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 - 고영일 사진평론집
고영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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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읽는 마음
 [찾아 읽는 사진책 101] 고영일,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한울,2011)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안 읽더라도, 나 스스로 내가 쓴 글을 읽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안 읽더라도, 나 스스로 내가 그린 그림을 읽습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안 읽더라도, 나 스스로 내가 찍은 사진을 읽습니다.


  지구별에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살아갑니다. 곧, ‘글읽기·그림읽기·사진읽기’는 다 다른 빛깔과 무늬로 나타납니다. 똑같은 비평이나 평론은 나올 수 없습니다. 같은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바라보면서도 다 다른 생각과 느낌과 이야기가 나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학비평이든 사회비평이든 예술비평이든 엇비슷한 비평이 참 많아요. 참말 사람들은 제대로 ‘읽기’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읽기를 제대로 못 하는 일을 나무라거나 꾸짖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읽기에 앞서 ‘쓰기’부터 제대로 못 합니다(‘쓰기’에 앞서 ‘생각하기’와 ‘살아가기’조차 제대로 못한다 할 테지만). 스스로 이녁 삶을 글로나 그림으로나 사진으로나 스스럼없이 쓰지 못 합니다. 남한테 보여주기 앞서 스스로 누리는 삶이기에, 스스로 즐겁게 쓰는 글이요 스스로 기쁘게 그리는 그림이요 스스로 신나게 찍는 사진이에요. 작품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는 글·그림·사진입니다. 애써 작품이나 예술이나 문화로 일구어야 할 글·그림·사진이 아니에요. 문화재단에서 돈을 받아야 글을 쓰나요. 문화부에서 돈을 받아야 그림을 그리나요. 공모전에서 1등으로 뽑히려고 사진을 찍나요.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스스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춤이나 노래로 담습니다. 내 삶을 내 이야기로 빚습니다. 내 이야기는 글로도 태어나고 그림으로도 태어나며 사진으로도 태어납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도 사진밭을 일군 고영일 님이 남긴 글을 그러모은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한울,2011)를 읽습니다. 고영일 님은 “무엇을 찍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현실에 몸을 내던져서 어떻게 관계 짓고 있느냐 하는 데에 보다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14쪽).” 하고 말합니다. 마땅한 말씀입니다. 역사에 다큐멘터리를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눈부신 패션문화를 이끌거나 돈을 잘 벌려고(상업사진)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은 스스로 좋아서 찍습니다. 글은 스스로 좋아서 씁니다. 그림은 스스로 좋아서 그립니다.


  반 고흐도, 벨라스케스도, 렘브란트도, 무슨무슨 역사나 문화나 예술을 이루려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스스로 좋아하기에 그림을 그렸어요. 스스로 삶을 불태우는 꿈을 꾸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박경리나 황순원이나 신동엽이 역사나 문학이나 예술을 뽐내려고 글을 썼을까요. 스스로 사랑하기에 글을 썼어요. 스스로 삶을 일구는 꿈을 빛내면서 글을 썼어요.


  사진찍기란 내 삶을 찍는 일입니다. 사진읽기란 내 삶을 읽는 일입니다. 나는 내 삶을 즐겁게 맞아들이면서 사진으로 한 장씩 찍습니다. 나는 내 삶을 기쁘게 누리면서 ‘내가 찍은 사진’을 한 장씩 읽습니다.


  고영일 님은 사진모임에서 오래도록 일했습니다. 한국땅 사진모임이 여러모로 말썽거리가 많다며,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점수로 예술가가 되는 제도가 신봉되고 있느냐를 짚어 보아야 할 것이 아니냐(17쪽).” 하고 꾸짖습니다. “‘잘 찍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한 작품활동만이 권장되는 분위기에서는 장차의 위상은 바랄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27쪽).” 하고 나무랍니다. “‘그때 그 사람’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작품을 남길 수 있다면 바로 사진작가가 되는 길이 아니겠는가(107쪽).” 하고 외칩니다.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점수를 쌓아야 시인이 되거나 소설가가 되지 않습니다. 점수를 쌓았기에 화가가 되거나 사진가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시를 좋아하면서 시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스스로 그림을 아끼면서 그림하고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화가입니다. 스스로 사진을 사랑하면서 사진을 삶으로 녹여내는 사람이 사진가입니다.


