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이 오줌가리기

 


  어제 하루 작은아이 오줌기저귀를 한 장도 내지 않는다. 한 시간에 한 차례 오줌그릇에 앉히니 이때마다 조금씩 쉬를 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뒤에도, 새벽에 칭얼거려 깨어날 적에도, 지난 열일곱 달을 돌아보건대 막 눈을 뜨거나 잠결에 이리저리 몸을 뒤틀 적에는 쉬가 마렵다는 뜻이요, 살며시 안아서 토닥이고 보면 바지나 기저귀에 으레 쉬를 누기 마련이라, 이 즈음에 오줌그릇에 앉히니, 졸린 눈으로도 쉬를 눈다.


  오늘도 낮 다섯 시 사십 분까지 아직 기저귀 한 장 내지 않는다. 틈틈이 쉬를 누였기 때문이다. 이제 깊은 낮잠에 빠진다. 깊은 낮잠을 잘 즐기다가 일어난 뒤에도 쉬를 누이면, 오늘은 밤잠을 잘 때까지 기저귀이며 바지이며 한 장도 빨래감이 안 나올 테지. 그러나, 빨래감이 있고 없고보다, 작은아이가 오줌그릇에 앉아 쉬를 누는 버릇을 들이니 반가우면서 예쁘다. 이제 너도 네 누나처럼 쉬가 마려울 때에는 쉬를 눌 자리를 찾을 수 있겠지. 쉬를 눌 자리를 찾을 수 있은 다음에는 똥을 눌 자리도 찾을 수 있겠지. 다 큰 아이가 되는구나. (4345.10.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2-10-05 17:58   좋아요 0 | URL
이쁘네, 이제 오줌도 가리는구나... 아이고.

파란놀 2012-10-05 18:08   좋아요 0 | URL
오줌 안 가려도 이쁘지요~ ㅋㅋ
 


 작은 손짓 책읽기

 


  반찬 삼을 돗나물을 뜯는데, 작은아이가 곁에 붙는다. 옆에서 아버지가 풀을 뜯듯 저도 뜯는다. 그런데 작은아이는 풀을 뿌리까지 뜯는다. 줄기만 살짝 꺾으면 풀이 새로 자라며 언제까지고 더 먹을 수 있지만, 뿌리까지 뜯으면 더는 못 먹는다. 아이야, 그렇게 확 뜯지는 말고 살금살금 잘 뜯으렴. 오늘도 먹고 모레도 먹으려면 예쁘게 잘 뜯으며 고맙다고 말해 주렴.


  뜯은 돗나물을 헹군다. 곤약을 썰어 함께 무친다. 밥상에 올린다. 한창 여러 가지를 먹던 작은아이가 손가락으로 돗나물을 가리킨다. “응.” 아직 ‘엄마’랑 ‘응’이라는 낱말로 모든 생각을 나타내는 작은아이는, 저 돗나물을 먹고 싶다며 “응.” 하고 말한다. 어인 일이니. 네가 손수 뜯은 돗나물이라 먹어 보고 싶니. 좋아. 잘 씹어서 풀맛을 네 혀로 느껴 봐. 하루하루 씩씩하게 자라면서 네 손으로 풀을 보살피고 거두고 밥을 지어서 먹어 봐. 네 손길이 닿은 풀은 한껏 맑게 빛날 테고, 네 손짓으로 지은 밥은 한결 구수하게 맛날 테니까. (4345.10.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따순 품 바라는 마음

 


