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지는 시골

 


  보름달빛 하얗게 온 고을과 들판을 적신다. 달빛이 아주 환해 길과 집과 들이 훤하게 보인다. 밤하늘이 그리 깜깜하지 않다. 달빛을 받으며 훤히 열린다. 그러나, 이 달빛은 깊은 시골에서만 달빛이 될 뿐, 면내나 읍내로 나가더라도 전깃불빛한테 가로막힌다. 도시사람은 달빛이 있는 줄 느낄까. 도시사람은 별빛이 나란히 온 지구별을 감싸는 줄 생각할까. 달을 느끼지 않고 별을 바라보지 않으며 해가 뜨더라도 고작 하루가 되풀이되는 줄 여기기만 한다면, 삶을 누리는 보람은 어디에 있을까.


  보름달 지면서 하늘은 한결 까맣게 빛난다. 밤하늘이 까맣게 빛나면서 온갖 별이 반짝인다. 비로소 미리내를 볼 수 있고 아주 자그맣게 보이는 별을 만날 수 있다. 저 멀디먼 별 가운데에는 지구에서 보내는 빛을 받는 곳도 있겠지. 저 멀디먼 별나라에서는 지구빛을 어떤 빛으로 맞아들이거나 느낄까. 지구별 스스로 빚는 빛으로 느낄까, 지구별을 갉아먹는 전깃불빛 매캐한 공해덩어리 빛으로 느낄까. (4345.10.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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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김수미 지음 / 샘터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꿈꾸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책읽기 삶읽기 118] 김수미,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샘터,2009)

 


  시골집에 손님이 찾아옵니다. 여느 때에도 늘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에 차릴 밥을 이것저것 미리 손질해 놓지만, 손님이 찾아온 만큼 이모저모 더 마음을 써서 손질을 합니다. 집식구끼리 먹는 밥이라면 엊저녁 먹고 남은 찬밥이 있어도 아침에 그대로 먹지만, 손님이 온 만큼 아침밥은 달리 해야지 생각합니다. 어쨌든 따순 밥을 끓이고, 한편으로는 찬밥을 볶든지 지지든지 어떻게 끓이든지 할 생각입니다. 손님이 들고 온 먹을거리를 더 맛나게 먹자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함께 찾아온 아이들은 도시내기라 풀밥 먹기가 익숙하지 않은데, 우리 식구 먹는 대로 풀을 밥상에 차리자면 힘들는지 몰라요. 그러면 이 아이들이 풀을 맛나게 먹도록 이끄는 길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 나 자신 우울증과 빙의를 앓으면서 자살 직전까지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인생 후배들의 아픔에 누구보다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다. 개미는 바늘로만 찔러도 치명적이지만 코끼리에게는 그저 따끔할 뿐이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 보자. 절벽에서 떨어지면 코끼리는 치명적이지만 개미는 끄떡없지 않은가?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세상 모든 개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16쪽)


  동이 틉니다. 날이 밝습니다. 마을을 드나드는 멧새는 으레 우리 집 후박나무와 산초나무에 앉았다가 갑니다. 멧새와 들새는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집에도 빠짐없이 들르지 싶습니다. 새를 쫓는 집은 없고 새를 미워하는 집은 없어요. 새들은 감나무에 앉아 감을 쪼아먹기도 하고, 후박나무 열매를 먹기도 했고, 후박씨를 먹든 산초열매를 먹든, 저희 마음껏 이 나무 저 나무에 앉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은 곱게 뽑는 목소리로 나긋나긋 새벽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침에는 아침나절대로 아침노래를 듣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멧새와 들새가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을 이으며 들려주는 노랫소리가 다 다릅니다. 고운 결로 새삼스레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하루 흐름으로 보자면 동이 트며 온 고을이 환하게 빛날 무렵 새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먹이를 찾으며 비비배배 노래한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르게 바라보자면, 새들이 이슬 내린 깃을 털고 힘차게 일어나서 비비배배 노래하기에 아침햇살이 새삼스레 우리한테 찾아온달 수 있습니다.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 누구나 아직 동이 안 튼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열기에, 이러한 숨결과 손길을 받으며 아침햇볕이 즐거이 찾아온달 수도 있어요.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새벽에 조용히 생각에 젖습니다. 아직 새근새근 자며 고단한 몸을 쉬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 아이들과 손님 아이들은 모두 저희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고 자랍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는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나는 내 어버이가 베푸는 사랑을 받아먹고 자랐습니다. 나 혼자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지 않았어요. 내 가슴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있어 내 자그마한 사랑이 내 어버이한테 새롭게 기운이 되기도 했을 테지만, 내 어버이가 나누어 주는 사랑이 있기에 내 작은 몸뚱이는 천천히 자랐어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큽니다. 이동안 아이들 나름대로 가슴속에서 사랑씨앗 살며시 심으며 저희 어버이한테 조그맣게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서로 주고받기에 사랑이요, 서로 나누기에 사랑입니다. 서로 즐겁게 웃는 사랑이고, 서로 기쁘게 북돋우는 사랑입니다.