  나한테 예쁘며 반가운 짝꿍을 사랑스럽게 찍는 사람도 사진가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 귀여운 모습을 즐겁게 찍는 교사도 사진가입니다. 동무들과 즐겁게 한때를 보내며 손전화 기계로 신나게 사진을 찍는 아이들도 사진가예요.


  손에 사진기를 들었으면 누구나 사진가입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스스로 예쁘게 보살피면서 손에 사진기를 들고는 활짝 웃음꽃 터뜨리는 사람이라면 모두 사진가입니다.


  “작품을 발표할 때는 촬영 당시의 상황적 변명은 있을 수 없으며, 최선을 다한 후 작가가 책임질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65쪽).” 같은 말은 ‘전문 직업 사진가’한테만 하는 말은 아닙니다. 좀 어려운 말이라 할 만하지만, ‘더 잘 찍을 수 있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더 잘 못 찍었다’ 하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까닭은,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 사랑스러운 짝꿍을 참 사랑스럽게 찍을 때는 언제일까요? 내 사랑스러운 짝꿍을 그리 사랑스럽게 찍지 못했을 때는 언제일까요? 내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아이들이 참 곱고 환하게 나온 때는 언제인가요? 내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내가 사진으로 담는데, 막상 그리 볼 만하게 나오지 못한 때는 언제인가요?


  스스로 까닭을 알면 됩니다. 스스로 까닭을 느끼면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야말로 사랑스럽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때를 잘 깨달으면 됩니다. 내 아이들을 더없이 예쁘게 바라보며 예쁜 모습이 담기도록 하는 사진은 언제 찍을 수 있는가를 잘 느끼면 됩니다.


  어떤 마음일 때에 밥을 맛있게 지어 식구들하고 나눌까요. 어떤 마음일 때에 까르르 웃으며 식구들하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까요. 어떤 마음일 때에 맑은 목소리로 신나게 노래를 부를까요.


  마음을 알 때에 마음껏 살아갑니다. 생각을 할 때에 슬기롭게 생각합니다.


  고영일 님은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소재에 맡겨질 자기의 마음, 즉 그 소재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고 보면,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그런 마음을 얹을 소재가 항상 모색되는 사진생활을 경험해야 하는 일이다(126쪽).” 하고 말씀합니다. 다큐사진을 찍거나 패션사진을 찍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어 좋은 삶을 누리면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생활사진이건 상업사진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어느 곳에서 어떤 사진을 누리든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면 돼요.


  마음이 있어야 밥을 맛있게 지어요. 마음이 있어야 빨래를 즐겁게 해요. 마음이 있어야 내 사랑을 이녁한테 보내요. 마음이 있어야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마음이 있어야 내 작은 밥그릇을 이웃하고 나눌 수 있어요.


  이리하여, 고영일 님은 “나는 ‘잘 찍은 사진’이라는 말은 삼가 해야 하고, 오직 ‘좋은 사진’이기를 바라고 또 들추어져야 될 것이라고 마음먹기에, 그런 표현을 권장하고 싶은 것이다. ‘좋은 사진’에는 반드시 ‘좋은’ 까닭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321쪽).” 하고 당신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아주 마땅한 말씀입니다. 사진은 오직 ‘좋은’ 사진 한 가지여야 합니다. 글은 오직 ‘좋은’ 글 하나여야 합니다. 그림은 오직 ‘좋은’ 그림 하나여야 해요. 삶은 오직 ‘좋은’ 삶 하나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은 오직 ‘좋은’ 사랑 하나일 뿐이에요. 내가 날마다 먹는 밥 또한 늘 ‘좋은’ 밥이어야 해요. 굳이 나쁜 밥을 먹을 까닭이 없어요. 굳이 ‘조금 안 좋은’ 밥을 먹을 일이 없어요.


  좋은 햇살을 누립니다. 좋은 바람을 쐽니다. 좋은 물을 마십니다. 좋은 집(비싼 집이 아닌 좋은 집)에서 살아갑니다. 좋은 책(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아닌 좋은 책)을 읽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좋은 사람이 됩니다.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말을 읊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눈빛을 밝히고,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눈썰미를 북돋우며,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눈망울로 사진을 찍습니다.