  이른새벽에 잠에서 깬 작은아이가 어머니 품을 찾습니다. 아이들 어머니는 그제부터 마음닦기 하는 곳에 갔습니다. 앞으로 너덧새 뒤에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며 재우지만, 아이는 아쉬운 눈빛으로 어머니를 찾습니다. 설마 싶어 벌떡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도 가고 바깥도 내다 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안 보입니다. 아버지가 다시 품습니다. 아이는 입을 실쭉거리다가도 살며시 눈을 감습니다. 이윽고 다시 눈을 뜹니다. 다시 눈을 감습니다. 또 눈을 뜹니다. 한 시간 남짓 입을 쪽쪽 다시다가 스르르 곯아떨어집니다. 그런데 드르릉 코 고는 소리까지 내며 잠들다가도 눈을 번쩍 뜹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닌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글쎄’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으나, 다른 말은 선뜻 떠오르지 않고 ‘글쎄’ 한 마디만 떠오릅니다. 그러면, 이 어린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보내면 무엇을 잃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어머니 따순 품을 잃고, 어버이 보드라운 사랑을 잃으며, 보금자리 너그러운 이야기를 잃겠지요. 숲에서 노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아니라 한다면, 숲에서 뛰놀며 삶을 익히는 초등학교가 아니라면, 숲에서 땀흘려 일하기도 하고, 나무와 풀을 한껏 껴안는 중학교가 아니라면, 숲을 이루는 흙과 햇살과 바람과 물을 곰곰이 살피며 배우는 고등학교가 아니라면, 이 아이들이 학교라는 데를 다닐 뜻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 품에서 젖을 빨고 만지면서 사랑과 삶과 꿈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면서 믿음과 삶과 이야기를 이어받습니다. 아이들은 숲으로 둘러싸인 보금자리에서 무럭무럭 크면서 생각과 꿈과 마음을 추스릅니다.


  가을 새 아침이 밝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느긋하게 자다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곡식을 먹는 작은 새들은 나락을 한창 베는 들판 곳곳을 날아다니며 부산합니다. 집 안팎으로 작은 새들 노랫소리가 한가득 감돕니다. (4345.10.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2-10-05 17:59   좋아요 0 | URL
아내분께서 어딜 가셨나봐요?
마음닦기 하는 곳이 어딜까 일순 궁금해집니다... ^^

파란놀 2012-10-05 18:17   좋아요 0 | URL
'람타' 비기닝 이벤트...라고 하던가 그래요 ^^;;;
아주 고되게 마음닦기를 시켜 주는 곳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열고, 양자물리학을 이해하면,
아주 쉽게(몸은 힘들지만) 알아들으면서
삶을 스스로 창조하도록 이끌어 준다고 해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모든 사람들 마음에 있는 '하느님'을 깨우쳐
스스로 밝은 숨결이 되도록 하는 일이에요.

아무튼, 아이들이 여러 날 씩씩하게 잘 놀기를 빌 뿐입니다~
 
사람을 보라
한금선 외 22인 지음 / 아카이브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을 보아야 찍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15] 사진쟁이 스물세 사람, 《사람을 보라》(아카이브,2011)

 


  ‘한진중공업 노사분규’ 이야기를 사진쟁이 스물세 사람이 저마다 다른 눈길로 담아내어 한 자리에 그러모은 사진책 《사람을 보라》(아카이브,2011)를 읽습니다. 사진쟁이 스물세 사람이 저마다 다른 눈길로 사진을 찍을 수 있던 까닭이라면, 한진중공업 노조와 회사가 서로 부딪혔기 때문이라 할 텐데, ‘노사분규’가 생기고 ‘85번 크레인’에 ‘김진숙’ 님이 올라갔대서 사진으로 찍을 만한 그림이 나왔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맨 먼저 ‘노사분규’라는 이름부터 안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노사분규가 아니라, 회사에서 ‘일꾼한테 일삯을 옳게 주지 않은’ 데에서 모든 일이 비롯합니다. 이 다음으로는, 회사가 노조하고 말로 보드라이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어요. 평화롭게 어깨동무를 하는 길이 아닌, ‘주인과 노예’처럼 계급과 신분을 가른 채, 돈을 움켜쥐어 사람을 부리고, 돈을 바라며 이리저리 휘두릅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는 일꾼, 곧 노동자이지만, 일하는 몫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일을 시키는 사람 스스로 일을 모르기 때문이요, 일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며, 일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일을 시키는 사람 스스로 일이 아닌 돈만 알고, 돈만 생각하며, 돈만 거머쥐려 하기 때문이에요.


