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이 쓴 <사과란 토끼야>라는 책이 있는데, 어느 교육출판사에 이 책을 복간해 주기를 바라며 빌려주었다가 잃어버렸다 ... ㅠ.ㅜ 안타깝게도, 이 책을 나한테서 빌린 출판사 사장님은 이 책을 빌린 줄조차 잊으셨다. 헌책으로도 다시 살 수 없는 너무 안타까운 책인데, 일본판 몇 가지 다른 책이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갑다. 일본책이라도 사 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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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えない言葉が聞こえてくる (單行本(ソフトカバ-))
후꾸이 다쯔우 / いのちのことば社 / 2010년 12월
15,270원 → 14,200원(7%할인) / 마일리지 43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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やさしい心をもっていますか?―障害兒と共に生き、社會と鬪い、心を守った、ほんとうの敎育 (單行本)
후꾸이 다쯔우 / サンガ / 2008년 8월
22,910원 → 21,300원(7%할인) / 마일리지 64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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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1일에 쓴 글. 예전 글을 갈무리하며 곰곰이 되읽다가 걸쳐 본다. 아마 웬만한 사람들은 권정생 할아버지 이 같은 모습을 잘 모르지 않을까?

 

..

 

2005.10.1. 권정생



  누리그물(인터넷)에서 이모저모 살펴보다가 ‘권정생’ 할배 이름을 치니 여러 가지 글이 뜬다. 이 가운데 2005년 8월 26일치 〈한겨레21〉에 실린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 모금’이 눈에 띈다. 남경필(20만 원), 김미화(30만 원), 강맑실(100만 원), 윤도현(30만 원)도 돈을 냈는데, 경북 안동 조탑마을 오막집에서 홀로 살아가는 권정생 할배도 10만 원을 냈다.


  두멧시골에서, 몸 움직이기 수월하지 않다는 분이, 우체국까지 손수 찾아가서 10만 원을 부쳤을 일을 헤아려 본다.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서, 마을 어귀 시골버스 타는 데로 간 다음, 두 시간에 하나쯤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타고는 읍내나 면내 우체국으로 가셨겠지. 우체국에서 종이쪽에 슥슥 글을 적어서 돈 조금 부쳤겠지. 버스일꾼이나 우체국일꾼은 천천히 기우뚱 걷는 할배가 누구인지 알까?


  어쩐지 짠해서 눈물을 찔끔하다가, 이처럼 한결같이 이웃하고 눈물을 나누려는 모습을 가만히 그린다. 돈이 많아야 이웃사랑을 할 수 있지 않다. 100만 원을 내거나 1만 원을 내거나 대수롭지 않다. 마음이 반갑고 고맙다.


  안동 할배는 어느 ‘수재 의연 모금’에도 돈 10만 원을 낸 자국이 있다. 이오덕 어른 큰아드님이 권정생 할배한테 언젠가 ‘수재 의연 모금’을 놓고서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여쭌 적이 있다. “정생 형님, 신문사에 10만 원 내셨습니까?” “봤냐? 10만 원 냈지.” “돈이 10만 원밖에 없어서 10만 원을 내셨습니까? 신문에 이름이 실리고 싶으셨나요?” “허허, 그래. 내 이름 좀 신문에 나라고 냈지. 수재 의연금이라고 돈있는 사람들은 1억도 내고 5000만 원도 내서 얼굴이 실리던데, 〈한겨레〉에서는 1억을 내든 10만 원을 내든 얼굴 사진 없이 이름만 싣잖냐?” “거기는 그렇게 하지요.” “나 같은 동화작가도 10만 원을 내는 줄 사람들이 보면, 작은 아주머니도 작은 아저씨도 1만 원씩 내서 같이 이름이 실릴 수 있지 않겠니?” “요새 어른들은 동화를 안 읽어서 정생 형님 이름이 신문에 실려도 누구인지 모를 텐데요?” “그럴까? 그러면 안 되는데. 허허. 먼저 동화부터 읽으라고 해야겠네. 허허.”