.. 엄니는 매일 마당에서 꽃에 물을 주시면서 혼자서 구시렁구시렁 이야기를 하곤 하셨는데 내가 엄니를 꼭 닮았다. 집 안만이 아니었다. 끝이 안 보이는 깨밭에는 작은 주머니만 한 연보라색 깨꽃이 주렁주렁 열리고, 원두막 위에는 하얀 박꽃이 춤을 추고, 밭고랑 사이사이 노오란 호박꽃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밭에 올라가면 보리밭 사이에 몰래 심었다는 시뻘건 양귀비꽃도 보였다 ..  (65쪽)


  밥을 예쁘게 차려서 즐거이 먹은 다음 무얼 할까 헤아립니다. 마을 고샅을 살짝 걷다가 바다에 함께 갈까 싶습니다. 바다는 여름철에 물에 첨벙 뛰어들어도 재미나지만, 가을이나 겨울에 차디찬 바닷물에 살며시 손을 담그다가 모래밭에서 달리고 주저앉아 바람을 듬뿍 쐬어도 재미납니다.


  말없이 바라보아도 좋은 바닷바람입니다. 가만히 맞아들여도 기쁜 바닷햇살입니다. 들에서는 들바람과 들햇살을 누립니다. 멧골에 오르면 멧바람과 멧햇살 누립니다.


  이야기가 찾아옵니다. 한 올 두 올 이야기 실타래가 바람에 실려 나한테 찾아옵니다. 석 올 넉 올 이야기 꾸러미가 햇살 따라 아이들한테 찾아듭니다. 풀과 나무는 모두 바람과 햇살과 빗물과 눈송이를 받아먹고 자랍니다. 어른인 나도, 우리 아이들도, 손님 아이들도, 누구나 바람과 햇살과 빗물과 눈송이가 있기에 다부지게 하루를 열 수 있습니다.


  꼭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종이상자 하나가 놀잇감이 됩니다. 반드시 무얼 사야 하지 않습니다. 풀잎 하나 뜯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꼭 어딘가 가야 하지 않습니다. 내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숲이 되어 집식구 사랑을 보듬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꿈을 꾸어요. 내 모습을 꿈꾸고 내 얼굴을 꿈꾸어요. 따스하고 너그러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로 하루를 빛낼 수 있는 내 삶을 꿈꾸어요.


.. 나는 주로 여성들 위주로 모인 강연에서, 나의 행동이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가 그것이 메아리처럼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이야기한다 ..  (239쪽)


  김수미 님 이야기책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샘터,2009)를 읽습니다. 김수미 님이 내놓는 이야기책은 한결같습니다. 늘 당신 살아온 이야기를 담습니다. 언제나 당신 하루를 글로 적바림합니다. 굳이 소설을 쓸 까닭이 없어요. 누구라도 스스로 이녁 삶을 적바림하면 글이고 소설이고 문학이고 이루어집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아요. 내 삶을 찬찬히 살피면서 적바림할 때에도 이야기를 쓸 수 있어요.


  누가 나를 사랑해 주어야 내가 예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지 않습니다. 아니, 꼭 입으로 말하거나 글로 적어야 사랑이 되지 않아요. “널 사랑해.” 하고 말할 적에 사랑이지 않아요. 삶을 함께 누리면 돼요. 함께 누리는 삶이 사랑이에요. 함께 나누는 밥그릇 하나가 사랑이에요. 김치 한 접시가 사랑이에요. 국 한 모금이 사랑이에요. 늘 마시는 바람 한 줄기가 사랑이에요. 나한테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한 그루가 사랑이에요. 구름 한 자락이 사랑이에요. 아침저녁으로 드리우는 노을이 사랑이에요. 풀벌레 한 마리 노랫가락이 사랑이에요. 빗물 한 방울이 사랑이에요.


