 원인은 집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닐까?” “시즈루?”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지금은 신경쓰지 않는 게 좋아. 그리고 혹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좋아.” (95쪽)


  사람들은 무엇을 느낄 때에 웃으며 즐거울까 아리송합니다. 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때에 웃고, 어느 때에 즐거운지 알쏭달쏭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께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1등을 거머쥐거나 우등상을 타야 웃습니까. 아이들이 2등을 하거나 10등을 하거나 막등을 하면 찡그리거나 웁니까. 회사에 나가 일하는 어른들께서는 어느 때에 웃고, 어느 때에 즐거운지 궁금합니다. 월급봉투가 두툼해야 웃습니까. 회사에서 계급이 높아져야 즐겁습니까.


- “우리는 쓸데없는 것까지 너무 느끼지. 그래서 녀석들이 들러붙는 거다. 남을 먹어버릴 만큼 비정해지거나 뻔뻔해지면 괜찮아.” “그 방법밖엔 없는 건가요?” “난 늘 그렇게 해 왔다. 자신이 찾는 거다. 혹시 너는 다른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지.” (134∼135쪽)
- “앗! 어째서 또?” “말했지. 내가 있는 곳에 네가 있는 거라고. 네가 접근하는 거야. …… 실망스럽겠구나.” “네에.” “하지만, 와서 즐거운 일도 많이 있었잖아? 친구들과 함께 보낸 많은 시간들. 사진은 유감이지만, 그것보다 소중한 것을 얻었잖아. 넌 오길 잘한 게야.” (141쪽)


  쿠마쿠라 다카토시 님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2006) 다섯째 권을 읽으며 오래도록 생각에 잠깁니다. 이웃사람을 살피기 앞서 언제나 내 삶을 살필 노릇인데, 왜 우리들은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기보다 ‘돈을 버는 삶’을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삶, 기쁜 웃음, 맑은 밥, 고마운 하루, 예쁜 이야기, 멋진 숲, 훌륭한 냇물, 따스한 보금자리, 넉넉한 마음씨, 고운 꿈, 밝은 사랑, 보드라운 손길, 그윽한 눈길, 씩씩한 가슴, 착한 말, 참된 글, …… 들을 아낄 때에 웃고 즐거울 만하지 않겠느냐 싶어요.


  나는 아침저녁으로 우리 시골마을 들소리와 멧소리와 하늘소리와 물소리를 맞아들으며 즐겁습니다. 아이들 소리와 옆지기 소리를 들으며 즐겁습니다. 나 또한 좋은 소리로 우리 살붙이를 얼싸안고 싶습니다. 나부터 내 작은 시골집에서 작은 땅뙈기 아끼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를 누리며 좋은 웃음으로 신나게 누리고 싶습니다. (4345.6.18.달.ㅎㄲㅅㄱ)

 


― 샤먼 시스터즈 5 (쿠마쿠라 다카토시 글·그림,대원씨아이 펴냄,2006.5.15./38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골 자전거 책읽기

 


  시골 할아버지들이 경운기를 몹니다. 짐차를 모는 할아버지가 더러 있으나 으레 경운기를 몹니다. 경운기가 나오기 앞서, 시골 할배나 아저씨는 으레 소를 몰았습니다. 누구라도 으레 소를 몰며 들판으로 나가 들일을 했는데, 어느 무렵부터 자전거가 나타나 한 사람 두 사람 자전거를 장만해 자전거에 삽을 꽂고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자전거라는 탈거리 다음으로 오토바이가 나오고, 오토바이와 함께 자동차가 나옵니다. 짐을 싣는다든지 더 멀리 나간다든지 할 적에는 자동차가 퍽 좋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지구자원이 말라붙는다는 소리가 높은 오늘날까지도 지구자원을 갉아먹는 자동차만 끝없이 나옵니다. 새로 나오는 번쩍거리는 자동차조차 지구자원을 갉아먹는 자동차일 뿐입니다. 지구별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자동차는 만나기 너무 힘듭니다. 지구별을 갉아먹으면서 겉멋을 뽐내는 자동차만 넘칩니다. 자동차는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온통 나쁜 것투성이입니다. 내 다리와 내 몸이 덜 힘들게 해 준다고 하지만, 막상 자동차가 한 번 지나가면 끔찍한 배기가스가 피어나 내 몸을 망가뜨립니다. 자동차를 만든다며 공장을 돌리느라 내 삶터 물과 바람과 햇살을 더럽힙니다. 자동차 다닐 찻길을 닦는다며 숲을 밀고 들을 밀며 냇물까지 밀어냅니다. 자동차에 넣을 기름을 뽑느라 지구별 곳곳에 구멍이 뚫릴 뿐 아니라, 바다에서 석유를 캐내느라 바다는 아주 지저분해집니다. 캐내거나 뽑아낸 석유를 배로 실어나르느라 커다란 기름배를 만든다며 또 물과 바람과 햇살이 어지러워지고, 커다란 기름배는 기름을 태워 움직일 뿐더러, 참 자주 기름을 바다에 흘립니다. 기름배가 싣고 온 기름, 그러니까 석유는 자동차에 곧바로 집어넣지 못합니다. 정유공장이라는 데에서 다시 기름을 태워 ‘자동차에 넣을 만한 기름’으로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동안 새삼스레 물과 바람과 햇살은 자꾸자꾸 무너집니다. 다 만든 ‘자동차에 넣을 기름’은 또다시 기름을 태워야 굴러가는 커다란 짐차에 실려 온 나라 기름집에 보내고, 온 나라 기름집은 거듭 새삼스레 ‘기름을 태워 얻은 전기’로 불을 환하게 밝히면서 기름을 팝니다.