  곰곰이 돌아본다. 어쩌면, 권정생 할배는 ‘나 아직 우체국으로 버스 타고 나가서 이렇게 돈 부칠 수 있을 만큼 몸 튼튼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이지 싶다. 적잖은 사람들이 할배 몸이 아픈 일을 걱정하지만, 그런 걱정일랑 말고, 즐겁고 아름답게 꿈을 그리고 사랑을 생각하라면서 속삭이는 10만 원이리라 느낀다.


  어떻게 살아갈 때에 삶다울까. 아름답게 살아갈 때에 삶답겠지.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울까. 사랑스레 살아갈 때에 즐겁겠지. 밥 한 그릇을 나누고, 책 한 자락을 나누고, 마음 한 움큼을 나눈다.


ㅅㄴㄹ.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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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어느 날 쓴 글. 예전 글을 갈무리하다가 눈에 뜨여서 옮겨 본다. 요사이도 이 비슷한 일을 으레 저지르곤 합니다. 바깥마실을 하다가 어딘가에 '읽던 책'을 멀쩡히 놓고 집으로 돌아오느라, 두 번 다시 못 찾는 일이 가끔 있어요... -_-;;;;; 술을 안 마셔도 바보스러운 짓을 합니다 @.@

 

..

 


 잃어버린 책

 


  잃어버리고 말았구나.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네. 그날은 가방에 온갖 책이 잔뜩 들어 무거운데다 더 넣을 자리가 없어, 책 두 권은 어쩔 수 없이 손에 들었는데. 그 책 두 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구나. 처음엔 어디에 둔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렇게 두었음직한 곳에 이 책이 없네. 아무래도 전철에 놓고 내렸는가 보다. 전철 짐칸에. 글쎄, 그날 술을 잔뜩 마셔서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 책 두 권은 품에 꼬옥 안았다고 떠올리는데. 아닌가?


  앞으로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다시 만날 날이 언제일는지 모르지만, 꼭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른 책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그 낡은 책, 그 낡은 종이, 예전에 그 책을 보던 사람 손길이 좋았는데. 책은 좀 뒤틀리고 낙서도 있고 먼지도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술기운 오른 몸으로도 그 책에 담긴 이야기가 참 가슴에 와닿아서 밑줄을 죽죽 그으면서 아주 즐겁게 보았다. ‘참 말을 곱게 썼군. 이만 한 글이니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겠군. 그러나 이만 한 글을 찬찬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아, 얼마 없으면 어떤가. 내가 즐길 수 있으면 되지. 나라도 즐기면이 아니라 내가 즐기면 되지. 책은 어느 한 사람만 즐기라고 나오지는 않으나,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또는 많이 사라졌다면, 그 어느 날에라도 한 사람이 알아볼 수 있으면 되지 않나? 느낄 수 있으면, 가슴으로 껴안을 수 있으면, 마음 깊이 사랑할 수 있으면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모처럼 서울마실을 하며 즐겁게 만난 책 두 권을, 가방도 손도 무겁다며 살짝 숨을 돌리려고 짐칸에 놓았다가 그만 잊고 내렸구나.


  나중에 그 책을 다시 사자면 적잖은 돈이 들겠지. 그날은 참 고맙게 아주 싼값, 5000원인가 4000원에 샀지만 앞으로는 그 책을 여러 만 원을 줘야 겨우 살 수 있을 테지. 그러나 그만 한 돈이 있어도 못 살 수 있어. 오늘 내 주머니에 100만 원이 있다 해도(100만 원은커녕 10만 원도 없지만. 1만 원이나 있나?) 그 책이 다시 내 손에 쥐어지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돈이 있다고 이녁이 바라는 모든 책을 다 살 수 있나? 못 사지. 안 팔지. 어느 책 하나를 살뜰히 사랑하고 아끼며 돌보고 즐길 줄 모르는 사람한테는 헌책방 임자들이 책을 안 팔기도 하잖은가?