  한 사람이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돈이란 얼마쯤일까 궁금합니다. 한 사람이 죽는 자리에서 저승으로 가지고 갈 만한 돈이란 얼마쯤일까 궁금합니다. 죽은 뒤에 돈이 어떤 값을 할까 궁금합니다. 서로 얼크러져 살아가는 이곳에서 즐겁게 나누고 기쁘게 함께할 돈이 될 때에 아름답지 않을까 싶어요.


  노동자 일삯을 올린대서 회사가 무너질까요. 노동자 일삯을 줄이면 회사가 이익을 많이 올릴 수 있을까요. 노동자 일삯을 줄이거나 깎으면, 얼핏 보기로는 회사가 이익을 거두는 듯 보일 테지만, 이렇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나면, 회사는 얼마쯤 손해를 보는 셈일까요. 회사로서는 안 치러도 될 손해를 굳이 치르는 꼴인데, 처음부터 노동자 일삯을 옳게 치러 주었으면 다 함께 즐거우면서 노동자도 회사도 나란히 즐겁게 ‘돈을 벌’면서 평화로우리라 느껴요.


  사진책 《사람을 보라》는 ‘생생한 현장기록’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책을 보면서 ‘어떤 현장을 기록’하고 ‘어떤 생생함’을 찾으려 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삶을 생생하게 그린 사진일까요? 일하는 사람들 웃음과 눈물을 생생하게 그린 사진일까요? 싸우는 사람들 다툼을 생생하게 그린 사진일까요? 싸우는 사람들이지만 주먹이나 돌 아닌 웃음과 어깨동무로 새길을 찾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린 사진일까요?

 

 


  사진책 이름 “사람을 보라”를 생각합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거나 사귀려면 “서로를 보아야”, 곧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얼굴이나 옷차림을 볼 일이 아닙니다. 졸업장이나 은행계좌를 볼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볼 일입니다. 마음가짐을 보고 마음밭을 보며 마음씨를 볼 일입니다. 함께 나눌 사랑을 보고, 같이 누릴 꿈을 보며, 서로 북돋울 이야기를 볼 일입니다.


  한진중공업 일꾼과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은 씩씩하게 싸웠다고 합니다. 희망버스가 드나들고, 오랜 나날 외롭게 서며 목소리를 내려고 했답니다. 사진은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비춥니다. 오늘은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모레에는 비정규직이 되고 마는 얼거리가 오늘날 한국 사회라고 밝힙니다. 사람은 꽃이요, 노동자는 꽃이라고 큼지막하게 쓴 걸개천을 사람들이 들고 춤을 춥니다. 아이들이 노래하고 어른들이 어깨동무합니다.


  어디에서나 삶입니다.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삶을 적바림하는 사진입니다. 살아가는 나날을 그리는 사진입니다.


  한진중공업 싸움이기에 대단하지 않습니다. 희망버스가 찾아왔으니 기쁘지 않습니다. 경상남도 밀양에서는 시골마을 사람들이 송전탑 때문에 여러 해째 싸웁니다. 시골마을 사람들이 에어컨을 쓰지도 않고 승강기를 타지도 않으며, 시골마을에 공장이 따로 없는데, 도시에서 쓰는 전기가 모자라다며 시골에 발전소를 짓고 도시까지 송전탑을 놓습니다. 이러는 사이 시골사람은 애꿎게 논밭과 보금자리를 발전소와 송전탑한테 빼앗깁니다. 때로는 우람한 송전탑 곁이나 한복판에 논밭과 보금자리가 놓이는 모양새가 됩니다. 그러고 보면, 평택 대추리에서도, 제주 강정마을에서도, 어제오늘 똑같거나 엇비슷한 싸움과 슬픔이 되풀이됩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다른 이웃마을에서도 다툼과 아픔이 잇달아 터집니다. 참말 사진쟁이들이 다니며 찍어야 할 사진이 많고, 희망버스가 돌아다니며 힘내라고 북돋울 삶터가 많습니다.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사람을 보라’고 말합니다.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어떤 힘, 이를테면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나 문화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사람을 안 보’면서 짓누릅니다. 어떤 얼굴이든 권력이 될 때에는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 아닌 모습일 때에는 무엇일까요. 괴물일까요, 도깨비일까요, 귀신일까요. 바보일까요, 멍텅구리일까요, 얼간이일까요.