  오로지 좋은 삶을 누리면서 좋은 사진을 찍습니다. 오로지 좋은 사랑을 빛내면서 좋은 사진을 읽습니다. 처음도 끝도 하나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한결같습니다. 나한테 가장 좋은 사진기(가장 비싸거나 값진 사진기가 아니라, 내 삶에 가장 걸맞는 즐거운 꿈을 찍을 만한 좋은 사진기) 하나를 곁에 두고, 나한테 가장 좋은 옆지기하고 좋은 보금자리를 돌보면서, 나한테 가장 좋은 이야기를 내 가장 좋은 손길로 살며시 어루만지면,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사진 하나 태어나요.


  사진을 읽는 마음은 삶을 읽는 마음입니다. 사진을 읽는 마음은 사랑을 읽는 마음입니다. 사진을 읽는 마음은 사람을 읽는 마음입니다. (4345.7.14.흙.ㅎㄲㅅㄱ)

 


―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 (고영일 글,한울 펴냄,2011.3.30./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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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장마를 어떻게 보냈을까

 


  엄살을 부리고픈 마음이 없고, 그렇다고 딱히 견주고픈 마음은 없으나, 2012년 장마철은 2011년 장마철보다 한결 수월하다고 느낀다. 아직 장마철이 끝나지 않았으니 더 두고보아야 하는데, 2011년 장마철은 2010년 장마철하고 대면 되게 힘들었는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 살아낸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느끼거나 치르는지 잘 모른다. 다만, 혼자 살던 때와 옆지기하고 둘이 있던 때에는 장마철이든 아니든 썩 대수롭지 않았다. 두 사람 살림이더라도 우리 집에서는 빨래 옷가지가 얼마 없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비로소 ‘장마철과 겨울철 빨래가 참 고되구나’ 하고 깨닫는다.


  2008년부터 네 차례 장마철을 치렀다. 이제 다섯 차례 맞이하는 장마철이다. 올 장마철은 햇볕 구경하기 몹시 어렵지만, 여러 날 내리 빗줄기 퍼붓는 날은 없다. 나로서는 이 대목이 참 고맙다. 제아무리 드세게 빗줄기가 퍼붓더라도 딱 하루에서 그치고 이듬날은 빗줄기가 듣지 않고 구름만 가득하더라도 반갑다. 퍼붓는 빗줄기도 하루 내내 퍼붓지는 않고, 틈틈이 말미를 두니까 반갑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지난 장마는 어떻게 보냈을까 하고 떠올린다. 아이들 옷가지를 날마다 두어 차례나 서너 차례 손빨래를 하면서 ‘아무렴, 잘 보냈지. 아무렴, 올해도 잘 보내잖아.’ 하고 생각한다. 날씨가 궂고 축축해 틈틈이 새 빨래를 해서 말려야 하는 날이 끝나면, 나도 좀 수월하게 기계빨래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기계빨래를 한대서 내 몸이 가뿐해진다고는 느끼지 않아, 좀처럼 빨래기계를 안 쓴다. 아니, 이제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 돌이 지나고 보니, 예전보다 오줌기저귀나 오줌바지가 한결 적게 나와, 날마다 빨래를 해야 하기는 하되, 빨래기계를 돌릴 만큼 빨랫거리가 넘치지는 않는다.


  어느덧 새날이 밝는다. 오늘은 오늘 몫만큼 새 빨랫거리가 나오겠지. (4345.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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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7-14 15:1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2010년 장마때 살던 지하에 빗물이 마구 들어와 양동이로 물을 퍼낸 악몽이 생각나네요ㅜ.ㅜ

파란놀 2012-07-16 09:44   좋아요 0 | URL
에고... 지하방에서는 안 살아야 할 텐데요... 에고...
 