  아, 그래도 그 책을 누군가 손에 쥐고 살뜰히 읽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이제 내 곁을 떠나서 어디로 갔는 줄 알 길도 없지만, 내가 그 책을 길에 흘렸다면, 틀림없이 누군가 그 책을 주워서 알뜰히 여겨 주면 좋겠다. 그이가 “그야말로 어떤 얼빠진 놈이 책을 흘리고 다녀?” 하고 빈정거려도 좋다. 그렇게 빈정거리더라도 내가 잃어버린 그 책을 알뜰히 보살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책 두 권을 쓰레기통에 처넣지 않아만 주어도 좋다.


  아니, 이제 내 곁에 그 책들이 없는데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나? 책을 줍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 마음대로 하면 되지. 뭘 그리 바라나? 나는 이제 내 곁에, 내 손에 있는 책을 이야기하자. 그 책은 그 책대로 제 길을 갔으니, 마음으로도 떠나 보내자. 아쉽다 여길 까닭도 슬프다 느낄 까닭도 없다.

 

  내가 잃은 책 둘은 ‘이효석 소설전집’이었다. ‘능금’이란 낱말이 여러 작품에 숱하게 나온 낡은 책. ‘사과’라는 낱말은 한 번도 말하지 않고 오로지 ‘능금’만을 말하는데, 그 능금이 이 소설 저 소설에도 나오는 그 책. 능금 냄새, 능금 맛이 나는 그 소설, 이효석 소설을 그 책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세로쓰기로 된, 1960년대에 나온 책 종이로는 제법 좋은 종이를 쓴 그 책, 그러나 오래된 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 책, 오래되고 눌리고 해서 책 한쪽이 뒤틀렸던 그 책, 껍데기에 적힌 ‘이효석 소설전집’이란 이름도 더께를 먹어 거의 안 보이고, 그예 시커멓게만 보이던 그 책. 어디로든 잘 가라. (4339.1.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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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게 살려고 애쓰면 착한 책을 만날 수 있겠지

 


  좋지 않은 줄거리를 담은 책이 얼마나 될까? ‘돈·이름·힘’에 매이지 않고 홀가분한 넋과 뜻으로 내놓는 책치고 아름답지 않은 책은 없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제도권 사회에서 제 앞가림에 너무 매이고 시달리면서 참답고 털털하며 수수한 깊이를 담은 책하고 자꾸만 멀어지는구나 싶다. 책이 제대로 읽히고 제값을 하자면,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 나한테 참살길이 무엇인지 느끼고 찾고 살피는 한편, 제 몸과 마음을 다부지게 다독이고 갈고닦으며 키워야지 싶다. 나 스스로 참된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쓴다면 아름다운 책 하나 만날 수 있다. 나 스스로 알뜰히 살고자 애쓰면 알뜰한 책을 만날 수 있다. 나 스스로 착하게 살고자 애쓰면 착한 책을 만날 수 있겠지. (4338.10.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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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세탁 애지시선 12
박영희 지음 / 애지 / 200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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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밥을 먹는다
[시를 노래하는 시 28] 박영희, 《즐거운 세탁》(애지,2007)

 


- 책이름 : 즐거운 세탁
- 글 : 박영희
- 펴낸곳 : 애지 (2007.5.10.)
- 책값 : 8000원

 


  저녁에 두 아이 재우고 나서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느긋하게 책을 조금 읽다가 자리에 눕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저녁은 더없이 조용합니다. 두 아이는 새근새근 자는데 머리카락과 팔뚝 언저리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에 틈틈이 부채질을 해서 땀을 식힙니다. 내 몸에도 부치고 아이들 몸에도 부칩니다. 날마다 몇 차례씩 아이들 씻기고 나도 씻습니다. 씻을 적마다 손빨래를 합니다. 기계빨래를 할 만하지만, 더운 여름날은 몸을 씻으며 흐르는 물에 옷가지를 적신 다음 비누를 문지르고, 복복 비벼서 헹굴 무렵 다시 몸에 물을 붓고 씻으며 빨래를 북북 밟아 헹구면 한결 시원합니다. 물은 적게 쓰면서 몸을 씻고 빨래까지 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래저래 물을 자주 만지니 손에서 물기 마를 틈이 없습니다. 손이 조금 보송보송해질라면 작은아이가 쉬를 누어 기저귀를 갈거나 걸레로 방바닥을 훔칩니다. 오줌을 훔친 걸레는 그때그때 새로 빨래합니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아이들 씻기고 보면 하루 내내 물이랑 산다 할 만합니다. 손에 물기가 가시지 않으니, 종이로 빚은 책은 펼칠 엄두를 못 냅니다.