  내 이웃이나 동무를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할 때에는, 이녁 스스로 사람인 줄 모르거나 잊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에 이녁 이웃이나 동무를 꾸밈없이 바라보지 못하고 어깨동무하지 못하며 사랑하지 못하는 노릇 아닌가 궁금합니다. 회사에서 사장이 되든, 회사에서 노동자가 되든, 또 회사에서 어떤 다툼이 생겨 이 자리에 찾아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든, 우리들은 서로를 사람으로 마주하고 사람으로 생각하며 사람으로 사랑해야지 싶습니다. 사람을 보아야 비로소 즐겁게 웃으며 함께 일합니다. 사람을 보아야 비로소 어깨동무를 하거나 두레를 하면서 손을 잡습니다. 사람을 보아야, 사진기를 들이밀어 사진을 찍는 사람이랑 사진기를 쳐다보며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 이웃이나 동무가 됩니다.


  사진책 《사람을 보라》에 나오는 사람들이 웃습니다. 슬픔과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웃는 삶을 바라기에 웃습니다. 사진책 《사람을 보라》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낯빛일까요. 이들도 함께 웃는 낯빛일까요. 군인 옷이나 경찰 옷, 또는 사장 옷이나 간부 옷, 또는 정치꾼 옷이나 군수 옷을 입은 채 핏기를 잃은 낯빛일까요.


  사람은 웃을 때에 사람이요, 꽃은 활짝 피어날 때에 꽃이라고 느껴요. 열매는 무르익을 때에 열매요, 나무는 푸른 잎사귀를 한껏 빛낼 때에 나무라고 느껴요. 햇볕은 날마다 새롭게 찾아들어 환하고 따뜻하게 비출 때에 햇볕이요, 구름은 때때로 그늘을 마련해 주며 더위를 식힐 때에 구름이라고 느껴요. 목마름을 달래니 비요, 온누리를 포근하게 덮으니 눈이라고 느껴요. 사람이라면 사랑이겠지요. 사람이라면 꿈이겠지요. 사람이라면 이야기일 테지요. 사람이라면 서로를 아끼며 보살피는 맑은 웃음일 테지요.


  사람을 바라보아 주셔요. 나를 바라보고 내 이웃과 동무를 바라보아 주셔요. 멧새가 노래하고 풀벌레가 속삭이는 가을이에요. 하늘은 파랗게 높고 들판은 누렇게 깊은 가을이에요. 밥 한 그릇에 다 함께 배부르며 즐거울 가을이에요. 내 안에서 곱게 빛나는 넋을 보아 주셔요. (4345.10.5.쇠.ㅎㄲㅅㄱ)

 


― 사람을 보라 (사진쟁이 스물세 사람,아카이브 펴냄,2011.8.20./1만 원)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락빛 책읽기

 


  봄빛과 여름볕을 물씬 머금은 가을열매인 나락을 벤다. 논에 모를 낸 차례에 따라 천천히 벼베기를 한다.벤 벼는 시골길 한켠에 죽 펼쳐서 해바라기를 한다. 올가을에는 빗방울 없고 구름만 살짝 흐르며 햇살이 곱게 내리쬐니 알알이 잘 여문다.


  아이들과 시골길을 걷거나 자전거로 달리다가 새 나락, 곧 햅쌀을 들여다본다. 길바닥에 구르는 나락알을 주워 보기도 한다. 큰아이는 “껍질을 까서 먹는 거야?” 하고 물으면서 스스럼없이 나락알을 까먹는다. “아니야. 껍질째 먹어야지.” 하고 들려준다.


  해바라기를 하는 나락 곁을 지나가면 나락내음이 확 풍긴다. 봄빛을 먹고 여름볕을 마신 나락들은 가을 내음을 나누어 준다. 사람들은 밥을 지어 먹을 때에 봄을 먹고 여름을 마시고 가을을 누리는 셈이리라. (4345.10.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