  김수미 님은 꿈을 꿉니다. 꿈을 꾸기에 글을 씁니다. 김수미 님은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하기에 김수님은 이녁 삶을 가장 꽃피울 만하다고 여긴 ‘연기’를 하면서 이녁 이웃과 동무한테 고운 사랑을 방긋방긋 웃음꽃으로 나누어 줍니다. (4345.10.29.달.ㅎㄲㅅㄱ)

 


―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김수미 글,샘터 펴냄,2009.6.15./12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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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밥을 짓는 손은
사랑을 짓는다.
국물 퍼서
늙은 어미 먹이는 손은
사랑을 푼다.
때가 잔뜩 탄
옷을 살살 벗겨
아이들 씻기는 손은
사랑을 어루만진다.

 

사랑을 지어
밥짓기,
사랑을 퍼서
삶짓기,
사랑을 나눠
꿈짓기.

 

내 손은 사랑스럽다.

 


4345.6.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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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놀이

 


  아이들을 토닥토닥 예쁘게 재우면, 아이들은 인형놀이를 하면서 토닥토닥 예쁘게 재웁니다. 누나가 인형을 예쁘게 재우며 놀면, 동생도 인형을 예쁘게 재우며 놉니다. 서로서로 예쁜 마음을 주고받아요. 저마다 예쁜 사랑을 길어올려요. (4345.10.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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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정

 


  1등만 떠올리는 얄딱구리한 한국 사회에서는 대통령뽑기가 아주 대단한 일이라 여긴다. 한 표 때문에 갈리든 열 표 때문에 엇갈리든, 한국에서는 오직 1등만 모시거나 섬기는 뒤틀린 얼거리를 보여주기에,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를 뽑는 일마저 몹시 커다란 일이 된다고 여긴다.


  나는 2012년 12월 대통령뽑기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이쪽도 저쪽도 그쪽도 ‘내 쪽’이 아니니까. 나는 내 쪽에 있는 사람한테 한 표를 주고 싶지, 내 쪽에 없는 사람한테 한 표를 주고 싶지 않다. 내 쪽에 없는 사람한테 한 표를 주었을 때에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여러 차례 겪었으니, 이제는 바보짓을 할 마음이 없다. 사람이라면, 한 차례만 스스로 겪었어도 깨달아야 하는데, 여러 차례 바보짓을 하며 바보스러운 삶을 느끼고서도 바보짓을 한다면 사람으로 살아갈 까닭이 없으리라 본다.


  10월이 저무는 2012년 한자락, 심상정 님이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 나는 심상정 님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기를 여덟 해 기다렸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말든 내가 스스로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에서 잘 살아가면 될 노릇인데, 굳이 대통령 한 사람을 뽑아서 무언가 맡기려 한다면,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닌 ‘일을 할’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어느 쪽 대통령 후보는 ‘여자 대통령’이라고까지 말하는데, 참말 여자 대통령이라 하면 그분만 ‘여자’는 아니리라. 그런데 대통령 될 사람이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대수로운가. 사람다운 사람이어야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하는 대목으로 금긋기를 하는 뜻이 있을까.


  사람다움이 없으면 남자이건 여자이건 똑같다. 여당 대통령이 되건 야당 대통령이 되건 대수롭지 않다.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할 뿐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 말과 삶과 넋을 골고루 살피면서 말다움과 삶다움과 넋다움을 알아채는 ‘사람다운 사람’ 눈길이 되어, 아이들을 마주하고 내 하루를 누리며 생각을 살찌운다면 이 나라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문득 헤아려 본다. 나는 ‘여자 대통령’이 나오기보다는 ‘아줌마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 나는 ‘똑똑한 대통령’이 나오기보다는 ‘슬기로운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 전태일하고 벗하고 전우익하고 벗하며 아이들하고 예쁘게 벗하는 여느 아줌마가, 아이들한테 젖을 물려 사랑을 나누어 주었으며, 아이들한테 맛난 밥을 사랑으로 차려 주던, 이 나라 아줌마가 대통령 일을 즐거이 맡을 수 있기를 바란다. (4345.10.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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