자전거쪽지 2012.7.9.
 : 자전거 바퀴 바람 넣는 아이

 


- 자전거 앞바퀴에 자꾸 바람이 샌다. 포스코 회사와 고흥군청이 고흥에 끌어들이려는 화력발전소 때문에 이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자전거를 타고 ‘화력발전소 세우려 하는’ 나로섬까지 세 시간 남짓 자전거를 달린 날부터 앞바퀴에 자꾸 바람이 샌다. 세 시간 남짓 달렸대서 바퀴에 바람 샐 일은 없지만, 혼자서 먼길을 빨리 다녀온다고 서두르다가 어느 곳에선가 뾰족한 땅을 휘 지나가다가 바퀴 한쪽이 긁히며 실구멍이 난 듯하다.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고 살살 마실을 할까 싶었지만, 앞바퀴 바람이 자꾸 새기에, 둘째 아이가 고개를 까딱까딱 졸음에 겨워 픽 쓰러질 때까지만 이웃마을을 살짝 돌고 집으로 돌아온다.

 

- 둘째 아이를 가만히 안고 자리에 눕힌다. 새근새근 잘 잔다. 첫째 아이도 졸립지만, 졸음을 참고 아버지 옆에 붙는다. 아버지는 자전거 앞바퀴를 뗀다. 겉바퀴를 바퀴몸에서 뗀다. 안에 있는 튜브를 꺼낸다. 튜브에 바람을 넣어 풍선처럼 부풀린다. 크게 난 구멍이라면 튜브에 바람을 넣고 만지기만 해도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람이 새는 데가 안 보인다. 대야에 물을 받아 천천히 담가 본다. 뾰로로로 하고 바람이 새는 데 한 군데 보인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뾰로로로 하네.” 하고 말한다.

 

- 물기는 걸레로 잘 닦는다. 다 말린 뒤 구멍을 때운다. 구멍을 때우고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바람을 넣는다. 잘 붙었나 살피고, 다시 대야에 튜브를 담가 더 새는 데 있는지 살핀다. 이제 없다. 다시 바람을 빼고 물기를 닦아 말린 뒤 바퀴틀에 꿴다. 겉바퀴를 입힌다. 자전거에 바퀴를 붙인다. 아이가 “나도 바람 넣을래.” 하고 말하기에 아이더러 바람을 넣어 보라고 바람넣개를 맡긴다. 아이는 거의 서른 차례쯤 기운차게 바람을 넣는다. 제법 잘 한다. “이제 힘들어. 못 하겠어.” 아버지가 넘겨받아 스무 차례 더 넣는다. 다음부터 튜브에 바람 넣을 때에 아이더러 먼저 하라고 맡겨야겠다고 생각한다. 키가 더 크고 몸이 더 자라면, 아이는 아이 자전거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스스로 제 자전거를 누릴 때에는 스스로 제 자전거 튜브에 바람을 넣을 만한 힘이 있어야 하니, 천천히 익숙해지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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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전거 바람넣기 - 슈레더 벨브 타이어
    from 이라이더 2012-08-05 13:11 
    자전거 튜브 밸브 방식에는 많이 사용하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일반 자전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던롭(우즈식) 방식이 있고 고급 MTB, 로드, 미니벨로 등 고압에서 많이 사용하는 프레스타(presta) 방식, 그리고 자동차 타이어나 모터사이클(오토바이) 타이어에서 사용하는 슈레더(schrader) 방식이 있습니다. 슈레더 방식은 자동차와 동일하다 해서 오토밸브(Auto valve), 모터사이클과 동일하다고 해서 모토밸브(Moto valve)..

 

 바람 부는 들판

 


  바람 부는 들판 사이를 자전거로 달린다. 바람은 논자락 볏포기를 이리저리 눕힌다. 바람은 논둑 들풀을 이리저리 눕힌다. 볏포기와 들풀은 이리저리 눕지만, 바람이 잠들면 다시 꼿꼿하게 선다. 바람이 오래오래 불면 볏포기와 들풀은 그저 누워 버리는구나 싶지만, 바람이 잠들고 햇살이 방긋거리면 볏포기와 들풀은 모두 해를 바라보며 씩씩하게 선다.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들을 불러 들판을 함께 바라본다. 볏포기를 눕히는 바람을 느낀다. 아이들은 바람과 들판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서로 고개를 맞대고 사르르 잠든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은 바람을 시원하게 쐰다. 한동안 이대로 있다가 다시 자전거 발판을 씩씩하게 밟으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간다. (4345.7.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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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바라본 한국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4] 이강(李剛), 《韓國》(保育社,1971)