.. 된장에 찍어먹으면 딱 좋을 / 풋고추 대롱대롱 달려있고 // 긴 싸움 이겨낸 늠름한 얼굴로 / 석편아짐 좋아하는 가지 몇 실하게 매달려있고 // 찬바람 불면 할마씨들 입맛 돋울 / 대추알들 따글따글 열려있고 ..  (장마 지나간 옥상)


  사내와 가시내가 평등과 평화를 이루어야 아름답다 하는 오늘날이지만, 어느 집으로 마실을 가더라도, 찻상이든 밥상이든 으레 가시내가 차립니다. 사내가 찻상이나 밥상을 차리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서로 집일을 하면서 함께 찻상이나 밥상을 내오는 일 또한 몹시 드뭅니다.


  우리 집으로 마실을 오는 손님은 언제나 아이 아버지인 내가 차리는 밥상을 받습니다. 나는 바지런히 도마질을 하고 밥이랑 국을 끓이며 반찬을 올립니다. 온몸에 땀이 흠씬 돋으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새 없습니다.


  내가 밥상을 맛나게 잘 차리는지 그닥 맛없게 차리는지 잘 모릅니다. 즐겁다 싶은 밥상인지 그저 그렇다 할 밥상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밥을 차리면서 내 가장 좋은 기운이 서리도록 하고 싶다 생각합니다. 내 가장 고운 사랑으로 차려야 나도 식구들도 즐겁게 먹고 즐겁게 기운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먼먼 옛날 옛적 살림집 어머니들은 ‘언제나 밥상 차리기를 도맡’으면서도 밥 한 그릇 한 번 잘못 내오면 꾸중을 듣거나 쫓겨난다 했어요. 숱한 집일을 도맡으면서도 어쩌다 한두 차례 무언가 잘못을 하면 꾸지람을 듣거나 쫓겨난다 했어요. 참으로 수많은 어머니들이 아버지들한테 두들겨맞았어요.


  어느 날 문득 생각합니다. 옛날 옛적 어머니들은 ‘소박 맞는다’고 했으나, 나는 ‘이 집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참말이지,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 돌보며 밭일까지 다 하는데, 가시내를 그토록 못살게 굴거나 모질게 대접하던 가부장 봉건 사회란 얼마나 끔찍한가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 옮겨가는 자리마다 꽃 피어나신다 ..  (어머니)


  가부장 봉건 사회 그늘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여느 살림집에도, 국회의사당에도, 여느 회사나 공공기관에도, 학교에도, 온통 가부장 봉건 사회 그늘이 드리운다고 느낍니다.


  왜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걷지 못할까요. 왜 서로 사랑하는 꿈을 꾸지 못하나요. 왜 서로 아끼며 보살피는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가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갈려야 할 까닭은 없어요. 모두 같은 사람인걸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쪽은 키가 작고 저쪽은 키가 클 테지요. 그런데, 내가 ‘눈을 뜨고’ 바라보면 키가 크거나 작지, 내가 ‘눈을 감고’ 마주하면 키란 덧없어요. 얼굴도 몸매도 덧없어요.


  어른도 어린이도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목숨이에요. 저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착한 꿈빛이에요.