  여느 사람이 여느 살림을 꾸리며 모는 자동차에 넣는 기름 한 방울은 그냥 기름 한 방울이 아닙니다. 여느 사람이 여느 마을에서 여느 자동차를 몰며 쓰는 기름 한 방울은 그냥 기름 한 방울이 아닙니다. 자동차공장에서도, 기름집에서도, 기름 나르는 짐차에서도, 기름 나르던 짐배에서도, 정유공장에서도, 석유 캐는 나라에서도, 석유 캐는 나라에서 쓰는 기계에서도, …… 그야말로 끝없이 기름을 쓰고 또 쓰는 얼거리가 이어집니다.


  하나하나 돌이켜, 여느 마을 여느 살림집 여느 사람으로서 자동차를 안 몬다면, 자동차를 몰더라도 기름이 아니라 햇볕을 먹거나 물을 먹거나 바람을 먹으며 달리는 자동차를 몬다면, 모든 어지럽고 슬프며 지저분한 굴레를 걷을 수 있겠지요.


  시골마을 흙일꾼 할아버지가 삽 한 자루 자전거에 꽂고는 들판으로 들일을 하러 나옵니다. 자전거는 할아버지 걸음만큼 느립니다. 자전거는 시골 들바람을 시원스레 맞으며 천천히 달립니다. 삽자루 자전거가 달리는 시골 들바람은 맑고 상큼합니다. (4345.6.18.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으로 보는 눈 184 : 전남 고흥에서 띄우는 편지

 


  이웃집 할아버지가 맨발로 경운기를 몹니다. 경운기를 길가에 대고는 길가에 펼쳐 말리던 마늘을 그러모아 그물주머니에 담습니다. 네 식구 천천히 거닐며 마실을 하는데, 이웃집 할아버지가 부릅니다. 이웃집 할아버지는 당신 딸아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니 당신 딸아이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지 않겠느냐 말씀합니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이 마을 자그마한 어느 한 사람 이야기를 듣습니다. 1960년에 태어나 1984년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만 어느 ‘시골학교 교사’ 이야기를 듣습니다. 올 2012년 5월 30일에, 면소재지에 있는 도화중학교 한켠에 ‘무명교사 예찬비’를 옮겼다며, 이 빗돌이 예전에는 당신 딸아이가 교사로 일하던 흥양초등학교 한켠에 있었다고, 아마 한국에 ‘무명교사 예찬비’가 선 곳은 여기 한 군데만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웃집 할아버지 말씀을 들은 이튿날,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면소재지 중학교로 찾아갑니다. 학교 앞문 오른쪽에 빗돌이 있습니다. 빗돌에는 참말 ‘무명교사 예찬’이라는 글월이 새겨졌습니다. ‘핸리 반 다이크’라는 분이 쓴 글이라 하는데(맞춤법으로는 ‘헨리’가 맞으나 빗돌에는 ‘핸리’로 적혔습니다), 빗돌은 1985년 2월 24일에 새겼습니다. 이웃집 할아버지네 딸아이는 시골 초등학교를 나와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되었고, 이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는 가난한 아이들을 도우려고 이녁 월급봉투를 쪼개었으며, 딸아이가 그만 숨을 거둔 뒤로는 할아버지가 딸아이 뜻을 이어 스물일곱 해 동안 장학금 나누기를 고이 이었다고 합니다.


  이름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이 안 알려졌을 뿐인 시골 교사라 해야 맞겠는데, 시골 교사도 시골 교사이지만, 시골 교사인 딸아이 넋을 고이 이어 ‘흙을 일군 품’으로 시골 아이들한테 장학금을 마련한 시골 할아버지도 시골 할아버지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무명교사 예찬’이 있다면 ‘무명농사꾼 예찬’도, 조용히 흙을 일구는 사람을 기리는 노래도 있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다가 전남 고흥으로 시집가서 ‘흙일꾼 옆지기’로 지내다가 늦깎이로 교사가 되어 시골학교에서 가르치는 조경선 님이 쓴 교육일기입니다. 시골 교사 조경선 님은 “교사도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대학 평준화를 위한 활동을 함께 해 나갔으면 좋겠다.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끔찍한 입시경쟁에서 벗어나기 힘들(83쪽)”겠다고 얘기합니다. “(고흥)군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외부 도시로 진학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주말마다 서울의 입시학원 강사를 섭외해 소수의 아이들에게 입시 과목을 수강하도록(81쪽)” 한답니다. “농촌의 아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로 가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107쪽)” 한답니다.


  군청에서 돈을 대어 ‘이름난’ 학원강사를 불러 입시교육을 시켜 준들,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모두 큰도시 대학교로 나아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삶이란, 돈이란, 꿈이란, 사랑이란, 공부란, 책이란 무엇일까요. (4345.6.18.달.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6-18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9 0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즐겁게 읽는 책으로 '책을 말하는 책'을 베풀 수 있다면 더없이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빛깔을 띨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줄거리만 밝히는 '서평'은 언제나 삶하고 동떨어진 채 재미없는데, 책을 읽는 이 스스로 재미없는 삶이라면 늘 재미없는 글만 나올 테지요. 우리 둘레에서 슬픈 일이 자꾸 생기더라도, 우리 스스로 착하며 곱게 살아간다면, 차츰차츰 착하며 고운 일을 늘릴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독과 도- 울자, 때로는 너와 우리를 위해
윤미화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6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2년 06월 17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