 


  남북녘이 살아가는 땅떵어리에서 오른쪽에 있는 바다를 가리켜 ‘동해’라 말한다지만, 러시아나 일본에서 바라볼 때에도 이 바다가 ‘동해’가 될 만할까 궁금합니다. 지구별에 남북녘 살아가는 땅덩어리만 있다 한다면, ‘동해’뿐 아니라 ‘서해’나 ‘남해’라는 이름을 지도책에 척 하니 적바림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구별이라는 테두리에서 바라볼 때에도 ‘동해’라는 이름을 쓸 만할까 궁금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일본에서는 ‘일본해’라 이름을 붙인다는데, 먼먼 옛날, 곧 서기 500년이나 서기 1000년에는, 기원전 500년이나 2000년 즈음에는 일본땅에서 이 바다를 어떤 이름으로 가리켰을까 궁금합니다. 한겨레한테는 ‘동해’였다면 일본겨레한테는 어떤 바다였을까요. 한겨레는 남북녘 땅덩어리 아래쪽 바다를 두고 ‘남해’라 말하지만, 정작 남북녘 땅덩어리 아래쪽 바다는 ‘남해’라기보다 ‘태평양’이에요. 이쪽 바다를 가리킬 이름을 옳게 붙이자면 ‘남해’ 아닌 ‘제주해(제주바다)’쯤 되어야 알맞지 않으랴 싶어요. 그러고 보면, 한겨레한테는 오른쪽이요 일본겨레한테는 왼쪽이라 할 바다는 ‘울릉바다’라고도 할 만하겠지요. 널따란 바다 한복판에 울릉섬이 꽤 크게 솟았으니까요.


  1930년에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이강(李剛) 님이 엮은 사진책 《韓國》(保育社,1971)을 읽습니다. 베트남전쟁 취재도 했다는 이강 님이라 하는데, 이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보육사 빛깔책(保育社 color books)’ 가운데 하나로 《韓國》을 내놓은 만큼, 한국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분인 줄 헤아릴 수 있습니다. 1966년에는 《これが新しい世界だ “KOREA”》를 엮기도 했다고 해요. 《これが新しい世界だ》는 ‘世界情報社’라는 곳에서 서른두 권으로 내놓은 ‘세계여행 전집’이랄지 ‘세계 이야기 전집’과 같은 책인데, 이 가운데 이강 님이 “한국(KOREA)”을 맡았다는군요. 어쩌면 재일조선인 이강 님일 수 있으나, 이 대목조차 오늘날에는 발자국을 찾기 힘듭니다.


  사진책 《韓國》을 찬찬히 읽습니다. 겉에는 “カラ-ガイド”라는 말이 적힙니다. 보육사 빛깔책은 빛깔사진과 그림자사진을 두 쪽마다 갈마들어 넣습니다. 1960∼70년대에 이처럼 빛깔사진을 듬뿍 넣은 작은 사진책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더구나 퍽 값싸게 장만해서 알차게 즐길 만한 책은 퍽 적었겠지요.

 

 

 

 

 


  사진책 《韓國》에 실린 사진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입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을 담아내어 ‘일본에서 한국으로 찾아갈 사람한테 길잡이가 되도록’ 엮습니다. 한국을 찾아간 일본사람이 ‘한국에서 으레 보거나 마주하거나 겪거나 부대낄 모습’을 꾸밈없이 담습니다.