.. 가만, 저 하모니카는 내 눈에도 익다 / 정 노인은 저 하모니카 덕에 세상구경 / 여러 번 했었다 / 합주단 만들어 여수로 대구로 서울로 대전으로 / 교회초청으로 청주까지 다녀왔었다 / 그러나 예약해 두었다는 호텔에서 잠은 자지 못했다 / 가는 곳마다 퇴짜를 놓았다 / 그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이었다 ..  (소록도, 그 섬의 죽음)


  내가 눈 아닌 마음으로 마주하고, 귀나 코나 입 아닌 마음으로 다시금 마주한다고 하면, 누구보다 나부터 내 생각과 삶이 달라지리라 느껴요. 참말 이런 울타리 저런 그늘을 뒤집어씌운 채 바라보지 말고, 꾸밈없이 마주하면서 가장 깊고 너른 마음과 마음으로 마주한다고 하면, 언제나 나부터 새롭게 거듭나는 예쁜 사람이 되리라 느껴요.


  내가 나이면서 내가 나인 줄 모르는 까닭은 참다운 나를 생각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구나 싶어요. 내가 나인 줄 옳게 깨닫고 내가 나로구나 하고 슬기롭게 생각하며 살아갈 때에는, 참말 늘 환하게 웃고 밝게 말하며 싱그러이 움직이는 목숨이 되리라 느껴요.


  좋아하는 빛을 누리려고 지구별에 태어났어요. 사랑하는 길을 걸으려고 지구별에 왔어요.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해맑게 빛나려고 지구별에서 살아가겠지요. 흐뭇하게 손을 맞잡으면서 아리땁게 노래하려고 지구별 사람이 되었겠지요.


.. 불도저 지나간 자리는 잡초만 무성하고 / 담배를 꺼내 문 아버지는 / 멍하니, 앞산만 건너다 보시고 / 어쩔끄나 어쩔끄나 이 노릇을 어쩔끄나 / 불도저 지나간 바퀴자국 없애느라 / 어머니는 뼈마다 앙상한 몸으로 / 자근자근 옛 집터를 고르고 계셨습니다 ..  (그 자리)


  아침 햇살 곱게 받는 마당 가장자리 풀포기를 바라봅니다. 이웃 아저씨는 이 풀포기 잎사귀를 보고는 처음에 수박풀이라고 말했는데, 하루하루 흐를수록 ‘어쩐지 수박풀 같지는 않은데’ 싶었습니다. 잎사귀 커지고 꽃이 피며 암꽃이 아물며 열매 맺는 모양새를 보아 하니, 오이도 아니요 아무래도 수세미 같구나 싶습니다.


  꽃잎이 노랗기로는 호박이랑 오이랑 수박이랑 수세미랑 한 갈래예요. 모두 꽃이 소담스레 큼지막합니다. 바람에 한들한들 춤을 춥니다.


  그나저나 우리 집 마당 한켠에서 수세미는 어떻게 자랐을까 궁금합니다. 수세미 씨앗을 꽤 곳곳에 뿌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한 포기만 자랄 줄 몰랐어요. 아니, 마음으로는 예쁘게 심고는 잊었달까요. 내가 잊은 한 가지를 이 풀포기는 예쁘게 떠올리고는 날마다 고운 봉오리를 보여준달까요.


.. 한 두둑에서는 속이 들고 / 그 옆 두둑에서는 철이 든다 // 한 두둑은 한 겹 한 겹 속이 차고 / 옆 두둑은 쑥쑥 밑이 든다 ..  (무와 배추)


  노란 꽃봉오리 곁에는 하얀 꽃봉오리가 가득합니다. 부추꽃입니다.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날마다 신나게 부추풀을 꺾어서 나물비빔을 먹었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한 끼니만큼 그때그때 꺾어서 먹었어요. 오늘은 이쪽에서 꺾고 이듬날은 저쪽에서 꺾고 하면서 먹었어요. 꺾인 부추풀은 이내 새 잎을 올렸고, 새 잎이 어느 만큼 길고 굵어지면 다시 꺾었어요.


  그런데 이 부추풀은 끝까지 씩씩하게 새 잎을 올려요. 그러고는 이렇게 꽃대까지 올린 다음 몽우리를 맺고, 몽우리를 터뜨려 하얀 꽃봉오리를 활짝 베풉니다.


.. 동이나 호, 명함을 모르고 찾아 갔다가는 / 이게 누구네 동네고 저게 누가 사는 집인지 헛갈려 알 수 없는 것이다 ..  (시집)


  좋은 밥을 먹습니다. 좋은 꽃을 봅니다. 좋은 바람을 쐽니다.


  바람이 조용한 한여름 아침나절, 좀 덥구나 하고 생각하니 쏴아 하고 바람이 불며 후박나무 잎사귀며 부추풀 꽃잎이며 건드립니다. 이웃집 밭뙈기 고구마잎을 건드리고 옆집 무논 볏포기를 건드립니다.


  바람은 어떤 빛깔이거나 무늬이거나 냄새인지 느낄 수 없다고 해요. 그런데, 바람은 들을 지날 때에는 들바람이 되어 들내음을 베풀어요. 바람은 멧골을 지나며 멧바람이 되어 멧내음을 베풀어요. 바람은 바다를 지나며 바닷바람이 되어 바닷내음을 베풀어요. 바람은 밭뙈기 사이를 불며 밭바람이 됩니다.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며 나무바람이 됩니다. 풀 사이를 흔들고 지나며 풀바람이 돼요.


  부추풀을 건드리는 바람은 부추바람입니다. 후박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은 후박바람입니다. 빨래줄을 건드리고 빨래를 건드리는 바람은 빨래바람입니다.


  바람결에 온갖 냄새가 담깁니다. 바람결에 온갖 무늬가 그려집니다. 바람은 하늘빛을 새삼스레 바꾸어 놓습니다. 구름은 하얗기도 하고 잿빛이기도 합니다. 같은 하양이더라도 다 다른 하양입니다. 바람은 구름 모양을 끝없이 바꾸어 놓습니다. 바람은 따숩다 못해 뜨거운 햇살을 받는 풀포기를 하나하나 건드리면서 이 더위에 더욱 씩씩하게 크라며 기운을 북돋웁니다.


.. 시간이 너무 짧다 / 그 많은 역들은 어디에 몸을 숨긴 걸까 // 술래가 보이지 않는다 / 이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역도 그리 많지 않다 / 저 여승무원은 안전할까? ..  (KTX를 탔다)


  박영희 님 시집 《즐거운 세탁》(애지,2007)을 읽습니다. 빨래는 즐겁습니다. 밥도 즐겁습니다. 아이도 즐겁고, 옆지기도 즐겁습니다. 그야말로 모두 즐겁습니다.


  하루 품삯 5만 원짜리 일도 즐겁고, 품삯 따로 받지 않는 집일도 즐겁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를 바라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어쩜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겠느냐 싶으나, 두 아이와 살아가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사람은 몸뚱이에도 밥을 넣지만, 마음에도 밥을 넣어요. 사람은 몸으로도 밥을 먹으나 마음으로도 밥을 먹어요.


  몸으로만 밥을 먹고 마음으로는 밥을 안 먹는다면, 사람 스스로 곧은 사람으로 사랑스레 살아가지 못해요. 곧, 밥을 먹고 사랑을 먹습니다. 국을 먹고 믿음을 먹습니다. 반찬을 먹고 꿈을 먹습니다. 이윽고, 밥을 나누고 사랑을 나눕니다. 국 한 그릇 서로 나누고 믿음 한 자락 골고루 나눕니다. 반찬 한 점 다 함께 나누며, 꿈 한 꾸러미 다 같이 나눠요.


.. 새들은 대체 어디까지 쫓겨난 것일까? ..  (그 산에는 새가 울지 않는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랑을 빚습니다. 사랑을 생각하기에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사랑을 일굽니다.


  작은아이는 어머니젖을 물고 잠듭니다. 어머니젖은 몸을 살찌우는 밥이면서 마음을 보살피는 사랑입니다. 식구들은 서로서로 밥상 앞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마음을 살찌웁니다.


  들새는 들에서 들밥을 먹고, 멧새는 메에서 멧밥을 먹습니다. 사람이 있고, 들이 있으며, 새가 있습니다. 사람이 있고, 풀이 있으며, 벌레가 있습니다. 사람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숲과 바다와 하늘이 있습니다. 저마다 예쁜 밥을 먹으며 예쁜 목숨을 아낍니다. (4345.8.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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