  예나 이제나 거의 비슷하다 할 텐데, 1971년이든 2011년이든, 또 앞으로 2051년이 되든,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한국 바깥에 보여주는 한국 모습’이라 한다면 어떠할까요. 아마, 사진책 《韓國》에 나오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려고는 안 하겠지요. 관광지라든지 ‘아름다운 자연’을 찍는 사진은 《韓國》에도 있습니다만, 《韓國》에는 아름다운 자연이나 관광지만 나오지 않아요. ‘도심에서 30분만 나오면 김포공항 언저리에서도 소가 끄는 수레’를 볼 수 있다면서, 한국을 보여주는 사진 가운데 하나로 소가 끄는 수레를 ‘자동차로 꽉 찬 서울 도심’ 사진이랑 나란히 보여줍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파는 사내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놀이공원에서 풍선을 파는 아저씨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갓난쟁이를 업은 아주머니가 살아가는 ‘풀로 이은 지붕’이 가득한 시골마을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냇가에서 빨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손으로 모내기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온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풀집 가득한 시골마을에서 굴뚝에 연기가 솔솔 피어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탄을 나르는 아이 모습이랑 도리깨질을 하는 할매 할배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무신을 꿴 아이들 모습하고 나룻배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말, 한국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꾸민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눈부신 경제발전’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른바, 공장 굴뚝을 보여주지 않아요. 새마을운동이니 무어니 하면서, ‘한국 정부에서 한국을 알리려고 나라밖에 보여준다’는 사진책을 들여다보면, 경부고속도로 죽 뻗은 길이라든지, 새로 지은 우람한 공장이라든지, 서울에 번듯번듯 높직하게 세운 건물과 아파트라든지, 예쁘장해 보인다는 놀이공원이라든지, 온통 이런 모습들을 ‘한국 정부가 뽐내려’ 하는데, 사진책 《韓國》에는 ‘한국 정부가 뽐내고 싶어 하는 모습’은 한 가지도 안 실립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가 사진책 《韓國》을 보았으면 거북하게 여겼겠구나 싶어요. 왜 더 ‘발전된 신흥공업국’다운 모습을 안 보여주느냐고, 설악산이나 오대산이나 한라산 사진을 잔뜩 보여주지 못하느냐고 따질 만하구나 싶어요.


  사진책 《韓國》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살짝 들여다봅니다. 설악산에 갈 겨를에 여느 도시 여느 골목을 걷는다든지, 여느 시골 여느 고샅을 걷습니다. 더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나, 여느 사람들 살림집 사이를 걷습니다. 수수한 사람들 수수한 살림새와 함께, 한겨레가 먼 옛날부터 이룬 예쁜 문화가 무엇인가 하고 보여줍니다. 박물관과 경주를 돌아다니면서 이곳에 깃든 문화재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진책 《韓國》은 ‘여느 일본사람이라면 담아낼 수 없을’ 모습을 담아내어 보여주기에 이쁘장합니다. 우스꽝스러운 극장 간판을 보여줍니다. 부산 바닷가에서 발가벗고 노는 사내아이를 보여줍니다. 서울 을지로 한옥집을 보여주되, 눈 가득 내린 날 마당에 자전거가 선 모습을 보여줍니다. 밥집이나 멋집도 보여주지만, 여느 저잣거리 모습을 찬찬히 보여줘요.


  서울 골프장, 이화여대, 청계천 고가도로 밑 길장사,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자그마한 책을 덮습니다. 이제, 거꾸로 생각을 해 봅니다. 1971년 무렵, 한국에서 일본을 찾아간 누군가 있을 적에, ‘한국에서 일본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 보여준다’ 한다면, 어떠한 모습을 얼마나 어떻게 담아서 보여주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2011년 오늘날 한국사람은 일본을 찾아가서 어떠한 모습을 즐겁게 누리면서 어떠한 사진을 찍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2051년쯤 된다면 이때에는 한국사람이 어떤 눈길로 이웃 일본을 바라볼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나저나, 1971년, 2011년, 2051년, 이렇게 여든 해에 걸쳐 어느 한 나라를 살핀다 할 적에,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을과 보금자리와 나라와 이웃을 어느 만큼 속속들이 살피면서 어느 만큼 사랑스레 껴안을까 헤아려 봅니다. 한겨레 스스로 바라보는 한겨레는 어떤 모습일까요. 한겨레 스스로 이웃나라한테 보여주고픈 한겨레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한겨레는 한겨레 스스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알뜰살뜰 담는다고 말할 만한가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삶터를 사진으로 못 담고 말아, 이렇게 이웃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한국 삶터를 담은 사진으로 ‘이 나라 사람들 발자국을 돌아보’아야 하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4345.7.14.흙.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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